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래도 좀 늦게 6시에 모닝콜이 왔다. 7시에 인도에서 마지막 아침 식사를 하고 08시에 시내로 출발하였다.
시내를 지나가면서 여러 건물들을 이야기 하지만 차를 타고 가면서 보기 때문에 기억에 남지도 않는다.
뉴델리 시내는 온통 숲으로 둘러싸인 정말 아름다운 도시라는 것을 볼 때 지금까지의 인도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세계에서 가장 나무가 많은 도시로 유명하단다.
시간이 있다면서 예정에 없던 힌두교 사원을 가 보자고 하며 구르드와라 방글라 사히브로 안내한다.




08시 호텔을 떠나서 시내로 갔다. 온통 숲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계획된 도시이다. 08:40시 힌두교 사원 앞에 도착하였다.

구르드와라 방글라 사히브(Gurdwara Bangla Sahib). 사원 입구에는 걸인도 있고 음식점도 있고 지저분 한 느낌이다.

들어가면서 물건을 나르고(주로 먹을거리) 일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전부가 자원 봉사자 들이란다.

들어가기전 물도 한 컵씩 준다. 마음과 몸을 씻으라고 주는지...

열심히 일하는 자원 봉사자 신자들. 성전의 동쪽에는 랑거라고 불리는 부엌/식당이 있는데 하루에 두번 무료로 채식 식사를 제공하는데 종교나
남녀노소에 상관없이 누구나 밥을 먹을 수 있단다. 하루에 만내지 만오천명이 이곳에 와서 식사를 한다니 물량을 헌납하는 신자들이나 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마음과 태도가 정말 돋보인다.

08:50 안내실에 도착하여 모자와 신발을 벗고 두건(오렌지색으로 나누어 주거나 자신의 수건이나 스카프를 쓰도 된다)을 쓴다.

모두가 자원 봉사자들이라니 대단하다. 같이서 사진을 찍었다. 시크교도들은 다섯 개의 K, 즉 kesh(깎지 않은 머리카락), kada(철팔찌), kirpan(단검),
kangha(빗), kaccha(무릎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느슨한 브릿지) 등을 항상 몸에 지닐 것을 장려한다고 한다.
시크교인이 사용하는 터번(Turban)의 색깔은 자신의 복장과 어울리게 다양하게 사용하는 모양이다. 모두들 친절하고 개방적인 인상을 받았다.

시크교도들은 활동적이고 실천정신이 강하며 전문지식들이 많은 하이 칼라층이 많다. 인도에서 가장 부자
주(州)가 펀자브주라고 하는데 전통적으로 전사들을 많이 배출해 냈단다. 인도 인구의 3%가 시크교도이며,
현재 신도만 전세계적으로 2천3백만에 이르는 세계 5대 종교 중의 하나이다.
시크교도의 남자 이름에는 싱(Singh ·숫사자)이, 여자 이름에는 카우르(Kaur·암사자)가 들어있다고 한다.
이제 본당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이동한다.

성전 앞에는 발을 씻기 위한 물받이가 있다. 물을 받아 얼굴과 손도 씻는 것 같다.(꼭 씻는 시늉만 하는 것 같지만)

시크교는 15세기 인도 서북부 펀자브 지역에서 창시자 나나크(Nanak, 1469~1538년)가 35세 때 숲에서
목욕을 하던 중 신으로부터 계시를 받고 사흘 후 숲에서 나와 “힌두교도라는 것도 회교도라는 것도 없다”고
선포했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시크’라 불렸는데 이는 펀자브어로 ‘제자’라는 뜻이다. 기본 교리는 창조주
유일신 개념을 중심에 두고 힌두교의 의식과 순례, 극단적인 고행, 우상숭배 등은 배척하고 업(Karma)과
윤회 사상은 받아들였다.
또 신 앞에서 평등하다는 이슬람교의 사상을 받아들여 카스트제도를 부정하고 노동과 금욕생활을 강조한다.
나나크 이후에는 열 명의 구루가 있었다. 10대 구루인 고빈드 싱(Gobind Singh, 1675~1708년)을 마지막
으로 이후에는 시크교 성전인 <그란트Granth>를 구루로 삼았다.

구르드와라 방글라 사히브는 델리에서 가장 유명한 시크교 성지인데, 성지가 된 사연은 1664년, 시크교의 8대 구루였던 7살의 하르 크리샨
(Har Krishan)은 자이 싱 1세(Jai SinghⅠ, 1611~1667년)의 초대로 델리에 몇 달을 머물게 됐는데 그때 천연두와 콜레라가 창궐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거처를 치료소로 삼아 가난하고 병든 이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치유력이 있다는 거처 우물의 성수를 나눠 주며
치료했지만, 그만 그 자신도 천연두에 걸려 그해 세상을 뜨고 말았다. 방글라 사히브는 당시 그가 머물렀던 궁전 자리 위에 1783년 재건됐고
현대적인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은 1947년이다.
황금색 돔이 빛나는 본당 안에 들어온 사람들(시크교 신자)은 화려하게 치장된 <그란트>에 극직한 예우(엎드려 절함)를 바치고 기도하는
신자들로 가득하다. 성전안은 황금색으로 비쳐져 보이고 깨끗한데 계속 강연을 하고 찬송소리도 들리는 속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겼다.
종교가 무엇인지... 인도는 그래도 모든 종교를 포용하고 합치를 이루려는 생각들을 여러곳에서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본당에서 서쪽으로 나오면 성스러운 호수라는 사르오바르(Sarovar)가 있는데, 사람들은 치유 능력이 있다고 믿는 이곳에서 몸을 씻기도 한다.
이 신성한 호수는 원래 작은 물탱크가 있었는데 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신선한 물을 여기서 줬다고 한다. 결국은 죽었지만 8대 구루도 이물을
먹었다고 하여 그 후에 더 깊은 우물을 팠다고 한다. 시크교에서 이물은 신성하고 치유의 효과가 있다고 전해져 많은 사람들이 떠간다고 한다.
호수라기 보다는 연못 수준이다.


인도 사람들은 사진 찍기를 청하면 잘 응하고 자신들도 청하며 상당히 개방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연못에서 본 입출구쪽 광경


주 성전에서 연못으로 나오는 쪽과 오른쪽의 건물들

자원봉사자들이 이 연못의 물을 주는데 두 손으로 받아서 마신다.

평등과 자비의 시크교 의 교리를 생각하며 본당 입구에서 다시 한장.

이곳 주위를 돌면서 축원을 하고 기도하고 있다.

이곳도 물을 받아 마시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신발을 벗고 머리에 터번을 쓰고 본당에 들어가기 위하여 서 있다.

사원은 깨끗하고 엄숙하다.

좀더 힌두교와 불교의 차이를 알아보려면, 잘 설명한 브로그 아미산(Amisan)511 http://blog.daum.net/511-33/12369853

내려오니 씻는 곳이 있다.

09:30 이렇게 시크교 사원의 방문을 마치고 이제 인도국립박물관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