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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프랭크 잡파(Frank Zappa)의 기념조각상이 있다는 긍지를 지닌 나라를 방문한다는 것은 가치가 있다. 리투아니아는 반체제 조각상뿐만 아니라 1990-1991년의 독립을 향한 용감하고도 격정적인 운동으로 잘 알려졌듯이 발틱국가 중에서 가장 활기에 찬 나라이다. 리투아니아는 한때 이웃나라 폴란드와 함께 발틱해에서 거의 흑해에 이르는 제국을 건설하였듯이 중부유럽의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리투아니아인들은 이웃 에스토니아나 라트비아인들 보다 훨씬 외향적이고 덜 조직적이라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발틱 이웃나라와 다르게 여전히 로만카톨릭을 따르고 있다.비록 나라가 작고 장엄한 풍광은 없지만 리투아니아는 흥미로운 큐로니안 모래톱(Curonian Spit)과 흔치 않은 십자가언덕(Hill of Crosses)과 함께, 유서 깊고 활기찬 수도 빌니우스(Vilnius)가 지닌 도시의 즐거움 등 다양한 볼거리를 자랑하고 있다.
통계 자료 국명: 리투아니아공화국 리투아니아는 발틱국가들 중 가장 큰 나라로 크기가 아일랜드와 거의 비슷하다. 북으로는 라트비아, 남동쪽으로는 벨라루스, 서쪽의 발트해, 남서쪽으로는 폴란드와 잘려진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지역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국토는 대부분 평평한 지형이며, 제일 높은 지역인 유아자피네스(Juazapines)가 294m에 불과하다. 리투아니아의 발틱해안은 약 100km인데, 그 반은 연필같이 가느다랗고 높이 66m에 이르는 독특한 큐로니안 모래톱으로 이루어져 있다.
리투아니아의 4분의 1이상은 삼림지대이며 주로 남서부에 있다. 엘크, 사슴, 야생돼지, 늑대, 살쾡이 등이 숲에 살고 있지만 안내원 없이는 이런 동물들을 구경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리투아니아에는 약 2000마리의 수달이 살고 있고, 남쪽에 있는 주빈타스(Zuvintas)호수는 물새의 중요한 부화장소이자 쉼터이다. 리투아니아에는 5개의 국립공원이 있고, 자연보호구역이 많다. 높은 모래언덕, 소나무숲, 모래사장, 산호초, 해변 등의 독특한 환경을 지닌 쿠르시우 네리야(Kursiu Nerija) 국립공원이 가장 유명하다.리투아니아의 기후는 온화하다.
5월에서 9월의 최고 낮기온이 섭씨14도에서 22도이고, 11월에서 3월은 거의 영상 4도 이하이다. 7월과 8월은 가장 덥고 습기가 많고 지속적으로 소나기가 내린다. 5월, 6월 그리고 9월은 훨씬 쾌적하지만 6월말은 천둥이 치는 경우가 있다. 가을에 눈이 왔다가 녹은 다음이나 겨울에 쌓였던 눈이 봄에 녹을 때, 발이 진창에 빠지는 일은 흔한 일이다. 현대 리투아니아인의 조상은 발트족(Balts)로 알려져 있으며 기원전 2000년 남동쪽에서 온 것으로 추정한다. 12세기경 발트인들은 모두 자연종교를 신봉하는 부족그룹으로 나누어졌다. 리투아니아에서 두 주요그룹은 서부의 사모기티안(Samogitians)족과 동부의 아우크스타이티아이(Aukstaitiai)족이다. 리투아니아 남서쪽과 폴란드의 인접지역에는 훗날 리투아니아와 폴란드인으로 동화된 또 다른 발트족인 요트빈기안스(Yotvingians)족이 살고있었다.
13세기 중엽 아우크스타이티아이족의 지도자 민다우가스(Mindaugas)가 짧은 기간이지만 카톨릭 분위기에서 리투아니아종족들을 통일하였다. 이교도 왕자들이 반격하였지만, 1290년 대공이 된 기독교인 뷔테니스(Vytenis)에 의해 정복당하였다. 1316년에서 1341년까지 대공이었던 그의 동생 게디미나스(Gediminas)는 초기 러시아국가의 쇠퇴를 틈타서 리투아니아의 국경을 남쪽과 동쪽으로 확장하였다.
