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의 유언은 무엇입니까?
증언 1. 제자
새벽 네 시쯤이었을 거예요. 연락을 받자마자 달려가긴 했지만, 제가 제일 마지막 방문객이었어요. 병실 문을 열자마자 커다란 전자시계가 눈에 들어왔던 게 기억이 나요. 그, 사망 시각이란 거 있잖아요. 그걸 알려주기 위해서 저렇게 큰 시계를 걸어놓았나 싶은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곳은 엄숙했고…. 사람들은 선생님 주변을 쭉 둘러싸고 있었어요. 선생님은 힘없는 목소리로 사람들의 근황을 물어보셨죠. 눈물이 핑 돌았어요. 한창 철없을 땐 온갖 비행을 저지르고 다녔죠. 어른들, 특히 선생님들의 존재가 왜 그렇게 거슬렸는지. 정학을 당하고 별 대수로울 것 없이 학교를 나오는데, 선생님께서 저를 불렀어요. 그리곤 한참동안 아무 말도 못 하시다가, 내가 부끄럽구나, 하고 중얼거릴 뿐이었죠. 깜짝 놀랐어요. 제 행실을 두고 자신의 잘못인 것처럼 말해주는 어른은 없었거든요. 그때부터 저는 조금씩, 선생님부터 시작해 사물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어요. 선생님은 그런 저를 기특해했죠. 네, 선생님의 마지막 말 역시 “내 삶이 부끄럽다”였어요. 확실해요. 전 잊을 수 없어요. …참 선생님다운 말씀이었죠.
죽음 따윈 단조롭고 시시하다. 이런 일에는 일체 연루되지 않는 게 낫다. —서머싯 몸의 말이다. 나는 그의 소설을 읽기 전에 그 유언을 접했고, 이 남자는 세상에 냉소적이었던 인물이 틀림없을 거라 추측했다. 이 세상에선 다양한 사람들의 생명이 여러 가지 이유로 매 순간마다 하나씩, 혹은 동시에 꺼지고 있다. 누군가는 재산을 남기지만, 남길 게 없어 제 몸만 덩그러니 버리고 가는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 내가 흥미를 느끼는 건 오로지 유언뿐이다. 재산과 육신은 영원하지 않지만, 유언은 시대를 뛰어넘어 서머싯 몸과 한 번도 같은 시간을 공유하지 않았던 나에게 찾아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유언들은 대부분 위인들의 입술에 출처를 둔다. 몇몇 유언들은 곡해되어 전해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아인슈타인이 죽던 순간, 그 주변에 있던 친구들은 모두 미국인이었기 때문에 그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독일어를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예수의 마지막 말에 대해서는 복음서마다 내용이 다른데, 마가복음에서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누가복음에서는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기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이제 다 이루어졌다.”고 전한다. 이런 곳에서 이렇게 있기보다는 스키라도 타고 싶군. 미국의 희극 배우 스탠 로렐이 간호사에게 했던 말이다. 어머, 스키를 탈 줄 아세요? 아니, 하지만 이렇게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 죽기 전에 남긴 말들은 때로는 그 사람의 인생을 대표하고 때로는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기기도 한다.
차에서 내리자 한낮의 후덥지근한 공기가 옷깃 새를 파고든다. 도로의 양 옆으로 늘어선 대기업 건물들의 부지 사이에 카페 하나가 내 시선을 휘어잡는다. 나는 미간을 찡그리며 메모지와 카페의 간판을 번갈아 바라본다. 이곳이다. 나는 출입문을 천천히 당긴다. 담홍빛 조명이 순식간에 시야로 내려앉는다. 정오를 한참 넘긴 시각이어서 그런지 카페는 한산했다. 세계 각국의 건축물들을 축소한 장식품들이 선반 위를 이국적인 분위기로 수놓았다. 커피 한 잔에 식사 한 끼 가격이 나올 것 같은 카페였다. 어떤 다 죽어가는 사람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주변을 둘러보는데 임종을 눈앞에 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 젊은 남녀 세 명이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든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곤 그들의 앞에 앉는다. 차분한 표정이지만, 그들의 얼굴 곳곳에 긴장감의 자취가 언뜻 보이는 듯하다. 나는 그들의 나이를 가늠해본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정도 되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남자 두 명은 고급 정장을 입었고, 여자는 실크 재질의 검은 원피스와 얇은 밍크 소재의 숄을 걸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세 사람은 조금씩 닮은 얼굴들이었다.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는 남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솔직히, 이런 직업이 있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고 이게 좋은 선택인지도 잘 모르겠네요. 나를 대면한 사람들의 첫 번째 반응은 대게 이런 식이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익숙한 몸짓으로 차를 한 모금 넘긴다. 남자는 한참을 망설이더니 곧 조심스럽게, 그러나 비장한 눈으로 말한다. 유언을 만들어준다고 들었는데요.
