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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제6회 목포문학상』시부문 당선작
보이저 1호 / 양진영
수년 전에 멈추었어야 하는 우주 탐사선
최초로 태양계를 벗어나 미지의 은하계 중심부로 항해 중이다
수명이 다하면 사라진다는 생각은 지구인의 편견
인공위성은 오늘도 영혼의 전파를 보내온다
반년째 의식불명으로 누워 있는 할머니
간병인들은 정신이 떠났다고 수군대는데
여전히, 숨결을 고르게 내쉰다
식구를 데우려 제 몸을 살랐던 할머니의 일생은 불 이었다
개밥바라기*가 주홍빛으로 물든 해거름
비너스 여신의 고결한 별 하나가 지구에 떨어져 잉태된 할머니는
금성처럼 스스로를 태워 주위를 밝히며 살아왔다
새벽 어스름 속에서 반짝대는 샛별을 볼 때마다
수억 킬로미터 너머의 혹성을 꿈꾸었을 그녀
할 일을 마친 잔해는
날아온 궤도를 더듬거리며
안식처로 회항하고 있는지
단내 나는 들숨 날숨을 반복 한다
보이저 1호가 임무를 마쳤는데도 왜 여태 비행하는지
아무도 말하지 못했다
구름 담요가 둥그렇게 달을 감싸 안은 이 밤,
할미별은 캄캄한 우주 공간을 유영하고
밤하늘은 떠나온 행성으로 되돌아가는 영혼들로 반짝이는지 모른다
* 저녁에 보이는 금성이다. 아침에는 샛별, 서양에서는 미의 여신, 비너스로 불린다. 표면 온도가 섭씨 500도에 달해 밝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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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목포문학상』시부문 신인상
스키드 마크 / 나동하 (경기도)
타이어의 진한 울음이 길바닥에 찍혀 있다.
한껏 입 벌린 타이어의 순한 눈망울이 얼비치는 울음은
작정이라도 한 듯
중앙분리대를 향해 길고 곧게 뻗어 있다.
울음의 끝자락이 살짝 비틀린 걸로 보아 타이어는
속도의 고삐에 숨통이 막혀
한참을 컥컥거렸을 것이다.
짧은 반항을 감행하기까지
지문이 닳도록 달린 타이어는
자잘한 살점이 묻은 울음 한 바가지
길바닥에 엎지르고
뒤이어 쏟아지는 눈물을 질끈
삼켰을 것이다.
폭죽 같은 비명소리
하늘로 치솟는 순간
밤하늘이 잠시 환해지며
고요히 떨어지던 별빛들도
덩달아 비틀거렸을 것이다.
몸속 가득한 울음소리
길바닥에 모조리 토해낸 타이어는
또 어디로 고분고분 끌려갔을까?
위로하듯 지나가는 타이어들이
뒤늦게 한 번씩 상처를 어루만져보지만
한번 터진 울음은 조금도 다물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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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심위원 김명인 (전 고려대 교수, 시인)
예심위원 신덕룡 (시인, 광주대 교수), 이대흠 (시인)
새로우면서도 완벽한 시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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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2014년도 제4회 목포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작 2편] 및 심사평
본상
도라지꽃 / 장미숙
보랏빛 옷자락을 바람결에 헹구는가. 이른 아침, 베란다에 남보랏빛 향기가 가득하다. 다섯 겹 치마폭에, 진한 남색 줄무늬가 선명한 도라지꽃이 가느다란 꽃대에도 흔들림 없이 꼿꼿하게 삶을 지탱하고 있다. 밤을 밝히는 등불처럼, 작은 꽃잎하나가 회색빛 도시를 환하게 밝힌다. 화려하고 아름답다기보다는, 청초하고 수수해서 더 정이 가는 꽃을 가만 바라보면 문득 낯익은 풍경하나가 그림처럼 떠오른다.
지난 가을 어느 날, 허리를 수그리고 삽질을 하던 어머니, 동그랗게 등이 굽은 어머니를 둘러싸고 있던 도라지꽃은 고향 산밭 한 모퉁이에 무리지어 피어 있었다. 긴 산 그림자의 옷자락이 덮고 있던 그곳은 밭이라기보다는 비탈에 가까웠다. 언뜻 보기에는 밭두렁 같기도 했지만 꽤 넓어서 풀들이 무성히 자라던 곳이었다.
개울을 끼고 있어서인지 다른 곳에 비해 풀이 더 잘 자랐지만 그곳은 돌이 많아 산 아래쪽인데도 불구하고 한동안 내버려둔 곳이기도 했다. 그곳에 언제부터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났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느 날부터인가 산밭에 가면 가장 먼저 보고 싶은 곳이 되어버린 그곳에는 도라지꽃이 푸른 멍처럼 피어 있곤 했다.
도라지꽃이 내게 봉숭아처럼 친숙하게 느껴진 건, 아주 어렸을 적부터 보고 자란 덕분이었다. 어렸을 때는 별 관심 없이 지나치던 꽃이 어느 날 갑자기 내게 의미 있는 꽃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건 오랜 세월이 지난 뒤였다.
가만 생각해보면 우리 집에는 예전부터 도라지꽃이 여기저기 피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대문 옆 감나무 밑에만 있는데, 어렸을 적에는 장독대근처와 뒤란에서도 도라지꽃을 본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집에 있는 도라지꽃은 그저 두어 송이 피어 있었을 뿐, 산밭 도라지꽃처럼 무리지어 피진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지난해 가을, 어머니랑 산밭에 도라지를 캐러 간 날, 꽃잎을 활짝 열어버린 꽃무리를 본 순간, 울컥 가슴에서 푸른 눈물이 솟아오를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여든을 앞두고 있는 어머니의 지난한 생이 가분재기 푸른 멍이 되어 가슴을 두드린 탓이었다.
어머니는 뭉툭한 손으로 삽자루를 잡고 땅속깊이 삽을 꽂고 있었다. 꽃무리 속에서 도라지뿌리를 캐기 위해 몸을 수그린 늙은 어머니가 내 가슴에 도라지꽃이 되어 망울망울 피어났다. 도라지는 가느다란 몸매와 슬프도록 어여쁜 꽃에 비해 뿌리는 끈질긴 생명력으로 존재한다. 지구의 중심을 꽉 잡고 땅속 깊숙이 제 몸을 비틀며 생명을 이어가는 도라지는 다름 아닌 어머니의 사랑을 닮아 있었다.
삽을 내리꽂으면 둔탁한 소리가 삽의 진로를 가로막았다. 도라지의 잔뿌리처럼 흙속에는 수많은 돌이 박혀 있었다. 그 돌 속에서도 도라지는 뿌리를 통통하게 키우며 뻗어가고 있었다. 삽조차 들어가지 않는 흙속에서 생명을 부지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끊어진 몸에서 흘러나온 쓰디쓴 액이 혀끝을 아릿하게 했다. 도라지 뿌리를 보며 나는 속으로 삼킨 눈물이 사리가 되어버린 어머니의 세월을 보았다.
어머니에게도 사랑이란 게 존재할까. 자식들을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닌, 여자로서 한 남자에게 사랑받고, 보호받고 싶은 그런 사랑이 존재할까 하는 생각을 해본 건, 오륙년 전 여름 날,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난 뒤부터였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더운 날씨보다도 달떠 있었다.
“오메, 나가 오늘 참말로 기분이 좋단 말다. 느그 아부지가 날 생각할 줄도 알더랑께. 나는 느그 아부지가 영영 바보가 되야버린 줄 알았등만, 그건 아닌갑써. 나 묵으라고 면에 가서 막걸리를 사왔드라니께. 나가 시키지도 않았는디 말이여. 참말로 사람이 오래 살다봉께 이런 날도 있는 갑다. 잉~~~”
그날, 어머니의 흥분된 숨결에서 나는 어머니의 마음을 엿보았다.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남편도, 가장도, 아이들의 아버지도 아닌 ‘웬수’였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원했고, 아버지가 건네주는 음식 한 조각 받아먹어보는 게 소원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그런 소박한 소원은 가능성이 별로 없는 어머니만의 바람에 불과했다. 아버지는 삼십대에 얻은 병으로 인해 평생 당신만의 세계에 갇혀버렸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세상으로 나오게 하려고 어머니는 이십년이란 세월을 홀로 사셨다. 한창 젊었던 시절, 아버지를 병원에 보내놓고 어머니는 새벽마다 정화수 앞에서 두 손을 모으셨다.
푸른 새벽녘처럼 어머니도 젊었을 때는 꼿꼿한 등과 부드러운 속살을 가진 여자였다. 한 남자의 사랑을 갈구한 젊은 여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흙이 덮어버린 도라지 뿌리처럼 어머니의 하얗고 매끄럽던 피부는 남루한 옷 속에 감춰진 채 시들어갔다.
수많은 계절을 맞이하고 보내면서 어머니의 사랑은 희망에서 절망으로, 절망에서 체념으로, 그리고는 연민과 동정으로 변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지워준 짐의 무게에 눌려 어머니는 깊은 신음조차 제대로 토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마다 어머니의 삶을 붙들어준 건 무엇이었을까.
어머니는 아버지를 ‘웬수’라 불렀지만 그 말 속에 들어 있는 끈끈함이 실은 어머니를 지탱해준 힘은 아니었을까. 겉으로는 아버지를 원망하면서도 어머니의 시선은 늘 아버지에게로 향하고 있는 걸 나는 보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치 않은 영원한 사랑이라는 걸 나는 지금에야 깨닫는다.
고통의 순간들은 자칫 뿌리를 썩게 해서 끝내는 줄기와 꽃잎까지 병들게 한다. 하지만 어머니가 마음속에 간직한 사랑의 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오히려 비바람에도 악착같이 생명의 뿌리를 더욱더 키워나갔다. 그 힘의 근원이 자식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결코 포기할 수도, 마음속에서 꺼내놓을 수도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산속 돌밭에 도라지를 심으며 어머니는 잃어버린 젊은 날의 꿈을 회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건 어머니의 숨은 사랑이었고, 그 마음이 꽃으로 피어났으리라 생각하니 어머니의 사랑이 흐드러진 그 가을날이 내 안에서 다시금 파랗게 살아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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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상
밤의 한가운데서 / 이은옥
모로 누운 허리께가 불편한 느낌이 들어 뒤척이다 눈을 뜬다. 벽에 걸린 시계가 조도 낮은 비상등 속에서 세 시쯤에 머무르는 것이 어렴풋이 보인다. 몸을 똑바로 누이고 다시 눈을 감는다. 병원에서의 잠은 지속성이 없다. 겨우 한 시간 남짓 지난 것이다. 벌써 세 번째 뜨는 눈이다. 성인 한 사람이 바로 누워 옴짝달싹 못하는 크기의 직사각형 보호자용 의자는 편치 않다. 아니, 그가 누구이든 입원환자를 곁에 두고 자는 잠이 결코 달지는 않으리라. 의자 탓이겠는가.
가늘게 코고는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옆 침대의 50대 여자는 고혈압 환자다. 어떤 때는 문풍지를 펄렁이는 삭풍처럼 고막을 터트릴 듯 코를 고는데 자신만은 잠을 잘 잔다. 게다가 수다도 많아 한번 말을 시작하면 상대가 두통을 일으킬 정도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비교적 포커페이스인 나는 내색 않고 들어준다. 들어주면서 그녀를 미워한다. 그리고 나의 이중성에 냉소를 품으면서도 끝까지 인내심을 발휘한다. 반응이라도 보여주면 새로운 소재를 첨가해 말 길이가 더 길어지기 때문이다.
복도로 나와 본다. 환하다. 복도 중앙에 있는 간호사실의 당직 간호사들이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차트정리를 하고 있다. 병실로 들어가 책을 들고 다시 나온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고개를 쳐든 간호사 한 명과 눈이 마주치자 나는 반사적으로 미소를 띄어준다. 순간, 나의 미소가 사회생활에서 단련된 일종의 기계적인 아첨이라는 것을 느낀다. 사실 나는 무표정하고 싶다. 마음도 몸도 찌뿌듯해서 간단한 근육조차 움직이고 싶지 않다. 그러나 병원에 있는 동안 간호사는 나의 상대역이다. 간호사는 입 끝만 살짝 움직여 목례를 한다.
바람이 몹시 분다. 매체에선 초대형 태풍 상륙을 예고 중이다. 종합 병원 앞마당에 심어져 있는 붉은 칸나가 꺾어질 듯 둔각으로 왕복하는 메트로놈처럼 휘청거린다. 편하게 수발을 들려고 입고 온 남방의 긴 자락이 펄럭이며 엉덩이와 허벅지에 감긴다. 올려 묶은 머리칼의 남겨진 가닥들이 얼굴을 훑는다. 어두운 허공에서 무형의 어지런 바람이 복수를 작정한 마왕처럼 격렬하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폭풍의 언덕’이 떠오른다. 그들의 격정적이고 어두운 사랑. 그럴 계제도 아닌데 슬며시 감미로운 기분이 든다. 어쩌면 인간의 감정은 완전한 순도로 현재에 몰입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심장이 나빠 응급실을 거쳐 온 노모를 병실에 두고 나는 너무도 가까운 곳에서 나만의 은밀한 관능을 느낀다.
새벽 세 시의 지방 도시는 폭풍전야 속에서도 정적에 잠겨있다. 밤을 방해하는 네온사인도 별로 없다. 차량 없는 넓은 도로는 비로소 휴식을 취한다. 멀리 세워놓은 자동차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하루 주차료가 너무 비싸 주변 건물의 이면 도로에 세워 놓은 터다. 아파서 힘든 사람들을 상대로 잇속을 챙긴다고, 입원 환자한테는 적어도 대폭 편리를 봐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고혈압 여인이 한바탕 불만을 터뜨렸다. 아마도 병원 운영 효율을 위해 주차 시스템은 아웃소싱을 해서 그럴 거라고, 말하려다 관뒀다. 사실 나도 영 못마땅했다. 크든 작든 일상의 다반사가 통제 권리를 가진 권력들이 기획한 시스템에 의해 인식도 하지 못하는 사이에 조종되고 있다고 친구에게만 열을 올리는 소시민 의식의 발로였다.
