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趙宗玄 - 불교와 현실과 인간 고뇌의 강렬함
이재창
鐵雲 조종현(본명 龍濟, 호 碧路, 1904, 2, 8~1989, 8, 31)시인은 전남 고흥군 남양면 왕주리에서 태어난 승려이자 교육자이다. 1922년 입산 순천 선암사 대본산의 김경운 교정문하에서 득도하여 불문에 귀의. 선암사 전문강원 불교중등과 졸업, 1926년 범어사 전문강원에서 4교과 졸업, 계사로 비구계 보살계 수지. 1928년 23세때 만해 한용운의 지도로 조선불교 학인연맹조직에 가담하고, 그이듬해 만해가 주도한 조선불교청년총동맹 중앙집행위원을 지냈다. 그때부터 신석정과 교유를 시작함. 1929년 동아, 조선, 중외일보에 동요「엄마가락지」「숨박꼭질」「떠나신 오빠」등의 작품을 매일같이 발표했는데 그 작품 수만도 1백여편에 이른다. 그해 시조「정유화」「보신각」을 처음 발표하고, 그 이듬해 불교지에 순 한글의 시조「고화미소」「더욱 그립네」등을 발표 하면서 문학활동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육당, 노산, 위당 등과 교유하며 시조창작을 계속했다. 6․25후 직장을 교육계로 옮겨 벌교상고 ,광주서중일고, 서울 보성중고 교사를 엮임하고, 우석중고의 교장을 끝으로 퇴임했다. 그후 불교계 활동에 전력했으며 총화종 종정, 대한불교 관음종 종정에 추대되었다. 1979년 만해 한용운 기념사업회 발기인으로 활동하고 중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시조가 수록되었다. 시조집으로『자정의 지구』『의상대 해돋이』『거 누가 날 찾아』『나그네길』과 번역집『관음경』『아미타경』과『무량수계』『선문염송강의초록』등을 출간했다. 그는 30년대의 문인들과 폭넓은 교류를 하였는데 시정신은 만해에게서, 시 창작실기는 노산에게서, 시 구성방법은 위당에게서 익혔다고 평자들은 말한다. 그가 사원지주와 강주로 지방 산사에서 지내던 30~45년의 시기에는 불교에 정진하여 작품발표가 없는 침묵의 기간이었다. 1960년 이태극 등과 함께 시조문학 창간에 합심했으며, 한국시조시인협회를 창립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나도 푯말이 되어 너랑 같이 살고 싶다
별 총총 밤이 드면 노래하고 춤도 추랴
철 따라 멧사랑 같이 골속골속 울어도 보고
오월의 창공보다 새파란 그 눈동자
고함은 靑天霹靂 적군을 꿉질렀다
방울쇠 손가락에 건 채 돌격하던 勇姿
네가 내가 되어 이렇게 와야 할 걸
내가 네가 되어 이렇게 서야 할 걸
강물이 치흐른다손 이것이 웬 말인가
향 꽂고 三歸依 꽃 드리우고 黙念이요
波羅密經 오이며 나즉이 頂禮하고
願往生 축원 올리며 다시 合掌하느니.
-「나도 푯말이 되어 살고 싶다」
불이야 山불이야
山에 불이 붙었구나
불길이 치솟아
하늘 끝까지 붙었구나
타는 줄 나도 모르게
내 얼굴도 타는구나.
풍진 세상을 살다 보니 탈 것 없어
온몸이 활활 타도 연기 한 점 아니 나네
나는 멧새도 쌍쌍 불이 붙어 벌겋구나.
노을도 불이 붙고 시냇물소리도 불이 붙고
바람도 불꽃이야 내 가슴이 화끈하네
불꽃은 왜 이러할까 눈귀마저 시원하이-
-「설악산 단풍(1)」전문
대체로 그의 시는 현실 참여적이다. 그의 시들은 실용적 교훈론에 입각한 시의 미적 가치를 사회나 역사에 대한 공리적 작용에 두고 형식보다는 내용에 치중하면서 사회와 역사를 움직이고 창조하는 원동력이 되는 행동적인 미를 추구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의 시조는 어렵지 않고 쉽게 읽혀진다. 당대의 부조리의 현장과 불의의 모순을 파헤치고, 민족적인 문제까지 영역을 확장해 사회적 역사적 가치로까지 수용한 것은 그가 불교인이었기 때문에 더욱더 강하게 드러나는지 모른다. 불교와 삶의 관계, 역사와 자연과의 교감, 현실과 인간 고뇌 등을 과감하게 표출한다. 그의 작품「나도 푯말이 되어 살고 싶다」는 <국군묘지에서>란 부제가 붙어있다. 월남전에서 용감히 전투에 임하다 장렬히 전사한 친지의 아들 묘소를 참배하고 나서 지은 이 작품은 시인의 감정이 이입되어 망자에 대한 애도감을 한층 더해준다. 첫째수에서는 용감히 전사한 병사와 함께 되어서 우리의 아름다운 조국강토에서 영원한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을, 둘째수에서는 그 용맹으로 돌격하며 적을 격파하던 청천벽력의 勇姿를 비유했고, 셋째수에서는 그러나 지금 함께 있지 못하고 시인자신만 이렇게 조국의 강토에 살아있음을 죄스러운 마음으로 아쉬워 하고, 넷째수에서는 부처님 앞에 원앙생으로 명복을 비는 그에 대한 추모가 우리를 전율케 한다.「설악산 단풍(1)」은 앞의 작품과는 대조적이다. 산에 불이 붙어 치솟아 시인의 얼굴까지 발갛게 달아오른 단풍의 묘사가 강렬하다. 풍진 세상과 내 몸이 활활 타도 불이 붙지 않고 연기 하나 나지 않는 산불은 산새들도 모두 단풍잎에 물이들고 있다. 설악산 단풍은 내장산 단풍과 더불어 최고의 절경이며 선경이다. 노을도 바람도 시냇물소리마저 산불로 전이되어 나타난 단풍이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아름다운 우리국토, 그 절경의 감탄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