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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의 가을걷이와 봄맞이
이 봉 수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해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 해를 맞이할 때면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각종 문학단체, 문예지 또는 문학상 운영자들은 한 해의 작품 품평회를 하여 시상을 하고, 주요 일간지들은 신춘문예라는 이름으로 신인의 작품을 선보임으로서 시조의 흐름을 짐작하게 한다.
돌이켜 보면 현대시조는 1906.7.21일 ‘大丘女史’(성명미상)가 대한매일신보에 “血竹歌”를 발표한 이후 100여년의 짧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정형이 없이 고시조를 답습하거나 작가별, 논자별로 각자 나름대로 형식실험을 하다가 실패하여 웃음거리가 되고 일회용 종이컵의 신세로 전락하고 마는 경험을 되풀이하여 왔다.
다 같이 동양권이지만 일본의 하이쿠는 움직일 수 없는 정형을 갖추고 세계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데 반하여 가장 우수한 언어라는‘한글’로 표기되는 시조는 문 밖에도 나서지 못하고 있으니 무슨 이유일까?
나름대로 시조작품이 수없이 쏟아져 나오고 전문 문예지와 동인지 등 발표공간도 충분하고 시조문학상이 발에 차일 정도로 많아 웬만한 문단경력자이면 수상경력을 빽빽하게 적어 놓고 있지만, 거의 대부분이 시조시인, 평론가, 학자 또는 심사위원 등 전문가 그룹 내부에서 읽고 쓰고 시상한 것일 뿐, 막상 담 넘어 넓은 세상에서 크게 알려진 것이 없다. 일반 대중에게는‘도깨비불’같이 손에 잡히는 것이 없는 별천지로 남아 있다. 시조가 국민적 호응을 얻지 못하고 독자층이 빈약한데도 불구하고 시조인들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자기도취에 빠져서 중구난방으로 정형을 비틀고 난삽한 글을 써 놓고 시조라고 우기면서 스스로 평가하고 시상하고 자랑한다. 힘을 모아 수정같이 단단하고 아름다운 정형을 확립하기는커녕 있는 정형마저 허물어 자유시의 흉내를 내고 돌출행동으로 독자의 이목을 끌려고 한다. 다 같은 교착어인 일본어의 하이쿠 환경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정형이 없는 시를 정형시라고 우기고 자유시를 시조라고 속이면서 독자의 시선을 끌 수가 있을까? 많은 賞을 남발하고 신춘문예로 띄워 주기만 하면 시조가 국민적 호응을 받을 수 있을까?
다행이 최근 시조정풍운동이 일어 약간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2010년 일간지들의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보면 전년에 비해서 훨씬 좋아진 양상이다. 우선 도저히 시조라고 볼 수 없는 돌출 해괴한 작품이 눈에 뜨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당선작들은 首, 章, 句의 구별을 분명히 하였고 자유시처럼 보이게 하려는 망상에서 벗어나 있다. 3.4조음보율을 일탈한 파형이 아직도 많지만 3장 6구 12음보의 기본 틀을 지키고 있다. 이는 심사위원들이 과거의 잘못된 심사관행에서 벗어나 시조의 정형을 중시하면서 선발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2010년은 왜곡된 시조의 흐름을 정격시조로 돌려놓는 커다란 물굽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하 2010년 주요일간지의 신춘문예와 지난해 대표적인 시조전문지의 연말 시상 일부를 살펴본다.