카 라디오를 켠다. 언제나 고정돼 있는 클래식 채널에서 흘러나오는 첼로 선율이 밤의 색채와 더불어 유현하다. 멀리 어느 방위의 하늘인지 암운 사이로 희미한 별 빛들이 몇 개 존재의 신호를 보낸다.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의 존재성. 젊은이 시든 뒤 어느 자리에서건 내 가 남들보다 이채(異彩)를 띄지 못할 거라는 남모를 공포에 시달려왔다. 내 존재성의 미미함에 대한 지나친 예민함으로 편안하지 않았고, 때론 가슴을 저리는 회한 때문에 고통스러웠다. 아마도 젊은 시기에 갖게 되는 세상에 대한 오만과 교만이 세월과 더불어 겸손해지지 않은 탓일 것이다. 찬란한 과거를 잊지 못하는 늙은 여배우의 회억(回憶)처럼 서글픔과 체념도 묻어있었다. 살아온 세월과 살아갈 세월이 비슷해진 나이의 기로에서 그렇게, 오랜 풍상에 마모되다가 주변의 초목마저 닮은 이정표를 하나 발견했었다.
그러나 또다시 새벽을 앞에 두고 의구심이 든다. 단순과 반복이라는 무자극의 삶. 반복은 화젯거리를 낳지 않는다. 항상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수도 줄어든다. 청각이 심하게 퇴화된 노모와의 대화는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그래서, 그러면 안 되는 것이지만, 되도록 필요한 말만 하게 된다. 그래서 말수가 적어진다. 이러다가 소설이나 영화에서 늘 매력 없고 부정적인 캐릭터로 나오는 침울하고 강퍅한 노처녀와 완전한 싱크로율을 발휘할 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그처럼 획일적으로, 무감각하게 캐릭터를 반복 재생산하는 작가나 창작자에게 꿈틀거리는 저항감을 느낀다. 정말 그들과 처지가 같다는 듯이.
지병이 많은 노모와 같이 하는 시간은 힘들었다. 자신이 살아온 방법에 대한 집요한 아집,
그 방식으로 하지 않으면 끊임없이 만화 주인공 ‘니모’처럼 기억을 잃고 반복되는 타박과 잔소리. 그녀 앞에 나는 중년을 넘어가는 딸이 아니라 함부로 부려도 되는 한갓 드난살이 하는 사람으로 비치는 것이 아닐까 섭섭한 적도 많았다. 먼 거리의 자식들이 찾아와 두어 시간 놀다가는 시간에도 그녀는 찾아와 준 자식들의 피곤함은 안쓰러워하면서, 인생의 시간을 쪼개어 자신 곁에서 노동하는 내게는 변함이 없었다. 찾아온 형제들을 위한 나의 봉사를 당연시하는 태도로 이것저것 주문이 많았다. 그래서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속담은 자식차별을 한 부모들의 불편함이 만들어 낸 알리바이라는 생각을 했다. 대체로 부모가 되고 부모를 모셔 본 주변인들의 의견도 비슷하다. 그래서 ‘부모 자식’이라는 견고한 신화에 얽매이지 않기로 한다. 그들도 호불호(好不好)의 감각을 지닌 인간인데 어찌 기계적인 공평함을 바라겠는가. 그저 내가 자식의 마음으로 그들에 대한 성심을 다하면 되는 것이라고, 의도적인 쿨(cool)함으로 무장한다. 하루 세 끼를 꼬박 준비하고 보살피는 행동들의 사이사이로 시간들은 소리 없이 빠져나간다. 며칠을 병원에서 새우고 있는 이 밤들 때문에 내 삶의 그 다음 순서가 정체(停滯)돼 있다. 노모는 그것을 모르고 어쨌든 지금은 곤히 잠들어 있다.
병실로 돌아오니 노모가 일어나 앉아있다. 다리가 저려 파스를 붙이려는데 입구가 너무 꽉 물려 있어 못 열고 있단다. 편리를 위해 고안된 비닐 지퍼마저도 열 힘이 없는 무력한 육체.
손등의 검버섯들이 박명 속에서도 시야에 박힌다. 먼 별빛들의 사라진 존재성을 목격하고 돌아온 망막에 반갑지 않은 침입자들의 존재가 들어차고 있다. 아주 작고 희미한 기미(幾微)가 저토록 커다란 검은 흔적으로 들어찰 때까지 그녀는 오랜 세월을 견디며 살아내 왔겠지. 아무리 서운한 마음이 구석 자리에 웅크리고 있어도, 사회경제적으로 좀 나은 시대를 살아온 내가 서운함 하나로는 어림하지 못할 파란과 굴곡이 그 반점 속에 옹이진 것이리라. 파스를 붙여야 하는 지점을 가리키느라 헐렁한 옷소매가 팔 위쪽으로 조금 밀린다. 그녀가 무수히 지나왔을 고단한 길들처럼 툭툭 불거진 혈관 들이 손등과 팔목으로 푸르스름하게 번져있다. 내 맘을 알아주지 않는 그녀를 애증하는 나는, 그녀의 마음을 다 안다 할 수 있을까.
창 밖에선 좀 전보다 더한 횡포로 바람이 포효한다. 어떤 일이라도 제발 일어나기만을 바라는 시골 소녀의 동경처럼, 권태로운 결혼 생활 한 가운데서 욕망을 채워줄 일탈을 고대하는 ‘마담 보바리’처럼 폭풍의 전령이 내 마음을 흔든다. 설레게 한다. 무섭지 않다. 땅 위에 박혀 이동하지 못하는 초목들에게 자유의 광포한 즐거움을 알려주겠다는 듯 거침없는 저 바람이, 마초기질을 가진 건장한 사내가 연약한 연인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듯, 가라앉아 있던 내 심장 박동을 부추긴다. 그런데 정작 밤의 한가운데서 회의와 자탄에 빠져 곤두세워졌던 내 촉수들은 다시 부드러워져 유연하게 내려앉는다. 여명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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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목포문학상』수필부문 심사평
수필부문 본심평
예심위원 임인택(수필가) 김수기(수필가)
신인들의 52편의 출품원고를 대할 때 가장 두드러진 수필작법의 오류는「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확연하지 않아 결국 글의 내용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불확실하다는데 있다.
글쓰기의 기본인 원고지 쓰기의 기초기법을 숙지해야 했고, 글의 생명인 주제 살리기에 힘써야 했다. 문장 서술에도 적절한 의미의 분절이 필요했고, 수필과 설명문, 보고서의 혼돈 사례가 적지 않았다. 가장 큰 위험은 수필문장의 구성에서 필자의 생각을 길게 쓰기위한 사고와 자기생각 키우기의 능력이 우선 되어야겠다.
신인들의 출품원고 가운데 <밤의 한가운데서>, <누에의 꿈>, <폐가>, <상처 있는 영혼이 상처 난 꽃을 알아본다>, <종이접기를 하면서> 5편을 최종에 올렸다.
한 30년 자전거를 탄 사람이 손놓고 자전거를 타도 바퀴가 제 알아서 굴러가듯, 억지 부리지 않고 꾸밈없이 써진 읽은 후 가슴에 남는, 그런 담백한 얘기들. 적어도 문학상에 도전하는 작품들은 뭔가 남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상 후보로 <기차, 노을동화>, <도라지꽃>, <호리병박>, <운두령>, <감나무보살>, <곶감>, <출가> 7편을 최종에 올린다.
『제4회 목포문학상』수필부문 본심평 / 본심위원 김정오(수필가)
연암 박지원은 글을 지을 때 낯설게 하기를 주장했다. 그것을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 한다. “옛것을 본받되 변화를 알고 새롭게 하라”는 뜻이다. 참된 문학정신은 변화를 바탕으로 하는 창조적인 글이어야 한다. 그것은 진실한 마음으로 대상을 항상 새롭게 그려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틀에 박힌 표현이나 관습적인 문체가 아닌 오직 자신만의 글을 써야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것이 참신성이다. 그런 글은 무량한 심미적 창조의 결정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나 그런 경지에 이르기 까지는 매우 깊은 사고(思考)와 함께 고뇌와 아픔이 있어야 한다. 쉽지 않은 글상(文想)을 문혼(文魂)으로 승화 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일찍이 프랑스의 평론가 알베레스는 수필의 성격을 “지성을 바탕으로 하는 환상적 이미지의 문학” 이라고 정의 했다. 그 말은 인간의 본능을 이지(理知,intelect)로 그려내는 문학, 즉 지성을 바탕으로 하는 정서적인 글이라는 뜻이다. 정서란 아름다운 감성을 말한다. 그것은 비장미와 처절미 그리고 장엄미와 정적미까지를 함께 아울러야 한다. 그것은 지은이의 직간접적인 체험에서 비롯된다. 수필을 자조(自照)의 문학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삶에 대한 체험은 엄밀히 선택되고 새롭게 구성되어야 한다. 수필도 분명한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편의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사실상의 체험과 또 다른 체험의 세계 즉 상상력이 하나로 이어져야 한다. 그것을 승화(昇化)된 세계 즉 환상적인 이미지라 할 수 있다. 모든 예술은 이 환상적 기법의 소산이다. 구성상의 환상을 소설 형식의 허구(虛構,Fiction)라고 한다면 체험에 의해 이루어진 정적(情的)인 환상을 수필의 형식이라 할 수 있다.
예심을 통과하고 최종심으로 올라온 목포문학상 응모 작품들은 기성 작가 7명 신인 5명 등 총 12명이었다. 그런데 기성문인들이나 신인들을 막론하고 그 작품들의 수준들이 매우 높았다. 그러나 고심 끝에 본심은 번호 11번의「도라지꽃」과 「모과」를 최종 당선작으로 선하였다. 「도라지꽃」이나 「모과」의 작품은 예사롭지 않은 관찰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특히「도라지꽃」에서 ‘지난한‘ 이라든지 ‘가분재기’ 등 순수한 우리말을 알맞은 자리에 알맞게 안배해 놓은 점도 돋보인다. 그리고 문장이 딱딱하거나 지루하지 않고, 부드럽고 재미가 있다. 이를테면 「도라지꽃」에서
“다섯 겹 치마폭에 진한 남색 줄무늬가 선명한 도라지꽃이 가느다란 꽃대에도 흔들림 없이 꽃꼿하게 삶을 지탕하고 있다. 밤을 밝히는 등불처럼 작은 꽃잎 하나가 회색빛 도시를 환하게 밝힌다.”라든지
“꽃잎을 활짝 열어버린 꽃무리를 본 순간 , 울컥 가슴에서 푸른 눈물이 솟아오를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여든을 앞두고 있는 어머니의 지난한 생이 가분재기 푸른 멍이 되어 가슴을 두드린 탓이었다. (중략)꽃무리 속에서 도라지 뿌리를 캐기 위해 몸을 수그린 늙은 어머니가 내 가슴에 도라지꽃이 되어 망울망울 피어났다. 도라지는 가느다란 몸매와 슬프도록 어여쁜 꽃에 비해 뿌리는 끈질긴 생명력으로 존재한다. 지구의 중심을 꼭잡고 땅속 깊숙이 제 몸을 비틀며 생명을 이어가는 도라지는 다름 아닌 어머니의 사랑을 닮아 있었다.” 라는 구절 등은 눈길을 끌만하다. 그것 말고도 많은 글귀들이 신선한 감동을 주고 있다., 훌륭한 작가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사료되어 당선작으로 추천한다. 또 하나의 작품 「모과」는 평을 생략한다.
[수필 신인 작품평]
신인들의 작품들도 좋은 작품들이 많았다. 작품마다 특색이 있어 수상작을 고르는 데 고심을 많이 했다. 그러나 접수번호 103번의 「밤의 한가운데서」를 당선작으로 선하였다. 함께 제출한「모서리」도 수준작이다. 먼저 「밤의 한가운데서」의 작품은 몸이 불편한 노모가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데 병원에서 병수발을 들고 있는 딸 자신의 모습을 심리묘사까지 곁들여 그린 글이다. 문장이 세련되고 병실과 병원 복도에서 있었던 일 그리고 병원 앞마당에서 있었던 일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글이다. 뿐만 아니라 바람이 심하게 불고 방송 매체에서는 초대형 태풍 상륙을 예고하는데 병원 앞마당에 심어져있는 붉은 칸나가 꺾이어 질 듯 둔각으로 왕복하면서 휘청거리는 모습까지 실감나게 묘사 하였다. 그러나 쓰지 않아도 될 외래어를 자주 쓴 것이 옥의 티라 할 것이다.
“그녀 앞에 나는 중년을 넘어가는 딸이 아니라 함부로 부려도 되는 한갓 드난살이 하는 사람으로 비치는 것이 아닐까 섭섭한 적도 많았다.” 라든지
“ 먼 별빛들의 사라진 존재성을 목격하고 돌아온 망막에 반갑지 않은 침입자들의 존재가 들어차고 있다. 아주 작고 희미한 기미(幾微)가 저토록 커다란 검은 흔적으로 들어찰 때까지 그녀는 오랜 세월을 견디며 살아내 왔겠지(중략) 그녀가 무수히 지나왔을 고단한 길들처럼 툭툭 불거진 혈관들이 손등과 팔목으로 푸르스름하게 번져있다. 내 맘을 알아주지 않는 그녀를 애증하는 나는 그녀의 마음을 다 안다 할 수 있을까.”
