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로 드리는 맥추절 / 신16:9-12 / 맥추감사주일 2009-06-25 11:47:07 read : 372
예수님을 잘 믿는 할아버지가 계셨습니다. 그분은 입술에 항상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할아버지 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어느 날 감사 할아버지가 고기 한 근을 사가지고 오시다가 돌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때 지나가던 개가 고기를 물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할아버지는 물끄러미 개를 보고 있다가 갑자기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는 것입니다. 마침 그 곁을 지나가던 젊은이가 말합니다.
“할아버지, 무엇이 감사하세요? 돌에 걸려 넘어졌고, 비싼 돈 주고 사온 고기도 개에게 빼앗겼는데, 무엇이 감사합니까?” 그때 감사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젊은이, 나는 고기는 잃어버렸지만, 내 입맛은 빼앗기지 않고 그대로 있지 않은가?” 어떤 상황에도 감사의 조건을 찾고,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항상 원망과 불평이 습관화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마을에 온천과 냉천이 함께 솟아나는 신기한 곳이 있었습니다. 한쪽에서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온천이 솟고, 그 옆에서는 얼음같이 차가운 냉천이 솟아올랐습니다. 동네 여인들은 빨랫감을 가지고와 온천에서는 빨래를 삶고, 냉천에서는 헹구어 집으로 가져가곤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관광객이 안내하던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찬물과 더운물을 마음대로 쓸 수 있어서 참 좋겠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많겠죠?”
그러자 안내원이 말합니다. “천만에요. 이 마을 사람들은 불평이 더 많습니다. 더운물과 찬물이 나오는 것은 좋은데 빨래 비누까지 나오지 않는다고 불평이 많습니다.”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하는 사람이 있고, 감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헬렌 켈러는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삼중고를 겪으며 살았던 여인입니다. 사실 그녀는 인간적으로 볼 때 만족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받은 것이 너무 많아서 받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과연 헬렌 켈러가 받은 것이 무엇입니까?
그녀가 받은 것이라곤 삼중의 고통이었습니다. 볼 수 없는 눈과 들을 수 없는 귀와 말할 수 없는 입을 가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없는 것에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기에게 주어진 것, 자기가 받은 것,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생각하고 그것에 감사했습니다.
뇌성마비 시인 송명희 자매는 손가락 하나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혼자서는 거동 할 수 없는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비록 건강은 없어도, 가진 지식은 없어도, 공평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수많은 아름다운 시를 지었습니다. 그 중에 <범사에 감사하라>는 시가 있습니다. “감사절에만 감사하는 자여, 범사에 감사하라. 고난 주간에만 주의 고난을 기억하는 자여, 주 죽으심 언제나 기억하라. 위급할 때만 기도하는 자여, 쉬지 말고 기도하라. 기쁠 때만 기뻐하는 자여, 항상 기뻐하라.”
우리의 감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감사절에만 감사하는 것은 아닙니까? 아니 감사절조차도 진정한 감사를 올려 드리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말세가 되면 감사를 잃어버린다고 성경은 지적합니다. 감사를 잃어버린 삶, 그것은 가장 불행한 삶의 모습입니다. 오늘은 6개월을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드리는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맥추감사절의 의미와 어떻게 우리가 감사의 맥추절을 지켜야 하는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모세의 인도로 애굽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인도를 받아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광야에 도착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시내 산 위로 부르신 후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3대 명절을 말씀하십니다. 유월절과 맥추절과 수장절입니다. 유월절은 애굽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함으로 드리는 절기입니다. 수장절은 일년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모든 곡식을 거두어들이고 감사드리는 오늘날의 추수감사절입니다. 그리고 유월절과 수장절 사이에 하나님은 맥추절을 지키라고 명하십니다..(출23:16) 맥추절은 유월절이 지난 후 7주간 지난 후에 드린다고 해서 칠칠절 혹은 오십일 째 지킨다고 해서 오순절이라고 합니다.
