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서 가장 살 만한 곳은 강진이다.
남도의 산하 강진 벌판에 서서 두 팔을 벌리고,
천 년 전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았다.
피가 역류했다.
정수리 끝으로 한 발이나 솟았다가 우유보다 짙은 흰색으로
내 몸속으로 다시 들어오는 경험을 했다.
어쩌면 나는 전생에 강진에서 청자 굽던 도공이었을지도 모른다.
'귀거래사' 방에 위 '강진찬사'를 적은 바 있다.
언젠가 제주도 가는 길에 한성항공 기장이
지금 강진 상공을 날고 있다는 방송을 하며 영랑의 시를 낭송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항공기 조정간을 잡고 있는 조종사의 저음으로 모란 뚝뚝 떨어진다는 영랑을 시를 듣게 될 줄이야!
좌석 머리에 달린 단추를 삐익~ 누르고
"저~ 여기 강진에 좀 세워 주세요!" 소리칠 뻔했다.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가치
풀아래 우슴짓는 샘물가치
내마음 고요히 고흔봄 길우에
오날하로 하날을 우르르고 십다.
새악시볼에 떠오는 붓그럼가치
詩의가슴을 살프시 젓는 물결가치
보드레한 에메랄드 얄게 흐르는
실비단 하날을 바라보고십다.
내용은 쉽고 1940년쯤의 우리말의 흔적을 알 수 있어 더 재밌다.
그 중에 '붓그럼' 이라는 말이 애틋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발갛게 물든 새악시 볼이 만져질 듯 정겨운 말이다.
나는 오늘부터 '부끄럼' 이란 말 대신에 "붓그럼" 이라고 쓸 테다. ㅋㅋ
간밤 꿈속에서 당신과 나눈 밀어가 떠올라
난 지금 붓그럼에 눈밑이 화끈그립니다. 까꿍^^ 그녀에게 요렇게 문자를 날리면 어떤 반응이 올까?
(미쳐서! 미쳐서!)
영랑생가 입구 행랑채다.
초가집일지라도 대문을 높게하고 지붕을 따로 세우면 솟을 대문이라 한다.
여기는 평범한 농가의 행랑채 또는 대문간이라 하겠다.
기초석 위에 호박돌을 가지런히 심은 화방벽이 따사롭고 단아하다.
안쪽에는 벽에 멍석이 걸리고 쟁기가 놓여 있을 것 같다.
확인하러 갑시닷!
옴마!
농기구가 아니고,
쥐꼬리 톱과 사쿠리(홈대패)와 평대패가 걸려 있습니다.
뭔가 심상치 않습니다.
누군가는 목수였을 것 같은데...궁금합니다. 부친? 삼촌? 행랑 아범?
영랑의 시에 드문 드문 건축용어가 있습니다.
드디어 나왔습니다.
모란.
저는 어릴 적 마당 한쪽 화원에 있는 '모란'을 '목단'이라고 알고 있었어요.
주먹만한 꽃이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면 뚝뚝 떨어져 버리지만,
남은 열매가 특이했어요.
불가사리 같기도 하고,
엄마가 바늘을 꽂아두는 바늘겨레 같았어요.
'바늘방석'이라고도 하는데 요즘은 '바늘꽂이'라 하니 글맛이 외려 줄어든 느낌입니다.
일전에 패션 디자이너 얘기를 다룬 드라마에 장나라가 어깨에 차고 있는 것을 봤는데
예전에는 반짇고리 속에 있던 것이 패션 디자이너가 계급장처럼 어깨에 차고 다니게 될 줄은 몰랐어요. ㅎㅎ
이야기가 엉뚱 방향으로 흐르고 있네요.
략
모란이 지고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말아
三百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기둘리고 잇슬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우리가 물이라면 새암이 있고,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
정인보 님이 지은 개천절 가사에 '새암' 이란 말이 있다.
물의 원천
강이나 내의 시작점을 일컫는 것으로 섬진강의 시작은 데미샘 이라 한다.
이때의 샘이 곧 '새암' 일 것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샘 곧 우물을 '새암'이라 부르고 있음을 본다.
자!
사개틀닌 古風의 퇴마루에 업는듯이안져
아즉 떠오를긔척도 업는달을 기둘린다
아모런 생각업시
아모른 뜻업시
이제 저 감나무 그림자가
삿분 한치식 올마오고
이 마루우에 빛갈의방석이
보시시 깔니우면
나는 내하나인 외론벗
간열푼 내 그림자와
말업시 몸짓업시 서로맛대고 잇스려니
이밤 옴기는 발짓이나 들려오리라.
한 편의 뮤직 비디오를 보는 느낌이다.
달빛 교교히 흐르는 툇마루에 기대어
감나무의 그림자와 달빛의 흐름을 관조하고 있는 禪的 서정이 또렷하게 보인다.
그러나,
정말 그러나,
이 시를 많은 사람이 첫 연 첫 줄부터 틀리게 해석하고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제가 말한 '틀리다'는 잘못 해석되었다는 의미이다.
"사개틀닌 고풍의 퇴마루에 업는듯이안져"
이때 '틀닌'을 '틀리다'라고 보는 것에 문제가 있다.
아마도 뒤에 따르는 '고풍의 퇴마루' 란 것을 '낡고 허술한 퇴마루'로 인식한 간섭 때문일까?
'고풍'에서 오래된 느낌이 드는 것은 당연할지라도 '낡거나 뭐가 비틀려서 상태가 나쁜'이라는 의미와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더욱이 '사개'라는 건축 용어를 알게 되면 앞뒤는 보다 명확해진다.
