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표암(慶州瓢巖,북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문화재 지정 경상북도 시도기념물 제54호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 507-7
경북 경주시 동천동에 있는 유적으로 신라6촌 중 알천양산촌의 시조 알평공이 하늘에서 내려온 곳이며, 경주이씨 혈맥의 근원지인 동시에 신라 건국의 산실로서 화백이라는 민주정치 제도의 발상을 보인 상서로운 곳이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54호. 지정면적 41,168㎡. 동쪽으로는 명활산성(明活山城), 남쪽은 남산, 서쪽은 선도산(仙桃山), 북쪽은 소금강산(143m)의 전형적인 분지형태로 이 산은 본래 북악으로 불리던 명산이다.
신라의 4영산중의 하나이며, 산의 정상에는 이차돈(異次頓)과 관계있는 백률사(伯栗寺)가 있으며, 서쪽에는 굴불사지석불상이 있다.
이 산의 동쪽과 서쪽에는 석탈해왕릉과 고분군의 동천동지구, 소금강산의 서북과 용강동 평지에도 신라시대의 석실고분군이 있는 용강동지구로 개발계획이 있다. ‘박바위’ ‘밝은바위’를 뜻한다.
이곳은 신라6촌 가운데 근본이 되는 밑돌부라는 부명이 붙여진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의 시조 알평공(謁平公)이 하늘에서 내려온 곳이다.
서기전 69년에 6촌장이 여기에서 모여 화백회의를 열고 신라건국을 의결했으며, 그 뒤 서기전 57년에 신라가 건국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표암은 경주이씨의 혈맥의 근원지인 동시에 신라 건국의 산실로서 화백이라는 민주정치 제도의 발상을 보인 상서로운 곳이다. 1806년(순조 6)에 유허비가 세워졌고 1925년에는 표암재가 건립된 뒤 매년 3월이면 중정에 향사를 하고 있다.
사로 6촌 (斯盧六村) | 알천양산촌 (閼川楊山村) | 돌산고허촌 (突山高墟村) | 자산진지촌 (觜山珍支村) | 무산대수촌 (茂山大樹村) | 금산가리촌 (金山加利村) | 명활산고야촌 (明活山高耶村) |
---|
6부명 (6部名) | 급량부 及梁部 | 사량부 沙梁部 | 본피부 本彼部 | 점량부 漸梁部 | 한지부 漢祗部 | 습비부 習比部 |
---|
촌장 (村長) | 알평 謁平 | 소벌도리 蘇伐都利 | 지백호 智伯虎 | 구례마 俱禮馬 | 지타 祗陀 | 호진 虎珍 |
---|
강림지 (降臨地) | 표암봉 瓢巖峰 | 형산 兄山 | 화산 花山 | 이산 伊山 | 명활산 明活山 | 금강산 金剛山 |
---|
후손 성씨 (後孫 姓氏) | 이씨 李氏 | 최씨 · 소씨 崔氏 · 蘇氏 | 정씨 鄭氏 | 손씨 孫氏 | 배씨 裵氏 | 설씨 薛氏 |
---|
●경주 이씨 (慶州 李氏)
경주이씨 시조는 신라6촌 중 알천양산촌의 신라 건국의 좌명공신인 표암(瓢巖) 이알평(李謁平)입니다. 신라 건국 전에 진한(辰韓)땅 표암봉(瓢巖峰)에 내려와 사로6촌(斯盧六村) 중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 촌장(村長)으로 부족민을 다스리다가 6촌 촌장과 화백회의(和白會議)를 열어 박혁거세를 왕으로 옹립하여 신라를 건국하고 아찬(阿飡. 阿餐) 관직에 올라 군정을 보살폈습니다.
유리왕 9년(서기 32년)에 양산촌(楊山村)을 급량부(及梁部)로 개칭할 때 이씨 성(李氏姓)을 사성(賜姓)받았습니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서기 32년(신라 유리왕 9) 유리왕(儒理王)이 다른 다섯 촌장들과 함께 사성(賜姓)하여 양산촌(楊山村)을 급량부(及梁部)로 개칭하고 그에게 이씨(李氏)의 성(姓)을 내려 주었다고 한다.
그후 후손들은 알평(謁平)의 36세손으로 신라 진골(眞骨, 부모 양계중 어느 한 편만이 왕족의 혈통을 지니고 있는 사람) 출신인 이거명(李居明, 소판공)을 중시조(中始祖)로 하고, 시조(始祖)의 발상지(發祥地)인 경주(慶州)를 본관(本貫)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경주이씨의 세계는 이거명(居明)의 17세손(고려 말기)에서 8파로 대별되고 다시 아래로 내려오면서 대소 70여 파로 분파된다.
8대파는 평리공파·이암공파·익재공파·호군공파·국당공파·부정공파·상서공파·사인공파등이 있으며, 이밖에 판전공파·월성군공파·시랑공파·석탄공파가 그에 버금간다. 전통의 명문거족인 경주 이씨는 고려 말에 크게 세력을 떨쳤고, 조선조에 와서도 수많은 공신·학자·명신을 배출하여 명문의 대를 이었다.