맥추절은 밀과 보리농사를 지어 첫 열매를 거둔 후 감사함으로 드리는 절기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아직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광야에서 맥추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신 것은 미래에 가나안에 들어가서 파종하여 풍성한 열매를 수확하게 될 것임을 미리 예언하신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거칠고 황량한 광야의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미래에 약속의 땅에 들어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은 내 손에 아무 것이 없어도, 앞으로 받을 하나님의 복을 미리 바라보며 감사의 예배를 드리게 하기 위해 맥추절을 지키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맥추절의 영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의미를 지닌 절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제로 맥추절을 지키게 된 것은 가나안에 정착한 후부터였습니다. 40년 동안 광야의 여정을 마치고, 7년 동안의 가나안 정복전쟁을 거쳐서 약속의 땅에 정착을 합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맥추절을 지킵니다. 그러므로 맥추절은 과거에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지키는 절기입니다. 애굽에서의 430년 동안의 노예생활과 광야 40년 동안의 고난의 세월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비참한 노예생활에서 구원해 주시고, 힘들고 고통스런 광야생활 동안 인도해 주시고, 보호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결코 잊지 말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가나안의 풍족함에 빠져 과거에 받은 은혜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현재의 풍요로움에 빠져 이미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기 쉽습니다. 때로는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이 자신의 수고와 노력의 산물인 것처럼 교만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런 우리의 모습을 아시고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신명기 8:11-14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우리들이 언제 하나님을 잊어버립니까? 힘들고 어려울 때는 오히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처럼 먹거리가 풍성하고, 좋은 집에 살고, 재물이 풍부하고 넘칠 때 넘어지기 쉽습니다. 교만함으로 하나님 앞에 범죄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 까 조심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신8:17-18에도 거듭 강조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맥추절을 지킬 때마다 너희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이 맥추절을 지키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에 베풀어 주신 은혜를 망각하고 사는 것이 바로 교만이요, 불신앙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을 돌이켜 보십시오. 애굽의 비참한 노예생활에서 구원해 주신 것이 얼마나 큰 감사입니까? 그런데 그들은 광야의 길에 들어서자마자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왜 우리를 애굽에서 고기국물이라도 먹으며 살게 놔두지 이렇게 광야로 끌고 와서 고생을 시키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조금만 어려움이 닥치면 원망과 불평을 쏟아놓습니다. 마귀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그 입술에 원망과 불평이 가득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난 6개월 동안을 조용히 돌이켜 보십시오. 개인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가정과 자녀들 가운데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새롭게 희망을 품고 출범한 이명박 정부와 지금 현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들이 현상을 보면 낙심하기 쉽습니다. 왜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 아픔과 고통만을 안겨주시느냐고 원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번만 더 돌이켜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비록 우리가 볼 때는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돌이켜 보면 그 모든 것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세밀한 손길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영적 성숙입니다.
그러면 맥추감사절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받은 은혜대로 힘을 다하여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라고 명하십니다. 10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생활 40년 동안에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먹으며 살았지만, 가나안에 들어가서는 직접 농사를 지어 수확한 열매를 먹고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씨를 뿌리고 가꾸지만, 농사가 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이 아무리 수고하고 노력해도, 하나님께서 열매를 맺게 하시지 않으면 모든 것은 헛수고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라고 한 것은 이런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 최선의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맥추감사예물을 하나님 앞에 드립니다. 받은 은혜대로 힘을 다하여 드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형식적으로 체면 때문에 드리고 있습니까? 아직 마음에 준비가 되지 않으셨다면 지금 이 시간에라도 마음을 새롭게 하십시오. 하나님은 물질보다는 그 마음의 중심을 더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예수님은 부자의 금화보다 홀로 사는 여인의 동전 몇 닙을 더 귀하게 여기십니다. 부자는 많은 것 중의 일부를 드렸지만 여인은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렸기 때문입니다.
