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소설
어디쯤 서있을까
신 현 근
ㄴ자로 꺾이는 복도 모서리를 돌아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쯤에서였다. 한 70쯤 돼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그곳에 서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할머니는 손에 조그만 보자기를 들고 있었는데 계단을 오르기가 힘에 겨운 듯 잠시 난간에 몸을 의지하고 있었다.
학교 안에서 학부모를 만나는 일은 흔한 일이어서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지나치려고 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학생의 어머니라 하기엔 너무 늙어보였고, 모습 또한 너무 초라했다. 나는 할머니 옆에서 걸음을 멈추고 무슨 일로 학교에 나오셨느냐고 물어보았다.
할머니는 못 들은 척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한발 한발 계단을 올라갔다. 발걸음은 금방이라도 넘어질듯 불안했고, 몸은 창문으로 흘러드는 바람결에도 날려가 버릴 듯 가벼웠다. 한눈에도 할머니는 건강이 좋지 않았고, 병색이 완연했다.
“할머니, 무슨 일로 학교에 나오셨어요?”
나는 할머니 쪽으로 약간 허리를 굽히며 다시 분명한 어조로 물었다. 그제야 할머니가 발걸음을 멈추고 나에게 얼굴을 돌렸다. 그러나 시선은 나를 그냥 지나쳐 허공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순간 눈이 어두운 사람인가 했지만 그렇지는 않은 듯했다.
“애가 아침밥을 못 먹고 가서요…”
내가 같은 말로 세 번째 물었을 때에야 할머니는 몸을 바로 세우며 간신히 대답했다. 그 짧은 몇 마디를 하는 데도 무척 힘들어했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도시락을 싼 보자기였다.
“그래서 도시락을 가지고 학교에 나오셨어요? 요즘은 학교에서 점심을 주기 때문에 걱정을 안하셔도 되는데….”
“그래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금도 아침밥을 안 먹었다고 도시락을 싸가지고 학교에 나오는 학부모가 있다니. 더구나 제대로 걸을 수도 없을 만큼 불편한 몸으로. 수십 년 전 내 어렸을 적 어머니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저려왔다.
요즘은 아침을 먹지 않고 학교에 오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마 절반은 될 것이다. 어떤 애는 다이어트를 위해서, 어떤 애는 입맛이 없어서, 또 어떤 애는 시간이 없어서 등 아침을 먹지 않는 이유도 갖가지다. 그러나 공통된 점은 요즘 애들은 아침을 잘 안 먹는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아침을 먹지 않았다고 도시락을 싸들고 학교까지 찾아오다니. 눈앞에 서있는 할머니는 겉모습 그대로 어쩔 수 없는 할머니였다.
“요 며칠 지가 몸이 너무 아파서요.”
할머니는 자기의 초라한 옷차림을 변명이라도 하듯 두 손으로 가슴을 가리며 말을 이었다. 엊저녁에도 몸이 아파서 밥을 해 먹이지 못했는데 아침에도 굶겨 보내고 나니 몸이 아파서 그러긴 했지만 더 이상 자리에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먹을 것을 좀 만들어 가지고 학교에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자기가 교실까지 올라가서 직접 애한테 도시락을 건네주겠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말을 하면서도 누가 도시락을 빼앗아가기라도 할까봐 옆구리에 보자기를 더 단단히 껴안았다.
“제가 이 학교 교감인데요, 그 도시락 저한테 맡기세요. 제가 전해 드릴께요.”
그러면서 지금은 수업중이라 올라가도 도시락을 줄 수 없다는 것, 수업이 끝나면 애들이 어지럽게 뛰어놀기 때문에 누가 어디에 있는지 찾기도 힘들다는 것, 더구나 갑자기 나이 든 할머니가 나타나서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뭔가 먹을 것을 주고 가면 그 학생이 창피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고 할머니를 계속 설득했다. 그러나 나이 든 할머니가 나타나서 어쩌고 하는 말을 하면서는 순간적으로 아차 했다. 아니나 다를까, 할머니는 내 말에 충격이라도 받은 듯 한차례 얼굴을 실룩거렸다. 그러면서 무슨 말인가를 할 듯 머뭇거리다가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
나는 어렸을 때 어머니가 학교에 나오는 걸 몹시 싫어했다. 친구 어머니들은 모두 젊고 좋은 옷을 차려 입고 학교에 나오는데 우리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이미 할머니였고 옷도 구정물이 흐르는 것만 입고 다녔다. 그 당시는 어머니 들이 학교에 나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운동회가 열리는 날처럼 학교에 무슨 특별한 행사가 있어서 어쩌다가 부모가 학교에 나오는 날이면 나는 늙은 어머니가 그렇게 창피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옛날 학교로 찾아왔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엉겁결에 할머니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중학교 2학년 때나 3학년 때였을 것이다. 쉬는 시간이었는지 점심시간이었는지 그것도 분명치 않았다. 다만 추운 겨울날이었고 눈은 내리지 않았지만 귀를 떼어 갈 듯 차가운 바람이 부는 날이었던 것만은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겨울철이라 밖에 나가지 못한 우리들은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교실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그때 한 친구 녀석이 나한테 다가오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인태야, 너그 엄마가 학교에 오셨어. 빨리 교문에 나가봐.”
친구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감전이라도 된 듯 그 자리에 굳어지고 말았다. 너그 엄마가 학교에 오셨어. 친구의 입에서 이 말이 다시 튀어나올까 봐 나는 얼른 교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누구한테 들킬세라 주변을 살펴보면서 복도를 내달렸다.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나에게는 젊은 어머니는 한 번도 기억에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기억하기 이전부터 이미 늙어 있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이었던가. 우리는 어머니 아버지들과 함께 학교운동장에서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한참 있다가 주위를 돌아보니 다른 애들은 모두 젊은 아줌마들과 나란히 서있는데 나만 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서있었던 것이다. 어린 마음에도 어머니가 늙었다는 것이 그렇게 창피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잡고 있던 손을 슬그머니 내려놓고 어머니로부터 저만큼 떨어져 나갔던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뒤로 어머니가 학교에 나오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물론 내가 어머니를 불러내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친구들 앞에서는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제대로 부르지도 않았다. 내 눈에는 어머니는 언제나 농사일에 묻혀 사는 시골 할머니였다. 그런 어머니가 학교로 나를 찾아왔다고 했다. 그것도 읍내에 있는 중학교로. 나는 집에서 이십 리나 떨어진 읍내 중학교로 어머니가 찾아오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니 놀라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복도를 뛰어가고 있는 동안 창피한 생각이 전류처럼 전신을 훑어 내리고 있었다.
2·3층 계단을 한걸음에 뛰어내려 1층 출입구에 이르렀을 때였다. 위아래 하얗게 차려입은 할머니 한 분이 교문 기둥에 조그맣게 기대어 서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멀리서 보아도 한 눈에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장날이나 외출할 때만 꺼내 입는 하얀 무명 치마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엄마, 왜 학교에 왔어? 누가 보면 어떡하라구?”
어머니는 내가 바싹 다가갈 때까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학교 중앙현관 쪽만 바라보면서 이제나 저제나 하는 얼굴로 서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눈앞에서 소리치는 나를 발견하고는 깜짝 반가워하며 덥석 손을 붙잡았다. 어머니의 손이 얼음처럼 차가웠다.
교문에는 겨울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다. 거칠 것 없이 들판을 달려온 북쪽바람이 어머니의 치마를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게 했고, 저고리 섶과 옷고름을 팽팽히 잡아당기고 있었다. 하얀 치마저고리 속에서 어머니는 바람 타는 문풍지처럼 떨고 있었다.
“엄마, 빨리 집으로 돌아가. 뭐하러 학교에 왔어?”
나는 다시 어머니에게 대들 듯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어머니는 내 말 같은 건 아랑곳하지도 않았다. 차가운 손으로 연신 내 얼굴을 매만지고 쓰다듬으며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추위에 언 어머니의 얼굴은 웃는 것이 아니라 우는 것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어머니는 큰 비밀이라도 있는 것처럼 나를 교문 가장자리로 끌고 가더니만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는 저고리 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주먹만하게 똘똘 말려져 있는 손수건이었다.
