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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타산-관음신앙의 성지>
1월 17일부터 27일까지 중국답사를 다녀왔다.. 이번 답사의 목적이 <민속조사>였지만, 답사 막바지에 오래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보타산에 들르게 되었다.
중국 절강성 주산군도 보타산(섬 이름)은 중국 관음신앙의 성지다.
1월 25일 아침, 절강해양학원을 떠나 학교에서 내준 버스를 타고 40분 정도를 가니 항구가 나왔다. 수백 척의 배들이 운집해 있는 포구...(이 정도 규모의 포구는 우리나라엔 없을 것 같다.) 그 한쪽에서 보타산 행 배에 올랐다. 안개비가 내리는 날..찬 바람까지 불었다. 아무나 성지에 들어올 수 없다는 뜻이라도 담겨 있는 듯 날씨가 궂었다....
태고적부터 장강(양자강)의 물길이 적셔놓은 황토빛 바다(우리가 상상해본 적 없는 바다 색깔이다.)를 가르며 배가 움직이고, 순식간에 섬에 배가 닿았다. 보타산에 발을 디딜 수 있도록 허락해준 것만도 행운으로 여기고 설레는 마음으로 보제사, 남해관음, 법우사 등을 답사했다.
이곳들을 하나하나 틈나는 대로 소개하겠지만, 우선 남해관음을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사진) 보타산 남해관음-글씨 아래 점점이 서있는 사람의 모습과 비교해보면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거대한 높이로 바다를 내려보는 남해관음상은 그 크기와 높이가 대단하다. 그런데 관음상 그 자체가 아니라, 나에겐 관음을 친견하는 색다른 체험이 있어
남해관음을 돌아 왼쪽을 끼고 숲길을 따라.... 나무숲 사이로 남해관음상을 올려보다가... 바다를 내려보다가.. 그렇게 다가가 가만히 멈춰 서 호흡을 골랐다. 그리고는 계단을 올라 제단 앞에 서서 한참 동안 기도를 했다. 그리고 '그 일'이 생겼다.
카메라 가방을 멘 외국인이 색다르게 기도하는 것을 (우리가 두손을 합장해 허리 숙여 기도하는 것과 달리, 중국인들은 향을 두손으로 모두어 이마에 대고 기도한다.)
도수 높은 안경을 낀 스님은 내게 무슨 말인가를 걸어왔는데, 난 중국어를 못하기에(간단한 인삿말 정도밖에 못한다.) "당신이 하는 말을 못알아 듣겠다. 난 한국인이다."라고 간단히 중국어로 말한 후, 통역을 불러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분은 내게 "오대산에 문수보살이 계시니 그분을 뵈러 오대산에 들러보라."고 했다. 그리고는 주머니춤에서 염주를 꺼내 주었다. 검은 빛을 띤 염주알이 촘촘히 박힌 염주를 받아 들고, 난 잠시 그 분을 바라다 보았다...내 눈을 쳐다보던 그 분은 조용히 석상 곁으로 몸을 옮기더니 절이 경제적으로 어려우니 작은 돈이라도 기부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조심스러운 언행으로 보아 돈 얘기를 하는게 쑥스러운 듯했다. 중국돈을 조금 건네 주자 받아 들고 눈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그분이 먼저인지, 우리 일행이 먼저인지 남해관음 아래에 마련된 전시실로 향했다.
내게 먼저 말을 걸어와 염주를 건네주고 오대산의 문수보살을 안내해준 그분은 누구일까.. 도수높은 안경과 신중한 언행으로 보아, 학승이거나 수도승일 것 같은데,, 아니면 약간 지친 모습으로 보아 탁발을 다니거나 순례중인 스님 같은데,, 그분과 인연이 있어 내가 남해관음을 찾아나선, 길에서 잠깐 만나 얘기 나누고 홀연히 사라졌으니, 그분이 아마 관세음의 현신이 아닐까... 그분이 남겨준 염주를 팔목에 차고서 ... 그것을 만지작거리며 가만히 생각에 잠겨본다.....
귀국하는 길에 상해 서점에 들렀는데, <사묘>라는 책에 오대산 문수도량이 소개되어 있어 그 책을 사들고 왔다. 책 속의 사진으로는 느낌이 부족해 언제고 오대산에 가야 될 것같은 생각이 든다.
내게 나타난 그 보살은 나에게 어떤 삶을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본다. 순례에 지친 얼굴이었지만 도수 높은 안경 너머로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지금 하루 하루를 숨가쁘게 살아가는 내게서 그분은 무엇을 보았을까.... 내게 다가와 말을 건네고 홀연히 사라진 그분을 관세음이라고 여기고 싶다.(불교에서는 관세음의 현신을 각별하게 생각한다. 난 불교신자가 아니지만 여행지에서 만난 예사롭지 않은 인연이기에 특별한 일로 생각하고 싶다.) 어떻게 살아야 참다운 삶인가를 생각하게 해준...그분을.. 염주를 만지작 거리며 다시 생각해본다.
또한 관세음은 먼곳에 따로 계시는 분이 아니니, 천성산을 지키기 위해, 생명과 환경을 지키기 위해 단식하고 계시는 지율스님, 새만금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는 문규현 신부, 또는 지하철역 차가운 바닥에서 행상하는 할머니 빗자루를 들고 복도 청소를 하고 있는 청소부 아저씨........ 그분들이 관세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겸손하고 청결하게 살아갈 일이다. 뜻을 세우고 실천하며 살아갈 일이다. 염주를 만지작 거리며 다시 생각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