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호 3대 텍스트(창간사·예수와 당파·휘트먼 시)의 통합 사상 체계
1946년 11월 『성서연구』 창간호에 유기적으로 배치된 세 편의 글은 ‘역사철학적 선언(창간사) → 현실 정파 비판과 예언자적 경고(예수와 당파) → 실존적 영적 해방과 단독자의 결의(휘트먼 시)’로 이어지는 정교한 3단계 사상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는 거시적인 국가적 비전의 제시에서 출발하여, 구체적인 당대 현실의 모순을 직격하고, 마침내 그 시대적 짐을 온몸으로 짊어질 주체적 자아의 내면적 해방으로 귀결되는 완결된 구조다.
제1단계: 「창간사」 ― 역사철학적 진단과 도덕입국의 소명
창간사는 민족의 운명을 거시적 세계사 속에서 조망하며 출발한다. 노평구는 독일 시인 실러의 명제인 “세계 역사는 세계 심판(Die Weltgeschichte ist das Weltgericht)”을 토대로, 도덕적 기반이 결여된 민족과 국가는 역사의 법정에서 필연적으로 도태되고 심판받을 수밖에 없다는 냉엄한 섭리를 천명한다. 진정한 독립이란 외형적인 정치 구호나 무력 투쟁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며, 인류 문명을 형성하고 지탱해 온 참된 원동력인 성서의 윤리와 진리 위에 조국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도덕입국(道德立國)’의 국가적 비전을 제시한 것이다.
제2단계: 「예수와 당파」 ― 현실 정파 우상화에 대한 거부와 십자가의 길
창간사의 도덕입국 선언에 이어 다음 면(1면)에 곧바로 배치된 「예수와 당파」는, 그 원칙을 당대 해방 정국의 살벌한 현실 정치 지형에 들이대는 날카로운 비수의 역할을 수행한다. 노평구는 1세기 유대 사회의 5대 당파(바리새파, 사두개파, 헤롯당, 에세네파, 열심당)를 거울삼아, 해방 직후 남한에서 권력 투쟁을 벌이던 보수 민족주의(한독당), 친일 관료·자본가 귀족(한민당), 외세 결탁 모리배, 은둔적 이상주의자, 그리고 극단적 무장 혁명 세력(남로당 및 극우 테러단) 모두가 본질적으로 권력욕과 위선에 빠진 ‘죄인의 무리’임을 정면으로 고발한다.
예수가 어느 정파의 명예스러운 칭호에도 참여하지 않고 홀로 모든 당파의 적이 되어 십자가를 졌듯이, 참된 신앙인은 특정 정파의 나팔수가 되기를 거부하고 양심과 진리의 편에 서서 사회 전체의 회개를 촉구해야 함을 역설한다. 내면의 도덕적 각성과 회개가 결여된 정치적 광란은, 결국 서기 70년 로마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불타 무너졌던 것과 같은 민족적 참화를 초래할 뿐이라는 종말론적 경고로 시국 비판의 정점을 찍는다.
제3단계: 휘트먼의 「열린 길의 노래」 ― 실존적 자주독립과 영적 해방
당대 사상과의 격렬한 대결(복음서 연구 및 마르크스주의 비판)을 거친 뒤 13면에 수록된 「휫맨의 詩」는, 파탄 난 현실과 이념의 질곡 속에서 ‘누가 어떻게 새 시대를 열어갈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하는 영적 해방과 결단의 자리다. 국가와 사회를 바로 세우려면 무엇보다도 그 구성원 개개인이 거짓과 속박에서 먼저 해방되어야 한다.
노평구는 휘트먼의 시구를 통해 제도화된 기성 교회의 권위주의적 울타리와 좌우 집단주의의 광풍을 과감히 떨쳐내고, “나 자신의 완전한 주인”으로 광야의 열린 길을 걸어가겠다는 무교회주의적 평신도의 실존적 결의를 다진다. 창간사가 민족 전체가 나아가야 할 ‘역사적 과제’를 천명하고, 「예수와 당파」가 그 과제를 가로막는 ‘현실의 질곡’을 폭로했다면, 휘트먼의 시는 그 비극적 현실 한복판에서 기쁨과 쓰라림을 온몸으로 던지며 걸어갈 ‘자유로운 단독자’를 세우는 작업이다.
결국 노평구는 창간호를 통해 ‘성서에 기초한 도덕입국의 예언자적 선언(창간사) → 특정 정파에 영합하지 않고 민족 전체의 회개를 촉구하는 시국 비판(예수와 당파) → 어떤 외적 권위나 집단주의에도 얽매이지 않는 내면의 절대 자유와 실존적 결의(휘트먼 시)’로 완결되는 굳건한 무교회주의 사상 체계를 구축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