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타국의 신어(神魚)와 허왕후의 출자
가락국기에서 허황옥은 자신을 아유타국의 공주라고 소개하였고 김해 구산동에 있는 왕후릉에는 「가락국 수로왕비 보주(普州)태후 허씨릉」이라 새겨져 있다.
그런데 허황후의 아유타국 출자설에 대해 여러 가지 이론이 분분하다. 아유타국의 위치에 대해서도 인도 갠지스 강변의 아유디아, 태국 . 방콕 북부의 아유타야, 발해연안, 양자강 북쪽 무한, 그리고 일본 큐수 동북방설 등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 1975년 5월 실제로 인도 뉴델리 지방까지 가서 현지를 답사하고 상세히 조사했던 이종기씨는 그의 저서 「가라국탐사」에서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전하는 아유타국은 서기 20년까지 존재했던 인도의 아유디아국으로 그 위치가 갠지스강 유역의 내륙지방이었다고 확언했다.
이와 같은 증거로 몇 가지 사례를 들고 있는데 첫째 야요디아의 왕장인 태양장이 김해 수로왕 신도비에도 새겨져 있다는 점, 둘째 인도 아요디아시에서 수없이 많이 볼 수 있고 주(州)의 문장으로 받드는 신어상(물고기 문양)이 김해 수로왕릉 정문에 있는 물고기 문양과 동일하다는 점, 셋째 고대 인도의 문화가 한국문화와 동일한 것이 많다는 점을 들어 인도 갠지스강 유역의 내륙지방에 있는 아요디아가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문정창은 그의 저서 「가야사」에서 여러 가지 정황을 들어 허황후는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일 수 없고 김수로왕은 전한을 찬탈한 왕망의 후손인 소호 김천씨의 후예이며, 허황옥도 그 일당일 것이라는 주장이다.
문정창은 허황옥이 아유타국의 공주일 수 없는 이유로 첫째 이유디아는 연평균 기온이 섭씨 43도의 혹서지방으로 주민들이 흑인에 가까운 피부색을 가지고 있다는 점, 둘째 이 지방 사람들의 언어가 가락국과 달랐을 것인데 언어 불통의 기록이 전혀없다는 점, 셋째 아유타극의 멸망연대(AD20년)가 허황옥의 연령과 걸맞지 않다는 점, 넷째 아요디아에서 한반도까지 5만리를 5월에 출발하여 약 2개월 남짓한 7월 27일에 도착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허황후의 출자 문제는 그 뒤 김병모씨(한양대 교수)에 의해 의문의 해답을 얻으려는 탐사가 계속됐다.
김병모씨 역시 이종기씨가 발견했던 아유타국의 옛 왕도였던 갠지스강 상류 이요디아 지방에서 수없이 많은 힌두교 사원 정문에 마주보는 물고기 한 쌍이 그림 또는 조각으로 나타나 있는 것을 확인했다. 한국어의 어휘 중에 고대 드라비다어에 뿌리를 갖고 있는 것이 많다는 것도 확인(언어학자 강길운씨는 4백 5개나 된다고 주장)했는데, 그 중 가락(KARAK)이란 말은 고대 드라비다어의 물고기란 뜻이라 한다. 김병모씨 역시 고대 인도와 한국과의 문화관계, 문자 기록 등은 아유타국 공주의 내한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결론을 맺고있으면서도, 다만 이종기씨와는 달리 인도에서 바로 온 것이 아니라 A.D. 20년경에 멸망한 이요디아 왕족의 일부가 중국 양자강 상류 사천성, 안악현지방에 이주해 있다가 A.D. 48년 양자강 지방을 거쳐 동쪽으로 나와 황해를 건너 김해에 상륙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원전 : 1995년 김시우저 가락국 천오백년 잠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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