게디미나스의 손자, 요가일라(Jogaila)는 카톨릭으로 개종하고 1386년에 폴란드의 왕위계승공주와 결혼하여 400년간 두 나라의 유대를 강화한다. 1387년 아우크스타이티아이족은 세례를 받고, 1413년에는 사모기티안스족이 세례를 받음으로써 리투아니아는 유럽에서 마지막으로 기독교국가가 되었다. 1569년 루브린조약(Treaty of Lublin)에서 두 나라의 공식적인 연합이 이루어진 후 16세기말까지 리투아니아는 폴란드의 아우국가로 전락했다.
리투아니아 상류계급은 폴란드 문화와 언어를 사용했으며, 농민들은 농노가 되었으며 연합국가는 연방국가의 형태(Rzeczpospolita)가 되었다.스웨덴과 러시아의 이반황제(Ivan the Terrible)처럼 폴란드-리투아니아는 리보니아(오늘날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558년 최초로 이반이 침입하여 25년간의 리보니아전쟁이 시작되었다. 폴란드-리투아니아 그리고 이후 스웨덴이 이반과 그 추종자들을 몰아 내는데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1592년 이들이 러시아세력을 몰아내고 카톨릭국가인 폴란드-리투아니아와 개신교 스웨덴이 발틱지역에 정착한 다음 서로 싸우기 시작하였다. 스웨덴이 승리하여 에스토니아와 오늘날 대부분의 라트비아지역을 차지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폴란드-리투아니아, 러시아간의 분쟁은 계속되고 러시아가 연방을 침략하여 상당 부분의 영토를 합병하였다.
17세기 프러시아에 의해 더욱 약화된 연방은 마침내 러시아,오스트리아, 프러시아에 의해 멋대로 분할되어 리투아니아의 대부분은 러시아의 지배를 받게 된다.리투아니아는 19세기 러시아에 대항하는 폴란드의 반역에 두 번 가담하여 농민들은 1861년까지 자유를 얻지 못하였다. 1864년부터 러시아는 카톨릭교인들을 박해했으며, 러시아문자를 사용했을 때에만 리투아니아어로 책이 발행될 수 있었고 폴란드어로 된 책들은 출판이 금지되었다.
1차 세계대전 중 독일은 리투아니아를 점령했으며, 1918년 11월 11일 독일이 연합군에 항복하면서 리투아니아공화국정부가 수립되었다. 하지만 폴란드가 독립하면서 상황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폴란드군대는 1919년 빌니우스를 침입하여, 1920년대에 3개월을 제외하고는 1939년까지 리투아니아를 점령한다. 1920년 소비에트러시아는 리투아니아의 독립을 인정하고 평화협정에 조인한다.
리투아니아는 1926년 군사쿠데타를 치르고, 1929년부터 이탈리아 뭇솔리니와 유사한 정책을 펴는 안타나스 스메토나(Antanas Smetona)의 지배를 받는다. 하지만 1939년 8월 23일 나치독일과 소련은 리투아니아를 나치독일의 권역에 두는 몰로토프-리벤트롭(Molotov-Ribbentrop) 불가침조약을 체결한다. 리투아니아는 나치의 폴란드침략에 동참하기를 거부하여 다시 소련의 영향하로 편입된다. 1939년 10월 소련 붉은 군단이 동부 폴란드를 침입하면서 리투아니아는 빌니우스를 되찾는다. 동시에 독일은 서부 폴란드를 침입한다.
1940년 8월부터 리투아니아는 소비에트군부의 지배를 받고 공산주의자들이 정부를 구성하고 소련연방(USSR)공화국의 하나가 된다. 1941년 히틀러가 침공하여 거의 모든 유태인들이 나치점령기간동안 캠프나 게토에서 학살당했다. 소련군이 1944년 말 다시 점령하여 리투아니아가 주권을 회복하기위한 첫걸음을 시작하는 1980년 까지 지배한다.미하일 고르바쵸프의 개방(glasnost)과 개혁(perestroika)정책의 직접적인 결과로, 운동이라는 뜻의 사유디스(Sajudis)라 불리우는 국민의 광범한 지지를 받는 단체가 결성된다.
리투아니아는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위한 발틱지역의 운동을 선도한다. 사유디스는 1989년 3월 소련연방 인민회의의 리투아니아지역선거에서 42석 중 30석을 석권하고, 그 해 12월 리투아니아공산당은 소련연방의 공산당과 결별한다. 이러한 시도는 소련연방의 해체의 징후가 되었고 특히 리투아니아는 공산당이 아닌 당을 합법화하는 최초의 소비에트공화국이 되었다.
