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2010년 세계 금융위기 2011/03/20 08:00 | 추천 0 스크랩 0 |
http://blog.chosun.com/ifins/5394727 | |
2007년-2010년 세계 금융위기
세계 금융 위기는 서브 프라임 론 문제(서브 프라임 주택융자 위기)를 계기로, 2007년의 미국의 주택 버블 붕괴로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계속 되고 있다.
2008년 9월 29일에 미국 하원이 긴급 경제안정화 법안을 부결함에 따라 뉴욕 증권거래 시장의 다운-존스의 평균 주가는 사상 최대의 777 달러의 폭락을 기록했다. 금융 위기는 유럽을 중심으로 각국에 연쇄적으로 퍼졌고 게다가 10월 6일부터 10일까지 암흑의 일주일간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주가의 폭락이 발생하여 세계 규모의 공황으로의 발전이 우려되었다. 일본에서도 닛케이 평균주가가 폭락한 것 외에 생명보험 회사의 야마토생명보험이 파산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크루그먼은 2009년 1월에, 생산, 금융, 소비의 세계적인 축소 상황에 대해 「이것은 실로 제2차 세계 공황(a second Great Depression)의 시작과 같이 생각 된다」라고 평가했다. 또 국제통화기금(IMF)의 도미니크·파업 로스·칸 전무이사는 2009년 2월에 비공식의 코멘트로서 「(선진 각국은) 이미 공황(depression) 상태에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2000년에 IT버블이 붕괴하여 인터넷·정보기술 관련 기업의 상장이 많은 미국 NASDAQ 시장은 대폭락을 보였고 그 영향으로 2001년4-6월부터는 미국 GDP가 3, 4분기 연속의 마이너스 성장을 보였고 실업률도 증가의 일로를 걸어 미 재정 적자는 확대를 계속하여 미국 경제는 정체 되였다. 미국 정부는 경제 대책으로 대규모 소득 감세를 실시했고 FRB는 2000년 말부터 금리인하를 반복하고 있다.
이러는 중에 2001년 9월 11일에 미국 동시 다발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를 당한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는 많은 금융기관이 입주하고 있었으므로 업무의 수행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여 뉴욕 증권거래 시장은 태평양전쟁 이래 처음 시장 폐쇄를 실시하여 4일간 휴장했다.
이미 FRB는 연초부터 7회 금리인하를 실시하고 있었지만 사건 후의 9월 17일에 긴급 금리인하를 단행했고 12월까지 4회의 금리인하를 실시했으며 본격적 금융완화정책을 시행했다. 이 결과 2001년 FRB의 정책 금리는 목표치인 연초의 6.5%로부터 12월의 1.75%까지 인하를 실시했고 미국 금융 사상에서 가장 낮은 저금리 정책이 실시되었다. 최종적으로는 2004년 5월까지 1%라고 하는 저금리 정책이 계속 되었다. 이 저금리 정책은 당초에는 정당시되었지만 그 후 부동산, 주택, 채권 등의 자산 버블이 밝혀지면서 IT버블 붕괴 후 지나친 저금리 정책이 자산 버블의 온상이 되었다고 해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BRICs를 중심으로 한 도상국의 경제발전으로 에너지 수요, 식료 수요 등의 자원 수요가 높아짐에 원유가격의 상승도 가속화되었다. 산유국은 막대한 이익을 올려 그 이익은 유럽이나 미국의 헤지펀드 등의 금융 부문으로 흘러들어온 결과 세계적인 자금여유 현상이 발생했다. 또 신흥 경제 발전 제국의 외화 준비고도 증가했고 그 자금운용이 미국으로 향한 결과 세계적인 자금이 미국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것이 미국 국내에 유입된 과잉 유동 자금이 미국 부동산 시장에도 흘러들어 서브 프라임 론으로 대표되는 주택 버블을 일으키는 토양이 되었다.
또 이라크전쟁이 발발하여 지금까지 비공식적으로 수출되고 있던 세계 제 2위의 매장량을 자랑하는 이라크의 원유 수출이 불가능하게 되어 원유 선물 시장을 통한 투기가 성황하게 되었다. OPEC 비가맹국인 러시아는 원유가격의 상승으로 채산이 어려웠던 북극 유전의 채굴이 가능해져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세계 제일의 산유국이 되었고 원유의 수출로 지금까지의 채무국으로부터 채권국으로 변했다.
