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귀포시 대포동의 하천
지표에 내린 강수의 일부는 증발되고, 일부는 지하로 스며들며, 일부는 지표면을 따라 흐른다. 이때 지형적으로 주변부보다 낮은 요지(凹地)인 곡지(谷地)를 따라서 일정한 유로(流路)를 유지하며 사면의 경사 방향으로 흐르는 것을 하천(河川)이라 한다.
제주도의 하천은 한라산체를 발원지로 하여 60여 개의 하천들이 해안 방향으로 방사상(放射狀)으로 발달되어 있다. 제주도는 남북 사면이 급하고 동서 사면이 완만하며, 동서 장축(長軸) 방향에 넓은 용암대지(熔岩臺地)가 분수계(分水界)를 이루고 있어, 제주도의 하천은 동․서부 지역보다 남․북부 지역이 더 발달되어 있다.
제주도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강수량이 많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하천은 예외 없이 평상시는 말라 있다가 폭우 때만 물이 흐르는 간헐하천(間歇河川)이다. 제주도 하천들이 평상시 말라있는 이유는 현무암의 지질학적 특성 때문이다. 현무암은 그 특성상 절리가 발달되어 있어 물이 지하로 쉽게 빠져 버리고, 표토(表土)가 얇아서 물을 저장하기가 힘들다. 또한 경사가 급하고 유로가 짧아 일시에 바다로 흘러가 버린다. 하도(河道)를 따라 물이 흐르더라도 그 구간은 대부분 해안가 근처의 하천 일부에 불과하다. 제주도의 하천은 효돈천(‘돈내코’)처럼 하천 일부 구간에서 물이 흐르다가 복류(伏流)해 버리거나, 동해천(‘선궷내’)처럼 하류만 지하수가 용천(湧泉)하여 물이 흐르거나, 대포천(‘앞내’)처럼 전 지역이 평시에는 건천(乾川)이었다가 폭우 때만 물이 흐르는 등 다양한 특성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발원지에서 하구까지 사시사철 물이 흐르는 하천은 하나도 없다.
대포 지역에는 ‘동해천’(東海川:선궷내)과 ‘대포천’(大浦川:앞내) 두 개의 하천이 있다.
두 하천은 특별한 지명이 없고 책이나 지도, 사람들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대포 지경 동쪽 경계에 있는 하천을 대포 주민들은 속칭 ‘선궷내’라 부른다. 어떤 사람들은 ‘송잣내’, ‘큰이물내’, ‘종남샘내’, ‘농가물내’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대포십경(大浦十景)에서는 ‘선천(先川)’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중산간지대 일부 구간에서 회수 마을 동쪽을 통과해서 그런지 ‘회수천’이라고 표기한 지도도 있다. ‘선궷내’ 중상류 지역인 대포 중산간 지경에는 조선시대 관방시설의 하나인 동해방호소(東海防護所/東海城)가 있었다. 제주도 고지도(古地圖) 중 <탐라지도병서>(1709년) 및 <대정군지도>(1872)에서는 이와 관련지어 ‘선궷내’를 ‘동해천(東海川)’, ‘선궷내깍’ 일대를 ‘동해포’(東海浦)라고 표기하고 있다. 따라서 ‘선궷내’의 지명을 동해천(東海川)으로 통일하여 표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대포 동(東)동네를 통과하는 건천(乾川)을 대포 주민들은 ‘앞내’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인근 회수 주민들은 회수 동쪽을 흐르는 동해천을 ‘앞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혼동을 방지하기 위해 대포 마을을 통과하고 대포 포구에 이르러 끝나는 이 하천을 ‘대포천’(大浦川)이라고 표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이 글에서는 ‘대포천’(大浦川)과 ‘동해천’(東海川)으로 통일하여 표기함을 밝힌다.
그리고 대포 인근에 있는 하천으로는 폭포 관광지로 유명한 ‘천제천’이 있고, 서귀포 시민의 식수원으로 이용하고 있는 ‘대천’(큰내)과 ‘악근내’가 있다.
① 대포천(大浦川:앞내)
대포천은 ‘거린사슴’과 산록도로 중간인 표고 약 520m 지점에서 시작된다. 대포천의 길이는 직선거리 약 7.6㎞ 정도로 비교적 짧은 하천에 해당한다. 하천의 유로(流路) 형태는 직선상(直線狀) 하도(河道)에 해당하는 직류하천(直流河川)이며, 침식에 의해 일부 지역에서는 V자형 계곡을 보이기도 하고, 경사급변점이 나타나기도 하며, 여러 곳에 소(沼)가 있기도 하다.