1990년 2월 사유디스는 리투아니아 상원 소비에트의 다수당이 되고 3월 11일 의회는 리투아니아가 독립공화국임을 선언한다.이러한 시도에 대해서 소련은 몇 주간 위협적인 군사행동과 경제봉쇄로 응답한다. 사유디스의 지도자 뷔타우타스 란드베르기스(Vytautas Landsbergis)는 리투아니아와 소련정부간의 독립에 관한 대화에서 100일간의 독립선언 유예기간을 둘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모스크바에서 강경파의 부상으로 소련군대는 빌니우스의 주요기관을 점거하고, 텔레비젼 송신탑과 본부 점거시 13명의 사람이 죽는다.
마침내 서방세계는 리투아니아의 독립을 인정하며 1991년 9월 6일 소련도 독립을 승인하기에 이른다. 1991년 9월 17일 리투아니아는 유엔에 가입하고 되찾은 국가독립의 기쁨을 즐기기 시작한다. 1998년 성인시절 대부분을 시카고에서 미국환경보호단체의 고위 정책전문가로 일하던 리투아니아 이주민 발다스 아담쿠스(Valdas Adamkus)가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국내총생산: US$ 154억 리투아니아는 발틱 3국 중 인종적으로 가장 단일한 국가이다. 현대 리투아니아인들은 발트족의 후손이며, 19세기와 20세기초 정치 및 경제적인 이유와 2차 세계대전으로 발틱국가 중에서 가장 많은 해외이민자가 있다. 체계적이고 계산적이라기보다 사교와 친절을 중시하는 리투아니아인들의 전형적인 성격은 사교성이 있고 친근하며 감성적이다. 냉정한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인들은 리투아니아인들을 성미가 급하며 예측할 수 없다고 평한다.
리투아니아인과 발틱 이웃국가들의 차이는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기의 독립운동에서 잘 나타났다. 리투아니아에서의 투쟁은 감성적이고, 용감무쌍했으며, 때로는 절박하고 위험하였다. 결과적으로 20명 이상의 희생자를 낳았다. 반면 에스토니아에서는 점진적이고 잘 계산된 무혈투쟁이었기 때문에,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다 죽은 다음에야 독립을 얻기 위해 죽을 것이다.’라는 불명예스러운 말을 들었다.
리투아니아어는 인도-유럽어의 발틱어족 가운데 남아있는 두중 하나이다. 로리투아니아어(Low Lithuanian)는 서부에서 사용되며 나머지 지역에서 사용되는 하이리투아니아어(High Lithuanian)의 사투리이다. 카톨릭교회는 리투아니아사회의 보수세력이며, 카우나스(Kaunas)의 대주교가 그 수장이다. 러시아정교의 신자들도 일부 있고, 17세기이래 간헐적인 박해를 받아온 러시아정교의 분파인 구신자(Old Believers)들도 있다. 빌니우스, 카우나스, 해외 리투아니아 교민들을 신도로 하는 로무바 운동(Romuva movement)이라 불리는 이교도도 있다. 이것은 리투아니아의 고대정신과 민속전통으로 복고하기 위한 운동이다.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중요한 문학작품은 18세기 농노의 생활을 묘사한 크리스티요나스 도넬라이티스(Kristijonas Donelaitis)의 계절이라는 뜻인 메타이(Metai)라는 시이다. 마이로니스 (Maironis)로 유명한 요나스 마치우리스(Jonas Maciulis)는 20세기 초에 쓴 그의 시로 현대 리투아니아 문학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리투아니아는 또한 몇몇 주요 폴란드작가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그 중에 1980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체슬라브 밀로즈 (Czeslaw Milosz)가 있다.흥미로운 전통민속예술으로는 교차로, 공동묘지,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마을광장등에 세우는 키 큰 기둥 위에 커다란 나무십자가, 태양, 풍향계, 성인상 등의 조각품들이 있다. 소비에트시절에 이러한 것들은 금지되었지만, 시아우리아이(Siauliai) 부근의 십자가언덕(Hill of Crosses)에 놀랍게도 남아있다.낙농제품과 감자는 리투아니아식단의 기본음식이며, 팬케이크는 특별히 인기가 있다.