에너지 가격이나 자원 가격의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의 염려되었고 대체 연료로서 바이오매스 에탄올 등의 개발이 촉진되었으며 가축 사료가 되는 곡물 가격이 상승하여 식료 위기의 징조가 나기 시작했다. 각국은 인플레 경계감으로 금융긴축을 함에 따라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생기게 되었다. 이라크전쟁 당시 지도자인 사담·후세인 대통령이 2006년 12월 30일에 처형되어 이라크의 정국안정은 전망이 밝아졌고 2007년부터 외환시장에서는 미국으로부터 보다 금리가 비싼 통화국으로의 자금 이동이 일어나기 시작하여 미 달러는 하락국면으로 변하게 되었다.
쌍둥이 적자라고 하는 재정 적자와 경상수지 적자를 안은 미국 경제에 있어서 지금까지의 미 달러의 상승은 사상누각과 같은 것이었으며 전비(戰費)의 지출은 미국 연방 정부의 재정을 악화시키고 있었다. 미 달러의 하락이 진행됨에 미 달러로 결제하는 원유 거래에서 원유 매각 대금의 실질 수입이 감소되었다. 그 대책으로 OPEC 비가맹국인 러시아나 중남미 제국은 원유의 양적 규제를 강화하여 가격은 한층 상승되었다. 이로 인해 신흥 경제 발전국들의 경제성장으로 인한 실수요가 증가되고 투기도 일어 원유가격은 2008년 7월에 147.27 달러/배럴(WTI 선물)까지 상승했다. 산유국에서는 잉여 이익의 자금이 불어났으나 자금의 순환이 진행되지 않았고 각국의 금융긴축으로 경기의 둔화가 일어나 세계경제의 정체가 시작되었다.
2004년 6월 30일 미국의 FOMC가 정책 금리를 인상하여 주택 가격의 상승이 정체되기 시작한 2006년경부터 서브 프라임 론 차주의 파탄이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 2004년-2006년에 걸쳐 미국에서는 주택 붐이 생겨 금리가 싼 동안에 저리의 2 단계 변액 론에 의하여 모집된 부동산 담보 론이 대량으로 조성되었다. 이것은 최초의 3년은 저리 고정형으로 반제하고 잔금은 4년째 이후에 변액 금리 론이 되는 계약이었으며 주택 가격이 상승하는 동안은 단기에 주택을 전매함으로써 유리하게 주택을 구입할 수 있고 혹은 전매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또 가격 상승에 의한 담보 가치의 상승분을 담보로 하여 또 다른 크레디트 론을 제공하는 서비스도 등장하여 적지 않은 이용자가 주택 가격의 상승의 혜택을 받았다. 이 주택융자의 개별 채권은 증권화(부동산 담보 증권:MBS)되어 고이율의 금융상품으로 세계 각국에 판매되었다. MBS의 판매에는 등급 설정 기관이 신용력에 대한 조사 정보를 제공하야T고 대손에 대한 보증으로 크레디트 디리버티브(채무 담보 증권:CDO나 크레디트·디폴트·스왑:CDS)등의 금융상품이 이용되었다.
이 대출은 차환기의 4년째 이후에 급격하게 금리가 상승하도록 설계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당초부터 그 위험성은 지적되고 있었다. 주택 가격이 상승하는 국면에서는 그 경종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주택 가격하락을 보이기 시작한 2006년 1월 무렵부터 부동산 담보 증권의 대손 리스크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6년까지 미국에서는 주택 가격이 상승을 계속하고 있었지만 그 후 그 성장이 급속히 둔화했다. 그 영향이 특히 현저하게 나타난 것이 신용이 낮은 층을 위한 주택융자인 서브 프라임 론이었다. 이 대출의 채무자의 일부는 주택 가격이 계속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는 변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주택 가격이 하락하자 이자지급 연체율이 급격하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채무자의 이자지급 연체가 늘어나면서 서브 프라임 론의 직접적인 대주인 주택금융 전문회사에 대한 금융기관의 융자가 신중하게 되었다. 이로써 주택금융 전문회사의 자금융통이 악화되어 경영이 파탄되는 예가 나오기 시작했다. 서브 프라임 론은 대손의 위험을 분산시키기 위해서 분할·증권화 되어 온 세상의 금융기관의 수많은 금융상품에 넣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 금융상품 자체에 대한 신용리스크가 연쇄적으로 퍼지게 되었다. 이리하여 2008년에 베어·스턴즈의 경영위기가 밝혀졌고 금융 위기가 본격적으로 세계적으로 보도되기 시작했고 9월에 미국 정부 지원 기관(GSE)의 프레디 맥과 퍼니매 2사의 실질적 파탄과 리만·브라더즈의 파탄으로 전 세계에서 신용수축이 폭발적으로 일어나 세계 금융 위기가 표면화했다.
