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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의 날
조 윤옥
학원에서 나와 민국은 소리를 수영사거리 분식점에서 만났다. 둘 다 입시준비로 시간이 없지만 그래도 서로 얼굴을 보지 않으면 공부가 안되었다. 민국과 한 소리는 청소년으로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는 죽고 못 사는 단짝이다. 그러나 결혼적령기가 되기까지 진행되어 부부로 맺어져 끝까지 동행하기는 쉽지 않다. 변절과 변덕이 죽 끓듯 한 마음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한 사람만을 교제를 방해하는 젊은 유혹과 변화로 선택권이 넓어졌다. 국방의 의무로 이년 남짓의 군대생활은 연인을 시험하는 험난한 코스인 탓도 있다. 이 여정이 아무리 어렵다고해도 민국은 대학에 들어가고 군대를 갔다 오면 소리에게 결혼 프로 포즈를 멋지게 하고 싶었다.
소리는 일학년 때 전학을 왔다. 아버지가 부산으로 전근을 오는 하향곡선을 타고 모든 식구가 서울에서 내려왔다. 소리의 아버지는 월산실업 영업부 과장인데 지사로 발령이 났다. 신발을 생산하는 회사다. 기획팀에서 영업부로 밀린 셀러리엔. 명태의 소심하고 무능한 한 과장이 위기에서의 연장이 얼마나 갈지는 본인과 가족도 모른다. 한 과장이 사표를 던지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대담성이 부족하다. 한 우물만 파 왔다. 박봉이라 전근이 되어도 서울과 부산 두 집 살림이 되지 않았다. 자식은 부모의 의사를 따르기 마련. 소리는 민국이가 다니는 부영 고등학교에 편입해 왔다. 민국 이와 한 반이 되었다. 소리는 공부는 잘 하지 못한다. 귀엽고 옷을 정갈하게 입어 멋을 내는 여학생이었다. 표준말을 쓰는 서울토박이다. 서울 아이는 금방 둔탁한 경상도 사나이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교복을 벗으면 보송한 생 얼굴에 보기 좋은 긴 머리가 하늘거린다. 그것만으로도 관심을 갖기에 충분조건이다. 그러나 민국은 외모보다 타지에서 온 가시나의 순화된 부드럽고 톡톡 티는 언어가 부산 가시나와 다르게 생경스러워서 좋았다.
흰 피부에 쌍까풀 없는 얄팍한 실눈과 자그마한 코의 주인공 한 소리다. 그 아이는 코가 납작하고 작아도 아주 콧대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귀여웠다. 실눈에 웃으면 보이는 양쪽 덧니는 그만의 매력이 되어 깜찍스럽다.
서울 가시나와 친하게 된 민국은 행운을 잡았다. 등교 길이 같은 방향 수영동이라는 사실이다. 월산 실업이 수영동에 있었고, 민국이 아버지가 하는 개인병원이 그곳에 있었다. 민국이는 자기네 병원 건물 삼층에 살았다. 디자인이 세련된 바닥 오 십 평의 건물 일층은 병원 이층은 사무실로 임대를 놓고 마지막 삼층을 살림집으로 꾸몄다.
이런 지리적 조건으로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다. 학교를 갈 때는 시간을 정해 같이 다녔다. 하교 길에도 같이 나와 빵집이나 분식집에서 자주 대화를 하였다. 방학 전 여름날이다. 분식집에서 만나고 있을 때다. 대화는 소리가 늘 주도를 한다. 대화를 압도하는 힘은 다단계 방문 판매를 한 자기 어머니를 닮았다. 소리의 아버지는 말이 없고 외소하다. 아버지의 무기력한 성격을 좋아하지 않는 소리가 얼굴은 아버지를 닮았다. 은연중에 아버지를 쏙 빼 닮은 자기 얼굴에 콤플렉스를 말한다. 한 과장을 닮았으나 여자의 외모로는 얼굴이 작아 귀염성이 있는데 소리 자신은 얼굴을 들먹이고 있었다. 특히 눈과 코와 덧니를 꼬집는다.