잊혀질 수 없는 전통음식인 걸쭉한(감자반죽이라는) 비행선모양의 덩어리에 치즈, 고기, 버섯 등을 안에 채운 체펠리나이(cepelinai)이다. 체펠리나이는 위에 양파, 버터, 신크림, 베이컨 조각 등으로 만든 소스를 얹져서 제공된다. 사코이티스(Sakotis)는 주로 결혼식 때 먹는 것으로 키 큰 크리스마스트리모양의 케이크이다.
크리스마스정찬 때에는 12가지의 채식요리를 즐긴다. 우테노스(Utenos)와 칼나필리스(Kalnapilis)는 이 지역 최고의 맥주이며, 아마도 60도의 미더스(midus:꿀술)보다 나을 것이다. 언제 잠들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꿀로 만든 술인 스타클리스케스(stakliskes)를 찾아야 할 것이다. 가장 감동적인 문화행사는 5년마다 열리는 국가적인 음악제인National Song Festival 있으며, 2000년에는 빌니우스에서 열린다. 발틱지역 여러 곳에서 수백개의 합창단이 참가하며 10만 명의 청중이 참가한다. 이 정도의 위도에 위치한 나라들에서 하지축제는 가히 열광적이다: 6월 23일 밤은 신비한 힘을 지닌 날로 여겨지며 축제가 절정을 이른다.
발틱 민속축제(Baltika folk festival)는 발틱국가들의 수도에서 교대로 열리는데 1999년 7월 리투아니아에서 열렸다. 그 외에 인기있는 문화행사는 2월 첫째 토요일 우테나(Utena) 부근 두세토스 (Dusetos)의 사르타이(Sartai) 호수에서 열리는 경마대회, 3월 4일 리투아니아의 수호성인 성 차시미르의 날(St Casimir Day), 전세계의 최고 음악가들을 유혹하는 4월 카우나스에서 열리는 국제 재즈페스티발, 5월 빌니우스에서 열리는 전위예술작품 축제(Life Theatre Festival) 등이 있다.
또 7월 빌니우스의 구시가지에서는 일주일간 거리연극, 댄스, 마스크 퍼레이드, 공예시장 등의 행사가 있는 Summer Music Festival이 열린다. 9월 중순 빌니우스시의 날(Vilnius City Days)에는 극장, 연주회장, 거리 등에서 음악과 문화행사가 3일간 열린다. 11월 2일의 벨리네스(만성절)날에는 묘지를 참배하며 죽은 이들을 추모한다. 비자: 발틱국가,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덴마크, 아일랜드, 이탈리아, 스위스, 영국, 미국 등의 시민권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 사람들은 비자가 필요하다. 통화: 리타스Litas (plural form Litu) 경제적인 여행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발틱국가 여행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US$10이상인 호스텔숙박시설은 드물고, 여러 명이 자는 방의 침대 하나는 US$2 정도로 싼 곳도 있다. 이런 유형의 숙박시설에서 자고, 가격이 싼 간이식당이나 카페테리아, 스스로 음식을 날라서 먹는 곳에서 식사하고, 만원인 2등 칸의 버스나 기차로 여행하면 일인당 일일의 경비를 US$10이하로도 낮출 수 있다.
홈스테이이나 중급 호텔을 선호하고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식사한다면 일일 경비는 일인당 US$40 이나 US$60까지 오를 수 있다. 여행자수표는 빌니우스, 카우나스, 시아우리아이, 클라이페다 등 대도시에서 현금으로 찾을 수 있지만, 리투아니아에서 환전의 어려움은 없다. Visa, MasterCard, Eurocard 등으로 현금자동지급기에서 현금을 지급 받을 수 있고 신용카드의 사용은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일반적이다.