“이거 하나 먹어봐라.”
어머니가 손수건의 매듭을 풀면서 말했다. 단단히 묶은 매듭이 잘 풀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덜덜 떨면서 매듭 위에서 자꾸만 헛손질을 했다.
“떡인데 맛이 괜찮더라. 어서 한번 먹어봐.”
한참 만에 손수건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놀랍게도 이것저것 뒤섞여 있는 떡이었다. 나는 그 떡들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 앉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엄마, 여기서 이것을 먹으라고? 빨리 집에나 가지고 가.”
떡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지만, 설령 좋아한다 하더라도 그 추운 겨울날 교문에 쭈그리고 앉아서 떡을 먹고 있을 수는 없었다.
“야야, 그러지 말고 한번 먹어보라니까.”
어머니는 인절미 하나를 집어 막무가내로 내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떡은 이미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잘 씹히지도 않았다. 그래도 나는 별 수 없이 입안 가득히 들어온 떡을 우물우물 씹어 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날 어머니는 읍내에 있는 친척집 환갑잔치에 왔다가 마침 내 생각이 나서 상 위에 있는 떡들을 몇 개 싸가지고 왔다고 말했다.
“알았어. 떡은 교실로 가지고 가서 먹을께 엄마는 빨리 집으로 가.”
나는 어머니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어머니를 빨리 보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떡이 입안으로 잘 넘어가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계속해서 떡을 입 안에 밀어 넣고 있었다. 안 되겠다 싶었다. 그것들을 주는 대로 다 받아먹고 있다가는 그 사이에 어머니가 얼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장작개비처럼 깡마른 어머니의 팔을 잡아당기며 교문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는 어머니의 등에 대고 잘 가라는 한 마디를 던지고는 그냥 돌아서 뛰기 시작했다.
나는 학교 동쪽 출입구에 도착할 때까지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어머니가 뒤에서 따라오는 것만 같아 있는 속력을 다 냈다. 뒤에서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목을 어깨 속에 집어넣고 뛰었다. 그렇게 건물 안으로 들어와서야 나는 비로소 어머니를 돌아다보았다.
교문 밖으로 밀어냈던 어머니가 어느새 돌아와 교문 기둥에 기대어 서있었다. 그런데 바라보는 방향이 내 쪽이 아니라 학교 중앙현관 쪽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어느 방향으로 뛰어갔는지조차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나는 중앙현관만 멍하니 바라보고 서있는 어머니를 향해 막연히 손을 한번 흔들어 보이고는 다시 돌아섰다. 그리고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 떡들을 다 어떻게 한다? 그러나 마땅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밖에서 다 먹고 들어갈 수도 없고, 교실까지 들고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쓰레기통에 버릴 수도 없었다. 참 난처했다. 손에 들고 있는 떡이 천근 무게로 눌러왔다.
나는 우선 2층 화장실로 숨어 들어갔다. 그리고는 창 너머로 교문 쪽을 다시 내다보았다. 어머니는 그때까지 그 자리에 꼼짝도 않고 서있었다. 어머니의 하얀 치마저고리가 교문 기둥에 걸려 있는 빨래처럼 나부끼고 있었다. 나는 화장실 창문에 턱을 걸치고 소리 없이 부르짖었다. 엄마, 빨리 가. 창피하게 왜 계속 거기에 서있어. 빨리 가라구.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머니가 어떻게 돌아갔는지. 그 떡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그리고 너그 엄마가 학교에 왔다고 알려준 그 친구에게도 뭐라고 했는지 전연 생각이 나질 않는다. 다만 멍하니 학교 쪽을 바라보면서 교문에 못 박힌 듯 서있던 어머니의 하얀 모습만 고문자국처럼 내 기억에 오래오래 남아 있었다.
“애가 몇 학년 누구세요?”
학생과는 무슨 관계냐는 말은 차마 입 밖에 내놓지 못했다. 아무리 봐도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을 둘만한 나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또 말실수를 할까봐 입술까지 불거져 나온 말을 꾹 참았다.
“이름은 광순이고, 반은 2학년 5반인가 그러지요 아마.”
“아 그러세요? 그럼 이거 저한테 주시고 그만 돌아가세요. 몸도 편찮아 보이는데 빨리 돌아가세요.”
옛날 언젠가 어머니에게 했던 그 비슷한 말을 할머니에게 되풀이했다. 그러면서 도시락보자기를 빼앗다시피 받아들었다. 그제야 할머니는 체념한 듯 돌아섰다. 돌아서긴 했지만 무척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려갈 수도 없고 다시 올라갈 수도 없다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계단 중간에 그대로 서있었다. 자기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또 거기에 왜 서있는지조차 모르는 그런 혼란스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할머니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염려 말고 돌아가라고 안심을 시켰다. 할머니가 드디어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참을 걸려 계단을 다 내려간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한번 더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할머니에게 손을 흔들어 빨리 가세요를 반복했다. 그리고 할머니의 모습이 계단 옆으로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들고 있는 보자기가 생각나 얼굴로 가져갔다. 순간 그때까지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는 보자기로부터 구수한 반찬냄새가 향기로운 꽃향기처럼 코끝에 스며들었다.
“아니, 너 김광순 아니냐?”
나는 깜짝 놀랐다. 쉬는 시간에 연락을 받고 교무실로 내려온 학생이 광순이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불러놓고 보니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녀석, 지금 선도위원회에 징계 대상으로 올라와 있는 유명한 말썽꾸러기 바로 김광순이었다.
“네. 근데 왜 불렀어요?”
광순이는 의아한 눈길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녀석의 하얀 피부와 푸르스름한 눈동자, 그리고 치렁치렁 늘어뜨린 갈색머리를 바라보면서 한동안 할 말을 잊었다. 아니 이 녀석이 방금 전 할머니가 말하던 바로 그 광순이란 말인가.
금년 초 교감 발령을 받고 이 학교로 부임해 온 이래 맨 처음 만난 녀석이 바로 김광순이었다. 맨 처음 만났다기보다는 맨 처음으로 부딪친 녀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때도 무슨 일로인지 광순이는 교무실에 불려와 영어교사로부터 야단을 맞고 있었다. 가만히 들어보니 수업태도가 나빠서 불려온 것 같았다. 그런데 머리와 복장도 그렇거니와 주의를 받고 있는 태도 또한 눈에 거슬렸다. 한마디로 잘못해서 불려온 학생의 태도가 아니었다. 녀석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고개를 빳빳이 쳐든 채 딴 곳만 쳐다보고 있었다. 선생님의 말을 한 마디도 받아드리지 않고 있었다.
보통애가 아니구나, 그것이 광순이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내가 놀란 눈을 떼지 못하고 있자 광순이 담임이 슬그머니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내 귓가에 입을 대고 소곤거렸다. 학생 이름은 김광순이고, 술집여자와 미군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이고 , 지금은 외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결손가정 학생이라고.
“광순이에게 가장 큰 문제는 담배입니다. 광순이는 어렸을 때부터 담배에 중독이 되어 이젠 피우지 않고는 단 하루도 견디지를 못하는 애입니다. 금연학교를 갔다 왔는데도 소용이 없습니다. 담배를 피우다 보니까 자연히 나쁜 애들과 어울리게 되고, 그러다 보니까 더 나빠지고 그럽니다. 아주 골 때리는 문제압니다.”
문제아란 말은 비교육적이라 해서 요즘은 학교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담임은 거리낌 없이 광순이를 문제아라 불렀다.
내가 광순이를 처음 만난 것도 바로 그날이었다. 학교수업이 다 끝나고 종례를 마친 학생들이 집에 가기 위해 우르르 몰려 내려가고 있는 계단에서였다. 시끌벅적 떠들고 있는 한 무리의 학생들 속에 방금 전 교무실에서 보았던 광순이가 끼여 있었다. 녀석을 발견하자 이상하게도 말을 걸어보고 싶은 호기심이 일었다.
“얘, 넌 머리에 물을 들인 거니 원래 색깔이 그러니?"