가문을 대표하는 인물중에 상서공파의 백사 항복의 집안에서 가장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으며, 익재공파 공린의 집안과 국당파인 매죽헌 완의 집안에서는 훌륭한 상신 및 문형이 배출되어 경주이씨의 주축을 이루었다
경주 이씨 세전보감에 따르면 이알평은 기원전 117년에 하늘에서 진한 땅 표암봉으로 내려온 것으로 수록되어 있다. 자(字)는 천서(天瑞), 호(號)는 표암(瓢巖), 시호(諡號)는 문선공(文宣公) 또는 은열왕(恩烈王)이라 전한다. 혁거세 거서간 때에 개국 좌명공신에 녹훈되고 각간, 아찬 등을 역임하였으며 군무를 주관하였다고 전한다. 설화에 의하면 200세의 향수(享壽)를 누렸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 사후 법흥왕 23년(서기 535년) 시호를 문선공(文宣公)이라 하였고, 태종 무열왕 3년(서기 656년) 은열왕(恩烈王)으로 추봉되었다. 시조 이알평 이후 900여 년간의 후계가 실전되었다가, 고려말 목은 이색이 찬한 익재공 묘지(墓誌)에 신라말 진골(眞骨) 출신으로 소판(蘇判) 관직에 오른 소판공(蘇判公) 이거명(李居明) 이후의 계보가 밝혀짐으로써, 이거명(李居明)을 중시조로 한 계보가 전해지게 된다.
●경주 이씨-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경주 이씨(慶州 李氏)는 경상북도 경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는 신라의 건국 신화에 나오는 사로(斯盧) 6촌 중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의 촌장으로 전해지는 표암공(瓢巖公) 알평(謁平)이다. 《경주이씨 대종보(大宗譜)》 상계편에 의하면 알평(謁平)은 6촌 촌장의 수장으로 화백회의를 주재하고 혁거세(赫居世)를 옹립하여 신라 건국의 원훈으로 좌명공신(佐命功臣)이 되었고, 아찬(阿粲)에 올랐다고 한다.
32년(유리이사금 9) 알천양산촌은 급량부(及梁部)로 개칭되었고, 이씨(李氏) 성(姓)을 사성(賜姓) 받았다고 한다.
중시조는 소판(蘇判) 이거명(李居明)이다. 고려 말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묘지명에서 신라 말 소판(蘇判) 벼슬을 지낸 이거명(李居明) 이후의 세계가 기록되어 있어, 이거명을 1세로 기세(起世)하고 있다
▶분파
경주 이씨의 세계(世系)는 고려 말 중시조의 15~21세(14~20세손)에서 14대파로 분파하였다.
중조 15세 열헌(悅軒) 이핵(李翮)의 본손 계대가 중조 16세, 17세에서 평리성암공파, 이암공파, 익재공파, 호군공파, 국당공파, 부정공파, 상서공파, 사인공파 8대파로 나뉘고, 중시조 지손 계대가 15세, 21세, 19세에서 판전공파, 월성군파, 직장공파, 석탄공파, 진사공파, 교감공파 6대파 총 14개 대파로 분파되고 다시 아래로 내려오면서 중소 70여개 파로 분파된다.
14개 대파는 평리성암공파(評理誠菴公派- 파조 16세 李仁挺 이인정) [1]· 이암공파(怡庵公派- 파조 17세 李琯 이관)· 익재공파(益齋公派- 파조 17세 李齊賢 이제현)· 호군공파(護軍公派- 파조 17세 李之正 이지정)· 국당공파(菊堂公派- 파조 17세 李蒨 이천)· 부정공파(副正公派- 파조 17세 李邁 이매)· 상서공파(尙書公派- 파조 17세 李薖 이과)· 사인공파(舍人公派- 파조 17세 李蓨 이조)· 판전공파(判典公派- 파조 15세 李康+羽 이강)· 월성군파(月城君派- 파조 21세 李之秀 이지수)· 직장공파(直長公派- 파조 19세 李養吾 이양오)· 석탄공파(石灘公派- 파조 19세 李存吾 이존오)· 진사공파(進士公派- 파조 19세 李存中 이존중)· 교감공파(校勘公派- 파조 19세 李存斯 이존사)이다. 경주 이씨 14개 대파 중에서 익재공파, 국당공파, 상서공파 이들 3파가 가장 번창하고 주축이다.
▶분적된 본관
이씨 중에는 경주 이씨의 시조 이알평(李謁平)에 연원을 두고 있는 분관이 많은 듯하나 계대 확인이 안되어 분적종 승인을 받지 못하나 경주 이씨의 확인된 분관은 8본이다. 시조 후손에서 분적한 합천 이씨(陜川李氏- 분적조 강양군 李開 이개) · 차성 이씨(車城李氏- 분적조 차성군 李渭 이위)· 우계 이씨(羽溪李氏- 분적조 중서사인 좌복야공 陽植 양식)와
중시조 후손 계대에서 원주 이씨(原州李氏- 분적조 23세 경원군 李攀桂 이반계) · 아산 이씨(牙山李氏- 분적조 6세 증사공공 李周佐 이주좌) · 재령 이씨(載寧李氏- 분적조 7세 재령군 李禹偁 이우칭) · 진주 이씨(晋州李氏- 분적조 18세 대제학공 李永榟 이영재. 벽호공 李君榟 이군재)· 장수 이씨(長水李氏 - 분적조 林幹 임간 - 直幹직간) 등이 이에 속하며 그 외 많은 이씨가 경주이씨 시조의 후손이라고 하나 계대가 확인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