[2010 신춘문예 작품들]
1. 중앙일보 연말시상
<대상>
연필을 깎다
오종문
뚝 하고/ 부러지는 것/ 어찌 너/ 하나뿐이리/
살다보면/ 부러질 일/ 한두 번/ 아닌 것을/
그 뭣도/ 힘으로 맞서면/
부러져/ 무릎 꿇는다./
누군가는/ 무딘 맘/ 잘 벼려/ 결대로 깎아/
모두에게/ 희망주는/ 불멸의/ 시를 쓰고/
누구는/ 칼에 베인 채/
큰 적의를/ 품는다./
연필심이/ 다 닳도록/ 길위에 쓴/ 낱말들/
자간에/ 삷의 쉼표/ 문장부호/ 찎어 놓고/
장자의/ 내편을 읽는다/
내 안을/ 살피라는./
<신인상>
겨울나무
정경화
찬바람/ 불더라도/ 떨지 않길/ 바랬다/
실 한 올/ 걸치지 않고/ 소나기를/ 맞을 때는/
웬만한/ 폭설쯤이야/ 견뎌낼 줄/ 알았다./
뿌리도/ 흔들린다는 걸/ 저 가지가/ 어찌 알까/
숨겨둔/ 물기마저/ 깡말라/ 갈증이 나면/
새벽녘/ 서리 한 줌도/ 혀끝에서/ 아리는데/
하늘 뜻/ 거역해도/ 제 길 안의/ 한 몸인 것/
아직도/ 이해 못할/ 수화 같은/ 긴 편지를/
돌아올/ 봄을 위하여/ 잔설 끝에/ 묻는다./
심사위원심사평 심사위원: 박시교·한분순·장경렬
참신한 소재·내용 … 현대 시조가 나아갈 방향 보여줘 대상 수상작인 오종문의 ‘연필을 깎다’는 시조의 정격을 유지하면서도 소재와 내용 면에서 참신함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현대 시조가 나아갈 방향을 나름의 시적 노력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도 이 작품의 미덕으로 꼽힐 수 있을 것이다.
신인상 수상작인 정경화의 ‘겨울나무’는 흠잡을 데가 없는 단아하고 정갈한 작품이다. 종장 처리에서 완결미가 특히 돋보이기도 하는...
필자의 종합평
(주: 중앙일보는 신춘문예대신 연말 종합시상을 한다. <대상>은 시집을 한 권 이상 낸 등단 15년 이상의 시조시인 중 한해 최고의 작품을 발표한 이에게, <신인상>은 시조를 열 편 이상 발표한 등단 5년 이상 10년 미만의 시조시인에게 수여하면서 국내 최고 권위의 시조 문학상이라고 自讚한다. <신인문학상>은 당년도 시조백일장 입선자 중에서 수상자를 선발했다고 한다.-그러나 이들 기준은 설정이 잘 못되어 있다. 등단 5년 미만자와 10년 이상 15년 미만자는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고 <신인상>과 <중앙신인문학상>의 상 이름은 혼동을 일으킨다.)
<대상>수상작은 4곳에 시조 음보율이 깨져 있고 首,章의 구별을 흩어버린 자유시형을 취하고 있다. 9연의 자유시로 읽어도 각 연이 의미의 단락인지 리듬의 단락인지 미관적인 단락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기준이 없이 무의미하게 배열되어 있다.
연은 따로 갈라 놓은 이유가 있어야 하고 각자 의미가 살아있어야 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토막토막 갈라놓아 1행인 연들은 의미상 홀로 서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 연은 도치법(倒置法)으로 되어 있어서 더욱 홀로 서지 못하고 죽은 시구가 되어 시 전체의 완성도를 0점으로 추락시키고 있다. 시조의 首.章과 자유시의 聯.行이 왜 있는지를 모르고 쓴 작품이다. 3수 연시조로 구성하면 쉽고 명료할 것을 왜 이런 구조를 택했는지 물어 보고 싶다. 시조의 정격을 유지했다’고 하는 심사평이 과연 맞는 말인가?
시의 내용도 현대시의 특징적인 표현은 한군데도 없는 단순 서술형이며 시적 논리가 부족하다. 이것이 심사평과 같이‘현대시조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것인가?
<신인상>수상작은 [걸치지 않고] [흔들린다는 걸] [갈증이 나면] 등은 파격을 범하여 음량율로 재단하더라도 숨이 가쁘고 시조의 기본 보법인 3.4조와 거리가 멀지만 전체적으로 3장 6구의 首,章,句가 분명하여 <대상> 수상작보다 시조로서의 가치가 높다.
긴 엄동설한의 강을 건너가는 서민의 삶을 짐작하게 하는 작품성도 주목할 만하다.
