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교육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전부터 시작된 학문 영역이라는 것은 누구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주술적인 방법이 미개사회에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고 주술적 방법에서 탈피하기 위한 그리스인들의 노력이 전적으로 남아있다.
성경에도 사울의 우울증 치료를 위해 다윗은 수금을 뜯었고 그 때 악령은 떠나갔다는 기록들이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고대의 역사는 구체적인 치료교육의 방법적 접근이 어렵고 고증도 힘이 든다.
장애인에 대한 역사적 개관은 철학적 가치관에 의해 버려졌다가 보호를 받는 등의 처참한 역사의 흐름을 겪었다. 다소 동서양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개 조소와 편견, 보호, 교육의 과정을 거친다.
고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장애인은 죽임을 당했거나 조롱거리가 되었으며, 수용소로 보내지기도 했고, 신체적인 치료를 받았거나, 자신을 치료하는 법을 배우기도 하였다. 특히 20세기 전에는 장애인에 대한 태도가 문화와 시대에 따라 다양하였다. 즉, 고대 그리스에서는 지체부자유아를 유기했지만 중세기 프랑스에서는 맹인에게 특전을 주기 위해 특정한 장소를 제공하였다. 또한 장애인에 대한 정의도 문화에 따라 다양하였는데 예를 들면 에스키모 언어에는 장애에 대한 용어가 적은 반면, 다른 언어에서는 상태를 구별하는 많은 용어들이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장애의 상태를 구별하는 용어가 많은 편인데 많은 순서로는 장님, 벙어리, 병신, 귀머거리, 꼽추 순이다.
장애인에 대하여 맨 처음 관심을 보인 집단은 종교적인 조직으로 원시시대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사원이나 수도원에서는 자애로운 간호를 제공하여 왔으며, 사회에서도 점차적으로 장애인과 그들의 가족을 도와야 한다는 책임을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6세기에는 법에 따라 장애인들을 죄수와 같이 취급하였으나 17세기경 영국에서는 가난한 사람과 장애인을 도와야 한다는 법이 통과되었고, 병원이 설립되었다. 우리의 역사를 보면 신라 유리왕 때 고아, 과부, 홀아비, 폐질자에 대한 급식양호 기록이 삼국사기에 남아 있고, 조선 정조 때 판휼전칙을 제정하여 유기아의 양호제도가 있어 구호대상아의 보호와 불구폐질자 및 맹자의 자립을 위한 직업보도의 기록들이 있으며 특히 조선시대의 서당교육은 장애자에 대한 인도주의 훈육방법의 좋은 예가 된다.
근세에 들어와 근대의 치료교육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프랑스의 Itard가 1799년 파리 교외에서 사냥꾼에 의해 발견된 아베롱의 야생아를 훈련시켰다. 18세기 영국 의사인 John Hunter는 근육 재훈련의 근거를 설명하였고 환자의 의지와 관절 운동범위의 관계에 초점을 두고 연구하였다. 또한 이 무렵 작업치료와 오락치료가 처음 사용되었다. 19세기에 들어와 의학의 발달로 치료교육에 대한 관심이 증가되기 시작하였으며 이 관심의 첫 증거는 지체부자유아의 훈련이었다. 그 당시에는 작업치료를 할 일 없는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나, 치료교육 목표에 작업요법을 포함시키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 의료사회사업부가 처음으로 뉴욕의 Bellevue 병원에 생겼고, Lillian Wald에 의하여 첫 방문간호사업이 시작되었으며 펜실베니아 대학에 처음으로 물리치료 방문교수가 있었다.
문명적 이기의 발달과 정교한 무기류의 등장은 치료교육의 발전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 전쟁이 진행되면서 부상이나 그로 인한 장애가 출생시의 사고보다 더 많이 발생하였다. 부상당한 군인을 전쟁터에 다시 보내든가 사회에 생산적인 사람으로 다시 보내기 위하여 통증을 감소시키고 편안하게 해주는 것 이상의 치료가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또 정보사회로 바뀌면서 산업장 사고, 자동차 사고, 여가활동이나 운동으로 인한 부상 때문에 많은 장애인이 생기게 되었으며, 과학·의학·기술정보체계의 발달로 장애인과 만성질환자들도 정상적인 수명을 유지하게 되었다. 또한 치료의학과 예방의학의 발달로 인해 인간의 평균수명이 연장되면서 만성질환 및 장애 인구의 증가를 초래하게 되었고, 장애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에게 또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시대적 상황에 의해 치료교육의 발전은 20C에 이르러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고 치료교육학의 지주가 되는 학문도 의학과 교육학에서 심리학, 사회학, 공학 등으로 확대되어 가고 있다.
6. 치료 교육의 태동
치료교육학이란 말은 독일어의 Heilp dagogik으로부터 나왔다. 이 가운데 Heil은 heilen으로 부터 나온 말로서 이는 병이나 상처들을 낫게 한다는 의미이다. Padagagik은 교육학이란 의미이다. 이 두 가지 개념을 합친 개념으로 Heilp dagogik이란 말이 생겨난 것이다. 이것을 우리 말로 번역하여 그대로 치료교육 혹은 치료교육학으로 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 치료교육이란 말은 교육치료와 동의어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으며 또한 원어의 p dagogische Therapie, 교육적 치료로써 치료법의 의미를 강화시킨 개념으로써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이 말 속에는 치료를 한다는 의미와 교육을 한다는 두 가지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치료교육을 실시하는 사람이 의사인가, 교사인가에 따라 치료교육은 치료 행위로 생각할 수 있고 교육 행위로 생각할 수도 있다. 어느 쪽으로 해석해야 좋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분명치 않은 부분도 있으나 우리 나라에서 쓰는 재활이란 의미도 포함된다.