요즘 학생이나 성인들은 방학이나 졸업식 휴가 때 디데이를 잡아 성형수술을 한다. 성형이 연예인만의 전례동화가 아니라 현실화 되었다. 법학을 목표로 하고 있는 민국은 이런 종류의 외모지상주의 현실이 마치 사회병리현상으로 보였다. 소리의 외모 콤플렉스에 화가 치밀었다.
" 야 가시나 야. 너의 모든 하나하나 고것이 다른 가시나와 다른 너의 매력인기라 "
"매력은 무슨......, 눈은 쌍까풀이 져 크고. 코는 오뚝 하고, 덧니가 없이 치아가 고르게 나야 예쁘지. 뭐가 예뻐“"
" 니가 탤런트 될끼가. 일률적으로 똑같이 성형한 인간이 부산을 활보하는 것 내는 못 마당하돼이 "
"부산만 말이냐 서울 명동을 가봐. 미인이 깔려있어 “
"문둥이 가시나 니 말 잘했대이 . 내가 밤낮으로 걷는 부산 말고도 온 천지 찢고 튼 인간이 다니는기라 "
" 그래도 나는 안 그렇다. 잠시 칼을 대고 예쁘면 좋잖아. 이왕이면 다홍치마라 하지 않아."
" 문둥이 가시나야 허튼말 하지 말거래이. 내는 말이다 이 세상에서 지금의 니 얼굴이 최고 예쁜 기라 "
" 치 말로만......,"
" 빵 말고 그럼 뽀뽀를 해 줄거나. "
" 호호호 뽀뽀 너 할 줄 아나?"
"털 달린 짐승이 뽀뽀 못 하는 것 봤나 동물원에 가보래 원숭이도 동료를 미미고 이 잡아 주지 안터냐? 그게 다 좋은 접촉인기라"
"너도 짐승이가 " 소리는 깔깔 웃는다.
웃기는......내는 속 타는데 와 웃노? 우리는 뽀뽀가 아니라 차원 높은 성인식을 하는 기라. 성인식을 가시나가 가을에 하자 안칸나 하필 가을이가 ?"
" 해운대에 여름은 사람이 많아 좋지 않다."
"니캉 네캉 뽀뽀 하는데 사람이 많은 들 어떴노 "
"부끄럽다. 첫 키스인데 무드도 있어야지 " 소리는 얼굴이 붉어졌다.
"환한 낮이거나 무드가 없다고 아기 못 낳노? 문둥이 가시나 "
"니 아직도 뽀뽀만 하면 아기를 낳는다고 생각하는 미성년은 아니겠지 "
"수컷인 늑대의 본성도 알제 "
" 참말로 니도 늑대라고 우리 엄마가 하는기라 "
소리는 부산 말을 유창하게 말을 이어 쓰면서 호호 웃는다. 가지런한 이에 드라큘라 덧니가 양쪽 두개가 들어난다. 민국은 당장이라도 소리의 한창 물이 올라 윤기 흐르는 입술에 포개고 싶은 감정이 들었다.
이학년 산자락 곳곳에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날이다. 벼르고 정확한 날짜로 달력에 줄을 그었던 뽀뽀 성인식을 해운대 바닷가에서 치른다. 추색에 떨며 키스는 격정적이었다. 달콤하다. 더 욕구하고 픈 떨림에 흔들린다. 출렁이는 파도소리가 거친 모든 호흡을 흡수하는 밤이다. 그러나 민국은 끓어오르는 격정을 절제한다. 나긋나긋해져 눈을 감고 있는 소리를 바라본다. 감성적인 혈액형을 지닌 소리라 사랑하는 민국에게 리듬을 맞추며 준비되어 있었다. 입술을 포개고 혀와의 진한 성인식에 몸은 전율을 한다. 민국은 불끈 솟는 힘을 자제하고 심호흡을 하고 가벼운 입맞춤으로 돌아왔다.
"사랑한데이 "
" 민국아 나도 사랑해 "
다시 안았다.
