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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 수양버들, 양버들 등의 버드나무 종류는 버들이라고 부른다. 왜 일까? 버들은 가늘고 낭창낭창 한 가지가 실바람에도 하느적거린다. 이는 부드럽고 연약한 것을 대표하며 옛 말에도 가느다란 것의 표현으로 세류(細柳)라 하였으며 여인의 날씬한 허리를 유요(柳腰)라고 하였다. 따라서 나무 이름은 '부들부들하다'는 나무 가지의 특성에서 부들이 버들이 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사 열전 후비조에 보면 <태조 왕건의 후비인 신혜왕후 유(柳)씨는 정주 사람이니 이중대광 유천궁의 딸이다. 왕건이 궁예의 부하로서 장군이 되어 군대를 거느리고 정주를 지나 가다가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말을 쉬게하고 있는데 유씨가 길 옆의 시냇가에 서 있었다. 왕건이 그의 얼굴이 덕성스러움을 보고 “누구의 딸이냐?”고 물은즉 처녀는 대답하기를 “이 고을의 유천궁의 딸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왕건이 그 집으로 가서 유숙하였는데 그 집에서는 군사 모두에게 풍성한 음식을 차려 대접하였다. 그리고 처녀로 하여금 왕건을 모시고 자게 하였다. 그 후는 서로 소식이 끊어져서 정절을 지키고자 머리를 깎고 여승이 되었다.
어느날 왕건이 소식을 듣고 불러다가 부인으로 삼았다. 궁예 말년에 홍유,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 등이 왕건의 집으로 와서 궁예의 폐립을 의논하려고 하는데, 왕건은 유씨에게는 알리고 싶지 않아서 그에게 말하기를 “채소 밭에 새로 익은 오이가 있지요? 따 올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더니 유씨는 그들의 의도를 알아 차리고 나왔다가 다시 북편 창문으로 해서 가만히 휘장 속으로 들어가 숨었다. 여러 장군들이 드디어 왕건을 왕으로 추대하자는 의사를 표시하니 낯을 붉히면서 한마디로 거절하고 있었다. 이 때 유씨가 급히 휘장 속에서 나와 왕건에게 말하기를“대의를 내세우고 폭군을 몰아 내는 것은 예로부터 그러한 일입니다. 지금 여러 장군들의 의견을 들으니 저도 의분을 참을 수 없는데 하물며 대장부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라고 하면서 손수 갑옷을 가져다가 왕건에게 입혀 주었으며 여러 장군들은 그를 옹위하고 나가 그가 드디어 왕위에 올랐다.>고 하였다.
신혜왕후는 성도 버들유자 유씨이고 버드나무 옆에서 태조와 인연을 맺었지만 날씬한 허리를 가진 연약한 여인이 아니라 나라의 임금을 갈아치운 대단한 여장부이었던 이다. 마찬가지로 고려사 열전 후비 '헌정 왕후 황보씨'조를 보면 <헌정왕후 황보씨는 경종이 죽자(981) 대궐에서 나와서 왕륜사 남쪽에 있는 자기 집에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꿈에 그가 혹령에 올라서 소변을 누었더니 소변이 흘러서 온 나라에 넘쳤으며 그것이 모두 변하여 은(銀)바다로 되었다. 꿈을 깨고 점을 치니 “아들을 낳으면 왕이 되어 한 나라를 가지게 되리라”고 한다. 왕후는 “나는 이미 과부가 되었으니 어찌 아들을 낳겠는가?”라고 말하였다. 당시 안종(安宗)의 집과 왕후의 집이 서로 거리가 가까운 까닭에 자주 왕래하다가 간통하여 임신하게 되었으며 만삭이 되어도 사람들이 감히 발설하지 못하였다. 성종 11년(992) 7월에 왕후가 안종의 집에 가서 자고 있을 때 그 집의 종들이 땔나무를 뜰에 쌓고 불을 지르니 불꽃이 올라서 마치 화재가 난 듯하여 백관들이 달려 와서 불을 껐다.
그 때 성종도 급히 위문하러 갔는데 그 집 종들이 사실을 임금에게 고하였다. 그래서 안종을 귀양 보냈으며 왕후는 부끄러워서 울고 있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중 문어구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뱃속의 태아가 움직였다. 그래서 문 앞의 버드나무 가지를 붙잡고 아이를 낳았으나 산모는 죽고 말았다. 성종이 유모를 붙여 그 아이를 양육하라고 명령하였는데 장성한 후 왕위에 올랐으니 그가 바로 현종이다. 현종이 왕위에 오르자 어머니인 헌정왕후를 다시 효숙 왕태후라고 추존하고 그의 무덤을 원릉이라고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 지배계층의 성도덕의 일면을 엿볼 수 있고 많은 나무 중에 튼튼한 끈을 대신할 수 있게 탄력성이 좋은 버드나무 가지를 붙잡고 아기를 낳았다는 대목이 흥미롭다.