7. 치료교육에 공헌한 사람
7.1. 이따르 (Jean Marc-Gaspard Itard, 1774-1838)
이따르는 원래 외과 의사였으나 프랑스 혁명 당시, 정신병자의 해방으로 유명한 피넬(Philip Pinal)의 영향으로 심리학적 문제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나중에 파리 농학교 교사가 되어 이비인후과도 습득하여 농아자의 잔존청력의 차이를 조사, 청력훈련을 하였다.
1799년 파리 교외 아베롱의 숲에서 완전 야생으로 큰 11∼12세 소년이 발견되었다. 소년은 산야를 발가벗고 달려 다니고 야수와 같은 생활을 하며 언어가 없으며 완전히 인간성을 상실한 듯이 보였다. 이따르는 이를 환경 때문에 인간성을 상실하였다고 보고, 생활환경을 보통 상태로 돌려 적당한 훈련과 교육을 하면 인간성을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소년을 자신이 키우기로 하였다. 소년의 정신지체 상태를 개선하기 위하여 자신의 의학적 지식을 기초로 하였으며 농아자의 잔존청력을 훈련한 경험을 살려, 야생아를 교육하였다. 이따르가 실시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7.1.1 야생아의 생활을 일상적인 것으로 변화시킬 것.
7.1.2 강한 자극으로 감각을 불러 일으킬 것.
7.1.3 타인과의 접촉을 늘려 관념의 수를 증가시킬 것.
7.1.4 필요한 때에 언어 사용훈련을 할 것.
7.1.5 생리적 욕구와 관련시켜 정신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줄 것.
이와 같은 방법으로 소년을 길렀다. 그리고 5년간 고심하여 소년의 정신지체 상태의 개선에 노력하였으나 기대한 만큼의 효과를 얻지 못하고 더우기 사춘기에 이르러서는 다루기가 곤란해져 결국 이따르는 계획을 포기하고 두 번 다시 정신지체아 문제에 손을 대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이따르가 실시했던 방법을 통해 소년의 감각이 전부 예민하게 되고 범위가 넓어졌으며 주의력, 기억력 등의 지능 전반에 걸쳐 그 기능이 향상되었다. 또한 인간다운 감정도 눈을 떠 타인과의 라포르 형성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이따르의 실험은 정신지체아의 훈련 및 교육에 대해 교두보를 형성하고 후세에 큰 영향을 끼쳐 세강으로 의해서 이어졌다.
7.2. 세강 (Edouard Seguin, 1812∼1880)
세강은 처음에는 농아자 교사를 했으나 이따르의 밑에서 의학을 배웠으며 동시에 유명한 정신의학자 에스키롤(J. E. D. Esquirol)의 제자가 되어 이 두 사람의 영향으로 정신지체아의 연구에 전념하여 의학 특히 생리학적 원칙에 의한 교육을 수립하였다.
세강은 이따르와 달리 처음부터 정신지체아로 판단된 사람을 생리학적 견지의 교육에 의해 철저하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 방법은 기본적으로
·감각과 근육훈련
·도덕적인 치료
를 중요시하였다. 그리고「백치는, 치유 불가능하지만 의학적-교육적 치료(medizinische p dagogische Behandlung)로 개선되지 않는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 감각훈련 중에서 촉각훈련은 주의력 자극에 무엇보다도 좋은 방법이라고 하였다. 그 밖에 청각, 시각, 그리고 그 외의 감각을 크게 이용하였다.
체조는 신체기능 뿐 아니라 정신적 기능 발달을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의 훈련은 결코 획일적인 것이 아니라「아이들마다 각각 다른 장애」라는 표현을 하며 항상 개별적으로 가장 적당한 훈련방법을 연구하였다. 또한 그는 교육에 있어서 정신지체의 순종(順從)성과 교사의 일상에 관한 여러 가지 조치가 틀리지 않을 것과 그리고 정신지체와의 신뢰감을 가질 것 등의 조건을 갖추지 않으면 노예와 같은 순종이 되며 성격에도 문제를 일으킬 염려가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형태뿐인 절대복종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만 한다고 하였다.
백치 및 그 밖의 정신지체아의 도덕적 치료, 위생 및 교육」(Traitement moral, hygi ne et ducation des idiots et des autres enfants arri r s)라는 저서에 그의 교육방법을 정리하였다.
7.3. 구겐뷸 (Johann Jakob Guggenb hl, 1816∼1863)
구겐뷸은 스위스에서 출생하여 츄리히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1863년 20세 때의 어느 날 학위논문의 문헌을 모으기 위해 젠도로푸라는 마을을 지나갈 때 한 사람의 곱추 크레친병 환자가 도로변 성모상에게 간절한 기도를 드리는 것을 보고 크게 마음이 움직였다. 이 일은 그가 일생을 크레친병 환자와 백치를 위해 봉사하는 동기가 되었다. 1841년 그는 크레친병 환자와 백치아동을 위해 해발 4000피트의 아벤도벨히에 크레친 및 백치아동의 치료시설을 지었다.
