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정씨의 시조는 지백호(智伯虎)이다. 신라초기 6부중에 진지촌의 촌장인 신라건국의 모태가 되면서 지백호는 정씨의 성을 하사받았다.
이후 지백호 시조의 42대손인 「진후」는 지백호 시조의 장종손가(長宗孫家)의 가통(家統)을 그대로 이어왔다.
공의 태어나고 돌아간 연대는 기록이 없고 다만 족보에 벼슬은 금자광록대부 정당문학 병부상서겸 판군기시윤 평장사 월성군 문정공으로 기록되어 있고 또 가정에 전하는 말에는 공의 문장과 명예가 높아 남들이 따라갈 수 없다 하였다. 특히 이학(理學)과 문장(文章)에 밝았던 것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월성은 경주의 옛지명으로 후손들이 경주를 본관으로 정하고 이후「진후」를 경주정씨의 득관 중시조로 모시고 있다.
경주정씨는 크게 문헌공파, 양경공파, 월성위파, 평장공파로 나뉘게 되며 이는 후손들로 내려오면서 30여개 세파로 분파돼 명맥을 잇고 있다.
이중 문헌공파는 경주정씨 내에서 큰집으로 ,
진후의 5대손 현영은 호부상서와 태학사를 거쳐 문하시중(종1품관직)의 벼슬까지 오르게 된다. 이어 현영은 문헌이라는 시호를 받아 문헌공파의 파조가 된다.
문헌공은 종철과 종보 두 아들을 두셨는데 그중 長子 종철은 월성군으로 문헌공파내 큰집이 된다.
월성군의 차자 인조는 공양왕때 병부시랑(정4품벼슬)을 맡는등 장수로 이름을 날렸고 이성계와 함께 일본군 격퇴시키는 업적을 남겼다. 월성군의 후손들은 이후 순흥공파, 추파공파, 우후공파, 장흥공파, 죽산공파, 동래공파, 별제공파, 교수공파, 고산공파로 나뉘게 된다.
문헌공의 次子 종보는 안숙공으로 문헌공파내 작은집이 된다.
안숙공의 후손들은 이후 상서공파, 팔송공파, 좌윤공파, 노송정공파, 추만공파로 나뉘게 되며 이중 노송정공파는 다시 판서공파, 제안공파, 참의공파, 감사공파로 나뉘게 된다.
첫댓글 잘봣습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