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 바꿨다
“저 육교 내가 놨다” 육교 가설의 필요성에 대한 기사를 써서 실제로 육교가 놓아지면 그 기사를 썼던 기자는 자신이 그 육교를 놓았다고 말한다. 국비 예산을 확보해 육교를 건설할 수 있도록 한 국회의원은 자신이 그 육교를 놓았다고 말한다. 그 육교가 놓일 수 있도록 행정적 절차를 진행한 시장이나 구청장, 실무를 담당한 공무원은 자신이 그 육교를 놓았다고 말한다. 육교를 설계하고 공정을 진행한 설계사나 건설회사 직원들도 자신이 육교를 놓았다고 말한다. 현장에서 직접 작업에 참여한 노무자들 역시 자신이 육교를 놓았다고 어디 가서 누굴 만나든 자신 있게 말한다.
이처럼 육교 하나가 준공되기까지 각 단계별로 참여한 많은 이들이 각자 자신의 역할을 부각 시키며 자신이 그 일을 했다고 말하는 것을 보게 된다. 한국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어떠한 성과물을 얻어내기까지 연결되는 수많은 과정에서 누구 한 명이라도 그 역할에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런 만큼 과정에 참여한 각자는 자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심지어는 모든 과정을 혼자 해낸 것처럼 “내가 그 일을 해냈다”고 거리낌 없이 말한다. 이러다 보니 별스럽지도 않은 일의 성과를 놓고 공치사를 하며 덤벼드는 인물이 수십 명에 달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기자들은 그런 과장된 표현을 특히 많이 사용한다. 어떤 물리적인 성과물 외에도 제도를 바꾸거나 사회운동을 확산시킨 경우에도 자신이 그 일을 벌였다고 과장되게 말하는 기자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성격이 다소 교만하고 공명심이 강한 인물의 경우, 듣기 거북할 정도로 자신이 한 일을 과장되게 말하기도 한다. 이런 기자들 몇 명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술자리라도 갖게 되면 자신의 손을 거쳐 가지 않은 일이 없는 듯 심하게 과장된 허풍을 늘어놓는 것을 지켜보게 된다. 물론 자신의 역할을 감추고 겸손하게 일을 하는 기자들도 많다. 하지만 내가 겪은 기자들의 상당수는 허풍쟁이 유형이었다.
기자 생활 하며 겪은 무수히 많은 일 가운데 나름 보람으로 여기는 부분이 있어 이 글을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그 일을 소개하기 위해 이렇게 돌고 돌아 어렵게 말문을 열고 있다. 앞서 예시했듯 큰 일이 하나 이루어지기까지 겪게 되는 여러 과정 중에 하나에 그치겠지만 기자인 나는 그 건에 대해 내가 그 일을 이루어냈다고 허풍을 떨곤 한다. 마치 내가 그 일을 모두 혼자서 감당해 성과를 얻어낸 것 인양 다소 과장되게 무용담을 풀어내곤 한다. 물론 여러 과정 중에 중요한 단초를 마련한 것은 사실이고 일정 정도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지만 “내가 그 일을 해냈다”라고 말하는 것은 누가 들어도 심한 허풍이다.
지난 2007년 4월의 일이다. 평소 ‘국기에 대한 맹세문’에 문법상 맞지 않는 표현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나는 차일피일만 하다가 하루 날을 잡아 그 사실을 기사로 작성하게 됐다. 정확하게는 4월 9일 기사를 썼고 10일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라는 전문 중 ‘자랑스런’의 문법적 오류를 지적했다. ‘자랑스런’은 ‘자랑스럽다’를 원형으로 하는 형용사로 ㅂ불규칙 활용을 하기 때문에 ‘ㅂ’이 ‘ㅜ’로 바뀌게 되므로 ‘자랑스러운’으로 표현하는 것이 옳다는 내용을 기사에 담아냈다. 국민 모두가 암송하고 모든 국가 행사에 이용되는 ‘국기에 대한 맹세’가 40년 간 아무런 이의 제기 없이 비문법적 표현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국기에 대한 맹세’뿐 아니라 교과서 곳곳에 ‘자랑스런’이란 표현이 남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탐스런’ ‘사랑스런’ 등의 비문법적 표현도 교과서를 비롯한 각종 서적에서 심심찮게 눈에 띈다고 지적했다. 전 국민이 즐겨 부르는 유행가 가사에서도 이 같은 오류가 많이 발견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면서 ‘자랑스러운’을 ‘자랑스런’으로 표기하는 것은 ‘아름다운’을 ‘아름단’, ‘더운’을 ‘던’으로 표현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오류를 꼬집었다. 그러면서 정부 당국을 향해 국기에 대한 맹세문의 수정을 요구했다.