시작은 호텔에서였다. 도심 한가운데 반듯하게 세워진 별 다섯 개짜리 호텔에 정장을 입고 들어설 때면, 사람들은 나를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곤 했다. 시청을 드나드는 사람들 중에 그곳이 어떤 곳인지 모르는 이는 없었다. 코팅 유리로 단정하게 몸을 감싼 그 호텔은 겉보기에도 화려하고 눈이 부셨다. 하지만 나는 그곳의 회전문을 지날 때마다 번지점프에 억지로 매달려 시속 100km/h로 낙하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곳의 정직원도 아닐뿐더러, 그곳은 내가 원하던 직장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문창과를 나와 여러 번 취직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비참했다. 출판사에 열세 번, 잡지사에 일곱 번, 영화제작사에 다섯 번 서류를 넣었지만 대부분 면접에서 그치고 말았다. 마흔 번 시도해도 안 되는 게 취직이야. 넌 아직 멀었어, 인마. 선배들은 그런 말로 나를 위로했고, 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간간히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가족모임에서 오랜만에 만난 삼촌은 내게 호텔에서 한 몇 달 일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정 직원을 뽑을 때까진 아직 시간이 있어서, 구멍 난 자리를 당분간은 내가 메워도 괜찮을 거라고. 그래서 나는 호텔에서 경비 일이나 주차 도우미 따위의, 일손이 부족한 부서를 옮겨 다니게 되었다.
시간은 느릿느릿 지나가고 있었다. 한적한 호텔 로비에서 나는 잠시 눈을 붙였다. 그러나 곧 인기척에 눈꺼풀을 들어 올렸는데, 흰 머리가 듬성듬성 난 할아버지가 내 옆에 앉아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도와드릴까요? 내가 물었지만 할아버지는 햇살이 참 좋구나, 하는 딴 소리를 내뱉을 뿐이었다. 그의 얼굴은 평화로워보였다. 자식들에게 버림받아 길거리를 배회하는 노인들과는 다르게, 생활고나 세월의 무정함이 그의 얼굴만큼은 피해간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어제 어떤 강아지를 만났다는 둥, 길가에 핀 민들레가 참 예뻤다는 둥 소소한 이야기를 내게 늘어놓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거기에 맞장구를 칠 기력이 없었다. 꽤 긴 침묵이 흘러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눈을 감고 있었다. 할아버지, 깨어있으세요? 내가 그렇게 물으니 할아버지는 눈을 뜨고 빙그레 웃었다. 의미심장한 말이구나.
며칠 후 나는 신문에서 그 할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는 유명한 정치가였고, 간암과 투병 중이었단다. 임종의 순간 할아버지의 곁에는 여러 정치가들이 있었는데, 그는 그들을 향해 이 한마디를 던지고 숨을 거뒀다. 당신은 깨어있는가? 그 한 문장에 눈썹이 움찔거렸다. 그때부터였다. 어떻게 소문이 와해되었는지, 상위계층 사람들은 내게 연락을 시도해 자신의 유언도 지어달라고 비밀스럽게 부탁했다. 보수는 의뢰인의 지위에 따라 제각각이었지만 대부분 호텔에서 받는 시급보다 좋았다. 거기다 내 전공도 살릴 수 있어 나는 따분하지 않았다. 작가란 원래 한 문장에도 한 달을, 일 년을, 평생을 바치는 사람들이 아닌가.
사람들은 내게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해주고, 나는 그 사람들의 삶에 이입해 유언을 만든다. 그들은 내가 고심해서 만든 한 문장을 기억하고 있다가 죽음의 순간 내뱉고 세상을 떠난다. 물론 예상치 못한 변수도 일어난다. 정신이 혼미해져서 전혀 다른 단어를 내뱉고 삶을 마감한 사람도 있었고, 마지막에 마음을 바꿔 즉흥적으로 유언을 말하고 떠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그것 역시 그 사람의 인생이니 나는 그 마침표에 더 이상 덧붙일 문장이 없다.