현금을 가지고 다닐 때는 아주 깨끗한 상태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표시됐거나, 찢어졌거나, 단지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사용이 거부되기도 한다.리투아니아에는 18%의 부가가치세가 있으며, 모든 숙박시설과 음식값에 부가된다. 팁은 의무는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5-10%의 팁을 포함하여 계산한다. 벼룩시장에서는 흥정이 아주 많이는 아니지만 가능하다. 여름과 봄은 (5월에서 9월) 리투아니아를 여행하기에 제일 좋은 시기이다. 대부분의 외국관광객은 7월과 8월 사이에 방문하며, 아주 경제적인 호텔과 호스텔은 예약이 완료된다. 겨울(11월에서 3월)에는 눈이 흩날리는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는 반면, 낮 시간이 매우 짧다. 리투아니아의 수도는 많은 리투아니아 해외이주민과 중부유럽과 그 북부지역의 영향으로 국제적인 분위기이다. 16세기에 동부 유럽의 대도시였던 빌니우스는 폴란드의 17세기 ‘황금기’에 한 몫을 했으며, 19세기에는 유태인 도시로 중요하였다. 독일, 폴란드, 러시아 모두 20세기에 빌니우스를 차지한 적이 있다. 2차 세계대전 후 폴란드사람과 유태인들은 거의 대부분 사라지고 빌니우스는 리투아니아 독립투쟁의 본거지가 되었다. 특히 1991년 소련군들이 사태를 반전시키려고 텔레비전방송국을 공격했을 때, 13명의 사망자와 다수의 부상자를 낸 극적이고 비극적인 일들이 벌어졌다.
빌니우스는 발틱해에서 내륙으로 250km떨어져 네리스(Neris)강 기슭에 있다. 리투아니아의 남동쪽에 있으며 벨라루스와의 국경에서 아주 가깝다. 시내 중심가는 강의 남쪽에 있으며, 성당광장(Cathedral Square)이 그 종심지이다. 광장 북쪽에 성당이 있고 그 뒤에 게디미나스 언덕(Gediminas Hill)이 솟아있다. 동부 유럽에서 제일 큰 구 시가지는 성당광장에서 남쪽으로 펼쳐져 있다.
구불구불한 길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교회의 첨탑과 가려진 안뜰이 있는 셀 수없이 많은 교회들을 찾아 다니는 것이 흥미롭다. 상징적인 건물들은 빌니우스대학, 대통령궁, 전망대, 옛날 유태인 거주지 등이 있다. 레스토랑, 펍, 나이트클럽, 카페 등이 많다. 세 개의 십자가 언덕은 구시가를 굽어보는 오래된 상징물이다.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한 3명의 수도자를 추모하여 17세기에 이곳에 십자가가 세워졌다.
신시가는 구시가에서 2km 떨어져있으며 19세기에 대부분 건설되었다. 옛날 게쉬타포와 KGB건물이었던 시청이 여기에 있으며 리투아니아국민의 학살박물관(the Museum of the Genocide of the Lithuanian People)이기도하다. 이곳의 안내원들은 모두 과거 죄수로 그들이 고문을 받았던 방들을 보여 줄 것이다. 강 남쪽에는 미국 록의 전설 프랭크 잡파을 기리는 청동 흉상이 있다. 소비에트시절의 빌니우스 교외는 강 북쪽에 있다. 구시가 안팎에는 수많은 숙박시설이 있고 좋은 레스토랑을 찾기에 최고의 장소이다.
큐로니안 모래톱 오존과 소나무가 섞인 전형적 발틱해안의 향기는 리투아니아 발틱해안을 대부분 차지하는 큐로니안 모래톱의 북쪽 리투아니아 절반에서 최고조에 달한다. 이 지역에는 유오드크란테(Juodkrante), 페르발카(Pervalka), 프레일라(Preila) 니다(Nida) 등 4개의 마을이 있는데 모두가 해변으로부터 2 km이내에 있다. 엘크, 사슴, 야생 멧돼지 등이 사는 모래언덕과 소나무숲으로 우거진 98km의 분리된 가느다란 모래톱에는 신비한 기운이 감돈다. 큐로니안의 전통방식으로 신선하게 훈제된 맛있는 어류는 여기에서 맛볼 수 있는 최고의 음식이다.
여름에는 니다에서 제트스키와 노젖는 보트를 빌릴 수 있다. 얼음낚시와 보드카를 마시는 것이 겨울에 주로 하는 것들이다.수영에 적합하지 않은 곳도 있기 때문에 다이빙하기 전에 산호초와 모래톱부근의 수질을 검사해봐야 한다. 반도를 따라있는 모래언덕은 신비하며, 이들의 조금씩 계속되는 침식은 환경보호론자들에게 큰 걱정거리이다. 이런 이유에서 지정된 장소에서만 걸을 수 있고, 모래를 안정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꽃들을 꺾어서는 않된다.북쪽 끝에 있는 스밀튀네(Smiltyne)에서 모래톱까지 버스가 운행된다. 페리가 본토의 클라이페다(Klaipeda) 마을에서 스밀튀네까지 운항한다. 빌니우스와 다른 주요도시에서 클라이페다까지 버스와 기차로 갈 수 있다.
