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시간표) 7/22 10:00 화곡동 출발 23 04:00 아화고개 05:00 서오리지방도 3.0km 07:15 사룡산 갈림길 4.9km 07:45 (사룡산 왕복30분) (1.5km) 08;30 숲재 1.3km 10:30 청천산(감시초소) 3.4km 11:00 어두목장(독고불재) 1.4km 13:00 당고개 3.0km 15:00 (식사 휴식 후 출발) 16:22 단석산 갈림길 17:07 O.K.그린 4.1km 18:30 메아리 농장 4.9km 14시간 30분 29.0km
(서오리909번도로) 올해 1월초에 시작한 낙동길이, 1대간 9정맥의 마지막 도착점으로 목표한 몰운대를 향해 걷다보니 두세달 밖에 남질 않았다. 8월 호남길 스케쥴의 중복과 한여름의 무더위도 피할 겸해서 3구간 연속 산행을 계획하고, 20년 애마의 마지막 페달을 밟는다. 수동 클러치식 이지만 젊은 시절 아끼던 콩코드라 섭섭하기도 하고..자주 사용하질 않으니 좋은 사람 만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가끔 마지막 장마의 후두둑거리는 빗속을 달려 영천 아화고개를 넘어서니, 한밤중의 시모골 애기못에 보름을 향한 달빛이 흐리다. 강원 태백을 출발하여, 일월산 경북 지붕을 거쳐 긴 거리를 걸어와 이제 경주를 지나 경남으로 향하니 사람 걸음이 무섭고나.. 갈등과 대립의 질곡된 역사를 안고 뼈아픈 조국의 뒷골목을 숨어다녀야 했던 근대사를 씹으며, 통한의 산골을 더듬기도 했다. 부디 함께 넘어 갈 저 영남 알프스의 신불 평원에서 온갖 시름 털어내고 편한 걸음으로 내 고향 금정산을 넘고 남쪽 바다에 닿기를.. 한밤중의 아화리 마을길을 개짖는 소리에 ?기며 신작로를 찾아 올라, 서오리 고갯마루에서 새벽참을 즐길 밥상을 펼친다.
(경부고속철도) 3일간의 긴 행군을 무사히 마치길 빌면서 그 첫걸음을 한 잔 술로 자축하고 새벽이 밝아오는 사룡산 기슭을 향해 더듬는다. 지나쳐온 북안면 도천리엔 '道溪書院'이 있어, 蘆溪 朴仁老를 모시고 있다는데..왼쪽 서면 도계리는 평해 황씨 마을이란다. "반중 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 아니라도 품은즉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으니 글로 설워 하노라" ..보고싶구나.. 작은 봉우리들을 두어개 넘어 서니 벌써 날이 밝았다. 송전탑들을 거쳐 형제저수지로 이어지는 서낭당 고갯길을 넘는다. 한때 미신이니, 무당이니 하며 말살되던 민속의 儀式이 다시 살아 나고, 불합리한 지배질서에 맞서 끈질기게 버틸 의식이다. "포곡은 운다마는 논 있어야 농사하제/ 대승아 나지마라 누에처야 뽕따것다/ 배가저리 고프거든 이것먹고/ 쑥국새 목이 저리 갈하거든 술을 줄까/ 제호조 먹을 것이 없어거니 거견을 기르것다" 어디선가 당굿의 神맞이 굿소리가 들려 옴직한 묘역들의 풀섶을 헤치고 올라 아침을 맞는 소나무 아래서 잠시 발품을 쉬어 간다. (사룡산 정상) 묘역들을 벗어나 사룡산을 향한 본격적인 가파름이 시작되면서 300-400m의 고도를 한꺼번에 높혀가니 암릉 길에서 자주 쉰다. 멀리 동쪽 오봉산 너머로 경주 남산 고위봉 낮은 능선이 또렷하고, 피안의 경계가 없는 불국토의 땅, 경주가 한눈에 들어 온다. 수년전 올랐던 남산의 기억들은 석굴암등의 화려한 욕망과는 거리가 멀고,일반 백성들의 거친 손으로 다듬은 불상들이었다. 그들이 물 한 잔 놓고 두손 모아 빌던 천년의 극락정토는 아직도 멀고도 먼데..한가운데를 뚫은 고속철의 오늘이 개벽 아닐런지.. 숨이 차는 급경사 바위 능선들을 전망 바위에서 두세 차례 쉬어가며 1시간 여의 긴 오름을 거쳐 사룡산 갈림봉에 올라 선다. 비슬산 거쳐 밀양강을 감싸고 돌아 밀양 오우진에서 삼랑진을 마주할 비슬기맥의 분기점이다. 낙동강 건너 고향 김해 선산이다. 어지럽도록 산정표지는 四龍처럼 그득하건만, 사람의 발자취는 작은 리본만이 달랑거리는 여름 날의 한가로운 아침이다.