그의 크레친병과 백치아동에 대한 치료 이념은 환경 개선과 의학적, 교육적 치료였다. 구체적인 치료법은 세강과 같이 체조훈련과 실물교수(敎授)에 중점을 두었고, 환경개선으로는 신선한 외부공기와 태양광선에 둘러쌓인 산 허리에 시설을 지은 것이다. 의학적 치료에는 외부공기욕(外氣浴), 식이요법, 요오드의 투약, 유지류로 체표면의 마찰 등이 있으며 교육적 치료에는 감각훈련, 체조훈련, 계획적 학습, 직관수업 등을 이용했다. 그는 교육과 교수화를 의학적 치료법으로써 연결시켜 고원 결핵요양소를 창설한 최초의 사람이다. 그의 시설은 병원과 학교의 성격을 지닌 시설로써 작업학교가 부설되어 있어 실내의 작업과 농장 및 정원에서 작업을 지도했다. 그의 치료목표는 아동의 신체적, 정신적 발육이 시민으로서 활동 수준 단계가 되는 것을 의미하였다.
구겐뷸의 백치와 크레친병 환자에 바친 공적은 큰 것이었다.
7.4. 게오르겐스(Jens Daniel Georgens, 1823∼1886)와 다인하르트(Heinlich Deinhardt, 1830∼1880)
게오르겐스와 다인하르트는 모두 이름이 처음으로 치료교육학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으므로 여기에서는 두 사람을 함께 소개하기로 한다.
게오르겐스는 독일의 바트 듀르크하이므(Bad D rkheim)에서 태어나 처음에는 사범학교에서 공부했지만, 그 후에 자연과학과 치료과학을 공부하였다. 1848년에, 독일 라인강변의 보름즈(Worms)에서 여자고등학교를 창설했다.
1850년에는 바덴바덴에 최초의 프뢰벨유치원을 만들었다. 그러나 유치원은 2년 후 해산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그는 고국을 떠나게 되었다. 그 후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주하여 귀족 집에서 일을 하였으나, 그 뒤에 각지의 백치원을 시찰하던 중에 독일의 와이머에서 다인하르트와 알게 되었다. 1856년에 게오르겐스는 아내와 다인하르트와 함께 빈 가까운 바덴에 치료간호·교육원 레바나(Heilpflege-und Erzieh-Anstalt Levana)를 개설하였다. 이 레바나는 1년 후 리진그성으로 이전하였다. 여기에는 정신적, 신체적 장애가 아주 심한 사람이 수송되었다. 예를 들어, 백치, 간질, 크레친병 등이 포함되었다. 거기에는 병원부, 유아부, 유치원부, 상급부 그리고 도제학교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1858년 7월에는 6세부터 17세까지의 청소년 13명이 병원부에, 10세까지의 아동 9명이 건강부에 편입되어 있었다.
다인하르트는 동독에서 태어나 하레대학을 졸업하고, 여기서 헤겔철학의 제자로서 자유주의를 신봉하고 있었으나, 게오르겐스와 알게 되어 함께 레바나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게오르겐즈와 다인하르트는 함께 1861년「특히 백치와 백치원을 고려한 치료교육학」을 간행하여 처음으로「치료교육학」이란 용어를 정식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그 이전에 "치료하는 교육학"이란 생각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이와 같은 생각을 신체적, 도덕적 혹은 정신적 결함이 있는 사람에게 적용하였다. 그리고 치료교육에 있어서는「심각한 발달지체와 중증 결함은 치유할 수 없으나, 그렇다고 결함을 파악하지 않으면 안된다. 더욱더 천부적 인간성 현실화에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했다.
치료교육의 방법으로는 우선, 환경을 정비하고, 건물의 내부와 홀은 예술가의 그림이나 조각가의 상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페스탈로치의 입상도 장식되어 있었다.
그리고 치료교육에 대한 생각으로는 의학, 교육적의 양면의 처치를 섞어서 치료교육하는 것으로 정신적, 신체적 발달의 이상적인 효과를 올리려고 생각하였다. 즉, 의학적 치료와 교육학적 치료를 섞어 그 위에 서로 간의 좋은 점들을 보충하도록 하였다. 한편으로는 영양을 중요시하고 또 한편으로는 생활 상태를 중요시 하였다. 예를 들어, 체조는 크레친이나 그 밖의 백치를 개선하는 데 무엇보다 좋은 촉진제로 생각하였다. 즉, 체조에 의해 아동의 놀이가 가능해지고 놀이에 의해 모든 방면의 심신의 발달이 촉진되도록 하였다. 놀이로부터 의미있는 작업으로 이행해야만 한다고 하였다. 놀이 방법과 작업 방법은 프뢰벨 방법으로 되돌아 왔다. 또한 이 방법을 다양하게 변화시켜 놀이노래까지 만들어 내었다.
교육은 작업과 실물 관찰 위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론적인 원칙보다는 실험과 관찰을 통해 실용적이라고 증명되는 여러 방법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교재교구는 프리벨 완구가 레바나에서 만든 것을 이용하였다.
실제의 치료교육을 실시한 사람은 교사, 비상근의사, 미술가, 여성 교육자, 자원봉사자, 실습생 등이었다. 그들은 아동의 교육에 있어서 프뢰벨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작업 교육과, 작업에 의한 교육」이라는 원칙을 지켰다.
그들은 치료교육학을 개인 내부의 이상, 그리고 부적절한 환경에 의한 장애자교육을 총괄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따르와 세강 등은 정신지체자만을 치료교육의 대상으로 한데 비해, 이들은 정신 및 신체에 심한 장애가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거기에 더욱이 건강한 사람의 심신의 왜곡을 나타내는 사람도 포함되어 있다.
