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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1:1~15 / 이스라엘 이웃 나라를 심판하심
(암 1:1)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 지진 전 이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상으로 받은 말씀이라
(암 1:2) 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부터 소리를 내시리니 목자의 초장이 마르고 갈멜 산 꼭대기가 마르리로다
(암 1: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다메섹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철 타작기로 타작하듯 길르앗을 압박하였음이라
(암 1:4) 내가 하사엘의 집에 불을 보내리니 벤하닷의 궁궐들을 사르리라
(암 1:5) 내가 다메섹의 빗장을 꺾으며 아웬 골짜기에서 그 주민들을 끊으며 벧에덴에서 규 잡은 자를 끊으리니 아람 백성이 사로잡혀 기르에 이르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암 1:6)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가사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모든 사로잡은 자를 끌어 에돔에 넘겼음이라
아모스는 12 소 예언서 중 세 번째 책으로 소개되고 있으나 그의 예언이 제일 먼저 기록되었습니다. 그가 활동한 시기는 여로보암 II세 때였습니다.
아모스의 메시지는 당대의 사회악, 특히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억누르고 괴롭히던 착취성과 부정, 또한 민족의 성격을 해친 부도덕과 사치 추구에 대한 죄악을 공격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여호와께서 반드시 응징할 죄악으로 보았습니다.
아모스는 호세아와 거의 같은 시대에 같은 지역에서 예언한 선지자로서 역사적 배경을 공유하면서도 하나님의 의를 달리 표현하고 있습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모스는 하나님의 ‘정의’에 대하여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예언자의 두 개념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암 1:1) 아모스는 제사장 출신의 예레미야, 에스겔과는 달리 양치는 목자 출신의 선지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남 유다를 떠나 북이스라엘에서 사역을 섬겼습니다.
아모스라는 이름은 "짐 지는 자"라는 뜻입니다. 아모스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사람으로서 직업적 예언자도, 제사장 가문의 자손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요, 가난한 평신도였습니다(7:14). 하나님께서는 이 미천한 아모스를 들어 위대한 사역에 쓰셨습니다.
(암 1:2) 아모스가 선포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시온에서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 큰소리로 외치시니, 목자의 초장이 시들고 갈멜 산 꼭대기가 마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환상을 받은 아모스는 절박한 심정으로 이스라엘에게 재앙을 경고하고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시고자 할 때 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3a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다메섹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하나님은 북이스라엘 대한 심판을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북이스라엘 주변의 이방 나라에 대한 심판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다메섹을 포함하여 여섯 나라에 대해서 그 벌을 돌이키지 않겠다고 경고하십니다.
먼저 다메섹이 지은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여호와가 다마스쿠스를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의 서너 가지 죄 때문입니다. 이 서너 가지 죄는 여섯 나라에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여기서 ‘서너 가지 죄’는 몇 가지 죄라는 뜻이 아니라 오랫동안 죄가 차고 넘쳐서 절정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그들이 범한 죄는 습관화된 죄악을 말합니다.
간디는 세상의 변화를 원하려면 자기 습관부터 바꾸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3b~5) 다메섹은 쇠도리깨로 타작하듯이, 이스라엘의 요단강 동편 땅 길르앗을 타작하였습니다. 다메섹은 하나님의 땅을 무자비하게 공격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가 다메섹의 왕 하사엘의 집에 불을 보내십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행한 대로 갚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두려워해야 하겠습니다.
(6-8) 블레셋에 대한 심판입니다. 불레셋의 가사가 지은 서너 가지 죄를, 여호와가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에서 사로잡은 사람들을 모두 끌어다가, 에돔에 팔아넘겼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많은 사람을 포로로 잡아 에돔에게 팔았습니다.
이러한 인신매매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로 하나님의 큰 심판을 받게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결코 악을 묵과하지 않으심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9-10) 두로에 대한 심판입니다. 두로가 지은 서너 가지 죄를, 여호와가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형제의 언약을 기억하지 않고 이스라엘에서 사로잡은 사람들을 모두 끌어다가, 에돔에 넘겨주었기 때문입니다.
두로 왕 히람과 이스라엘의 왕 다윗과 솔로몬이 맺은 형제 계약, 즉 상대방을 노예로 팔지 못한다는 언약(삼하 5:11 왕상 5:1-12 9:13)은 두로의 일방적인 파기로 무너집니다.
하나님과의 언약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약속도 우리는 지켜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반드시 약속을 지키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신실한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사회 정의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랑과 정의를 위하여 손해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손해를 보더라도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은 언약을 지키기 위해서 마땅히 심판받아야 할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여호와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두로는 결국 주전 332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두로를 함락시킴으로써 약 3만 명의 거민들을 노예로 팔고, 수천 명의 지도자들을 사형시킴으로 성취됩니다.
(11-12) 에돔에 대한 심판입니다. 에돔이 지은 서너 가지 죄를, 여호와가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이 칼을 들고서 이스라엘 형제를 뒤쫓으며, 형제 사이의 정마저 끊었습니다. 모세는 에돔을 이스라엘의 형제라고 불렀고(민 20:14), 에돔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신 2:4, 8). 그러나 에돔은 출애굽의 행로를 막았으며(민 20:14-21),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공격할 때에 바벨론의 앞잡이 노릇을 했습니다(옵 1:11-14).
그들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셨으므로 우리도 이웃에게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일이 없도록 늘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약한 자를 압제하고 형제의 불행을 외면하는 행위를 정의로 다스리십니다.
(13-15) 암몬에 대한 심판입니다. 암몬 자손이 지은 서너 가지 죄를, 여호와가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이 땅을 넓히려고 길르앗으로 쳐들어가서 아이 밴 여인들의 배를 갈랐기 때문입니다. 암몬은 영토 확장에 대한 지나친 욕심에서 아람과 동맹을 맺고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이러한 비인도적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하나님은 암몬의 수도를 불에 태우고 전쟁과 폭풍으로 치십니다.
이들 역시 하나님의 심판으로 주전 580년경 바벨론 느부갓네살에 의하여 멸망 당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형제에게 사랑을 베풀지 않고 고의적으로 이런 행동을 하는 자는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아모스가 심판을 선포한 다메섹, 블레셋, 두로, 에돔, 암몬은 모두 이스라엘과 인접해 있던 나라들이었습니다. 이 나라들은 틈만 나면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살인과 약탈을 일삼았습니다. 그런데 아모스는 이러한 행위 즉, 이스라엘을 침략하고 불의를 행하는 행위 때문에 이 나라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리고 성취됩니다.
이런 것들은 사탄이 성도들을 괴롭히고 핍박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사탄은 결단코, 어떤 모양으로든 하나님의 대적이 될 수 없음을 오늘 본문이 말씀하는 이방이 당할 심판에서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이미 승리하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신앙생활이 승리의 생활이 되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말씀과 기도로 늘 깨어있는 삶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아모스 2:1~16 / 이스라엘을 심판 하시는 이유
(암 2: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모압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가 에돔 왕의 뼈를 불살라 재를 만들었음이라
(암 2:2) 내가 모압에 불을 보내리니 그리욧 궁궐들을 사르리라 모압이 요란함과 외침과 나팔 소리 중에서 죽을 것이라
(암 2:3) 내가 그 중에서 재판장을 멸하며 지도자들을 그와 함께 죽이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암 2:4)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유다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하며 그 율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그의 조상들이 따라가던 거짓 것에 미혹되었음이라
(암 2:5) 내가 유다에 불을 보내리니 예루살렘의 궁궐들을 사르리라
1장에서는 아모스가 다메섹, 블레셋, 두로, 에돔, 암몬에 대해 심판을 선포하였습니다. 이 모든 나라들이 이스라엘과 인접해 있었고 틈만 나면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살인과 약탈을 일삼았습니다. 그들의 행위대로 심판하십니다.
2장에서는 열방에 대한 심판의 결론으로 모압과 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의 심판을 다룹니다. 이것은 결국 아모스 예언의 궁극적인 강조점은 이스라엘에게 집중됨을 보여 줍니다. 여기서 아모스는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는 죄가 무엇이냐 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줍니다.
