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일기. 4. 합의금.
장마가 시작된 여름 문턱에서 반짝 햇살이 얼굴을 내민 틈을 이용해 아들 녀석이 몸이 근지러운지 책상을 지키다 말고는 농구를 하고 싶다고 나서는 것이다.
1미터 79센티에 작은 키는 면하였지만, 몸무게가 93키로를 넘나드니 작은 걱정이 있었기에 쾌히 다녀오라고 하니 자전거를 타고는 제법 떨어진 학교 운동장으로 내달려 가는 뒤에 무거운 구름이 낮게 드리우고 있었다.
한참 뉴스에 신경을 기울이며 TV를 보고 있는데 아이 엄마가 숨넘어가는 소리로 아이를 다그치는 소리가 거슬려 방문을 열고 보니, 후줄근하게 비에 젖은 모습에 한쪽 팔을 기울이며 얼굴을 구기는 아들 녀석은 아픈 모습을 숨기는 표정이 역력하였다.
대충의 이야기를 들으니, 마트 앞을 자전거로 지나고 있는데 마트에 들어서는 차가 자전거를 미처 보질 못하고 빠르게 진입 하다가 옆문으로 아이를 충격하였나 보았다.
다짜고짜 아이를 앞장세우고는 사고차를 찾아 나섰다.
이유를 막론하고 아이의 말만 듣고서 부모에게 알리지도 않고 그냥 보냈다는 사실에 너무 황당하면서 괘씸하였다.
장대 같은 빗줄기가 시야를 방해 하였다는 사실을 감안 하여도 사고를 유발 하고는 멍이 든 아이의 팔을 보고서도 아이가 괜찮다는 말만 듣고서 아무런 구호 조치나 연락처도 주질 않고서 아이를 방치 하였다는 사실에 분개하였다.
오토바이의 빠른 기동성 덕분에 마트를 막 나서려는 사고차를 붙잡을 수 있었지만, 가해자는 처음 당하는 일이라 자기도 당황하였다고 하면서 죄송하단 말을 연발하였다.
막상 처음의 마음과는 달리 화가 가라앉고 나서 자초지종을 물으니 해양대학교를 졸업하고 집은 용호동인데 생일을 맞은 친구 집에 놀러 왔다가 사고를 냈다는 것 이였다.
처음 마음 같아선 일요일 오후인지라 응급실에 넣어 온갖 사진을 다 찍어서 사고를 방치한 책임을 물어서 용심을 부리려다가 측은지심이 들어 하루 지켜보며, 내일 심하면 입원을 시키자 하고는 연락처만 받고 돌려보내고 말았다.
본네트가 살짝 스치듯 닿아도 목을 잡고 내리는 택시 기사를 만나서 곤욕을 치루었던 생각이 나서 차마 자식이 아파해도 큰 일이 아니면 되지 않겠냐고 마음을 크게 다잡았다.
다음날 한의원에 보내고 농구를 하다가 부딪쳤다는 말로 진료를 받았더니 다행히 한 이틀 침을 더 맞으면 된다는 말에 안도 하고는 사고자에게 경고의 의미로 사흘 치 치료비와 앞바퀴가 휘어진 자전거 수리비(몇 만원) 실비만 청구 하였다.
아이의 엄마는 지저분하게 인심을 쓰려면 돈을 한 푼도 받지 않는 게 낫지 않냐고 하였지만, 경고성 의미로 분명한 책임의식과 세상을 살면서 정직하고 정확한 일도 있다는 사실을 주지 시켜주기 위해서 그러했노라고 가벼운 언쟁으로 지나갔지만 그 사고자는 그런 사실을 인정이나 할까?
크게 일이 벌어지리라 예상 하였다가 너무 쉽게 매듭지어져 버리니 왼 재수일까 하는 마음이 들지나 않았을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살다보면 그런 일도 있었노라고 술좌석 안주나 되어버릴 일로 치부되진 않았을까?
꽤 많은 시간의 흐름 뒤에도 아직 아들이 어떠하냐고 전화 안부 한 통 없는 젊은 사고자에게 너무 많은 기대감을 가진 탓일까?
좀더 세상을 살면 책 속에서나마 만날 사람을 만났었다고 웃음 지을까?
아무리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아도 그 사람에게 넉넉한 처세를 하였는데 나 자신의 문제가 아니고 아들 녀석의 안위에 대해 애써 무심한 척 대범하게 일을 처리하였는데 전화 한 통 정도의 안부가 없는 사실에 불만스러운 게 사실인걸 보면 애써 마음 넓은 척을 하여도 평범한 범부인 게 틀림 없나보다. ㅎ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