7.5. 몬테소리 (Maria Montessori, 1870∼1952)
몬테소리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났다. 당시에는 드문 일이었으나 여성으로서 의학을 공부해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의학박사가 정신과를 전공해서 1896년 정신과 크리닉 조수가 되었다. 그 밖에 로마 국립정신지체아 학교의 교원으로 근무했다. 또한 1907년에는 로마의 빈민가에「어린이집」이라고 하는 빈민가의 아동을 보호하는 일을 맡았다.
이와 같은 경력으로 의사이면서도 교육에 일생을 바치도록 되었으나, 직접적 동기가 된 것은 어느 정신병원에서 정신지체아들 몇 명이 식사 후에 마루에 떨어져 있던 빵조각을 손에 들고 놀고 있는 것을 보고 크게 느낀 바가 있었다. 이것은 빵조각 외에는 놀 수 있는 것이라고는 어느 하나 없다는 것에 크게 반성하였기 때문이었다. 몬테소리가 후에 교구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수 많은 교구를 개발한 것도 이와 같은 체험 때문일 것이다.
몬테소리의 치료교육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7.5.1 환경에 중점을 둘 것. 즉, 참된 인간 형성이란 세상의 기본적인 일들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 환경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7.5.2 자기교육(Auto-education)에 중점을 둘 것. 이는 교사가 앞에 나서서 가르치는 것보다 정신지체자가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한 것에 대해 스스로 교육하는 것이다.
7.5.3 치료교육의 훈련 방향은 감각훈련, 운동훈련, 일상 생활훈련에 의의를 둘 것.
7.5.4 교육에 있어서는 보수나 형벌이 없을 것.
7.5.5 공동작업의 경우에 질서와 조화의 분위기가 있도록 할 것.
7.5.6 환경설정은 자기교육이 행해질 수 있는 철저하게 준비된 장면설정(prepared envienment)을 할 것.
예를 들어 그녀가 개발한 교재를 상자에 많이 나열해 둔다. 즉, 어느 상자에는 일상 생활에 필요한 양동이, 청소비, 먼지털이, 은제품이나 구두약 등을 넣어두고, 또 다른 상자에는 문구로써 종이, 가위, 연필 등을 또 다른 상자에는 감각훈련용 색상자, 사운드박스, 까칠까칠하고 매끌매끌한 판자 등을 넣어 둔다. 그 외에도 교양에 필요한 책 등을 구비해 둔다. 이들로부터 정신지체자가 자유롭게 물건을 꺼내 자기교육을 하도록 한다.
7.5.7 교구 및 교재는 독특한 연구를 할 것.
몬테소리의 치료교육은 전반적으로 이론보다는 부분적인 교육의 실용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 감각훈련 및 운동훈련에 대해서는 세강이나 구겐뷸과 같으나, 환경설정에 대해서는 자기교육과 연관시켜 정신지체아가 자연스럽게 학습할 수 있는 상태를 적극적으로 설치하는 부분이 다르다. 또한 몬테소리는 이제까지의 치료교육자보다도 더욱 교육적이었으며 금세기에 있어서 위대한 교육자상을 보여주고 있다.
7.6. 데크로리 (Ovide Decroly, 1871∼1932)
데크로리는 벨기에의 오즈트랜드에서 태어나 벨기에의 겐트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학위를 받았으며 그 후에 베를린과 파리에서 수학한 후 브뤼셀의 외래진료소의 조수가 되었다. 1901년에 정신지체자 및 이상자를 위한 특별교육연구소를 창립하였다. 여기에서 데모어즈(Demoors)의 영향으로 자신의 치료교육학적 기본이념을 이룩하였다. 그리고 1907년에는 사립실험학교인「생활에 의한 생활학교」를 브뤼셀에 세워서 그의 이념인 필요에 의한 치료교육을 장애아에게 시도해 보았고, 자신의 교육원칙을 일반 학생에게도 적용해 보았다. 또한 교사양성에 있어서는 1920년에 브뤼셀종합대학에 교수로 임명되어 1926년 이후에는 소아심리학과 교육통계학 교수가 되었다.
데크로리의 치료교육학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7.6.1 데크로리는 시몬의 지능 진단법의 의의를 알고 있던 최초의 한 사람이었으며 심리 학적 프로필을 아동의 관찰사항에 도입하였다.
7.6.2 정신지체 아동의 교육은 해당 아동의 필요성에 따라 교육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 였다. 예를 들어 아동의 신체나 정신상태에 따라 필요한 것, 먹을 것이나 의류 등에 있어 필요한 것, 혹은 직업훈련에 있어서 필요사항, 환경과의 관계에 있어서 필요사항-가족관계, 살고 있는 지역사회와의 관계-등 각각의 생활상 현실적인 필요성에 따라 교육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
7.6.3 교육놀이(Educational Games)을 통해 경쟁심을 자극하고 아동의 정신적 에너지를 집중시켜 이것을 학습과정에 활용하였다.
7.6.4 자연의 상태에서 학교생활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성공하였다. 예를 들어, 정원이나 농장에서 동물이나 식물 및 모든 자연물을 관찰시킨다. 또한 방은 작업장도 될 수 있도록 하여 이 곳에는 주요한 교육자료가 될만한 것들을 준비해 둔다.
몬테소리와 데크로리가 다른 점은 몬테소리의 경우는 정규 수업적 교재에 필요한 교재를 준비하는 데 비해 데크로리는 교육적 놀이치료를 중요시한 점이다. 데크로리도 몬테소리와 같이 정신지체자에게 이용한 이와 같은 방법을 정상 아동에게도 적용하여 교육계에 있어서 정신지체자의 교육방법 내용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7.7. 헬러 (Theador Heller, 1869∼1938)
헬러는 빈에서 태어나 분트의 밑에서 맹아심리학을 공부했으나 그 후 정신지체아와 신경성장애 아동의 교육으로 옮겼다.