(1-3절) 모압에 대한 심판을 선포합니다. 모압이 지은 서너 가지 죄를, 여호와가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은 에돔 왕의 뼈를 불태워서, 재로 만들었습니다. 모압은 롯의 큰 딸이 낳은 아들의 후손입니다. 모압은 가나안 입성 직전에 발람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고, 바알브올에서 이스라엘을 범죄케 했으며, 사사 시대에는 18년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혔습니다.
모압 족속의 신은 그모스인데 이들은 사람을 죽여 제물로 삼아 자기들의 신에게 바치곤 했습니다. 이렇게 남을 잔인하게 죽이는 모압을 불로 심판하십니다.
(4~5) 유다가 지은 서너 가지 죄를, 여호와가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이 주의 율법을 업신여기며, 여호와가 정한 율례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깔보고 업신여기고 낮춰서 봤습니다. 십계명을 어겼습니다.
유다는 하나님께 특별히 선택된 민족으로 하나님께서 특별히 계명과 율법을 주셔서 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방의 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습니다.
이럴 때 아무리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백성이라도 하나님께서는 철저히 심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도 심판하시며 이방 족속들과 같이 철저하게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성들을 허물고 궁을 불태우고 죽이십니다.
하나님의 법을 멸시하며 미혹하고 거짓을 따라가는 죄는 돌이킬 수 없는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유다라도 하나님의 법을 멸시할 때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6절) 하나님께서는 북 이스라엘에게도 심판의 말씀을 전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지은 서너 가지 죄를, 여호와가 그들을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이 돈을 받고 의로운 사람을 팔고, 신 한 켤레 값에 빈민을 팔았기 때문입니다.
사회 정의가 무너지고, 비인간적인 탐욕이 가득 차서 물건을 가지고 의로운 사람을 팔기도 하고 사기도 하는 죄로서 이것은 그리스도를 판 가룟유다의 죄와 같은 것입니다.
재판장이 불의하게 뇌물을 받고 판결한 것을 뜻합니다. 이는 인권을 무시하며 공의를 어긴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들, 고아, 과부, 나그네들을 특별히 사랑하시면서 그들을 잘 돌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22장 22-23)
(7~8) 가난한 자를 멸시, 학대하고. 가난한 자의 것을 탐내며 자녀를 잘못 지도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는 죄입니다.(잠 14:31)
그들은 흙을 밟듯이 가난한 사람들을 짓밟았으며 연약한 자의 길을 굽게 만들었습니다. 한 젊은 창녀에게 아버지와 아들이 잠자리를 같이하여 하나님의 거룩함을 더럽히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들은 신전에서 예배를 드릴 때도 가난한 자의 옷을 뺏어서 그 위에 누웠고 불의한 돈으로 포도주를 사서 신전에서 마셨습니다.
(10~11) 애굽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에서 40년 동안 그들을 먹이고 키우셨습니다. 마침내 아모리 사람들의 땅을 그들에게 주었고 이스라엘 민족 중에 예언자를 세우고 나실인을 일으켰습니다. 자기 힘만으로는 도저히 정복할 수 없었던 아모리족을 비롯한 가나안 원주민들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진멸하였던 것입니다.
나실인과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비를 경험하였고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힘입어서 구원받고도 예언의 말씀을 무시하는 일은 돌이킬 수 없는 죄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
(12절)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거부하고 예언자에게 예언하지 못하게 하고 나실인에게 포도주를 먹임으로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마음대로 살려고 하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13~16) 이렇게 하나님께서 다른 민족보다 더 큰 사랑을 주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렸을 때 그들이 받는 심판은 어떠합니까?
곡신 단을 가득 실은 수레가 흙을 짓누르듯 하나님 심판의 손길이 우리를 짓누르게 될 것입니다. 무거운 짐을 실은 수레바퀴로 누르는 것 같이 환란과 재앙이 올 때 피할 수 없이 다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되신 신이시니 진리대로 심판하고 진리대로 보호하시며 축복하심을 가르쳐 줍니다. 아무리 빠른 사람도 피하지 못하고, 강한 사람도 힘을 내지 못하고, 용사라고 하는 자도 목숨을 건질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심판을 받기 전에 빨리 회개하고 돌이키는 방법밖에는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는 연약한 자를 사랑해야 합니다. 가난한 자들 것을 빼앗지 말고 도와주고 보살펴야 합니다. 힘없고 연약한 자를 괴롭히거나 부담스러워 말고 기꺼이 도와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신자로서 거룩하고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모세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4-5)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항상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지키고 소중히 하며 따르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모스 3:1~15 / 이스라엘을 향한 경고
(암 3: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에 대하여 이르시는 이 말씀을 들으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리신 모든 족속에 대하여 이르시기를
(암 3:2) 내가 땅의 모든 족속 가운데 너희만을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하셨나니
(암 3:3)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
(암 3:4) 사자가 움킨 것이 없는데 어찌 수풀에서 부르짖겠으며 젊은 사자가 잡은 것이 없는데 어찌 굴에서 소리를 내겠느냐
(암 3:5) 덫을 땅에 놓지 않았는데 새가 어찌 거기 치이겠으며 잡힌 것이 없는데 덫이 어찌 땅에서 튀겠느냐
(암 3:6) 성읍에서 나팔이 울리는데 백성이 어찌 두려워하지 아니하겠으며 여호와의 행하심이 없는데 재앙이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
(암 3:7)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1장에서는 아모스가 다메섹, 블레셋, 두로, 에돔, 암몬에 대해 심판을 선포하였고 2장에서는 열방에 대한 심판의 결론으로 이스라엘의 심판을 다룹니다. 3장은 아모스의 첫 번째 설교로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행하는 심판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말씀합니다.
첫 부분은 1-8절로 이스라엘은 아모스의 예언을 들어야함이 당연하다고 말씀합니다.
두 번째 부분은 9-10절로 이스라엘의 죄악을 이방인들더러 들어보라고 말씀합니다.
세 번째 부분은 11-15절로 하나님께서 사자처럼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심판을 예고하는 말씀에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들어있습니다.
(1~2) 이스라엘 자손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그들을 향한 사랑을 말씀하십니다.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모든 족속에게, 여호와가 선언하십니다.
아모스 예언의 대상은 일차적으로는 북이스라엘이지만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모든 족속’이란 구절을 보면 남유다까지를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그들만이 하나님의 아신 바가 되었습니다(2절).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 중에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방 민족과는 달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셔서 구별되게 불러내신 백성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민입니다. 이스라엘을 특별히 사랑하셨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을 받은 성도, 선민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b “그러므로 너희가 행한 모든 죄대로 너희를 심판하겠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도 이스라엘은 이 모든 은혜를 배반했습니다. 특별한 은총과 사랑을 받았던 그들이 이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에 어떤 죄를 범해도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이 특별한 선택을 받았기 때문에 죄를 지었을 때 더 큰 벌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를 채찍질하십니다. (히12:8)
3.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
하나님과 뜻이 같지 않으면 동행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3절의 ‘두 사람’은 누구일까요? 하나님과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해야 마땅한 이스라엘이 범죄함으로 인해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4절) 젊은 사자는 움켜잡은 것이 없으면 굴속에서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젊은 사자처럼 이스라엘을 심판하겠다고 부르짖습니다.
사자는 먹이를 구할 때는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먹이를 낚아채면 소리를 냅니다.
여기서 사자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사자와 같은 사랑으로 부르짖음입니다.
사자는 자신의 새끼를 보호하여 지상의 왕자로 키우고자 합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자 같은 제사장 나라로 키우고자 하십니다.
그들은 심판을 통하여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아모스는 사자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외칩니다. 새끼를 사랑하시는 사자의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하나님의 메시지는 선포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자의 사랑으로 부르짖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부르짖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이런 하나님의 마음으로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5절) 덫을 놓지 않으면 새가 땅에 놓인 덫에 치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사랑의 덫을 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오래전부터 계획하셨던 재앙으로 저들의 죄를 벌하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재앙을 선포하는 아모스의 예언을 외면하거나 업신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재앙을 우연으로 생각하면 회개할 수 없습니다.