“솔아 만 번을 안아도 향기로운 너를 지켜줄게 . 내가 너를 ”
나직하게 결혼 전 까지는 순결을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을 전한다. 소리는 잔득 긴장을 한 채 눈을 떴다. 미운 척 앙탈을 부린다. 그러나 한 편으로 민국이가 믿음직스러웠다. 이 녀석이라면 한 평생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리의 들뜬 마음과 민국의 우직한 결심을 바다와 갈매기가 들었다.
둘만의 풋풋한 사랑에 공부가 병행되는 막바지 현실은 늘 달콤한 사랑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험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이다. 졸업반이라 학업성적이 좋아야 하는데 평가점수는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소리는 의상학과를 간다고 해 석차가 조금은 느슨해도 되나 중간도 못 미치고, 민국은 영어 토익점수도 괜찮아 영어는 자신이 있는데 항상 수학에서 떨어진다. 민국은 수영동에 있는 학원 단과 반에 접수를 했다. 그러나 경쟁자들이 모두 열심히 하는 시점이라 점수가 약간 올라도 좀처럼 전체 평가등수는 올라가지를 않았다. 부산에서 서울 법대를 가기란 보통 일은 아니다. 늦게 발동이 걸려 죽을 맛이었다.
살얼음판을 걷는 부모들이 더 초조하다. 스트레스가 극심할 자식을 다그치지도 못하고 성적이 처지는 것을 보기란 한 마디로 고역이다. 수험생을 둔 부모는 다 들 피가 마른다는 표현을 쓰고는 한다. 법대를 목표하고 있어 민국이 엄마도 마음을 조인다. 아들이 수능에서 고득점을 받아야 안심을 할 터인데 그렇지 않다. 민국이 오월에 치른 평가고사는 형편이 없었다. 엄마가 더 불안하다. 민국이 또한 의기소침하니 풀이 죽었다.
성적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민국을 엄마가 더는 보다 못해 화를 내었다.
“ 야야 말이다 대학에 합격을 할 때까지 서울 가시나 만나지 말거래이.”
“.와 그래야 하는데....., ” 의문을 제시하는 민국이 말에는 말에는 힘이 없다.
" 성적 보래이. 성적이 말하는 기라. 남들도 그 시간에 공부를 더 열심히 하는 기라 안카나, "
".....,하가는" 민국은 적당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자신도 소리의 뽀송한 민얼굴. 웃는 실눈. 드라큘라 덧니를 보아도 좀처럼 흥이 나지 않고 만나서 노는 시간이 불안하다. 그렇다고 결혼까지 약속한 소리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절교는 곧 죽음이다. 잠시 기다림이 필요할 뿐이다.
민국이는 깐깐한 엄마의 다그치는 단호한 결단에 반박을 못하고 시무룩하게 집을 나왔다. 소리를 만났다. 제기된 문제로 둘이 얼굴을 맞대고 내놓은 해법은 부모님의 의견을 수렴하여 대학시험을 보기까지 만나지 않기로 결정을 하였다. 그 대신 ‘밤을 잊은 그대에게’를 하는 시간대에 음악을 들으며 영시에 민국이가 인터넷으로 오 분 화상대화를 하는 부 주제를 달았다. 실행이 이루어졌다. 시간은 약속대로 지켜지지가 않고 가끔 길어졌다.
소리의 표준말에서 나오는 웃음과 시시각각 변하는 애교스런 얼굴 표정을 보다보면 오 분은 너무 짧았다. 민국도 위트는 누구 못지않았다. 둘은 맛깔스럽게 양념이 뒤섞인 오믈렛에 청량음료를 마시는 신선함이 그 시간으로는 턱 부족하였다. 속된 말로 인터넷 댓글에 훗날 초원에 집을 짓고 사랑하고 아기를 낳고 행복하게 살려면 참아야 한다고 짧게 남기고 히히 호호 써 놓고는 대화방을 닫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보다가 사회에 첫 관문인 일차 통과시기를 놓치면 미래가 불투명해진다는 것을 잘 아는 둘은 시간을 준수하려고 노력을 하였다. 견우와 직녀 같은 오작교의 만남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채팅으로 확인하며 핸드폰으로 매일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둘은 시대를 잘 타고 났다는 생각을 한다.
