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풍 선생 - 박영환
장 선생님은 P 여고 영어 선생님이다. 쉰을 넘긴 나이지만 작달막한 키에 다부진 모습이라 나이보다 훨씬 젊게 보인다. 선생님은 특유의 행동과 말씀으로 항상 좌중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한다. 순발력이 있는 유머 감각은 가히 천부적이다. 그분의 특징은 너무 엉뚱하고 천연덕스러움에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겐 배꼽을 잡게 하면서도 자신의 얼굴엔 전혀 변화가 없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다시는 속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또 깜빡 속아버리고 만다. 동료들 간에도 이러할진대, 학생들이야 거의 백발백중 속는게 너무나 당연했다.
P 여고에 부임하여, 첫 시간 수업. 보통 첫 시간은 성함도 알려 주고 수업 전개 방법 등을 밝히는 등 그럭저럭 보내는 것이 관례이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 모든 것을 생략하고 뿔테 안경을 바짝 조인 근엄한 모습으로, 바로 LESSON 1 에 들어갔다. 교실 뒷구석 어딘 가에서 조용히 신음이 곁들인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영어인데, 저렇게 재미 없는 선생님과 일년 동안 지낼 것을 생각하니 숨이 막힌 것이다.
선생님은 그런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사실은 잘 알고 있었지만 - 일사천리로 수업을 진행했다. 그런데 문제는 수업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일어났다. 교실의 고요한 정적을 깨고 어디서 난데없이 방귀 소리가 '뽕'하고 난 것이다. 긴장되어 있던 여학생들은 일시에 교실이 무너지듯 폭소를 터뜨렸다. 말똥이 굴러가는 것을 보아도 웃음을 참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그런데 교실에서, 그것도 이렇게 근엄한 시간에 방귀 소리가 나고 보니 참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도저히 웃음을 참지 못해 눈물까지 가득 담고 배꼽을 잡는 학생들도 있었다. 선생님은 매우 언짢아 하며 수업을 중단했다. 선생님의 심상찮은 기상도를 눈치 챈 학생들은 겨우 웃음을 참고 조용해졌다.
"공부시간에 숙녀답지 못하게 방귀를 뀐 놈이 누구야, 아무리 생리적인 현상이라 하지만 의도적으로 수업 분위기를 흐리게 하려는 고의성이 있는 것 같아요. 참아야 돼요, 참는 것도 미덕이예요"
학생들은 민망해 하며 얼굴을 떨어뜨렸다.
"어휴, 냄새, 창문 전부 열어"
창문을 한두 개도 아니고 전부 열어라 했다. 삼월이라 하지만 아직도 매운 바람이다. 선생님은 손으로 연신 악취를 몰아내는 시늉을 했다. 거기에다 범인까지 색출하려 했다. 미간을 약간 찌푸린 민완 형사의 모습. 마침내 한 학생에게 눈길이 멈추었다. 찬바람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맨 앞줄의 학생이었다.
"너지?"
학생은 기겁을 했다.
"아네요, 저는 분명히 아닙니다."
"그럼 접니다. 하고 나설 사람이 이 세상에 누가 있겠니?, 맞아 틀림 없어, 나는 못 속여, 이름이 뭐지, 명찰을 보자꾸나, 그래 경옥이 너야"
"선생님-"
경옥이는 너무 억울하고 기가 막혀 금방 숨이 넘어갈 듯 얼굴이 파래졌다. 눈물을 펑펑 쏟았다.
"선생님, 너무 심하십니다."
숨까지 씩씩 몰아 쉬었다.
"야! 이놈 봐, 이제 선생님께 악다구니까지 부려, 방귀를 뀐 놈이 성을 낸다는 옛말이 조금도 안 틀려!"
"…."
"물론 여학생이니까 방귀 뀐 것을 감추려는 것도 이해는 가지만 어떠한 경우라도 사람은 정직해야 돼요. 거짓말을 하다보면 버릇이 돼요"
경옥이는 고스란히 뒤집어 쓰고 책상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었다.
드디어 종소리가 났다. 장 선생님은 학생들의 인사를 겨우 받고 교실을 나갔다. 그런데 몇 걸음을 옮기다가 다시 교실로 들어 왔다.
- 아직도 화가 안 풀리셨나?
아이들은 눈을 뎅그렇게 뜨고 선생님을 주시했다. 그런데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말았다.
"경옥이"
선생님은 경옥이의 어깨 위에 손을 얹고, 이례적으로 씨익 웃기까지 했다. 그리고 다음 말씀 -, 이건 기절초풍할 중대 발표였다.
"경옥이 너무 마음 고생하지 말아요, 미안해요, 사실 방귀의 주인공은 나예요, 선생님은 매우 나빠요"
"세상에 …. 선생님…."
아이들의 탄성은 합창이 되었다.
처음부터 선생님께 약간 의심이 가기는 했지만, 설마, 그렇게 근엄하신 선생님이 수업 중에 방귀를 뀌실까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무튼 장 선생님의 천연덕스러움 때문에 아이들은 감쪽같이 속은 것이다. 경옥이도 눈물을 두 눈에 매단 채,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엉뚱하신, 장 선생님 -. 그 이후 선생님의 별명은 '장풍'이 되었다. 장씨 성에 '허풍'의 뉘앙스가 들어간 것이다. 아무튼 선생님의 '풍'은 대단했다. 선생님은 수업이 지루할 때가 되면 사건을 만들곤 했다.
언젠가, 장 선생님은 자신을 독신주의자라고 소개했다. 쉰을 넘었지만 당당한 총각이란 것이다. 홀로 사는 장점도 있지만 나름대로 비애도 많다고 했다. 총각 때 독신주의 이론에 도취되어 세월을 넘긴 것이 후회가 된다며, 학생들은 독신녀가 되지 말라고 강조했다. 감성적인 여고생들은 연민의 정을 가지고 이내 숙연해졌다. 아이들은 일변 의심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진지한 모습에 또 속고 말았다.
"어쩐지 외로워 보이시더라"
"안됐다, 얘"
쑥덕쑥덕. 어떤 아이들은 선생님이 불쌍하다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아무튼 '장풍' 선생이 총각이란 것은 학생들 사이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런데 '장풍' 선생은 옆 반에서는 자신의 '며느리 감'에 대해서 열변을 토했다. 아들이 세 명이나 있는데, 이왕이면 영어를 잘하는 여학생 중에서 며느리 감을 구할 것이라고 했다.
"미남입니까?"
"그럼, 아들 세 명 모두가 탈렌트들도 부러워할 미남이라고 우리 동네에서는 이미 소문이 쫙 나 있어"
아무튼, '장풍' 선생의 아들이 세 명이나 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었다. 드디어 휴식 시간, 1반과 2반은 서로 엇바뀐 주장을 했다.
"독신주의래"
"무슨 소리, 며느리 감을 우리 중에서 고른다고 열변을 토하셨는데 …."
"또 속았구나"
다음 시간,
"선생님, 독신주의라면서 어떻게 며느리 감을 고르시나요"
"어떤 놈이 모함을 하대, 2반 놈들 인간성이 매우 나빠요, 유언비어나 날조를 하고 …. 내가 뭐랬어, 인간성이 나쁜 놈들이니 같이 놀지 말랬잖아"
"안 속아요"
아예 코러스가 되지만 그들은 다음 시간이면 또 속아야 한다. 그들은 또 속는 재미가 있기에 영어시간이 구수하고, 장 선생님이 기다려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