(숲재-사룡산 와우리 시루매기 마을) 낙동분기점으로 돌아와 숲재를 찾아 내리는 길이 오른쪽 시루매기(생식마을) 마을을 함께 하며 알지 못 할 신비를 느낀다. 그들의 시작이 그러했던 것 처럼 산중 오지의 화전터를 잃고, 이 땅을 일구기 시작할 땐 개인적 절망과 소외도 경험했을 터.. 그리하여 저들은 작으나마 함께 하는 공동체의 주제를 찾고 그들만의 믿음을 실현하며 굳게 현대의 삶을 거부하는 걸게다. 먹거리야 그렇게 해결한다지만, 살아 오면서 나누고 익숙해진, 버리지 못할 현대 문화의 스물거림은 밤마다 어찌할건가.. 마을 어귀를 어지럽게 차지한 애매한 종교 문귀들이 지나가는 객에겐 낯설기 보다도 음산하고 혼란스럽기 까지 하다. 분명 종교 집단은 아니라고 들었는데..각자의 자유로움이 빚어 낸 또 다른 고집과 각자의 종교에 대한 맹목적 그리움인가.. 그들의 바램과는 달리 삶의 진정성이 훼손되면, 먹거리에 대한 단순한 주제만으로는 생활 양식의 공동체를 유지하긴 힘들지 않을까.. 마을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긴 걸음 후에야 아화리로 넘어가는 숲재(숙재,淑嶺) 포장도로에 닿는다. 차량은 드물고 한적하다.
(오봉산 벼랑바위) 숲재 지방도를 건너 오봉산성 오름길을 찾아 임도를 따라 돌아 오르니, 도솔암(?)이란 표석과 철문으로 막힌 길에 닿는다. 농장이었다는데..돈이 많은 佛者의 별장으로 꾸며졌는가, 길을 막으면 어쩌라구..왼쪽 숲길과 임도를 번갈으며 등로를 찾는다. 富山城 西門 성터에 올라 서니 오봉산(닭벼슬산) 주사암과 벼랑바위가 지척이다. 자연성을 이루는 건천 땅에 석축마저 쌓았구나.. 선덕여왕도, 竹旨郞을 사모하는 得烏의 모습도 어느 새 멀어지고, 조선시대 '同伊'(숙빈 최씨)만 떠오르니 요즘 나의 日常이다. 산 너머 동쪽엔 '섭들'(x들)이 펼쳐지고 '玉門谷'(女根谷) 陰水가 넘쳐 흐를건가..남문을 찾아 내리는 초원이 아침햇살에 따갑다. "지나간 봄 그리워 함에 모든것이 서럽구나. 다부쑥이 우거진 마을에 잘 밤이 있으리까.."산중 밭 일구는 농부의 아침이 분주하다. 허느적거리며 고상한 아침을 즐기는 발걸음이 뙤약볕을 가리는 농부에게 미안하다. 不死處 朱砂庵이 점점 멀어져 간다.
(부산성내 초지) 허물어진 남문 성터를 벗어나 잠시 우라리 하산길을 넘어서니 잡목과 억새 가득한 된비알이 751봉까지 비지 땀을 쏟아 낸다. 헬기장을 지나고 초소 삼거리에 오르니 영남알프스가 한눈에 펼쳐진다. 왠 '청천봉?'..모 고등학교 등산회의 지나친 작명이다. 시원한 바람에 거풍하고, 천수암 능선길을 버리고 왼쪽 숲속 마루금을 찾아 긴 내리막을 이어간다. 암봉과 편한 봉우리를 넘는다. 漁頭목장이 보이는 등로에서 파헤쳐지는 채석장에 가슴이 시리다..자본주의의 자전거 페달 처럼 끊임없는 개발만이 살길이려나.. "밭은 헐려서 신작로 되고 / 집은 헐려서 정거장 되네/ 말깨나 하는 놈 재판소 가고/ 일깨나 하는 놈 공동산 간다/ 아깨나 나을 년 갈보질 하고/ 목도깨나 매는 놈 부역을 간다/ 신작로 가상사리 아까시 나무는/ 자동차 바림에 춤을 춘다/ 먼동이 트네 먼동이 트네/ 미친놈 꿈에서 깨어났네/" 부디 깨어나라 미친놈 꿈에서 깨어나라..본디 이 땅의 주인인 백성들의 착한 마음으로 돌아가 생식만은 아니라도 자연을 아껴야...
(어두목장-독고불재) 魚頭목장 울타리를 최근에 새로 설치한듯..전기마저 흐른다. 마루금 등로는 이미 훼손되었으니 얌전히 철책을 따라 내린다. 독고불재라 불리우는 농로 길 앞에서 잠시 머뭇거린 후 사육장이 있는 남쪽 오름길을 찾아 내고 희미한 된오름 길을 맞는다. 철조망을 따라 오른 후 651.2봉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목장 경계선 철조망을 계속 따른 후 두세 봉우리를 더 넘어 선다. 송선리 저수지가 보이는 능선에서 내림길을 밟으며 오리재를 지나는가 보다. 작은 봉우리를 편히 넘어서고 묘역들이 많은 수레길을 따라 내리며 어두못 탑거리 동네로 이어지는 옛 당고개 길(포장 임도)에 내려서서 잠시 착각으로 오른쪽 길을 걷는다. 외딴 집 할머니의 도움으로 쌍묘 앞에서 396.9봉으로 오르는 등로를 힘겹게 찾아 내고 뙤약 볕에 지친 발품을 잠시 쉰다. 당고개 신작로가 생기기 전에는 산내면에서 우중골로 넘어가는 낭만적인 길이었을텐데..둘러 보아도 당집의 흔적은 사라지고..
