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음을 접하며”
정보라,홍성옥 등 공적 자료 없어
고령화 초기 이민자 기록 정리해야
“그래도… 호상입니다.”
“그래도… 마음은 그렇질 않네.”
백수에서 2년 부족한 삶을 사셨음에도 어머니를 잃은 자식의 마음은 허허롭다. 며칠전 지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97세를 사셨으니 조문객들이 ‘호상’이라며 유족들을 위로했고 장례식 분위기도 그리 무겁지 않았다. 그런데 오랜 세월 어머니와 추억을 함께 한 자식들은 백수, 천수라는 말로 어머니와의 영결을 위로받을 수가 없었나 보다.
하긴 열일곱에 시집와 6남매를 낳아 키우고, 막내딸의 조사에 따르면 손주들 까지를 도맡아 키우다 시피 하면서 살아온 그 세월이 자식들에게 어디 쉽게 잊혀지겠는가. 1913년생이라니 일제 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 격동의 근현대화를 몸소 겪은 이다. 우리네 부모들의 표본인 셈이다.
지난 며칠사이 시카고에서 두 분이 더 돌아가셨다. 70년대 봉제업을 일궈 수많은 한인 이민자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었던 최동열씨와 한국학교 협의회장을 지내며 2세 한글교육에 힘써왔던 최호승씨. 일흔을 갓 넘긴 이들의 부고를 접하며 시카고 지역 이민 1세대의 고되었지만 의미있는 시대적 역할이 다해감을 느낀다. 이민을 연 세대, 이곳 한인사회가 그들 세대를 체계적으로 기억할 만한 수단이 아직 없는 게 안타깝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조 바이든 부통령이 새해 국정연설을 이틀 앞둔 25일 백악관에서 중산층 지원계획을 밝혔다. 지원계획에는 자녀 양육 세제 혜택 등이 포함되어 있다. 지난해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구성했던 중산층 지원 팀이 1년이 지난 후 본격 가동된다는 선포식 같았다. 흔히 중산층은 미국 평균 정도의 소득과 2명 가량의 자녀를 둔 가정을 일컫는다. 오바마의 연설 내용 중 부분이다.
“우리 모두는 아메리칸 드림이 무엇인지 압니다. 미국에서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 열심히 일하고 책임을 다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좋은 직장, 헬스케어, 부유하지 않아도 보장되는 은퇴생활, 자녀들이 우리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교육. 단순하지만 20세기를 미국의 세기로 만든 중산층의 가슴에 있는 아이디어들입니다. 불행하게도 중산층은 오랜 세월 동안 공격받아 왔습니다.”
이 불황의 시대에 오바마가 말하는 중산층은 경기 부양책에서 소외되어 왔다. 결과적으로 고소득의 월가 금융계 종사자와 빈곤층에만 혜택이 돌아가는 지원 정책 때문에 정직하게 세금 꼬박 내며 이 어려운 한파를 헤쳐 나가자고 작심한 사람들은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그들의 살아온 방식이 오바마 표현대로 20세기의 미국을 만들어 왔는데도 불구하고.
중산층이 근간을 이룬 20세기의 미국은 아메리칸 드림의 이상을 세계 도처에 심었다. 도덕성과 청교도적인 질서 위에 땀흘린 만큼 거둬들이는 약속의 땅이 미국이었고 그래서 우리의 이민 1세들도 배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 왔다. 오바마가 말한 중산층의 이미지 위에 60년대, 70년대에 시카고에 정착해 젊음을 보내고 이젠 노년에 접어든 이곳 한인 1세들이 이상하리 만치 또렷이 겹쳐진다. 올드타이머들이 고단했던 삶을 접는다는 부음 탓이다.
미국의 중산층이 미국의 20세기를 이끌어 왔다면 한인 노년층은 20세기말의 시카고 한인사회를 일구고 지금의 한인사회가 있게 한 뿌리며 근간이었다. 요즘은 취업이민이 대세가 되었지만 초기 이민은 유학파, 서독 광부와 간호사 출신, 국제결혼에 따른 가족이민 등이 대부분이었고 이들 그룹은 때로는 따로, 때로는 함께 한인사회의 틀 만들기에 열심이었다.
가족이 가족을 부르고 또 그 가족이 가족을 이루면서 한인사회는 양적으로 커갔다. 이민사회에서는 함부로 남 험담하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대규모의 친척 인척으로 엮여 있는 가정들이 상상 외로 많다. 자칫 말 잘못 했다가는 동생 앞에서 형을 험담하는 실수를 범하게 되고 되려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 글이 잠깐 곁길로 갔다. 이런 저런 배경을 안고 자라 온 커뮤니티가 오늘의 시카고 한인사회다. 초기 이민자들은 쉴 새 없이 개척의 땀을 흘리면서도 짬을 내어 단체도 많이 만들었다. 말이 많고 다툼도 잦았지만 이뤄낸 일은 더 많았다. 본보에 소개되고 있는 단체들의 수십년 역사가 바로 이들로 부터 시작됐다.
며칠새 여러 부음을 접하면서 적게는 60대에서 많게는 80대 이상까지 고령화 단계를 넘어선 이들 초기 이민세대가 허무하게 퇴장하고 있다는 착잡함에 빠져 들었다. 다양하게-말이 좋아 다양이지 차별과 저임금, 언어와 문화의 차이 등으로 고된- 개척의 시대를 살아온 초기 이민자들의 자취가 가족과 몇몇 친구들에게만 기억될 것 같아 안타깝다. 초대 한인회장을 지낸 고 정보라 박사의 기록이 어디에 남아 있는가. 초대 여성회장 고 홍성옥 여사의 기록은 또 어디에 있는가.
이제 돌아볼 때가 되었다. 문화회관이든 한인회든 아니면 다른 사회단체든 기록으로 남길만한사람들을 꼽아 공공의 기억으로 되살릴 때가 되었다. 중산층이 20세기의 미국을 세웠듯이 초기 이민의 한인사회 리더들이 지금의 코리안 커뮤니티를 일궜다. 살아있는 분들은 그들의 육성으로, 돌아가신 분들은 아직 주위 사람들의 기억이 남아 있을 때 초록이라도 만들어 놔야 한다.
떠남과 남음은 영어로는 한 단어다. 가는 것이 오는 것으로 대체되지 못하고 남기기만 해서는 단어 하나에 묶인다. 남기지도 못하면서 떠난다면 그건 최악이다. 떠나고 남기고 후세에 넘기는 일, 이게 역사고 이게 우리가 의미있게 사는 방식이다.(201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