민국은 시험을 보러 서울로 올라갔다. 절제와 노력 덕분에 법과를 무난하게 들어 갈 수 있었다. 늘 소리가 옆에 있어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힘을 주는 격려가 있기에 가능했다고 믿었다. 소리를 알고부터는 엄마는 뒷전이 된지 오래다. 큰일을 의논해도 소리가 먼저다. 좋은 것이 있어도 소리가 먼저. 자기 엄마보다 소리 엄마가 우선. 딸이 최고라는 말이 실감이 나게 소리네 집을 자기 집처럼 드나들었으니 안 그렇겠는가. 의사 집 아들에 튼튼하고 공부를 잘하는 민국을 보는 소리 엄마는 딸 가진 사람의 미소가 가득하였다.
시험 준비 동안 못 뵌 소리가족과 소리가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 아이는 부산K대학을 낙방하였다. 민국은 개의치 않았다. 군에 갈 공백 기간이 있기에 그 동안 소리가 재수를 해도 넉넉하다고 생각을 하였다.
민국은 아내가 지나치게 약싹 빨라 분명한 것을 좋아하는 자신과 사사건건 부딪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본인의 취미를 살릴 수 있는 전문대를 나와도 좋을 성 싶었다.
명문대학을 합격한 아들을 둔 부모는 그렇지 않았다. 떠들고 자랑은 하지 않아도 흥분은 금방 지워지지 않았다. 서울에 있는 대학 합격이 확실한 등급판정을 받은 것처럼 신분도 상승된 흥분이 사라지지 않는다.
누구나 인생을 꼬이게 하는 사건의 시발이 마음에서 부터이다. 민국이 엄마가 달라졌다. 아들과 대화를 할 때 소리에 대해 부정적인 억센 언어를 사용한다. 무의식의 발언이 아니라 의식적인 계획된 말이다.
“ 처자가 머리가 나쁘면 아는 둔치가 나온다, 안카나 ”
“ 둔치인교? ”
“ DNA. 뭐라 카드라 유전자 형성이라카노.......,”
“......., ”
남편이 내과 의사라 들은 경험이 풍부하였다. 살림집과 일층 병원을 오가면서 뇌로 접수한 것이 지식으로 쌓였다. 그리고 민국이 어머니는 워낙 계산이 빠르다. 민국과 소리를 저울질 해본다. 밑지는 장사를 하고 싶지 않았다. 소리 아버지는 봉급쟁이 직장인이다. 구조조정 칼바람에 언제 그만 둘지 모르는 형편의 가정의 아이. 그리고 딸 만 둘인 소리가 더 못 마땅하였다. 주위에는 딸 만 있는 집에 아들을 빼앗겼다고 하는 친구가 많았다. 민국이가 좋아해 여타 조건을 모른 척 본인들의 능력을 인정하려고 했는데 시시한 대학도 떨어진 아이라 아들과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며느리에 대한 욕심을 부려볼 조건이 형성이 된 판이다. 이십년 간 이룬 단단한 성곽에 안주인으로 소리를 인정하고 모른 척 하기에는 적정수준의 하향 선에도 못 미친다. 절반의 성공을 이룬 것 같은 부모는 이참에 민국이 마음을 돌리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민국이 집에 들려 축하를 해주려고 소리가 들렸다. 민국은 없었다. 소리가 온다고 하기에 빵을 좋아하는 소리를 위해 갓 구운 빵을 사러 나간 사이이었다.
" 가시나야 니는 올해는 대학을 떨어졌으니 공부를 해야 안카나? 민국이는 붙었으니 서울을 가야 되는기라 .이 번만 보고 후딱 가기라....,"
"......, " 소리는 깜짝 놀란다.
" 니 안 만나서 민국이도 붙었데이 . 니도 알제? 연애질을 하다가는 학교 못간데이 "
앞으로 만나지 말라고는 안했지만 강력하고 분명한 메세지이었다. 모멸감을 듬뿍 준 후려치는 장래 시어머니가 되실 어른의 말을 듣고, 곧바로 돌아간 소리는 연락이 없었다.
시행 ㅡ 연결 이란 생뚱한 단어를 마지막 남기고 민국이 보내는 사랑이 절절한 구애로 덧칠을 한 인터넷 메일에도 반응이 없었다.
