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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아카사카 세이료 회관에서 열린 제 6회 한국어 경연 대회>
지난 일요일(17일) 도쿄에서 열린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 다녀왔습니다. 이 대회는 말 그대로 일본인들이 참가해 한국어 실력을 겨루는 스피치 콘테스트입니다. “함께 말해 봐요,한국말(話して見よう、韓國語)”이라는 공식명칭으로 지난 2천3년부터 시작돼 올해로 6회를 맞는다고 합니다. 일본인들의 한국어 학습 열기가 어느 정도인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던 데다 아이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서 가족과 함께 갔습니다.
대회가 열린 홀에는 콘테스트 참가자를 비롯해 약 3백 명이 자리를 꽉 채우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참가자를 응원하러 온 일본인 가족이나 친구들이었지만,한국어 공부에 도움이 될까 싶어 호기심으로 찾은 일본인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한국어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어서인지 대회가 열린 5시간 내내 뜨겁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습니다.
<참가자들은 성별.연령별로 다양했다>
홀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 다수는 역시 한류 열풍의 주력이라 불리는 30대 중반 이상의 일본 아줌마들이었습니다. 언뜻 봐도 60%는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생각보다는 젊은 층과 남성의 비율도 낮지 않았습니다. 경연대회 참가자의 구성도 학생부터 노인까지 다양하더군요. 그 동안 일본에서 “한류는 일본 중년 여성들 사이에 불었던 극히 일시적 붐일 뿐이다”라는 말을 자주 들어왔는데,꼭 그렇지는 않구나 싶어 괜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말하기 콘테스트는 중고생과 일반인 각 2 부문씩,모두 4개의 부문으로 나뉘어져 진행됐습니다. 두 사람이 짝을 이뤄 짧은 한국어 촌극을 하거나(일명 ‘스킷토(skit)’ 부문),지정된 한국가요를 외워 부른다거나(K-POP 암송부문),음성을 뺀 한국 인기 드라마의 화면에 자신들이 자유롭게 창작한 대사를 입혀 구술하는 식(영상표현 부문)인데 각 부문 모두 한국어 발음의 정확성과 표현력에 높은 점수가 매겨졌습니다.
<드라마 장면에 창작한 대사를 붙이는 '영상표현 부문'>
저는 이 가운데 재치 있는 대사들이 많이 쏟아진 영상표현 부문을 재미있게 봤습니다. 서투른 한국어지만 때로는 엉뚱하면서도 기발한 애드립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더군요. 방청석에서도 자주 폭소가 터져 나오고,박수가 이어졌습니다. 특히 대부분 참가자들이 경연 분위기에 맞춰 다양한 분장이나 갖가지 소도구를 성심 성의껏 준비해온 모습은 보기 좋았습니다.
<참가자들은 구성에 맞게 의상과 소품을 준비했다>
경연 대회에는 모두 34개 팀 56명이 참가했습니다. 초급자로 대상이 제한됐고,경쟁률 3대 1의 예선을 거쳤다고 합니다. 주최측인 한국 문화원측의 설명으로는 해마다 신청자수가 늘어 올해가 제일 많았다고 합니다. 특히 올해에는 중학생도 3개 팀이 신청하는 등 젊은 층 신청자가 많아진 것이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내년부터는 고교생 부문을 단독으로 독립시켜 ‘금호아시아나배 고등학생 한국어 말하기 대회’를 만든다고 합니다.
<기념사진...최우수상은 한국 단기유학비 또는 제주도 여행권이 선물>
이런 식의 한국어 콘테스트가 활성화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한류의 덕분입니다. 지난 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어 말하기 대회를 열고 싶어도,열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일본인의 수가 워낙 적다 보니, 경연 대회 개최 자체가 불가능했던 것이죠. 그러나 2천년대 들어 ‘한류’가 휩쓸고 간 자리에 한국에 대한 관심이 싹텄고 이것이 자연스레 한국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면서 대회를 열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고 합니다. 첫 대회가 지난 2천3년에야 열렸다는 것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일 것입니다.