다른 애들은 안녕하세요? 안녕히 계세요 명랑하게 인사를 하는데 광순이만큼은 교감인 나를 보고도 본체만체 그냥 걸어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얘’하고 광순이를 불러 세웠다.
“왜요? 제 머리가 어때서요?”
광순이가 획 돌아서며 그 푸르스름한 눈을 크게 벌렸다. 돌아설 때 기다란 머리카락들이 원을 그리며 순간적으로 하얀 얼굴을 휘감았다가 풀어주었다. 광순이는 동서양의 피가 섞인 예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표정은 냉소적이고 반응은 거부적이었다.
“염색을 한 것 같아서….”
“반반이에요. 이제 됐어요?”
나는 광순이의 너무도 뻔뻔스런 대꾸에 찔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거기에서 물러서면 교감 체면이 말이 아니어서 이번에는 옷으로 옮겨갔다.
옷도 좀 그렇다. 옷만 보면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르겠다.”
광순이는 옷을 아무렇게나 입고 있었다. 속살이 보일 정도로 무릎이 닳은 청바지에 두툼한 점퍼를 걸치고, 그 위에 커다란 배낭을 메고 있어서 언뜻 보면 학생 같지도 않았다. 얼굴만 아니면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하기도 어려운 복장을 하고 있었다.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제가 여잔지 남잔지.”
광순이가 얼굴에 묘한 웃음을 띠며 장난스럽게 받았다.
“뭐? 자기가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몰라?”
“저는 뭐든 상관없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제가 여자래요.”
녀석과의 첫 만남은 그렇게 끝났다. 몇 마디에 불과한 짧은 만남이었지만 녀석이 보통애가 아니라는 첫인상을 더 확고하게 심어주었다.
그 날 이후 학교에서 사사건건 말썽만 피우는 광순이와 교감인 나와의 만남은 어쩌면 운명이라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 학교에 교감으로 부임한 3개월 남짓 되는 동안에 나는 광순이를 열 번도 더 만났을 것이다. 그날도 순시 중에 계단에서 우연히 할머니를 만나 도시락을 받아들고 온 것도 광순이를 만날 수밖에 없는 하나의 운명임을 느끼게 해주었다.
“너 지금 배고프지 않니?”
이제 교무실로 부른 목적을 이야기해야 했다. 그래서 말머리를 이렇게 바꾸자 이번에는 광순이가 흠칫 놀라며 경계하는 눈길로 나를 쳐다보았다.
“왜 제가 배가 고파요? 참 이상한 말씀을 다 하시네.”
녀석은 교감인 나에게도 어려움이 없었다. 처음부터 그랬다. 말을 하는 데 예의나 형식 같은 걸 전연 개의치 않았다. 아무 말이나 생각나는 대로 스스럼없이 내뱉었다. 그날도 나한테 반말 비슷하게 빈정거리듯 대꾸하고 있었다.
“그래? 배가 고플 것 같은데….”
“뭐라구요? 왜 자꾸 그런 이상한 말씀만 하세요?”
“아침밥도 안 먹고 왔다면서?”
“네? 누구한테 무슨 말을 들었어요?”
그러더니 녀석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따지듯이 물었다.
“혹시 할머니가 왔었나요? 외할머니가?”
“그래. 할머니가 오셨다. 이거 가지고.”
나는 테이블 위에 도시락보자기를 올려놓았다. 그러자 녀석이 다시금 기절할 듯이 놀라며 도시락보자기와 내 얼굴을 번갈아 훑어보았다. 순간적으로 녀석의 얼굴에 절망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이내 예전의 뻔뻔스런 얼굴로 바뀌며 이렇게 쏘아붙였다.
“밥을 안 먹고 오는 것도 교칙에 걸리나요?”
더 이상 녀석과 그런 식으로 말장난을 해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정색을 하고 몇 십 년 전의 나 자신에게 말하듯 낮게 중얼거렸다.
“외할머니가 많이 아프시던데…. 이걸 가지고 가서 먹어라. 화장실로 들어가지 말고.”
화장실은 녀석이 학교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다. 녀석이 담배를 피우는 곳도 화장실이고, 애들을 끌고 가서 싸움을 벌이는 곳도 화장실이고, 또 수업을 빼먹고 시간을 보내는 곳도 화장실이다. 따라서 녀석을 만나기 위해서는 화장실만 지키고 있으면 된다. 어떤 날은 화장실에서 곧장 교무실로 끌려오기도 했다. 요즘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녀석은 여전히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장소로 화장실을 활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도시락도 화장실에 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으로 그렇게 말했다.
“이제 가도 되죠?”
광순이는 그 말에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대신 더 이상 나와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듯 냉소적으로 반문했다. 얼굴은 뭔가를 숨기려는 듯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맹수가 먹이를 가로채가듯 갑자기 도시락보자기를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도망치듯 교무실을 빠져나갔다.
광순이가 며칠 조용하다 했다. 그러나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기어코 또 말썽을 일으키고 말았다. 3교시 수업을 마치고 슬그머니 학교를 빠져나가 동네놀이터에서 담배를 피우고 돌아오다가 체육과 교사들에게 붙잡혀 들어온 것이다. 학교 안에서는 감시가 심해서 담배를 피울 장소가 마땅치 않았던 모양이었다. 교무실 내 앞에까지 끌려왔지만 광순이는 뻔뻔스러울 만큼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도 담배가 피우고 싶니? 담배가 그렇게도 좋아?”
나는 교감 자리 옆 소파에 광순이를 앉히고 그렇게 물었다. 광순이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나와 단 둘이 있을 때는 말을 곧잘 하다가도 누가 옆에 있다하면 이상하게도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
“왜 나하고는 말을 잘 하면서 다른 선생님들과는 아무 말도 안하지?”
언젠가 내가 광순이한테 그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그러자 광순이가 싱겁게 웃었다.
“교감선생님과는 통하잖아요.”
“뭐? 나하고 통한다구?”
어처구니가 없어서 나도 따라 웃었다.
“그리고 교감선생님은 나를 미워하지 않구요.”
“그렇다고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 정도면 됐어요. 더 바라지도 않아요.”
그리고 광순이는 어색한지 어디론지 뛰어가 버렸다. 그때 나는 의외에도 광순이가 내 가까이에 와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광순이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어쩌다가 저렇게 담배 중독이 되었을까. 아직 고등학교 2학년밖에 되지 않은 여자애가. 담배를 참지 못하고 이삼일에 한번씩 학교를 뛰쳐나가는 광순이가 측은하고 불쌍하게 보였다. 나는 광순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예쁜 얼굴이었다. 그 예쁜 얼굴이 제대로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심한 비바람에 시들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교무실 여기저기에서 광순이를 처벌해야 한다는 말이 들려왔다. 광순이 때문에 담배를 피우는 학생이 자꾸만 늘어난다고 했다. 광순이 때문에 성적이 좋은 학생, 착하고 성실한 학생들이 학교에 나오기 싫어한다고 했다. 광순이를 좋게 보는 교사가 하나도 없었다. 광순이는 수많은 적들에게 공격을 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광순이가 입을 열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별 수 없이 담배가 몸에 좋지 않으니 앞으로는 피우지 말라는, 하나마나한 말로 광순이를 돌려보냈다. 그때까지 광순이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교사들은 너무도 쉽게 보내주는 나에게 의아하면서도 불만스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빙그레 웃음을 보이며 평소의 생각을 말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광순이의 변호인이 되어 있었다.
“학교에서 처벌은 마지막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흡연만 해도 그렇습니다. 청소년의 흡연은 비단 학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학교에서 몇 사람 처벌한다고 해서 청소년 흡연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사회적 국가적 차원의 계몽과 교육이 따르지 않으면 학교에서 아무리 단속을 하고 처벌을 해도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
학교에서 담배를 피우면 처벌을 받고, 집이나 pc방 같은 데서 피우면 처벌을 받지 않은 현실도 문제입니다. 담배를 아무리 많이 피워도 걸리지만 않으면 모범생으로 인정받는 것도 모순입니다.
