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추왕의 딸이 문제가 많다.
한명은 이름이 보반(保反夫人)이며 다른 이름은 內禮吉怖(내례길포)이다.
내물왕에게 시집갔다.
또 한명은 실성왕의 왕비인데 이름은 안 나와 있다.
삼국사기의 연대를 가지고 보면 미추왕은 재위기간이 서기262-284년 (23년간 즉위)이다.
미추왕은 첨해왕이 아들이 없어 나라사람들이 추대했으므로 어린 나이에 등극했을 가능성은 적다.
미추왕이 추대를 받아 등극을 했으므로, 나라의 장로의 입장으로 왕이 되었다면 나이가 많을 수도 있다.
만약 63세때 왕이 되었다면 미추왕의 출생연도는 서기200년이다.
미추왕이 21세에 딸을 낳았다면 미추왕딸의 출생연도는 220년.
내물왕이 등극을 한 것은 356년이다. 그럼 그때 왕비의 나이는 137세.
실성왕이 등극을 한 것이 402년이다. 그럼 그때 미추왕의 딸인 왕비의 나이는 180세가 넘는다.
그러나 70먹은 노인이 아이를 임신시키는 경우도 없지는 않으니까 늦게 딸을 낳았다고 가정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미추왕이 284년에 죽는다.
그러므로 미추왕의 딸의 출생연도의 하한선은 서기285년이다.
그런데 서기285년생인 미추왕의 딸이 내물왕과 결혼했다. 그런데 내물왕은 356년 등극한다. (356-285=71)
그럼 그 때 왕비의 나이는 최소 72세. 내물왕이 죽었을 때(402년), 왕비의 나이는 118세 (402-356= 46)(72+ 46= 118)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만 이상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실성왕의 왕비도 미추왕의 딸이다.
실성왕이 등극했을 때 와이프의 나이는 최소 120세정도.
정말 이건 아니다.
미추왕과 내물왕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단순계산으로도 그 사이에 최소한 100년 이상이 사라졌다.
즉 내물왕과 실성왕은 미추왕의 사위가 아님이 분명하겠지.
계보가 조작된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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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 (2006-09-03 19:27:37)
김씨 족보만 따지면 왕창 누락도 있을 수 있고 계보조작도 있겠지만 당시는 김씨만 있었던건 아니지요.
박씨,석씨 족보와 얽혀있다는 말입니다.
가령 미추왕의 아버지 구도는 석씨 조분왕의 외조부가 되고, 미추왕은 역시 조분왕의 사위입니다.
구도는 석씨 왕대에 관직을 갖고 여러번 기사에 오릅니다.
계보조작을 하려면 3대 가문을 통째로 조작해야지 김씨만 할 수는 없습니다.
계보를 상세히 고찰하면 조작이 있을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석씨도 같은 시기에 김씨와 비슷하게 조-손간에 100여년 이상 차이가 납니다.
명백히 연대가 벌어졌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서석 (2006-09-03 19:32:36)
16대 걸해왕, 17대 내물왕이 똑같이 46년간 재위했다는 기록, 여기에 결정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왜의 침공과 고구려의 남정 등 격동기에 재위했던 왕들이 46년씩 태평성대를 누렸다는건 믿기 힘듭니다.
저는 나름대로 연구결과 걸해왕이 20여년, 내물왕은 단 1년 정도 재위했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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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2006-09-03 19:56:19)
내물왕이 왕위를 잇게된 유일한 이유는 사위상속입니다.
저의 생각은 그런데 그 사위상속이 사기라는 거죠.
신라왕의 성이 바뀌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습니다.
사위상속이라는 개념만 있으면 성이 바뀐다고 혁명이 일어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일단 삼국사기의 이야기 상으로는
박유리왕에서 석탈해왕으로 넘어가는 것도 탈해가 박남해왕의 사위로 유리왕과 동일한 상속권을 가지고 있기에 그렇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석첨해에서 김미추로 넘어가는 것도 김미추가 석조분왕의 사위이므로 첨해와 동일한 상속권을 가지는 것이죠.
조선초기 딸아들 구별않는 상속을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딸에게 땅을 상속해주면 당연히 사위에게 상속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미추에게 왕위가 넘어간 것도 미추에게 주었다기보다는 조분의 딸인 미추의 부인에게 왕권을 넘겨준 것으로 보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흘해에서 내물로 왕권이 넘어오는데 아무런 합리적인 설명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삼국사기는 설명을 억지로 하면서 '내물왕이 미추의 사위'라고 합니다.