카운터 위로 책 한권과 회원카드와 현금을 내려놓는다. 점원은 바코드를 찍고 카드를 긁고 적립되었다는 말과 함께 책을 내민다. 나는 책을 집어 든다. 책의 한가운데에는 남자의 얼굴이 ‘인생, 실패의 역사’ 라는 문구와 함께 박혀있다. 나는 방금 남자의 인생을 만 이 천원에 샀다.
서점을 나와 공원으로 발을 돌린다. 작은 정자에 앉아 책을 펼쳐 서문부터 읽기 시작한다. 60년 인생을 200페이지에 다 담기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남자가 선별한 삶의 조각이란 어떤 모양일까. 나는 페이지를 넘긴다.
아버지의 유언을 만들어주세요. 그것이 세 사람의 의뢰 내용이었다. 이미 죽은 사람의 유언을 만들어달라는 의뢰는 처음이어서 나는 조금 당황했다. 그들은 기업가이자 봉사자로 유명한 남자의 자식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 뉴스에서 모 기업 회장의 상태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 기억이 났다. 상황이 정리되면 곧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 기자회견을 열어야 하는데, 아버지의 유언이 그 사회적 지위에 비해 터무니없이 허무하다고 그들은 말했다. 회전목마를 타고 싶구나. 그것이 남자의 마지막 말이었다. 나는 카페를 나와 죽은 남자에 대해 내가 아는 사실들을 떠올려보았다.
대 기업가이면서도 깨끗하기로 소문나고, 매년 어마어마한 기부금을 각종 사회봉사 재단에 내놓았던 남자의 이름을 나 역시도 알고 있었다. 남자는 종종 사회문화면에 아이들과 어깨동무를 한 채 얼굴을 내밀었다. 건강이 악화되어서인지 최근 몇 년은 잠잠했지만, 유산 전액을 기부했다는 내용으로 남자는 다시 세상에 나왔다. 그런 사람의 유언이 고작 ‘회전목마를 타고 싶구나.’ 라면 자식들이 허무해하는 것도 조금은 이해가 간다. 살아생전 일만 한 게 한이 된 걸까. 아니면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걸까. 어쨌든 나는 남자의 유언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남자에게서 직접 이야기를 들을 수 없는 만큼, 나는 남자에 대해 객관적인 조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몇 년 전 그는 성공한 기업가 50인의 이야기라는 출판사 프로젝트 아래에 자서전을 냈다. 지금의 위치에 오기까지 겪었던 실패와 좌절을 그린 것이었다. 남들보다 수십 번은 넘어졌기에 혼자 힘으로는 일어설 수 없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다는 남자. ‘인생, 실패의 역사’라는 제목답게 남자의 인생은 실패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은 실패를 반복하고 있다고. 그러나 죽음의 순간 인생을 되돌아보면 그 모두가 크나큰 성공일 것이라는 교훈적인 내용이었다. 밋밋한 삶을 살아온 나로서는 경험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나는 페이지를 훅훅 넘겨버린다. 타인의 손에서 두 배 정도는 멋지게 기록되었을 위인들의 전기를 읽는 것처럼 현실감 없고 따분하게만 느껴졌다. 누군가 남자의 업적을 눈앞에 들이대며 그의 비범함을 인정하라는 무언의 압력을 퍼붓는 것만 같다.