담배 피우는 학생을 처벌하는 것은 흡연에 대한 올바른 지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처벌 받은 학생이 금연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광순이는 처벌을 받았다고 해서 담배를 끊을 애가 아니잖습니까? 광순이 흡연은 그 원인을 찾아 근본적인 치료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처벌은 교육이 아니라 교육의 포기라고 생각합니다.”
교감인 내가 이렇게 일장 연설을 늘어놓자 처음에는 뭐라고 투덜거리던 교사들도점차 잠잠해졌다. 그렇다고 내 의견에 동의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어쩌면 그들의 입장만 난처하게 만든 것 같았다. 나는 아무런 방법도 제시하지 못한 채 광순이의 흡연에 면죄부만 준 꼴이 되었다. 그런 만큼 내가 한 말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흡연문제로 광순이를 한번 만나야지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광순이를 부를 만한 적당한 구실이 없었다. 어쩌다가 순시 중에 마주치는 일도 있었지만 특별히 할 말이 없어서 그냥 지나치기만 했다.
“교감선생님, 또 일이 터졌습니다.”
학생부장이 심각한 얼굴로 뛰어왔다.1000명 가까운 학생들이 한정된 공간에서 하루 종일 우글거리며 지내다보니 학교는 조용한 날이 별로 없었다. 하루에도 한두 건씩 크고 작은 사고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웬만한 일엔 만성이 되다시피 한 학생부장이 하얀 눈을 뜨고 달려왔다.
“무슨 일인데요? 폭력사건이라도 일어났나요?”
전에 근무했던 남자고등학교에서는 폭력사건이 자주 일어났다. 한창 때 놈들이다 보니 한번 싸움이 붙었다 하면 순식간에 사고로 발전했다. 코가 터져 피를 흘리거나 눈두덩에 주먹만한 피멍이 드는 건 보통이고 머리를 싸매거나 팔에 기브스를 해야 하는 일도 생긴다. 그렇게 되면 문제가 여간 복잡해지지 않는다. 가해자와 피해자 학부모들까지 동원되는 건 물론이고 합의나 양해가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학교 나름대로 그에 따른 뒤처리를 해야 한다. 그러나 여학교에서는 폭력사건은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 싸움이라고 해야 기껏 말로 울고불고 하다가 끝난다. 어쩌다가 머리채를 끌어안고 나뒹굴기도 하지만 그런 일은 일 년에 한두 번 일어날까 말까 한다.
그러나 대꾸는 그렇게 장난스럽게 했지만 예감은 별로 좋지 않았다. 전화로 알려주거나 사후에 보고하지 않고 부장교사가 직접 달려와 일이 터졌다고 말하는 것이 아무래도 이상했다.
“네, 진짜 폭력사건입니다. 그것도 밖에서 벌어진….”
“뭐라구요? 여학생들이 폭력이라구요?”
“또 광순이란 놈이 일을 저질렀습니다.”
학생부장은 이 대목에서 목이 마른 듯 침을 꿀꺽 삼키고 한 차례 가슴을 쳤다.
“그놈이 점심시간에 밖으로 나가 아파트 놀이터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그걸 나무라는 아파트 경비원을 떠밀었답니다. 그래서 그 경비원 할아버지가 넘어져 얼굴을 다치고 광순이는 ….”
“광순이는요?”
“파출소로 끌려갔다 합니다. 아파트단지 앞에 있는 파출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지금 거기에 광순이가 있다고.”
“허 참….”
어이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흡연문제로 처벌 대상에 올라 있는 놈이 또 사고를 치다니. 녀석이 아파트 경비원을 친 게 아니라 내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친 것 같아 정신이 아찔했다. 광순이에게 일말의 희망을 가져보았던 내 자신이 어리석어 보였다.
“그래서 지금 파출소에 가려구요.”
“그래요? 그럼 나랑 같이 갑시다. 교장선생님께는 말씀 드렸습니까?”
“네, 방금 말씀 드리고 오는 길입니다.”
우리는 우체국과 나란히 붙어있는 동네 파출소로 차를 몰았다. 선도담당 김 교사가 운전하고 조수석에 학생부장, 그리고 나는 뒷좌석에 앉아갔다. 파출소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입술에 무거운 추를 달아놓은 듯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자동차 안은 숨이 막힐 지경으로 후덥지근했다.
“학교에서 왔습니다.”
우리는 제4지구대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 2층짜리 건물 앞에서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왔다. 파출소라 하면서 왔는데 건물 정면에 지구대라고 쓰여 있어서 조금은 낯설어 보였다.
“학교에서 왔습니다.”
우리는 잠시 옷매무새를 고치고 천천히 파출소 안으로 들어서며 합창이라도 하듯 목소리를 높였다.
경위 계급장을 단 경찰관 한 명이 테이블 위에 걸터앉아 전화를 받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유선전화기의 수화기를 귀에 붙인 채 우리에게 한 손을 들어 창문 쪽을 가리켰다. 창문 아래에는 황토색 허름한 소파가 놓여 있었고 한쪽 구석에 광순이가 혼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광순이는 우리가 다가가도 인사는커녕 눈길 한 번 주지도 않았다. 자기 때문에 교감까지 왔다는 것을 알면서도 거들떠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아 선생님들이세요? 여기 앉으세요.”
그제야 전화를 끝낸 경찰관이 우리 곁으로 다가오며 손을 내밀었다.
“아 네, 저는 교감 김치호고, 여긴 장명수 부장교사, 그리고 선도담당 김 교사입니다.”“안녕하세요? 이렇게 뵙게 되어 죄송합니다.”
장 부장교사와 경찰관과는 이미 안면이 있는 듯했다. 경찰과 학교가 서로 연계해서 청소년 생활지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학교 애들이 가끔 지구대 신세를 지기도 한다. 얼마 전에도 학생 하나가 남의 물건을 훔치다가 들켜 파출소까지 끌려간 적이 있었다. 그때도 장 부장교사가 달려가서 빼왔던 것이다.
우리들은 주춤주춤 어색한 자세로 소파에 엉덩이를 붙였다. 나와 경찰관이 맞은편 1인용 의자에 앉고, 광순이 옆으로 부장교사와 김 교사가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천만에요. 저는 지구대장 김장기입니다. 지금 다들 순찰 나가고 저 혼자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데…, 잠깐 차를 좀 타오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우리가 다 같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만류하자 그도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학생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말 한 마디 없이 이렇게 앉아있기만 합니다. 여학생이라 간단히 조사를 하고 보내주려 했는데 도대체 말을 해야죠.”
그러면서 경찰관은 광순이의 머리며 얼굴을 훑어보았다.
“학생이 아직 우리말을 제대로 못하나 보죠? 생기기는 제법 잘 생겼는데….”
“애가 우리한테도 말을 잘 안 하는 편입니다. 죄송합니다.”
학생부장이 몸을 앞으로 굽히며 두 손을 모았다.
“아닙니다. 다행히 중상이 아니고 또 피해당사자도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간단히 인적사항만 적어놓고 내보내려고 했는데 도무지 입을 열어야 맛이죠. 정식으로 조서를 꾸미면 자동으로 경찰서로 넘어가기 때문에 적당히 하려고 했는데….”
나도 몇 차례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학생부장이 앞으로 학교에서 잘 지도를 할 테니 한번만 용서해달라고 머리를 조아렸다.
“아파트 경비원이 이렇게 말했답니다. 어디서 이상하게 생긴 기집애가 나타나서 담배까지 피운다고 말입니다. 아 그랬더니 갑자기 달라 들어 경비원을 주먹으로 때리더랍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대낮에 남의 아파트단지에 들어가서 담배를 피우고, 할아버지뻘 되는 경비원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그건 아니잖아요?”
“주먹으로 때린 게 아니고 떠밀었다면서요?”
“그게 그거 아닙니까?”
그러면서 경찰관은 말을 계속했다.
“요즘 애들 정말 다루기 힘듭니다. 경찰관도 무서워하지 않아요. 그들은 말도 안통하고 법도 안통하고 뭐 통하는 게 없어요. 그래서 요즘 청소년들이 문제를 일으켰다 하면 아주 골치가 아픕니다. 학교에서도 생활지도는 아예 손을 놓고 있다면서요?”