1895년, 26세에 부친과 함께 빈의 그린친그에서 치료교육원을 창립했다. 계속해서 1904년 「치료교육학의 기초」를 내고, 1914년에는「교육치료」를 발행, 더욱이 1925년에는 치료교육학의 기초 제 3판을 내었다.
헬러의 치료교육학에 관한 개념은 다음과 같다.
헬러는「치료교육학이란, 교육과 의학, 특히 정신상태의 병적 상태에 관계하는 의학과의 사이의 경계영역을 의미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치료교육학은 한편으로는 소아의 정신적 이상을 제거, 혹은 개선을 꾀하는 역할을 지니고 있음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이들의 교육과 수업을 효과적으로 실시하기 위해 어떠한 정신적 접근을 해야 좋은가를 연구하는 일이기도 하다」라고 하고 있다. 여기에서 치료교육학은 정신의학과 마찬가지로 소아의 정신적 이상을 제거, 혹은 개선을 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2수단은 일반적 정신의학과 같은 약물 등 좁은 의미의 의학적 방법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적 혹은 교수적 방법과 같은 정신적 방법에 의한다.
헬러의 저서「치료교육학의 기초」의 어느 항목에서도 약물이나 수술과 같은 좁은 의미의 의학적 처치는 방법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한편으로 정신지체란 정신장애이므로 치료교육학은 의학의 지식을 전제조건으로 하고 있다.
치료교육의 방법 가운데 특히 헬러가 강조하고 있는 것을 서술해 보면 다음과 같다.
7.7.1 정신지체아의 치료교육에 있어서 일반적인 주의사항
7.7.1.1 치료교육 대상인 정신지체아와 그 밖의 정신장애자의 정신상태는 천차만별이며 항상 변하므로 각각의 사례에 따라서 혹은 그 때의 상황에 따라서 적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기계적으로 정해진 방법을 맞추어서는 안된다.
7.7.1.2 정신지체아의 정신상태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적절한 치료교육을 행할 수 없다. 이를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생육력을 상세하게 조사하는 것이 절대 필요하다.
7.7.1.3 정신지체아는 정상아동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정신구조를 지니고 있음을 인식하여 기계적으로 정상아의 발달과 비교할 수 없다.
7.7.1.4 정신지체아에게 처치하는 경우는 우선 주의력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한 방법의 하나로는 물건을 고르게 하는 방법을 권한다. 물건을 고르기 위해서는 주의력을 필요로 한다. 또한 어느 쪽인가 결정하기 위해서는 의지력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물건을 고르는 것은 주의력과 의지력 훈련이 된다.
7.7.1.5 정신지체아 교육은 철저하게 실제적인 교육특징을 지녀야만 한다. 이는 몬테소리나 데크로리 등의 주장과 동일하다.
7.7.1.6 교육적 놀이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그 방법을 연구한다. 이는 데크로리의 설과 같다.
7.7.1.7 상벌을 신중히 해야 한다. 상은 주어야 할 가치가 있는 경우에만 주어야 하며 무턱대고 주어 상이 촉진제가 되지 않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또한 상이 본인에게 과한 부담이 되든가 주위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벌은 상 이상으로 주의해야만 한다. 나쁜 행동의 대부분은 병적 현상이 나타난 것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또한 벌에 대해서는 이상할 정도로 민감한 정신지체자가 있는 가하면 극히 둔한 사람도 있으므로 야단치는 방법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육체적인 징계를 가하는 일은 절대 안된다.
7.7.1.8 작업종목이 갖고 있는 치료교육적 활동은 다음과 같은 점을 들 수 있다. 화분재배는 이타적 감정을 키우는 데 유효하다. 수예는 종합적 능력을 훈련한다. 작업치료는 수업에 대한 매우 좋은 준비상태를 가져다준다. 또한 의지와 감정의 교육에 대한 교육에 최고의 가치가 있다. 또한 도덕적 교육에 대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7.7.1.9 치료교육자의 치료교육행위는 시작과 종료가 항상 변함없이 시종일관해야만 한다.
7.7.1.10 교사는 정신지체아에게 경멸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예를 들어 학생을 이유없이 꾸짖는 일이나 학생이 어리광부리도록 하는 일은 비행이나 나쁜 장난을 크게 할 뿐이다.
7.7.1.11 정신지체아의 교육 기간 중에는 정신지체아에게 영향을 끼칠 외부 조건을 정비한다. 예를 들어 신체적 상태의 의학적 개선, 생활 상태를 건강하게 하는 것, 영양의 개선 등에 노력한다.
7.7.1.12 잘못된 교육으로부터 떼어 놓는다. 이는 친부모라고 해서 반드시 올바른 양육을 한다고 할 수 없는 경우 부모로부터 분리시켜 수 있음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서술한 것은 정신지체아의 치료교육에 있어서의 일반적 주의사항을 소개한 것이다. 다음에는 치료교육 수업을 실시하는 데 있어서의 유의 사항에 대해 소개하기로 한다.
7.7.2 치료교육적 수업을 실시하는 데 있어서의 유의사항
7.7.2.1 정신지체아의 수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는 정신지체아가 정상아와 아주 큰 차이를 지닌 정신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정상 아동보다 훨씬 더 원시적인 전제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
7.7.2.2 이러한 것을 전제로 했을 때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감각훈련이다. 특정감각, 예를 들어 특정의 색, 소리, 맛 등의 감각을 훈련함으로써 수업의 기초가 되는 감각을 보다 분명하게 해둔다. 다른 하나는 외계의 대상물을 복합체로써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특정의 감각을 빼내 감각의 추상화를 획득해야만 한다.