(6절) 성읍 안에서 비상 나팔이 울리는데, 사람들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행하든지 사명 자에게는 그 비밀을 알려준 뒤에 재앙을 내리기도 하시고 보호하기도 하시므로 사명을 맡은 자로서는 두려운 마음으로 떨며 순종해야 합니다. ‘재앙’이 임할 때 믿음으로 회개하면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7~8) 하나님은, 당신의 비밀을 그 종 예언자들에게 미리 알리지 않고서는, 어떤 일도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에 대한 징계도 먼저 예고하신 후 심판을 행하십니다. 가령, 노아의 홍수, 소돔과 고모라,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 등 모든 경우가 그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전적으로 열린 마음으로 엎드릴 때 주님의 뜻을 알려주실 것입니다. 예언자의 말씀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니, 듣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듯이 경외하는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바울의 전도를 받을 때 사람의 말로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려면, 이러한 선지자의 태도로 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자를 무서워는 그 이상으로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주 하나님이 선지자에게 말씀하시는데, 누가 예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내 마음에 불붙는 것같습니다. 그것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선지자의 예언을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소리로 듣고 회개해야합니다. 회개만이 살 길입니다.
(9~10) 이스라엘은 블레셋 아스돗의 요새들과 이집트 땅의 요새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아스돗과 이집트 사람들에게 사마리아로 와서 보라고 합니다.
무엇을, 왜 보라고 하였을까요? 아스돗(앗수르)과 애굽은 이방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왜 이스라엘의 심판 당하는 모습을 보라고 할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선민도 범죄하면 가차 없이 심판하는데 하물며 이방인이겠는가? 이런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나라를 초청하여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이스라엘의 치부를 보게 하시고 조롱하게 하시고 심판의 증인이 되게 하십니다.
(11~12) 적군이 이 나라를 포위하고, 이스라엘의 방어벽을 허물고, 너의 요새들을 약탈할 것입니다. 목자가 사자 입에서 양의 두 다리나 귀 조각 하나를 건져내듯이, 사마리아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도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출되기는 하지만 침대 모서리와 안락의자의 다리 조각만 겨우 남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 뜻은 현재 이스라엘은 풍요와 번영을 누리고 있지만 하나님은 사면에 대적을 일으켜 이스라엘의 힘을 쇠하게 하시고 약탈하게 하신다는 경고입니다. 사자처럼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무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은 실제로 주전 722년에 앗수르의 침략으로 성취됩니다. 왕궁에서 사는 자들도 극소수로 구원받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진노 중에도 소멸되지 않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남은 성도들의 구원의 근거가 됩니다.
(13~15) 여호와 주 하나님, 만군의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벧엘에 제단을 만들어 놓고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벧엘은 야곱시대부터 이스라엘의 신앙 중심지였지만 이제는 우상숭배의 중심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그 단을 헐고 제단의 뿔을 파괴하여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그들이 믿고 의지하던 우상은 파괴됨을 예언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을 향한 자신의 뜻을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이 모든 악을 저질렀으니 내가 너희를 처벌하겠다." 북이스라엘은 아모스 선지자를 통하여 선포되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이며, 세속적인 행동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가를 깨닫고 회개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해서 선지자들을 배척하였고, 오히려 멸시하며 죽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들 징계하신다는 사실입니다(1-2절).
성도에게 임하는 고난이 몸으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 성도를 거룩하게 만들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으며 성도를 성도답게 이끄시는 힘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소망 가운데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책망은 오히려 참된 길을 가르쳐 주시는 축복입니다. 성도는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자유롭고 영광된 것인지를 깨달아애 합니다.
하나님의 징계에는 그들을 사자처럼 강하게 키우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소망이 있습니다.
아모스 4:1~13 / 돌아오지 않는 이스라엘
(암 4:1) 사마리아의 산에 있는 바산의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는 힘 없는 자를 학대하며 가난한 자를 압제하며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
(암 4:2)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하시되 때가 너희에게 이를지라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 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들도 그리하리라
(암 4:3) 너희가 성 무너진 데를 통하여 각기 앞으로 바로 나가서 하르몬에 던져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암 4:4)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암 4:5) 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은제로 드리며 낙헌제를 소리 내어 선포하려무나 이스라엘 자손들아, 이것이 너희가 기뻐하는 바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암 4:6, 개정) 또 내가 너희 모든 성읍에서 너희 이를 깨끗하게 하며 너희의 각 처소에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장에 이어 4장에서도 이스라엘의 죄를 질책하며 심판을 선언합니다.
(1) 그들을 “바산의 암소들”이라고 부릅니다.
흔히 상류층의 여성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이들은 부유한 지배계급을 의미할 것입니다. 바산은 요단 동편의 비옥한 땅으로, 그곳에서 사육되는 살진 암소처럼, 가난한 자들을 착취함으로써 호의호식하는 자들을 가리켜 ‘바산의 암소들’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2) “주 여호와께서 자신의 거룩함으로 맹세하셨다”는 말은, 하나님이 반드시 행하실 것임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마침내 그들을 심판할 날들이 임할 것입니다.
그들은 갈고리와 낚시로 끌려가는 비참한 신세가 될 것입니다.
끌려가‘하르몬’에 던져질 것입니다. 하르몬이 어디인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5:27에 “내가 너희를 다마스쿠스 저편으로 사로잡혀 가게 할 것이다”는 표현을 보면, 다마스쿠스의 높은 산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측합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다” (5,6,8,9,10,11)는 말이 반복됩니다.
이 표현은 하나님의 슬픔과 아픔의 침통한 심정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또한 이 예언의 말씀들은 확실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4-5절은 벧엘과 길갈로 가서 더 많은 죄를 지으라고 조소적으로 말합니다.
그들은 벧엘과 길갈 같은 전통적인 예배 중심지에서 제사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선포하고 알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 제사를 통해서 풍요와 번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1년에 한 번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아침마다’ 희생 사를 드려보라고 했고, 3년에 한 번 드리는 십일조가 아니라 3일’에 한번 십일조를 드려보라고 합니다.
그들의 더 많은 제사는 오히려 더 많은 죄를 쌓을 뿐이었습니다.
6-11절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내리신 재앙들을 열거합니다.
그럼에도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다”(6,8,9,10,11)는 말씀이 반복됩니다.
이스라엘에게 내린 징계는 그들을 돌이키기 위한 사랑의 채찍이었습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나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완악해질 뿐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기 위해서 더 큰 징계를 보내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암 4:12)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말한 이 모든 재앙을 너희에게 내릴 것이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날 준비를 하여라.”
6절에 ‘이(치아)를 깨끗하게 했다’는 말은, 먹은 것이 없어서 이가 깨끗하다는 말입니다. 그들에게 양식이 떨어졌으나, 그들은 여호와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7-8절은 비가 내리지 않는 재앙입니다. ‘어떤 성읍, 어떤 들’에는 비가 내리고, 다른 곳은 내리지 않았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지만 그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9절은 곡식이 마르는 재앙과 깜부기와 메뚜기 재앙입니다.
10절은 전염병입니다. 징계가 점점 강해집니다. 이것은 이집트를 치실 때 일어났던 일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죄악에 대해서 더 큰 심판을 받게 됩니다(3:2).
11절은 더 나아가 소돔과 고모라처럼 심판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고,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것이 이스라엘로 하나님께 회개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12) “그러므로”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징계에도 돌아오지 않으므로 더 큰 징계가 있을 것을 경고합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행할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본문에는 어떤 징계인지 나오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것이 앞서 있었던 징계보다 더 큰 것임에는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아, 너희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여라” 이제 그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가장 두렵고 무서운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13절은 그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보여줍니다.
그분은 창조의 하나님, 계시의 하나님, 섭리의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이심을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은 더 큰 심판이 있기 전에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마지막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벧후3:8-9).
(벧후 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준비된 자는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질 것입니다(요일4:17).
(요일 4: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아모스 5:1~15/ 이스라엘이 살길, 회개하라!
(암 5:1)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애가로 지은 이 말을 들으라
(암 5:2) 처녀 이스라엘이 엎드러졌음이여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로다 자기 땅에 던지움이여 일으킬 자 없으리로다
(암 5:3)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 중에서 천 명이 행군해 나가던 성읍에는 백 명만 남고 백 명이 행군해 나가던 성읍에는 열 명만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암 5: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암 5:5)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암 5:6)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임하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으리라
5장은 이스라엘에게 혹독한 재앙이 내려 망하게 될 때 살길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1-15절은 이스라엘의 살길이 무엇인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아모스의 애가와 탄식 어린 경고 그리고 간절한 권면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다시 찾고 그 말씀을 중심으로 하는 공의로운 사회를 이룰 것을 촉구합니다.
