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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효 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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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비 스님은 유독 스승 복이 많은 편이다. 강(講)을 받은 스승만도 여러 분이요, 제방 선원을 돌며 깨달음의 길에서 만난 선지식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한분한분 모두 수행자의 사표요, 만인의 스승으로 회억되는 눈밝은 참수행자들이다. 타고난 청복이기도 하겠지만, ‘기웃거리기를 좋아하고’ ‘하고 싶은 공부는 꼭 해야’ 하는 천성 탓에 맺을 수 있었던 귀한 인연들이다. 법랍 52세. 세수로는 이순의 고개를 훌쩍 넘어 만인의 스승이 된 지금 무비 스님에게 떠오르는 한 분의 스승을 물었다. 탄허 스님, 운허 스님, 전강 스님, 향곡 스님, 춘성 스님 등 그 어느 한 분이겠거니 막연히 짐작했었는데, “지효 스님 아십니까?”라며 뜻밖에 생소한 스님을 말했다. “지효 스님은 제 할아버지 스님인데, 평생 단 한 번도 법상(法床)에 오르지 않으셨던 어른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누가 청을 해도 절대 법상에 오르지 않으셨습니다. 법상에 오른다는 것의 의미를 명확히 알고 계셨던 것이죠. ‘허물이 없고 깨달음을 이룬 수행자만이 법상에 오를 수 있는 법인데 어떻게 내가 오르겠는가?’ 그렇게 평생 당신을 채찍질하며 수행의 날을 벼리셨습니다. 저보고 사람들이 ‘이 시대 최고의 강백’이라고 일컫는데, 부득불 매일 법상에 오릅니다. 그럴 때마다 지효 스님이 떠오릅니다. ‘법상에 오를 자격이 있는가?’ 하고 묻게 되는 거죠.”
안팎이 여일하고 예외를 두지 않았던 수행자 _____ 단 한 번도 법상에 오르지 않았을 정도로 스스로에게는 엄격했으며 깨달음에 대해 순정했던 지효 스님. 스님은 정화운동 초기에 홀로 할복을 감행했을 정도로 청정수행에 대한 의지가 서릿발 같았고, 전국 제방선원을 비롯해 천축사 무문관 6년 정진을 타파했던 몇 안 되는 어른 중 한 분이었다. 불국사 주지를 비롯해 세수 70이 넘어 범어사 주지를 다섯 차례나 역임하셨을 정도로 이사(理事)의 경계를 두지 않았지만, 어떤 자리에서나 수좌로서의 면면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주지 소임을 보면서도 언제나 꼿꼿하게 좌선하고 있었고, 공부하는 선승을 만나면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겸손한 몸짓으로 예를 갖추곤 했다고 한다. 선에 대한 간절함이 얼마나 각별했으면 한 살 터울로 사형사제 연을 맺었던 성철 스님 회상에 기꺼이 들어가 배움을 청하고, 손상좌였던 무비 스님과 나란히 입방해 깨침의 빛을 나누기를 마다하지 않았을까. 지효 스님은 무비 스님에게 그리 다정했던 할아버지 스님은 아니었다. 불국사, 범어사, 해인사에서 같이 오래 살았으면서도, 살뜰한 기억이나 둘만의 내밀한 에피소드 하나 남기지 않았을 정도로 냉엄한 수행자였다. 지효 스님은 짙은 눈썹에 하얗게 서리가 앉은 수려한 용모를 지니셨다. 무비 스님은 언젠가 가야산을 헤치고 내려서는 지효 스님을 보고 내심 깜짝 놀란 적이 있다고 한다. 신선이 아닌가 착각될 정도로 그 모습이 남달랐다는 얘기다. 그래서 처음 무비 스님이 출가했을 때, 당시 주지로 있던 지효 스님이 은사가 되었으면 하고 내심 바라기도 했다 한다. 선승의 선기가 어린 눈에도 특별하게 다가왔던 까닭일 것이다. “당시 행자가 네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명은 주지스님 상좌가 되고, 두 명은 저의 은사이신 여환 스님 상좌가 되었습니다. 물론 제 은사이신 여환 스님도 훌륭한 수행자이셨지만, 어떤 인연인지 몰라도 살기는 지효 노스님하고 더 많이 살았습니다. 따뜻하다? 글쎄요. 지효 스님은 인간적인 정보다는 수행자의 도리에 입각해서 모든 인연을 대하셨던 것 같아요. 어떤 경우에도 예외를 두지 않으셨던 안팎이 여일한 어른이셨습니다.” 지효 스님이 야속했던 때도 있었다. 무비 스님은 열일곱 살에 출가해서 행자도 하는 둥 마는 둥 뛰어넘고, 불국사에서 공부를 하다가 노스님을 따라 범어사로 가게 됐다. 범어사 강원에서 공부에 재미를 붙이고 있을 때, 느닷없이 노스님이 은해사로 가라는 것이었다. 느닷없기도 하거니와 싫은 마음이 들어 범어사에서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하자, 지효 스님이 그 자리에서 우산대를 집어들어 후려치더란다. 내막인 즉 은해사에서 사중 일로 젊은 학인 네 명을 차출해달라고 했던 것인데, 그렇게 막무가내로 무비 스님을 쫓아 보냈던 것이다. 사연이야 어찌되었던 무비 스님은 은해사 강원 사정으로 그곳에서도 공부를 마치지 못하고, 다시 해인사 강원으로 가서 ‘산감(山監)’ 소임을 두 철이나 본 뒤에야 어렵게 강원 공부를 이어갈 수 있었다. 물론 돌아보면 그 인연으로 은해사에서 당시 대강백이었던 각성 스님(당시 강주)에게서 강을 배울 수 있었고, 후일 해인사에서는 지관 스님께 강을 받았다. 예측된 것은 아니지만 지효 스님 덕분에 인연은 더욱 귀하게 회향된 셈이다. 그렇다고 무비 스님이 처음부터 강사의 길을 염두에 두었던 것은 아닌 듯하다. 해인사 강원을 마치던 날 일주문도 나서지 않고 곧바로 해인사 선원에 입방하여, 이후 10여 년 동안 스님은 치열하게 수좌의 길을 걸었다. 또한 그 길에서 지효 스님과 무비 스님이 스승과 제자를 넘어 선객으로 다시 만났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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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비 스님 |