또 버드나무종류는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나무이다. 서정시인 김소월의 시에는 봄의 전령으로서 파릇파릇한 잔디와 함께 버드나무 실가지에 봄이 오는 을 손에 잡힐 듯이 그리고 있다.
잔디/잔디/금잔디/심심산천에 붙는 불은/가신 님 무덤 가에 금잔디/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심심산천에도 금잔디
전국에 자라는 낙엽활엽수 교목으로 나무높이 20m, 지름80cm까지이다. 수간은 한 줄기가 올라가 굵은 가지를 뻗쳐 원추형의 나무 모양을 만들며 나무 껍질은 회갈색이고 작은 가지는 황록색으로 처음에는 잔털이 있으나 차츰 없어진다. 잎은 어긋나기로 달리고 길이 5∼12cm, 너비 7∼20cm의 피침형이고 표면은 초록빛으로 털이 없으며 뒷면은 흰빛이 돌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꽃은 암수 딴 나무로 열매는 삭과로서 달걀모양이고 5월에 익는다. 재질이 가볍고 연하며 색깔이 희어서 각종 가구재, 나막신 등에 쓰인다. | |
능수버들 |
(Salix pseudolasiogyne Lev (영) Weeping willow (일) コウライシダレヤナ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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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가 아래로 운치 있게 늘어지는 큰 버드나무에는 능수버들과 수양버들이 있다. 봄에 새가지가 나올 때 적갈색인 것은 수양버들, 황록색인 것은 능수버들이다. 두 나무는 너무 비슷하여 아무리 눈 씻고 보아도 구분이 어렵다. 능수버들은 경기민요 가락에 나오는 흥타령 천안삼거리를 연상하게 만든다.
'천안삼거리 흥/능수야 버들은 흥/제멋에 겨워서 흥/축 늘어졌구나 흥...'
이 짧은 구절에서 우리는 능수버들의 모양새를 짐작하고도 남으며 어깨를 들먹일 춤판이 금세 벌어질 것 같은 감흥에 사로잡힌다. 천안시 삼룡동에 있는 '천안삼거리'는 능수버들에 얽힌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옛날 한 홀아비가 능소(綾紹)라는 어린 딸과 가난하게 살다가 변방의 군사로 뽑혀 가게 되었다. 그는 천안삼거리에 이르자 어린 딸을 더 이상 데리고 갈 수가 없어서 주막에 딸을 맡겨 놓기로 했다. 그리곤 그는 버드나무 지팡이를 땅에 꽂고 딸에게 이르기를 '이 나무가 잎이 피면 다시 이곳에서 너와 내가 만나게 될 것이다'고 하였다. 그 후 어린 딸은 곱게 자라 기생이 되었으며 미모가 뛰어난데다가 행실이 얌전하여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마침 과거를 보러 가던 전라도 선비 박현수와 인연을 맺었고 서울로 간 그는 장원급제하여 삼남어사가 되었다. 박 어사는 임지로 내려가다가 이곳에서 능소와 다시 상봉하자 '천안삼거리 흥, 능소야 버들은 흥'이라 노래하고 춤추며 기뻐하였다. 마침 전쟁에 나갔던 아버지도 살아서 돌아와 능소와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때부터 이곳의 버드나무를 능소버들 또는 능수버들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조선후기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동궐도(東闕圖)에 보면 지금의 창경궁 영춘문 앞 도로 건너편과 종묘 쪽 궁내에 여러 그루의 능수버들이 보인다. 비슷한 나무에는 수양버들 외에 용버들이 있다. 용모양의 버들이란 의미인데 늘어지기는 마찬가지이나 어린가지는 물론 상당히 굵은가지까지도 용이 승천하는 그림처럼 꾸불꾸불하게 자라기 때문이다.