'야 가시나 니 나한테 죽고 싶나 ? ....., 대답하거래이 .....,' 무슨 말에도 답변이 없다. 견디다 못해 드디어 민국이가 소리의 집에 찾아가도 만날 수 없었다. 서울에 사시는 이모 댁에 올라가 있다는 소리만 듣고 뒤 돌아섰다. 민국은 마음을 못 잡고 겉돌았다. 소라의 집을 수시로 들리면서......,
그러나 민국은 한 가지 희망이 있었다. 어느 날 밤 영시에 한 소리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 드렸었다. 대학에 합격을 하고 난 후 있을 약속을 미리 했었다. 획기적인 기발한 발상이다. 소리의 이벤트 물이다. 형식과 고정된 틀을 깨자는 파격적 약속을 한다. 남산 도서관 앞. 합격통지서를 받은 그 해 8. 15 광복절이 디데이다. 햇볕이 내리 쬐는 정오 12시. 오가는 사람이 있어도 무시한 체채오 분간 진한 뽀뽀를 하자는 제안이었다. 정섭이가 증인으로 같이 가기로 약속을 미리 해놓았다. 그 날은 틀림없이 가시나가 나오겠지.
소리는 가족들과 왕래는 되는 모양이다. 여동생이 전하는 말에 민국이를 남산에서 볼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니 나올 것을 기정사실. 잔득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시나가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만나기만 해 보아라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부아를 치올리다가 오가는 사람이 있는 도서관에서 첫 키스를 한다는 설렘은 화를 녹이고도 남았다. 겨울 앞에 서서 면도를 할 때에 그 생각을 하다가 혼자 실성한 듯 큰소리로 웃고는 하였다. 넉넉하게 위로가 된다.
수영동의 빵집과 분식점, 아니 공원 벤치도 다 추억의 장소가 되어 있었다. 소리의 얼굴에서 창조되는 다양한 표정이 그 안에 늘 그대로 있었다. 조그만 추억의 인형이 항상 곁에 있었다.
해운대의 바다 바람은 격정 자체로 불고, 파도는 설렘으로 철썩인다.
민국은 일 학기를 마치고 군대에 다녀오라는 아버지의 조언도 귀에 들어오지를 않았다. 그 애를 만나 뽀뽀를 하고 올 해는 해방의 기쁨을 맞고 싶었다. 열아홉에 맞는 해방의 자유를 소리와 함께 누리고 싶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날이 왔다. 바쁘다는 핑계로 부산 초량에 있는 정섭 이에게 연락도 하지 않았다. 핸드폰만 한 통했어도 서울을 올라올 정섭이 분명하다. 민국은 솔직히 둘이만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진한 뽀뽀의 순간을 친구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오랫동안 굶주렸다. 언어도 상실되어 목이 마르다. 모든 갈증이 도를 넘었다.
민국은 흥분과 기대로 개포동을 가는 42번 버스를 타고 남산을 올라왔다. 일찍 와 남산도서관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한낮 더위에도 불구하고 녹음이 살랑대며 사나이 마음을 흔든다. 머리 방향을 보고 있었다. 조금 있으니 택시에서 멋진 여성이 내린다. 천천히 걷는다.
소리도 약속시간이 일러 차를 미리 세웠다. 넓게 펼쳐진 구름과 바람과 진한 솔 향이 좋았다.
먼발치에 걸어오는 여인이 틀림없이 그녀 같았다. 의상학이 목표인 소리다웠다. 짧은 미니치마에 민소매 칼라에 흰 블라우스를 입고 검정 벨트를 잘록하게 매었다. 높은 신을 신고 사뿐히 걸어온다. 서울 가시나의 세련미가 풍긴다. 민국은 발짝을 떼지 않았다. 가슴이 뛴다. 가까이 오기를 기다린다. 점점 윤곽이 뚜렷해진다.
