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 도대체 제가 그사람들에게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
작년의 마산동부경찰서 형사분들의 수사의 노고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SBS방송국 관계자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실종아동찾기협회 가족분들께도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제가 다시 글을 쓰게 된 이유는요.바로 작년에 수사과정에서 의문점을 다시 제시하기 위해서
다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첫째-처음 저희에게 진술했던 내용이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니 불일치합니다.
자기들은 그냥 갖난아기가 대문앞에서 울고있길래 데리고 들어왔다고....자기들은 극구 대문앞에서 줃었다고합니다.
둘째-수입코너 딸의 진술입니다.자긴 고등학생신분이었고 그때 당시에 자기가 들었던 기억으론 자기집 대문앞에서
줃었다.그리고 배넷저고리에 생년월일이 있었다고 엄마로부터 들었다..
셋째-방송국기자들과 먼저 수입코너아줌마 딸을 찾았습니다.그후에 그아줌마딸의 진술을 듣고 다시
마산양부모집을 찾았을땐 대문앞에서 줃어서 건네줬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거냐고 했을때
넷째-그땐 말을 바꾸었습니다.처음엔 대문앞에서 줃었다고 진술을 하다가 다시 그아줌마에게 건네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전혀 모른다...그리고 처음에 나한테 했던말은 기억도 안나고 3대독자란말이나 출생의 대한 얘기들은
동네 사람들로부터 들어서 한 얘기 일꺼라고 합니다.
다섯째-그렇게 되면 저의 출생년월일도 아마도 들은대로 출생신고를 한셈이 되는겁니다.
베넷저고리에 출생년월일이 있었다는 말도 수입코너 아줌마에서 먼저 출발한게 되는것이고
중간에 충분이 조작이 가능합니다.그렇다고 수입코너 아줌마가 잘못이 있다는건 절대 아닙니다.
저는 단지 저희 친부모님을 찾기위해서 단서를 찾아야할수밖에 없기 때문에 의문을 제기하는겁니다.
3대독자얘기도 할아버지와 부모님이 찾으러 다녔었다고 저와 와이프앞에서 했던 얘기도 베넷저고리에
출생년월일이 적혀있었다는 그 내용도 증거가 없는이상 그진술이 입증될만한 증거가 없습니다.
그 생년월일이 적혀있던 종이가 어딨냐고 물었을때 그때 당시에 출생신고를 하고난후에 바로 없어졌다고 합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종이가 발이 달려서 도망을 간답니까?
충분히 만들어낼수있는 얘기란겁니다.아마 저의 출생년월일은 1980년12월08일생이 아닐수도 있습니다.
출생신고를 위해서 벌금을 물었다고 마산동부경찰서에 진술을 했었는데 그얘기도 신빙성이 떨어집니다.
저희도 아이가 미숙아로 너무 작게 태어났고 건강이 안좋아서 출생신고를 좀 늦게 하려고 하다가 동사무소에서
늦게하면 그만큼 벌금을 물어야한다는말에 아기의 출생신고를 한달뒤쯤에 바로 했었습니다.
바로 이말은 저의 생년월일은 한마디로 핑계고 태어난지 한두달이 지났으니까 당연히 출생신고할때 벌금을 물겁니다.
왜 그 거짓말을 한건지 이해가 안갑니다.저도 아기를 키우고있고 저도 아기의 출생신고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알고있는데
그런 뻔한 거짓말을 하면 속을줄 알았나봅니다.3대독자도 부모님이 찾으러 다녔다는말도 생년월일도 저누 시장통에서
주워서 들은내용들이라고 했으니까 아마도 제 생년월일은 1980년12월08일생이 아닐겁니다.
생년월일도 분명히 시장통사람들 말대로 만들어진거밖에 되질않습니다.
그게아니라면 대문앞에 아닌 건네받을 당시에 무슨 얘기가 오고갔을겁니다.나중에 찾을껄 예상해서 대문앞에서
서로 주웠다고 입을 맞췄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왜 쓸대없는 대문앞 얘길 해가지고...처음엔 그랬거니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해가 안갔습니다.
그냥 포기할까도 생각을 해보았습니다.티비를 보면서 다른 실종가족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다른 실종가족들은 저같이 이런 의문을 품거나 그러질 않았습니다.하지만 전 의문을 안품으려고해도
아무리 좋은생각을 하려고 하여도 앞뒤가 안맞는 진술내용들이 마음에 들지않습니다.