증언 2. 동료 교사
그렇게 약해보이는 선생님의 모습은 정말이지 낯설었어요. 한 번도 어깨를 움츠린 적이 없던 분이셨거든요. 원래도 마른 편이긴 했지만, 그 툭 불거져 나온 광대는…. 입술은 가뭄에 마른 땅 같았고, 혈관은 한겨울 나뭇가지 같았어요. 선생님을 도저히 눈 뜨고 볼 수가 없겠더라고요. 선생님은 제 대선배이시죠. 신입교사로 처음 학교에 들어갔을 땐 마냥 의욕에 넘쳐서 학생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어요. 오히려 제 열정대로 따라주지 않는 학생들이 답답해서 매만 엄청 휘둘렀죠. 하루는 교무실에서 학생 한명을 크게 혼내고 교실로 돌려보냈는데, 선생님이 그날 점심시간 저를 조용히 불러내더라고요. 그 전까진 선생님과 대화해본 적이 없어서 조금 긴장했어요. 선생님은 학교 안에서도 무사라는 이미지였거든요. 선생님은 말했어요. 네가 초조해하면 학생들에게도 그 초조함이 전해져 관계가 불안해진다고. 학생들을 다그칠 것이 아니라 ‘봐야’ 한다고. 선생님은 교무실에서 제게 충고할 수도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의 눈을 생각해 그러지 않았어요. 저와는 아주 대조되는 행동이었죠. 전 그때부터 선생님을 존경하게 되었어요. 선생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선생님이었어요. 분명 숨이 끊어지기 전, “내가 너희들을 제대로 보아왔는지 모르겠구나. 혹여나 잘못 판단한 게 있다면 나를 용서해주길 바란다.” 하고 말씀 하셨으니까요. 네, 그게 선생님의 유언이에요. 지금도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지네요….
넝쿨 끝에 매달린 능소화 이파리가 바람에 흔들린다. 철문을 휘감은 넝쿨 사이로 고딕 문양의 초인종이 보인다. 나는 초인종을 누르고 한 걸음 철문에서 물러난다. 회갈색 담장 너머로 빨간 사다리꼴 지붕이 하얀 담벼락 위에 얹어져 있다. 그야말로 유럽의 시골 풍경을 연상시키는 집이었다. 초인종에서 인터폰을 집어 드는 기척이 나더니 곧 철문이 열린다.
남자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 위해 나는 그들을 직접 방문해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둘째 아들이 반듯하게 고개를 숙이더니 나를 거실로 안내한다. 유언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상류 계층에 속한 집들을 여럿 가보았지만 매번 가슴이 움츠러든다. 이렇게 화려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면 유언 하나에 엄청난 돈을 투자하는 것도 역시 이해가 된다. 나머지 두 남매는 이미 거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매들이 내게 준 시간은 일주일이었고, 오늘은 삼일 째였다. 아버지에 대해서 듣고 싶다고요, 첫째 아들이 말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아버지는 1949년 7월 부산에서 태어나셨고…. 남매들은 마치 대본을 짜놓기라도 한 것처럼 남자의 일대기를 순서대로 늘어놓았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책에 있는 내용들이었다. 나는 새어나오려는 하품을 참으며 예의상 그들의 말을 노트에 적어 넣었다.
“조금 더 개인적인 이야기는 없나요?”
내 질문에 순간 남매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개인적인 이야기요? 네에, 아버님의 젊었을 적 꿈이라든가, 좋아했던 노래나 배우라든가. 세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곧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 상황을 얼른 벗어나고 싶은 기색이 역력해 되레 내가 미안해질 정도였다. 막내딸이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아버지가 음악 듣는 거 본 적 있어? 아니, 근데 레코드판은 많잖아. 주말에 몇 번 서재에서 음악을 듣긴 했었어, 근데 그게 누구 노래지? 유재하, 그 사람이었던 것 같아. 아니, 김광석이야. 더 이상 남매들은 내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남자가 좋아하던 가수가 누구였는지, 어렸을 적 꿈이 뭐였는지에 대한 의견은 다 달랐다. 아버진 우리한테 그런 거 한 번도 말해준 적 없었어. 주말에 나누는 대화라고 해봐야 공부 열심히 하란 말이 전부였잖아. 막내딸이 쀼루퉁한 얼굴로 중얼거린다. 손님 앞에서 그게 무슨 말이야, 둘째 아들이 나무랐지만 나는 아니라는 말도, 괜찮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세상이 다 아는 유명한 남자를 정작 자식들은 모른다. 세상을 돌보려 했던 남자는 정작 자식들은 돌보지 못했다. 공부 열심히 하란 말이 전부였잖아. 막내딸의 목소리가 귓가에 진득하니 달라붙는다.
아버지는 평생 누군가를 가르쳐왔다. 학생들을, 동료 선생님들을, 글씨를 읽을 줄 모르는 아버지의 아버지를, 정치에 무관심한 내 어머니를. 가르친다는 것은 아버지의 삶의 이유이자 목표였다. 교단에 설 때 아버지는 가장 행복했을 것이다. 학생들을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분필을 쥐고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러나 나는 아버지께 한 번도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었다. 명성이 자자한 훌륭한 선생님이 바로 가까이에 있는데, 나는 늘 남의 가르침을 받아야 했다.