라는 구절 등은 읽는 이의 마음에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글이다. 앞으로 노력하면 매우 역량 있는 작가로 성장할 수 있다고 사료되어 추천한다. 「모서리」의 작품 평을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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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2편 당선작
[제6회 목포문학상 단편소설부문 당선작] 정순희 이은미
본상
자유시간 / 정순희 (충남 천안시)
진회색 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거실에서 소파 뒤, 서랍장 아래, 거실장 사이까지 찾아봐도 없다. 아무래도 실바구니를 들고 다니다 떨어뜨린 것 같아 안방으로 갔다. 침대 머리 쪽에 조그만 틈이 있다. 머리를 바닥에 대고 침대 아래를 내려다봤다. 세상에. 그 좁은 사이로 많이도 들어갔다. 맨 앞에 진회색 실이 있다. 그 뒤로 솜털 같은 먼지를 쓰고 볼펜, 일회용 밴드, 포스트잇, 판촉용 화장품, 심지어 포크까지 있었다. 그중에 남편 양말도 돌돌 말린 채 굴러가 있다. 하나하나 분리해서 제자리에 놓고 남편 양말은 쓰레기통에 처넣었다. 침대 아래를 걸레로 닦고 일어섰다. 화장대 거울에 일어선 내 모습이 비쳤다. 그 모습을 오래 보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시간의 순서대로 움직이는 기계처럼 소파에 앉았다. 창문이 바람의 충격이라도 받았는지 한 번 덜컹거렸다. 봄이 오면 종일 흔들리는 창문이다. 뜨개질 바구니를 무릎 위에 올렸다. 건너편 벽에 붙은 허름하기 짝이 없는 거실장 손잡이가 눈에 들어왔다. 몸체의 칠은 군데군데 벗겨져 비슷한 색으로 덧칠했지만, 다시 덧칠한 부분만 도드라졌다. 그 뒤의 벽지는 그림의 형체만 남기고 나머지는 사라졌다. 거실장 나이가 내 나이만큼은 늙어 보인다. 구석에 서 있는 옷걸이에 남편의 작업복이 피곤함에 찌들어 있다. 창문을 열고 작업복의 피곤을 툭툭 털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앞 동에 가려진 거실은 아침만이라도 햇볕이 들어오지 않으면 지하창고나 다름없다. 겨울이 지나면 거실만이라도 도배를 해야겠다. 그래서 칙칙한 분위기를 내 쫓아 버리고 싶다.
지금부터 무늬실과 바탕실을 잘 구별하면서 떠야 한다. 여기서 손가락이 실을 잘못 선택하면, 무늬도 아니고 그림도 아닌 복잡한 것이 되어 버린다. 털실로 무늬를 만들 때 여러 색의 실로 엮어지는 것은, 복잡한 인간관계와도 같다. 순조롭게 만들어지던 무늬가 엉뚱한 색의 실이 끼어들어 무늬가 망쳐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검지에 걸었던 진회색 실을 이마 위로 쭉 잡아당겼다. 실이 팽팽하게 조여질 뿐 끌려오지 않는다. 무슨 일인가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발아래에서 한가로이 구르던 실들이, 소파 다리를 감고 저희끼리 엉켜있다. 바탕실과 무늬실이 만나지 못하도록 두 개의 바구니에 나누어 담았다.
감기가 오려는지 머리가 무겁다. 어제부터 재채기를 할 듯 말 듯 애애 거리다 또 실패한다. 하필이면 생일에 감기라니. 뜨끈한 미역국이라도 한 그릇 먹으면 무거운 머리가 가라앉을 것 같았다. 아침에 조금 기대했었다. 그러나 세상을 반쪽밖에 못 보는 남편에게 바라는 건 무리였다. 일어나면 나가기가 바쁘고, 저녁에 들어오면 잠자기 바쁜 식구들에게 나는, 생활에 쓰이는 물건일 뿐이었다. 있어도 없고 없어져도 모르는 물건. 내 나이 사십이 되기 전까지는 그런대로 생일이 존재했었다. 남편이 퇴근길에 방금 생각난 듯 케이크 하나 사 들고 와서, 아이들과 둘러앉아 촛불을 후후 불어 끄는 것으로도 만족하며 지냈다. 그런데 사십이 지나고부터 잊다말다 하더니 삼 년 전부터는 아예 생일이 없는 여자로 만들었다. 남편은 느슨하게 풀어진 끈처럼 언제나 자유로움에 경쾌해져 있었다. 일상의 관습과 제도를 꽉 끼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해하고 귀찮아했다. 내가 위아래로 줄줄이 형제가 달려있지 않은 것도, 아내로 선택할 때 좋은 조건 중의 하나였다.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혈액형에 대한 믿음도 가지고 있었다. 나와 첫 만남에서 뜬금없이 혈액형부터 물었다. A형이에요, 라는 대답에 아주 좋습니다, 라며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정년이 얼마 안 남았으면서도 성공한 친구들이 부럽다는 말을 해 본 적도 없고, 성공하겠다고 있는 돈 없는 돈 그러모아 점포 하나 마련하겠다는 말도, 해 본 적이 없다. 소규모의 가구공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집에 오면, 쌓인 피로가 모두 눈꺼풀 위로 내려앉는지, 밥만 먹으면 잠속으로 빠져든다. 여덟 시부터 달랑 삼각팬티 하나로 전신을 가리고, 해부 당하는 개구리처럼 자는 남편을 보면서, 과연 이 사람에게 꿈이라는 게 있는 걸까 생각해 본 적도 있다. 어느 때는 남편의 머릿속에 아내라는 존재가 어디쯤 박혀있는지 궁금했다. 그에게 아내라는 존재는 침대 위에서나 위하는 척하고, 진심으로 위하던 마음은 침대 아래에서 먼지나 뒤집어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창문으로 들어온 짧은 겨울 햇볕이, 왼손 검지에서 오른손 대바늘에 연결된 실위에도 공평하게 내려앉았다. 뜨개질은 겨울이 되면 잠자는 곰처럼 집안에 틀어박혀, 온 정성을 다하는 나만의 취미다. 올겨울에는 큰딸의 망토를 시작으로 작은딸 목도리, 남편은 스웨터를 떠서 입혔다. 이제는 직장도 다니고 연애도 하느라 제 할 일에 바쁜 두 딸이 싱싱하게 자랄 때, 예쁘게 뜬 털실 옷을 입혀 밖으로 내보는 것이 내 유일한 희망이었다. 이젠 아이들도 남편도 털옷은 별로 반기지 않는다. 그동안 입지도 않는 식구들의 옷을 뜨느라 내 옷은 뒷전이었다. 이번에는 내 조끼를 뜨기로 했다. 조끼의 앞판이 제법 올라갔다. 그때, 탁자 위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남편일까? 한 가닥 희망이 반짝였다.
‘김정숙 씨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덕진동 농업협동조합.’
가족도 모르는 것을 농협이 챙겨준다. 형식적인 것 같지만 내 마음에 작은 감동이 몽실몽실 피어났다. 공과금을 납부하려고 농협에 가면 세 번째 창구의 남자직원이 제일 친절하다. “어서 오세요, 더 필요하신 건 없으세요?, 안녕히 가세요.” 라고 언제나 세 문장의 말만 하지만 어쩐지 그 직원만의 진심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이젠 제법 낯이 익어 농협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안녕하세요.” 라는 인사를 한 번 더 한다. 메시지를 삭제하려다 며칠 더 남겨두기로 했다.
조끼가 제대로 만들어지고 있는지 대바늘을 들어 커튼처럼 펼쳐보았다. 처음의 고무단을 지난 겉뜨기는 브이 모양을 하면서 질서 있게 올라간다. 그런데 중간쯤에 무늬실이 브이자로 두 개나 들어가 있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 뜨개질을 오래 했으면서도 잠깐 마음이 풀어지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 혹시 또 다른 잘못이 있는지 꼼꼼하게 찾아본다. 아깝지만 진회색 실까지 풀어서 다시 바탕색으로 이어간다. 겉뜨기는 한 땀 한 땀 벽돌을 쌓아가는 담벼락 같기도 하고, 덧없이 쌓여가는 내 나이 같기도 하다. 안뜨기 겉뜨기의 고무단이나, 두 줄 건너뛰며 꼬아가는 꽈배기가 기교적이라면, 겉뜨기는 뜨개질에서 가장 기본적인 단순한 기술이다. 나는 기교적인 것 보다는 단순한 것을 좋아한다. 겉뜨기는 노력의 대가를 정직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무료해 보이기는 해도, 드러낼 것 없는 평범한 내 삶과도 같다. 손가락에 건 실의 탄력을 조절하며 대바늘을 돌리는데 핸드폰이 또 울렸다. 모르는 번호다.
“김정숙 씨 되십니까?”
“그런데요.”
“혹시, 아버님 성함이 김자, 동자, 술자 되시는지요?”
순간, 의심이 고개를 들었다. 낯선 남자가 아버지 이름을 묻다니. 나는 누구냐고 재차 물었다.
“누나, 저 정식이입니다. 동천에 사는.”
동천에 사는 정식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전기에 감전되는 것처럼 모든 생각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뭐? 정식이?”
“네, 정식이요. 누나 오랜만이지요.”
정식이는 나를 어제 만난 것처럼 누나, 누나 했다.
“그래서.”
“저…… 한 번 뵙고 싶은데요.”
“내가 왜, 너를 만나?”
“드릴 말씀이 있어요.”
“할 말이 뭔데.”
“그러지 마세요. 꼭, 드릴 말씀이 있어요.”
정식이에게 생각해보고 연락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한동안 손안에 쥔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꼭, 드릴 말씀이 있다는 말이 하수구에서 쓸려가지 못한 찌꺼기처럼, 내 휴대폰에 남아 있었다. 하필이면 오늘 정식이의 전화를 받다니, 나는 다시 우울해졌다. 그런데 왜 이제야 연락을 했지, 꼭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며, 그동안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혹시, 집을 담보로 보증을 서달라고 할지도 몰라, 급하다며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때, 작년에 배화리가 개발지역으로 선정되었다는 소리를 들었던 생각이 났다. 그 소식이 동천에 까지 전해졌고, 그 문제로 나를 찾아왔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돈 빌려달라는 것은 거절하면 되지만, 이건 거절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불길한 예감이 어두운 그림자가 되어 소리 없이 다가오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럴 때가 아니다. 일단, 배화리에 가서 개발지역이 어디서 어디까지이며, 현재 상황은 어떤지도 알아봐야겠다. 정오를 향하여 달리는 벽시계를 바라봤다. 벽시계의 숫자와 남은 시간을 계산했다. 오늘 저녁에 정식이를 만나고 그 사이 배화리 고물상에나 다녀와야겠다. 지금부터 서둘러야 저녁 시간과 맞을 것 같아 일어섰다. 안방을 가려고 탁자를 돌아가는데 실타래가 왼발에 툭 걸린다. 실타래는 탄력을 받아 건너편 벽에 닿더니 다시 데굴데굴 구르며 내게로 온다. 마치 목적이 있는 것처럼.
정식이는 기다렸다는 듯 전화를 받았다. 이렇게 빨리 전화가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지 고맙다고 두 번이나 반복했다. 지금 성산시에 있다고 해서 미림정이라는 한식당에서 여섯 시에 저녁을 먹기로 했다. 정식이는 오랜만에 만나지만 구태여 꾸밀 필요는 없다. 무릎이 나온 바지만 갈아입고 입은 옷에 검정코트를 걸쳤다. 저녁까지 있어야 하니 단단히 준비하고 나섰다.
배화리는 내가 사는 성산 시에서 시내버스로 삼십 분은 가야 한다. 대학교가 들어선다는 소리만 들었지 구체적인 상황은 잘 모른다. 버스 안은 다섯 명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관심이 없는 듯, 지나가는 풍경을 보느라 창밖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한낮의 햇볕과 히터의 온기가 모여든 버스 안은 그런대로 훈훈했다. 깍지 낀 소매 끝에 털실 보푸라기가 보풀보풀 뭉쳐져 있다. 나는 손가락으로 보푸라기를 하나씩 뜯어냈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뜨개질 거리를 꺼냈다. 가방 속에는 감청색의 실이 동그랗게 오므린 채, 실 한쪽을 밖으로 내 보내고 있었다. 그 옆에 무늬로 들어갈 진회색 실은 순서를 기다리는 번호표처럼 얌전히 있다. 감청색이 어느 색깔의 옷에도 잘 어울릴 것 같아 선택했는데, 겨울 색으로는 잘한 것 같다. 가방에서 감청색실만 뽑아 손가락에 걸었다. 혹시 순서도 아닌 진회색 실이 모르는 사이 손가락에 감길까봐 조심한다. 대바늘에 감청색 실을 감고 빠르게 돌린다.
버스는 도시를 벗어나 이미 시골 길로 접어들었다. 잡풀이 말라버린 논둑에 까치 세 마리가 꽁지를 세웠다, 내렸다 하며 깡총 거렸다. 그 모습을 보는데 배화리에 다녀온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거렸다. 비봉면 소재지에서 떨어진 고물상은 오래전부터 전세로 사는 사람이 있어 별 관심 없이 지내왔다. 그런데 그곳이 어떻게 개발이 된다는 건지 모르겠다. 비봉면이 가까워질수록 아련한 기억 하나가 내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드러났다.
비봉면 ‘북경반점’ 구석방에서 네 사람이 앉았다. 정식이 엄마는 정식이를 데리고 나타나 아버지의 재산을 아들 몫으로 나누어 달라고 했다. 언제나 큰소리부터 지르는 건 엄마였다.
“젊은 년이 할 짓이 없어서 애나 앞세워서 돈이나 뜯어내려고 해!”
“그래요. 젊은 년이 애하고 살아야 하니까 본격적으로 나섰어요. 보세요, 어차피 우리 더럽게 엮어진 사이니까 꼬장 부리지 말고 내 말대로 하는 게 서로 깔끔할 겁니다.”
“뭐야? 누구 좋으라고 하라는 대로 해. 주제에 누구를 가르치려고 들어!”
“참, 답답한 양반이네. 얘가 아들이라고요, 아들. 법적으로는 장손입니다.”