속 시원하게 이사람들이 말을 해준다면 참 좋겠는데 무슨 그런 대단한일이라고 꼭꼭 숨기는지 모르겠네요
그 대문앞에서 줃었다고 얘기만 쌍방간에 안했어도 그냥 처음부터 건네받았다고 얘길 했었으면 이렇게
의문을 안품었을겁니다.처음엔 둘다 대문앞에서 줃었다고 했다가 다시 양부모는 한쪽에서 건네줬다고 하니까
다시 건네받았다고 진술을 번복하는점도 웃긴거구요.이얘길 천안에 제가 아는 지인에게 해줬더니
웃더군요.그사람들이 뭔가 거짓말하려다가 들킨거같다고요.제가 봐도 그런거같습니다.
여러분들도 이글을 보심 의문이 가지 않을수가 없을겁니다.저도 처음에 너무 정신이 없어서 빨리 수사를 하고
방송을 내보내면 바로 찾을수 있을거같아서 최대한 아는 한도내에서 적극적으로 진술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찾을길도 없고 막막하였습니다.그렇게 시간을 허비하고말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서야 알게되었습니다.양부모의 말이 앞뒤가 안맞는게 증명을 할수있다는것을...
분명히 처음엔 대문앞이라고 했습니다.방송에서도 그렇게 나왔구요 그런데 수입코너 아줌마딸이 최초로
진술한내용에선 자기집 대문앞이었고 나중에 양부모집으로 건네줬다고 했습니다.
그후에 찾아가서 대문앞이 맞냐고 물었을때 대문앞이 맞다고 끝까지 우겼습니다.양부모들은
그러다가 수입코너집 딸을 만났다고 그러니까 바로 말을 바꾸면서 건네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더 웃긴건 수입코너 아줌마 딸을 보니 얼굴이 낯이 익었습니다.옛날에 왕래를 많이했었던 기억이 났습니다.수입코너딸도 자기어머니랑 양부모 모친이랑 친했다고 합니다.그런데 양부모 모친은 전혀 그아줌마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고 다시 말을 바꾸어 수입코너 아줌마가 대문앞에 버렸다고 소문으로 들었다고
그얘길 했습니다.왜 계속 말을 바꿔가면서 혼선을 주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양부모의 태도를 보면 전 저를 유괴했다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계속 말을 할때마다 말이 계속 바껴가고있고 자기가 한말인데 계속 말이 바꿔가면서
말을 만들어내다보니 자기가 거짓말을 하는것도 못느끼나봅니다.
제가보기엔 진실성이없어보입니다,제가 아는 지인에게도 이얘길하고 저희 와이프에게도 이걸
설명을 했더니 그렇게 당해보고도 모르겠냐면서 그사람들이 가르쳐줄사람이냐고 그런말까지
합니다.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이얘길 하면 아마 양부모 그사람은 무덤까지 들고 갈사람들 같다고
절대 죽을때까지 얘길 안할꺼같은 사람들이라 했습니다.제가 양부모한테 무슨죄를 지었습니까?
그리고 우리 친부모가 무슨 큰죄를 지었습니까?교묘하게 말을 바꿔가면서 하다보니 이젠 이사람들에게
지칩니다.처음엔 방송에 내보내보라고 그러더니 방송에 진짜 내보내니까 자기들이 불리해지고 그러니까
말을 계속 바꾸는식으로 혼선을 주려는듯합니다.설마 얘가 방송에까지 정말로 안보내겠지 하고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왜냐하면 전 키워준 부모에 대해서 좋은기억이 없으니까 말입니다.
제가 이말을 하면 키워준 은혜도 모르고 배은망득하다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몇달 같이 저의 처가
마산의 양부모집을 경험을 해본이상 저의처가 정신병자라고 할정도니 대충 아시겠죠?
어떻게 그집에서 참고살았냐면서 자기같음 집에서 나와서 살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일곱살이전의 기억은 없었는데 그때 당시에 양부모한테 실성할정도로 맞은 기억이
그 이전 기억을 가로막고 있었는듯합니다.제가 장난감 같은걸로 심하게 맞은줄 알았었는데
그게 아니었고 절 놀리는 애가 자전거를 타고 도망을 가자 제가 따라가서 자전거를 뒤에서 잡고
민적이 있습니다.그때 그 아이는 균형을 못잡고 자전거를 타고가다가 머리에 크게 깨져서 병원에
실려가서 심한 수술을 받아야했습니다.저딴엔 집단 따돌림과 놀림이었기 때문에 도망가던 아이를
밀수밖에 없었습니다.그아이와 그부모가 찾아와서 밤새도록 양부모가 달래줬던 기억이 돌아왔습니다.