단지 말하기 대회 뿐만이 아닙니다. 한류를 타고 폭발적으로 높아진 한국에 대한 관심은 일본 사회에서 한국어의 지위를 격상시켰습니다. 먼저 한국어를 배우는 인구가 크게 늘었습니다. 재일동포를 제외하면 극히 미미한 수준이었던 한국어 학습인구가 최근에는 2백 만 명 이상 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한류 붐이 일기 전 한 달에 수천부밖에 팔리지 않던 NHK 방송의 한국어 강좌(매주 화요일 밤) 교재가 15만부 이상 팔리고 있는 것이 좋은 예입니다.
일본 학교에서도 한국어에 대한 대우가 달라졌습니다. 일본 문부성의 조사결과 일본 전역에서 한국어를 제 2 외국어로 채택한 고교는 지난 1999년 131개교에 불과했지만,지난 해 5월에는 426개교로 3배 이상 늘어났다고 합니다. 대학교의 한국어 또는 한국학 강좌도 크게 늘어서,한국교류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1990년에 64개에 불과했던 한국어 강좌 채택 대학이 지난 2천5년에는 335개 대학으로 5배 이상 급증했다고 합니다. 이는 일본 대학교 전체로 따져도 절반 정도의 학교가 한국어 강좌를 열고 있는 셈입니다. 제가 있는 게이오 대학에도 영어와 동등한 선택과목으로 한국어 강좌가 있습니다.
<사설 한국어 교습 학원 간판>
학교뿐만 아니라 학원가에도 한국어 열기는 뜨겁습니다.일본 내 대형 외국어 전문 학원인 노바와 이온 등이 한국어 강좌를 많이 늘리는 등 사설학원이 크게 늘어났다고 합니다. 한국문화원은 현재 도쿄에만 공식적으로 파악된 한국어 학원이 107개에 이르고,일본 전역에는 수백 여 개가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일부 유학생들은 학원 또는 개인교습으로 학비를 일부 조달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불과 몇 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고 하더군요.또 교육부가 주관하는 한국어 능력시험의 응시자도 지난 2천3년 4천명 대에서 지난 2천6년에는 8천명대로 배 이상 늘었다고 합니다
학교나 학원은 아니지만 한국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일본인들끼리 직장 또는 동호회 형태로 소 그룹을 만들어 한국어를 정기적으로 공부하는 모임도 많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제 주변에만 해도 게이오 대학교에서의 한국어 공부 모임,친한 일본인 친구가 있는 가와사키(川崎)시(도쿄 위성도시,우리의 부천시에 해당) 공무원들의 한글 공부 모임,그리고 제가 다니고 있는 신주쿠 햐쿠닌죠(百人町) 일본인 교회에도 모두 한국어 공부 모임이 결성돼 있었습니다. 길게는 5년에서 짧게는 2년 전부터 일주일에 한번 또는 2주일에 한번씩 모여 열심히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들 가운데는 상당한 수준의 한국어를 구사하는 일본인도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이 우리가 취직이나 승진 같은 경력관리를 위해 영어나 일어,중국어를 배우는 것과 달리,순수한 동기로 배운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들이 쏟는 시간과 노력은 그만큼 한국에 대한 호감이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공부 모임 외에도 한국어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일본인들이 참 많다는 것을 실감할 때가 많습니다. 6개월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대학교에서 저에게 서툰 한국어로 말을 걸며 한국어를 가르쳐달라는 일본 대학생도 있었고,우연한 기회에 식사 자리에서 소개 받은 일본인 중에는 독학으로 수년 째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고위 경찰공무원과 세관 공무원도 있었습니다.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한 50대 택시기사가 저희가 한국어를 쓰는 것을 듣고,유창한 한국어를 쓰며 친근감을 표시해 저희가 깜짝 놀랜 일입니다. 이 분은 15년 전 우연히 가수 신 승훈의 노래를 듣고 이 가수가 너무 좋아져 음반 CD를 모두 사고, NHK 교재로 한국어를 혼자서 공부했다고 하더군요.
