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이야기
소나무(松)에 학(鶴)이 날아오고 그 아래 신선(仙)이 한가히 앉아있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선거 홍보책자에 사용해 볼까하는 생각을 잠시 한 적이 있습니다. 제 이름이 학선이거든요. 저희 집 어른께서 저를 낳고 8번째 막내 놈이라 생각하시고 길 영永자를 넣어 이름을 지을까 하셨는데 지나가시던 허연 수염을 휘날리는 노인 한 분이 학선으로 하라 하셨답니다. 그래서 제 이름을 새 학鶴에 착할 선善자로 씁니다.
어릴 적에는 네 명의 형들과 세 명의 누나들 덕분에 '쫑말이' 또는 '막내'로 불리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부끄럼 잘 타고 숫기 없는 아이로 '색시' 또는 '송아지' 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담임선생께서 일본말 잘 하시는 게 자랑스러우셨던지 제 이름으로 '쇼 가꾸제이'라는 일본식 소리내기로 가르쳐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유신시절 대학을 8년 다니는 여유 덕분에 대구에서 붓글씨를 조금 배운 적이 있습니다. 붓글씨 스승은 긍농肯農선생이셨는데 이 분께서 박대통령 형님 비석 글을 써준 일이 있으셨던 모양입니다. 그 때문인지 당신 글을 알아주신 대통령을 너무나 흠모하는 나머지 삼선개헌 국민투표 찬성율을 99%까지 올려 세계만방에 알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바람에 제가 서실書室 분위기를 망쳐버렸지요.
울며 박박 대드는 젊은 놈의 버릇을 두고두고 고칠 심산이셨던지 그 며칠 후 호號를 하니 지어주시는데 "우신又新 우신又新 또 우신又新이라. 너는 우신으로 호를 삼아라" 하셨습니다. 허기야 '유신維新'을 호로 하라 안 하신 게 이상할 지경이었지요. 물론 돌아서서 콧방귀로 '유신'과 '우신'을 날려버렸습니다.
그리고는 건방을 떨기 시작했지요. 붕알 친구 놈들과 술자리에서 아호雅號 짓기를 했습니다. 성경을 옆에 끼고 막걸리를 벌컥 벌컥 들이키는 친구 놈에게 발작鉢酌이라 지어줬습니다. 중 밥그릇 '발'자에 술 칠 '작'자니 네놈 신가辛哥 성과 어울리지 않느냐? 신발작辛鉢酌!
그러자 옆에 박가 성 가진 놈은 재기才己가 좋다 했습니다. 박재기朴才己! 경상도 사투리로 바가지가 박재기거든요.
그 옆에 이가 성 가진 놈은 발사拔私가 좋다 했습니다. 이발사李拔私!
이어 양楊가 성 가진 놈은 제 성을 풀어 목양木陽이라 했고 저는 단촌檀村이라 했습니다.
박달나무 단에 마을 촌, 단촌檀村이라 지어놓고 보니 어쩐지 국수주의자 같은 맛이 풍기는 듯하여 찜찜한 판에 집에 둘째 형님께서 붉을 단丹자 단촌丹村으로 하는 것이 획수가 좋다하여 그리 바꾸어 쓰기도 했습니다. 그랬더니 촌村자가 주는 일본 맛이 계속 남아있어 별로 마음에 썩 들지가 않는군요.
결혼하고 제가 치과 수련의로 근무하고 있는 병원에 배부른 집사람이 첫아기 낳으러 갈 적에 만화 한 권을 챙겨가더니 분만실에서 의사와 간호원들과 이렇게 이야기했답니다. "우리는 벌써 아기 이름을 지어 놓았습니다. 첫애는 '사리'구요, 둘째는 '아지'구요, 셋째는 '곤니'구요, 넷째는 '충이'랍니다." 분만실 수간호사가 산모가 의사 웃기는 건 처음이었다며 저를 '송사리 아빠'라 부르며 전해준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첫째 놈 아명이 사리史里구요 둘째 놈은 아지가 아니라 아리亞里라 부릅니다. 호적에 오른 큰물 '준浚'자 법 '식式'자를 쓰는 이름의 뜻으로는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강물이니 이놈의 사기 '사史'자 고을 '리里'자와 매우 어울린다고 설명해줬더니 제 놈 덩치에 송사리라 놀릴 놈이 없다 싶었는지 그냥 잘 받아드렸습니다. 둘째 놈 준규浚圭는 한아름 가득 꽃묶음이니 '송아리'가 어떠냐 했더니 제 형이 '사리'요 제가 '아리'라 '리'자 돌림이 당연했던지 또 그냥 받아 드렸습니다. 나중에 소설 쓰시는 이윤기선생께서 아리와 사리가 바뀌었다고 아쉬워 하셨습니다.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이 아니냐구요.......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활동 중에 접하게 된 컴퓨터 전자 통신은 아이디로 영어 이름을 요구했습니다. '학선'과 비슷한 발음이다 싶어 'hotsun'으로 등록하려했더니 이미 다른 사람이 이 아이디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뜨거운 태양'이란 뜻이 너무 건방지다 싶은 차에 제 성 '송'의 약자 이니셜 '에스'를 붙여 복수형을 만들므로 덜 건방져 보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hotsuns'가 제 아이디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진보적인 단체들이 함께 사용하는 '참세상'이란 BBS에는 글을 마치면 사인을 넣게 되어있어 제 성 'song' 까지 이용해서 '맑은 햇살의 노래'라는 사인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 집사람 성씨가 '문(moon)이라 'hotsuns'와 대비된 'coolmoon'을 아이디로 정해주기도 했습니다. 인터넷 덕에 수많은 사람들이 새 이름 아이디 짓기를 했으니 'coolmoon'이 그때까지 남아 있을 리가 없지요. 그래서 달노래 'lunasong'으로 지었습니다. 그리고는 '은은한 달빛에 돌돌 물노래'라는 사인을 쓰기도 했습니다. 하이텔에 한글 아이디가 사용 가능해져서 '햇발노래'를 새 아이디로 등록할까 하다가 그만 둔 적도 있습니다.