그뒷날에 저는 방에 갇혀서 정신없이 얻어터졌었습니다.그때 당시에 양부모의 모친의 엄마...
즉 외할머니가 계셨는데...그때 당시에 전 외할매 외할매라고 불렀었습니다.
방에서 못나오고 얻어터지다가 방문이 살짝 열림틈을 타서 외할매 살려달라고 하면서
외할머니를 붙잡고 위기를 모면하려 했었지만 양부가 다시 손목을 붙잡고 방에 끌고 들어갔습니다.
일곱살치곤 그렇게 때리는 부모들은 없을겁니다.소리를 지르니 부엌에 행주로 입을 묶어서 소릴 못지르게
막아놓고 배에 양부모의 발길질과 주먹이 날아들었습니다.요즘세상에 그런식으로 자식에게 학대를 하면
아마 아동폭력으로 잡혀갈것입니다.그때 당시에 온몸이 피멍이 들어서 피멍이 터져서 피가 줄줄 흐르는데도
외할머니는 방문앞에서 지켜보고만 있어야했습니다.그렇게 저는 그때 기억이후로 그전 기억들이 닫혀있었습니다.그런데 갑자기 그 기억들과 그 이전 기억들이 돌아온 이유가 몇일전에 우리 아기의 사진을 정리하던중에
제가 마산에서 들고온 돌사진과 백일사진을 보면서 작년에 제가 처음 마산 대문앞에서 줃었단 얘길 듣고
한참을 그집을 생각하다가 갑자기 모든 기억들이 스쳐지나가듯 돌아오게 되었습니다.그런데
그기억들중에선 제가 대문앞에서 줃은게 아닐수도 있을거란 생각이듭니다.
제가 지금 기억이 돌아온게 그때 당시에 왜 그렇게 실성할정도로 맞았는지와 그이전에 기억이 뚜렷하게
돌아왔기때문입니다.양부모가 이 얘길 해주면 떠 번복을 할수도 있겠지만 그 자전거 탄애가 머리가 깨져서
큰수술을 받았다는걸 입증을 할수있는 증거가 있고 증인도 있기때문입니다.왜 그기억이 그 이전 기억을 갈아막았는지는 양부모가 더 잘알것입니다.제가 실성할정도로 맞았었기 때문에 아마 그 기억들이 갇혀있었을거
같습니다.지금 돌아온 기억들중에 제일 뚜렷하게 생각나는걸 몇가지 글을 올립니다.
첫째-어느 창문이 큰 대형병원입니다.거기서 전 누워서 울고있는데 어떤 여자분이 와서 저에게 젖을 물려줍니다.그리곤 그 여자분은 병원의 진료가 끝났는지 저를 업고 기차를 타고가는 기억이 있습니다.그 기차는
요즘 기차가 아닌거같습니다.무궁화호도 새마을호도 아닙니다.그때 기억이후론 그 기차를 타본적이 없습니다.
기차 좌석은 요즘 기차와 달리 좌석이 떨어져 있는게 아니라 길쭉한 좌석에 따각따각 붙어있는 좌석이었고 좌석마다 기차창문이 다 달려있습니다.분명히 병원에선 해가 비춰진거같은데 기차를 타고 집에오니
하늘이 깜깜합니다.그리고 집앞 대문이 검정색입니다.그리고 집앞에 개 두마리가 있습니다.검은색의 세퍼트종입니다.그리곤 저를 업고있던 여자가 저에게 젖을 다시 물립니다.그리곤 저를 이불에 눕혔는데 옆에 어떤 남자분이 티비를 보고 누워있었던 기억이 납니다.그 여자분의 얼굴은 양부모의 모친얼굴도 아니었고 수입코너아줌마 얼굴을 기억을 하고있어서 그얼굴도 아니었던거같습니다.그리고 다른 기억이 있는데 그 기억은 어떤 여자분이 저를 안고 집을 나가는데 제가 갑자기 울고있고 저를 업고 젖을 먹이던 그 여자분도 울고있습니다.그렇게
저는 집을 빠져나와 잠이 든거같습니다.
