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鷄龍] - 3군 본부가 자리 잡고 있는 계룡시
동쪽은 대전광역시 유성구, 서,남쪽은 논산시, 북쪽은 공주시 반포면과 접한다. 2000년대 들어 논산시에서 행정 구역 분할로 탄생한 첫 독립 도시이다. 대전광역시의 위성도시 역할을 하는 도시로 인구의 40%가 군인과 군부대 관계자들이다
계룡시 문화관광 http://tour.chungnam.net/ctnt/gyer/index.jsp
국립공원 기행(계룡산, 문화유산, 유계룡산기)
http://tv.knps.or.kr/vod/vod_sub_t.aspx?muCode=15&vIdx=632&Page=7
계룡산[鷄龍山]
높이는 845m이다. 주봉인 천황봉을 비롯해 연천봉·삼불봉·관음봉·형제봉 등 20여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졌으며, 전체 능선의 모양이 마치 닭볏을 쓴 용의 형상을 닮았다 하여 계룡산이라고 불린다. 풍수지리상으로도 한국의 4대 명산으로 꼽혀 조선시대에는 이 산 기슭에 새로이 도읍지를 건설하려 했을 정도이다. 특히 《정감록》에는 이곳을 십승지지(十勝之地), 즉 큰 변란을 피할 수 있는 장소라 했으며 이러한 도참사상으로 인해 한때 신흥종교 및 유사종교가 성행했으나 종교정화운동으로 1984년 이후 모두 정리되었다.
계룡세계군문화축제
계룡시는 조선 초 태조 이성계가 신도읍지로 구상하였을 만큼 예로부터 풍수 지리적 대길지로 여겨져 왔습니다. 주변에는 천혜의 자연경관인 계룡산을 비롯해 공주ㆍ부여 등 찬란했던 백제문화의 중심지와도 인접하고 있으며 전국에서 2시간대에 다다르는 지리적 강점도 지니고 있습니다.
1980년대 초반부터 우리나라 국방의 중추기관인 육군본부, 해군본부, 공군본부가 계룡지역으로 이전하면서 군인 가족과 군 관련 시설도 함께 이주 되었습니다. 계룡시민의 절반 이상이 군인가족이면서 디펜스 아시아, 지상군 페스티벌, 모형 항공기대회 등 대표적인 군 관련 행사가 계룡대 지역을 중심으로 펼쳐지면서 새로운 군문화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번 축제를 통해 군 문화엑스포의 개최 당위성과 군 문화에 대한 관심을 한 단계 높임으로서 군 문화를 가치 있는 문화영역으로 재정립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괴목정(공원)
계룡시 용동리에 있는 유서 깊은 공원으로 옛날에는 사람 많은 곳을 피해온 사람들이 이 근처에 자리 잡고 살았다 한다.
그들은 이곳에 않아 신선객 이야기를 하다가 나무를 골라서 심곤 하였는데 되는대로 땅에 꽂은 나무는 모두가 괴목이었다고 하며, 나무가 많아서 괴목정이라 부른다고 전한다.
또한 이태조가 신도안을 도읍지로 정하고 주변 형세를 살필 때 무학대사가 이곳을 지나다가 지팡이를 무심코 꽂아 놓은 것이 나무가 되어 지금까지 살아 큰 괴목이 되었다고도 하는데 그 괴목이 정자 같은 구실을 한다 하여 괴목정이라고 부른다고 전한다.
모원재
조선 성종때 좌의정(左議政)을 역임한 김국광(金國光)(1415∼1480) 선생의 재실(齋室)이다.
김국광은 세종 23년(1441)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고 세조의 즉위를 도와 두터운 신임을 얻게 되었다. 『경국대전』편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벼슬이 병조판서를 거쳐 우의정과 좌의정에 이르렀다.
인조 원년(1623)에 지은 모원재는 앞면 4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무상사 엄사면 향한리 452-13
외국인스님들이 한국불교의 간화선(看話禪 화두(話頭)를 근거로 수행하는 참선법)을 닦는 수행도량이 바로 무상사다. 무상사에서는 외국인 비구스님뿐 아니라 비구니 스님들이 한국불교의 전통대로 일 년에 두 번씩 동안거와 하안거 3개월씩 참선 결제에 들어간다. 또한 승려가 아닌 외국인들도 일주일 단위로 결제에 참여할 수 있다. 무상사는 외국인스님들에게 한국선불교를 전수하고 외국인들에게 한국불교의 선수행을 가르쳐주고 체험할 수 있기 위하여 2000년 3월 숭산스님의 원력으로 개원한 외국인 전용 사찰이며 국제선원이다. 외국인들이 살고 있는 관계로 요사채는 현대식 시설을 갖추었다. 계룡산 자락에 자리한 무상사 주변은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도량이다. 현재까지 30여개국 600여명이 넘는 외국인들이 방문하여 참선 수행을 하였다.
무상사에서는 한국어을 사용할 수 없다. 다양한 국가의 외국인들이 입방하는 관계로 영어 이외에 러시아어, 폴란드어, 중국어 등 다양한 언어가 통용된다.