위 2작품이 국내 최고권위의 시조문학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하다. 2작품에 관한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은 장문이지만 작품의 문학적 가치를 평한것이 아니라 대부분이 심사경위 설명과 심사소감을 피력한 것에 불과하다.(위 심사평은 원문 중 작품에 관하여 언급한 부분임.)
<중앙신인문학상>
겨울 폐차장
김대룡
길을 깁던/ 바퀴들이/ 층층이/ 쌓여있다/
수런대는/ 바람 사이/ 조등은/ 살을 깎고/
겨울밤/ 몸을 부비는/ 수의 입은/ 일가의 산/
맨 처음/ 어디에서/ 여기까지/ 온 것인가/
지게차/ 꼬리 무는/ 운구 행렬/ 곡(哭)도 없다/
몸 눕힐/ 저 그늘 묏자리/ 망초꽃/ 다 내주고/
늘 한 뼘씩/ 앞서려던/ 녹물 고인/ 도로 끝/
슬관절/ 삐걱이며/ 계기판도/ 멈춰섰다/
아버지,/ 잠의 집 끌고/ 그 산에/ 당도했을까/
지상의/ 집들은/ 다 흔들리기/ 마련이지만/
그래 그래/ 끄덕이며/ 사람들은/ 돌아가고/
이제사/ 몸을 눕히는/ 용광로 속/ 등뼈 하나/
심사위원심사평 심사위원: 박기섭·정수자·박현덕·강현덕
시상 이끄는 섬세한 상상력 빛나 당선작 ‘겨울 폐차장’은 시상을 끌고가는 섬세한 사유의 힘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겨울밤 층층 쌓인 “일가(一家)의 산”을 비루한 삶이 “몸 눕힐” 묏자리로 육화하면서 아버지의 죽음을 “폐차장”과 중의적으로 연결한다. 더욱이 아버지의 “잠의 집”을 끌던 산이 “용광로 속 등뼈”를 만나 쓸쓸함과 슬픔을 넘어 자기 성찰을 나아가는 데서 의식의 밀도를 엿볼 수 있다. 눈부신 개성의 성취로 정형 미학의 새로운 길을 열어가길 바란다.
필자의 종합평
셋째수와 넷째수의 파격음보를 제외하면 형식면에서는 대체로 정격을 유지하고 있다.
신춘문예는 문학성보다 시장성을 중시하는 특징이 있다. 일시에 폭주한 작품량, 짧은 심사기간 그리고 주관자가 문학단체가 아닌 언론기관인 때문에 문학적가치가 있는 작품보다는 대중적, 시장영합적인 작품을 뽑게 되고 이로 인하여 신춘문예 특유의 스타일을 형성하여 난해시와 추상시로 흐르기도 한다.
당선작 [겨울폐차장]은 정서나 관념을 형상화하여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해 주는 것도 없고 시적논리도 빈약하고 시점(視點)이 흐려져 있다. [수의 입은 일가의 산] [몸 눕힐 저 그늘 묏자리] [아버지, 잠의 집 끌고 그 산에 당도했을까] [용광로 속 등뼈 하나] 등 일반 독자가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추상적으로 나열하고 있는 난해시이다. 심사평 중‘아버지의 “잠의 집”을 끌던 산이 “용광로 속 등뼈”를 만나 쓸쓸함과 슬픔을 넘어 자기 성찰을 나아가는 데서 의식의 밀도를 엿볼 수 있다’는 말 역시 귀신이 아니고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다. 시는 독자의 것이지 작자나 심사위원의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2. 조선일보
콩나물 일기
조민희
하지 무렵/ 짧은 고요/ 어둠에/ 잠겨 든다./
별꽃 뜬/ 어둑새벽/ 그믐달과/ 살을 섞고/
쟁쟁한/ 징소리 내며/ 두 손 밀어/ 올린다./
노굿이/ 날개 접고/ 지어가는/ 고치 속에/
갇혔다/ 튕겨진 몸,/ 바람에/ 여위어 가고/
이제는/ 못 삭힌 열망/ 갈증으로/ 남는다./
눈물로/ 녹여낼까?/ 꺼내어 든/ 물음표/
외발로/ 등 기대고/ 소통의/ 문을 연다./
화들짝/ 개나리 피어/ 또 한 생이/ 열리고./
번잡한/ 영등포역/ 문 헐거운/ 국밥집에서/
인력시장/ 줄 선 사내/ 빈속을/ 달래 주는/
그렇게/ 열반에 든다,/ 누추한 시대/ 성자처럼…/
심사위원심사평 심사위원: 한분순
서정의 화법으로 선보인 현대적 운율 돋보여 당선작은 ... 삶의 소소한 편린에서 착안한 진정의 공감을 바탕으로, 시조의 형식 미학을 지키면서 틀에 구애되지 않는 현대적 운율을 구사한다. 그리고 세밀하게 흐르는 기승전결이 뚜렷한 형상화와 어우러져 여향을 남긴 결구까지 서술과 서정이 조합된 화법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현대 시조의 범주를 새롭게 확장시킬 솔깃한 기질의 발견이라 여긴다.