나는 아버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혹여나 아버지에게서 나에 대한 무관심의 눈빛을 발견할까 두려웠다. 그러면서도 나는 항상 아버지의 주변을 맴돌았다. 내 풀린 신발 끈이나 헝클어진 머리를 아버지가 알아차리고, 무슨 말이라도 건네주길 바랐다.
언젠가, 교내 백일장에서 작은 상을 탄 적이 있었다. 나는 상장을 손에 쥐고 곧장 집으로 달려가 아버지를 기다렸다. 그날, 아버지는 명문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제자와 함께 귀가했다. 제자가 언제쯤 돌아갈까, 나는 아버지와 둘이 남아 상장을 보여드릴 순간만을 기다렸다. 그래, 사업을 시작했다고? 아버지가 흐뭇한 목소리로 제자에게 말했다. 예, 다 선생님 덕분이에요. 제자는 아버지에게 외국에서 사왔다는 다과와 만년필을 내밀었다. 나는 내 손에 쥐어진 상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상장 위에 적힌 내 이름은 너무 작고 초라해보였다. 늘 교사이길 바랐던 아버지. 아버지는 자신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해주는 제자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아버진 날 필요로 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대학에 들어간 후부터 아버지는 내내 건강이 좋지 않았고, 때문에 오랫동안 병원에 계셨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와 단 둘이 있을 때의 껄끄러운 감정이 두려워 바쁘다는 핑계로 명절에만 간간히 고개를 내밀었다. 아버지가 죽던 날 나는 지방에 있었다.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서울로 올라가긴 했지만, 나는 결국 아버지의 유언을 들을 수 없었다. 병실에는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모두들 저마다 손수건을 손에 쥔 채 눈물을 닦아냈다. 아버지의 입술은 너무 딱딱해보여서, 두 번 다시는 열리지 않을 것 같았다.
처음엔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아버지는 평생 나를 남처럼 취급했으니, 마지막 말이라고 특별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매일 밤 꿈속에서 아버지는 병상에 누워 말라버린 입술로 뭔가를 중얼거렸다. 나는 언제나 해독하지 못한 채 잠에서 깨어났다. 대학을 졸업할 때쯤엔 직접 아버지의 유언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그날 병실에 있었던 사람들을 만나 아버지의 마지막 말이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그러나 사람마다 증언이 달랐다. 그들이 묘사하는 아버지의 임종의 순간은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았지만, 숨을 헐떡거리며 내뱉었다는 그 마지막 말만큼은 가지각색이었다. 끝까지 그분다웠단 말은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그분답다는 건 대체 뭘까. 사람들은 아버지의 가르침에 교화되고 변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한 번도 나를 가르치지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 말 만큼은 내 것이길 원했다. 그러나 아무도 아버지가 마지막 순간 나를 찾았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증언 3. 동생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형을 무서워했단다. 너도 알 거야, 형의 눈이 얼마나 매서웠는지. 형 앞에만 서면 내 모든 비밀이 벗겨지는 기분이었어. 그래도 인복은 있었는지, 아니면 교사라는 직업 때문이었는지 형의 죽음을 꽤 많은 사람들이 슬퍼해주었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었어. 저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형이 알고 있긴 할까 궁금해질 정도로. 형이 무섭지 않았던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단다. 그 눈은 더 이상 형의 눈이 아니었어. 그저 다 죽어가는 노인네의 눈이었지. 그래, 생각나는구나. 형은 예전부터 신문을 볼 때마다 말이 많았어. 학생들에게 전 재산을 기부한 할머니의 이야기에 내가 감동할 때면 형은 늘 그 돈이 실은 어디에 쓰이는지 아느냐며 면박을 줬고, 언론에 휩쓸리지 말라는 말을 습관처럼 덧붙였지.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건 간단한 진리라고, 뭘 보든지 비판할 줄 알아야한다고. 그땐 형이 그렇게 높고 무서워 보였는데, 내가 형을 내려다볼 날이 올 거라곤 생각도 못했어. 형도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다는 걸 알았는지 마지막만큼은 체통을 지키려고 하더군. 끊임없이 의심해라. 형은 그렇게 내뱉곤 눈을 감았어. 그 후 다시는 그 매서운 눈을 볼 수 없었지.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시인의 ‘질투는 나의 힘’의 마지막 구절이다. 노란색 포스트잇 위로 나는 글씨를 꾹꾹 눌러 적는다. 시는 유언을 짓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준다. 나는 책을 덮곤 뻣뻣해진 목을 한 바퀴 돌린다. 너저분한 방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사람들의 유언을 지어주기 시작한 이후론 좀처럼 방 청소를 하지 못했다. 대신 침대며 책상이며 가릴 것 없이 책은 쌓여갔다. 대학교 졸업 논문을 쓸 때보다 더 많은 참고 서적을 읽게 되었다. 어느새 이 일은 단순한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내 생활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었다.