아아 이 가시나가 정말로 소리란 말인가. 점점 다가오는 여인은 낯설기만 하다. 아직 자리 잡지 못한 도드라진 쌍까풀. 칼날같이 날선 코. 진한 향수 냄새가 코에 확 들어온다. 지하철의 어느 여자에게서 처음 맡던 화장품과 향수냄새가 난다. 가시나의 예상치 못한 놀라운 변화가 민국의 뜨겁던 가슴을 욱조이고 짓누른다. 그리운 얼굴이 아니다.
“ 민국아 ” 달려든다. 뒤돌아서고 싶다. 몸에 힘이 빠진다. 뒷걸음질로 도망을 하고프다. 부산 그 바닷가 해운대가 그립다.
“.......,”
“ 시간이 오 분 남았어. ” 쌍까풀에 뜨임을 하여 토끼눈을 하고, 코는 높게 직각으로 잘라져 있으며, 거기에 매력적인 드라큘라 덧니는 빠지고 입안은 온 통 보철이 끼어 있다. 민국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재회의 반가움에 서울 말씨의 빠른 말을 쏟아낸다. 사랑이 꽃을 피우며 하고팠던 말이 무성해도 민국은 할 수가 없고 상대의 말도 들리지가 않았다. 아니 그토록 그리워 사무치던 그 가시나가 앞에. 실눈은 사라지고, 애교스런 다양한 변화가 사방 칼을 대어 당겨져 각이 서 있고, 입매는 보철의 둔탁함으로 윽죄인 어색한 웃음에 민국은 머리가 산란하고 어지러웠다. 눈을 감는다. 빈틈이 듬성듬성한 소리의 귀엽던 칼을 얼굴이 어른거린다. 귀에는 지독히 못난 가시나의 소리가 들린다. 사랑의 소리는 해운대에서 듣던 철썩이는 바닷물처럼 심하게 요동을 친다.
“정오다. 시간이 되었어!” 가시나가 입술을 포겠다. 해가 쏟아진다. 민국은 손을 늘어뜨리고 고목처럼 있었다. 잠시 후 반추의 시련으로 눈물이 쏟아졌다.
“울었어. 이 좋은 날 ?” 민국은 눈을 뜨지 않았다. 오 분 동안 해운대 바다의 심하게 요동치는 성난 파도가 밀려온다.
"해방의 날이다. 해방 " 남산을 오르는 행인들이 쳐다보는데 소리가 소리를 친다.
" 해방? " 지독히 기다리던 해방의 날이 더위에 온 몸은 땀이 배기 시작한다. 주위를 의식한 식은땀과 함께.......,
민국이 그토록 기다리던 해방의 날은 이렇게 끝났다. 마른하늘에 날 벼락이었다. 성형이란 칼로 처참하게 공격을 받았다. 뚫리고 찢긴 민국은 다음 날 군대를 지원 하였다.
피 끓는 사나이가 군대 밥을 여러 날 먹으면서 이산가족처럼 그리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처음 한 달은 성형미인이 아닌 덧니박이 소리가 그립게 떠올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덧니가 아니고 보철이 씌워진, 성형 미인이 된 소리가 인정되었다. 섭섭이는 멀리 사라진다. 상처투성이를 추슬러 그녀를 빨리 보고 싶었다. 소리 몸속에 흐르는 피가 같고, 민국은 아직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 진행형으로 바뀌었다. 만 번의 속삭임이 들린다. 민국은 그리움으로 더욱 새롭다.
민국은 인터넷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좋아 하는 ‘백 만송이의 붉은 장미’ 배경 음악과 함께 남산에서 만난 도시적 미인이 가름하게 클로즈업 된다. 그녀를 위해 백만 송이의 장미를 오는 길에 깔아 놓고 싶다.
음악을 듣는다. 군대 막사 안이다. 군대도 변해 느슨해졌다. 이제는 통합된 제대로의 해방을 맞는 기다. 국민의 안녕을 지키는 사나이 민국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편지를 쓴다.
ㅡ 문둥이 가시나 우짤라고 대한민국 일등 사나이 피를 말리며 삼 개월이 지나도록 면회를 안 오는 긴가 ?"
민국은 연서를 연인에게 보내놓고 틈만 나면 면회소를 기웃거린다.
인터넷에 시작을 눌러놓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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