<'동방신기'의 인기는 젊은층 한류팬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시부야역>
이 택시기사의 경우처럼 한국어를 배우는 일본인의 대부분은 한국 연예인에 대해 가졌던 호감이 한국어를 공부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입니다. 마치 연인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지는 것처럼 한국어에도 자연스레 호기심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그래서 최근 젊은 층에서 한국어 학습 인구가 늘어난 이유 중 하나로 동방신기나 SS501,슈퍼주니어 같은 아이돌 그룹의 인기가 일본 내에서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꼽습니다. 특히 최근 동방신기의 인지도와 인기는 일본의 톱 가수 수준이어서 젊은 한류 팬을 견인하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입니다.
더욱이 한국어 열기의 장점은 한국 자체를 좋아하게 만들고 생활 속으로 정착시키는 계기가 된다는 점입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그래서 한국어 교육 없이는 한류의 발전이 없다고 딱 잘라 말합니다. 제 주변에서 한국문화를 너무 좋아하는 일본인 친구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더군요. 처음에는 연예인이 좋아 호감을 갖게 된 것이 사실이지만,지금은 한국 음식이 맛있고 한국 사람들이 인정이 많아 한국이 좋아졌다고 말합니다. 특히 한국어를 공부해 보니 일본말과는 다른 솔직하고 감칠맛 나는 표현에 감탄하게 되고, 한국이라는 나라가 더 이해가 되고 더 좋아지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한국 문화원의 한국어 담당 선생님도 그런 이야기를 하더군요.”한류 붐이 최고였을 당시 열광했던 일본인을 10명 정도라고 한다면 붐이 식은 지금은 7~8명 수준으로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그렇지만 이들 7~8명의 지금 수준은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당히 깊게 한국문화에 심취해 있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한국어 학습 열기에 비해 우리의 지원과 관심은 아쉬운 부분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한국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정부나 기관의 예산과 인원 그리고 인식부족 등으로 적절히 수용하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죠. 제대로 된 교실에서 잘 만들어진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에 따라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는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서점에 나와 있는 각종 한국어 교재>
대표적인 것이 정부가 지원하는 한글 강좌의 부족입니다. 도쿄 한국문화원의 경우,지난해 한국어 입문과정 모집에 모두 2백 여명의 일본인이 신청했지만,추첨으로 정원인 30여명만 뽑았다고 합니다. 문화원이 낡고 비좁은 민단건물-지난 79년에 건축됨-에 세 들어 살다 보니 수용에 한계가 있어 나머지 170명의 일본인을 돌려보낼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사설학원보다 질이 놓고 다양한 한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강좌이어서 인기가 높은 것인데, 예산과 인력이 부족해 이 정도도 소화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다행히 내년에 8층짜리 새 건물이 들어선다고 하니 반갑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또 한국어 교습 법이 덜 체계화되어 있다는 것입니다.특히 사설학원에서는 자격을 갖추지 못한 교사들이 구태의연하게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한국어와는 맞지 않는 영어식 문법을 지나치게 많이 빌려 설명한다던가 하는 식이죠. 그래서 문화원에서는 무엇보다 한국어 교사의 수준 향상이 가장 먼저 필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체계적인 한글교사 양성 프로그램에 맞춰 전문성을 갖춘 교사를 키운다는 계획입니다. 그렇지만 인력과 예산 부족 등으로 폭발적인 교사수요를 맞추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합니다.