창문을 열자 바람이 커튼 자락을 스치며 방 안으로 들어온다. 바람은 텁텁한 공기를 가르고 벽 한쪽에 붙여진 포스트잇을 조심스레 흔든다. 도미노가 쓰러지듯 벽에 붙여진 포스트잇들이 파도를 타는 것처럼 차례로 흔들린다. 곧 서재에 붙여진 포스트잇들이 흔들리고, 책상 위에 붙여진 포스트잇들이 흔들리고, 다시 벽에 붙여진 포스트잇들이 흔들린다. 내 방에서 벽지가 사라진 지도 꽤 되었다. 매 순간마다 스치듯 생각나는 유언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 나는 포스트잇에 기록하고 방 안에 붙여놓는다. 주인을 기다리는, 아직 태어나지 못한 유언들. 누군가 그들을 입에 담아줄 때 포스트잇 위의 글씨들은 숨을 쉬게 된다. 영원은 살아생전 내뱉었던 무수한 말들이 아니라 죽음의 순간 태어나는 한마디에 깃든다는 패러독스. 나는 턱을 괴고 아직 태어나지 못한 말들을 바라본다.
회전목마를 타고 싶구나. 문득 귓가를 맴도는 한마디를 곰곰이 곱씹어본다. 남자는 마지막 순간 무엇을 보았기에 그런 말을 한 걸까? 에디슨은 죽기 전, 고통스럽냐는 아내의 물음에 “아니, 기다리고 있을 뿐이야. 저 곳은 참 멋진 것 같군.” 하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저승사자란 회전목마를 타고 오는 존재인가? 죽음이라는 그 적막하고 평화로운 세계에 남자는 회전목마를 타고 닿고 싶었던 걸까? 며칠간 밤을 새며 남자의 유언으로 뭐가 좋을지 생각해봤지만 마땅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남자가 실제로 내뱉었다는, 그 해독 불가능한 한마디가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아 나는 몸부림을 쳐야했다. 남자에게 묻고 싶었다. 당신의 그 한마디는 준비된 말이냐고. 내 고객들은 나를 통해 유언을 준비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무의식속에서 죽음을 맞는다. 유언 같은 건 고민해볼 틈도 없이. 준비되지 못한 순간 죽음이 찾아오면,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 무슨 말을 할까? —그리고 아버지는 대체 마지막 순간 무슨 말을 했을까.
뭐라고 변명해야 좋을지 고민했다. 스물한 살 겨울의 문턱에 섰을 때였다. 친구들은 이제 대학교 2학년이 되는데, 나는 여전히 수험서를 붙잡고 마지막으로 오답노트를 점검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교사이니 공부를 잘 할 거라는 어른들의 기대를 나는 한 번도 충족한 적이 없었다. 아버지 동료의 자제들과 친척들은 모두 명문 대학에 진학해 텅 빈 고속도로를 달리듯 미래를 개척해나갔지만 나는 3년째 수험생이었다. 아버지는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유학을 가 있는 상태라고 말했고, 나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숨어 공부를 해야 했다. 아버지가 자랑스러워할만한 점수를 얻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매번 시험을 망치곤 했는데, 삼수 전날은 특히 그랬다. 몸이 뜨거웠고, 노트 위 글씨들은 흐릿하게만 보였다. 뭐라고 변명해도 아버지는 들어주지 않을 것 같았다. 비참한 기분으로 힘겹게 페이지를 넘기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그때 누군가 내 방에 들어오는 기척을 느꼈고, 나는 순간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계속 엎드려있는데, 누군가 내 어깨 위에 가만히 손을 얹어놓았다.