7.7.2.3 이러한 것의 훈련을 위해서 사용하는 물건이나 모형을 풍부하게 준비해 두어야만 한다. 간단한 그림 뿐만이 아니다. 이는 정신지체아는 그림과 실물이 전혀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7.7.2.4 정신지체아 특히 백치의 경우는 감각훈련이 때로는 극히 심한 피로를 느끼게 한다.
7.7.2.5 정상아에게 있어서는 일상 생활 속에 흔히 할 수 있는 경험이 정신지체아에게는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경우가 자주 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수업 전에 경험을 시켜둘 필요가 있다.
7.7.2.6 정신과 신체의 능력 신장이 조화롭게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손으로 물건을 잡는다라는 운동은 잡는다라고 하는 운동자체의 근육들 간의 협응 이외에 무엇인가를 잡으려고 하는 의욕과 연결되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에 정신과 신체와의 조화가 필요한 것이다.
7.7.2.7 운동치료에 대해서 정신지체아는 어떤 운동을 하려 할 때 그것을 할 수 없을 때는 그 운동을 여러 가지 종류의 운동으로 나누어 그 중 하나를 수동적으로 움직인다. 여러 가지의 운동 모두를 이와 같은 방법으로 연습시켜 그 후에 이들을 연결시켜 하나의 운동이 된다. 처음에는 수동적으로 밖에 할 수 없던 운동이 나중에는 자발적으로 행할 수 있게 된다. 체조연습은 처음에는 리듬감있게 실시해야만 한다. 이 때 음악을 반주하는 것이 좋다(리듬체조). 그러나 나중에는 기계적인 구성 뿐 아니라 자발적인 주의력과 의지로 체조가 이루어져 나가도록 해야만 한다.
운동기관의 훈련과 발달은 지능 발달을 전제로 한다. 운동은 지능발달에 극히 큰 의미를 지니므로 정신지체아를 지나치게 오래 의자에 앉혀둔다든가, 운동을 시키지 않는다든가 하면 안된다. 운동기능을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전신에 운동능력을 개선한 다음 개개의 운동능력으로 옮겨가야만 한다. 이는 전신의 운동기능의 발달이 개개의 운동기능 능력 발달의 선결조건이기 때문이다.
많은 정신지체아는 손가락의 운동이 대개 아주 서툴다. 그러나 이는 때로는 훈련 부족에 의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손전체에 맛사지를 하고 전체운동을 시킨 다음 하나 하나의 손가락 운동을 시키는 것과 같은 순서로 훈련을 시키고 일상 생활 중 필요한 손가락 운동은 그 후에 시킨다.
7.7.2.8 노래는 치료교육 수업 중에서 무엇보다도 호평 받는 수업방법이다. 노래는 정신지체아의 마음을 안정시킨다. 또한 운동훈련으로 이끄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하다. 노래는 정신지체아의 마음에 고상한 감정을 생기게 하며 언어치료에도 도움이 된다.
7.7.2.9 수예 수업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를 들면 이것은 비교적 작은 근육체조이다. 또한 글자나 그림을 그리기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손 끝이 노련해지면 점토, 두꺼운 종이, 나무 등으로 간단한 것을 만들 수 있게 되므로 전반적인 정신발달을 촉진하는 것이다.
7.7.2.10 읽고 쓰기는 언어수업에 상당히 도움을 준다. 이는 말의 형태를 바꾼 것으로 볼 수 있다.
7.7.2.11 산수수업은 정신지체아에게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어려운 수업이지만 개념을 추상화하는 역할을 한다. 산수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통합감각적 산수라 부르고, 다른 하나는 연합적 산수라 한다. 통합감각적 산수는 예를 들어, 실제 여기에 있는 물건의 수를 알게 함으로써 그 수는 물건이 달라도 같은 수라면 같은 수의 부호로 부르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추상적인 수의 개념이 생겨난다. 이에 대해 연합적 산수란 곱셈의 구구단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통합감각적 산수라고도 할 수 있지만 산수의 결과를 기계적인 기억으로 암기하도록 한다.
7.7.2.12 도덕수업은 처음부터 설교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일이 생길 때 시의에 적절하게 그 때를 놓치지 않고 활동을 한다. 이를 기회수업이라고도 한다.
7.7.2.13 정상아의 수업은 다채로워야 하지만 정신지체아는 단일한 편이 효과적이다.
7.7.2.14 사고력은 언어발달과 병행관계에 있으므로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아동이 적절한 말로 표현하게 하도록 한다. 언어발달을 위해서는 그림책이나 동화를 풍부하게 준비하여 놓고 이용한다. 최적의 읽을 거리로는 그림책과 읽을 책이 하나로 된 것이 좋다.
7.7.2.15 수업시간 외 정신지체아를 돌보는 일은 특별한 교육 소양이 없는 사람도 충분하다는 의견이 있으나 이러한 사람들은 아동의 개성, 자유, 자주성을 무시한 채 훈련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가운데 아동을 잘못된 길로 이끄는 일이 된다.
7.7.2.16 정신지체자의 피로도는 정상아동보다 훨씬 더 크다. 피로를 높이는 요인으로써는 심신의 활동이 국한되어 있는 환경 속에서의 작업, 산수 수업, 자유 놀이, 보통의 체조, 기구사용의 체조, 개인 수업 등이다. 신경질적인 교사의 성격도 피로를 높인다. 간질, 무도병 등의 아동이 피로가 많다. 감정 둔한 아동은 외견상은 무관심해 보이나 내적으로는 상당히 긴장하고 있어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다.