16-27절로 불가피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통한 공의의 실행만이 이스라엘이 살 수 있는 길임을 간절히 권면합니다.
(1~2) 아모스는 이스라엘에 대한 슬픈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아, 내가 너희를 향해 부르는 이 장송곡을 들어라. 처녀 이스라엘이 쓰러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네. 버림받은 채 땅에 쓰러져 있으나 일으켜 줄 사람이 아무도 없도다.”라고 탄식합니다. 이제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은 스스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다른 누구도 일으킬 자가 없어 영원히 멸망 당할 것을 보여 줍니다.
(암 5:3)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천 명의 군인이 싸우러 나간 성에 백 명만이 돌아오겠고, 백 명이 싸우러 나간 성에는 열 명만이 돌아올 것이다.”라고 합니다.
4~6절에는 이스라엘이 살길을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벧엘을 찾지 말고 길갈로 가지 말고 브엘세바로도 내려가지 마라.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벧엘, 길갈, 브엘세바=성지가 우상숭배 장소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지 않고 우상을 찾으면 망하게 됩니다.
그들이 살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돌아보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야 합니다(5-8).
다시 여호와를 찾으라는 말씀이 반복되어 나옵니다. 여기서 ‘찾는다’란 간절히 반복적으로 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하찮은 물건 하나 잃어버려도 열심히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얼마나 전심으로 찾고 있습니까?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잃고도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는 이 세상의 그 어느 것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찾아야 할 것입니다(눅 14:26).
또한 우리가 하나님을 찾되 하나님의 방법대로 찾아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에 기초하여 하나님을 따라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하나님은 영과 진리로 자신을 찾는 자를 기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7~9)은 정의를 버린 자는 망하고, 창조주 하나님을 찾아야 산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정의를 하찮게 여겼으며 올바른 것을 땅에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있는 별들을 만들고 어둠을 새벽빛으로 바꾸시며 낮을 밤으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바닷물이 비가 되게 하는 섭리의 하나님이십니다(노아홍수).
이스라엘(나)은 이런 창조주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강한 자라도 공의를 버린 자는 갑자기 패망하게 하십니다.
(10~11)은 정의로운 재판을 미워하는 자들에게 대한 심판을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힘없는 자를 밟고 부당한 세를 거두었습니다.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했습니다. 의인들은 이들의 죄를 꾸짖었습니다.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는 성문에 앉아서 회의 또는 재판하던 장로들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고 정직하게 말하는 자를 싫어했습니다. 악인이 의인의 말을 듣기 싫어하고 멀리하면서 연약한 자를 학대하였습니다.
아모스는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옳은 지도자들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악을 조장하자 심판을 경고합니다. 그들은 자기 손으로 건축한 집에 살지 못하며, 자기 손으로 농사한 포도원에 살지 못합니다. 기한 전에 열매가 떨어지는 헛수고만 할 뿐입니다.
(12~13)은 그래도 하나님은 잠잠하신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저지른 무수한 범죄와 엄청난 죄악을 여호와는 다 알고 있습니다.
아모스는 지금까지 공의로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의인을 핍박하자 아모스는 이런 때에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진주를 돼지에게 주지 않고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불의에 항거하여 꾸짖기를 멈추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억울한 재판을 받으시면서 잠잠하셨지요.
(14~15)은 선을 행하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절망적인 이스라엘에게 살길도 가르쳐 주십니다.
“너희가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너희 말대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도우실 것이다.”라고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요셉의 남은 자들”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노 중에도 정의를 행하는 자에게는 긍휼을 베푸십니다.
아모스 6:1~14 / 이스라엘(지도층)의 멸망
(암 6:1) 화 있을진저 시온에서 교만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백성들의 머리인 지도자들이여 이스라엘 집이 그들을 따르는도다
(암 6:2) 너희는 갈레로 건너가 보고 거기에서 큰 하맛으로 가고 또 블레셋 사람의 가드로 내려가라 너희가 이 나라들보다 나으냐 그 영토가 너희 영토보다 넓으냐
(암 6:3) 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 포악한 자리로 가까워지게 하고
(암 6:4)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
(암 6:5) 비파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암 6:6)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암 6:7) 그러므로 그들이 이제는 사로잡히는 자 중에 앞서 사로잡히리니 기지개 켜는 자의 떠드는 소리가 그치리라
6장은 재앙이 올 때 아무리 시온의 자녀라 하지만 화를 받을 자의 행동을 가르친 것입니다. 믿는 자 중에 안일한 자, 마음이 든든한 자, 사치 타락한 자, 세상에 취한 자가 망한다는 것입니다.
(1~2) 세상의 안일한 생활에서 만족을 삼고 가장 높은 명예를 얻는 것을 중점으로 하고 이방과 타협하는 것을 중점으로 하는 자입니다.
시온에서 안일한 자 마음이 든든한 자란 세상적입니다. 많은 사람 따라오고 연봉 많이 받고 학벌 좋고 존경받고 이러한 자는 진노의 날에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 보기에는 영광이라도 진노의 날에는 다 망합니다.
인간 지혜로는 어리석은 자이며 박사가 다인 줄 알고 양 떼가 좋아하지만 소경입니다. 종교 지도자가 망합니다. 음녀 정권, 음녀 교권 지도자들이 망합니다.
(마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사66: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로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
(6:3~4) 이런 자들은 심판이 임박했는데도 불구하고 때가 멀었다고 하며 기지개 켜며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주 재림 임박했다는 자를 비웃고, 밤새 부르짖는 자를 비웃고 사람으로 인정 안 합니다. 지금은 교회까지 웰빙, 명품 찾는 시대 아닙니까? 잘 먹고, 잘 살다 망하게 됩니다. 호화로운 침상, 고급 음식 먹는 자, 사치하는 종교 지도자가 망합니다.
(6:5~6) 한 오락적인 헛된 노래를 부르며 악기를 사용하되 세상 향락에 도취가 되어 억울한 환란을 당하는 자를 무시하는 자들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하는 것이 아니고 흥에 겨워서 찬송도 하고 귀한 향수나 기름 바르고 요셉의 환란에 누명 쓰고 억울함을 당하는 자를 동정하지 않고 무시하고 관심이 없습니다. 남의 말만 듣고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 환란에서 먼저 죽는 것입니다.
불의한 교권 세력이 먼저 망한다는 것입니다.
(암 6:7) 그러므로 그들이 이제는 사로잡히는 자 중에 앞서 사로잡히리니 기지개 켜는 자의 떠드는 소리가 그치리라.
이러한 행동을 하므로 환란 때 먼저 원수에게 고난을 받게 될 것입니다.
거들먹거리지만 환란 오면 세상 영광 누린 자가 먼저 심판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암 6:8)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스스로를 가리켜 맹세하신 말씀입니다.
“나는 야곱의 교만을 미워한다. 그들의 요새가 역겹다. 그러므로 그 성과 그 안의 모든 것을 원수에게 넘겨 주겠다.”고 하십니다. 말세에 세상 영광을 누리는 것이 복이 아닙니다.
(약5:1~3)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습1:18)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며 이 온 땅이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삼키우리니 이는 여호와가 이 땅 모든 거민을 멸절하되 놀랍게 멸절할 것임이니라.
(6:9~10) 한 집에 열 사람이 남는다 하여도 결국엔 다 죽을 것입니다.
죽은 사람을 장사지낼 친척이 와서, 화장하기 위해 시체들을 집 밖으로 내가며 남아 있는 사람에게 “아직 시체가 더 있소?” 하고 묻는다면 그가 “없소” 하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친척이 “조용히 하시오. 여호와의 이름을 속삭이지도 마시오. 그가 들을까 두렵소”라고 말할 것입니다. 세상 영광에 도취된 자들이 가족이 전멸당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스라엘 중에서 천명이 나가던 성읍에는 백 명만 남고 백 명이 나가던 성읍에는 열 명만 남으리라 하셨느니라.(암5:3)
(6:11) 보라! 여호와께서 명령하십니다. 큰 집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질 것이고 작은 집도 완전히 허물어질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원수를 들어서 그 집을 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날에는 큰 집이나 작은 집이나 심판의 환란은 용서가 없습니다.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는 피할 수 없는 환란입니다.
