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齋와 제祭 / 제사와 절에서 하는 재는 뭐가 다른가요? -1
① 재일의 보편성
절에는 실로 많은 재일齋日과 재齋가 있다. 예컨대, 붓다가 깨달으신 성도재일이나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에게 기도하는 관음재일이나 지장재일 등이 그것이다. 실제로 재일과 관련해서는 근본불교부터 6재일이라고 하여, 매달 8·14·15·23·29·30일에 종교적인 경건함과 자기정화를 실천할 것이 설해져 있다. 이러한 백월白月(만월)과 흑월黑月(신월), 즉 보름과 그믐의 전승이 오늘날까지도 유전되어 초하루와 보름의 기도의식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인도에서는 더운 기후 때문에 불교이전부터 밤에 종교집회를 갖고는 했다. 그로인하여 14일과 15일, 29일과 30일은 철야를 통한 하나의 연결된 재일인 것이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오전 사시巳時(9~11시)로 바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전야의 개념은 사라지게 된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오늘날 사찰에서 흔히 하는 종교집회인 초하루와 보름 역시도 재일의 의식이라고 하겠다.
재일은 부정한 것을 멀리하고, 자신을 정화하는 종교적인 날이다. 그러므로 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되는 가치라고 할 수 있다.
② 재의 특수성
재일이라는 보편적 가치 외에 불교에는 개인과 관련된 것으로 49재와 천도재 등이 있다. 이는 재일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재를 지내면서 재일을 만드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의식들은 공히 먼저 돌아가신 분의 복덕을 북돋아 주고, 재의 공덕을 회향해 줘 좋은 과보를 성취케 해주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고 하겠다.
이상을 통해서 우리는 재일은 보편적이며, 재에는 개인의 특수성이 가미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양자가 결합된 중간적 가치로 우란분재(백중)와 예수재와 같은 것들도 있다. 이는 각각 죽은 조상을 천도하는 의식과 산사람이 죽은 뒤에 닥칠 액난을 미리 막는 의식이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불교에서 하는 모든 종교의식은 다름 아닌 재이며, 이러한 재를 베푸는 날이 바로 재일이 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③ 제祭와 제사祭祀
불교에 재가 있는 것처럼, 유교에는 제가 있다. 재와 제는 완전히 다른 글자이다. 그러나 우리발음에 있어서 이는 잘 구분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양자를 자주 혼동하고는 한다. 실제로 일부 사찰에서는 우란분제나 예수제에서와 같이 맞춤법을 틀리는 일들도 종종 있다. 그러나 그 내용적인 차이를 알게 되면, 이는 결코 틀려서는 안 되는 글자이다.
유교의 제는 돌아가신 영가에게 음식을 공급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그래서 제라는 글자의 윗부분은, 고기 육肉자가 부수로 변한 ‘육달 월月’에 ‘또 우又’를 써서 고기를 많이 진설해 놓은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아래의 보일 시示자는 영가가 강림하여 흠향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제라는 글자는 제사의 의미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유교의 영혼관은 기론氣論을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영혼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뭉쳐있던 기운이 흐트러질 때까지 한시적으로인 기간이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망자의 존속기간이 된다. 유교는 바로 여기에 제사하는 것이다. 예컨대, 달리는 열차가 멈추더라도 얼마간은 관성에 의해 달려가는 것과 같은 것다고 하겠다.
④ 불교의 재와 유교의 제
유교의 제는 돌아가신 분에게 음식을 공급하여 흠향케 하고, 이를 직계후손들이 나누어 음복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이는 돌아가신 분을 기리고, 남은 후손들이 대가족제도 안에서 서열을 분명하게 확립하자는 의미이다.
그러나 불교의 재는 재계가 목적이다. 즉, 몸과 마음가짐을 깨끗이 하여, 삿된 것을 물리치고 복된 것이 깃들게 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인 노력이 중요하게 요청된다. 물론 49재나 천도재와 같이 후손이 대신 해줄 수 있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자세히 보면, 돌아가신 영가에게 먼저 기갈을 해소해 주는 음식을 대접하고, 다음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서 영가가 스스로 재계하여 공덕을 쌓도록 한다. 그래서 이러한 의식에서는 언제나 『금강경』과 같은 공덕을 산출할 수 있는 경전을 읽게 되는 것이다.
⑤ 혼란은 그만
재는 불교적인 것이며, 제는 유교적인 가치이다. 다만 유교의 제사를 후일 불교가 위탁받게 되면서 재와 제가 더욱더 혼란스럽게 되었다. 여기에 하안거 결제結制와 해제解制에서와 같이, 기간을 분절할 때 사용하는 ‘제制’라는 글자까지 발음상 구분인 안 되어 더욱더 복잡한 양상을 파생하게 된다. 이것은 어찌 보면 한글이 전용화 된 한글세대의 혼란이다.
유교의 제는 본래 ‘좨’의 발음이 났으나, 오늘날은 양자를 구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지금의 상황에서는 내용적인 구분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이를 분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끝으로 정리해보자면, 불교와 관련된 것은 모두 재齋 즉 재계로 이는 자신의 심신정화와 관련된 것이고, 유교와 관련된 것은 제祭 즉 제사로 신神이나 영가와 관련된 것이다. 그리고 축제祝祭와 농경제農耕祭 등은 본래 신을 섬기는 희생제犧牲祭에서 파생되는 것이기 때문에 제祭가 된다. 또 불교적인 결제와 해제는 기간과 관련되어 사용되는 것이고, 입재入齋는 회향과 짝이 되는 댓구적인 표현이다.
첫댓글 제와
재의 차이
이제
분명하게 알았네요
감사합니다
공부하느라 애쓰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