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海邊)가의 무덤
김광균
꽃 하나 풀 하나 없는 황량(荒凉)한 모래밭에
묘목(墓木)도 없는 무덤 하나
바람에 불리우고 있다.
가난한 어부(漁夫)의 무덤 너머
파도는 아득한 곳에서 몰려와
허무한 자태로 바위에 부서진다.
언젠가는 초라한 목선(木船)을 타고
바다 멀리 저어가던 어부의 모습을
바다는 때때로 생각나기에
저렇게 서러운 소리를 내고
밀려왔다 밀려가는 것일까.
오랜 세월에 절반은 무너진 채
어부의 무덤은 잡초(雜草)가 우거지고
솔밭에서 떠오르는 갈매기 두어 마리
그 위를 날고 있다.
갈매기는 생전에 바다를 달리던
어부의 소망(所望)을 대신하여
무덤가를 맴돌며 우짖고 있나 보다.
누구의 무덤인지 아무도 모르나
오랜 조상때부터 이 사람들은 바닷가에서 태어나
끝내는 한줌 흙이 되어 여기 누워 있다.
내 어느 날 지나가던 발길을 멈추고
이 황토(黃土) 무덤 위에 한잔 술을 뿌리니
해가 저물고 바다가 어두워 오면
밀려오고 또 떠나가는 파도를 따라
어부의 소망일랑
먼― 바다 깊이 잠들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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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균(1914~1993) / 1926년 〈중외일보〉에 「가는 누님」을 발표하여 문단에 나온 뒤 1936년 〈시인부락〉 동인, 1937년 〈자오선〉 동인으로 활동함. 모더니즘 시 운동에 자극을 받아 “시는 하나의 회화(繪畵)이다”라는 시론을 전개하면서 주지적·시각적인 시를 계속 발표. 시집에 『와사등』『기항지』『황혼가』등. 광복 후 한국 전쟁 중 납북된 동생이 운영하던 건설상회를 대신 운영하며 중견 기업으로 키워내는 등 후대엔 시인의 길이 아닌, 기업가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