대포천은 지금은 폐촌되어 버린 사단동 마을 동쪽을 거쳐, 임페리얼호텔 서쪽을 통과한 다음 회수 마을 서쪽에 이른다. 회수 마을과 ‘불목당’ 사이에서는 하천 모습이 사라지는 듯하다가 중문동사무소 북동쪽에 와서 하천 모습을 정비한 다음, 새로 개통된 대포 마을 진입로를 따라 내려온다. ‘큰솔동산’과 풍림빌리지를 깊게 갈라놓은 다음, 동동네 및 ‘기정목’을 지나 ‘큰개물’에 와서 바다와 만난다.
‘대포천’은 마치 사막의 와디(wadi)처럼 사시사철 물이 흐르지 않는 전형적인 간헐하천이다. 그러나 폭우가 쏟아질 때는 엄청난 물이 밀려 내려와 ‘내치면서’ 대포 동(東)동네 주민들에게 수해를 입히기도 한다. 여러 곳에 물웅덩이(沼)가 발달해 있는데 ‘큰솔동산’ 동북쪽의 ‘큰소’와 마을 영안소 앞의 ‘제비낭소’가 많이 이용된다. 특히 큰소는 웃동네 주민들의 목욕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었고, 동네 어린이들이 잠자리, 소금쟁이, 개구리 등을 잡으면서 놀던 놀이터이기도 했다.
하천 어떤 곳에서는 경사 급변점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기정목’이다. ‘기정목’은 폭우에 의해 물이 흘러내릴 때 낙수(落水) 현상으로 폭포가 형성되어 일대 장관을 이루기도 한다. ‘기정’은 절벽을 의미하고 ‘목’은 입구를 나타낸다. 즉, 큰개 포구의 길목에 있는 하천 절벽이란 뜻이다.
중․상류 지역에서 지하로 복류해 흐르던 수맥의 일부가 이르러 해안가에서 용출하기도 하는데, 그 대표적인 샘이 ‘큰개물’에 있는 ‘구명물’이다. ‘구명물’은 얼마나 차가운지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에도 몇 분을 견디기 어려울 정도이다. 사시사철 일정하게 솟아나는 것은 아니며, 여름에 가장 많이 용출된다. 이 곳은 대포 마을의 공중목욕탕 역할을 하기도 했다.
‘대포천’은 원래 ‘동물개동산’ 앞으로 흘렀다고 한다. 이것을 과거 원씨 집안에서 풍수지리의 이점을 살리기 위해 ‘기정목’ 쪽으로 물길을 돌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확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속칭 ‘앞내’라고 불리는 ‘대포천’의 원래 유로(流路)는 김석하 집 올레부터 김경식․김장근 집을 거쳐 이창옥 밭으로 해서 ‘혹드르’와 ‘동물개동산’ 사이를 가르며 ‘대포코지’ 쪽으로 흘러갔다고 한다. 이것을 원씨 집안 15세 조상께서 ‘기정목’으로 해서 대포 포구 쪽으로 흐르도록 물길을 돌렸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 구전(口傳)의 사실 여부는 좀더 면밀한 검토가 요구된다. 왜냐하면 김석하 집 올레부터 김장근 밭 사이가 지형적으로 약간 높은데다, 이 구간에서 하천에 의한 침식의 흔적 혹은 원력(圓礫)이나 충적층(沖積層) 등 구하도(舊河道)의 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동물개동산’ 옆으로 흘렀다고 하는 하천은 폭우시 대포 마을 일대에서 내린 빗물이 지표면을 따라 포상홍수(布狀洪水)로 흐르다가, 김장근의 굴렁진 밭으로 모여들어 이창옥 밭과 ‘동물개동산’ 앞을 지나 ‘대포코지’ 방향으로 흐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② 동해천(東海川:선궷내)
‘동해천’은 크게 동․서 두 개의 물줄기로 이루어졌다. 서쪽 내는 ‘거린사슴’ 바로 북쪽 해발 약 680m 지점에서 발원하고, 동쪽 내는 ‘갯거리오름’ 동쪽 해발 약 640m 지점에서 발원한다. 이 두 개의 내[川] 사이 중산간 일대는 대포 지경 북쪽 지역에 해당한다.