둘째-눈을 떠보니 옛날 양부모가 살던 합성동 소재지인거 같습니다.외할머니가 저를 포대기에 싸고 업고있습니다.주위에 나보다도 큰 남자들과 여자들이 발가벗고 1층에서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올라가고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와서 저를 이뻐해줍니다.이기억들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그예전엔 이런기억들이 없었습니다.그리고 그때 양아버지란사람을 따라 트럭을타고,...(그때 당시에 추레라를 했다고합니다.)뒷좌석에 양부모의 엄마와 같이 앉아서 같이 다녔었습니다.그리고 또 기억하는건 양부모의 추레라가 한참 도로를 달리다가
어떤 승용차가 뒤집어져서 부자지간(아버지와 아들이 얼굴에 피를 흘리면서 도움을 청하고있었습니다,)
그때 양부가 차를 세워서 앞좌석에 태우곤 양부모의 모친이 그 아이의 얼굴에 하얀헝겊 같은걸로 막습니다.
한참을 달리다가 그 부자를 병원에 내려주고 간 기억이 뚜렷하게 납니다.
셋째-그리고 제가 대여섯살쯤을 지나 일곱살쯤에 양부의 누나인 고모집에 맡겨집니다.
거기엔 남자형제가 두명이 있는데 제기억으론 한명은 얼굴이 참 이뻤습니다.한명은 우락부락한 인상이었지만
저에겐 참 다정하게 대해줬었습니다.그 남자 두형제는 저를 데리고 노를 젓는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서
수영하는것도 보여주고 물고기와 가재를 잡는것도 보여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배를타고 들어와서 바위가 많은 동네를 그형재들과 고모집을 가기위해서 오르고있는 기억도 났습니다.
넷째-한참을 지내다가 다시 저는 경북상주(양모의 오빠?의집)에 또다시 맡겨집니다.
외숙모란분은 통통한 외모이며 외삼촌이란분은 머리숯이 적은분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
하얀 머리숯이 적게 나있는 외삼촌은 저를 이뻐라 해줍니다.과수원일을 하는거같은데 저는 거기에
맡겨지고 양부모는 거기에 절 맡겨두고 마산집에 간 기억이있습니다.외삼촌과 외숙모가 일을 나가시면
저는 집안에서 빈둥거리며 놀다가 일을 끝마치고 오는 외삼촌과 외숙모를 반깁니다.
계속 시간이 지나고 난후에 저는 집에가고싶다고 했지만 집에 일이 있어서 지금은 못간다고 했습니다.
몇밤 더자면 엄마가 데릴러 올껄고 그렇게 안심을 시켰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곤 저는 몇달뒤에 다시 마산으로 내려간 기억이 납니다.
양부모가 처음 나한테 했던말중에서 친부모가 찾으러 다녔었다고 했던때가 아마 대여섯살쯤이었던거 같습니다.근데 전 마산에 없었고 고모집에 맡겨졌다가 다시 외삼촌집에 맡겨졌었습니다.왜 하필이면 한창 친부모가
찾으러 다닐때쯤에 타이밍이 절묘하게 여기저길 다니면서 그때 절 외갓집,고모집에 맡겨야했는지 모르겠습니다.뭔가 찔리니까 그런거 아니겠습니까?솔직히 지금 나이먹고 서로 쌍방간에 얼굴 붉힐꺼 예상을 했었다면
그때 찾으러 다니고 이럴때 수소문해서 찾아줬었음 이렇게까지 이를갈고 키워준 사람들한테 원망은 안했을텐데 말입니다.제가 지금 기억이 계속 돌아오고 있는데 이젠 뭐라고 말을 바꿀지 궁금하네요.이젠 그 양부모들이
하는말이 뭐라고 바뀔지 재밌어집니다.또 뭐라고 이핑계 저핑계를 대면서 둘러댈지
딱 중요한 타이밍에 시골에다가 머릴 써서 맡기는 재주는 지금 제가 나이먹어서 느끼는건데
참 대단한사람들입니다.타이밍도 절묘하고
예전에도 그사람들이 그말을 했는데 처음부터 찾아줄 생각도 없었고 찾을생각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다른사람들앞에선 자기들이 순수한 사람이라고 보여야하기때문에 꼭 찾아서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얘길 했다지만 저앞에선 전혀 다른말을 했었습니다.완전히 다중인격자들처럼 말입니다.
만약에 저와 친부모가 만난다면 뭔가 이사람들은 크게 다칠껄 예상하고 지금 계속해서 덮으려고 하는거같습니다.사람이 늙으면 지은죄들도 사죄를 하고 반성을 한다는데 이사람들은 그게 아닌거같습니다.