필자의 종합평
3음보의 파형 외에는 형식을 잘 지킨 정격시조에 가깝다.
[노굿]은 콩이나 팥 따위의 꽃을 이르는 말이지만 보편어가 아니고 사전을 찾아야만 알 수 있는 녹슬은 단어이다. 굳이 이런 낱말을 써서 아는 체를 해야 할까? 독자를 조롱하는 건가? 명작의 길에서는 감점을 자초할 뿐이다.
이 작품은 콩나물의‘일기’가 아닌‘일생’을 그린 작품이다. 사물을 손에 잡힐 듯이 형상화하지는 못하였지만 서민생활의 단면을 희색 색조로 잘 그려내고 있다.
심사평 중 [진정의 공감] [틀에 구애되지 않는 현대적 운율] [현대시조의 범주] 등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진정의 공감은 어떤 공감이며 현대적 운율이 틀에 구애되어 있는지, 현대시조에 어떤 범주가 있는지 알고 싶다.
3. 동아일보
새, 혹은 목련
박해성
앙가슴/ 하얀 새가/ 허공 한 끝/ 끌고 가다/
문득/ 멈춘 자리/
매듭 스릇/ 풀린 고요/
콕 콕 콕/
잔가지마다/ 제 입김/ 불어넣는/
그 눈빛/ 낯이 익어/ 한참/ 바라봤지만/
난시가/ 깊어졌나./
이름도/ 잘 모르겠다/
시간의/
녹슨 파편이/ 낮달로/ 걸린 오후/
은밀하게/ 징거맸던/ 앞섶/ 이냥/ 풀어놓고/
곱하고/ 나누다가/
소수점만/ 남은 봄 날/
화르르!/
깃 터는 목련,/ 빈손이/ 사뿐하다 /
심사위원심사평 심사위원: 이근배
당선작‘새 혹은 목련’(박해성)은‘왜 시조인가?’에 대한 분명한 답을 주는 작품이다. 역사적 사물이나 자연의 묘사가 아니더라도 현대시조로서의 기능을 오히려 깍듯이 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활짝 열고 있다. 감성의 붓놀림과 말의 꺾음과 이음새가 시조가 아니고는 감당 못할 모국어의 날렵한 비상이 맑은 음색을 끌고 온다.
필자의 작품평
3자, 5자 등 길거나 짧은 파격이 거슬릴 뿐 만 아니라 [앞섶/ 이냥/ 풀어놓고]는 2 2 4음보로 용납될 수 없는 파격이다. [이냥=이대로]은 부사임으로 [앞섶]과 한 음보로 결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손쉽게 시어를 바꾸어 정격시조를 유지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파격을 범한 것이 아깝다.
새와 목련이 같은 형상으로 허공을 쪼아대고, 깃을 털고, 떠야 할 시간을 놓친 낮달은 허공에 걸려 있다. 자유시에 못지않게 표현이 자유롭고 발랄하다. 파형음보를 조금만 고치면 정격 명시조가 될 수 있으므로 정격시조는 표현이 어려우니 파격해도 된다는 변명을 무색하게 하는 작품이다.