2008년 10월 3일에 미국 정부는 7000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긴급 경제안정화 법안이 입안되었다. 세계 공황의 우려는 수면 아래로 갈아 앉았지만 금융 위기는 계속되었다. 2008년의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국 정부는 공적자금의 투입에 대한 미국 국민의 반대 여론에 배려하지 않을 수 없어 대규모 「금융기관에의 자본 투입」은 연기되었다. 자본 투입이 필요한 회사는 공적자금 차입에 따른 이자지급으로 주주에게의 배당이 감소하였고 손해 본 주주는 소송을 하는 일도 있었다.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의 신인(信認)은 요동을 쳐 미국에 집중하여 있던 경제 패권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리만 쇼크 직후에는 민간 달러자금의 대출이 극히 부족하여 국제 결제 통화가 고갈됐기 때문에 2008년 9월 18일 일. 미. 유럽의 6개 중앙은행이 통화스왑(currency swaps) 협정에 의한 대량의 달러 공급을 개시했다. 2008년 11월에는 테국과 이란의 양국 정부는 태국산의 쌀과 이란산의 원유를 등가 교환 하는 계약을 맺는 사태가 일어났다.
세계의 경제구조는 선진국이 중심이 되어 운영하는 G7구조로부터 신흥국의 성장력에 의존하는 G20 구조에 급속히 옮겨가고 있었고 미국과 함께 EU·일본·러시아·중국·중동 제국 등이 세계경제를 견인해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온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본은 90년대 후반의 금융 위기로 해외 사업의 축소와 거기에 따르는 외자계 금융기관이 일본 시장에 공세를 펼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금융 위기에서는 비교적 손실이 적었던 일본의 금융기관이 주목을 받아 노무라 증권이 리만·브라더즈의 일부 매수했고 미츠비시 UFJ 파이낸셜·그룹(MUFG)이 몰간·스탠리에 9000억엔을 출자하였다. 그 후의 주가의 급락과 경제의 급속한 축소에 의하여 일본의 금융기관도 고액의 경상 손실과 대규모 증자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나 두바이 등의 오일머니 또는 중국 등의 정부계 금융기관도 미국의 금융기관 등에 출자를 했지만 그 후의 주가의 급락이나 경상 손실이 발생하여 고액의 잠재적 손해가 발생하였다. 아이슬란드나 발트 삼국과 같이 국가 규모의 재정 파탄이 염려되는 나라도 나타났다.
2007년 8월부터 표면화된 서브 프라임 론 문제로 발단된 세계 금융 위기는 그 후에 여러 번의 소강상태가 있었지만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리만·브라더즈 증권이 2008년 9월 15일에 연방 도산법의 적용을 신청하고 도산했다. 금융시장의 혼란에 대처하기 위하여 마련된 긴급 경제안정화법이 사전에 미국 의회 지도부와 정부의 합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과 달리 9월 29일 미국 하원에서 부결되는 날 뉴욕 증권거래소의 다우-존스의 평균 주가는 사상 최대의 777 달러 하락했다. 결국 이 법안은 수정을 하여 2008년 10월 3일 금요일 미국 현지시간 오후 1시에 미국 하원을 통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날 미국 주식은 후장에 급락했다. 다음주 10월 6일부터 10월 10일까지의 1주간에 세계의 주식시장에서 크게 주가가 하락했다. 이 주에 일본의 닛케이 평균주가는 10월 8일과 10월 10일에 역대 상위에 들어가는 하락률을 기록한 것을 포함하여 5일 연속으로 2,661엔(24.33%)이나 하락 했다. 뉴욕이나 런던 등의 해외의 주요 시장도 크게 주가가 하락하여 러시아나 인도네시아 등 신흥국의 주식시장이 폐쇄되는 등, 심각한 사태가 일어났다.