“뭐? 장손! 내가 장손을 무서워할 것 같냐?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
그다음에는 안 들어도 뻔한 이야기다. 이 잡*아.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너 같으면 가만있겠냐? 그러니까 빨리 내 말대로 하세요. 그들은 해결도 안 되는 일에 상처만 키워 나갔다. 어른들의 세계는 얼마나 복잡한가. 엄마가 낳지도 않은 아이가 아버지의 아들이란다. 중국집 구석방에서 두 사람의 언성이 높아지는 동안 나는 짜장면에 깍두기 몇 개 집어 먹고 밖으로 나왔다. 정식이도 슬그머니 따라 나왔다. 우리는 중국집 간판 아래 쭈그리고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구두, 운동화, 등산화를 많이 신고 다녔다. 그중에 낡은 신발 새 신발을 세고 있는데 정식이가 내 눈앞에 노란 봉지를 내밀었다. ‘자유시간’이라고 쓴 초콜릿이 내 얼굴 앞에 떠 있었다.
“누나, 이거.”
“이게 뭐냐?”
“누나, 주려고.”
나는 초콜릿을 탁 쳐서 바닥에 떨어뜨렸다. 바닥에 떨어진 자유시간은 내 발끝에 차여 멀리 날아갔다. 정식이는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등을 돌려 중국집 구석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두 엄마가 집으로 갈 때까지 난 밖에 있었다. 노여움을 채 다스리지도 못해 얼굴이 벌건 엄마는 내 손을 꼭 잡고 “여우 같은 년이 뻔뻔하기는, 어딜 와서 감히.” 하면서 집으로 향했다. 걸어오는 동안 풀어지지 않는 엄마의 노여움만큼 나도 기분이 나빴다. 감히 날보고 누나라니. 그 북경반점이 아직도 있는지 궁금했다.
눈에 익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비봉면 소재지가 서서히 다가왔다. 오래된 건물에 새로 단장한 공인 중개사 사무실들이 이곳이 개발지역임을 알려주기에 충분했다. 이 층으로 된 건물은 그런대로 볼만했다. 지붕이 낡은 슬레이트에다 알루미늄 섀시로 가게 문을 만들고, 나머지는 원색으로 페인트칠해서 어설프고 조잡해 보이는 곳도 있었다. 새로 만든 가게 앞에는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고급 승용차가 정차해 있었다. 이렇게 비봉면에서 축제가 열리고 있는 동안 난 뜨개질만 하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북경반점이 있던 자리부터 찾았다.
중국집은 이미 없어지고 ‘비봉 공인중개사’ 사무실로 바뀌었다. 사무실 유리창에는 매물광고가 퍼즐처럼 붙어 있었다. ‘포도밭 이천 평. 평당 육십 만원. 이차선 도로 옆.’ 그 아래에는 ‘임야 삼천 평, 평당 이십 만원. 도로에서 이백 미터.’ 커다란 글씨도 있었다. ‘급매 주택과 대지 포함. 삼백 평. 상담 후 결정. 조정 가능.’ 하다는 이야기다. 다른 사무실에도 밖에서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을 정도로 붙었다. 나는 중국집 안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해서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남자와 여자가 컴퓨터 작업을 하다 “어서 오세요.” 하고 인사를 했다. 다른 한 남자는 손님과 상담 중이었다. 상담하던 키 큰 남자는 내게 의자에 앉기를 권했고, 여자는 종이컵을 들고 차를 준비하러 정수기 쪽으로 갔다. 중국집 안은 밖으로 보이는 쪽은 사무실이고, 우리가 짜장면을 먹던 구석방은 막아서 살림집으로 쓰이는 것 같았다. 막은 벽의 절반은 비봉면 개발지역의 지도로 덮였다. 나머지 반은 지역 신문광고를 확대한 것과 투자지로 적지라는 광고문이 크게 붙었다. 예전에 이곳에 들어서면 간장, 고춧가루, 생선 비린내까지 몽땅 합해진 중국집 특유의 냄새가 주방에서 흘러나왔다. 짜장면을 시켜놓고 앉았던 구석방에서는, 어디에 숨어 있는지 모르는 눅눅하고 음습한 냄새가 스멀스멀 코로 들어왔다. 지금은 종이 냄새에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소리만 들린다. 컴퓨터를 하던 남자가 내게로 다가와 매물책자를 펴며 물었다.
“무엇을 찾으십니까?”
“배화리에 땅이 조금 있는데 시세 좀 알아보려고 왔어요.”
남자는 매우 관심 있는 얼굴로 위치와 평수를 물었다. 나는 천 평정도 된다고 말했다.
“배화리는 상업지역처럼 일급 지는 아니지만 원룸 건축지로서는 최고의 자리입니다. 현재 건축업자들이 원룸을 지으려고 매물을 물색 중이니 한 번 내놓아 보세요. 제가 최고가로 받아드리겠습니다.”
남자는 엄지손까지 추켜올렸다. 고물상은 앉은 자리만 삼백 평이고, 나머지 임야도 팔백 평이다. 현재 임야가 삼십만 원이라면 대학교가 들어서면 얘기가 달라진다. 나는 예상 이상의 숫자가 눈앞에서 춤을 추자 더럭 겁이 났다. 정식이는 이미 다녀가서 이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만나서 꼭 할 말이 있다고 한 것은 법적으로 재산분배에 대한 권리행사를 운운하면서 나에게 들이댈 것이 분명하다. 배화리가 개발이 된다고 해서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생길까. 정식이도 잠잠했던 욕심이 살아나서, 그 애 엄마와 내 엄마가 북경반점에서 하던 것처럼, 우리도 같은 길을 가야 하는 걸까. 끔찍한 쪽으로 향하는 생각들을 끌어당겼다. “매매하시려면 저희에게 꼭 주십시오. 가격은 적기일 때가 가장 좋습니다.” 라는 남자의 말을 뒤로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택시를 타고 고물상을 향했다.
고물상은 면 소재지에서 1km 정도 벗어난 곳에 있다. 배화리로 가는 길은 예전보다 길이 넓어졌다. 포장도 시멘트가 아닌 아스팔트로 바뀌었다. 머리가 반은 허옇게 센 택시기사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의 나이쯤으로 보였다. 고물상 주위에 건물이 열 개는 들어섰지만 고물상 간판이 선명하게 보였다. 함석담 위로 고철과 비철이 삐죽삐죽 나왔다. 그 사이로 잡동사니가 수북이 쌓여있어 여기는 누가 봐도 고물상이다. 고물상은 ‘현대 자원’이란 간판 아래 ‘철거전문’이라고 세로로 쓰여 있었다. ‘고철, 비철’과 ‘파지’라고 쓴 문구는 함석담에 낙서처럼 휘갈겼다. 택시기사는 나를 정문에다 내려놓고 돌아 나갔다.
대문도 없는 문 앞에 섰다. 오른쪽으로 내가 살던 집은 사라졌다. 그 자리에 컨테이너 두 개가 놓여있다. 고물도 철골이 많고 티브이, 에어컨, 폐전선, 기계부속과 같은 고급질의 폐품이다. 인기척이 없는 것으로 봐서 세입자는 밖으로 일하러 나갔나 보다.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네모진 담장 구석에 세 개의 감시카메라가 부엉이처럼 눈을 부라리고 있다. 예전에 아버지가 주인이었던 ‘배화고물상’은 큰 개 세 마리가 지켰었다.
그 시절 고물을 수거하는 사람들이 기껏해야 폐지나 칠이 벗겨진 냄비 아니면 누런 밥통을 리어카에다 모아왔다. 세 식구가 둥지를 틀었던 마당의 고물 속에는 들고양이도 살고 있었다. 이곳에서 엄마는 서른아홉에 어렵게 나를 출산한 후 무슨 일인지 아이가 없었다. 내 놀이터는 고물상 안마당이었고, 장난감은 찌그러진 국자나 플라스틱 바가지였다. 국자의 손잡이가 틀어졌어도 플라스틱 바가지에 흙을 퍼 담는 일은 아주 재미있었다. 아버지는 아저씨들이 리어카로 수집해 오는 고물을 판수동저울로 달아 돈을 주었다. 리어카 아저씨들은 엄마를 사모님이라고 불렀다. 엄마는 그때가 자기 생애에서 가장 낭만적이었다고 했다. 그날 저녁에는 돼지고기 두루치기가 안주로 나온 술상이 차려졌다. 아버지는 고물을 실으러 가는 일이 아니면 거의 외출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고물 안에는 아버지의 비밀이 꼭꼭 숨겨져 있었다.
그날 아버지는 마당에서 흩어진 고물을 차곡차곡 쌓고 있었다. 파지 상자를 들어 올리다 머리를 감아쥐고 쓰러졌을 때, 내 나이 열 살이었다. 아버지는 병원에 가는 택시 안에서 숨졌다. 엄마는 장례식장에서 세 번이나 까무러쳤다. 엄마는 링거액을 맞고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나는 엄마 곁을 갓 태어난 오리 새끼처럼 졸졸 따라다녔다. 장례 이튿날이었다. 검은 상복에 눈이 퉁퉁 부은 서른 초반의 여인이 들어왔다. 그 곁에는 다섯 살짜리 남자아이가 손을 잡고 있었다. 그들은 아버지 영정 앞에서 나란히 절을 올렸다. 조문객들의 눈길이 일제히 그쪽으로 쏠렸다. 수군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나는 그때부터 구경꾼이 되었다. 아버지가 꼭꼭 숨겨놓았던 여자와 아들. 그 여자의 실체는 아버지가 죽음으로서 설익은 과일처럼 우리 눈앞에 나타났다. 그들이 장례식장에 나타난 것은 아버지의 죽음보다 더 큰 사건이었다. 엄마가 또 쓰러졌다. 온몸에 경련까지 일으켜서 다시 병원으로 옮겨졌다. 엄마는 링거액을 단 채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두 손을 들어 부르르 떨면서 “이 인간, 기가 막힌 선물 하나 던져주고 갔구나!” 하고 소리쳤다. 그 여자는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엄마와 거리를 둔 자리에서 말없이 앉아있었다. 엄마는 보아서는 안 되는 물건이라도 있는 것처럼 아예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들은 장례식이 끝난 후 배화리에서 사십 리나 떨어진 동천으로,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사라졌다.
엄마는 아버지의 사망신고를 하다가 호적에 정식이가 엄마 아들로 올려 있는 것을 알았다. 내 이름 정숙이와 돌림이 같은 김정식으로. 엄마는 사망신고를 하고 와서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이냐. 이 교활한 인간, 고물처럼 고쳐 쓸 수도 없는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후로 잊을만하면 나타나 엄마의 상처를 건드리며 괴롭히던 정식이 엄마. 이곳이 개발된다면 어떤 방법이 되었던 고물상은 사라질 것이다. 돌아가신 엄마가 그토록 지키려고 했던 고물상이었는데. 내가 살던 곳을 한 번 더 둘러보고 정식이와 약속한 미림정으로 향했다.
겨울의 저녁 해는 병아리 꼬리만 했다. 이월의 초입이라 그런지 저녁 바람이 매서웠다. 식당은 버스에서 내려 한 정거장 정도 걸으면 되는 거리였다. 습관처럼 발에 익은 길인데도 느낌이 다른 건 순전히 기분 탓이리라. 우선 내 안에 담긴 탁한 공기를 뿜어내고 싶어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그래도 기대처럼 후련하지는 않았다. 따각따각 내 발걸음 소리는 오가는 차 소리에도 사라지지 않고 선명하게 내 뒤를 따라왔다. 식당에 가려면 길을 건너야 한다. 빨강 신호등을 바라보고 섰다. 까르륵 웃음소리가 내 등 뒤로 다가왔다. 싱그러운 목소리였다. 내 옆으로 스물다섯쯤 된 자매가 손잡고 나란히 섰다. 외출하고 집으로 가는 듯하다. 동생의 손에 케이크가 들려있다. 동생이 언니에게 말했다.
“엄마가 선물이 없다고 실망할까?”
“우리가 선물이지.”
나는 장난을 치는 그들을 보고 오늘이 내 생일이라는 기억이 떠올랐다. 아침에 무심한 가족에 대한 서운했던 감정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나가면 서둘러 들어갈 일도 없고, 어디를 반드시 들러야 할 곳도 없는 채 가구처럼 낡아가고 있는 나에게도, 가만히 보면 작은 행복이 어딘가에 숨어있었다. 집에서 뜨개질하다가 신문의 문화면에서 ‘이주일의 시’를 읽고, 나도 시 한 번 써 보고 싶은 희망도 생겼었다. 친구에게 전화하여 나박김치를 담았더니 김장김치가 맛이 없어지더라고 수다도 떨었다. 오후에 잠깐 마트에 들러 가족을 위한 반찬거리를 사기도 했다. 전자제품 코너에 가서 요란한 소리만 내고 잘 빨아들이지 않는 청소기가 생각나서, 가격표를 들여다보다 망설임 없이 구입했다. 그리고 그 옆 화장품 가게에서 봄에 어울리는 분홍색 매니큐어도 하나 샀었다. 남편과 아이들 얼굴이 떠오른다. 저녁식사는 어떻게 했는지 걱정이 되었다. 생각에 잠긴 나에게 건너편의 파란불이 깜박깜박 경계신호를 보낸다. 나와 나란히 섰던 자매는 횡단보도 중간쯤 걸어가고 있다. 나는 행렬의 끝을 종종걸음으로 따라갔다.
식당에 들어가 종업원이 가리키는 곳으로 갔다. 정식이는 미리와 있었다. 내 발 앞에 어른 구두가 한 켤레 나란히 있다. 그 구두를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둘 다 나이를 많이 먹었다. 정식이가 나보다 다섯 살이 아래니까 올해 마흔다섯이다. 방 안에 들어가면서 손을 들었다.
“일찍 왔구나.”
“추운데 고생했어요.”
우리는 오줌 냄새만으로 동족을 알아보는 짐승처럼 서로를 금방 알아봤다. 정식이는 사십 중반의 나이에 비해 이마에 깊은 주름이 패어 있었다. 아버지의 이마에도 깊은 주름이 보였다. 아버지의 귀밑에는 조그만 검은 점이 있었다. 정식이의 귀밑에 있는 검은 점과 실눈이 되어 눈웃음치는 모습에서 아버지의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해 주었다. 나는 아버지를 닮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습적인 불쾌감이 들었다.
