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야그 속편 9탄
('74 통계. 최종후)
윤화백에게 답함.
그럼 그럼 그렇고 말고...용권형 대단하지 않소...
그나저나...윤화백하고 은제...
오클랜드 구름보러...용권형 보러...같이 한번 갑시다...
소생 일전에 용권형 뵈러 갔을 때 보니...
오클랜드 구름은 가히 예술이었소...
보았소...
소생 홈페이지(www.data-mining.co.kr) 초기화면에서 '사진'을 누르면...
용권형 뵈러 갔을 때 찍어 온... '구름' 사진이 있소...하기야...
윤화백은 '구름'을 시로 쓰신 분인데...
'사람생각'에 실려있는...바닷가에서 찍은 소생 상반신 사진도...
용권형 가게 근처 바닷가에서...용권형이 찍어준거요...
그리고...
윤화백이 '중섭옹 일화'를 소개하시면서 깔아둔 노래...
'내님의 사랑은 철따라 흘러간다...'
그거...양희은 노래였지...우리 학교댕길 적에는...
...윤화백이 깔아둔 '내님의 사랑은 철따라 흘러간다...'
노래부른 사람이 누구요?? 전인권인가??
테이프 복사해서 하나 보내주...
그날...그 노래 듣다가...숨이 몇번이나...막혔는지 몰라...
정말 좋았소...
그나저나...내 왔으니...한번 보기요...
10월 하순까지...덕수궁에서 '렘브란트' 전시중이니...
서울 출입 한번 하시오...
호암갤러리에서는 이우환 선생 전시회도 열리고 있소...
테레비에 나오는 이우환화백 모습...많이 늙었습디다...
이영철교수도 이우환 화백 참 좋아했었는데...
이우환 화백은 백남준옹과 단짝인데...
세월이 백남준옹을 저렇듯...
반식물인간으로 맹갈아 놓았으니...
백옹이 이우환화백 전시회 소식듣고...
얼마나 오고 싶겠소...
세월은 모든걸 그리...맹가는가 보오...
그래서 그러한지...
이우환화백 전시회 타이틀이 '만남을 찾아서'입디다...
인사동...선화랑에서는 '샤갈'전도 합디다...
소생도 맨하탄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샤갈' 그림으로 안복을 누렸는데...
'샤갈'전은 보았는데...'렘브란트'...'이우환' 전은 나도 못보았소...
한번 서울 출입하시구랴...
'렘브란트'...'이우환' 전 구경갑시다...
명동...이중섭옹 드나들던 동네에 가서...맛있는 커피도 먹고...
...어제는 북악스카이웨이 아래...'환기미술관'에 갔댔소...
...미술관은 적막합디다...
수화선생이 이승을 뜨신 게...우리 1학년이던 1974년 아니오...
'환기미술관'이 생겨난게 내년이면 꼭 10년째이고...
벌써...내년이면 수화선생 사후 30년이오...
1,2층에 가득한 수화선생 작품에...향안여사 글도 접하니...
환기선생...향안여사가...소생 주위에 왔다갔다 하시는 것 같습디다...
아매도...향안여사는 이미 80중반이지요...
뉴욕 작은 아파트에 유하고 계시대지요...
윤화백 아시지요...향안 여사 전 남편이 시인 이상 아니오...
'환기미술관' 내려오는 길로...
대학로 '오감도'를 찾아 갔더니...
그 역시 '아치방' 처럼 사라지고 없더라구요...
대학로는 3류 '신쥬꾸'가 되어 가고 있었소...
쓸쓸합디다...
할 수 없어...'오감도' 있던...그곁...'학림'에 갔소...
분이 안풀려...그 옆에서...삐루 몇잔하고 와 버렸오...
이 놈의 나라는 도대체...무얼 남겨두겠다는 말인지...
소생이 이러할진대...백남준옹...이우환화백 심사는 어떠하겠소...
80줄...향안여사가 '환기미술관'이 있는 남편의 땅...바다 저 멀리...
뉴욕 작은 아파트에 계시는 심사가...이해될 듯도 합디다...
윤화백...말이 많았소...
지금...강릉에서 쓰는거요...오늘밤이 '기제사' 날이오...
오늘 아침...서울서 왔소...
동생데리고...경포바다 보면서...쐬주 한잔하고...
동생 사무실에서...쓰는 중이오...
건강조심하시고...어머니 비롯...가내제절...무고하시길 간절히 비오...
소능 배상...
(ps) 윤화백께 졸렬한 이 글을 쓰며...이 노래를 반복해 듣고 있소...
구월이 오는 소리 다시 들으면
꽃잎이 지는 소리 꽃잎이 피는 소리
가로수에 나뭇잎은 무성해도
우리들의 마음엔 낙엽이 지고
쓸쓸한 거리를 지나노라면
어디선가 부르는듯 당신 생각뿐
(구월의 노래)
(사족1)
제 학교주소와 전화번호요...