(6:12~14) 아무리 말들이라도 바위 위로 달릴 수 없고, 아무리 힘이 센 소일지라도 바위를 갈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정의를 독으로 바꾸었고, 올바른 것을 악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예를 든다면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자들이 세상 영광에 끌리어 인간 세력을 의지하고 사는 자들은 말들이 바위 위에 달림과 같고 소가 바위 위에 밭을 가는 것과 같이 모든 것이 다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의 수고는 모두 헛수고가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시므로 진리 앞에 순종하는 것이 살길입니다.
(벧전4:17)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겠느냐?
하나님은 자기 자녀를 극히 사랑하는 동시에 심판 때 세상 향락에 도취 되고 속화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는 자는 극히 미워하되 원수를 들어서 그 집을 친다는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을 찾고 돌아오는 것이 살길입니다. 아멘.
아모스 7:1~6 / 메뚜기 떼와 불의 환상
(암 7:1) 주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왕이 풀을 벤 후 풀이 다시 움돋기 시작할 때에 주께서 메뚜기를 지으시매
(암 7:2) 메뚜기가 땅의 풀을 다 먹은지라 내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암 7:3)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셨으므로 이것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암 7:4) 주 여호와께서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주 여호와께서 명령하여 불로 징벌하게 하시니 불이 큰 바다를 삼키고 육지까지 먹으려 하는지라
(암 7:5) 이에 내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그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암 7:6) 주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켜 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것도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6장에서는 세 번째 설교의 계속으로 이스라엘의 안일과 교만을 치십니다.
7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모스에게 장차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겠다는 세 가지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본문의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부분은 1-6절로 두 환상이 나옵니다.
첫 번째 환상은 메뚜기를 보내어 모든 식물을 먹어버리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환상은 불이 바다를 삼키는 것인데 이는 극심한 가뭄을 뜻합니다.
그러나 선지자 아모스의 중보기도로 인해 두 차례나 이스라엘 나라가 망할 뻔한 재앙이 정지됩니다. 이것은 실제로 이루어집니다.
앗수르의 첫 번째 공격은 므나헴 왕 때 디글랏-빌레셀 3세(745-727)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므나헴 왕이 많은 조공을 바쳐 물러갔습니다(왕하 15:19). 두 번째 공격도 반앗수르 정책을 시도한 베가의 통치 때에 디글랏 빌레셀에 의해 이루어졌으나 베가가 죽은 후에 호세아 왕을 꼭두각시로 세우고 물러갔습니다(왕하 15:29).
두 번째 부분은 7-9절: 다림줄의 환상으로 이스라엘의 멸망을 계시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보기도가 없습니다. 이것은 결국 세 번째 살만에셀이 공격하여 이스라엘이 멸망함으로 성취됩니다(왕하 17:3-60).
마지막으로 10-17절에서는 거짓 제사장 아마샤가 아모스를 벧엘에서 내쫓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내용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 메뚜기 재앙에 대한 경고(1~2)
주 여호와께서 아모스에게 보여주신 환상입니다. 주께서 메뚜기 떼를 보낼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왕이 첫 작물 가운데서 그의 몫으로 재물을 받은 뒤이며, 두 번째 작물이 막 자라기 시작할 때였습니다(1). 메뚜기 떼가 땅 위의 작물을 모두 먹어 치웠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에 아모스가 말했습니다. “주 여호와여, 용서해 주소서. 야곱 가운데 그 누구도 이 일을 견뎌 낼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너무 작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메뚜기 재앙을 내립니다. 메뚜기 재앙 하면 떠오르는 것은 바로 애굽의 10개 재앙 가운데 여덟 번째 재앙입니다. 이 하나님의 메뚜기 떼가 한번 지나가면 땅의 모든 식물과 나무와 심지어 집의 문이나 창문틀까지도 모두 먹어 치워 버립니다. 더 이상 그 땅에는 먹을 것이 남아 있지 못합니다. 사람이 살 수가 없게 됩니다.
하나님은 요엘 시대에도 메뚜기 재앙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아모스는 이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중보 기도합니다. 메뚜기가 땅의 풀을 다 먹었습니다. 이제는 채소 같은 것을 먹을 차례입니다. 즉 나라 전체가 망할 위기입니다. 이스라엘의 메뚜기 재앙은 장차 이스라엘을 침략할 앗수르 군대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 아모스의 중보기도와 응답(2~3)
아모스가 기도합니다. “주 여호와여, 용서해 주소서. 야곱 가운데 그 누구도 이 일을 견뎌 낼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너무 작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아모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 일에 대해 생각을 바꾸셨습니다.
“이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선지자 아모스는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합니다. 원래 아모스는 남쪽 유다 사람입니다.
그러나 북쪽 이스라엘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목숨을 걸고 전하며 간절히 중보 기도합니다.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야곱이 미약하다는 것은 이제 곧 이스라엘의 국력이 쇠하여 약한 나라가 됨을 뜻합니다. 약해진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겨 달라고 아모스는 간절히 기도합니다. 지금까지는 백성에게 매서운 심판의 메시지만 전했으나 이제는 하나님께 눈물로 간절히 주님 앞에 기도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모두 남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북한을 얼마나 사랑하며 위하여 중보기도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아모스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기도에 응답하여 주셨습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습니다. 많은 사람이 기도하지 않아도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헌신 된 종의 기도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주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중보 기도한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신다고 할 때 간절히 중보 기도하여 의인이 10명이라도 있으면 심판하지 말라고 중보기도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소돔과 고모라에 10명의 의인이 있으면 심판하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열 명의 의인이 없을지라도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시고 롯을 구원하셨습니다.
아모스도 이 아브라함의 마음과 같이 사랑하는 이스라엘을 위해 중보기도 하였습니다. 이때 긍휼의 하나님께선 아모스의 중보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이것을 볼 때 믿는 자의 중보기도가 얼마나 힘이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양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선 자신을 믿는 자들의 중보기도를 기뻐 받으시고 들어주시기 때문입니다.
* 불 심판과 중보기도(4~6)
하나님께서는 또 아모스에게 불로 이스라엘을 철저하게 심판하실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얼마나 그 불의 힘이 큰지 바다 깊숙한 곳까지도 마르게 하고 육지까지 태우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과 사랑이 많으신 분이시지만 심판하실 때는 비정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확실한 심판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계시록에 보면 불을 내려서 지구를 멸하십니다. 여기서 ‘불’ 재앙은 ‘메뚜기’ 재앙보다 더욱 강한 재난, 즉 극심한 가난을 비유합니다. 이 재앙은 우연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재앙을 당할 때 그것이 우연히 오는 줄로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우연이란 없습니다. 또한 이 심판은 메뚜기 재앙보다 더 심각한 양상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지만, 우리가 이것을 거부하면 더 큰 심판이 기다립니다. 하지만 아모스는 야곱이 미약하니 어떻게 설 수 있느냐고 합니다.
주 여호와께서 아모스의 기도를 들으시고 생각을 바꾸셨습니다.
“이 일도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더욱더 앞으로의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특히 남북 복음으로 평화통일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남쪽에서 온 아모스가 직접 북이스라엘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고 기도한 것처럼, 북한에 복음을 전하고 기도하는 선교사님들을 위해서도 또한 간절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중보기도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아모스가 중보기도를 한다고 하더라도 이스라엘 백성 자체가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은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림줄을 이스라엘 가운데 두시고 다시는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모스 7:7~17 / 다림줄 환상
(암 7:7)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다림줄을 가지고 쌓은 담 곁에 주께서 손에 다림줄을 잡고 서셨더니
(암 7:8)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다림줄이니이다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두고 다시는 용서하지 아니하리니
(암 7:9) 이삭의 산당들이 황폐되며 이스라엘의 성소들이 파괴될 것이라 내가 일어나 칼로 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 하시니라
(암 7:10) 때에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가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에게 보내어 이르되 이스라엘 족속 중에 아모스가 왕을 모반하나니 그 모든 말을 이 땅이 견딜 수 없나이다
(암 7:11) 아모스가 말하기를 여로보암은 칼에 죽겠고 이스라엘은 반드시 사로잡혀 그 땅에서 떠나겠다 하나이다
(암 7:12) 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에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에서나 예언하고
(암 7:13)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나라의 궁궐임이니라
메뚜기떼와 불의 심판을 예고하신 하나님은 아모스의 기도를 들으시고 계획을 취소하십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다림줄 심판을 보여주십니다.