중국 원산으로 생각되는 낙엽활엽수 교목으로 나무높이 20m, 지름 80cm까지 자란다. 나무 껍질은 흑갈색으로 세로로 깊게 갈라지며, 밑으로 길게 늘어지는 작은 가지는 황록색이다. 잎은 피침형으로 긴 점첨두이고 예저이다. 양면에 털이 없고, 뒷면은 흰빛이 돈다. 꽃은 암수 딴 나무로 4월에 잎과 함께 피고 열매는 삭과로서 원추형이며 5월에 익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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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버들 |
(Salix gracilistyla Miq. (영) Rose-gold Pussy Willow (일) ネゴヤナギ (漢) 蒲柳<포류>, 水楊<수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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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 즉 개울가에 흔히 자란다하여 갯버들이 되었다. 흔히 말하는 버들강아지가 이 나무이다. 전국의 냇가 저습지에 자라며 낙엽활엽수 관목으로 나무높이 2m 정도에 달한다. 뿌리근처에서 많은 가지가 나오고, 어린가지는 황록색으로서 털이 있으나 곧 없어진다. 잎은 거꾸로 선 피침형 또는 넓은 피침형이며 첨두, 예저이고 표면은 털로 덮여 있지만 곧 없어진다. 뒷면은 섬모가 촘촘하며, 흰빛이 돌고 명확하지 않은 톱니가 있다. 꽃은 암수 딴 나무로 4월에 잎보다 먼저 전년 가지에 잎겨드랑이에 나며 종자는 긴 타원형이고 길이 3mm정도로서 털이 있으며 4∼5월에 익는다. | |
양버들 |
(Populus nigra var. italica Koehne (영) Lombardy Poplar (일) ピラミットヤマナラシ (漢) 歐州白楊<구주백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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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에 버들이 들어 있어 버드나무속으로 알기 쉬우나 속명은 사시나무속임을 알아두자. 지금은 거의 포장이 되어 버린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줄기는 곧게 직립하고 잔가지는 위를 향하여 자라기 때문에 마치 빗자루를 세워둔 것 같은 모양의 포플러가 양옆에 서있는 길을 만나게 된다. 개화 초기에 구라파에서 수입한 것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름다운 버드나무란 뜻의 미류(美柳)나무라고 한다. 그러나 정확한 이름은 양버들이고 진짜 미루나무는 흔치 않다. 나병을 앓으면서도 아름다운 시를 쓴 한하운의 시에 <전라도 길 - 소록도로 가는 길> 이 있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天安) 삼거리를 지나도/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千里), 먼 전라도 길. 소록도를 찾아가는 나병환자의 처절함이 가슴깊이 와 닿은 유명한 시이다. 포장이 되지 않은 신작로의 옛 황토길의 양옆에 버드나무가 있었다면 아마 양버들일 것이다. 전국에 심고있는 낙엽활엽수 교목으로 높이 30m, 지름 1m에 달한다. 나무 껍질은 세로로 깊이 갈라져서 흑갈색으로 되고 작은 가지는 둥글며 털이 없고 노랑빛이지만 2년 가지는 회갈색으로 변하며 겨울눈은 점성이 있고 적갈색이다. 잎은 달걀모양이며 긴 점첨두이고 넓은 예저로서 길이 5∼10cm, 너비 4∼8cm이며 가장자리에 잔톱니가 있다. 꽃은 암수 딴 나무로 꼬리화서에 달리고 열매는 5∼6월에 40∼60개가 달리며 종자는 노랑빛으로 길이 2.5mm 정도이다. 목재는 상자재, 성냥, 젓가락, 펄프재로 이용된다. 양버들과 미류나무는 매우 비슷한데 양버들은 수형이 빗자루 모양이고 잎은 길이가 짧고 너비가 더 넓다. 수관이 크게 퍼지며 엽저에 선점이 있고 잎은 길이가 더 길고 너비가 좁은 것을 미류나무(P. deltoides Marsh)라 한다. | |
왕버들 |
(Salix glandulosa Seem (영) Glandulosa Willow (일)アカメヤナギ (漢) 河柳<하류>, 鬼柳<귀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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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 중에 가장 크고 웅장하게 자란다는 뜻으로 왕버들이라고 한다. 전국의 개울가, 호수가 등 유난히 물이 많은 곳을 특히 좋아하여 한자로 하류(河柳)라는 이름도 있다. 또 귀류(鬼柳)라고도 하는데, 왕버들의 오래된 고목은 나무 속이 잘 썩어 버려 큰 구멍이 생겨 있는 경우가 많다. 비오는 날의 밤에는 구멍 속에 잘못 들어갔다가 죽어 버린 곤충이나 설치류에서 나온 인(燐)의 작용으로 푸른 불빛이 번쩍이는 것을 가끔 볼 수 있다. 이름하여 도깨비불이다.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도깨비는 무섭고 두렵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전혀 잔인성이 없고 장난이나 심술을 부려도 은혜를 잊지 않은 등 사람과는 친숙한 귀신이었다. 귀류에서 이름을 따 도깨비버들 혹은 귀신버들이라 하여도 재미있을 것 같다.
