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어산지, "위키리크스, 공익 위해 두려움 없이 폭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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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리크스는 대중을 위해 두려움 없이 사실을 폭로하고 있다고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가 2010년 12월 8일자 호주 일간지 기고문을 통해 밝혔다. 어산지는 영국에서 체포된 뒤 발행된 '디오스트레일리안' 기고문에서 위키리크스를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수천명의 호주군이 희생된 갈리폴리 작전의 지휘부에 대해 폭로한 호주 언론인 키스 머독에 비유하며 "거의 한 세기 후 위키리크스 역시 공개될 필요가 있는 사실을 두려움 없이 공표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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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여러 신문이 폭로 내용을 기사화하고 있는데도 "위키리크스만 홀로 미국 정부와 그의 시종들로부터 가장 악랄한 공격과 비난을 받고 있다"며 불만을 쏟아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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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미군의 아프가니스탄전과 이라크전 관련 기밀문서를 공개하고 있는 줄리언 어산지 |
※ 사진 : 연합뉴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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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리크스가 인명과 국가 안보, 군의 안전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는 미국 정부와 호주 정계의 비판에 대해 어산지는 "지금까지 알기로는 단 한 사람도 해를 입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우리(호주)는 약자"라며 "길라드 행정부는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진실을 알리는 사람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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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산지에게 자유를~! 2010년 12월 11일 스페인의 마드리드의 영국 대사관 앞에 모여 줄리언 어산지를 석방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위키리크스의 지지자들. 어산지는 영국경찰에 체포되었다. |
※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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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자신이 반전주의자가 아니며 "정당한 전쟁"의 개념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쁜 것은 전쟁에 대해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그런 전쟁을 위해 국민의 생명과 세금을 요구하는 정부"라고 강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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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에서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것과 관련, 어산지는 폭로된 외교전문을 근거로 스웨덴과 미국의 관계는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훨씬 더 밀접하다고 밝혀 자신에 대한 기소 배후에 양국 정부 간 모종의 협의가 있음을 암시했다. 어산지는 1971년 미 대법원이 베트남전 기밀인 <펜타곤 페이퍼>의 보도 권리를 인정한 판례를 거론하며 "현재 위키리크스를 둘러싼 혼란으로 인해 모든 언론에 진실을 보도할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당위성이 더 강조되고 있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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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1968년 5월까지 인도차이나에서의 미국의 역할을 기록한 보고서이다. 합계 250만 자료, 총 47권(약 3,000쪽의 설명과 4,000쪽의 부속 서류로 구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공식 명칭은 <미국-베트남 관계, 1945~1967(United States-Vietnam Relations, 1945~1967)>이고, 1967년 미국의 국방장관 로버트 S. 맥나마라(Robert S. McNamara)의 책임 아래 작성, 위임된 미국의 국방성 1급 비밀문서이며 대니얼 엘스버그(Damiel Ellsberg)가 이 과정에 참여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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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6월 13일 <뉴욕 타임스>는 연방정부가 "최고 기밀서류"로 취급하고 있던 이 보고서로 연재기사를 게재하기 시작했다. <뉴욕 타임스>에 3회분 기사가 실린 후 미국 법무부는 연방 제1심 법원으로부터 국가기밀서류의 공표를 금지시키는 임시명령을 얻어냈는데, 이때 법무부는 이 보고서를 계속해서 국민들에게 보도한다면 미국의 안보이익에 "치명적이며 회복할 수 없는 손실"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뉴욕 타임스>는 역시 이 보고서를 입수하고 있던 <워싱턴 포스트>와 연합하여 법원의 금지명령에 대항해 15일 동안 법정투쟁을 벌였고, 이 기간 중 연재기사는 중단되었다. 1971년 6월 30일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전억제 명령 사건(Prior-restraint Case)"으로 간주된 이 재판에서 연방대법원은 6 대 3의 판결로 양 신문사에게 문제의 보고서를 다시 게재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했다. 또한 법원은 이 보고서의 공표를 제한하기 위한 연방정부의 주장이 정당화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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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타임스>는 미국이 베트남 참전의 구실로 내세운 "통킹 만 사건"은 북베트남의 도발로 촉발된 것이 아니라 미국 군대가 조작한 사건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공해상에서 공격받았다는 미국 구축함 매독스호는 사실 북베트남 영해를 수시로 넘나들던 암호명 '데소토'라는 정보 수집 함정이었으며, 북베트남 어뢰정이 미국 구축함을 공격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북베트남을 전쟁 도발 국가로 알고 있었던 미국 국민들은 이후 큰 충격에 빠졌으며, <뉴욕 타임스>의 후속 보도와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가 이어지면서 베트남전쟁이 미국 정부와 군수기업체, 광신적 반공주의자들이 결탁한 침략 전쟁이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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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곤 페이퍼는 첫째, 인도차이나에서 프랑스와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베트남인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의 트루먼 행정부가 프랑스에 군사원조를 제공했으므로 미국은 베트남 사태에 직접 관련되어 있으며, 둘째, 1954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공산주의 세력의 남베트남 탈환을 막고 북베트남에 있는 새로운 공산주의 정권을 와해시키기로 결심했으며, 셋째,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전임자에게 인계받은 "제한전쟁전략"을 대대적인 전쟁개입정책으로 전환시켰고, 넷째, L. B. 존슨 대통령은 북베트남과의 비밀전쟁을 확대하는 한편 미국의 대대적인 개입정책이 국민들에게 공식적으로 알려지기 1년 전인 1964년에 공개적인 전쟁을 개시하기 위한 계획을 입안했으며, 다섯째, 존슨 대통령은 1965년 북베트남에 대한 폭격이 남베트남에서 베트콩들의 반란지지행위를 중단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지 못할 것이라는 미국 정보조직의 판단을 무시하고 폭격명령을 내렸다>는 것을 폭로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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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곤 페이퍼는 수년 간에 걸쳐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개입증대를 둘러싸고, 그 법률적·도덕적 정당성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점증하고 있던 시기에 공표되었기 때문에 미국 내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논쟁을 야기시켰다. 국가의 최고 기밀서류가 폭로되고 계속 연재되자 1972년 선거에서 재선을 노리고 있던 닉슨 행정부는 당황했다. 펜타곤 페이퍼의 폭로로 곤경에 처해 있던 닉슨은 엘스버그의 평판을 떨어뜨리기 위해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했는데, 이러한 사실은 이후 워터게이트 사건의 조사 중에 명백히 밝혀졌다. |
<출처 : 위키백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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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는 저자 직강 동영상 강의교재입니다. 저자 조근주 선생의 재미있고 유익한 상식 동영상강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isidae.com에서 상식을 마스터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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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에 실시된 조선일보 기자직 종합상식 기출복원문제를 수록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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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ISSUE>에서는 지난달의 가장 중요한 이슈만을 모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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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지 <이슈&>과 함께하는 <이슈& 세상을 보는 눈>에서는 이마트 피자, 통큰 치킨 등으로 촉발된 SSM 논란과, mnet의 <슈퍼스타 K> 프로그램이 소비되는 방식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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