7-8절 ‘다림줄을 드리우고 쌓은 성벽은 똑바로 단단히 쌓은 담으로 하나님의 진리로 세운 이스라엘 나라 또는 사마리아 성을 상징합니다.
여호와께서 다림줄을 잡고 서신 것은, 그 담을 헐겠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그 다림줄(율법)의 기준으로 보니 이스라엘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림줄은 담을 쌓을 때도 쓰이지만, 헐 때도 쓰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찍 이스라엘을 많이 용서하셨지만, 앞으로는 용서하시지 않고 멸망시키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가운데 직접 자신의 기준을 정하시고 그에 미치지 못하는 자들은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이스라엘을 택하셨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 한 분만은 사랑하지 않을 때 이스라엘 백성을 멸하시고 훈련을 통하여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을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인내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악인을 무한정 용서하시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이 보기에 아무리 견고하게 보이는 것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에 따라 쉽게 허무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이고 사랑입니다. 이스라엘은 이것을 빨리 깨닫고 자신들이 선민이라는 교만에 빠지지 말고 오직 하나님 앞에 겸손함으로 하나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회개하고 공의를 행해야 합니다.
(암 7:9) “이삭의 산당들이 황폐하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곳들이 폐허로 변할 것이다. 내가 여로보암 왕의 집을 칼로 치겠다.” 이삭의 산당들은 그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삭을 존경하는 뜻으로, 이삭이 예배드린 곳곳마다 산당을 세웠던 것입니다(요 4:22).
하나님은 그것들을 즉 우상숭배 하는 자들을 폐허로 만들어버리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과 자비가 많으신 분이시지만 회개치 않는 죄에 대해서는 하나라도 용서하지 않으시고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에서 멀리하고 죄가 있어도 항상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만을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10~11절) 아모스가 우상의 제단을 훼파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자 당시 제사장 아마샤는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렇게 전했습니다.
“왕이시여 아모스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왕에 대한 반란을 꾀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더 이상 그의 모든 말을 참을 수 없습니다. 아모스는 왕 여로보암은 칼로 죽을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은 사로잡힌 채 포로로 끌려갈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아모스는 선지자도 아니고 선지자의 아들도 아닙니다. 양을 치던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농부였습니다. 그런 사람이 이방 민족들과 유다와 북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아모스의 그런 행동은 북이스라엘의 기득권층의 눈에 좋게 보일 리 없었습니다. 당시는 북이스라엘은 매우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아모스의 그런 심판의 메시지는 듣기 좋을 리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모스를 반역자로 모함합니다.
12-13절 아마샤가 아모스를 모함해도 왕이 반응이 없자 아마샤는 직접 아모스를 쫓아낼 공작을 합니다. 아마샤가 아모스에게 “예언자야, 여기를 떠나라! 유다 땅으로 가 버려라. 거기에 가서 예언하면서 벌어먹고 살아라 다시는 이곳 벧엘에서 예언하지 마라. 이곳은 여로보암 왕의 거룩한 곳이요, 이스라엘의 성전이다!” 명령하였습니다.
제사장 아마샤가 아모스를 선견자로 비하하며 유다 땅으로 도망치라고 조롱하였습니다.
아마사는 그 시대의 종교 지도자였습니다. 그의 권세로 아모스의 입을 막고자 하였습니다. 현재에도 많은 사람이 이런 하나님의 나라와 지옥 심판의 메시지를 듣기 싫어합니다.
교회에서조차 하나님 심판의 메시지를 가르치지 않고 오직 축복의 메시지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심판의 메시지는 가르치는 자나 듣는 자 모두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14~15절)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합니다.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서 양 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 예언하라 하셨나니” 나는 순종할 뿐이라고 합니다.
아모스는 아무런 이득이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 하실 때 듣고 순종하였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은 어떻게 보면 위대해 보이는 거 같지만,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본문에도 나오듯이 사람들은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고 기득권층에서 반발을 사고 생명의 위협도 느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의 사랑과 심판을 전해야 합니다.
(16~17절) 아모스는 계속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어라. 너는 나에게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을 하지 말고 이삭의 자손을 치는 예언을 그만두라’ 너의 말 때문에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아내는 성에서 창녀가 될 것이며, 네 아들과 딸들은 칼로 죽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네 땅을 빼앗아 나누어 가질 것이며 너는 낯선 땅에서 죽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틀림없이 그 땅에서 쫓겨나 포로로 끌려갈 것이다.’”
아마샤는 아모스에게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고 자신의 권위와 힘으로 위협했으나, 아모스는 아마샤에게 너 자신이 먼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고 말씀의 권위로 싸웁니다.
그러나 아마샤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제사장이 하나님 말씀을 거부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아마샤의 아내는 성읍 가운데 창녀가 되게 하십니다.
아마샤의 자녀들은 칼에 죽게 됩니다. 아마샤의 땅은 빼앗깁니다.
그리고 아마샤는 이스라엘에서 쫓겨나 더러운 땅에서 죽게 됩니다.
이같이 회개치 않는 사람들은 결국은 파멸할 것을 다림줄 환상을 통해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듣기 싫어도 회개의 설교를 해야 하고 또 듣고 회개해야 합니다.
아모스 8:1~6 / 여름 과일 환상
(암 8:1) 주 여호와께서 내게 이와 같이 보이셨느니라 보라 여름 과일 한 광주리이니라
(암 8:2) 그가 말씀하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이르되 여름 과일 한 광주리니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은즉 내가 다시는 그를 용서하지 아니하리니
(암 8:3) 그 날에 궁전의 노래가 애곡으로 변할 것이며 곳곳에 시체가 많아서 사람이 잠잠히 그 시체들을 내어버리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암 8:4) 가난한 자를 삼키며 땅의 힘없는 자를 망하게 하려는 자들아 이 말을 들으라
(암 8:5, 개정)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며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내게 할꼬 에바를 작게 하고 세겔을 크게 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며
(암 8:6) 은으로 힘없는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가난한 자를 사며 찌꺼기 밀을 팔자 하는도다
7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모스에게 장차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겠다는 세 가지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즉 메뚜기, 불, 다림줄의 환상이었습니다. 선지자 아모스의 중보기도로 인해 두 차례나 이스라엘 나라가 망할 뻔한 재앙이 정지됩니다.
그런데 세 번째 환상에서는 중보기도가 없습니다.
이것은 결국 이스라엘이 멸망함으로 성취됩니다. 또한 거짓 제사장 아마샤가 자기 위상이 흔들리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아모스를 모함하고 괴롭히는 것도 보았습니다.
오늘 8장은 아모스가 본 네 번째 여름 실과 환상(1-3절)과 마지막 설교(4-14절)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심판의 날에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1-3절 “주 여호와께서 내게 이와 같이 보이셨느니라 보라 여름 과일 한 광주리이니라 그가 말씀하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이르되 여름 과일 한 광주리니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은즉 내가 다시는 그를 용서하지 아니하리니 그 날에 궁전의 노래가 애곡으로 변할 것이며 곳곳에 시체가 많아서 사람이 잠잠히 그 시체들을 내어버리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먼저 1-3절은 아모스가 본 네 번째 환상으로 여름 실과의 환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모스에게 여름 과일 한 광주리를 보여주셨습니다.
광주리 안에 과일이 풍성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경제적인 번영을 말합니다.
지금이 이스라엘의 최절정기입니다. 우리말로 잘 나아갈 때입니다.
이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끝이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름 실과 한 광주리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지만 그 의미는 둘 다 이스라엘의 멸망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첫째, 무르익어 상해 가는 여름 실과를 더 이상 보존할 수 없는 것처럼 이스라엘의 죄악은 쌓일 대로 쌓여 이제 심판만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둘째, 무르익은 여름 실과를 따서 광주리에 담아 옮기는 것처럼 이스라엘은 팽배한 죄악 때문에 포로로 잡혀 이방 땅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름 실과’(히, 카이츠)와 ‘끝’(히, 케츠)의 히브리어는 유사한데,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나 조만간 썩을 수밖에 없는 여름 실과처럼 지금은 부강하나 부패로 인하여 멸망으로 끝날 이스라엘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현실 속에 내재 된 부정한 요소는 비록 눈에 드러나지는 않는다 해도 계속 버려둔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맙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오래 참으십니다. 사람의 죄악이 관영할 때까지는 기다리신 후에 비로소 심판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증언하는 것이며, 또한 멸망 받아 마땅한 자에게는 더 이상 핑계 댈 수 없는 심판입니다.