종업원이 음식을 들고 왔다. 상위에 음식을 하나씩 내려놓았다. 상위에는 배추포기김치, 갈치조림, 양념꽃게장, 쇠고기볶음, 동태전, 잡채에 미역국까지 푸짐하게 차려졌다. 미역국이 보이자 순간 생일상을 여기서 받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형제와 함께 생일 밥상에 마주 앉아보는 것도 나만의 그리움이기도 했다. 그런데 정식이와 함께라니, 묘한 기분이다.
“누나는 뭐하고 지내셔요?”
“주부가 다 하는 일, 그런 거지 뭐.”
“그게 제일 편해요. 간섭을 안 받잖아요.”
“왜 간섭을 안 받냐? 간섭은 남자들이 하는 걸. 너는 애가 몇이냐?”
“혼자예요.”
“아직도?”
“아버지 노릇 제대로 할 자신이 없어서……. 그쪽이 편해요.”
정식이의 가시 돋친 말한 마디가 몇 개로 분열되어 내 머릿속에서 와글거린다. 의욕에 불타는 겁 없는 나이는 지났건만, 이런 식으로 감정에 불을 붙이고 시작하려는 의도가 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거북한 분위기로 몰고 갈 것 같아 슬쩍 비켜섰다.
“비봉면 북경반점이 없어졌더라.”
“오래되었으니 변했겠지요.”
“넌, 가본 적이 없니?
“안 좋은 기억만 있는 곳이잖아요.”
안 좋은 기억이라는 말이 또 찌꺼기로 남았다. 혹시 그건 아닐까. 북경반점에서 일어났던 그 날의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안 좋은 기억 속에 자유시간도 들어있니?”
정식이는 한참 동안 침묵했다. 난, 그 침묵을 즐기고 있었다.
“몸이 아픈 건 약으로 해결되는데 마음이 아픈 건 약으로도 안 돼요. 난, 어려서 그랬는지 누나가 있다는 것이 참 기뻤어요. 북경반점에 가는 건 누나를 볼 수 있어서 신이 났거든요. 그건, 누나에게 갖다 주고 싶어 아껴두었던 거였어요. 그런데…… 그 후로 누나를 만난다는 게 두려웠어요.”
나는 보여줘서는 안 되는 모습을 들킨 것 같았지만 결코 흔들리지는 말자고 다짐했다. 그때 네 사람은 각자의 감정으로 풀어진 실타래처럼 엉켜있었다. 만날수록 실타래는 더 엉켜지고, 때가 끼고, 색깔마저 바래져 갔다. 그 실타래 때문에 지금까지 누구도 그 기억 속에서 자유롭지 못 했다. 상처가 얼마나 깊었으면 가까이 살면서도 서로를 밀어 놓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우리는 토막 난 대화로 분위기만 무거웠다. 정식이는 젓가락을 들었다가 숟가락으로 바꾸어도 밥을 뜰 생각을 안 한다. 내가 밥을 뜨고 취나물을 집어오자 그 옆의 김치 한 조각을 마지못해 집어간다. 김치를 빈 접시에 담아 놓고 젓가락을 가장자리에 걸쳐놓는다. 나는 숟가락으로 미역국에 뜬 기름을 떠내었다. 그리고 궁금하지도 않은 안부를 물었다.
“너의 엄마는 안녕하시냐?”
“병원에 입원해 계세요. 많이 아프셔요.”
“저런, 어디가?”
“폐 쪽이래요.”
“절망적이야?”
“폐는 어렵잖아요…… 누나, 부탁이 있어요. 엄마가 뵙고 싶다는데 꼭 좀 만나주세요. 제 소원이에요.”
“나를? 오늘 할 말이 그거였어? …… 무슨 일인데?”
“만나보면 알아요. 꼭 좀 가주세요.”
정식이는 밥상 위에 두 손을 모으고 초조하게 앉아 있었다. 나는 전혀 예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숟가락을 상위에 내려놨다. 정식이 엄마가 아프다니. 그것도 심각한 상황이라지 않는가. 이건 대체 무슨 일인가. 정식이 엄마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은 과연 무엇일까. 고물상에 미련이 있어 마지막으로 만나자고 한 걸까. 이런저런 궁금증이 내 안에서 집요하게 꿈틀거렸다. 정식이 엄마가 많이 아프다는데 피할 수는 없다. 일단 만나보면 모든 것이 드러날 것이다. 그 다음에 상황을 보고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우선 먹자, 조금이라도 먹고 병원에 가자”
“고마워요, 누나.”
정식이는 이제야 안정이 된 듯 숟가락을 들어 밥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정식이에게서 어려운 일을 끝낸 것 같은 안도의 눈빛을 보았다. 내 마음은 더 착잡해졌다. 밥알이 입안에서 돌기만 할 뿐 넘어가려 하지 않았다. 우린 병원을 가기 위해 대충 먹고 일어났다. 긴 시간도 아니었는데 밖은 깜깜해져 있었다. 이따금 불어오는 칼바람은 코트 자락을 펄럭였다. 나는 시린 발을 톡톡 털며 정식이 차에 올랐다.
성산 종합병원 정문에 나를 내려놓고 정식이는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정문을 밀고 들어서자 소독 냄새가 코로 들어왔다. 이 냄새는 언제나 내 얼굴을 찡그리게 만들었다. 낮에 많은 사람이 드나들었을 접수대를 지나 내과병동을 향해 걸었다. 복도 벽에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다. 내키지 않는 내 발걸음을 화살표가 제시해 주는 것 같았다. ‘영상의학과는 이쪽으로 가십시오.’ 감정이 없는 얼굴로 의사가 내 곁을 지나갔다. 그 뒤로 환자를 휠체어에 태우고 보호자가 밀고 왔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으로 올라갔다. 705호 병실 앞에 섰다.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불편해서 선뜻 문을 열지 못했다. 손잡이를 잡았다.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어떤 것이 보여도 놀라지 말자고 나와 단단히 약속했다. 병실에 들어갔다. 창문 옆 침대 위에 ‘이청자’ 라는 이름의 여자가 누워있다. 나는 그 여자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내 앞의 여자는 탱탱했던 자루를 비틀어 짜서 물은 빠지고 가죽만 남은 것 같았다. 검고 누르칙칙한 가죽 자루. 어깨까지 들썩이며 숨을 쉬는 여자는 눈을 감고 있었다. 이름이 아니면 정식이 어머니인 줄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내가 서 있는 인기척에 여자의 눈꺼풀이 천천히 홉뜨다가 내 눈과 마주쳤다.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가죽 자루에 눈이 달린 이 여자가 엄마에게 대들던 그 여자였나. 나는 눈을 돌리고 싶었다. 정식이 엄마가 먼저 알아보았다.
“너, 왔구나.”
앙상한 손이 내 손을 덥석 잡았다. 바스러질 것 같은 손에는 온기가 하나도 없었다. 사람 손이 아닌 어떤 물체가 옥죄는 것 같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네, 라는 말 이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다 정식이 엄마가 이것저것 물었다.
“오랜만이다. 아이는 몇이냐, 남편은 어디를 다니고.”
“둘이에요, 회사에 나가요.”
그때 정식이가 들어왔다. 내 곁에 나란히 섰다. 정식이 엄마는 앙상한 두 손으로 다시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건조한 입술로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 사람처럼 말을 끊었다.
“너를 오라고 한 것은…… 다름이 아니고…… 한 번 보고 싶어서 그랬다. 그냥…… 보고 싶었어. 미안하고.”
정식이 엄마는 이렇게 말한 다음 할 일을 다 한 듯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수가. 세상에는 알 수 없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건 농담이라도, 상상이라도 짐작조차 못 한 일이었다. 오늘 정식이 전화를 처음 받았을 때, 두 사람이 고물상의 주인인 것처럼 뚜벅뚜벅 걸어와 모두 차지할 것 같았다. 둘이서 공격하면 엄마처럼 대항하려는 마음까지 먹었다. 나는 부끄러워 다리가 휘청거릴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런 기분이면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선 엄마의 마음이 되었다. 그리고 정식이 엄마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병원 밖은 이미 캄캄해서 가로등마저 없었다면 물체의 윤곽조차 분간하기 어려웠다. 가로등 아래에 서 있는 나는 무언가에서 풀려난 기분이었다. 집에 오는 버스에 올라탔다. 가방에서 뜨다만 조끼를 꺼내었다. 버스는 내부 등을 꺼서 어두웠지만 가로등이 희미해서 뜨개질은 가능했다. 색깔은 실 꾸러미의 크기로 구별하면 되었다. 왼손가락은 가방 속에서 정확하게 무늬의 실을 찾았다. 오른손으로 대바늘을 잡았다. 눈을 감아도 실을 구별해서 무늬를 만들 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나는 정식이 엄마의 얼굴에서 영혼이 떠날 준비를 하는 검은 그림자를 보았다. 그 얼굴에서 편안하고 행복해하는 또 다른 얼굴도 보았다. 어두운 버스 안에서 정식이 엄마가 내게 한 말이, 혼란했던 나의 마음에 한 개씩, 한 개씩, 등불로 켜지고 있었다. 병원을 나서면서 살짝 웃었던가. 아마 그랬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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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상
복 원 / 이은미(경기도)
여자의 뺨을 따라 미끄러지듯 선을 내리 긋는다. 갸름한 얼굴형이 드러난다. 턱선은 조금 진한 농먹을 사용한다. 너무 손목에 힘을 준 탓일까. 여자의 턱선이 흐트러진다. 붓을 바로 세우고 박꽃같이 환한 이마와 날렵한 눈썹을 담먹으로 가볍게 그린다. 잘못 놓은 수처럼 미세한 선들이 뒤엉켜 있는 여자의 얼굴. 오래 전 여자를 동굴 벽에서 떼어낼 때, 사람들은 무자비하게 톱을 사용했다. 이마에서 눈썹을 지나 코끝과 입술을 헤집고 내려간 톱날의 흔적은 여자의 손과 발과 옷자락으로 길게 뻗어 있다.
여자의 눈을 그릴 차례다. 처음 벽화의 원본 사진을 트레이싱지에 모사할 때 여자의 눈빛은 매순간 달라보였다. 그윽하기도 했고 가늘게 흔들리기도 했다. 연필로 그렸다가 지우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하지만 모사된 밑그림에 먹선을 뜨기 시작할 때부터, 가필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손끝이 떨렸다. 한 번 내려 그은 선이 여자의 실체를 드러내는 순간마다 심장이 터질 듯 조여 왔다. 여자의 눈에 내 시선을 고정시킨다. 여자의 눈빛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나, 귀국했어. 십 년 만이지? 이번에 문화재 복원 프로젝트를 맡게 됐어. 대대적인 복원과 모사작업이야. 모사가 복원의 또 다른 방법이라는 걸 당신도 알 테니까, 별다른 거부감은 없으리라고 믿어. 당신이 꼭 모사해야할 벽화가 있어서 말이야.”
말없이 자취를 감출 때처럼 정섭은 홀연히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미술학원의 전화번호를 알아내기는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신문 문화면에 정섭의 귀국 소식이 앞 다투어 실렸던 것이 두세 달 전이었다. 귀국 후 한 달이 훨씬 지나서 걸려온 전화였다. 그가 일본과 중국에서 고미술 복원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기사는 더러 읽은 적이 있었다. 그가 바람 같이 사라져 버린 후, 나는 그에 대한 기억을 하나씩 지워 나갔다. 붓을 쥐고 선을 내리 그을 때마다 미세하게 떨리던 그의 손만을 어렴풋이 기억했을 뿐이다. 일본 교토박물관 문화재 보존수리소에서 도제 형식으로 미술 복원을 배우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 것도 한참이 지난 후였다.
여자의 눈빛을 종잡을 수가 없다. 어둠과 빛을 넘나드는 듯 혼란스럽다. 어둠 속에 갇혀있던 시선이 아니라, 세상 밖에서 헤매고 다니던 눈빛이다. 그 눈빛의 추이를 가늠하기가 점점 힘들다. 나는 우선 밑그림대로 눈의 형태만 먹선을 뜬다. 약간 치켜 올라간 눈초리를 담먹으로 가늘게 그리다가 잠시 손을 내려놓는다.
여자의 옷자락으로 시선을 돌린다.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이 새어나온다. 한 올 한 올 배어 있는 세월을 건져 올리기가 쉽지 않다. 현상모사는 원래의 모습을 되살리는 것이 아니다. 훼손된 그대로의 상태를 모사하는 일이다.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박리된 곳까지, 티끌 한 점이라도 놓칠 수 없다. 가장 두드러진 부분이 갈라진 틈새를 비집고 나온 지푸라기다. 여자의 얼굴부터 옷자락까지 무수히 비집고 나온 지푸라기들. 오래 전 화공은 동굴 벽에 지푸라기와 흙을 섞어 토벽을 만들었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벽화를 그렸다. 그 중에 여자의 모습도 있었다. 그 위를 야만적인 도굴의 톱날이 수없이 지나갔다.
의자를 벽화 앞으로 바짝 당긴다. 천 년 동안 부식되고 훼손된 몸체를 가르는 지푸라기들이 일제히 수 만 마리의 벌레가 되어 꿈틀거리는 것 같다. 내 몸의 기운도 일순 썰물처럼 쏴아 빠져나간다. 아직 빈혈 수치가 정상으로 회복이 안 된 징후다. 서둘러 붓을 접시 위에 올려놓고 창가로 간다. 창가에 놓인 플라스틱 바구니에서 빈혈 약 한 알을 꺼내 입 속에 넣는다. 아이들은 선생님 입술이 시체같이 푸른빛이 돈다고 놀려댔다. 아기 대신 근종을 키우고 있던 내 자궁 때문이었다. 자기 몸체를 압박하는 근종을 견디지 못하고 자궁은 결국 피를 토해냈다. 자궁이 빠져나간 자리에 이제는 성근 바람만 가득 들어찬 느낌이다.
“아이는 영영 낳을 수 없는 건가.”