낙타처럼 두 개의 혹이 있는 작은 언덕은 크고 작고, 비싼 것과 싼 것, 나무로 된 것과 쇠로 된 것 등 수 천 개의 십자가가 이루는 숲으로 덮여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신앙심에서 무엇인가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바쳐졌다. 이곳에 십자가를 세우는 전통은 14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소비에트 시절에 적어도 세 번은 불도저로 밀렸만 다시 세워졌다. 바람이 불 때나 고요할 때 십자가와 묵주에서 나는 소리가 섬뜩한 기분을 자아낸다. 십자가언덕은 시아울리아이 북쪽 10km,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Riga)의 동쪽 2km에 있다. 시아울리아이는 카우나스 북쪽 140km 지점에 있으며 카우나스와 빌니우스 모두에서 편리한 기차와 버스 연결편이 있다.
이 휴양지는 19세기부터 광물온천의 치유능력을 필요로 하는 이유에서 생겨났다. 드루스키닌카이는 현대 유태인 조각가 자크 리프쉬츠(Jacques Lipchitz)의 탄생지이며, 뛰어난 낭만파 화가이며 작곡자인 미카류스 콘스탄티나스 시우르리오니스(Mikalojus Konstantinas Ciurlionis)의 고향이기도하다. 그의 양식화된 큰 규모의 조상과 추모박물관이 있다. 드루스키닌카이는 남부 리투아니아 네무나스(Nemunas )강에 있으며 벨라루스국경과 멀지않다. 빌니우스에서 휴양지로 직행 버스와 기차편이 있다.
이 자그마한 도시는 겨울에는 조용하지만, 여름에는 리투아니아 최고의 해변 휴양지로 변신하며 숙박시설 역시 프리미엄이 붙는다. 긴 모래해변과 그 뒤의 소나무로 덮인 모래언덕, 장미정원이 있는 커다란 식물원, 이교도사원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는 언덕, 훌륭한 호박박물관 등을 볼 수 있다.
팔랑가에서는 6월 첫 주에 화려하게 여름의 시작을 알리며 8월 마지막 토요일에 대단위의 거리 사육제, 시장, 노래축제, 팝 콘서트, 등이 함께 막을 내린다. 팔랑가는 클라이페다 북쪽 30km 지점에 있고 가장 가까운 기차역인 라트비아 국경도시 크레팅가(Kretinga)에서 18km떨어져 있으며 클라이페다와 빌니우스에서 매일 기차편이 있다. 버스편은 아주 많다. 팔랑가에 진입시 자동차운전자는 소액의 통과료를 지불해야 한다 이그날리나 핵발전소(Ignalina Nuclear Power Plant) 만약 당신이 돌연변이 세대의 원조가 되고 싶은 설명할 수 없는 충동을 가지고 있다면 세계에서 가장 큰 체르노빌 같은 양식의 RMBK 원자로를 방문하면, 당신의 내면과 외면을 그대로 남아있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비사기나스(Visaginas)의 도심지에는 매일의 방사능수준을 기록하는 가이거 계수기가 있다. 발전소에는 두 개의 RMBK원자로가 있으며 흑연에 의해 냉각되나 격리시스템이 없다.
만약 사고가 발생하면 방사능은 공중으로 그대로 유출된다. 비사기나스는 빌니우스 북동쪽 120km에 있다. 만약 개인 교통수단이 없으면 기차가 빌니우스와 발전소 남쪽 50km의 이그날리나까지 다니므로 여기에서 지방버스나 택시를 이용하여 비사기나스까지 갈 수 있다.
유럽의 중심(Centre of Europe) 1989년 프랑스국립지리학회는 빌니우스 북쪽 25km지점인 몰레타이(Moletai)로 가는 도로 중 한 지점을 유럽중심으로 지정했다. 이 지점은 작은 화강암으로된 조각상으로 표시되었으나 훼손되어 중심에서 유럽 각국의 수도까지의 거리를 표시한 피라미드모양의 새 조각상이 계획되어있다. 여기에 가려면 빌니우스에서 몰레타이로 가는 도로에서 'Europas Centras'라는 표지판에서 우회전하면된다.