어떤 실종자 가족들이...저처럼 이러겠습니까?제가 지그 기억이 돌아오고 있는데도 이사람들은 끝까지 거짓말을 할거같습니다.만약에 가족상봉을 한다면 이사람들은 크게 다칠껄 알고있는거 같습니다.그러니까
말을 이리저리 둘러대면서 말바꾸는 식으로 일관하는겁니다.이런부모밑에서 컸다는게 쪽팔립니다.솔직히
저한텐 거짓말하지말라 진실되게 살아라고 입버릇처럼 가르치려던 양부모들이 알고보니
20여년을 같이 살아왔었던 저와 저의 아기와 저의 아내가 뼈저리게 느낀거지만 완전범죄라는게
이런거구나...하고 느꼈습니다.수입코너 아줌마가 판단을 아무래도 잘못하신듯합니다.
이런집 구석인줄 모르셨을겁니다.차라리 고아원에 절 맡겼었음 아무래도 찾는데 더 도움도 되었을테고
독립심이 강한 남자아이로 성장을 했을지도 모릅니다.진짜 후회되는게
수입코너아줌마가 판단을 한참 잘못하신겁니다.이런 집구석에 절 맡겼기 때문에 전 인생이 완전
꼬인겁니다.그아줌마가 살아계신다면 왜 날 이상한 집구석에다가 맡겼는지 신세한탄을 했을겁니다.
고아원에 맡겨졌었다면 내가 이토록 고통을 받고 하진 않았을겁니다.차라리 마음 고생은 덜 했을테고
육체적으로도 편안한삶을 살았을겁니다.그리고 한가지 더 얘길하자면
저희 아들이 태어났을때쯤 제가 aids감염 된 사실을 알았을때 그 타이밍에 맞춰서 양부모가 저에게
출생의비밀에 대해서 얘기한점도 그점도 잘못된겁니다.아무리 자식이 철이없고 해도 목숨에 관계된 질병에
걸렸는데 대놓고 에이즈 운운 하면서 출생의비밀을 얘기 하는것도 정상적인 가정에선 있을수없는겁니다.
자기가 배아파서 낳은 자식이 아니라도 왜 하필이면 에이즈감염이 되어서 질병관리본부에 등록이 될쯤에
그때 이핑계 저핑계 대면서 철이없니 하면서 타이밍이 절묘하게 출생의비밀을 말하는겁니까?
출생의비밀 얘길 하면서도 끝까지 에이즈 얘긴 안빠트리고 하더군요.어차피 자기들과도 안맞는 성격이고
자기들이 하는거에 안따라주고 어차피 에이즈도 걸렸으니까 니갈길 가서 찾으란식으로
이런 인간들이었다보니 제가 더욱더 이인간들을 더 괴롭히는겁니다.제가 누차 얘길 하지만
이런 인간들한테 절 맡긴 수입코너 아줌마는 큰 실수를 한겁니다.에이즈에 걸렸다해도 사랑으로
보듬어줄수있는 그런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방송국 기자와 찾아갔을때도 수입코너딸이 무슨일이
있었냐고 그럴때 제가 말이 안나오더군요.근데 눈치를 챘는지 딸이 울더라구요.저도 같이 울었습니다.
이런인간들속에서 자란 내자신이 우습기도 하고 내심 수입코너아줌마를 많이 원망을 했습니다.결과적으론
수입코너아줌마 판단이 틀렸기 때문에 제가 이런상황이 온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표님도 아시다싶히 제가 몇일전에 길바닥에서 피를 토하고 단국대병원 응급실에 실려갔었던적이
있잖습니까?그때 병원비가 많이 나와서 빌릴곳도 없고해서 맨처음에 그래도 호적에 있는 자식인데
설마하고...저날 했었습니다.....호적에 있는 자식이 에이즈로 죽는다는데 설마 안도와주겠나...
하지만 양부는 저나내용에서 " 아직 그게 나올때가 안됐을텐데 왜 나오냐?그러게 일찍 죽으라니까
왜 사냐?(웃으면서)그냥 죽어버려 ~살아서 뭐하겠냐?어차피 넌 부모 절대 못찾을꺼다.그리고 우리가
안가르쳐준다.너희 부모는 죽었다,왜 찾으려고 하느냐?찾지말아라...그리고 빨리 죽을수록 우리에게 유리하고 좋다.니가 죽게되면 너희부모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우리에겐 해방꾼이 없어진다.경찰들이 와도 우린 선하 사람들이라 생각하니 너만 이상한넘 되는거 아니냐?그렇게 당해보고도 우릴 모르겠냐?접어라~니편은 이제없다.경찰에서도 넌 이상한넘으로 낙인이 찍혀있는넘이라고 안다.방송국에서도 이제 니편을 들어줄수가 없다고 얘길 하더라~우린 이제 증거를 다 없앴으니까 너만 힘든거다..이번에 온거만큼(에이즈면역수치가떨어져서발병한증상) 이번기회엔 그냥 죽어라....되도록이면 병원에서 죽는걸 택해라...절대 살아서 안나왔음 좋겠다."고 말을 했습니다.