집사람 이름 이야기가 나온 김에 더 하겠습니다. 한 20년 전쯤인가요. 과천에서 동네 할아버지가 한문을 가르치신다고 서당을 다니더니 하루는 호를 하나 얻어 왔더군요. 한참 웃었습니다. '초월'이라나요. 그래서 다른 아줌마들은 무슨 호를 지어 주시더냐 물었더니 더욱 가관이더군요. '명월이' '매월이' '향월이'....... 하하하.......
함께 터키 그리스 이집트를 여행하고는 계속 만나며 즐겁게 세상 바꾸기를 하겠다는 모임이 있습니다. '아르고나우따이'라구요. 이윤기 선생이 지으셨습니다. 유홍준 선생이 반대를 하신 이름이지만 그냥 사용하고 있습니다. 많은 영웅들이 이아손과 함께 황금 모피를 찾아 타고 가는 배 이름이 아르고 호입니다. 나우따이는 네비게이트 항해하는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아르고 호를 타고 항해하는 사람들, 즉 새로운 세상의 정체성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이란 뜻이지요. 그 아르고나우따이에서 집사람 호를 새로 지어줬습니다. 차강次岡이라구요. 한자의 뜻은 저 언덕이란 뜻이구요, 몽골어로 차강은 희다는 뜻입니다.
이제 제가 사는 과천果川에서 이웃들과 지역운동을 시작한지도 제법 되었고, 본적本籍도 과천으로 옮겼고, 이래저래 과천에 대한 애정도 표현하고 싶기도 하고 해서 '과천'을 '여름내'로 풀어쓰며 한글 호로 삼아볼까 생각도 했습니다. "뿌리 깊은 남간 바람에 아늬 믤세 꼿 조코 여름 하나니." 용비어천가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여름'은 열매 즉 과일을 뜻합니다. 그래서 열매 '과果 내 '천川을 '여름내'로 바꾼 겁니다. 그러나 제 별명으로 쓰지는 못하고 과천환경운동연합 소식지 제호를 '여름내 소식'으로 쓰고 있습니다.
환경운동에 몸을 담고 있을 때 쓰고 싶었던 호는 '콩 세 알' 이었습니다. 콩은 우리나라가 종주국이랍니다. "옛 어른들은 콩을 심을 때 한 구멍에 세알씩 심었습니다. 벌레에게 한 알, 새에게 한 알, 그리고 우리 인간이 먹을 한 알이었습니다. 현대에 와서 나누지 않고 독점하려니까 농약을 치게 되고 그래서 결국은 우리 스스로를 죽이게 되지요. 더불어 함께 사는 삶, 자연과 함께 나누는 삶이 참인간의 삶입니다......". 농부에게서 배운 콩 세 알 철학입니다. 좌우명처럼 쓰는 '한결 새롬'이란 다음과 같은 설명이 따릅니다. 모든 존재가 화和요 역易입니다. 다른 무엇으로 바뀌지 않는 실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다른 무엇'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바뀌는 것이지요. 한결 같으면서 한결같은 바뀜(易) 새로움. 바로 도道입니다. 하느님이십니다. 자연이요 삼라만상입니다. 이를 따르는 우리 자신입니다.