“면목이 없습니다.”
“애들이 말을 안 듣는데 선생님인들 어떻게 하겠습니까?”
경찰관은 광순이한테도 한 마디 던졌다.
“너 오늘 재수 좋은 줄 알아. 다음에 한번만 더 그런 짓을 하면 용서해 주지 않는다. 우리 앞으로 더 이상 만나지 말자. 만약 또 만나게 되면 그땐 내 입에서도 좋은 말이 나가지 않을 거야. 알겠어?”
우리는 물건을 인수인계하듯 광순이의 인적사항을 남겨놓고 파출소를 나왔다. 광순이를 데리러 파출소에 갈 때처럼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현관 앞에서 내려 학생부장은 광순이를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가고 나는 그 길로 교장실로 들어갔다.
교장은 광순이 때문에 단단히 화가 나있었다. 어떻게 일과 중에 학생이 밖에 나가 담배를 피우고 지역주민에게 폭행을 가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광순이 일로 학부모들의 항의전화가 빗발치고 있어요. 광순이를 그렇게 내버려 두면 어떻게 하느냐고요. 학교에서 가만히 있으면 자기들이 가만 있지 않겠다고 야단들입니다. 자기들이 나서서 해결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니 광순이 때문에 더 이상 학교가 욕을 먹지 않도록 교감선생님이 처리를 해주세요. 무슨 뜻인 줄 아시겠죠?”
선도위원회를 열어 광순이를 처벌하라는 뜻이었다. 그것은 자퇴나 전학을 의미했다. 전에도 몇 번인가 교장이 광순이 전학문제를 거론한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학생 처벌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평소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교장은 나의 그런 미온적인 태도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책임질 수도 없는 말을 한다고 질책하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처벌은 교육이 아니라는 평소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은 상황이 좀 달랐다. 파출소에서 광순이를 데려온 마당에 그 자리에서 광순이를 뭐라 변명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질책처럼 떨어지는 교장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다가 교장실을 나왔다.
언제나 그렇지만 선도위원회는 무겁고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열렸다. 선도위원장인 나의 인사말에 이어 학생부장의 사안보고가 있었다.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답이 보이지 않는 광순이 문제에 짜증과 화가 나있었다. 그러나 결론은 이미 내려져 있었다. 교장의 말처럼 그런 짓을 한 놈을 학교에 그냥 놔둘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거주지 이전으로 전학을 시키든지 아니면 자퇴를 시키든지 교장의 주문대로 양자택일 하도록 결론을 내리고 선도위원회는 끝났다.
선도위원회를 마치고 회의실을 나오니 교사들은 다 퇴근하고 교무실은 텅 비어있었다. 내 가슴도 교무실처럼 텅 빈 것 같기도 하고, 무엇으론가 꽉 막혀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한동안 교무실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만한 일로 전학 아니면 자퇴라. 그러나 교장의 주문대로 공식 기구에서 결정이 난 사항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비로소 교감의 한계 같은 것이 느껴졌다. 무력한 자신이 실망스러웠다.
“교감선생님, 아직 퇴근 안 하셨어요?”
그때 학생부장이 퇴근하면서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광순이 일로 고민하고 있는 내 표정을 살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 결정은 잘 내려진 겁니다. 정말 광순이는 구제불능입니다. 선도가 불가능한 애입니다. 이번 기회에 방출시키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러면서 학생부장은 학부모로부터 받은 편지라면서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그리고 먼저 나간다면서 총총히 사라졌다. 나는 하얀 종이에 또박또박 써내려간 글씨들을 읽어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제 신분을 밝히고 전화를 하거나 직접 면담을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우리 애나 다른 학생한테 본의 아니게 피해가 갈 것 같아서 이렇게 익명으로 편지를 올립니다.
지금 2학년5반 교실은 김광순이라는 학생 하나 때문에 교실 분위기가 엉망입니다. 그 학생이 미국인과 한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라는 건 선생님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 학생은 생긴 모습처럼 성격이나 생활습관도 우리 애들과 완전히 다릅니다. 정상적인 학생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광순이라는 학생은 자신의 모습이나 출생에 대한 불만을 우리 한국애들에게 화풀이를 함으로써 해소하고 있습니다. 몸이 허약하거나 내성적인 학생들은 이미 광순이의 하수인이 되었고, 성적이 좋은 애들도 대부분 그 학생 밑으로 들어갔습니다. 누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으면 쫓아가서 너만 내신점수를 잘 받겠다는 거냐 라고 위협하면서 공부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선생님들은 알지도 못하고 또 안다 하더라도 무심히 보아 넘기고 있습니다. 학생들 역시 선생님들께 말씀도 못 드리고 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학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김광순은 혼자가 아닙니다. 뒤에 깡패같은 무서운 조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학생들 가운데는 광순이에게 반발했다가 그들 일당에게 끌려가 집단구타까지 당한 애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학생들이 광순이한테 꼼짝도 못하고 벌벌 떨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여학교라고 해서 안심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우리 애도 그렇지만 다른 애들도 자기 부모들이 그런 사실을 학교에 알리겠다고 하면 펄쩍 뛴다고 합니다. 광순이가 알게 되면 학교 다니기가 힘들어질 거라고 말입니다. 이 편지를 받은 선생님께서도 선량한 학생을 보호할 생각이 있다면 말 한 마디라도 조심하시고 눈치껏 학생지도에 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잘못하다가는 제 편지로 인해서 많은 학생이 괴롭힘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교단에 서계시는 많은 선생님들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 못잖게 학생들의 생활지도에 눈 감고 있는 선생님들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학생부에서는 교실 분위기를 바로 잡으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이것이 2학년5반 학부모들의 공통된 바람입니다. 너무 기막히고 답답한 마음에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알려드립니다. 부디 관심 가져 주시기 바랍니다.
2학년5반 한 학부모 올림
나는 편지를 접어 책상 서랍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편지를 접는 순간 광순이에 대한 내 미련도 접는다고 생각했다. 미련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편지를 접듯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일은 생각처럼 그렇게 간단히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복잡하게 꼬이고 있었다. 광순이가 전학 간지 며칠도 되지 않아 다시 되돌아왔던 것이다. 그쪽 학교에서 받기를 거부하는 바람에 광순이는 잘못 배달된 물건처럼 되돌아오고야 말았다.
먼저 광순이를 받은 학교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 학교 교감이었다. 핸드폰을 열자마자 따가운 음성이 귀를 때렸다. 그는 첫 마디에 광순이는 위장전입이니까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떻게 그런 이상한 학생을 다른 학교에 보낼 수 있느냐고 따지고 들었다.
“제가 직접 나가서 조사를 해보았습니다. 2차에 걸쳐 조사를 해본 결과 거주 사실이 허위임이 드러났습니다. 주소만 옮겨 놨더군요. 우리는 결코 그런 학생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학생을 돌려보낼 테니까 그렇게 알고 계시기 바랍니다.”
나는 그냥 듣고만 있었다. 너무도 갑작스럽고 너무도 맞는 말이기에 뭐라 대꾸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전파로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하니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전학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순수한 전학이 있고 처벌로 인한 전학이 있다. 실제로 가족 모두 이사를 가기 때문에 전학을 가는 경우는 별문제가 없다. 그러나 처벌로 전학을 가게 되는 경우에는 일이 쉽지가 않다. 학교에서는 다른 학생들에게 파급될 영향 등을 고려해서 환경을 바꿔줘야 한다는 구실로 전학을 권유한다.
그러나 전학을 간다고 해서 학생이 좋아진다는 보장은 없다. 학생이 좋아진다는 보장만 있으면 모든 걸 감수하고 전학을 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처벌을 받고 전학을 가게 되면 학생이 나아지기는커녕 나쁘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학부모들은 전학을 가라면 난처해한다. 처벌을 받아도 다니던 학교에서 받고, 죽어도 다니던 학교에서 죽겠다고 사정을 한다. 그래서 전학을 시킬 때는 학교도 한 차례 곤욕을 치러야 한다.