7.7.2.17 어떤 정신지체아동은 긴 시간의 수업을 진행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 갑자기 의식착란 상태가 되거나 주의집중이 곤란해지는 경우가 있다. 이와 같은 상태는 신체 내부의 변화나 혹은 피로가 축적되어 있으므로 미세한 변화 즉, 얼굴 색의 변화, 기분 상태가 안좋음 등의 변화에 눈치채지 못하면 안된다.
이상의 사항이 정신지체아동의 치료교육 수업에 있어서의 유의 사항이다.
헬러는 치료교육학의 밑바탕이 되는 과학으로써 의학 외에 교육학 및 심리학을 들고 있다. 어떠한 영역에 있어서도 그의 지식과 경험을 충분히 획득한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 일에 종사하는 사람은 충분한 시간을 들여 양성해야만 하고, 결코 1∼2년의 단기 양성으로 가능한 성질의 것이 아니다. 헬러는 치료교육학의 체계를 확립했다는 점에서 누구보다도 공헌한 사람이다.
7.8. 한젤만 (Heinlich Hanselmann)
한젤만은 스위스의 가렌 농아학교에 1905년부터 1908년까지 근무한 적이 있다. 그 후 심리학, 교육학, 정신병리학, 해부학 및 생리학 등을 대학에서 공부하고 1911년 철학박사가 되었다. 그 후 여러 분야에서 일을 했으나 자신은 자신의 본직은 치료교육자라고 하고 있다. 1924년에는 츄리히에 치료교육학 연구소를 창립해 최초의 소장이 되었다. 같은 해 츄리히 종합대학의 치료교육학 교수 자격을 취득했고, 그후 수많은 저작을 발표했다. 1956년에는 국제치료교육학 협회의 초대 회장이 되었으며 같은 해 츄리히 대학에서 명예의학 박사를 수여받았다.
한젤만에 의하면「치료교육학은 신체적-정신적 발달이 개인적 요인에 의해 지속적으로 억제되고 있는 모든 소아의 교수, 교육 및 보호(F rsorge)의 학문이다.」한젤만이 위와 같은 정의를 내린 것은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이 이론적으로 결론에 이른 것이 아니고 치료교육에서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을 잠정적으로 문장화 시킨 것뿐이다.
한젤만이 대상으로 한 아동은 다음과 같다.
7.8.1 감각결손 및 감각감퇴 (맹, 약시, 농, 난청, 농맹아)
7.8.2 중추신경의 발달저해 (경도, 중등도, 중도(重度)의 정신지체)
7.8.3 신경질환 및 정신병적 소질, 신체적 질환, 불구, 환경결손(교육곤란아)아동
한젤만은 원래 치료교육이란 표현이 그다지 적당하다고는 하지 않았다. 단지 이것을 의학적 의미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원인의 제거로 완전히 정상상태로 회복시킨다는 의미의 치료라는 표현은 적당하지 못하며 그렇다고해서 교육의 목적에 관해서 말해보면, 교육에는 한계가 있으며 교육방법에 있어서도 정상아의 교육에 있어서는 잘못된 방법 혹은 목적에 맞지 않는 방법이라 해도 치료교육을 위해서는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교육이란 말 만으로 이러한 개념을 대표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결국 치료교육이란 의사라도, 교육자라도 상관없이 장애가 있는 아동에 대한 활동의 방법이라면 상관없는 것이다. 한젤만은 이론적 입장에서가 아니라 실천적 입장에서 위와 같이 심신의 발달이 지속적으로 지체되고 있는 아동에 대한 교육, 교수 및 보호의 학문이라고 하고 있다. 여기에 교육, 교수 이외에 보호라는 글자가 덧붙여져 있는 것과 그의 저서 중 여러 군데에 치료에 대해 기재하고 있는 것부터 치료교육학을 완전히 교육학의 범주에 넣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7.9. 무어 (Paul Moor)
무어는 스위스에서 태어나 대학에서는 수학과 자연과학에 흥미가 있어 일시 천문학 연구소의 조수를 한 적이 있다. 1924년에 철학 박사Ⅱ의 학위를 획득하여 그 후 2년간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나 다시 종교사와 철학의 연구로 옮겼다. 1929년부터 1930년에 걸쳐 츄리히의 치료교육학의 세미나 코스를 받고 그 때 한젤만과 아는 사이가 되었다.
그 후 정신질병에 대한 아동복지시설, 관찰소에서 지도를 했으나 1933년부터는 한젤만이 있는 곳에서 조수로서 일하게 되었다. 이 곳에서 심리학과 교육학의 교양을 더욱 쌓는 일이 가능하였다. 1935년에는 심리학과 치료교육학을 함께 하여 철학 박사로 승진하였다. 1940년에는 한젤만의 후계자로서 치료교육학 세미나의 지도자가 되었으며 1942년에 치료교육학 교수의 자격을 획득하여 1951년 한젤만의 후계자로 교수가 되었다.
무어는 치료교육학을 정의하여「개인적 혹은 사회적 요인에 의해 지속적으로 발달이 지체되어 있는 아이들의 교육학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때의 발달지체란 정신적인 것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것도 들어가 있다.
치료교육을 실시하는 데 무어가 강조한 것은 다음과 같다.
7.9.1 우선 대상아를 이해하여야만 한다.