‘거린사슴’ 부근에서 발원한 서쪽 내는 경사 방향을 따라 남향한다. 임페리얼 호텔 동쪽을 통과하여 구(舊) 대포 공동 묘지 서쪽으로 1100도로를 가로지른 다음, 회수 마을 동쪽을 따라 남으로 내려온다. 대영농장과 중문상업고등학교 사이를 통과한 다음, ‘개소’를 지나 약천사(藥泉寺) 서쪽 ‘선궤’에 다다르면 다량의 물이 솟아난다. 약천사 남쪽 해안도로 다리가 있는 ‘구시목’ 일대에서 동쪽 내와 합류하면서 하도(河道)가 더욱 넓어지고 유량도 더욱 풍부해진다. 남쪽으로 조금 더 내려가 ‘선궷내깍’에 이르면 하천이 끝난다. 이 서쪽 내는 동해천의 본류(本流)를 이루면서 일부 지역에서 회수동과 경계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갯거리오름’ 부근에서 발원한 동쪽 내는 법정사(法井寺) 서쪽을 지나 1100도로, 산록도로를 가로지르며 남향한다. 탐라대학교 입구 서쪽을 지나 법화사(法華寺) 서쪽으로 내려오면 ‘구산봉’이 가로막는다. ‘구산봉’을 서쪽으로 우회한 다음, 남향하여 ‘하원동산’ 서쪽을 지나 약천사(藥泉寺) 동쪽에 이른다. 여기까지의 하도는 물이 마르는 건천을 이룬다. 약천사 부근에 와서는 ‘큰이물, 종남샘물, 농가물, 도욕샘물, 할망물’ 등 다량의 샘물이 용천하여 이 내로 모여든다. 서쪽의 ‘선궷내’에 대하여 동쪽의 내를 흔히 ‘큰이물내’라고 많이 부른다. ‘큰이물내’는 해안도로 다리가 있는 ‘구시목’ 지점에 와서 서쪽의 ‘선궷내’와 만나 ‘선궷내깍’으로 흘러들어 간다. ‘큰이물내’는 ‘동해천’의 지류(支流)에 해당하며 일부 지역에서는 대포동과 하원동의 지형적 경계선 역할을 하기도 한다.
동해천 본류(本流)인 ‘선궷내’는 ‘거린사슴’ 일대 발원지에서 하구인 ‘선궷내깍’까지 직선거리 약 8.2㎞ 정도로 대포 마을 동동네를 통과하는 대포천보다 길지만, 주변의 천제천이나 ‘큰내’(대천=강정천)보다 유로의 길이가 짧은 편이다. 하천의 형태는 직선에 가까운 직류하천으로 하방침식(下方浸蝕)에 의해 일부 지역에서는 V자형 협곡을 이루기도 하고, 곳곳에 경사급변점이 나타나기도 한다. 어떤 곳에서는 물웅덩이인 소(沼)가 형성되기도 한다. 특히 ‘선궤’ 위쪽에 있는 ‘개소’는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고, 담수량이 많으며 매우 깊다. 사방이 숲으로 둘러져 있어 신비스런 모습을 자아내게 한다.
‘동해천’은 상류, 중류 지역에서 제주도 하천의 일반적 특성인 건천(乾川)을 이루지만, 약천사 부근인 하류에 와서는 땅속으로 복류하던 지하수가 대량 용출하여 사시사철 풍부한 유량을 보인다. 인근 ‘천제천’과 ‘대천’, ‘창고천’, ‘연외천’ 등도 이와 동일한 패턴을 보인다. 대포 주민들은 ‘동해천’ 물을 주변 농경지에 관개하여 기름진 논으로 개간하기도 했다. 그 결과 대포는 인근 강정과 더불어 산남(山南) 지역의 쌀 주산지로 유명했다. 현재는 전부 폐답되어 버리고 주로 감귤원으로 이용하고 있다. 관개수로 및 논둑, 계단식 논 등의 흔적들이 아직도 남아있어 과거의 논농사의 모습을 짐작케 한다.
‘선궷내’의 지명은 ‘선궤’에서 유래된다. ‘선’은 서있는(立) 것을 의미하고 ‘궤’는 굴을 의미하며, 내는 천(川)이다. 대포동 1208번지 일대에 작은 바위그늘집 정도의 굴이 있는데 이를 ‘선궤’라고 하고, 이를 중심으로 흘러내리는 내를 ‘선궷내’라고 한다. ‘선귓내/선귓물/성깃내’ 등의 표기도 모두 이것에서 비롯됐다. ‘동해천’의 지명 유래는 조선시대 관방시설의 하나인 ‘동해방호소(東海防護所)’에서 비롯된다. <한라장촉>(1702), <탐라지도병서>(1709년), <제주삼현도>(1750), <대정군지도>(1872년) 등 과거 제주도 고지도를 보면 대포(大浦)라는 마을 지명의 표기와 함께 동해방호소가 대포 중산간 지역에 크게 그려져 있고, 해안가에는 대포연대의 그림도 그려져 있다. 특히 <탐라지도병서>와 <대정군지도>에는 ‘선궷내’를 ‘동해천’(東海川), ‘선궷내깍’ 일대를 ‘동해포’(東海浦)라고 표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