또한 학생을 받는 측에서도 싫기는 마찬가지다. 학생을 보면 왜 전학을 왔는지 금방 알게 된다. 순수한 전학이 아니고 처벌을 받아서 온 학생이라면 마치 전과자를 받는 것처럼 기분 나쁘게 생각한다. 처벌로 인한 전학은 그런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그래도 학교 사이에 일종의 양해사항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광순이를 받는 학교에서는 지금까지의 그런 관행을 깨고 나온 것이다.
잠시 뒤에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방금 전화를 했던 그 교감이었다. 내가 할 말이 없어서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리자 그쪽에서 더 화가 났던 모양이다. 그는 다시 확인이라도 하듯 아까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그리고는 단호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위장전입은 전학이 안 된다는 건 교감선생님도 잘 아시잖아요? 서류도 반송하겠습니다.”
광순이가 갑자기 사는 곳도 잃어버리고, 공부할 곳도 잃어버린 허수아비의 모습으로 눈앞에 떠올랐다. 그리고 허수아비로 떠오른 광순이가 공중에서 어디론가 구름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 광순이를 보면서 더 이상 침묵을 지키고 있을 수는 없었다.
“교감선생님, 서류에 하자가 없고, 정식 절차를 밟아 전학을 보냈습니다. 그런 학생을 돌려보낸다 하시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사 갈 형편이 못 되는 경우 임시방편으로 주소만 옮겨놓고 전학시키는 건 지금까지의 관례가 아니던가요?”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위장전입으로 오는 학생은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대답해 보세요. 그 학생, 보나마나 뻔한 학생 아닙니까? 웬만한 학생이라면 전학을 보내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게 엉망진창인 학생을 보내면 우리는 어떡하란 말입니까? 출생도 이상하고. 우리 그런 학생 못 받습니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우리는 주민등록등본에 의해서 전학서류를 떼준 것 뿐입니다. 학생이 귀교로 간 것과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건 교육청 소관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서류를 교육청으로 반송하겠다는 것입니다. 사유서를 붙여서. 그렇게 알고 계시라는 이야깁니다.”
“전학생을 다시 돌려보내는 건 그 학생을 두 번 죽이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가거주라는 걸 알면서도 받아들이는 것 아닙니까? 우리학교에도 그런 학생들이 여러 명 와있습니다.”
“저는 실권이 없습니다. 교장이 서류를 반송하고 학생을 돌려보내라고 해서 말씀드리는 것뿐입니다. 광순이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건 학교장의 확고한 생각입니다.”
이번에는 전화를 그쪽에서 먼저 끊어버렸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떳떳치 못한 것은 서로가 마찬가지였다. 저쪽은 교장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었고, 나는 평소의 생각에 반하는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모르는 언쟁을 한바탕 하고 났더니 입안에서 쓴물이 나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았다. 빗줄기가 굵어지고 있었다. 콩알만한 물방울들이 유리창에 부챗살무늬를 긋고 있었다. 창 너머로 내일도 바람이 불고 비가 온다는 아나운서의 얼굴이 흐릿하게 떠올랐다.
나는 교장실로 들어가 금방 교감끼리 전화로 주고받았던 이야기 내용을 보고했다. 교장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잘 알아보고 일을 하지 그랬어요?”
교장이 나에게 짜증을 냈다.
“광순이가 돌아오면 문제가 보통 복잡해지는 게 아닙니다. 지금까지 학교의 권유로 다른 학교로 전학 간 학부모들이 가만있겠습니까? 불편과 위험을 감수하면서 전학을 간 자기들만 바보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광순이 때문에 학교가 망신만 당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학교가 일을 엉터리로 한 것이 들통이 났으니 대외적으로 학교의 명예와 위상이 크게 실추된 것이라고 말했다.
“별수 없어요. 자르든지 다시 다른 학교로 보내든지 하는 수밖에. 그런 절차를 밟아 주세요.”
“아니, 교장선생님….”
“그렇잖아요? 광순이가 돌아와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 학교에 다닌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건 형평의 원칙에도 어긋나는 일이죠. 애를 학교에 보내고 싶거든 실제로 이사를 해서 전학을 가라고 그러세요.”
아침부터 학교에 긴장감이 돌았다. 갑자기 교육청으로부터 장학사가 나오겠다고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학교 담당 장학사의 일상적인 방문이라 했지만 아무래도 광순이의 전학문제와 관련이 있는 듯했다. 실거주 조사를 통해서 전학서류가 반려되는 사태가 벌어지자 교육청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아보려고 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장학사 방문에 대비해 광순이 징계와 전학에 관련된 서류들을 일제히 점검하고 있었다.
나도 아침부터 바쁘게 돌아다녔다. 이것저것 다 살펴보고 막 자리에 돌아와 한숨 돌리고 있는 순간이었다. 교무실 문이 조금씩 무겁게 열리더니 한 할머니가 조그맣게 얼굴을 내밀었다. 나와 눈길이 마주쳤지만 처음에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허리를 굽히고 겁에 질린 얼굴로 가까이 다가오는 할머니가 어디선가 본 듯 낯익어 보였다. 다음 순간 나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얼마 전에 2층 복도 계단에서 보았던 광순이 외할머니였다. 나는 그제야 학생부에서 광순이 외할머니를 호출한 것을 기억해 내고 미안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기를 권했다. 이렇게 몸이 불편한 할머니를 학교에 나오게 하다니. 나는 할머니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뭐라고 위로의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미스 김, 여기 녹차 한잔만 갔다주세요.”
나는 교무실 보조로 있는 아가씨에게 차 한 잔을 주문하고 할머니를 향해 바로 앉았다.
할머니는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광순이의 잘못이 모두 자신의 탓이라도 되는 양 안절부절 못했다. 70을 바라보는 노인을 이처럼 불안과 공포, 슬픔과 충격에 떨게 하는 광순이란 놈에 새삼스럽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할머니에게 너무도 잔인한 심판관으로 군림하고 있는 학교도 인간적으로 큰 죄를 짓고 있다는 마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광순이는 전학이 거부당한 이후로 벌써 열흘 가량 학교에 나오지 않고 있었다.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아무도 몰랐다. 소식을 전할 길도 없었다. 집에 전화를 해보면 할머니는 학교에 갔다고만 했다. 학교에 갔다가 저녁에 일을 하고 잘 들어오고 있다고만 말했다. 광순이에 대해서 학교보다 더 몰랐다. 그래서 광순이는 무단결석과 수업일수 미달로 자퇴도 아닌 퇴학을 당할 운명에 놓여 있었다. 아마 광순이도 그걸 각오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 놈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또 말썽을 부린 모양이죠?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할머니는 이번에는 퇴학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두 손을 앞으로 내밀고 기도를 드리듯 빌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할머니, 별일이 아니니까.”
내 입에서는 또 자신이 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금방 알게 될 어마어마한 일을 별일이 아니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달리 위로할 말이 없었다. 광순이가 또 다시 쫓겨나거나 자퇴를 당할 운명에 있는데 걱정하지 말라 별일이 아니다 라고 말하고 있는 자신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무력함에 실망하고 있었다.
“선생님,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한번만 더 용서해 주세요.”
나는 할머니의 두 손을 꼭 잡았다.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두 손을 움켜쥐었다. 내가 그러고 있는 것이 용서를 해 준다는 뜻인지 안 된다는 뜻인지 나도 몰랐다. 그리고 자신도 없었다. 70노인이 두 손 모아 빌고 있는 것이 너무 송구스러워 바라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손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자 이번에는 할머니가 허리를 굽실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웃음 반 울음 반의 묘한 얼굴로 용서를 빌었다.
“제발 학교에 다니게 해 주세요.”
할머니의 떨리는 눈에서 급기야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할머니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물기 어린 눈으로 계속 애원하고 있었다. 제발 퇴학만은 시키지 마세요. 제발. 할머니의 목소리가 울음으로 변하고 있었다.
“할머니, 어쩌다가 광순이가 그렇게 되었어요?”