지금까지 여러 번 아모스의 중보기도를 통해 이스라엘은 심판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선 더 이상 용서하지 않으시고 심판을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긍휼의 하나님이시지만 회개치 않는 자에게는 심판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궁전(성전)에서 부르던 노래가 애통하는 곡소리로 바뀝니다.
부귀와 영화가 끝나고 앞으로는 슬픔만이 남을 것입니다.
사람이 너무 많이 죽으므로 울 수도 없을 정도로 기가 막힌 상태를 당합니다.
그들은 잠잠히 시체들을 내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풍요로움 속에 궁전에서는 노래를 부르며 향락을 즐겼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는 그 노래가 애곡으로 변하며 곳곳에 시체가 쌓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서 사는 삶이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로워도 그 끝은 비참하고 불행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심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암 8:4) 가난한 자를 삼키며 땅의 힘없는 자를 망하게 하려는 자들아 이 말을 들으라
(암 8:5, 개정)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며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내게 할꼬 에바를 작게 하고 세겔을 크게 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며
(암 8:6) 은으로 힘없는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가난한 자를 사며 찌꺼기 밀을 팔자 하는도다
4-14절은 아모스의 마지막 설교입니다.
4-6절은 사회적 불의와 경제적 부정에 대한 진노와 책망의 선언입니다.,
7-10절은 하나님의 심판을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주어질 곤고한 날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11-14절에서는 혹독한 영적 기근의 심각성과 곧 닥칠 영육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아모스는 아무리 하나님을 공경한다 말하여도 세상 물질의 경제권을 쥐고 빈민을 압박하는 죄로 말미암아 이 땅 백성이 떨며 애통하는 재앙이 온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최고로 풍성할 때 다음을 준비하는 삶을 살지 못해서 망합니다.
그 풍성한 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잘 나누어 주는 것이 망하지 않는 길입니다.
자신을 비우고 나누어 주는 것이 지속적인 번영의 길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심판의 때가 가까이 왔음을 알지 못하고 아직도 악하게 살았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자를 삼키고 힘없는 자를 착취하고 망하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거짓으로 장사하고 돈으로 사람을 사고파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더한 고통에 빠지게 하였습니다.
아모스는 하나님의 심정으로 특별히 궁핍한 자와 가난한 자에게 관심을 가집니다.
여기서 ‘궁핍한 자’란 경제적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가난한 자들이지만, ‘가난한 자’란 경제적 빈자들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남들에게 짓밟히는 비천한 계급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가난한 자와 약자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을 짓밟고 망하게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책망하십니다.
아모스도 가난한 자들에 대한 착취를 책망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사회적인 부정과 불의는 지배자들의 재판 과정에서뿐 아니라(5:7-13) 시장 등 사회 도처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매달 초하루는 전제와 번제를 드리는 날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에는 관심이 없었고 물질적인 관심만 가득하여 이날에 장사하지 못하는 것만을 걱정했습니다. 또한 부피를 재는 되와 저울추를 부정하게 만들어서 눈뜨고 속였습니다.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이 가중됩니다. 밀의 찌끼를 자기들은 먹지도 않으면서 가난한 자들에게 팔았습니다. 참으로 무자비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모스 8:7~14 /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
(암 8: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암 8:12)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암 8:13)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암 8:14) 사마리아의 죄된 우상을 두고 맹세하여 이르기를 단아 네 신들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라 하거나 브엘세바가 위하는 것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라 하는 사람은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암 8:7) 여호와께서 ‘야곱의 자랑’인 주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셨다. “이 백성이 한 짓을 내가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야곱의 영광을 두고 맹세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하는 짓을 하나하나 절대로 잊지 않으시고 기억하고 계십니다.
자신들이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하여 철저하게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은 더욱 이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니까 난 봐주시겠지 하며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정말 잘못된 믿음입니다.
믿는 사람일수록 더욱 하나님 앞에 진실하고 착하고 선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8~10 이스라엘에 임할 애곡을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떠나 죄악 가운데 사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땅이 솟아오르다 낮아지는 지진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땅이 지진을 일으킴은 사회 질서의 혼란을 말하고, ‘온 땅이 솟아오름’은 물이 땅에 솟아오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그처럼 팽창하리라는 비유입니다.
애굽의 나일강물이 솟아올라서 온 지면을 휩쓸어 내려감같이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판단하실 것입니다. 해가 대낮에 떨어져 어둠이 있게 하시는 것과 같은 자연 재앙을 보내셔서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이 진노의 날은 흑암의 날이요, 모든 사람이 애통하는 날입니다. 그날에 용서 없는 진노가 옵니다.(9-10).
‘해로 대낮에 지게 함’은 이스라엘 번영의 절정 때에 이스라엘 베가 왕이 당할 갑작스러운 죽음을 은유적으로 예언합니다. ‘대낮’은 가장 위험이 적은 시간으로 행복을 상징하나 갑자기 밤중과 같은 캄캄하고 어두운 불안의 때가 옵니다.
그 심판이 얼마나 무섭고 철저한지 그들의 고통은 매우 커서 기쁜 명절 때도 슬픈 울음으로 울겠고 모든 노래가 죽은 사람을 위한 노래가 될 것입니다.
외아들을 잃은 슬픔같이 애통하며 슬프고 고통스러운 날이 될 것입니다.
‘외아들을 잃은 것처럼 통곡하게’ 함은, 그 고통이 쉬 지나가고 말 것이 아니고 계속됨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죄악 가운데 산 이스라엘의 끝은 매우 비참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또 장차 이스라엘에 기근을 보내십니다.
11절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기근을 심판으로 보냅니다. 이 기근은 양식과 물이 없어 오는 기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해서 오는 기근을 말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없다는 것은 실제 말씀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많은 말씀이 있지만 아모스와 같이 전하는 여호와의 말씀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좋은 말씀만을 전합니다.
북이스라엘에 참 선지자가 없어졌습니다. 공의를 전하는 참 선지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700년 동안 북이스라엘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없었습니다.
그 혼란한 정국에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자 그렇게 기도해도 여호와께서 말씀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아무리 진리를 들어보려고 해도 들어볼 수 없는 날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육신을 가진 인간이 육신을 위해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영을 가진 인간은 영적인 양식을 섭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택함 받은 이스라엘의 특권은 제사장과 선지자를 통하여 영적 양식을 부족함 없이 공급받는 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특권을 스스로 배척했을 때 하나님은 심판의 일환으로 말씀 공급을 멈추십니다.
그들에게는 죄를 지적하는 회개의 말씀은 없고 귀를 즐겁게 하는 말씀만 있습니다.
위로의 말씀 축복의 말씀만 있습니다. 진리를 전하는 말씀이 없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당하는 재앙 가운데 가장 큰 재앙입니다.
암환자에게 암환자라고 얘기해주는 사람이 없을 때 암환자는 가장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도 무엇을 먹고 마실 것인가에 골몰하기 이전에 영적 기갈 상태를 가장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하나님 나라의 복음, 십자가의 복음, 은혜의 복음, 영광의 복음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이런 복음을 잃어버린 영적 기길이 오면 다 비틀거립니다. 사람들이 말씀을 듣지 못한다는 것은 단지 말씀을 귀로 듣지 못한다는 것보다 그 말씀을 들어도 마음에서 깨닫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성경 말씀을 읽어도 그 말씀을 하나님의 주시는 말씀으로 깨닫지 못하고 내게 주신 말씀으로 받지 못할 때 말씀에 대한 기근을 느끼게 됩니다.
밥을 먹어도 계속 배고프고 물을 먹어도 계속 목마른 것과 같습니다.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12,13절 사람들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립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고 그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인생의 황금기인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총각’도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말씀을 주시지 않으면 아무리 찾아다녀도 하나님의 말씀을 찾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고 그 뜻을 구하지 않는 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많은 말씀을 듣지만, 마음이 피곤합니다. 그들은 기복적인 메시지만 전하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기초한 말씀을 전하지 않습니다.