(삼국사기야 이전의 자료를 가지고 했겠지만 당대에 이미 어떤 조작이 이루어져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왕위계승의 정통성을 말하기 위해서 그렇게 주장되겠죠.
그런데 시기적으로 내물왕과 실성왕은 미추왕의 사위가 절대 될 수 없는 형편입니다. 년도 차이가 너무 심하게 난다는 것입니다.
아마 이 때 무슨 큰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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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 (2006-09-03 20:32:04)
무명님/연도가 벌어졌다고 보면 모든게 이해가 쉽습니다.
조선왕실로 들어가 봅시다.
여성인 왕비들은 나이많은 남자왕과 혼인하고 수명이 깁니다.
그러다 보니 왕의 증조할머니도 살아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왕의 할머니를 왕태후라고 부릅니까?
명칭은 기억안나지만, 왕의 할머니나 증조할머니가 왕실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지요.
왕의 친조모가 아니라도 선대왕의 왕비라면 마찬가지입니다.
그처럼 미추왕의 조카인 내물이 즉위할때 쯤, 미추왕비 광명은 왕실에서 상당한 권한을 갖고 왕위계승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니, 자신의 사위를 왕위에 앉혔을 거라는 겁니다.
필사본화랑세기를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화랑세기에 보면 왕실의 나이많은 여인들이 다음 왕위를 쥐락펴락하는 상황이 나옵니다.
미추왕과 실성왕,내물왕을 석씨왕실과 떼어서 생각하면 안됩니다.
왕에게 성씨를 부여한건 후대사가들이고 당시는 누구의 사위다, 아들이다 하는 관계만 염두에 둘 뿐 성씨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석씨왕대 왕들은 자신의 아들에게 직접 왕위를 물려준 사람이 없습니다.
이걸 또 조작이라 하면 할말이 없지만, 당시 왕위계승 시스템이 그렇게 되어 있었다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다른 왕조 같으면 왕의 아들이 왕위계승에서 밀려나면 의심을 받고 살해당하거나 반란을 기도하다 죽임을 당하곤 하는데
신라는 그렇지 않고 몇대 후에 그 아들이 또 왕위에 오르거든요.
현왕의 왕자는 바로 뒤를 이을 수 없는 왕위계승체제를 갖고 있었다는 거지요.
서석 (2006-09-03 20:59:23)
내물왕만 이상한 등극을 하는게 아니고 후대 지증왕이나 진흥왕도 마찬가지지요.
지증왕은 앞의 소지왕과 6촌간입니다. 소지왕의 아들이나 사촌들이 없었다고 보기 힘든데,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건 눌지왕의 딸 조생부인의 아들이라는 관계가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입니다.
진흥왕이 등극하는 상황은 화랑세기에 상세하게 나오는데 법흥왕의 아들을 밀어내고 외손자이며 조카인 진흥이 어린 나이에 보위에 오르는데 어머니 지소부인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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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2006-09-03 21:11:00)
내물왕보다 더 큰 문제는 실성왕입니다.
실성왕은 392년인 내물37년에 고구려에 인질로 갔다가 그후 돌아와 402년 등극했습니다.
실성에 관한 기록은 연도오차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실성의 장인은 서기 200년대의 사람입니다.
어떤 이유이든 말이 안되죠.
왜 이런 오류가 존재하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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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 (2006-09-03 23:39:49)
실성왕의 경우도 연대오류의 결정적인 근거가 됩니다.
내물과 실성은 동서간인데 같은 시대에 활동하는 것이 맞습니다.
내물왕의 사망시 아들들이 나이가 어려 왕위에 오르지 못했다고 하는데 46년이란 재위기간은 터무니없지요.
내물왕의 재위기간이 뻥튀기 되었다고 보면 실성왕은 내물왕과 비슷한 연배라고 볼 수 있으며 내물왕 재위시에 이미 왕위계승권자로 결정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성이 고구려에 인질로 갔다고 하는데 고구려가 별볼일 없는 사람을 인질로 데려갈리가 없지요. 차기 왕위계승권자만이 자격이 있습니다.
신라의 연대문제는 고의로 200년간 올려놨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고구려와 맞먹는 역사국가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박혁거세 등의 재위기간을 무리하게 늘린 면도 어느 정도 보이지만 그게 다가 아닙니다.
어떤 착오에 의해서 부풀려진 면도 있다고 봅니다. 그 착오의 이유를 나름대로 풀어보았습니다. 다음에 시간이 나면 한번 올려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