<해외 여행 안내 팜플렛...한국은 서울에 편중돼 있다>
그렇지만 이런 정부의 지원부족보다 더 아쉬운 것은 한국을 찾는 일본 관광객들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일본에 대한 극단적인 적대감에 치우쳐,한국에 호감을 갖고 있는 일본인들에게마저 너무 차갑게 대하는 우를 범하고 있지는 않나 하는 것입니다.과거사를 부정하는 일본을 우리가 미워할 수 밖에 없다고는 하지만, 망언을 일삼는 극우 일본 정치인과 다수의 평범한 일본 소시민을 우리가 동일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어쩌면 이들 관광객은 일본 내에서 가장 강력한 우리의 우군이고 대변인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우리가 이들까지 싸잡아 홀대해 한류로 형성된 호감을 실망으로 바꾸는 것이 아닌가 걱정됩니다. 종종 한국에서 맹목적인 적개심 때문에 큰 상처를 입고 돌아온 일본인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참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일본에서 볼 때 최근 관광지로서의 한국은 매력이 떨어진 것이 사실입니다. 중국과 태국 같은 유명 관광지와 비교해 보면 볼거리나 즐길 거리가 많지 않은데다, 일본과 기후나 문화가 비슷한 점이 많아 이국적인 맛이 적습니다. 더욱이 환율까지 높아지면서 값싸게 다녀오기도 어려운 관광지가 됐습니다. 저도 꼭 한국을 찾아야 한다고 권하기는 하지만,다른 관광지보다 어떤 점을 비교우위로 내세워야 할 지 곤란해지는 것이 현실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꾸준히 자주 찾는 일본인들은 “그냥 한국이 너무 좋아서” 온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류 관련 잡지들>
특히 저 개인적으로는 한류의 주류인 일본 아줌마들을 더 대우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10대도 아닌데 나이에 맞지 않게 공항이나 숙소 앞에 장사진을 치고 ”욘사마”를 외치는 모습이 한심해보일지 모르겠지만,우리의 문화를 좋아해주는 이들을 고마워하고 응원해주는 것이 맞지 않나 싶습니다. 더욱이 이들 아줌마들이 일본 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데 얼마나 공헌을 했는가를 따져본다면,상은 못 줄 망정 비웃지는 말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더욱이 이들 아줌마들이 일본 내 가정,특히 2세들에게도 절대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엄마가 한류 팬이면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엄마를 따라 한국에 대해 호감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제가 만난 대학생의 경우도 열혈 한류 팬인 엄마의 영향을 받아 한국을 좋아하게 됐다고 하더군요. 고등학교에 다니는 여동생도 한류 팬이어서, 해마다 모녀 셋이서 한국에 놀러 가는 것이 정기행사이자 큰 즐거움이라고 합니다. 엄마는 가수 성 시경 팬 클럽 회원이고,자신과 동생은 신화와 동방신기 팬이라고 하더군요.
마지막으로 한 30대 일본 한류 팬 아줌마의 이야기로 끝을 맺겠습니다.이 아줌마는 부자도 아니면서 시간과 돈을 아껴서 1년에 수 차례 한국을 찾는 진짜 열혈 팬입니다. 한국은 수십 번도 더 왔다 갔다 하면서,일본 내 유명 관광지인 오키나와나 홋카이도는 아직 한번도 안 갔답니다. 왜 그렇게 한국이 좋으냐고 물었더니,“무엇보다 인정 많은 한국사람이 좋아서”라며 첫 한국방문의 일화를 이야기 해주더군요. 당시 무척 추운 날씨에 손발이 꽁꽁 언 채로 한 갈비 집에 식사하러 들어갔는데, 주인집 할머니가 자신의 모습을 보고 애처롭다며 마치 딸처럼 손을 꼭 감싸면서 호호 불어서 녹여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때 그 따뜻함과 정이 너무 좋아서 그 때부터 ‘한국 왕 팬’이 됐다고 합니다. 그 할머니 너무 멋지지 않습니까?
(다음에는 이어서 '한국어 배우기의 어려움'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출처: http://ublog.sbs.co.kr/youpeck>
첫댓글 역시 한류 때문에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어요.
한국어를 재밌게배우네요!ㅎㅎ
일본인도 우리말을 열심히 배우는데 저도 일본어를 열심히 배워야겠습니다. 2009년내에 일본인과 이야기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