수술 전, 남편은 입술을 달싹거리며 들릴 듯 말듯 말했다. 마음이 아려왔다. 남편과의 결혼은 몸에 잘 맞는 옷처럼 편안했다. 아이가 없어도 그럭저럭 순조로웠다. 남편은 십년동안 운영했던 회사를 정리하는 단계였기 때문에 갑작스런 내 수술을 힘겨워했다. 자궁이 없으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당연한 이치조차 남편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입원기간 내내 굴착기가 산허리를 파헤치고 있었다. 병원을 리모델링하는 공사였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가 흙더미 속에서 그 뿌리를 단단히 얽어매고 있는 모습이 노쇠한 여인의 음부처럼 스산해 보였다.
현기증이 조금 가시는 듯하다. 수술 후에도 자궁이 있던 자리는 늘 시리다. 화실 안쪽 깊숙이 들어온 햇살 바라기를 하고 있으면 아랫도리가 묵지근해지면서 따스한 기운이 몸에 감긴다. 벽면에 잠시 기대어 놓은 여자에게도 햇살이 다가간다. 햇살을 받은 여자의 옷자락 주름이 지천으로 맺히고 풀리고 춤을 추면서 여자의 몸을 감싸 안고 있다. 사위가 따스해진다. 의자를 나무판 앞쪽으로 바짝 끌어당긴다. 넓은 양미간과 가늘고 긴 눈. 치켜 올라간 눈초리. 종잡을 수 없는 눈매. 그 눈이 바라보는 곳이 어둠인지 빛인지 알 수 없다.
박물관에서 열리는 복원 프로젝트 상견례에서 정섭을 만났다. 보수공사중인 박물관 옆 건물의 푸른 천막이 펄럭였다.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 건 당장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전화로 이혼을 통고했을 뿐 한 달째 얼굴을 비치지 않고 있다. 사업 동업자가 자재 값을 모두 회수해 가지고 잠적해 버렸고, 남편은 동업자를 찾아다니고 있을 터였다.
정섭은 먼저 와 앉아 있었다. 내가 들어오는 모습을 바라보며 입 꼬리를 치켜 올렸다. 그가 웃는지 우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 것은 십 년 전이나 똑같았다. 예전에 그의 어중간한 웃음은 사람들을 그에게서 멀어지게 했다. 하지만 지금 그의 그런 웃음은 오히려 여유로워 보였다. 나는 손짓으로 알은 체를 한 뒤 의자에 앉았다. 사람들은 타원형의 오동나무 탁자를 중심으로 둘러 앉아 있었다. 낯익은 동창과 신문에 오르내리는 미술계 인사가 눈에 띄었다. 남자 동창은 네가 여기 웬일이냐, 하는 표정으로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 나 역시 동창들과의 만남은 반갑지가 않았다. 변두리 미술학원에서 조무래기들을 가르치는 내가 그들에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회의실에 들어온 학예관은 인사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섭을 소개했다.
“우리나라 고미술계 복원의 일인자인 선생님은 칠년 동안 도제 형식으로 교토 국립박물관 문화재 보존 수리소에서 복원을 공부했습니다. 도제는 그야말로 맹렬한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전적으로 이정섭 교수님을 중심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기한은 앞으로 육 개월 정도이고, 내년에 완공 예정인 박물관의 서아시아 관으로 옮겨질 겁니다.”
학예관이 설명을 하는 동안 그는 내내 손을 깍지 낀 채 탁자에 올려놓고 있었다. 그의 날카롭던 하관에는 두덕두덕 살이 올랐다. 두서없이 헝클어졌던 머리는 관료냄새가 배인 이대팔 가르마로 변해 있었다. 그가 좌중을 둘러보며 천천히 일어나 말문을 열었다. 그의 음성은 육중한 몸체만큼이나 묵직하고 오랜 여음을 남겼다.
“세상에는 가짜가 많습니다. 진짜 같은 가짜와 가짜 같은 진짜. 모사는 진짜 같은 진짜를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수장고에 있는 벽화는 이미 훼손되고 마모되어 우리가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될 귀중한 생명체와도 같습니다. 계속 빛을 보게 한다면 작품의 생명에 무리가 갈 것입니다. 어떤 예술작품도 온전히 순수한 작품은 없습니다. 그 뿌리나 근원은 작가의 손끝에서 오묘하게 윤색되는 것이지요. 모사는 그런 면에서 벽화의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반들거리는 오동나무 탁자에서 잘려나간 햇빛이 그의 얼굴에 이르러 그림자를 드리웠다. 창 너머에는 흐드러진 벚꽃이 꽃비를 뿌리며 연분홍으로 사위를 물들이고 있었다. 그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오른 손을 내밀어 물 컵을 쥐었다. 꿀꺽꿀꺽 물이 넘어가는 그의 목울대를 쳐다보며, 나는 그를 사랑할 때도 매순간 낯설었다는 것을 기억했다. 컵을 감싸 쥔 그의 다섯 손가락은 달라진 외모와는 다르게 예전과 똑같았다. 지나치게 섬세하고 고왔던 그의 손가락이 떨리듯 획을 내리 긋는 모습이 떠올랐다. 획을 내리그을 때 그의 운필은 매우 활달했다. 매의 부리처럼 날카롭고 힘이 있었다. 그의 눈과 내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그는 물 컵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말을 이어갔다. 컵 속의 물이 출렁거렸다.
“복원할 작품에 어떤 예술적인 것을 기대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훼손된 채 수장고에서 신음하는 저 작품들을, 여러분들은 복사기에서 찍어내듯 사실적인 모사만 하면 됩니다. 만약 그런 행위들이 여러분들이 지향하는 예술성과 어긋난다면 지금 포기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가 말을 끝내자 두 세 명이 박수를 쳤다. 박수를 치는 사람들의 얼굴이 붉게 상기됐다. 그의 말은 신생 교주의 말처럼 힘 있고 단호했다. 사람들은 복원 프로젝트라는 작업보다는 거물과의 연결고리가 더 자랑스럽게 느껴지는 듯했다. 그는 무슨 말이든 애매모호하게 말끝을 흐리는 버릇이 있었다. 정섭의 완벽한 탈바꿈은 십년의 세월만으로는 설명되어지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일이었다.
회의가 끝나자 그가 내게 눈짓을 보냈다. 잠깐 기다리라는 신호 같았다. 나는 엉거주춤 자리에 일어서지도 앉지도 못한 자세로 그를 기다렸다. 정섭은 나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학예관을 비롯해 미술 평론가, 잡지사 기자와 어깨를 치는 격의 없는 동작을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분분히 흩날리던 꽃잎이 창틈으로 흘러 들어왔다.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어야할지 알 수 없었다. 정섭의 너털거리는 웃음소리가 귓전에서 버석거렸다. 나는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나왔다. 건물 앞 광장에는 사람들이 한가롭게 거닐고 있었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분수대 옆에서 물받이 장난을 치고 있었고, 오랜 수령의 후박나무가 바람에 가볍게 몸을 흔들었다. 나는 건물 외벽에 길게 늘어선 그림자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얼비친 그림자 사이사이에 빛들이 생선비늘처럼 박혀 있었다.
박물관 회의를 다녀 온 지 한 달 정도가 지났다.
정섭은 아무 연락이 없다. 벽화의 원본 사진을 택배로 보내주겠다고 전화를 건 것은 학예관이다. 트레이싱지를 사서 벽화의 사진을 본뜨라는 말도 덧붙였다. 원본 사진을 펼쳤을 때 가장 눈에 들어온 것은 사진 속 여자의 눈이었다. 감은 듯 뜬 듯, 웃는 듯 우는 듯, 종잡을 수 없는 여자의 눈이 온종일 내 뒤를 따라다녔다. 화실 건물 일층의 인테리어 업자에게 나무판을 구했다. 화실 한 코너를 패널로 막아 공간을 만들었다. 나무판을 벽에 기대놓고 그 위에 벽화 사진을 붙였다. 사각사각 흘리듯 선을 내리긋다보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화실을 한 번 둘러본다. 탁자위에 아이들이 던져 놓고 간 동판이 쌓여 있다. 벽화를 화실 복판에 끌어내 작업을 하다가도 아이들이 오기 시작하면 구석으로 밀어 놓는다. 아이들 과제물을 완성시켜주는 일이 우선이다. 내게 남은 것은 보증금 오백 만원에 한 달 월세 오십 만원을 주고 임대한 미술학원이 전부다. 학원은 그럭저럭 운영된다. 중학생 이상의 아이들은 학교 미술 시간에 받는 평가 작품을 모두 내게 부탁했다. 수업시간에 작품의 아우트라인만 설정하고 제출한 작품을 다시 몰래 빼내오는 것이다. 나는 시험 직전 실기 평가 때 아이들이 몰래 빼내온 수 십 점의 작품을 밤새워 완성시켰다. 내 손을 거친 미술작품은 거의 에이플러스이므로 학원은 입소문을 탔다.
누군가 계단을 자박거리며 올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화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기척이 느껴진다. 발짝 소리가 왠지 귀에 익숙하다. 듬성듬성 쌓아놓은 4절지 스케치북이 한쪽으로 밀려 넘어간다. 나는 나무판을 벽에 기대어 놓은 채 화실 중앙으로 나온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낯선 얼굴 같다.
“지난 번에 왜 그냥 갔지? 얼굴 한 번 자세히 보려고 했는데.”
벽에 붙여 놓은 아이들의 데생 앞에 서 있던 정섭이 묻는다. 나는 대답 대신 헛기침을 한다. 벽에 기대어 놓은 벽화 나무판 앞으로 그가 다가간다. 벽화 속 여자는 이제 얼굴부터 옷자락까지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눈과 머리 위 장식과 여백처리를 끝내면 배접처리를 할 수 있다. 그런 후에 나무틀로 판을 짜 고정시키고 채색에 들어가는 것이다.
“기본 밑그림은 거의 다 됐군.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낫네. 당신 실력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니까. 그림이 너무 생생해서 만지고 싶을 정도야.”
정섭은 손가락을 내밀어 지푸라기 부분을 문지른다. 지푸라기가 묻어나는 듯 ‘후’하고 부는 시늉까지 내면서 나를 바라본다. 간혹 한 번씩 객쩍은 유머를 날리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그의 시선을 외면한다. 전기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커피 믹스 두 개를 뜯어 종이컵에 담는다. 그가 나를 보러 온 것이 아니라, 벽화의 진척을 보기 위해서 왔다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하나도 안 변했군.”
커피를 한 모금 삼키던 그가 말한다. 그가 윗입술을 치켜 올리며 웃는다. 나는 탁자 위에 새겨진 얼룩을 손톱으로 긁는다. 손톱 끝에 검붉은 물감이 배어든다. 배어든 물감을 다른 손톱으로 벗겨낸다. 손 전체에 먹을 묻히고도, 얼굴이 물감으로 범벅이 되었어도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서로의 얼굴에 잔뜩 묻은 물감을 바라보며 웃었던 시절을 기억한다.
“일본은 대단한 곳이었지. 내게 아무 것도 원하지 않았어. 다만 스스로 모든 것을 찾아내길 바랐지.”
찻잔을 쥔 손에 힘을 주며 그가 말한다. 갑작스런 그의 말에 나는 어떤 의미를 달고 싶진 않다. 나는 입술을 달싹거린다. 나는 이미 그가 고용한 고용인이다. 벽화는 그의 바람대로 복원되는 중이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마무리 먹선을 뜨는 일 뿐이다.
“당신이 꼭 보아야 할 것이 있는데 지금 같이 가줄 수 있겠어?”
탁자 위에 놓인 아이들 작품을 하나씩 들춰보며 뜬금없이 그가 말한다.
“갑자기, 어디를?”
“벽화의 진본을 한 번 봐야 예술적 느낌을 더 강하게 받을 거 아니야. 지금 바로 나가자.”
그의 말투는 명령을 내리는 상사의 말투다. 싫고 좋고를 따질 겨를이 없다. 나는 당황스럽지만 벽화의 진본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설렜다. 대충 흐트러진 머리에 물을 묻혀 정리한다. 정섭은 기다리지 않는다. 타박타박 계단을 내려가는 그의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스킨을 찍어 바르는 내 손이 바르르 떨린다.
박물관을 가로지르는 광장은 활기로 가득하다. 분수대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분수광장을 지나 다다른 곳은 아치형으로 이루어진 석조문 앞이다. 돌문을 통과하여 서너 개의 돌계단을 내려간다. 계단 아래에는 나무로 만든 문이 있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가니 터널같이 이어진 긴 복도가 한 눈에 들어온다. 복도는 더할 나위 없이 적요하다. 간간이 얼굴을 내민 빛이 부옇게 탈색된 얼굴로 복도를 떠돈다. 외부인 출입금지 팻말이 붙어 있는 철문 앞에 선 그가 디지털잠금장치의 번호를 꾹꾹 누른다. 철문이 열린다. 안쪽으로 들어서니 또 복도가 나타난다.
“얼마 전 학예관이 내게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보안카드를 주더군. 언제든지 진품을 보고 싶을 때 보라는 거야.”
앞서 가는 그는 보폭까지도 당당하다. 복도 양 옆에는 제1, 제2, 제3, 제4수장고라고 팻말이 붙은 나무문이 있다. 제2수장고라 팻말이 붙은 문 앞에 발걸음을 멈춘다. 그가 보안카드를 기계에 대자 삑삑 소리가 난다. 동시에 이중잠금열쇠를 구멍에 꽂는다. 쓰윽 문이 열린다. 그는 내게 따라 들어오라는 눈짓을 한다. 나는 호흡을 고르고 마른 침을 삼킨다. 수십 개의 수장대가 군대처럼 도열해 있다. 칸칸이 빽빽한 유물들. 놀랄만한 규모다. 수장대 안에 잠자고 있던 벽화들이 들숨날숨을 토해내는 듯 주위가 서늘해진다. 뚝뚝 부러진 살과 뼈들이 밖으로 튀어나오며 일제히 아우성을 내지르는 것 같다. 나는 밭은 숨을 내쉰다. 내 뼈들과 살들이 소리를 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는 입구에 놓인 서랍에서 흰 면장갑을 꺼내 내게 건네주고 이내 사라진다.
