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위조
조 무 구(曺 茂 九)
요즘 신문 지면이나 TV 뉴스에 정부 고위직 임명동의 청문회나, 비례대표 국회의원들의 허위학력 가짜 학위논문 표절 등이 논란이 되고, 얼마 전에는 ㄷ대학 모 여교수의 가짜 학위논란으로 사회의 이슈가 되고 있다. 누구나 한번쯤 학력위조의 유혹도 받았으리라 생각된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거나, 조직생활에서 접하게 되는 일반적인 일들 중의 하나가 학연이나 지연 혈연 등등 수만은 연으로 연계된 문화가 많다. 사회생활이나 조직생활에 있어서 각자의 전문성이나, 조직과 사회가 필요한 실력을 위주로 평가를 받지 않고, 자신과의 친소여부에 따라 평가를 받는 것이 일상화 되어 버렸다. 이러한 현상은 학연이나 지연에 있어서 가장 집중적이면서 다양한 패턴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특히 학력에 대한 의식, 나와 유사한 학교를 나오고, 아니면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고, 사람을 평가함에 있어서 무조건 높은 수준의 점수를 주는 것이 당연시 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 전반에 걸쳐 학력의 위조나, 자격증의 위조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우리사회의 특이한 현상이다. 어쩌면 이러한 학력에 대한 진실성이나 건전성 그리고 학력에 대한 실용성이나, 전문성을 고찰하고 평가하기보다는, 학력 그 자체에 대한 신뢰와 존경을 부여함으로써, 학력을 획득하려는 노력과 고비용을 투자 하면서도 실제에 있어서는 학문의 발전이나, 미래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하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과도한 학력에 대한 열망이 우리사회가 1960년대를 거쳐 경제개발을 이룩하는 데는 매우 높은 기여를 한 것이 사실 이었지만, 자신의 사회적 명성이나, 허례를 위하여 잘못된 학력 추구가 빚어낸 것이 오늘 우리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학력에 대한 왜곡된 사회적 분위기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현재 ㄷ대학교 모 여교수의 학력위조 사건이 일파만파로 사회 문제화 되어 우리사회 전체가 학력이나 학벌 만능주의의 사회로 국내외에 대서특필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학력위조 사건이 주는 의미와 학력 만능주의 사회가 갖는 병폐적인 모습,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자신의 노력이 필요 하고, 나아가 진정으로 자신의 피나는 노력으로 이룩한 학문에 대해서는 진정한 인정을 받을 수 있게 감시체제가 이루어 저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오면서 경제적 어려움으로 학력자격을 갖추지 못해, 하고 싶은 일이나, 원하는 직장에 못 가본 사람이 많을 줄 안다. 지난 1960년대에 유년(幼年)시절을 겪은 사람들은 정말 살기가 힘들었다, 그 때 국민 소득이 낮아서 많은 젊은이들이 상급학교에 진학을 못하고 청운의 꿈을 포기한 사람이 많았다. 나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였다, 지금은 경제적 능력은 허락해도 최소한의 자격을 갖추지 못해 일생동안 한(恨)을 품고 사는 사람도 많다. 일예로 초등학교 졸업을 못해, 중 고교 검정고시를 엄두도 못내는 사람도 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초등학교도 완전 무상교육이 아니고 일 년에 두 차례 수업료를 냈다. 상반기에는 보리쌀 한 말, 하반기에는 벼 한 말을 수업료 로 납부 했는데, 그것도 제 때에 납부하지 못해서 수업시간에 집에 쫓겨 와 야했고, 나는 화가 나서 학교에 가지 않았는데, 어느 날 교감 선생님께서 직접 우리 집을 방문하시고, 해결되어 다시 학교에 나갈 수 있었다.
내가 살던 고향 마을도 제법 큰 마을 이었는데,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겨우 5명 정도,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2명 이었다. 마을에 제일 큰 부자 집, 면장님 자녀들이 대도시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여름이나, 겨울 방학 때에 고향에 오면 온 동내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곤 했었다.