“이제 그만해도 괜찮다.”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아버지는 다소 경직된 손바닥으로 내 어깨를 천천히 쓸어내렸다. 마치 어린 아이가 처음 강아지를 쓰다듬는 것처럼, 산모가 제 자식을 처음 안아볼 때처럼 조심스러운 손짓이었다. 당황한 나는 무언가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조용히 내 방을 나갔고, 나는 다시 무의식의 깊은 바다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여전히 나는 그날의 일이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 알지 못한다. 정말 그때 아버지가 그렇게 말했는지, 혹은 꿈속에서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들었던 건지. 다만 다음날 수능을 망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결과를 물으며 다그치는 대신 수고했다, 는 짤막한 한마디를 던질 뿐이었다.
이런저런 잡념을 털어내고 나는 다시 펜을 쥐고 포스트잇을 한참이나 노려본다. 아버지의 얼굴 대신 남자의 얼굴을 떠올리려 애쓴다. 어떤 한 문장이 그의 인생을 빛내줄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눈을 감았다가, 곧 다시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긴 문장을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금방 차를 내올게요.”
막내딸이 상냥한 미소를 입가에 지어 넣으며 말한다. 지난 번 방문했을 때와는 다르게 차분한 모습이다. 딸의 얼굴에는 남자의 얼굴이 그대로 담겨있다. 딸 뿐만이 아니었다. 세 남매는 자신이 아버지의 얼굴을 꼭 빼닮았다는 사실을 알까.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은 금방 도착한다고 했다. 막내딸은 부엌으로 향했다. 나는 거실에 멍하니 앉아 집안을 둘러본다. 남자의 방도 보고 싶었지만 타인인 나를 그곳에 들여보내줄 것 같지는 않다. 이 집에서 남자는 사라졌다. 그럼에도 이곳은 평화롭다. 마치 아주 오래된 가구 하나가 망가져 버린 것뿐이라는 듯이.
베푸는 걸 손해라 생각하지 마라. 우리는 결국 맨 손으로 태어났다가 수의 한 벌을 가져가지 않는가. 내가 그들을 위해 준비한 유언은 이런 것이었다. 남에게 베푸는 걸 아까워하지 않았던 남자의 삶을 잘 표현해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특이한 걸 바라지 않는 이상, 그들도 마음에 들어 할 것이다.
막내딸이 먼저 차를 내오고, 곧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도 집에 도착해 나를 맞았다. 점잖아 보이는 그들의 눈동자에도 어쩔 수 없는 기대감이 담겨있다. 나는 마른 침을 한번 삼키고, 입을 연다. 그런데 곧 닫아버린다. 그들의 얼굴 너머 선반 위에, 몇 개의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주 오래된 사진 같아 보였다. 놀이동산을 배경으로 남자와 세 남매가 렌즈를 향해 브이 자를 그려 넣고 있었다. 세 남매의 천진한 웃음과, 우스꽝스러운 뿔 모양 머리띠를 한 남자의 미소. 프레임 속에서 그들이 타고 있는 건, 회전목마였다.
회전목마를 타고 싶구나. 다시 한 번, 너희들과….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남자의 목소리가 공기를 타고 전해져오는 것 같았다. 왜 그러세요? 첫째 아들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버님이 왜 회전목마를 타고 싶다고 하셨는지, 혹시 뭐 짐작 가는 거 있으세요?”
뜻밖의 물음이었는지 그들은 서로의 얼굴만 빤히 들여다보다가, 곧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그렇게 대답하는 그들은 정말로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답은 저렇게 눈앞에 있는데, 저렇게 가까이에 있는데. 나는 천천히 입을 연다. 유언을 말해주기 전 빠르게 속으로 한번 되짚는다. 베푸는 걸 손해라 생각하지 마라. 우리는 결국 맨 손으로 태어났다가 수의 한 벌을 가져가지 않는가.
“저는 이 일을 못 맡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완성된 유언이 입술 끝에 걸쳐져 있었지만, 나는 전혀 다른 말을 내뱉고 말았다.