옛날 리투아니아의 수도였던 트라카이는 지금은 섬과 호수가 있는 매력적인 시골풍의 작고 조용한 도시이다. 도시의 대부분은 모세의 율법을 따르는 바그다드에서 생겨난 유태인의 한 분파-카라이테스(Karaites)에 의해 세워진 오래된 나무 오두막집이 흩어져 있는 반도에 위치한다. 카라이테스들은 1400년경 뷔타우타스대왕(Vytautas the Great)의 수행원으로 봉사하기위해 트라카이로 왔으며 이 가운데 150여명은 여전히 이곳에서 살고있다. 이들의 숫자는 급격히 줄고 있어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적은 소수민족이 곧 소멸할 것이라는 우려를 심화시키고 있다. 1997년 개조된 작은 카라이테스 박물관, 19세기 초기의 카라이테스 기도원이 있다. 트라카이는 빌니우스 서쪽 28km지점에 있으며 기차와 버스로 연결된다. 크로스컨트리 스키, 아이스스케이팅, 터보간썰매타기 등이 겨울에 인기있는 스포츠들이다. 동부의 아우크스타이티야 국립공원에 가장 좋은 크로스컨트리 스키코스가 있다. 또 공원에는 카누타기에 좋은 장소가 있으며, 카누여행을 조직해 주며 공원의 관광오락센터에서 장비를 빌릴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조류를 관찰하러 서부 해안지대로 오는데 특히 큐로니안 산호초의 동부에 면한 벤테(Vente)는 조류보호구역의 중심지이다.
빌니우스의 낚시인 동호회(Fisherman's Club)는 리투아니아의 모든 어류 종류에 관한 조언을 해주며, 낚시여행을 알선해준다. 한 겨울에 얼어붙은 큐로니안 산호초에서 하는 얼음낚시는 아주 유명하다. 빌니우스에서 스카이다이빙과 기구타기를 즐길 수 있다. 어디서나 자전거를 빌릴 수 있으며, 대부분이 평지이므로 자전거타기는 즐겁다. 빌니우스나 카우나스에서 대부분의 유럽국가의 수도로 가는 항공편이 자주 있다. 리투아니아와 북미, 오스트레일리아, 아시아 등과는 직항편이 없다. 빌니우스공항은 시중심에서 5km 떨어진 키르티마이교외에 있는 반면, 카우나스공항은 구시가지에서 10km북쪽에 있다. 리투아니아까지 벨라루스,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독일, 노르웨이, 폴란드, 러시아, 스웨덴에서 버스가 운행되나 가장 싸지만 불편한 방법이다.
리투아니아와 폴란드, 벨라루스 간의 버스는 오랫동안 지연하기로 악명 높다. 자동차운전자는 종종 라즈디야이(Lazdijai)와 폴란드의 오그로드니키(Ogrodniki)의 국경에서 길게는 4일간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 리투아니아 국경수비대는 오늘날에는 상당히 여유가 있다. 여권에 스탬프를 받는 것이 어렵지않으며 웃음을 띄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를린에서 상페테스부르그로 가는 기차는 빌니우스를 경유한다. 폴란드에서 온다면, 바르샤바에서 카우나스로 가는 직행기차를 타서 빌니우스로 자주 연결되는 기차편을 이용하면 된다. 바르샤바에서 빌니우스로 가는 기차는 벨라루스를 경유하므로 비자가 필요한 경우, 통과비자를 꼭 준비해야 한다.
매일 폴란드와 에스토니아를 잇는 발틱익스프레스(Baltic Express)는 세 군데의 리투아니아 도시를 지나간다. 서부해안의 항구도시 클라이페다와 덴마크의 오르후스(Arhus), 프레데리시아(Fredericia), 코펜하겐, 독일의 키일(Kiel), 무크란(Mukran), 영국의 하위치(Harwich) 등 간에 페리가 운항된다. 버스와 기차편은 어디든지 있으므로 여행하기에 가장 좋다. 버스가 빠르고 약간 싸지만, 기차도 절대 비싸지 않다. 일반석으로 여행하면 잔돈으로 100km 정도를 갈 수 있다. 주요도로는 훌륭하며 교통량이 적고 거리가 가까우므로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도 괜찮다. 자동차대여는 비싸므로 직접 자동차를 몰고 가는 것이 좋다.
리투아니아에서는 자동차는 우측으로 운전하며 음주운전은 절대 금지다. 사이클여행은 리투아니아에서 활성화되지는 않았지만 평탄한 길, 작은 국토, 적은 교통량 덕분에 자전거타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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