그 때는 상급학교 진학은 고사하고 어린나이에 집안일을 돕거나, 남의 집에 머슴을 살면서 가족의 생계를 도와야 했다. 초등학교 때 반에서 일등을 하고도 상급학교에 진학을 못해 상급학교에 다니는 친구를 보고 남몰래 눈물을 흘렸다고, 성인이 되어 동창회 같은 모임에서, 그 때 심정을 토로하는 친구들도 있다. 나도 그 때 진학 못한 고등학교 대학교를 가야겠다고 계획을 세웠다. 꿈을 꿀 수만 있다면 이미 반은 이룬 것이다. 내가 이 꿈을 꿀 때는 이미 오십 중반의 나이 이었는데, 꿈이 너무 늦지 않나 싶었다.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계획을 세워서 늦게나마‘고등학교 졸업 인정고시’에 합격하고, 대입 수학능력 시험을 준비 하여 2001년 11월에 아내와 함께 오십 중반의 나이에 어린 고등학생과 함께 대학 입학수능 시험을 보았다, 조금은 쑥스럽기도 했지만, 배움에 무슨 자존심이 문제냐 싶어, 당당하게 수학능력 시험에 응시했다. 수능시험 날 나는 마산 합포고등학교 고사장에 들어가는데 교문에서는“학부모님은 못 들어갑니다,”하고 제재를 받기도하고, 현관에서는 “어느 학교에서 감독관으로 오셨습니까?”하고 여선생님이 안내를 해서, 웃으면서 시험을 보러 왔는데요! 했더니 “아, 그러세요.”하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나는 국립창원대학교 무역학과 수시모집에 응시했고. 그리고 당당하게 합격했다! 하늘을 날고 있는 기분이었다. 나도 대학교를 가는구나! 생각 하니 너무도 기뻤다.
어려울 때 힘이 되어준 나의 동창생은 아내 이었다. 내가 공부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아내도 대학에 가고 싶다기에, 같이 고교 과정부터 공부해 그 어려운‘고등학교 졸업 인정고시’에 합격하고 창신대학을 졸업했다. 직장을 다니면서 4년 동안 공부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아내가 도와주어서 무난히 마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한때는 아들과 대학생이 세 명이나 되었다, 시험 때가 되고 과제물이 있던 날은 컴퓨터가 쉴 새가 없었다.
부모님은 내 인생의 거울이다. 나의 유년시절, 그때 부모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파란 하늘을 등지고 뙤약볕 아래에서 하얗게 핀 목화를 따느라, 허리 아픔과 배고픔도 모르고, 온종일 넓은 목화밭에서 일하시던 어머니가 생각난다, 읍에서 정오를 알리는 오포(싸이련)가 울면 내가 점심으로 갖다 준 고구마 몇 뿌리로 요기를 하시고, 그 많은 목화송이를 따시던 모습, 다 떨어진 신발과 구멍 난 옷이 아직도 눈에 선하고. 가슴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듯이, 언재나 공부하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내 아들 딸 에게도 기억되었으면 싶었다. 이제 내가 그때 부모님 나이만큼 세월을 뛰어넘어, 고등학교 대학을 가기로 꿈을 꾸었고. 드디어 2006년 2월 국립창원대학교를 졸업했다. 이 모습을 부모님께서 보셨더라면 얼마나 기뻐하며 대견해 하셨을까?,
배움이란 일찍 시작함과 늦게 시작함 차이 이지, 나에게는 오히려 인생의 경험과 체험을 통한, 젊어서의 배움보다도, 만학(晩學)이 내 인생수학(人生修學)에 좋은 기회 이었다고 생각된다. 우리 속담에“시작이 반(半)이다”는 말이 있듯이 무슨 일이 던지 처음 시작이 중요하고, 실천이 있으면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아직‘학력위조' 의 유혹을 받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하나하나 실천하면서 이루지 못한 꿈을 실행 하라고 권하고 싶다.
외국 속담에‘강 물속 고기를 탐내는 것 보다 집에 와서 그물을 짜라’는 속담이 있다. 심심찮게 사회 이슈가 되고 있는 학력위조, 돈과 명예는 있는데 학력이 모자라 당당하게 이력서를 못 쓰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요쯤은 평생교육제도 잘되어 있고, 사이버 교육도 발달하여 조그만 노력하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공인 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유명 연예인, 교수, 정치인들 힘 안들이고 쉽게 학력을 위조해서 한평생을 죄의식으로 살아가는 것 보다, 열심히 공부를 해서 공인 학력을 인정받아 사회에 진정한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8년6월 한비문학 수필 신인상당선작)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