아무리 호적에 있는 자기 자식이 호로새끼고 인간말종이라도 자기들이 벌금까지 물어가면서 친부모가 찾으러
다녔다고 할때 고모댁,외가댁에 맡기면서까지 이리저리 피해다녔을정도면 자식에게 그런 잔인하게
말하는 인간들이 어딨습니까?죽으라니요?유리하다뇨?뭐가 유리하죠?왜 찾으려고 하다니요?거기서 왜
그말이 나오는겁니까?전 병원비 구걸하려고 저날 한건데 왜 거기서 하필이면 친부모 못찾네 안찾는게
자기들에겐 이로울꺼라고 그얘길 하는겁니까?저만 그 저나통활 들은게 아니고 제옆에 아내도 같이 있었습니다.아내에겐 최대한 못듣게 하려고 애를 쓰면서 안움직이는 관절로 저나통화를 이어갔었지만...
아내가 대충 들었는지 그냥 끊으랍니다.인간쓰레기들이랑 왜 자기 저나비 내면서 저날거냐구요.
난 설마하는 마음에 저날 걸어본거랍니다.그런데 그런 잔인한 말을 할줄은 몰랐습니다.왜 그런말을 했는지...
죽으라뇨....무슨 증거요....전 그런얘기 하려고 연락했던게 아닙니다.죽을때가 되니까 사과하고싶은 마음에
연락을 했고 그사람들이 도움을 줄꺼라 생각을 하고 믿고 연락을 했던건데....예상밖의 말을 했었습니다.
그렇게 여기저길 병원비를 구걸해서 병원비가 너무 많이 깨진다길래 입원도 못하고 응급처치만 하고 퇴원을 하고 나오면서 양부가 했던말을 그대로 종이에다가 아내몰래 적었었습니다.나중에 증거를 제시해야하니깐요.
난 단순히 병원비 구걸하려고 연락을 했던건데 뜻밖의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증거가 있긴 있었나보더군요.
그러니 증거를 없앴다고 하는거보니..뭔가 알고있습니다...양부모들은....
설마...양부모가 울 부모를 살해하진 않았겠죠?양부의 입에서 친부모가 죽었단말을 들었기 때문이고
증거를 없앴고 마지막 남은 저....양부가 생각하는 해방꾼만 없어지면 완전범죄가 성립이 된단말로 들렸습니다.
그래서 부탁드리는데요.제 사건을 재수사 해주십시오.관할은 마산동부경찰서가 아닌 타 경찰서로 해주십시오.
이미 마산동부경찰서는 양부모의 말에 완전 놀아난듯....양부의 통화내용처럼 굳게 자기들은 신임하는것으로
알고있습니다.그리고 한가지더 저 케이블방송이 아닌 정규방송으로 이 내용을 방송에 내보내고 싶습니다.
KBS,SBS,MBC방송사에 일단 요청을 할 계획입니다.아무래도 이건 단순 실종문제는 아닌거같습니다.
만약에....만약인데요....양부모가 울 친부모를 살해를 했다면.....
전 제손으로 양부모를 진짜 죽일수도 있을거같습니다.그때 당시에 통화내용에서 양부는 모든 진실을 얘기하고
있는듯했습니다.거기다가 제가 면역수치가 다 떨어져서 병원에와서 죽을거같다고 얘길하자 양부는
그때가 기회인듯 마냥 좋아했었습니다.그래서 다시 부탁드립니다.이번엔 재수사를 할때 방송과 같이 움직이는
시스템으로 했음 좋겠습니다.그래야 공정하게 될거같네요.이번에 재수사를 한다면 진실을 밝힐수 있을거같습니다.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이건 제가 단순히 버려지고 맡겨지고 한게 아니고 중간에 양부모가 친부모에게
개입을 했거나 살해를 했을수도 있을거같습니다.증거없어졌다.....죽었다...자기들에게 유리하다....내가...마지막 남은 .해방꾼......이란 말이 귀에서 떠나질않습니다.
이거 방송타면 이사람들은 자기를 믿고있던 자기편들도 사라질겁니다.