주소: 339-700, 충청남도 연기군 조치원읍, 고려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정보통계학과 최종후 (교수)
cellphone: 011-1713-0857
(사족2)
잘 살 권리, 행복하게 살 권리
지난 수개월 우리 모두는 선거의 열풍에 휩싸여 지냈습니다. 돌이켜보니 임신년 일년은 온 나라가
정치판이었다 싶습니다. 봄부터 밀어닥친 국회의원 선거가 그러하게 하였고, 중반전엔 이 나라
말꺼리만 해도 수월하지 않은 판에 미국 대통령선거까지 신문, 방송을 뒤덮었습니다.
그것이 지나자 말자 또 다시 이 나라 대통령선거가 하반기를 뒤덮습니다. 인간은 정치를 위해 사는
존재입니까? 정치적 삶이 인간다운 것입니까? 참으로 그러하지 않다고 믿는 저는,
우리들의 詩的 삶을 그리며 이 글을 써볼까 합니다. 이 글로써 그동안 '대일논단'의 귀한 지면을
어지럽힌 난필의 작난이 마무리되는 마당인 바, 이제야말로 가장 중한 얘기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들의 詩的 삶이란 어떤 것일까요? 樹話를 아십니까? 현대 한국화단에서 그 이름이 결코 지워질 수
없는 金煥基 畵伯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의 그림이 모두 詩的이듯이 그의 삶도 詩的이었습니다.
선생 사후, 미망인 鄕岸여사는 생전의 선생의 글을 묶어 '그림에 부치는 詩'라고 題한 산문집을
펴낸 바 있습니다. 이 책에 실린 많은 글들은 그의 詩的 삶을 절절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글리 서울'이라는 글 일절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서울의 밑바닥은 花崗岩으로 깔려 있는 것으로 안다. 그 희고 맑은 화강암으로 왼통 서울을 깔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 희고 맑은 화강암의 포도 위에 비가 내리는 정경을 생각해 보라.
어디 아스팔트에 비길 건가...... 그런데 저 덕수궁 담은 왜 허물었을까. 서울의 꿈과 향수가
어린 그 덕수궁 돌담장은 왜 우리 손으로 허물었을까...... 인간이 지상에 무엇이든 세운다는 것은
뜻깊은 일이다. 그렇기에 함부로 세울 수도 없는 일이요, 한번 세운 것은 허물기도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지구와 생명을 같이 하는 그러한 영원성을 전제로 하는 의지로써 지상건설에 임해야 하지
않겠는가"
樹話 金煥基 畵伯의 1963년 글입니다.
혹자는 그러할 지도 모릅니다. 울퉁불퉁한 화강암의 포도는 뾰죡구두를 신고 다니는 아가씨들을
불편하게 할 것이다. 자동차의 주행이 매끄럽지 못할 것이다.
아스팔트보다 시공에 돈이 많이 들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겨울을 막지난 봄, 또는 늦가을, 화강암 포도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그 튀기는 모습.
그것을 바라보고 자라나는 어린이. 과연 이 어린이가 자라나며 얻게 될 詩心을 값으로 환산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주변을 돌아 보세요. 이곳저곳 다 그만두고 우리가 거처하고 있는 한밭벌을 둘러보세요.
둔산 재개발 와중에 통신학교 자리의 귀한 나무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또 작은 역사를 상실하고 만 것입니다. 산위에 산밑에 있던 나무는 모다 사라지고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도발적인 욕심으로 말미암아 정말지녀야 할 詩心의 공간은 허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안타까운 심정으로 저의 졸시 2편을 읽어 봅니다.
보고 있다
저 세상엔 꽃이 피었을까?
그리하여 권태롭지 않을까?
햄벅을 먹는 아이
핫독을 먹는 아이
라디오를 먹는 아이
TV를 먹는 아이
종이꽃만 만발한 이 세상
그리하여 권태로운 세상
철두철미 뒤집혀야
뒤집어야
보일락 말락한 세상
나는 저 세상을 본다
그리하여
나는 저 세상으로
이 세상을
치환하고 싶다
- 졸시. '나는 저 세상으로 간다' -
어느날 부터인가
사람들은 모든 걸
뭉개고
없애고
아파트를 짓기 시작하였습니다
동네 뒷산도 뭉개고
마을 개울도 없애고
드디어 드디어
해냈습니다
한라산도 뭉개지고
설악산도 뭉개지고
낙동강도 없어지고
섬진강도 사라지고
아이들이 소풍을 갑니다
아파트에서 아파트로
블럭에서 블럭으로
나비도 없습니다
잠자리도 없습니다
- 졸시. '兮理의 소풍' -
...(중략)...
폭풍우 같은 일생을 살다간 반 고호가 임종했을 때, 그의 주머니에는 이런 글이 적힌 쪽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정말이지 우리는 그림으로서 밖에는 그 아무것도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합니다. 우리는 詩心으로서 밖에는 그 아무것도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잘 살 권리'보다 '행복하게 살 권리'가 더 소중하게 다루어지는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詩心의 공간이 허물어지고 있는 이 마당에 침묵하는 것은 죄입니다.
(졸고, 대전일보, '대일논단' 1992.12)
2003.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