증언 4. 주치의
그 분, 기억하고 있어요. 의사도 결국 사람인 걸요. 완쾌하지 못한 환자를 어떻게 그렇게 쉽게 잊겠어요. 직업이 교사였다는 것도 기억하고 있죠. 아들이신가요? 아, 역시…. 그분 테이블 위에 놓인 사진을 몇 번 본 적이 있거든요. 제가 아들이냐고 물어보니까 그 분,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그렇다고 대답했어요. 좀처럼 웃는 법이 없던 분이어서 그런지 생각이 나네요. 대회에서 몇 번 상을 타오더니 결국 문창과에 들어갔다고, 언젠가 책에서 만날지도 모른다고 말씀하셨어요. 조금 자랑스러운 듯한 목소리였죠. ……네? 그분이 절 가르친 적이 있냐고요? 아니요, 그렇진 않았어요. 밥 달라는 한마디도 잘 하지 못했던 상태였으니까요. 건강하셨는데, 정말 급격히 나빠졌어요. 어떻게 보면 갑작스럽기도 한 죽음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였죠. 그분은 문병객에게 힘겹게 안부를 물어보다가 마지막 순간…. 헐떡였어요. 네, 뭔가를 말하긴 했죠. 하지만 그건 말 보다는 헐떡임에 가까웠어요. 입만 뻐끔거리다 숨이 끊어지셨죠. 유언은 없는 셈이에요. 아니, 있어도 아무도 알 수 없다고 해야 할까요? 확실합니다. 훌쩍이는 소리만 이따금 날 뿐, 아주 조용했으니까. 네? 그게 무슨 말이죠? 부끄럽다고요? 용서해주길 바란다고요? 물론 그럴 말을 했을 수도 있죠, 하지만 의사인 제가 볼 때 그건 해독할 수 없는 외계언어에 가까웠어요. 안타깝게도 말이에요. 그런데 이따금, 궁금해지긴 하더라고요. 그 분,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요?
마지막 포스트잇을 떼어낸다. 벽지 위 접착 면에는 까만 먼지가 희미하게 묻어난다. 나는 한참이나 포스트잇 속 글씨를 바라본다. 당신은 깨어있는가? 모든 일의 시발점이 된 유언이다. 조심스럽게 쓴 웃음을 지어본다. 마지막 포스트잇을 휴지통에 집어넣는다.
아주 오랜만에 방 청소를 했다. 유언을 만들어주면서 읽어왔던 책들도 모두 책꽂이에 꽂아 넣었다. 더 이상 벽지에는 아무런 포스트잇도 붙어있지 않다.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다는 자국만 남아있을 뿐이다. 자국들을 조심스레 쓰다듬는다. 원인 모를 아련함이 손끝을 타고 심장에 닿는다. 문득 나는 책상 앞에 앉아 포스트잇을 꺼낸다. 펜을 쥐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글씨를 적어 넣기 시작한다.
이제 그만해도 괜찮다.
세 번째 수능을 보기 전날, 아버지가 내게 했던 말이다. 꿈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포스트잇 위에 새겨진 그 한 문장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어차피 아버지의 유언이 결국은 사람들의 왜곡된 기억이었다면, 아버지의 마지막 헐떡거림은 내 것이어도 상관없을 것이다. 나는 포스트잇을 벽의 한가운데에 꾹 붙여놓는다. 지금껏 내가 만들어왔던 어떤 화려한 유언들보다 더 편안하고 멋지게 느껴진다.
한 장 남은 포스트잇을 떼어내, 아버지의 유언 옆에 붙인다. 이 빈 공간 위에 채워 넣을 말을 나는 아직 찾지 못하겠다. 준비되지 않은 순간 죽음이 찾아온다면, 나는 무슨 말을 내뱉을까. 무슨 말을 내뱉든, 나는 나와 닮은 한 남자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을 것 같다. 당분간 나는 포스트잇을 빈 공간으로 두기로 한다.
당선소감
한창 바쁠 시기의 수상이라 더욱 기쁘고 감사합니다. 폭염과 입시, 연이은 낙방, 눈을 감았다 뜨면 페이지가 넘어가있는 달력. 끝도, 중간도 아닌 이 시간 속에서 연초에 했던 새해 다짐들을 되돌아봅니다. 언제나 그랬듯 이룬 것보다는 이루지 못한 것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실망하기보다는 남은 시간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른 누구보다도 십년 전의 저에게, 십년 후의 저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미숙한 글 좋게 봐주신 한국 청소년문학상 관계자분들과, 늘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정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