예순 고개를 넘으면서 시작한 거문고에도 이름을 지어 붙였습니다. 소호금少昊琴 요요陶陶. 별호도 바뀜을 계속하며 진화하나 봅니다. ‘콩세알’이 ‘삼두재三荳齋’로 ‘세알콩깍지’로, 삼두기仨豆萁로 ‘콩밝倥朴’으로 진화 했습니다. 숙재菽齋도 가끔 쓰구요. ‘우숙愚菽’ 어리석은 콩도 써 볼까 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름을 참 많이도 지어 가졌습니다. 나열 해 볼까요. 자字는 충화沖和. 호號는 콩밝倥朴, 콩밝空樸, 삼두재三荳齋, 숙재菽齋, 숙암菽庵, 기은萁隱, 단촌檀村, 단촌丹邨, 로보䝁甫, 둔보䜳甫, 둔보芚甫, 우숙愚菽, 삼로당三䝁堂, 고반와考槃瓦, 곽음藿陰, 콩세알, 세알콩깍지. 그리고 숲속으로 숨어살기를 염원하여 남한강가에 농막 하나를 꿈꾸며 고반와考槃瓦, 려운암犂雲庵, 간지관艮止觀, 소금정素琴亭, 삼두재三荳齋, 졸묵헌拙墨軒 따위 택호도 미리 마련해 두고 있습니다. 꿈 만 꾸다가 죽을 것 같긴 합니다만..... 하하
사실 저 같은 젊은 놈이 아호를 지어 간직한다는 것이 스잘대가리 없는 짓거리요 사치스런 욕심이거니 하지만 그래도 멋지고 존경스런 어른들의 호를 대할 때면 흉내 내고 싶은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위안 겸 핑계대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지어 간직하는 이름 때문에라도 여러 어른들의 가르침에 충실하다면야 선인들께서도 이 시건방을 용서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첫댓글 송학선宋鶴善 (1952 ~ ) 자字는 충화沖和. 호號는 콩밝空朴, 콩세알, 세알콩깍지, 단촌丹村, 단촌檀村등을 쓰며,
본향本鄕은 야성冶城이고 태어난 곳은 대구大邱, 직업은 치과의사입니다.
야성송씨冶城宋氏 충숙공파忠肅公派 31세世 입니다.
충화沖和라는 자字를 설명 드립니다.
충沖은 비어있다 공허하다는 뜻 외에 깊다 온화하다 부드럽고 따뜻하다 높이 날다 어리다 부딪치다 용솟음치다 등의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화和는 온화하다 온순하고 인자하다 화목하다 서로 사이가 좋다 조화되고 순조롭다 따뜻하다 서로 응하다 합치다는 뜻입니다.
스스로를 잊고 자연을 따르면 만물의 제왕이 되기에 알맞다고 이야기 하는 장자莊子 내편內篇 응제왕應帝王에 태충막승太沖莫勝이란 구절이 있습니다. 충沖은 비다 공허하다 가운데 중간 깊다는 뜻이고, 막승莫勝은 이길 것이 없음 즉 평등하고 무차별 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대허무승大虛無勝 차별이 없는 커다란 허무虛無란 뜻입니다
노자 도덕경 45장에는 대성약결大成若缺 완전한 것은 결함이 있는 듯하다 / 기용불폐其用不弊 써도 닳지 않고 / 대영약충大盈若沖 가득 찬 것은 비어 있는 듯하다 / 기용불궁其用不窮 써도 끝이 없다. /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충화沖和는 원기元氣, 정기精氣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콩밝空朴이 무어나고 물으시길레..... 장자莊子 내편內篇 응제왕應帝王의 한 구절을 인용합니다. 어사무여친於事無與親 세상일에 좋아하고 싫어함이 없음 즉 일이 생기는 데 따라 응하되, 유달리 기뻐 좋아하거나 싫어 미워함이 없고, 조탁복박雕琢復朴 허식을 깎아 버리고 본래의 소박함으로 돌아가, 괴연독이기형입塊然獨以其形立 무심히 홀로 그 형체만 서 있으면서, 분이봉재紛而封哉 갖가지 일이 일어나도 얽매이지 않으면, 다시 말해 무짐無朕의 경지에 이르러 즉 아무런 장해도 없는 자유로운 마음의 경지에 이르러 스스로를 잊고 자연을 따르면 만물의 제왕이 되기에 알맞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콩밝空朴을 호로 삼는 소이연所以然입니다
아, 왜 ‘콩’이냐구요? 우리나라가 콩의 종주국이기도 하고 콩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제가 콩알처럼 작고 잘거든요.
또‘밝’이 뭐냐구요? 밝다는 겁니다. 장천하어천하藏天下於天下라 천하를 천하에 감춘다. 이것이 밝은 것일 겁니다.
‘밝’의 어원은 옛 몽골사람들이 세계 곳곳에 정해두고 경배한 ‘보르항’ 산, 러시아에서 ‘부르칸’이라 부르는 산, 투르크에서 ‘악’ 그리스에서 아크로 폴리스, 우리는 흘屹 또 태백太白이라 부르는, 최남선이 ‘불함문화’라 주장하던 그것입니다.
자字는 충화沖和
호號는 콩밝倥朴, 콩밝空樸, 삼두재三荳齋, 숙재菽齋, 숙암菽庵, 콩세알, 기은萁隱, 세알콩깍지, 단촌檀村, 단촌丹邨, 로보䝁甫, 둔보䜳甫, 둔보芚甫, 삼로당三䝁堂, 고반와考槃瓦, 곽음藿陰 등으로 진화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