수장대 곳곳을 헤집고 다니는 그의 모습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나는 정지된 채 꼼짝하지 않고 서서 숨고르기를 한다. 향기롭고도 아련한 기운이 온 몸에 퍼진다. 이윽고 그가 벽화를 들고 나타난다. 그의 손에 들려진 벽화는 1평방미터 남짓의 그리 크지 않은 낡은 테두리의 벽화다.
“바로 이거야. 당신이 복원하는 벽화의 진품. 아마 천여 점의 벽화 중에 가장 아름다울 거야. 모사본은 교토 국립박물관에도 전시되어 있는데, 시간 날 때마다 다리품 팔며 수없이 보고 또 봤지만 어쩐지 낯설고 부자연스럽더군. 귀국해서 이 진품을 본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어. 일본에서 봤던 그 모사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이 진품을 진품답게 모사할 사람은 당신 밖에 없다는 생각이 그때부터 들었어.”
얼굴 전면을 가로지르는 톱자국과 그 사이에 비집고 들어앉은 지푸라기. 톱날이 관통한 여자의 얼굴을 지푸라기가 감싸 안고 있다. 벽화 사진과 똑같았다. 상처투성이의 몸은 가로 세로 1미터 남짓의 액자에 갇혀 있고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다. 바위에서 뜯겨 나갈 때, 여자는 혼자가 아니었을 것이다. 벽화의 군데군데 훼손된 자국에는 누군가의 손이며 발의 흔적도 발견할 수 있다. 여자의 실체를 정확히 짐작하기는 힘들다. 다만 낱낱이 해체되어 만신창이로 훼손된 여자가 세월을 거슬러 비로소 내게 이르렀다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여자의 얼굴을 가로지르는 지푸라기를 가만히 쓰다듬는다. 까슬까슬한 느낌이 손끝에 닿자 온몸이 저릿해진다. 벽화 속 여자의 모습은 남성과 여성을 초월한 것 같다. 세월 속에 갇혀 있던 여자를 하루빨리 되살리고 싶다. 자궁이 없다는 것은 여자의 경계가 허물어진 거잖아. 너는 진짜 인간이 된 거야. 수술 후, 친구가 애써 웃으며 했던 말이 떠오른다. 진짜 인간이 되는 과정치고는 너무 무모한 거 아니니? 하며 농담처럼 되받았던 일이 생각난다.
“이번 모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주고 싶어서 당신을 이리로 데려온 거야. 조무래기들한테 계속 시달리기만 한다면 당신 재능은 그대로 묻혀버리고 말겠지. 이 벽화를 제대로 복원할 사람은 당신 밖에 없다는 걸 나는 진작 알았다니까. 하하.”
조도가 낮은 불빛 아래 그가 흰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그가 십년 만에 내게 전화를 걸었던 이유가 이 벽화를 재현해내고 싶은 욕망 때문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웃음이다. 수술 자국에 아릿한 통증이 인다.
“채색은 천연 석채로 할 건데, 직접 중국에서 공수해 올 거니까, 그걸 사용하도록 해. 밑그림이 완성되면 배접을 여러 겹하고 나무틀을 짜야 되겠군. 내가 솜씨 좋은 사람을 알아볼게. 우리나라에는 제대로 하는 사람이 없어. 일본이나 중국 쪽에 수소문해야지. 그리고 당신, 석채 혼합하는 솜씨는 여전하겠지?”
그의 이마가 번들거린다. 머리카락 한 올이 그의 이마를 가르고 있다. 석채를 사용하는 것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다. 값도 비쌌을 뿐더러 석채에 섞는 아교의 비율을 제대로 맞추기가 힘들었다. 두세 번 정도 나는 석채를 이용해 그림을 그릴 기회가 있었다. 교수님의 부탁을 받고 보조 일을 하기도 했다. 루비분말이나 공작석분말을 사용하는 석채도 있었다. 엷은 오렌지 빛을 내는 진사색, 황토 빛을 내는 등황색, 푸르고 깊은 비취색 같은 것 모두 혼합을 잘 해야만 제대로 색이 나왔다.
“석채를 사용하는 것은 미처 생각을 못했어. 석채를 다뤄 본 적도 까마득해서 힘들 거 같은데.”
“내가 도와 줄 수 있어. 당신이 세세한 먹선은 거의 다 떴으니까.”
여기까지 말하고 그는 나를 한번 힐끔 바라본다.
“기대한 것 보다 훨씬 밑그림이 사실적으로 잘 나왔잖아. 나 솔직히 많이 놀랐어. 당신 솜씨가 아직도 그대로인 것 같아서 기뻤다구. 채색을 할 때 공동으로 작업하는 방법도 한번 생각해 봐. 석채는 벽화에 가장 많이 사용해왔잖아. 석채 이외에 다른 재료로는 질감이 되살아나지 않아.”
그는 어린애처럼 들떠 있다. 원하는 조립식 장난감을 선물 받고 어떻게 조립할까를 스스로 묻고 대답하는 어린 아이. 하지만 자기 혼자는 조립하기가 힘들어지자 누군가를 끌어들여 완성시키려고 애쓰는 아이.
나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는다. 이 일을 시작한 것이 후회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정섭을 바라보는 일은 힘들다. 사람의 감정은 경계가 없다. 그에 대한 감정이 이제는 염오로 차츰 바뀌고 있다는 것만 진실이다. 불현듯 석채의 그 오묘한 질감만을 이용해서 온전히 내 작품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든다. 다 죽어 버린 줄 알았던 욕망 같은 것이 슬며시 고개를 치켜드는 느낌이다. 자궁을 드러낸 후 내게 남은 욕망은 없다고 생각했다. 수장고 안의 벽과 천정 바닥 모두 숨을 내쉬는 듯 코끝이 아릿하면서도 상쾌하다. 그가 벽화를 제 자리에 갖다놓는 사이에 나는 수장고 안을 다시 한 번 둘러본다.
“이제 나가지. 혹 더 보고 싶은 거 있어?”
“아니. 그냥 나가.”
그가 문을 닫고 보안카드를 대고, 이중잠금열쇠를 다시 사용한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묘한 질투심이 생긴다. 그가 얻고자 했던 것이 이런 것이었을까. 국가의 문화재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권력을 가진 남자. 하지만 그가 몸에 안 맞는 옷을 입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늘 몸에 안 맞는 옷을 입고 몸을 그것에 맞추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도 그와 다르지 않다. 그를 사랑했던 것도, 그를 잊으려고 했던 십 년도 모두 내 욕망을 되새김질하며 지낸 시간이었다. 분명히 삼켜버렸는데 그것은 항상 스멀대며 내 뱃속에 남아 있었다. 옛날 그의 아이가 내 뱃속에 뿌리를 내렸던 것처럼.
그와 복도를 빠져 나온다. 복도 중간에 이르러 그가 내 어깨를 감싸 안는다. 나는 움찔하며 어깨를 흔들었다. 그가 단번에 손을 떼어 낸다. 나는 걸음을 빨리 걷는다. 텅 빈 복도에 내 구두굽 소리만 또각또각 정적을 깨트린다. 복도 양옆에는 수장고가 두 개씩 네 개가 있다. 그중 제3수장고의 문이 열린다. 낯이 익은 얼굴이다. 학예관은 무의식적으로 그와 나를 번갈아 훑어본다. 정섭은 당황스러운 느낌을 감추지 못한다.
“어 선생님! 기별도 없이 어쩐 일이십니까?”
“아, 예. 벽화 진품을 보려구요. 도와주는 분이랑 같이 왔습니다.”
학예관이 나에게 가볍게 목례를 한다. 나도 엉거주춤 허리를 구부린다.
“혹시 저번 최초 미팅 때 나오시지 않았습니까? 얼굴이 익어서요.”
“저에게 전화도 주시고 벽화 사진도 보내 주셨잖아요.”
“아. 맞아요. 제가 바쁘다 보니까. 죄송합니다.”
학예관은 다시 한 번 자연스럽게 눈인사를 한다. 정섭은 이를 말없이 지켜본다.
“벽화는 어디까지 진척이 되었습니까?”
학예관이 내게 등을 돌린 채 정섭에게 묻는다. 정섭은 학예관의 손을 잡고 내 쪽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으로 간다. 학예관의 등에 가려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부유하는 먼지가 그의 머리 위에서 춤추는 모습만 보인다. 그의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그 벽화의 감수는 내가 할 예정이야. 학예관이 내 복원 작품만 따로 모아 기획전을 열자고 하더군. 당신은 내가 원하는 것만 해주면 돼. 앞으로 미팅이 두 세 차례 더 있을 예정인데, 벽화의 진행사항을 누군가 물어보면 당신은 모른다고 대답해. 내가 다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학예관이 떠난 후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한다. 수장고를 나온 후 나는 줄곧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화실 앞 계단에 이르러 그를 바라본다. 계단에 드리운 어둠이 그의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다. 그가 다시 한 번 내 어깨를 감싸 안으려고 팔을 뻗는다. 나는 뒷걸음질을 친다. 그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도 붉게 변하는 게 느껴진다.
“당신 너무 한 거 아니야? 내가 무슨 큰 잘못이라도 했나?”
“…….”
“어차피 이제 우린 프로 아닌가? 옛날에 연연하지 말자고.”
“무슨 소리야?”
내 일갈이 칼날처럼 어둠을 뚫고 새어나간다.
“내가 당신에게 아직 미련이 남았다고 생각해? 당신은 날 이용해서 벽화를 복원하려고 하는 거잖아. 어차피 모든 결과물은 당신의 이름으로 남을 거고.”
마음속에 맴돌던 말이 연이어 튀어나온다.
“당신 위치가 그렇게 확고한데 왜 그리 조바심을 치는 거야?”
정섭의 번들거리던 이마에 땀이 맺힌다. 정섭은 당황하듯 이리저리 눈을 굴린다. 당황하면 나오는 예전 버릇이었다.
“조바심? 당신이야말로 드러내고 싶지 않은 척하면서도 자기의 재능을 은근히 과시하려고 했잖아. 내가 당신을 떠난 이유도 바로 그런 거야. 당신은 항상 마음속으로 나를 무시해왔어.”
맥이 풀린다. 나는 길게 숨을 내쉬고 말을 이어간다. 그동안 붙잡고 있었던 정섭의 잔영을 진심으로 털어버리고 싶었다.
“이제…… 이 벽화를 내 스스로 완성시켜야겠어. 완성되지 않아도 할 수 없어. 당신은 더 이상 내 고용주가 아니야. 만약 당신이 진심으로 이 벽화가 복원되기를 원한다면 더 이상 욕심내지 마. 내 이름으로 세상에 내 놓을 거니까.”
정섭의 눈빛이 극도로 불안하게 흔들렸다. 저런 눈빛을 아주 오래 전에도 본 적이 있다. 극장 간판을 그리다가 죽은 사람 이야기를 들은 적 있어? 학교 앞 후미진 삼류극장에서 동시상영을 보고 나올 때 정섭이 물었다. 그 사람도 원래는 화가였지. 가족을 버린 후 술 먹고 폐인이 됐지만. 결국에는 지방 소도시 극장 간판을 그리다가 떨어져 죽었어. 눈이 휘둥그레진 나를 보고 정섭이 말을 이었다. 우리 아버지가 그랬어.
“아직도 나를 무시하고 있지? ……당신이름으로 세상에 내놓는다고? 변두리 미술학원 원장을 누가 알아줄까?”
말을 잘근잘근 씹듯 내뱉고 난 후, 정섭은 뒷걸음질 치듯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 빛바랜 욕망에 구토가 나올 지경이었다. 한때 연인이었던 남자가 사랑했던 여자에게 느끼는 감정이 고작 이런 복수심이라니. 정섭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제는 정말 그를 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화실로 오르는 계단 입구에 서자, 어지럼증이 다시 인다. 한 계단씩 오르는 것조차 힘에 부치다. 남편은 떠나기 전까지 매번 나를 업은 채 화실까지 올려다 주었다. 수술을 마친 후 집에 돌아왔을 때 정확히 삼칠일 동안 남편은 조석으로 밥을 지어 내 앞에 차려 놓았다. 요리책을 보고 미역을 찬물에 담가 미역국을 끓여냈다. 어떤 때는 국에 홍합을 넣었고 어떤 때는 고기를 다져 넣기도 했다. 남편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아이를 꼭 한번 가진 적이 있었다는 것을. 그 후 다시는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는 것을.
아랫배가 얼음같이 차갑다. 화실 구석에 있는 조리대에 가서 가스 불을 켜고 냄비에 물을 넣는다. 서랍에 넣어둔 즉석 미역국을 끓는 물에 털어 넣는다. 남편은 미역국을 곰 솥에 가득 끓여놓고 종적을 감추었다. 나는 그 미역국을 조금씩 먹어가며 남편을 기다렸다. 냄비가 자글거리더니 금세 국물이 넘친다. 나는 서둘러 가스 불을 끄고 조미료 냄새가 물씬 풍기는 국을 입에 훌훌 넣어 마신다. 차갑던 아랫배가 따스해지는 것 같다.
소파베드에 길게 드러눕는다. 집이 처분되고 남편이 떠난 후 화실 안쪽에 소파베드를 들여놓았다. 낮에는 접어놓고 밤에만 폈다. 잠자리가 크게 불편하진 않았다. 벽면에 기대 놓은 여자가 보인다. 수장고에서 보았던 여자와는 사뭇 다르다. 수장고에 갇혀 있던 여자는 상처가 너무 아파 나무판에서 옴짝달싹도 못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내 앞에 놓인 나무판에서 여자는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나는 일어나 천천히 붓을 고른다. 나무틀을 짜기 전에 마지막 마무리를 해야 할 것이다. 붓을 든다. 붓은 손끝에서 자기 맘대로 움직인다. 집중을 하지 않으면 붓은 그만 갈 길을 잃어버린다. 여자의 눈동자를 그리는 일만 남았다. 손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한다. 매번 흔들리던 여자의 눈빛이 이제는 고요히 가라앉은 느낌이다. 붓에 먹을 묻히고 이면지에 농담을 조절한다. 순간 전화벨이 울린다.