4. 서울신문
바람의 산란
배경희
모든 것이/ 사라져도/ 바람은/ 존재한다/
수천 년/ 살아있는/ 혼들의/ 화석처럼/
떠돌며/ 우리의 삶 속에/ 잔뿌리를/ 내린다/
당신은/ 허공 속의/ 자궁에서/ 태어난다/
힘들고/ 지친 자들의/ 울음을/ 파먹으며/
온몸을/ 먹구름 속에/ 수없이/ 휘어가며/
밤새 비/ 쏟아지고/ 나무를/ 두드렸던/
바람 새들/ 불러 모아/ 한바탕/ 쓸고 간/
마당엔/ 햇살 물고기/ 푸륵푸륵/ 뛰논다/
심사위원심사평 심사위원: 한분순,·이근배
이미지와 정형미의 융합 ‘바람의 산란’은 감수성이 흐드러진 시상을 펼치는 가운데 시조만의 정형 또한 탄탄하게 지키고 있다. 이러한 조합을 기반으로, 시적 이야기를 매끄럽게 전개시킨 것도 주시할 만하다. 인간의 삶을 ‘바람’으로 투영하는 과정에서, 실체 없는 심상을 선연한 이미지로 옮기고 있어 부단한 생각의 깊이와 무게가 느껴지며, 가락을 유희하는 듯이 구성한 정서의 흐름이 노련하다.
필자의 작품평
한두 군데 파형을 제외하면 외형상으로는 3수의 정격 연시조이다.
첫 수의 [화석처럼/ 떠돌며], 셋째 수의 [나무를 두드렸던/ 바람] [한바탕 쓸고 간/ 마당엔] 등은 부자연스럽게 章을 달리하여 결합되어 있고 [바람 새들] 같이 결합될 수 없는 음보도 있다. 首 章 句는 따로 떼어 놓아도 혼자 설 수 있어야 한다.
눈으로 볼 수 없는 바람과 햇살을 형체가 있는 생명체나 물고기로 형상화하고 있는 가작이지만 자유시라면 몰라도 시조로서는 형식과 내용의 표현에 결함이 있어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5. 부산일보
해토머리 강가에서
김환수
갯버들/ 가장귀에/ 물구나무선/ 눈먼 햇살/
풋잠 든/ 하얀 잎눈/ 이따금/ 들여다본다./
도톰한/ 봄의 실핏줄,/ 돋을새김/ 불거지고./
물비늘/ 풀어헤친/ 낯익은/ 수면 위로/
명지바람/ 건듯 일어/ 빗살무늬/ 그려내고/
웅크린/ 이른 봄날을/ 종종걸음/ 재우친다./
귓가에/ 기웃거리는/ 자갈밭/ 여울물 소리/
백일 남짓/ 어린애가/ 옹알이하듯/ 재잘대고/
산그늘/ 조금씩 끌어당겨/ 정수리를// 덮고 있다./
몇 겹의/ 물굽이가/ 수만 번/ 날을 세워야/
딱지 앉은/ 상처처럼/ 푸른 문신/ 새겨낼까/
겨우내/ 숨죽인 강물,/ 접힌 허리/ 쭉쭉 편다./
심사위원심사평 심사위원: 정해송
'언어예술' 원론적 명제 충실'해토머리 강가에서'는 보다 섬세한 감성으로 언어미감에 충실하며 이미지의 조형이 탁월했다. 시는 언어예술이라는 원론적 명제에 성실하게 맥이 닿아 있다. 다시 말해 주제의식의 예술적 형상화가 시조의 그릇에 넘치지 않도록 축조했다.
필자의 작품평
정형을 벗어난 음보가 6개인 파형시조이다.
[해토머리]는‘얼었던 땅이 녹을 즈음’이란 뜻인데 현대 일반인이 쓰지 않는 단어이다. 시가 독자의 사랑을 받으려면 독자와 친해져야 한다. 일부러 독자가 알기 어려운 시어를 쓰고 자랑하거나 아는 체하는 태도를 버려야 할 것이다.