완전히 경찰도 그렇고....그때 SBS방송 김원태피디란분도 이사람들의 가식적인 모습에
놀아난듯합니다.예전에 제가 방송국에서 간다고했을때 양모가 불안해했었답니다.
뭐가 불안했을까요?그렇게 당당한 사람들이
마산동부경찰서 담당 형사분들도 제글을 보시고 제글도 믿으십시오.
그리고 방송국에서 이글을 보신다면 한번 깊게 생각해보시고
제 사연을 들어주십시오.이건 단순 실종문제랑은 차원이 틀린거같습니다.
왜 제가 이전 기억들을 못하게끔 이사람들이 저의 어린 유년시절에
기억을 지울수밖에 없게끔 그렇게 모질게 실성할정도로 구타를 했었는지도
이글을 읽으시면서 한번더 생각해주십시오.저도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로써
아닌건 아닌겁니다.올바른 마음가짐이 곧 아이의 미래를 밝혀주는빛입니다.
첫댓글 내용을 참고로 해서 경찰에 다시 도움을 요청하려 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한가지 더 붙이자면 어릴때 양부모들이 굶긴적 있는데 그뒤로 제가 크면서 체하면서도 식탐이 강해졌습니다.그이유는 기억이 돌아오기전엔 편식때문인줄 알고만 있었는데 제가 어릴때 심한열병과 천식이 심하여 거동이 힘들었었습니다.근데 양부모집에서 하던 종교가 다름아닌 일본종교입니다.양부모말론 병원을 다 다녀봤지만 소용이 없어서 그랬다곤 하지만 "그 일본종교인 남묘호랑교를 저를 안고 불러주면서 안부르면 밥을 안먹인다고 그랬었습니다.결국 몇일을 굶은뒤에 제가 힘이 없어서 벌벌 길때쯤에 저도 모르게 양부모에게 세뇌가 되어 남묘호랑교 남묘호랑교를 미친듯이 불렀던 기억이 있습니다.왜냐하면 끝까지 그걸 안불렀음 굶겨죽
일거만 같았기 때문입니다.그넘의 일본종교인 남묘호랑교에 그렇게 집착을 하더니 제가 지금은 그종교를 안믿는 이유가 그것입니다.종교는 자유이고 종교를 위해서 밥을먹는것은 그건 분명히 문제가있는것입니다.그종교를 안믿는다고 밥을 굶기면 그종교는 옳은 종교가 아닐것입니다.그종교면 암환자라던가 불치병환자도 낳는다고 양부모가 입버릇처럼 어릴때부터 저에게 세뇌를 시켰었지만 막상 제가 에이즈걸리고 난뒤엔 아무말도 못하더군요.그땐 내가 미쳐서 남묘호랑교를 불렀다고 거짓말까지 하면서 말입니다.내가 그토록 미쳐서 남묘호랑교를 했었음 지금까지 해야하는데 왜 안할까요?
거기 종교계에서 높은사람도 불러서 물었더니 그러더군요.다른질병은 남묘호랑교로 고칠수있지만 에이즈는 힘들다구요.그렇게 만병통치약처럼 여기고 있던 양부모도 그땐 한발 뒤로 빼더군요.내가 그토록 열병에 앓으면서 끙끙 거리고 그럴때 죽이라도 먹일것이지 그넘의 일본종교에 미쳐서 남묘호랑교를 안부른다고 아픈아이를 몇일동안 굶겼으니...제가 그때 남묘호랑교라고 안부렀음 이상한거 아니겠습니까?몇일을 굶다보니 시키는대로 해야되겠더군요.안그럼 이인간들한테 굶겨서 죽겠더라구요.종교부터 이사람들한테 세뇌를 받았기 때문에 저는 어린시절부터 종교의 자유는 꿈도 꿀수가 없었습니다.