수화기를 들었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쏴아 거리는 바람소리만 들린다. 한 오 분 동안을 바람소리에 섞여 들리는 남편의 긴 한숨을 듣는다. 어서 와요. 들릴락 말락 내 입술이 달싹거린다. 잔뜩 웅크리고 있을 남편의 왜소한 어깨가 떠오른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른 후 전화가 툭 끊긴다. 다시 붓을 쥔다. 여자의 눈을 바라본다. 살짝 치켜 올라간 눈초리에 고즈넉한 빛이 감돈다. 붓에 최대한 힘을 뺀다. 진하지도 연하지도 않은 청먹으로 눈동자를 그린다. 청람 빛 바다가 여자의 눈동자에 잠긴다. 비로소 동굴에 갇혀 있던 여자가 긴 잠을 깨고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오는 것 같다. 그윽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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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목포문학상단편소설부문 본심평
본심위원 김원우 (소설가)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기성문인의 것이 7편, 신인의 것이 6편이었다. 그 중에서 다음의 작품들은 선자의 판단을 여러 잣대로 저울질하게 만들었다. 그 소감을 짧게나마 토로함으로써 다소의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오션 파라다이스>는 한때 세칭 ‘바다 이야기’로 알려졌던 전자오락기기 도박판에 얽힌 잡다한 이야기다. 노름꾼이자 술주정뱅이인 아비의 매질에 시달리다 섬을 탈출한 ‘여자’의 파란 많은 삶을 그리고 있는데, 해녀의 딸로서 그 탄생 비화도 그렇지만 사채업자의 협박, 알바생 윤의 갑작스러운 도움, 일식집 종업원으로써의 인연 맺기 등등 수많은 ‘서사’가 종횡무진하고 있다. 하드 보일드한 현재형 문장에 박력이 실려 있기도 하지만 그만큼 과장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성실한 모텔리어>는 용도폐기 직전의 모텔에서 임시 종업원으로 일하는 ‘나’의 생활세계를 현장감 좋게 펼쳐놓고 있다. 콘돔 비치 소동이나 건달을 방불케 하는 모텔사장의 성격 창조에도 이 작품의 모티브가 곧이곧대로 읽히긴 한다. 그러나 장기투숙 중인 손님의 죽음도 뜬금없는데다 그 변사체을 유기하는 과정은 엽기성의 일상화를 겨냥하는 요즘 ‘젊은’ 소설의 ‘작의 부각력’을 감안한다하더라도 무리가 지나치다.
<독백하는 밤>은 경찰지구대에서 의경으로 근무하는 화자 ‘나’의 세태고발소설이다. 역시 경험세계을 착실히 기록한 소재답게 음주단속에 ‘성과’을 올리라는 상부의 종용이 급기야 뇌물 수수로까지 비화하는 현장감각은 대단히 사실적이다. 이야기의 순도가 높다고 할 수 있지만, 결국 뇌물 수수가 탄로나고 음주자의 돈을 나눠가졌던 동료경관은 승진한 후라 내빼버린다는 결말은 너무나 도식적이다. 소설은 다큐멘터리와 달리 어떤 ‘교훈’을 이끌어내는 장르가 아닌데도 자꾸만 ‘이야기의 결말’을 보려는 통속취향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권선징악이 나쁜 게 아니라 그런 결말을 강요하는 문학적 ‘관습’과는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복원>은 벽화의 훼손을 다시 살려내는 박물관의 ‘프로젝트’에 얽힌 사연이 치렁치렁하다. 이런 예술애호벽을 다루는 소재는 내로라하는 기성작가도 워낙 자주 또 많이 다루는 장르이지만 대개 다 무슨 공식 같은 상투성이 현저하다. 화가로서 실패한 여자, 그녀와 한때 사랑을 나눠가졌던 남자의 뛰어난 재능과 신체적 조건, 허무한 이별과 이미 예비된 재회, 한때 그의 아이를 낙태시킨 쓰라린 추억, 남편과의 별거 내지 이혼 등이 그것이다. 실로 수상한 소설적 ‘시대착오 증후군’인데 그 밑바닥에는 딜레탕트들의 멋부리기가 깔려 있을 것이란 느꺼움은 선자만의 유별난 편견은 아닐 것이다. 이 작품도 너무나 빤한 그런 회로에 빠져서 하등에 부질없는 고민을 일부러 사서하고 있다. 소설은 사소한 감상(感傷)을 뿌리치고 치열한 자기대면에서 우러나온 이성적 글쓰기 자세을 우선적으로 요구하는데 이 쉬운 기본기를 안 지키는 작품이 흔함은 괄목할만한 현상이다. 그렇긴해도 이 작품에는 미술작품의 태동과 그것의 재생에 따르는 여러 고충과 진지한 소재 천착력, 곧 디테일을 돋을새기려는 고심의 흔적이 워낙 뚜렷이 드러나 있다. 그런 노력은 보상을 받아야 할 터이므로 신인상 당선작으로 택일했다.
<한 남자가 겨울밤을 걷다>는 화자 ‘나’가 어느 눈 내리는 한겨울의 서울 중심부를 터벅터벅 걸어 관통하면서 영화감독으로 실패한 삶을 회상하는 이야기이다. 정확한 문장에 산뜻한 비유를 끌어오는 묘사력도 수준급이라 할만하다. 영화에 대한 자잘한 토막상식의 나열에는 사실판단이 배어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가치판단은 한 올도 비치지 않아서 작품에 맥이 떨어져 있기도 하다. 또한 이 작품에도 역시나 소설을 쓰면서 공모전에 투고만 하며 세월을 죽여내는 아내, 아이 없이 17년을 살아온 내력, 소리꾼으로 실패한 아비의 한 많은 삶, 영화감독 수업기 때 치룬 혹독한 고생담 같은 숱한 이야깃거리들이 속속 이어지지만 그것들이 하나같이 어디서 자주 듣던 그런 에피소드 차원에 머물러 있다. ‘자기 것’을 생동감있게 풀어내려는 소신의 부족은 결국 ‘남의 것’을 참조하는 고질의 진부성과 상투성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소설은 어차피 조작력을 과시하는 언어제도에 불과하지만, 그 조작미 부각에 작가 자신의 ‘육성’이 없다면 선행의 여러 잡문에서 따온 짜깁기 수준에 머물고 말 것은 너무나 뻔하다. 부언하건대 이 작품에 드리운 ‘삶에 대한 진지성’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흡사 한편의 밋밋한 로드 무비를 보고 난 듯한, 플롯조차 무시한 그 단조로운 구색이 작의을 살리기에도, 캐릭터를 만들어내기에도 역불급으로 비침은 어쩔 수 없었다. 또한 영화 만들기에 따르는 여러 독창적 시각에, 한국영화의 제작상에 드리운 고질의 부실한 제도적 장벽에, 여러 뛰어난 재능의 사장화 따위에 태무심한 흔적도 두드러져 있다. 아마도 선자의 이 작품에 대한 욕심이 지나쳐서 무리한 주문을 내놓고 있는지 모른다. 흥행에만 눈이 멀어 좋은 영화 만들기에 무능한 한국영화계의 병폐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한둘일까.
<자유시간>은 한 중년여성의 안온한 일상에 불쑥 나타난 이복동생과의 상봉기이자 파탄 모면기이다. 한때 아버지의 시앗이었으나 이제는 죽음과 맞닥뜨린 노파의 화해 요청, 고물상을 꾸려가면서 감쪽같이 이중생활을 영위했던 남편의 위선에 대한 어미의 분노, 유산 시비에 휘말릴까봐 잔뜩 긴장하는 화자 ‘나’의 이기주의적 본색, 이복동생과 나눈 아릿한 회상담 같은 이야깃거리들도 분명히 진부해빠진 예의 그 ‘상투성’에 값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적절한 비유 능력, 찬찬한 설명력에 따르는 취사 분별, 세상을 중립적으로 바라보려는 시각 등이 그 평범한 소재감각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더욱이나 뜨개질 같은 범상하기 짝이 없는 소도구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디테일 감각도 여간 구덥지 않다. 다만 역시 소도구로 활용한 초콜릿 바 ‘자유시간’의 돌출이 옥에 티인데, 그것이 특정상품이라서가 아니라 ‘시대착오’로 다가와서이다.(하도 의심쩍어서 선자가 인터넷에 조회해봤더니 초콜릿 바 ‘자유시간’의 첫 출시 연도는 1991년도였다.) 보기에 따라서는 결정적 흠일 수도 있겠으나 ‘자유시간’에 따르는 의미의 함의를 새길 여지도 있을 듯해서 감점 요인으로만 처리하기로 했다. 평범한 일상중에서 비범하고 더러 낯설게 다가오기도 하는 그 이야깃거리들을 벼려서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정직한 자세도 돋보였고, 이제부터 훨씬 진지한 ‘소설 습작’에 전심전력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서 본상 당선작으로 과감히 밀었다.
기성문인이든 신인이든 ‘우리 소설’은 이상하게도 ‘큰’ 이야기를 억지로라도 만들어내려는 강박증이 심하다. 그러니 주제의식의 ‘강제’로부터 자유롭지도 못하고, 남의 눈치를 보기에 급급하다가 막상 ‘제 목소리’을 터뜨리는데는 여간 등한하지 않다. 그런 저런 기초적인 소설 공부에 반드시 따라야 할 세상살이와 인생살이에의 주목을 ‘남의 시각’으로 하겠다면 서로가 민망해지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선행의 여러 작품들이야 부지런히 읽어야 될테지만 비판적인 눈으로 ‘죽어도 나는 이렇게는 안 쓰고 말란다’는 오기도 없이 무슨 ‘창의력’이 나오겠는가. 독창성의 반대말인 진부성 내지는 상투성이란 잣대 하나만을 갖다대더라도, 기성문인의 작품이든 신인의 작품이든 그 우열은 명명백백한 것이었다.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신천지를 다문 그 입구라도 보여주지 못하는 작가에게서 한국소설의 발전에 어떤 이바지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듯싶다. 당선자 두 분의 수상을 축하하며 배전의 노력과 쉬임없는 정진을 거듭하여 훌륭한 작품을 많이 쓰기를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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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목포문학상』단편소설부문 예심평
예심위원 송은일 (소설가) / 이 진 (소설가)
어떤 문학상이든 분야별로 최종심에서는 단 한 편의 작품만 뽑힌다. 백 대 일, 수백 대 일의 경쟁이 보통이다. 예심에서는 그 한편을 위한 후보작을 주최 측이 원하는 만큼 고른다. 이번 <제 6회 목포문학상> 예심에서 주최 측이 요청한 후보 작품은 기성문인과 신인 각 부문에서 5편 이상씩이었다.
따라서 예심은 기성 작가와 신인 두 부문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많은 작품들이 응모되었는데 두 부문 모두 큰 틀에서 몇 개의 주제로 수렴되는 독특한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유년의 궁핍과 전쟁 경험, 실직 등에 의한 박탈감, 노년의 고독과 그에 대한 두려움 등. 공동체가 파괴된 현대사회의 소외되고 파편화된 우울한 개인을 유년의 경험과 결부시키는 서사 방식도 상당부분 공통점을 보였다.
예심위원으로서 약간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소설이 한풀이나 넋두리로서의 성격을 갖는 면이 있긴 하지만, 그걸 뛰어넘는 패기 있고 도전적인 작품을 발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기성문인 응모작 중에는 기성문인의 작품이 맞나 의심스러울 만큼 소설적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들이 적지 않았다. 상상력은 물론 현장감이나 현실감도 느낄 수 없는 경우가 많아, 그런 작품들을 일차적으로 내려놓으면서 본격적인 예심을 진행하였다. 신인의 경우도 많이 다르지 않았다. 신인이란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상투적이고 낡은 소설기법을 동원한 경우가 많았고, 주제 역시 깊이 있게 다루어진 작품이 많지 않았다.
물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한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단지 일상의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예술로서 남고자 한다면 새로워져야 한다. 이 때 새로움이란 무엇을 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는 방법적인 문제일 터이다. 늘 있던 것, 어디서나 보고 들었던 것을 어떤 각도에서 조명하고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 것인지, 그리고 거기서 발견한 새로움을 나만의 개성으로 어떻게 창조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 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눈길을 끈 작품들도 물론 있었다. 생태와 환경, 예술과 인간 그리고 현대적 의미의 노인 및 젊은이문제 등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숭엄함을 다양한 방식으로 다루고 있었다. 내면의 독백과 외면의 인간관계를 격자무늬로 잘 직조해낸 작품도 있었고, 인간의 고통을 우의적 깊이로 해석한 작품도 눈에 띄었다. 주요 사건과 에피소드들이 논리적 연결성을 가지고 차분하고 깔끔하게 조직된 작품도 있었다. 내려놓아야 했던 상당수 작품들에게서 느꼈던 아쉬움을 상쇄해주는 단비 같은 작품들이었다.
단 한편을 골라내야 하는 최종심이 아닌 걸 다행으로 여기며 기성문인 응모작 중에서는 7편을, 신인 응모작 중에서는 6편을 본심에 올릴 작품으로 결정했다. 본심에 올리지 못하는 게 아까운 나름의 장점을 가진 작품들도 있었으나, 내용전개가 느슨하거나 소설 창작의 기본인 문장 및 문단 구성에서 철저하지 못한 작품들은 내려놓았다. 지나치게 자기의식 안에 갇혀 타인과 세상을 충분히 살피지 못하는 작품들도 배제하였다.
예심장을 떠난 작품들은 치열한 본심과정을 거쳐 부문별로 단 한 편만 당선작으로 뽑히게 될 것이다. 많은 이가 동의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이 뽑혀 <제6회 목포문학상>이 이 지역뿐 아니라 전국적인 의미로 확산될 것을 기대한다.
첫댓글 우와, 이렇게 많은 자료를 올려주시다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