이 작품은 이른 봄 강가의 햇살(첫째 수),바람(둘째 수),물소리(셋째 수), 물굽이(넷째 수) 등을 점묘한 敍景詩에 해당한다. 작자의 정서를 입혀 잘 묘사하고 있다. 종장 [겨우내 숨죽인 강물, 접힌 허리 쭉쭉 편다.]는 시조의 가치를 한 단계 끌어 올린 절창이다.
6. 국제신문
찔레의 방
오영민
병원 문을/ 나서다/ 하늘/ 올려다 본다/
아기인 듯/ 품에 안긴/ 찔레 같은/ 어머니/
기억의/ 매듭을 풀며/ 꽃잎 툭툭,/ 떨어지고/
잔가시/ 오래도록/ 명치끝/ 겨누면서/
수액 빠진/ 몸뚱이로/ 물구나무/ 서보라며/
먼 바다/ 어느 끝으로/ 내몰리는/ 나를 본다/
파도 끝/ 수평선은/ 붉은 줄/ 내리 긋고/
굽 닳은/ 하루해가/ 출렁이다/ 멈춰 선 곳/
익명의/ 불빛이 와서/ 꽃잎으로/ 흔들린다/
심사위원심사평 심사위원: 이우걸 전일희
현대인의 정체성을 품격 높은 시조로 잘 살려'찔레의 방'은 팽팽한 시적 긴장 속에서 파편화의 길을 가는 현대인의 현실적 고뇌를 집요하게 시조화한 점이 빼어나다. 특히 운명에 무덤덤해질 수밖에 없는, 인간답지 못한 현대인의 정체를 암시와 상징으로 냉철히 응시한 점이 새롭다.
필자의 종합평
[하늘/ 올려다 본다/]는 시조의 句가 아닌 자유시句이다. 음보율이 맞지 않다.
이 작품은 시적화자가 퇴원하는 어머니를 안고 찔레 같다고 하며(첫째 수) 그 잔가시에 의하여 자신이 바다 끝으로 몰린(둘째 수) 심정을 토로(셋째 수)하고 있다.
둘째 수는 [잔가시가 “명치끝 겨누면서..물구나무 서보라”고 하며 나를 먼 바다 끝으로 내몰았다]는 의미인데 [잔가시가...물구나무 서보라며...~으로 내몰리는 나를 본다]고 표현하여 의미의 충돌을 일으키고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서보라]고 한 것은 ‘잔가시’이기도 하고‘나’이기도 한 문장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내용을 바꾸지 않고 올바로 표현하고 싶으면 자유시가 되더라도 [서 보라며]는 [서 보라고 해서]로, [내몰리는]은 [내몰린]으로 해야 시적논리가 맞고 3수의 화자가 일치하여 독자가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심사평은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든 것을‘팽팽한 시적긴장’이라고 하고, 근거 없이‘이 시는 현대인의 고뇌를 시조화한 것’이라고 과대평가하였다.
7. 경남신문
아버지와 바다
조춘희
아버지,/
수면을/ 두드리지/ 마세요 /
수평의/ 긴장을/
간신히/ 지탱하는/
해저의/
섬과 섬 사이/
안간힘을/ 보세요/
아버지,/
낚싯줄을/ 던지지/ 마세요/
거멀못/ 박아둔 자리/
새물이/ 차올라/
파도는/
푸른 비린내/
바다를/ 토막내어요/
아가야,/
염려말고/ 바다를/ 보아라/
달을 안고/ 뒤척이는/
바다의/ 설렘을/
지금 막/
사랑을 품고/
마음 붉어지는/ 찰나란다/
심사위원심사평 심사위원: 김연동, 이달균
음보와 운율 솜씨 있게 갈무리‘아버지와 바다’는 3수의 작품으로 퍽 안정된 느낌을 준다. 첫 수에서 섬과 섬 사이의 안간힘이 수평의 긴장을 지탱하는 동력임을 말하고, 둘째 수에서는 낚싯줄로 잔잔한 바다의 균형이 깨지는 상황을 연출한다. 다시 셋째 수에서는 길항 관계인 아버지와 바다가 서로를 품어 안으며 화해를 시도한다. ‘바다의 설렘’, ‘사랑을 품고’ 같은 직설적 언어가 거슬리긴 하지만 음보와 운율을 갈무리하는 솜씨에 신뢰가 간다.