| 노사(老師)의 아름다운 뒷모습 _____ 무비 스님은 오랫동안 범어사 강주로서 후학양성에 전념해왔다. 그때도 지효 스님은 범어사에서 주석하며 평생 그러하셨듯이 노구를 이끌고 선원에서 입선에 들곤 했다. 세수 80이 넘어 노쇠해졌지만, 대중스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대중과 함께 있었다고 한다. “지효 스님 열반 당시 제가 범어사 강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지막을 향해 정말 뚜벅뚜벅 걸어가던 어른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모릅니다. 정말 아무 병 없이 불이 다 타서 서서히 식어 한 줌 재가 되는 모습이셨습니다. 완전히 전소되는 그 고요함을 저는 지효 스님에게서 보았습니다.” 지효 스님은 무비 스님에게 따로 어떤 말도 남기지 않았다. 생전에도 특별히 무엇을 당부하는 말씀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치열하게 정진하는 당신의 모습. 수행자의 도리에 철저한 그 한걸음으로 81년이란 기나긴 여정을 회향했다. 천성이 즐겁고 호호탕탕한 탓에 무비 스님은 지금도 여전히 종횡무진하고 있다. 마치 깜빡이를 켜고 달리는 자동차처럼, 우측 좌측 깜빡이를 켜고 전국을 돌며 당신이 보여주고자 하는 방향을 알려준다. 스님의 무진법문을 다 청해듣고 싶다면 인터넷 카페 ‘염화실’(http://cafe.daum.net/ yumhwasil)로 들어서면 된다. ‘누구나’ ‘즐겁게’ ‘행복하게’ 스님은 모두와 나누길 염원한다. 법공양을 위해 법당에 책을 쌓아놓고 ‘마음껏 가져가서 법공양 하십시오’라는 현수막도 걸어두었다. 어쩌면 스님은 지효 스님이 그랬던 것처럼 이미 법상에서 내려선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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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효 스님 _ 1943년 동산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으며, 1955년 불교정화불사 실현을 위해 할복을 감행하여 종단 안정에 헌신했다. 이후 천축사 무문관 6년 정진을 타파하고 제방 선원에서 30안거를 성만하며, 철저한 수행으로 후학들에게 수행자의 사표(師表)가 되었다. 영원한 수행납자로서 조계종 원로위원을 역임하였고, 5번이나 범어사 주지 소임을 맡는 등 수행과 포교에 있어 누구보다 앞장섰다. 1989년 9월 28일 범어사에서 세수 81세 법랍 47세로 입적.
무비 스님 _ 부산 범어사에서 여환(如幻) 스님을 은사로 출가, 해인사 강원을 졸업하였으며, 해인사, 통도사 등 여러 선원에서 안거하였다. 탄허 스님의 법맥을 이은 대강백으로 통도사•범어사 강주, 조계종 승가대학원장, 조계종 교육원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많은 집필활동과 아울러 전국 각지의 법회와 인터넷 카페 염화실에서 불자들의 마음의 문을 열어주고 있다. 역저서로 『금강경오가해』를 비롯하여 『금강경 강의』, 『화엄경 강의』, 『지장경 강의』, 『사람이 부처님이다』, 『법화경』 상•하, 『임제록 강설』, 『대승찬 강설』, 『무비 스님이 가려 뽑은 명구100선』, 『법화경 강의』 상•하 등 다수가 있다. |
무비스님의 강의 잘 듣고있습니다. 모르는 것 하나하나 알아가는 즐거움에 확 빠져들고요.. 스님이 계셔서 행복합니다....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아름다우신 모습 멋의 향기가 물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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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보는 순간 사리암에 앉아계신 나반존자님인 줄 알았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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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하시고 다정 다감하신 스님모습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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