숫용추
계룡시 남선면 부남리에 계룡산 정기를 받은 바위로 된 못(웅덩이)으로 골짜기를 흐르던 옥 같은 맑은 물이 스무 자 정도 절벽의 폭포 밑에 깊이를 알 수 없는 검푸른 물이 괸 곳으로, 위에서 떨어져 시원스레 부서지는 물소리와 바위벽이 숲과 어울려 신비스런 분위기를 자아내며 숫용이 도를 닦아 하늘로 승천하였다는 전설과 또한 동쪽 용동리의 암용추에 암용이 살아 땅속으로 서로 왕래를 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현재는 군사보호구역으로 민간인의 출입이 제한되고 있다. 숫용추 10m 길이의 폭포가 일품인 숫용추는 위에서 내려다보면 웅덩이가 마치 남자의 성기처럼 보인다. 이런 연유로 예전에 이곳에는 여자들이 북새통을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암용추
숫용추와 더불어 남선면 용동리에 있는 바위로 된 못으로 계곡의 물의 흐르다가 고인 10여 평 남짓의 작은 웅덩이이며 주변 숲과 바위벽이 절경이다. 숫용추와 마찬가지로 암용이 도를 닦아 하늘로 승천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모두 현재는 군사보호구역으로 민간인의 출입이 제한되고 있다
암용추 직경 12m, 깊이 2.5m의 맑은 연못으로 웅덩이가 패여 물이 고여 있는 모양이 여성의 생식기를 연상케 한다고 하여 암용추라고 불린다. 이곳에는 반대로 남자들이 북새통을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신원재
조선 중기에 건립된 사계 김장생의 9번째 아들인 김비(1913~1699)의 재실이다. 재실은 굴도리계통 정면 4간 측면 1.5칸의 홀처마 팔작지붕이다. 우측 2칸은 온돌방 좌측 2칸은 대청마루 구조이다. 전면에 신원재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신원재(愼遠齋)는 부친이 돌아가시자 그의 형제인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과 그 형제들이 1632년 함께 건물을 짓고 이곳에서 그의 조부 및 부친인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선생의 저서 등을 정리 집필하였던 곳이고, 신독재 사후 그의 막내 동생 김비가 황강행장(黃岡行狀) 및 실기(實記), 사계, 신독재 전서 등을 정리 집필하였던 유서 깊은 곳으로써 그 후 여러 차례 보수되었으나 한옥재실로서 원래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있다. 조선 중기의 전통 한식 목조 와가로 되어있다.
염선재
금암동 45번지 염선재는 김종서 장군의 7대 손이자 사계선생 계배(부인) 순천 김씨 정부인의 제각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고 사계선생이 1631년 8월 3일 타계후 부군의 삼년상을 마치고 1634년 계유년 12월 9일(향년 62세)에 부군의 뒤를 따르기 위해 식음을 전폐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어 효와 열의 근본이 되었다. 광무 십년(1906년) 4월 18일 정부인 순천김씨라는 칙명의 교지를 받았다.
고종 19년(1882)에 지은 이 건물은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1987년에는 부패되어 손상된 기둥 밑부분을 절단하고 화강석으로 보강하였다. 염선재는 원래 작은 제각이었으나 1913년에 현재의 건물로 증축되어 조선말 전통 가옥 형태를 잘 보존하여 1990년 9월 27일 지방문화재 자료 제 316호로 지정되었다.
은농재[隱農齋] 두마면 두계리 96
1990년 9월 27일 충청남도유형문화재 제134호로 지정되었다. 구봉산(九鳳山)이 바라다 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에 자리잡은 이 고가는 예학(禮學)의 대가 김장생(金長生)이 말년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내려와 살면서 학문을 연구하던 곳으로, 조선시대인 1602년(선조 35)에 건립하였다.
은농재는 2,800여 평의 넓은 대지에 자리 잡은 고가의 사랑채인데 안채와 대문채, 별당채, 그리고 안채 뒤의 가묘(家廟)와 함께 사괴석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안채는 중문과 안사랑채로 구분되고, 왼쪽에 있는 내문(來門) 밖에 있는 건물이 연못이 있는 별당채이다. 별당채 앞에는 괴목들이 우거진 연못이 있다. 원래는 초가로 지붕을 이은 집이었으나 수리할 때 기와를 얹은 것 외에는 비교적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계룡시는 사계 고택 은농재 영상관과 학습관, 예절관, 체험관 등을 갖춘 ‘사계 전시관’을 설치했다
김장생[金長生 1548~1631] 조선 중기의 정치가 ·예학(禮學) 사상가. 임진왜란 이후 주로 지방관을 역임하였으며, 인목대비 폐모논의가 일어나고 북인이 득세하자 낙향하여 예학연구와 후진양성에 몰두하였다. 그의 제자는 송시열 외에 서인과 노론계의 대표적 인물들이 많다.
지상군 페스티벌
군 문화를 가까이에서 체험할 수 있는 ‘지상군 페스티벌’이 계룡대에서 열렸습니다. 제 62주년 국군의날 기념 ‘지상군 페스티벌’은 오는 5일까지 계속됩니다.
이번 지상군페스티벌에는 공연프로그램으로 군악·의장대 공연, UN참전 군악대 초청 공연, 특공무술시범 등의 시범공연과 위문열차공연 등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또 전시분야에는 80여종의 무기·장비 전시 및 탑승행사, 정예육군관과 해·공군·해병대 등의 3군 홍보관, 6.25전쟁 안보관, 6.25전쟁 사진전 등이 열린다.
아울러 단정도하, 암벽등반 등 20여종의 병영체험과 병영식사 체험, 1박2일 야영체험, GOP 경계근무체험 등 다양한 체험의 장이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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