필자의 작품평
이 작품은 대체적으로 시조운율이 아닌 자유시적 운율을 구사하고 있다.3.4조를 일탈한 구가 많고 돈호법(頓呼法)과 대화체를 채택하여 자유시적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독자의 흥미를 끌만한 내용이 없고 현대시의 특징인 형상화나 메타포는 한 군데도 찾아 볼 수 없다. [해저의 안간힘] [푸른 비린내] [바다의 설렘] 등 추상적인 관념이 시의 주 내용을 이루고 이들을 앞세워 고도의 문학성이 있는 작품인 양 독자를 현혹하고 있다.
8. 대구매일신문
양두고(兩頭鼓)
유현주
어우르던/ 장구가/ 더운 숨을/ 토한다/
생사의/ 경계선을/ 이랑인 듯/ 넘어와/
울음을/ 되새김하여/ 소리로/ 환생한 소/
옹차던 속/ 들어 낸/ 여섯 치/ 오동나무에/
조임줄로/ 다시 묶여/ 코 뚫림을/ 당할 땐/
북면을/ 힘껏 조이며/ 공명통을/ 안는다/
사포를/ 쇠 빗 삼아/ 쓸어주는/ 조롱목/
완강하던/ 고집이/ 세마치로/ 조율되고/
긴장한/ 소릿결들이/ 평온하게/ 풀릴 즈음/
옻 밥을/ 먹은 소가/ 밭갈이를/ 나선다/
열채로/ 엉덩이를/ 가볍게/ 두드리자/
덩더꿍,/ 변죽을 울리며/ 타령을/ 끌고 간다/
심사위원심사평 심사위원: 박기섭
활유의 기운 넘치고 정서 조율 솜씨도 자별
작품의 전편에 활유의 기운이 넘친다. 감각과 상상력의 결속이 뛰어나고, 긴장의 밀도를 다져가는 적절한 비유가 돋보인다. 사물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정서를 조율하는 솜씨 또한 자별하다. 장구는 북편과 채편의 양두를 가진 악기다. "더운 숨을 토하"던 소는 가죽으로 남아 생전의 "울음을 되새김"한다. 소의 "완강하던 고집이 세마치"장단으로 환생하면서 "공명통을" 울리는 감동에 닿는다. "옻 밥을 먹은 소가 밭갈이를 나선다"는 표현은 마지막 칠을 마치고 연주에 들어가는 모습이다. "열채로" 두드리는 "엉덩이"는 장구의 채편일 터. 그럴 때 궁글채는 북편의 "변죽을 울"릴 것이다. 그렇게 장구는 세속의 신명 속으로 "타령을 끌고 간다.
필자의 작품평
1음보를 제외하면 거의 정격시조인데 首의 경계를 없애버리고 1연 12행의 자유시로 만든 이유를 모르겠다. 전염병처럼 번진‘자유시 흉내 내기’를 아직도 좋아하는 것인가?
첫째 수(首라고 할 수도 없지만)는 장구소리로 환생한 소울음, 둘째 수와 셋째 수는 장구의 제작과정, 넷째 수는 연주장면을 그려내고 있다. 첫째 수와 넷째 수만으로도 장구로 승화된 소의 고귀한 희생을 충분히 형상화하고 있는데 둘째 수와 셋째 수는 군더더기가 되어 초점을 흐리게 하고 시의 가치를 떨어트리고 있다.