사실 기사를 쓰면서 ‘아니면 말고’라는 마음이 적지 않았다. 지방지에 이런 기사가 몇 줄 보도된다고 세상이 바뀔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내 기사가 실제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 바꿀 수 있는 위치의 인물에게 전달될까 싶은 생각을 가졌다. 애초에 기사를 쓸 때부터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 바꿔보려는 의도는 없었다. 그저 독자들이 ‘이런 일도 있구나’ 혹은 ‘세상에 국기에 대한 맹세문이 문법적으로 틀리다네’ 정도의 반응을 보이기만 기대했던 것 같다. 특별한 목적의식을 갖고 기사를 썼던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그날 지면에 실릴 기사의 중요도를 평가하는 편집회의에서도 그 기사는 주요 기사로 평가받지 못했다.
그러나 다음날 하루 종일 나는 엄청난 일이 벌어지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 경험했다. 출근길에 나서며 평소처럼 라디오를 들으며 운전을 하고 있는데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내 기사를 읽어가며 국문법상 틀린 ‘국기에 대한 맹세’가 40년 넘게 전 국민에 의해 암송됐다고 진행자가 주요 뉴스로 소개하는 것이 아닌가. 회사에 출근해 사무실에 도착하자 동료기자들이 포털 사이트에 주요 검색어로 ‘국기에 대한 맹세’가 랭크됐고, 네티즌들의 갑론을박이 수백 수천 건 댓글로 달리며 전국을 들썩이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내게 전했다. 대부분의 댓글은 전 국민이 문법적으로 틀린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 40년 넘게 사용한 것이 너무 한심스럽다는 내용이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대단한 반응을 확인한 뒤 뭔가 정부가 대처에 나설 것 같다는 직감을 가졌지만 확인해보지는 않았다. 그 이후 평소처럼 하루하루 업무에 쫓기며 일상에 쫓기는 생활은 이어졌다. 그저 전국적 이슈가 되는 기사를 써봤다는 정도의 기억만 갖고 있었을 뿐 하루하루가 바쁘게 돌아가는 취재 현장을 누비며 살다보니 시나브로 국기에 대한 맹세문에 대한 오류 지적 건은 잊혀 갔다. 워낙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사안이라서 ‘뭔가 조치는 있으려니’ 싶기는 했지만 크게 관심을 두지 못했다. 그저 하루하루 내 삶을 살아가기에 바빴다.
그러던 중 그해 7월 7일 정부는 새로운 ‘국기에 대한 맹세’를 발표했다. 맞춤법을 바로잡았을 뿐 아니라 시대상과 다소 동떨어져 다수의 국민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판단되는 부분까지 현대감각에 맞게 고친 것을 국민들 앞에 공표한 것이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국기에 대한 맹세는 이전부터 시대와 맞지 않는 표현이 일부 있다는 이유로 일부 학자와 단체를 중심으로 내용의 수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던 중 문법적으로 오류인 문장을 국민 모두가 비판의식 없이 사용하고 있다는 기사가 발표되자 정부가 개정 작업에 돌입한 것이다. 정부는 내 기사가 보도된 이후 즉시 관련 전문가로 구성된 검토위원회를 꾸렸고, 수차례에 걸친 논의 끝에 새로운 ‘국기에 대한 맹세’를 만들었다.
새롭게 바뀐 ‘국기에 대한 맹세’는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로 확정됐고 이후 모든 공식 의전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전의 맹세문과 비교할 때 ‘조국과 민족의’가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으로 수정됐고, ‘몸과 마음을 바쳐’라는 문구는 시대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삭제됐다. 이렇게 해서 1972년부터(1968년부터 4년 간 충남지역에서만 사용되다가 1972년부터 전국적으로 사용됨) 전 국민이 암송하며 모든 국가 의전에 사용된 ‘국기에 대한 맹세’는 2007년에 내용이 수정됐다.
‘국기에 대한 맹세’ 전문이 바뀌기까지는 많은 과정이 진행됐고, 많은 관계자들의 의견이 모아졌다. 그 과정에 참여한 많은 이들이 저마다 자신의 역할이 컸음을 주장하며 “내가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 바꿨다”라고 말할 것이다. 내 눈으로 안 봤지만 본 것처럼 느껴진다. 나도 그 중 한 명일 것이다. 지금껏 몇 차례 술 자리에서 “내가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 바꾸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이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국기에 대한 맹세’ 문구를 수정하게 된 이유를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내 역할을 인정받고 싶다.
서두에서 밝혔듯이 어떠한 역사적 과업이 이루어지기까지 구상단계부터 실행단계에 이르도록 많은 이들이 참여하게 된다. 그 과정에 어떤 방식으로라도 참여한 모든 이들이 그 과업을 이뤄낸 주인공들이다. 대한민국 남자들의 대표적 특징 중 하나가 허풍이다. 그러다 보니 남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허풍을 떠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하지만 그 허풍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라면 그냥 인정해 주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누구나 역사의 주인이 되고 싶어 하는 소망을 갖고 살아간다. 다만 감추고 살아갈 뿐이다. 역사가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지만 나는 분명 ‘국기에 대한 맹세’ 전문을 수정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일부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내가 ‘국기에 대한 맹세’를 바꾸는데 일정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주길 바라는 유치한 마음을 갖고 이 글을 남긴다. 이 글은 책으로 만들어져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독자들이 믿든 믿지 않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