7.9.2 대상자의 장애에 대해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보다 장애를 지니고 있는 대상자를 위해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가 중요하다.
7.9.3 발육이 저지되어 있는 대상자를 교육하는 것 뿐 아니라 그 주변의 사람들도 교육하지 않으면 안된다.
7.9.4 교육하는 교사를 교육하지 않으면 안되고 교사는 교사 자신이 개선하는 방법 이외는 방법이 없다.
실천적인 입장에서 한젤만은 치료교육의 개념을 하나로 정리하였지만 그의 계승자 무어는 그의 개념을 더욱 내면적으로 추구하여 치료교육을 하는 사람의 자세 등에 대해서도 검토를 덧붙인 것이 특징이다.
7.10. 아스페르카 (Hans Asperger)
아스페르카는 오스트리아의 인즈브륱겔의 공립종합대학의 소아과 주임 교수로 특히 치료교육학에 조예가 깊고 저서에「치료교육학」이 있다. 이는 의사, 교사, 심리학자, 법률가 그리고 복지 관계자 대상의 소아 정신병리학의 입문서가 되고 있다. 초판이 1952년 발행되어 1956년에 2판과 1961년에 3판이 발행되었다. 여기에 소개하는 내용은 제 3판의 것들이다.
치료교육학의 개념에 대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치료교육학은 비교적 젊은 과학이다. 예를 들어 치료교육학의 생각이나 치료 행위 등은 아득한 옛날로 되돌아가 보아도 존재하고 있었다고는 하나 그 과학적 자료들을 계통적으로 정리하여 새로운 치료법으로 만들어낸 것은 근래 약 60년간의 일이다. 우리들은 치료교육학을 다음과 같은 과학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상이 있는 소아의 인간성에 생물학적인 지식을 기초로 청소년의 지적, 감각적 결함이나 신경병적, 정신적 장애를 주로 교육적 방법으로 치료하고자 하는 과학이다. 인간 이해로부터 얻어진 정확한 인간지도는 우리들이 믿는 바로는 장애된 인간성에 결정적으로 좋은 결과를 일으킨다.」라고 하였다.
또한「치료교육학의 지주가 되는 과학이 5개 있다. 즉 정신의학, 소아의학, 심리학, 사회학 그리고 교육학이다. 이 가운데 어느 한 개만의 과학 영역으로 치료교육은 이루어질 수 없다. 각 전문분야의 지식을 모아 하나의 학문체계로 융합함으로서야 비로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서로 다른 전문분야의 사람이 치료교육학을 하게 되면 마치 자신이 속하고 있는 분야에 치료교육학이 속해 있는 것처럼 주장하기 쉽다.」
또한 「치료교육학을 실시하는 사람은 어느 영역에 속해 있더라도 앞에서 기술한 모든 영역에 걸쳐 창시자의 틀을 벗어날 정도의 지식을 갖고 있어야만 한다. 이 위에 또한 특별한 성격적 자질을 필요로 한다.」
「치료교육학의 대상은 정신지체, 뇌염 뒤의 정신장애, 간질 등의 기질적 장해, 신경병질환자, 자폐증자, 히스테스리 성격자, 강박신경증자, 소아정신분열증 환자 등이다.」
치료교육의 개념 중에는 치료하는 목적과 교육하는 목적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조금 더 각도를 바꾸어 말하면 그 활동은 치료와 교육의 양쪽의 의미를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목적의 중요성은 학자에 따라 대상자에 따라 그 위치가 변하고 있으며 어떤 때는 치료에, 어떤 때는 교육에 중요성이 추가되기도 하고 어느 때는 양쪽 똑같이 중요성을 띄고 있다. 주로 의사는 치료를, 교육자는 교육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며 몬테소리, 데크로리와 같이 의사이면서도 교육에 뛰어난 공헌을 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치료면에 상세한 연구를 한 사람도 있다.
치료교육의 개념으로는 치료와 교육의 의미를 포함한 활동을 하는 것으로 구체적으로는 어느 쪽에 중점을 두는가를 결정하면 좋을 것이다. 단지 맹이나 농아 혹은 지체부자유아의 교육에 대해서는 이것들도 특수교육의 개념에 들어서 치료교육의 범주에 좋다는 의견도 있으나 만약 대상자들이 정신장애를 지니고 있지 않다면 단지 교육만이 목표가 되어 치료는 실시하지 않으므로 치료교육이라고는 말할 수 없으며 특수교육이라 하는 편이 적당할 것이다.
다음은 치료교육의 방법에 대해서이다. 교육이라고도 말하고 의학이라고도 하나 그 개념은 상당히 넓다. 그러므로 이들 개념 속에는 지금까지 여러 가지 방법들이 들어있다. 예를 들어 작업에 의한 방법, 환경을 변화시키거나 조정시키는 방법, 자극을 강하게 하거나 때때로 부여하는 방법, 또한 레크리에이션을 하는 방법, 음악에 의한 방법, 체조에 의한 방법 등 수 많은 방법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방법은 작업치료, 환경치료, 생활치료, 정신과 그 밖의 기능훈련, 레크리에이션치료, 음악치료, 체조치료 등 각각의 명칭으로 발달하고 있다.
지금까지 의학이든 교육이든 만성화된 결함을 지니고 있는 아동이나 성인에 대해서는 전혀 무력했으나 의학과 교육학이 치료교육을 이룩하여 그 이론체계에 따라 상호협력하여 더욱이 기타 과학의 협조 아래 정신장애를 치료하고 개선하여 사회생활에 적응하여 장애자의 주어진 재능을 발휘하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