화제를 다른 방향으로 바꾸었다. 할머니가 불안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광순이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다.
그러자 할머니가 마음을 조금 가라앉히는 듯했다. 손등으로 눈을 비비고는 멋쩍게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본디 천성은 착한 애였어요.”
할머니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먼 기억을 더듬는 듯 머리를 들어 교무실 천정을 향하고 한동안 잠잠히 있었다.
“국민학교 다닐 때까지는 착하고 공부도 잘했지요.”
“아 초등학교 때는 공부를 잘 했어요?”
“그럼요. 공부도 잘하고 말도 잘 듣고….”
여기에서 할머니는 다시 무겁게 한숨을 내쉬면서 찐득이는 눈 가장자리를 닦아냈다. 그리고는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내기라도 하듯 묻지도 않은 말까지 다 털어놓았다.
할머니의 딸이 처녀 때 미군과의 사이에서 광순이를 낳았다. 그들은 광순이가 세 살 때까지는 같이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아무런 말도 없이 그 미군이 자기 나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자 할머니의 딸도 그 미군을 찾으러 간다면서 미국으로 떠났다. 그것이 딸과의 마지막이었다. 할머니의 딸은 지금까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 한번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 15년 동안 할머니가 광순이를 기르고 있다. 광순이한테는 어머니가 죽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광순이는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너무 착하고 공부를 잘했다.
“우리 광순이는 나쁜 애가 아니었어요. 한번만 봐 주세요.”
할머니가 긴 이야기를 마치면서 다시 내 손을 붙잡았다. 마치 광순이의 생명이 내 손에 달려있기라도 하듯 소중하게 감싸 안았다.
“그런데 담배는 어쩌다가 저렇게….”
“담배요? 아 담배는 할아버지 때문에 배웠지요. 할아버지 병간호를 하면서. 광순이가 중학교 1학년 때 할아버지가 병이 들어 돌아가셨는데, 그때 어린 광순이가 옆에서 정성으로 간호를 했어요. 할아버지에게 밥도 떠넣어 주고, 담배를 피우고 싶다고 하면 담배에 불을 붙여서 입에 물려주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러다가 어린 것이 그때부터 담배를 피게 되더라고요.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광순이를 저렇게 만들었어요. 애가 담배를 피면서부터 갑자기 나빠지기 시작하더라고요. 원래는 착한 애였는데 너무 불쌍해요. 교감선생님, 우리 애를 용서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할머니, 이제 일어나세요.”
무엇을 알겠다는 것인지 또 자신도 없는 소리를 하면서 할머니를 일으켜 세웠다. ‘알겠습니다’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할머니에게 해야 할 말이 마땅히 생각나지도 않았다. 그래서 상대방이 사정을 할 때 입장이 곤란하면 으레 하는 말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며 그런 말을 했다. 그러나 할머니가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드릴까 은근히 겁이 났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머니나 광순이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한 번만 광순이를 살려 주세요. 교감선생님.”
할머니는 나를 붙잡고 늘어졌지만 나는 더 이상 대답할 말이 없었다. 나는 말없이 할머니를 부축하여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마음이 할머니를 부축하여 걸어나가는 발걸음만큼이나 무거웠다.
교무실을 나와 2층 계단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올라가는 할머니의 발걸음이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불안했다. 나는 할머니의 팔을 꽉 붙잡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할머니의 몸이 금방이라도 공중으로 떠오를 듯 가볍게 손 위로 올라왔다.
나는 학생부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할머니 혼자 들어가라고 손짓을 했다. 할머니가 화들짝 놀라며 들어가지 않으려고 순간적으로 몸을 뒤로 버티며 저항했다. 그래도 나는 학생부 문을 열어주며 얼굴과 손으로 들어가라고 말을 했다. 그러자 할머니가 망설이면서 주춤주춤 안으로 들어섰다. 어렸을 때 어둑어둑한 외양간에 소가 잘 들어가지 않으려고 두 발로 버티곤 했다. 그러면 나는 뒤에서 소 엉덩이를 찰싹 때리며 강제로 밀어 넣었다. 나는 그때 소를 뒤에서 밀어 넣듯이 그렇게 할머니를 들여보냈다. 그리고 학생부 문을 닫고 돌아섰다. 할머니와 함께 들어가고도 싶었지만 더 이상은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학생부장 앞에 죄인처럼 쪼그리고 앉아 나한테 했던 것처럼 온몸을 떨면서 용서해달라고 두 손을 비비는 할머니의 모습을 더는 볼 자신이 없었다.
교무실로 내려와 자리에 앉았지만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우두커니 않아 있는 내 눈 앞에 갑자기 광순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때 광순이와 나는 행정실 옆 휴게실에서 마주하고 있었다. 광순이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학교에 학생들도 남아 있지 않았고 교사들도 다 퇴근한 뒤였다. 텅 빈 학교에 광순이와 나 그렇게 단 둘이 앉아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조용한 공원이나 중국집에서 음료수나 맛있는 음식을 사먹으면서 녀석과 근사하게 마지막 이별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자칫 잘못 하다가는 마지막까지 녀석의 비웃음만 살 것 같아서 수업이 일찍 끝난 날 광순이를 학교로 불러냈던 것이다. 광순이는 시간에 늦지 않게 교무실에 나타났고, 나는 그를 데리고 분위기가 좋은 휴게실로 들어갔다.
“꼭 형사실에 끌려온 것 같네요.”
광순이는 휴게실에 들어서면서 빈정거리는 말부터 꺼냈다. 그러면서 얄궂은 웃음으로 휴게실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형사실이 아니라 자기 집 안방이라고 생각해. 여긴 편하게 말하는 곳이니까.”
“교감선생님도 형사처럼 이것저것 물어볼 것 아녜요? 그럴려고 저를 이곳으로 끌고 왔구요.”
“전연 아닌데. 오늘은 너하고 모든 걸 터놓고 얘기하고 싶은데. 교감선생이 아닌, 뭐랄까 친한 친구처럼…. 나도 학교 다닐 때는 선생님을 아주 싫어했거든. 잔소리가 많아서.”
“그런데 왜 선생님이 되셨어요?”
“그게 좀 이상하게 그렇게 됐어. 어머니 때문이지.”
“어머니 때문에요?”
“그래. 어머니가 선생을 좋아하셨거든. 그땐 교사라는 직업이 인기도 좋았고.”
“어머니가 선생님을 좋아하셨는데 왜 선생님이 선생님이 되셨어요?”
“나도 학교 다닐 땐 너처럼 말썽꾸러기였지. 그래서 어머니 속을 많이 썩혀드렸어. 그런데 말야,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까 그게 좀 후회가 되더라구. 그래서 효도 차원에서 선생이 한번 되어보자 했는데 그것이 그만 영원한 선생이 되고 만 거야. 지금은 어머니한테 고맙게 생각하고 있지만.”
이렇게 말문이 터진 우리의 대화는 아마 한 시간 넘게 계속되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광순이도 나중에는 경계심을 풀고 자연스럽게 자기의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이야기를 많이 하고 났더니 입안이 텁텁해지는구나. 너 혹시 담배 가지고 있니? 있으면 한 개비만 꺼내주렴. 금연한 지 이십 년 만에 한 대만 피워보자.”
“에이, 선생님두 공연한 말씀을. 몸에 안 좋다고 하셨잖아요?”
광순이는 자기의 배낭을 한번 흘깃 쳐다보더니 그냥 웃기만 했다.
“실은 오늘 너하고 답배도 피우고 술도 한잔 하고 그러고 싶었다. 우리 이게 마지막이잖니?”
“하하, 선생님도 참 웃기시네. 그렇게 망가지고 싶으세요?”
“그렇게 좀 한다구 사람이 망가지겠니? 그럼 넌 왜 그렇게 담배를 많이 피우는데?”
“저요? 전 할아버지 때문예요. 할아버지가 생각나면 담배를 피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요. 미칠 것만 같아요.”
“그래? 할아버지가 왜?”
“그런 일이 있어요. 할아버지가 저를 사랑했거든요.”