이에 대해서 10월 8일에는 구미의 중앙은행이 협조하여 금리인하를 단행했고 미국의 재무 장관이 기자 회견에서 금융기관에의 자본 투입을 시사했지만 주가의 하락의 흐름은 바뀌지 못했다. 그리고 그 주의 마지막 날인 10일 마침내 일본에서 일경 선물의 사상 2번째의 서킷 브레이커가 발동되었다.
주가의 추이를 보면 2008년 11월부터 2009년 3월까지 바닥 시세권이던 각국의 주식시세는 상승으로 변해 2010년의 3 월 시점에서는 각국의 주가는 리만·쇼크 이전의 수준에 회복했다. 금융 위기의 발단인 미국에서는 다운-존스의 평균 주가가 2010년 4월 1일 10,927.07로 2008년 9월 26일의 주가수준까지 회복했다. 닛케이 평균주가는 2010년 4월 1일에 11,286.09를 기록하여 2008년 10월 1일 이래 약 1년 반 만에 고가 수준이 되었다. 그러나 동년 5월에는, 다시 10,000엔으로 하락하였다.
미국의 전미 경제 연구소는 2010년 9월 20일에 2007년 12월부터 시작된 미국의 경기후퇴는 2009년 6월에 종료한다고 했다. 이는 어디까지나 미국 내의 경기순환에 대해 말한 것이고 세계 각국에서의 세계 금융 위기의 쇼크에 의한 여파(예를 들면 두바이·쇼크, 2010년 유럽 소브린 위기)를 가져온 다양한 영향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세계 금융 위기 이후의 회복 과정 혹은 경제 추이는 각국 개별의 사정에 따라 전개되는 다양한 상황이다.
연 표
2007년
2007년 4월 - 미국 2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회사인 뉴센추리 파이낸셜이 파산신청을 하였다. 2007년 8월 - 미국 10위권인 아메리칸 홈 모기지 인베스트먼트(AHMI)사가 델라웨어주 웰밍턴 파산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하였다. AHMI는 알트-A 등급(프라임과 서브프라임의 중간 등급) 모기지가 전문인 업체이다. 세계 3위 은행인 HSBC는 미국 주택시장에 뛰어 들었다가 107억 달러(약 10조 1,000억 원)를 회수 못할 위기에 놓였다. 미국 보험사인 CAN 파이낸셜이 서브프라임 투자로 9,100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AIG는 최악의 경우 23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미국의 대출회사들이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 최근 수년간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에 대한 대출을 늘려왔다면서, 부동산 서브프라임 위기가 자동차 서브프라임 위기로 확산될 수 있다고 보고서를 발표했다. 산은경제연구소, 삼성경제연구소 등 한국의 일부 경제관련단체에서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미국 가계소비 위축에 따른 미국 경기의 급격한 침체로 이어질 경우, 한국내 금융시장 충격과 대미수출도 지장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 GDP의 20%를 차지하는 매우 큰 경제시장이다. 2007년 8월 9일 프랑스 최대은행 BNP 파리바은행은 자사의 3개 자산유동화증권(ABS)펀드에 대한 자산가치 평가 및 환매를 일시 중단했다. 서브프라임 부실로 인한 신용경색의 그 이유이다. 상환을 중단한 3개 펀드는 BNP 파리바 ABS 유리보, 파베스트 다이나믹 ABS, BNP 파리바 ABS 에오니아 등이고, 그 규모는 27억 5천만 유로에 달한다. GM은 산하 모기지 금융기관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디폴트로 약 10억 달러의 피해를 입었다.