죄 사함의 복음, 하나님 나라의 복음, 회개의 복음을 전하지 않습니다.
성공신학, 번영신학, 기복신앙은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듭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성령의 복음, 하나님의 복음이 우리에게 진정한 만족을 주고 힘을 줍니다. 젊은 남녀를 아름답게 합니다.
사울이 왜 죽었습니까?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과 둠밈으로도, 선지자로도 말씀을 주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전쟁을 해야 하는데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해 갈하다가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 점치다가 망했습니다.
남유다가 그래도 더 존속하고 회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예레미야, 이사야, 에스겔, 다니엘 등을 통해 여호와의 말씀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비전이요 말씀이 살길입니다.
현재에도 이런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말씀은 많은데 정말 우리 영혼의 갈증을 채워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말씀이 인생의 축복과 성공과 번영만을 강조합니다.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전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마치 홍수가 나서 물은 많은 데 그곳에 마실 물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현재 많은 교회도 물질적으로 풍요로움 속에 있다 보니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귀울이지 않고 자신의 편한 대로 하나님을 믿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곳에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도 주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은 하나님 외에 다른 우상들이 만족을 줄 줄로 압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영적인 기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깊이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물질적 풍요 속에서 안일하게 사는 자기의 모습을 하나님께 깊이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아무리 많은 말씀을 듣는다고 해도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영을 살리는 양식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하나님 나라의 복음만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내게 주신 말씀으로 받고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정말로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우리 영혼의 생명수 되는 그 말씀을 전하는 자로 쓰임 받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모스 9:1~15 / 망할 것이다
(암 9:1) 내가 보니 주께서 제단 곁에 서서 이르시되 기둥 머리를 쳐서 문지방이 움직이게 하며 그것으로 부서져서 무리의 머리에 떨어지게 하라 내가 그 남은 자를 칼로 죽이리니 그 중에서 한 사람도 도망하지 못하며 그 중에서 한 사람도 피하지 못하리라
(암 9:2) 그들이 파고 스올로 들어갈지라도 내 손이 거기에서 붙잡아 낼 것이요 하늘로 올라갈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붙잡아 내릴 것이며
(암 9:3) 갈멜산 꼭대기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찾아낼 것이요 내 눈을 피하여 바다 밑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뱀을 명령하여 물게 할 것이요
(암 9:4) 그 원수 앞에 사로잡혀 갈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칼을 명령하여 죽이게 할 것이라 내가 그들에게 주목하여 화를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암 9:5) 주 만군의 여호와는 땅을 만져 녹게 하사 거기 거주하는 자가 애통하게 하시며 그 온 땅이 강의 넘침같이 솟아오르며 애굽 강같이 낮아지게 하시는 이요
(암 9:6) 그의 궁전을 하늘에 세우시며 그 궁창의 기초를 땅에 두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이니 그 이름은 여호와시니라
아모스는 먼저 주위를 돌아보게 합니다.
1~2장에서는 8개 지역, 즉 다메섹, 가사(블레셋), 두로(페니키아), 에돔, 암몬, 모압, 유다, 이스라엘.. 이렇게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을 포함하여 8개 나라를 경고하면서 시작합니다. 3~6장에서는 북이스라엘 내부의 문제를 살펴보게 합니다. 당시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던 시기로 이 때는 솔로몬 이후 최대의 부흥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 풍요는 사회적 부패를 초래했습니다. 이때의 부패상을 아모스는 크게 4가지로 설명합니다. 가난한 자들의 억압, 초호화판 생활, 불공정한 재판, 불공정한 거래입니다. 7~9장에서 5가지 환상(메뚜기, 불, 다림줄, 여름과일, 부서지는 성전기둥)을 통해 이스라엘의 미래를 내다보게 합니다.
오늘 본문인 9장은 3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6절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는 환상이며, 7~10절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심판의 모습을 묘사하고, 11절부터 마지막 절까지는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킨다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는 말씀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래서 아모스서는 이스라엘을 비롯한 주변 국가들의 죄악에 대한 심판의 말씀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회복시키시겠다는 소망의 말씀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인간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끔찍하고 무섭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 말미암아 다시금 회복시키시겠다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절은 아모스가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는 환상을 봅니다.
“내가 보니 주께서 재단 곁에 서서 이르시되 기둥머리를 쳐서 문지방이 움직이게 하며 그것으로 부서져서 무리의 머리에 떨어지게 하라 내가 그 남은 자를 칼로 죽이리니 그중에서 한 사람도 도망하지 못하며 그중에서 한 사람도 피하지 못하리라”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아모스는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선지자인데,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어디에 있습니까? 북이스라엘이 아니라 남유다에 있습니다. 따라서 성전 파괴의 환상은 하나님의 심판이 북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남유다에까지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은 정확하게 실현되었습니다. 기원전 721년에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고, 그로부터 135년 후에 남유다가 멸망했습니다.
아모스는 7~9장에서 5개의 환상 보았는데, 그중에서 오늘 본문에 기록된 성전 기둥이 무너지는 환상은 가장 치명적인 심판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성전은 이스라엘의 심장이며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입니다. 성전이 무너졌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멸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 즉 선택된 백성들에게만 특별히 주어진 구별된 장소였습니다. 성전은 마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언제든 직통으로 연락할 수 있는 전화기를 주신 것과 같았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이방인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선민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이었습니다.
대통령에게 언제든 전화할 수 있는 전화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겠습니까? 하물며 창조주 하나님께서 언제든 연락하면 만나주겠다는 약속을 받은 민족은 얼마나 대단한 민족입니까.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더 이상 그런 특권을 이스라엘에게 주지 않겠다고 선포하십니다. 이제는 온 인류가 하나님 앞에서 동일한 존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7절)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내게 구스 족속 같지 아니하냐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블레셋 사람을 갑돌에서, 아람 사람을 기르에서 올라오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내게 구스 족속 같지 아니하냐’ 구스는 에디오피아 사람, 곧 이방인입니다. 즉 선민인 이스라엘이 더 이상 이방인과 다르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또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블레셋 사람을 갑돌에서, 아람 사람을 기르에서 올라오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에게 출애굽 사건이 있었다면, 블레셋 사람들이 갑돌, 즉 크레데 섬을 떠나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와서 살게 된 사건과 아람 사람들이 메소포타미아 기르에서 이주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제는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자손을 이방인과 동급으로 취급하고, 또한 그렇게 자랑으로 생각하고 있던 출애굽 대사건이, 이스라엘의 적국이며 이방인이라 불리는 블레셋과 아람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전 세계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만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이 바로 하나님의 작품이며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선택받은 백성이라고 자만할 것이 없으며,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타이틀이 있다고 결코 망하지 않으리라는 착각을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11~12절)은 사도행전에서 예루살렘 교회의 최고 지도자였던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 사도가 바울과 바나바의 1차 선교여행 보고를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듣고 인용한 말씀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전해진 사실에 대해 아모스 9장 11절 이하를 인용하면서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선포했습니다.
행15장 15~18절입니다.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하도다 기록된 바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아모스를 통한 예언이 약 760년이 지난 후에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십니다. 그래서 이제는 유대인만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자는 누구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2장 46~5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 그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님을 만나려고 찾아왔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밖에 서 있다고 말하자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혈연관계를 부정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가 바로 믿음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더 이상 유대인만 선민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자 누구나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는 것이 때로는 피곤하고 힘들고 손해 보는 경험일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내 계획을 잠시 내려놓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나의 뜻과 계획에 반하는 것에 나를 맡기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을 세상에 두지 않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한, 이 땅에서는 잠시 고난은 당할 수 있으나 영원하신 하나님의 시간 속에서 반드시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 점점 더 어두워져 가는 세상 속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내 욕망이 세상을 따라가려 하고, 내 욕심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뜻보다는 세상의 논리에 순응하려고 합니다. 연약한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성령의 능력으로 강하게 하시고, 날마다 말씀에 순종하여 인생의 발걸음을 내딛게 해 주옵소서. 아모스를 통해서 주신 말씀을 듣고 회개하며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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