“할아버지가 너를 사랑했어?”
“그럼요. 할아버지가 저를 얼마나 사랑했는데요. 엄마도 저를 버렸고 세상이 다 저를 버렸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만큼은 저를 버리지 않았어요. 저한테는 할머니가 어머니죠.”
“그래? 나도 너를 버리지 않았는데….”
여기서 대화는 잠깐 끊겼다. 광순이가 나를 이윽히 쳐다보더니 눈길을 돌렸다.
“저를 버리지 않으셨다구요? 그럼, 저를 왜 쫓아내세요?”
“내가 너를 쫓아냈다구? 나는 너를 보내지 않았는데 니가 나를 뿌리치고 나간 거지.”
“무슨 시같은 말씀을 다 하시네.”
그 외에도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주로 광순이가 자기의 과거 이야기를 했고 나는 들으면서 맞장구를 쳐주었다. 의외에도 광순이와는 말이 잘 통했다. ‘교감선생님과는 통하잖아요’ 언젠가 광순이가 한 말이었다. 그렇다. 광순이와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그와 통하는 점이 많다는 걸 느꼈다. 어쩌면 광순이가 그만했을 때의 나 자신으로 보이기도 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광순이가 자기 감정에 더 솔직하다고나 할까. 아무튼 광순이는 문제아도 아니고 특별난 애도 아니었다. 얼마든지 우리 주변에 있을 수 있는 그런 보통애였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속도 아름다운 애였다.
이야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광순이가 이야기 마무리를 지으려는 듯 이렇게 말했다.
“이제 저를 안 보게 돼 속이 시원하시죠?”
“시원하냐구? 그렇지 않아. 오히려 니가 있어 재미있었어. 앞으로 니가 많이 생각날 것 같다.”
“저도 그럴 것 같아요. 교감선생님 같은 분은 처음예요. 이렇게 이야기를 많이 해보기도 처음이구요.”
“아무튼 전학 가서는 학교 잘 다녀라. 담배도 끊구. 초등학교땐 공부도 잘 했다며? 내 보기에 넌 지금도 가능할 것 같아…. 전학이 너에게 전화위복,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네- . 감사합니다. 교감선생님!”
광순이의 마지막 대답에서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음성이었기 때문이다. 냉소적이고 빈정거리는 음성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거부적이고 반항적인 태도도 보이지 않았다. 광순이는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 있었다. 광순이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그윽하고 맑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광순이와의 마지막 만남을 생각하고 있을 때 수업이 끝나는 벨이 울렸다. 그와 함께 모든 교실에서 환호성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나는 습관처럼 자리에서 일어섰다. 교내 순시를 위해서였다. 쉬는 시간에는 학생들의 안전지도를 위해서 순시를 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광순이 할머니가 내려오지 않고 있었다. 학생부장과 할머니 사이에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 것 같았다. 다시 전학을 가든지, 아니면 자퇴를 하든지, 둘 다 할머니한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학생부 교무실에 들러보고 싶었지만 할머니의 고통을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우선 순시부터 하자 하면서 막 2층 계단에 발을 올려놓는 순간이었다. 위를 올려다보던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계단 중간쯤에 광순이 할머니가 몸을 벽에 기댄 채 서있었다. 할머니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마치 무너지는 벽을 등으로 떠받치고 있는 것처럼 후들거리는 두 다리로 몸을 간신히 지탱하고 있었다. 양쪽 팔을 벌려 등 뒤로 무엇인가를 붙잡으려고 허우적거리고 있었지만 손은 하얀 벽 위에서 자꾸만 미끄러져 내렸다.
나는 황급히 계단을 뛰어올라가 할머니를 부축했다. 몸이 땀으로 후줄근했고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할머니는 정신을 잃고 그대로 계단을 굴렀을 것이다. 할머니는 내가 부축하자마자 부끄러움도 체면도 없이 쓰러지듯 전신을 나에게 의지했다. 하마터면 할머니를 안고 나조차 구를 뻔했다. 힘없는 노인이 어쩌면 그렇게 무거운지 몰랐다. 나는 간신히 할머니를 부축하여 중앙현관까지 내려갔다. 그리고는 얼마 전 광순이를 만났던 그 행정실 옆 휴게실로 들어갔다.
“할머니, 정신 차리세요.”
나는 할머니라고 불렀지만 마음속으로는 어머니라고 부르고 있었다. 물론 어머니보다는 나이가 좀 적지만 모든 것은 옛날 어머니 그대로였다. 중학교에 다닐 때 깡마른 어머니를 부축하여 교문 밖으로 데리고 나갔던 기억으로 가슴이 뭉클했다.
그제야 깊은 한숨과 함께 정신을 가다듬은 할머니가 보일락 말락 가냘픈 웃음을 띠었다. 그리고 손등으로 찐득이는 얼굴을 닦아내며 몸을 바로 추스르려고 애를 썼다. 검버섯이 피고 주름살이 깊게 패인 얼굴이 실제보다 열 살은 더 늙어보였다.
“괜찮으시겠어요?”
내가 불안한 얼굴로 묻자 그렇다는 듯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부끄러움으로 검붉어지는 듯했다.
“도장을 주니까 광순이 아버지 이름을 대라고 하는데 뭐라고 하는지 생각이 나야지요. 애가 할아버지 앞으로 되어 있는데 돌아가신 양반 이름이 생각이 나야지요. 세상에 이럴 수가….”
할머니는 세상에 이럴 수가를 되풀이하며 한숨을 지었다. 내 입에서도 저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 그러세요? 선생님이 뭐라 하면서 도장을 달라고 하던가요?”
“이사를 가라고 하는데 어떻게 이사를 가요? 그래서 못 간다고 했지요. 그러면 주소를 옮기라고 하길래 주소도 옮길 데가 어디 있어요. 그래서 그것도 못한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그러면 퇴학이라고 하면서 도장을 달라고 했어요.”
할머니가 계속해서 한숨과 울음을 반반 섞어가면서 꺼져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탄식에 가까운 할머니의 말을 들으며 그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할머니는 그 충격으로 학생부 교무실을 나오면서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
말을 마친 할머니가 다시 기진한 모습을 보였다. 할머니는 의자 등받이에 깊숙이 몸을 파묻으며 졸린 듯 눈을 감았다. 그러더니 앉아 있는 것도 힘에 겨운 듯 몸을 반쯤이나 뒤로 눕혔다.
가슴이 답답했다. 할머니에게 뭐라 할 말이 없어서 답답했다. 그런 할머니를 보면서도 아무 말도 못하는 자신이 한심하기만 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한 생각이 번쩍하고 머리에 떠올랐다. 아 그렇구나.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반쯤 누워 있는 할머니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할머니, 좋은 방법이 있어요. 좋은 방법이.”
나는 할머니의 두 손을 끌어안 듯 잡아당겼다. 할머니도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몸을 바로 세웠다.
“좋은 방법이요?”
“그럼요. 광순이 주소를 옮길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 생각났어요.”
“그 그게 무엇인데요?”
“광순이 주소를 우리 집으로 옮기는 겁니다. 우리 집으로 옮겨서 전학을 시키면 됩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던 할머니의 얼굴이 점차 환하게 밝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환하게 밝아진 할머니의 얼굴 위에서 광순이의 예쁜 얼굴이 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신현근 약력
전북 정읍 출생
전북대. 서울대 대학원 졸업
1963년 전북일보. 197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서울 양천중학교 교장 정년퇴직
한국문인협회 회원(홍보위원). 한국소설가협회 회원
실버넷뉴스 기자. 하이서울뉴스 기자. 공무원연금관리공단 서포터즈
단편집 <야구방망이를 들고 있는 남자> 장편소설 <최초의 발견>
수상집 <본대로 느낀대로>외 다수
첫댓글 강서문단 소설입니다.
소설 속의 교감 선생님, 존경합니다.
신현근 작가는 서울강서문협 부회장으로 열심히 활동하시는 훌륭한 소설가입니다. 물론 아주 좋은 글을 쓰시는 분이지요! 강서문단에는 이렇게 훌륭한 문인들이 많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