힌두교를 믿는 인도인들은 성스러운 강으로 여기는 갠지스강에 자식을 바치는 의식이 있습니다. 하루는 선교사가 두 아이를 데리고 갠지스 강을 향해 가는 한 여인을 보았습니다. 한쪽에는 아주 총명하고 건강한 아이가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장애인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병들고 잘 걷지도 못합니다. 순간적으로 선교사는 “저 여인이 자기 신에게 두 아이를 바치려고 하나보다.” 생각을 하고 그 여인을 만류했습니다. 그런데 여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 여인은 끝내 두 아이를 데리고 갠지스강으로 갔습니다. 얼마 후에 그 여인이 돌아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똑똑하고 건강한 아이는 안보이고, 병들고 장애가 있는 그 아이를 데리고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똑똑하고 건강한 아이를 자기 신에게 바쳤다는 것입니다. 선교사님이 “아니 이왕 바칠 것이라면 장애가 있고 병든 아이는 살아도 짐이 될 것인데 왜 똑똑하고 건강한 아이를 신에게 바칩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여인이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어떻게 가르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믿는 신은 가장 똑똑하고 최상의 것을 자신에게 바치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고, 우리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선교사님이 얼마나 부끄러움을 가졌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날마다 주님을 위해서 살겠다고 충성을 다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정성과 예물을 드리고 있는지요?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감사를 드리고 있는지요? 하나님은 오늘도 자원하는 마음으로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해 드리는 참된 예배와 예물을 기뻐 받으시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날 사회가 도시화되면서 맥추절의 의미가 점점 퇴색되고 있습니다. 사회가 아무리 변해도 맥추절이 지니고 있는 영적의미는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맥추절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요, 그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하나님을 기억하는 가운데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겠다는 헌신의 다짐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맥추절인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 주시어 신약교회가 탄생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그 교회의 지체로 불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맥추절이 지니고 있는 의미들을 깊이 생각해 보는 가운데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존 밀턴은 한참 일할 나이인 40세에 실명을 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얼마나 불행하다고 생각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불행한 환경 가운데에서도 감사하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오 주여! 주께서 내 눈을 어둡게 하시고, 오직 주님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결국 이와 같은 감사로 말미암아 그는 실락원이란 불후의 명작을 쓰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범사’는‘모든 일에’라는 의미의 ‘in everything’ 혹은 '어떠한 상황에서’라는 의미의 ‘in all circumstances’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모든 일 가운데에서, 모든 상황 가운데에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처해진 환경이나 상황과 관계없이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우연은 없습니다. 우리들의 삶은 주님의 계획 가운데 있습니다. 여러분 각자에게 하나님의 목적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안에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만약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믿는다면 현재의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인내하며 오히려 감사할 수 있습니다.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이 이 자리에 계십니까? 사업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계십니까? 그래도 감사하십시오. 그것도 범사입니다. 인간관계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계십니까? 그래도 감사하십시오. 그것도 범사입니다. 자녀교육으로 인해, 부부관계로 인해, 물질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계십니까? 그래도 감사하십시오. 그것도 범사입니다.
찬송가 438장 ‘내 영혼이 은총입어’를 작사한 버틀러(C. F. Butler)는 3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그는 높은 산도 문제가 되지 않고, 거친 들도 문제가 되지 않고, 초막에 사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주님 때문입니다. 주님이 자기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주님을 믿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어떠한 환경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런 고통과 괴로움 없이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만 있으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이 있으면 환경을 초월하여 감사할 수 있습니다. 사실 형편과 조건이 좋은 사람이 감사하며 사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이 감사하며 삽니다. 감사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입술에서 감사가 사라진 것은 환경과 조건이 나빠서가 아니라 믿음이 떨어졌든지 아예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감사할 수 있는 환경을 열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기 전에,“나에게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떨어지면 감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입술에서 불만과 원망과 불평이 쏟아져 나옵니다. 반면에 믿음의 사람은 어떠한 환경 가운에서도 감사를 합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고 감사를 합니다.
새문안교회를 섬기시다가 소천하신 김동익 목사님의 감동적인 기도문이 있습니다.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일이 제대로 안 되게 틀어주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의 교만을 반성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땀과 고생의 잔을 맛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주님의 사랑과 능력을 더 깊이 깨달으면서 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불평은 불행의 뿌리이고, 감사는 행복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오늘도 이렇게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항상 낙심하라 쉬지 말고 원망하라 범사에 불평하라 이는 너희를 향한 사탄의 뜻이니라.” 불평하면 누구의 사람이 될까요? 사탄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 됩니다. 불평의 배후에는 사탄이 견고한 진을 치고 있습니다.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이제는 불평과 원망을 끊어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아멘! 항상 베풀어 주신 은혜를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감사의 예배와 예물을 주님께 올려드리는 복된 성지가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