친구따라 교회를 갔다오면 항상 미친듯이 맞았어야했습니다.니몸이 안좋아서 넌 남묘호랑교 안하면 죽는다고 그러면서....근데 지금 에이즈까지 걸렸지만 지금은 기독교신자입니다.남묘호랑교는 이제 거들떠 보기도 싫습니다.근데 양부모 말대로라면 지금 전 저세상 사람일겁니다.어떻게 살아있는걸까요?양부모는 자식의 종교부터 간섭을하고 억압하는 기질이 다분한 인간들입니다.머리가 굵어지고 성장하고 알것 다알고 나니까 이제와서야 별말을 안합니다.그때 전 속은거죠.이 더러운인간들한테 말입니다.이글을 보는 실종자가족분들이나 형사분들 종교는 자유아닙니까?하기싫은 종교를 강요하면서 밥까지 굶기는 인간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시고 판단해주십시오.그 일본종교해서 저에게 인생이 달라진건 아무것도 없습니다.몇일을 굶긴 양부모들에게 앙심만 남았고 저주할뿐입니다.그리고 식탐이 너무 심해졌다는거밖에 저에게 도움이 되는것들은 하나도 없습니다.지금와서 종교를 내가 하고싶은대로 하고있으니 이것만큼 행복한게 없다고 생각됩니다.옛날 기억들이 전부 돌아오다보니까 요즘 머리가 너무 아프고 괴롭습니다.옛날에 있었던일을 잊으려고 했었는데 어느덧 갑자기 그 이전 기억들이 계속해서 생각이 납니다....이러다 돌아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그 기억들이 죽을때까지 갇혀있었더라면 좋았을것을...이제와서 기억이 떠오른건 왜 그런걸까요?
지금 기억이 돌아오는것들을 쓰자면 A4용지로 몇일동안 쓸수있을거같습니다.기억이 돌아오지만 않았었더라면 그나마 양부모에게 덜 화가 날텐데 이젠 화가 나고 할게없습니다.만약에 제말대로 양부모가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법적인 처벌을 부탁드립니다.저도 가끔 죄를 짓고는 살고있습니다.하지만 이번 경우는 인륜을 저버린 범죄나 마찬가지입니다.저는 32년간중에서 21여년을 양부모의 손아귀에서 놀아났습니다.그리고 저를 낳아주신 부모님들은 분명히 저보다 더큰 충격과 고통속에서 살았을꺼라 생각되어집니다.제가 지금 자식을 키우고 있는 아버지다보니 더욱 가슴이 시려옵니다.이 모든일들이 저희아들까진 안갔으면 하는 바램입니
여기 카페에서도 그리고 대한민국에 살고있는 실종아동들이나 실종아동부모님들 마음이 아마 저와 똑같을겁니다.그런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우리 양부모는 여러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고있습니다.저는 절대 이런일이 저의 2세까지 가길 원하지않습니다.그리고 나중에 떳떳하게 우리 아들에게 할아버지 할머니는 끝까지 아빠를 사랑했었고 아빠를 찾았었다...라고 말을 자신있게 하고싶은 사람입니다.그러기위해선 묶여있는 매듭을 이번에 확실하고 정확하게 풀고싶습니다.모든 열쇠는 양부모가 쥐고있는듯한데 절대 입을 열지않습니다.80년대라면 고문을 해서라도 그 매듭이 풀렸겠지만...참 법이 가로막고있어서 안타깝습니다.
저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가족이나 장기실종아동들이 분명히 어딘가에 저와 똑같은 상황에 처해있을거같습니다.좋은 양부모밑에서 자랐었더라면 좋은환경에서 가족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고 있겠지만 저와같은 상황이라면 아마도 죽고싶을겁니다,제가 그랬거든요.거의 장기아동들은 아마 저처럼 입양되는 경우가 많을거같아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고아원보단 아마도 입양쪽이 제일 많을거같습니다.저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실종아동들이나 실종아동 부모님들 절대 희망을 잃지마십시오.전 이번에 꼭 그 매듭을 풀겁니다.법으로 안되면 그거보다 더한 방법도 동원할예정입니다.^^기대하셔도 됩니다.
많은 어려움을 겪으시면서 힘들었던 부분들이 많았음을 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의 삶속에서는 수많은 일들이 만나지고 그 속에서 때로는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합니다
그러나 삶이 절망인것 같지만 절망뒤에는 반드시 희망이 있고 슬픔뒤에는 반드시 기쁨이 잇습니다
잃어버린것이 있으면 반드시 찾을때가 있고 모든 인생의 삶은 때가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어두운 과거의 삶속에서 이제는 용기를 가지시고 memory님의 삶속에 소망과 생명의 빛을 비추시며 인도하시는
주님을 만나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앞으로의 삶은 보다 희망차고 복된 일들이 이루어지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때가 있다라는 말을 저 어린 시절엔 많이 들었습니다.
이 말은 곧 인내를 가리키는 말로 일이란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당기면 그들이 당겨오면 다행이지만 끊기거나 당겨오지 않으면 끝입니다.
끌여오도록 느긋하게 가는대로 이끌리며 당겨야 합니다.
지금은 공소시효가 끝났기에 수사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그러니 인내를 가지고 차근차근 풀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