2008년 2008년 7월 16일 - 일본의 은행 보험사들이 패니매, 프레디맥 채권 보유분은 9조엔(약 90조원) 정도가 된다고 알려졌다.[3] 2008년 9월 6일 - 미국 재무부는 주택시장 침체와 모기지 손실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양대 국책 모기지업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을 국유화하고, 양사에 각각 1000억 달러씩, 총 2000억 달러 규모의 공적자금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 두 회사는 미국 전체 모기지 채권의 절반을 발행하고 있다. 2008년 9월 15일 - 미국의 투자은행(IB)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 신청을 했다. 미국 정부는 페니메이와 프레디맥을 국유화하고 1주일 뒤에 리먼 브러더스를 파산시키기로 결정했다. 2008년 10월 20일 -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 제출한 국정감사에 제출한 답변 자료에서, 한국은행은 1970년대 후반부터 패니매와 프레디맥에 투자해 왔다고 밝혔다. 한국은행은 380억 달러어치의 채권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4] 전 세계 중앙정부는 1조 달러 이상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채권은 미국 국채는 아니지만,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채권이다. 2008년 10월 30일 - 한국은행은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300억달러 상당의 통화 스와프 협정을 체결했다.[1] 2008년 11월 10일 - 미국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는 AIG에 150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지원한다고 발표하였다.[5] AIG는 세계 최대의 보험사였다. 현재 시가총액 기준 세계 최대 보험업체는 중국의 차이나라이프이다. 2008년 11월 23일 - 미국 정부는 씨티그룹에 3000억 달러를 보증하고, 450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씨티그룹은 시가총액 7천억 달러(약 700조원)의 세계 최대 은행이었다.(2008년 10월 31일 현재 대한민국 전체 상장기업의 시가총액은 550조 원) 그러나 부동산 모기지 투자 부실로 주가가 급락했다. 2008년 11월 24일, 지난 한주에만 60% 주가가 폭락하였고, 시가총액은 205억 달러로 미국 5위의 은행이 되었다. 2008년 11월 27일 - 미국 정부는 이번 금융위기를 진화하기 위해 이미 7조 달러(1경 500조원)를 넘게 투입했다. 2008년 12월 10일 - 미국 하원은 미국 자동차 빅3인 GM, 포드, 크라이슬러에 대해 140억 달러(약 19조2100억 원)를 지원하는 대신 대통령이 임명하는 관재인(일명 ‘자동차 차르’)이 업계 구조조정을 관할한다는 법률안을 237 대 170으로 통과시켰다. 빅3는 이미 250억 달러를 저리에 대출받았었다. 2008년 12월 11일 - 미국 상원은 GM, 포드, 크라이슬러에 대한 지원 법률안을 찬성 52표, 반대 35표로 부결했다. 제2의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2008년 11월 28일 - 일본의 국제 금융 전문가 쓰루미 마사요시 호세이대 교수는 한국, 중국, 일본이 경제 통합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8년 12월 12일 - 한국은행은 중국인민은행과 1800억 위안(260억 달러 상당)의 통화 스와프 협정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기존 40억 달러에서 300억 달러로 확대한 것이다. 또한 한국은행은 일본은행과의 통화 스와프 규모를 기존 130억 달러에서 300억 달러로 확대하는 협정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2008년 12월 13일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는 "중국이 다른 나라와 통화스와프를 체결하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3] 중국, 일본은 세계 외환보유고 1위, 2위 국가이다. 2008년 12월 13일 - 일본 후쿠오카(福岡)에서 제1회 한중일 서밋 정상회담이 열렸다. 매년 정기적 정상회담 개최를 합의했다.[5] 중국과 일본 정상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자유 무역 협정(FTA)을 요구했다.
2009년 씨티그룹은 2009년까지 전체 인력의 20%가량인 7만5천명을 줄이기로 했다. 2009년 1월 28일 - 아이슬란드 연립 정부가 붕괴되었다. 2009년 2월 10일 미 정부, 금융안정정책 발표
2010년 11월 15일, EU통계국은 그리스의 대GDP 적자 비율을 2009년은 15.4%(전회 13.6%), 2008년은 9.4%( 동7.7%) 로 확대 수정했다.목표는 8.1%이므로 세출 삭감 추가가 요구되고 있다.2009년도의 유로권 16개국의 적자는 6.3%(전년2%), EU전체에서는 6.8%(전년 2.3%) 로 확대됨. 11월 22일, 아일랜드는, 총액 7,500억의 EU와 IMF 「유로 방위 기금」금융 지원 800-900억을 요청함.원인은 아일랜드가 전금융기관을 구제했기 때문에, 재정 적자가 GDP의30%이상이 되어, 공채가 GDP의176%가 되었기 때문. 11월 22일, 파이낸셜 타임즈는 바크레이즈·캐피탈의 발표로서 바젤 3의 적용(자기자본 비율 코어 Tier1 규제7%+여유1%)으로 미국의 상위 은행이 자본 부족이 되어, 리스크 자산의 매각을 재촉당할 것이라고 했다. 바젤 2(유럽은 적용이 끝난 상태)의 미국에의 적용의 영향은 예측이 붙지 않는다고 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