그러나 옛 문헌에는 흔히 '柳'라고 표기하는 경우가 많아 정확하게 무슨 버드나무인지는 알기 어렵다. 삼국유사 제5권 혜통스님 이야기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그 때 당나라 공주가 병이 들어 고종이 삼장에게 치료해 주기를 청하니, 삼장은 자기 대신 혜통을 천거했다. 이에 혜통은 용을 퇴치하니 이내 공주의 병은 나았다. 그러나 용은 혜통이 자기를 쫓은 것을 원망하여 신라 문잉림(文仍林)에 가서 더 많은 인명을 해쳤다. 이 때 정공(鄭恭)이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혜통 을 보고 말하기를 '스님이 쫓은 독룡이 본국에 와서 그 해가 심하니 속히 가서 없애 주십시오'했다. 이에 혜통은 정공과 함께 문무왕 5년(665)에 본국으로 돌아와 그 용을 쫓아 버렸다. 용은 다시 정공을 원망하여 버드나무로 변해서 정공의 문 밖에 우뚝 섰다. 그러나 정공은 이것을 알지 못하고 다만 그 잎이 무성한 것 만 좋아하여 매우 사랑했다.
문무왕, 신문왕이 세상을 떠나고 효소왕(692-702)이 즉위하여 산릉(山陵)을 닦고 장사 지내러 가는 길을 만드는데 정공의 집 버드나무가 길을 가로막고 섰으므로 관리들이 이것을 베려고 했다. 이에 정공은 노하여 '차라리 내 목을 벨지언정 이 나무는 베지 못한다' 했다. 이 말을 아뢰자 왕은 크게 노하여 법관에게 명하기를, '정공이 왕화상의 신술을 믿고 장차 불손한 일을 도모하고자 하여 왕명을 거스르고 제 목을 베라고 하니 마땅히 그가 좋아하는 대로 하리라'하고, 목을 베어 죽이고 그 집을 흙으로 묻어 버렸다>. 잎이 무성하다는것으로 보아 왕버들로 생각되며 나무 하나에 목숨까지 버렸으니 나무사랑이 지극한 탓인지 아니면 무모한 탓인지 헤아리기 어렵다.
낙엽활엽수 교목으로 나무높이 20m, 지름 1m까지 이른다. 수관이 크게 벌어지고 줄기는 비스듬히 자라는 경우가 많아 조경수로 심는다. 나무 껍질은 회갈색으로 깊이 갈라진다. 작은 가지는 황록색으로 털이 있다가 없어지며 겨울눈은 길이 2∼3mm이고 달걀모양이다. 잎은 길이 4∼7cm로 새순이 돋을 때는 주홍색이며 타원형 또는 긴 타원형이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으며 탁엽이 귀모양으로 된다. 잎자루의 윗부분에 2개의 선(腺)이 있고 겨울눈의 비늘조각은 가장자리가 포개져 있다. 꽃은 암수 딴 나무로 잎과 함께 4월에 피고 열매는 길이 3mm정도의 삭과로서 달걀모양이며 5월에 익고 가벼운 종자는 솜털에 싸여 날아다닌다. | |
털왕버들 |
(Salix glandulosa var. pilosa Nakai (漢) 毛鬼柳 (일)ケアカメヤナ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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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활엽수 교목으로 나무높이 20m, 지름 1m까지 이른다. 나무 껍질은 회갈색으로 세로로 깊이 갈라진다. 작은 가지는 황록색으로 털이 있으며 겨울눈은 길이 2∼3mm이고 털이 없다. 잎은 길이 4∼7cm로 가장자리에 잔톱니가 있으며 탁엽이 귀모양으로 된다. 꽃은 암수 딴 나무로 잎과 함께 4월에 피고 열매는 길이 3mm정도의 삭과로서 달걀모양이며 5월에 익고 가벼운 종자는 솜털에 싸여 날아다닌다.
왕버들과 가장 큰 차이점은 가지와 엽병에 털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왕버들도 처음에는 털이 있다가 차츰 없어지니, 털왕버들의 털 유무를 판정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경북 청도군 각북면에 천연기념물 298호로 지정된 털왕버들이 보호 받고 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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