9. 농민신문
숭어 뛰다
김봉집
청파래/ 배두렁이/ 비뚜름히/ 걸쳐 입고/
선창이/ 벌렁 누워/ 선하품을/ 하고 있다/
전마선/ 세찬 물결에/ 아침노을/ 뒤척이고/
다시마도/ 미역귀도/ 숨이 가쁜/ 이 하루에/
더러는/ 재두루미가/ 먹구름 물고/ 날지만/
뒤덮인/ 적조(赤潮)의 띠가/ 황금어장/ 옭죈다/
어느새/ 눈물이 맺힌/ 배다릿집/ 늙은 아재/
덩어리져/ 식어가는/ 늦은 밥상/ 받아든다/
헝클린/ 반백의 머리/ 소금버캐/ 열리고/
바지선/ 엔진소리/ 결계(結界)를/ 푸는 안개/
자린고비/ 어부 조 씨/ 짠 냄새만/ 거머쥐고/
저 멀리/ 낭장망 너머/ 뛰는 숭어/ 겨냥한다/
심사위원심사평 심사위원: 민병도 백이운
[숭어 뛰다]는 어촌의 어려운 현실을 딛고 일어서고자 하는 어부의 결연한 의지를 견지자적 접근으로 이미지의 형상화에 성공한 작품이라는 데 두 심사위원은 동의하고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필자의 종합평
3음보의 파형을 범하였다.
선창가의 아침, 적조로 인한 걱정, 아침밥상을 받아 든 늙은 어부의 머릿속에 맴도는 숭어잡이 하루일 등을 차례로 잘 그려내고 있다,
시어를 선택함에 있어 작품의 주제에 관련하여 [청파래] [전마선] [적조] [낭장망] 등 어촌특유의 용어를 동원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배두렁이] [배다릿집] [버캐] [결계] 등 사전을 찾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어휘를 굳이 사용하여 독자를 괴롭히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작자의 어휘실력을 과시하거나 독자의 무식을 조롱하는 것으로 오해받기 쉽고 작자의 표현력 부족 또는 작품의 전달력 결함으로 낙인 찍힐 소지가 많다.
바지선(barge船)은 운하나 하천에서 화물을 운반하는 바닥이 평평한 배를 말하는데 숭어가 뛰는 바다에는 어울리지 않는 시어로 시의 작품성을 떨어트리고 있다.
심사평의 [이미지의 형상화]란 [이미지의 이미지화] 또는 [형상의 형상화]와 같은 말이므로 잘못된 표현이다.
[2009 문예지 연말수상 작품]
시조 전문지로 50년의 연륜과 최다 시조시인 배출을 자랑하는 계간 <시조문학>은 2009년 결산으로 월하시조문학상 1편, 한국시조문학상 2편, 올해의 시조문학작품상 2편, 오늘의 좋은 작품집상 2건, 달가람시조문학상 1편 등 풍성한 시상(또는 발표)을 하였다. 많은 수상작 중 꼭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작을 본다.
[시조문학] 09겨울호 <올해의 시조문학 작품상>
생명의 파도
황다연
아무리/ 말을 걸어도/ 파도는/ 듣지 못한다/
배꽃이/ 하얗게 지는/ 4월은/ 떠나가는데/
허전한/ 한 세상의 그늘/ 그리움/ 되는 것처럼/
서로의/ 날개를 쳐서/ 바람을/ 일으키며/
꽃다운/ 생각 갖게 한/ 영원이란/ 무엇인가/
아무리/ 물어보아도/ 파도는/ 대답이 없다/
심사위원심사평 심사위원: 김 준, 장지성, 김석철
수상작[생명의 파도] 역시 시적 사유능력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시조는 시이어야 한다는 말과도 잘 부합되는 작품이라고 본다. 우선 시상이 정결하고 그 표현이 비유와 상징으로 감싸여 형이상(形而上)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시조다.
필자의 종합평
시조는 형식과 내용이 다 같이 잘 갖추어져 있어야 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 작품의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시조형식이 아닌 사이비시조가 시조상을 받는 것은 웃음거리이다.
수상작 [생명의 파도]는 겉으로는 시조와 비슷하나 속은 3.5조 형식의 자유시이다. 시조정형이 3.4조라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아니하고 쓴 작품으로 보인다. 3.5조인 수상작이 시조라면 7.5조인 김소월의 시 [나 보기가 역겨워 /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 드리우리다]를 시조라고 우겨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4월은 배꽃이 하얗게 피는 달이지 하얗게 지는 달이 아니다. 표현의 오류를 범하였다.
종합하면 형식과 내용 모두 결함이 있는 작품을 올해의 대표작으로 선정한 셈이 된다. (끝)
- 2010 신춘문예 작룸평 -
현대시조 P 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