(당고개) 당고개 신작로 차량들의 소음이 들리는 396.9봉을 넘어서는 발길이 더위에 몹시 지친다. 어디선가 사라졌던 굿소리가 울린다. 양반들의 폼 나는 예법에 맞지 않으니 서민들의 굿놀음을 미신이라 몰아치며 당집을 불사르게 하고 당나무를 베었을까.. 일제 시대에는 민족 문화의 말살을 위해 우리들의 정통 민속을 巫敎적인 샤머니즘 정도로 업신 여김으로 몰아친 결과이다. 그러나 우리의 고향 땅에는 꿋꿋이 우리 삶에 어울리는 우리의 믿음을 민속에 실어 우리의 大同굿으로 발전해 왔다. 둥둥 울리는 북소리 처럼 발 아래에서 들려 오는 차량 소음이 간간이 넘어 다니는 당고개(雨中谷峙) 절개지에 올라 선다. 한낮의 뜨거움과 허기를 달래며, 잔치국수 한 사발에 소맥 한 잔 들이키니 세상 낙원이다. 긴 낮잠을 즐기는 여유도 가져 본다.
(751봉에서 바라본 단석산) 당고개에서의 긴 휴식을 접고 단석산 오름 길을 찾아 들머리로 나서는 발길이 천근이다. 내일의 여정을 위해 조금 더 걸어야 한다. 斷石山...中嶽 月生山이라 했던가..경주 땅 한 가운데에 우뚝 솟아 경주 5악중 가장 높고, 김유신의 전설들로 가득한 명산이다. 왼쪽 단석산 높은 봉우리를 훔쳐 보며 두세 봉우리를 꽤 가파른 걸음으로 1시간여를 힘겹게 지쳐 오르니 단석산 갈림길에 이른다. 신라 화랑의 전설들에 대한 무수한 의문과 조작설이 제시되고 있으나, 단순히 해방 이후 武公의 역사를 위한 창작은 아닐게다. 삼국사기등의 역사서에도 화랑들의 뛰어난 무공과 문학적인 기록들이 실재하고 있으니 앞으로 그 진실에 대한 연구는 필요하다. 뒷날 부산을 오가며 기회를 틈타 어느 진달래 피는 봄나절에, 물푸레와 함께 飛只里 鶴山을 넘어 단석산에 올라 남산을 향하리라.. 남은 길이 멀고 메아리 농장으로 향하는 하늘이 점점 먹구름으로 뒤덮히기 시작하니 아쉬운 발길을 돌려 남쪽 마루금을 찾는다. 비슷한 고도의 봉우리들을 대여섯번 오르내리며 국립공원지역을 벗어나는 억새 밭길에서 방주교회?라 불리는 건물을 마주한다.
(OK목장) 옛날 화랑들의 수련장이었던 수의못 부근 마루금은 목장초지로 조성되어, 여러 손을 거쳐 지금은 학교재단의 청소년 수련원이란다. 아무튼 역사적 의미가 깊은 곳이니 잘 보존되고 활용되기를..眞木亭(참나무징이) 聖地뒤로 도매산 조래봉(乃日峰)에 뭉게구름이 짙다. 넓은 초지에서 한껏 드러눕고 싶은 마음을 달래며 잠두산이 마주 보이는 정맥길을 찾아 서너개의 봉우리를 다시 넘어선 후에야, 메아리농장의 축사들이 널부러진 옥수수밭에 다다라 오늘 첫날의 산행길을 접으려한다. 조금씩 후두둑거리기 시작하는 비를 피하며 참나무정 마을로 이어지는 포도길을 찾아내리고, 목장 정문 아래에서 주인도 없는 농원 앞마루에 배낭을 풀고 하룻밤을 준비한다. 참아주었던 검은 하늘이 어두워지며 긴 소낙비를 쏟아 붓는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빗소리 속에서 평상에 등을 깔고 생각을 접는다.. 아무런 분별도 없이, 아무런 욕망도 없이, 허허롭게 걸어온 이 길과 걸어갈 앞길에서 나는 세상의 어느 부분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세상 바닥의 관념의 그물을 벗어나..오늘 이렇게 요란한 밤비 속에서 나는 無常心으로 잠이든다..나의 벗 이슬이를 부둥켜 안은 채..
(메아리농장) 7/29 道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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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뮌네하우스 원문보기 글쓴이: 道然 배슈맑
첫댓글 올봄 지나온곳을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특히 생식마을의 고요함이 생각납니다. 산벚꽃이 활짝필무렵이었는데 어두목장부근에 채석장이었는지 본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폐창고 옆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길도, 당고개 직전에 중간크기의 멧돼지떼를 만난 기억도 나네요 즐산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