위 그림에서 왼쪽은 툇마루요 오른쪽은 누마루라고 칭한다.
그럼 툇마루란 무엇인가?
툇마루는 기둥의 안쪽에 있을 수밖에 없다.
안 기둥과 바같 기둥을 툇보가 연결하고 있는 이 공간을 퇴간이라 하고, 마루를 깔면 퇴청 또는 툇마루가 된다.
툇마루에는 기둥과 보, 도리의 가구식 짜임이 있게 된다.
설명이 어려워 질까 봐 그림을 제시한다.
기둥의 머리를 보라.
저렇게 가공하는 것을 사개,또는 사괘, 사갈이라 하고, 사개튼다,사갈틀다, 이렇게 표현한다.
물론, 사개란 의미는 됫박이나 상자를 짤 때, 양손을 깍지 낀 듯이 결구하는 방식을 뜻하기도 한다.
즉 비둘기 꼬리처럼 가공된 삼각형이 맞물린 결구법이다.
영어를 쓰자면 "도브테일 맞춤' 이라 한다.
전통마루의 대표적인 것이 우물마루 방식인데, 우물마루이거나 아니거나
마루를 까는 데 있었어는 사개 또는 사개맞춤이라는 것이 없다.
또한 '틀다.'라는 뜻은 초가집 지붕을 얹을 때 맨 꼭대기에 올라가는 ㅅ자 모양의 짚단 엮음을
"용고새 틀다." 라고 한다
또, 다른 예는 "뱀이 똬리를 틀다.' 할 때의 '틀다' 라는 의미이니,
곧, "어떤 특정 형상의 모양을 만들다" 라는 의미로 쓰인 것이다.
용고새 트는 할아버지, 지방에 따라선 용마름 튼다라고 말하기도함.
그러므로 시의 내용은
"사개가 뒤틀려진 낡은 툇마루에 없는 듯이 앉아"가 아니고,
사개를 튼 기둥과 보와 도리가 짜인 고풍의 집 툇마루에 앉아... 란 의미로 해석되어야 바른 해석이라 할 것이다.
더욱 명확한 주장을 위해서 영랑의 시 가운데 '틀리다' 란 뜻으로 쓴 "비틀린" '틀린" 이런 단어를 찾을 수 있으면
더욱 좋겠으나 아래 시집에서 그런 어휘를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주장을 위해 한옥 책 중 해당하는 항목은 모두 점검하였으므로 사개틀다의 의미로 "사개틀닌"이라고
쓰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어,
사개틀어 결합한 기둥과 보 도리의 집이 과연 초가집이었을까?
강진군에서는 영랑 집안 후손의 고증에 따라 복원했다고 하고 있지만, 미심쩍은 부분이 너무 많다.
영랑은 중학교 시절부터 서울 휘문학숙에 유학했고 만세운동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루고 동경으로 유학하게 된다.
그의 부친은 500섬을 하던 지주라 알려지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동경 유학을 빈농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집주위에 소작인이 여러가구가 살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사랑채 규모도 정면 네 칸 측면 두칸 8칸이면 작지 않는 규모다.
초가집이었을 이유를 발견할 수 없다.
그런데 왜 강진군은 초가집으로 복원했을까?
좀더 세밀한 조사가 필요할 것 같다.
주위를 한번 살펴본다.
영랑의 시문학 세계를 담고 본 생가 유적지는 바깥이 지나치게 소란스럽다.
소음이 많아 소란스러운 게 아니고,
생가와 담장 하나를 두고 이웃한 건물의 이질감, 붙어 있다시피한 군청 청사, 주차장 옆 간판들 등등이
영랑의 시 서정에 몰입하고자 하는 답사객의 눈에는 몹씨 거슬리는 풍경이다.
주변을 좀 더 정리할 수없다면 차라리 유적지를 한적한 곳으로 옮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천재 시인의 문학세계에 흠뻑 취하고픈 눈에는 조악한 시비(희고 큰 대리석 조각 비)와 얇은 초가지붕, 엉성한 화단
등등의 시설과 관리가 가슴 아플 뿐이다.
돌아보고 또 돌아보니
어느새 어둠이 깔린다.
툇마루에 비친 달빛은 옛 달빛인데
.................
달빛이 감나무 잎사귀 사이사이로 사뿐히 옮아 오는 툇마루에서
영랑의 시문학 세계를 직접 들을 수 있다면.....
엎드려 눈물 훔치며 약주 한잔 올려 사모의 정을 바치고 싶다.
"선생님!
삼백 예순 날 하냥 행복하소서!"
첫댓글 '사개 틀린'이라는 말이 어디 시에 나오는데 도대체 못 찾겠네. 난중에 찾어보고 말하제라우.
'사개틀닌' 이라니까 또 왜 그러시오
한잔 먹고 기둘리겠소.
띄어쓰기도 하지 말고...
원문 그대로 보고 해야 되겠지요.
연구 좀 하고 한 판 붙자는 것 탁은데,
아...영랑...
그냥 지나가면 이자묵을까봐
요즘도 가끔 출퇴근길에 암송해 보는 시 중의 하나네.^^
강진의 지주 영랑을 보고 오셨군요.
부잣님 도련님이 그냥 놀지 않고 이 정도의 시를 남겼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강진에서는 다산이 으뜸이라면
영랑이 버금입니다.
저는 청해진 출신이라 이웃 고을 다산과 영랑에 대해서는 관심이 조숙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