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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주인 있소
박래녀
손님이 뜸한 시간이다. 정녀는 들돌에 앉았다. 들돌이 차다. 궁둥이에 전해오는 돌의 찬 기운을 떨칠 요량으로 일어섰다가 다시 들돌에 앉았다. 찬기는 서서히 사라지고 그녀의 눈은 멍하니 시장 건너 편 산으로 간다. 바람이 휙 지날 때마다 알록달록한 옷을 벗어젖히는 산이다. 여름 내내 칭칭 감고 있던 푸른 옷에 오색 물감을 찍는가했더니 어느 새 가볍게 벗어던지는 산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언제쯤 저 숲처럼 가벼워질 수 있을까. 내가 진 모든 짐을 내려놓고 쉴 수 있을까. 산을 닮고 싶다. 산의 무소유를 배우고 싶다. 아니, 산처럼 될 수 없다면 흉내라도 낼 줄 알았으면 좋겠다. 다시 숲을 본다. 오색으로 물들었던 숲이 허전하다. 숲이 벗어 바닥에 깐 것을 본다. 저 가랑잎은 누구를 위한 배려일까. 바삭거리는 가랑잎으로 도톰하게 만든 요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볼 줄 아는, 알록달록한 가랑잎 이불을 덮고 누울 줄 아는. 그는 누구일까, 아니, 그녀는 누구일까. 그가, 아니, 그녀가 부럽다.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말뚝 하나 실하게 박아놓고 사는 사람들, 그가, 아니, 그녀가 부럽다.
엄마, 돈 언제 보내 줄 거야?
귀청을 때리는 아들의 목소리 ‘돈 없다.’란 말이 목구멍 끝에 걸려도 정녀는 늘 ‘알았다.’며 전화를 끊었다. 언제 철이 들까. 서른둘이면 제 앞가림하고도 남을 나인데 아직도 어미 젖줄을 놓지 못하고 있는 아들이다. 매달 백여만 원을 송금하자니 그녀는 숨이 찬다. 기껏 하루 일이십 만원 버는 좌판 장사로 물건 값 제하고 남는 돈 몇 푼 모아 목돈을 만들어내려면 허리가 휜다. 허리띠를 아무리 졸라매도 근근이 아들의 생활비를 보낼 수 있다.
엄마, 미안해, 빨래 취직해서 우리 엄마 호강시켜 줄게.
그런 말이라도 했던 때가 그립다. 이십 대 초반까지는 그렇게 말하던 착한 아들이었다. 그 아들이 삼십 대에 들어서자 아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엄마, 돈’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아들에게 엄마=돈으로 점철된 존재 같다. 아들이 서울에서 무슨 짓을 하고 사는지 모른다. 고시원에서 취직공부를 한다는데. 어떤 공부를 하는지, 고시원이 어떤 곳인지 정녀는 모른다. 아들이 사는 집에 가 본 적도 없다. 아들은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다. 대학 다닐 때만 해도 아들은 꿈이 컸다. 대기업에 취직하면 제 어미 호강시켜 주겠다고 호언했다. 입에 발린 말이라도 그녀는 듣기 좋았다. 장학금으로 등록금을 면제 받는 아들은 진짜 뭐가 되도 될 것 같았다. ‘쓸데없이 아르바이트 할 생각 말고 너하고 싶은 공부해라. 생활비는 내가 어떻게든지 대 주마.’ 그렇게 대견해 하던 아들이었다. 그런데 대학졸업한 지 수 삼 년이 지나자 그 밝고 활기차던 아들의 얼굴이 몰라보게 어두워졌다.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구나. 한 번 올라가랴?
아니, 바쁜데 오실 필요 없어요.
아들은 냉정하게 그녀를 내쳤다. 매달 돈만 보내주면 된다는 식이다. 아들이 원하지 않는 탓도 있지만 서울 나들이가 그녀에겐 쉽지 않다. 하루 장사를 접으면 그만큼 손해니까 주야장청 갓길에 작은 파라솔을 치고 그 아래 좌판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많이 팔리거나 적게 팔리거나 거리에 나앉아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거리에 인이 박혀서. 거리 귀신에 들려서. 돈에 목을 매달아야 하니까. 이유를 대라면 끝도 없다. 아들은 그녀가 보고 싶다면 내려왔다가 잠깐 얼굴 보여주고 쌈짓돈 챙겨 떠났다. 이제 아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고 싶지 않다. 원이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취직했다는 소식 들었으면 좋겠고, 제 밥벌이 한다는 소식 듣고 싶을 뿐이다. 그 속내는 삶에 지친 영혼을 쉬고 싶기도 하고, 아들에게서 자유롭고 싶고, 돈에서도 자유롭고 싶기 때문이다.
이제 정녀는 젊지 않다. 오십 고개 중반을 넘었다. 밤이 되면 뼈마디가 휘파람을 분다. 어깨를 주물러 줄 손도 없고, 고생한다고 다독여 줄 남정네도 없다. 오직 아들 한 명 건사하며 살아온 삼십 수년이 새삼스럽게 억울해지는 이즈음이다. 아들만 품에 안으면 좋은 시절이 다 가도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그 아들이 잘 되면 힘든 과정은 보상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의 소망이 아닐까. 이혼녀든 미망인이든 어린 자식 매몰차게 떼어내고 내 인생 찾겠다고 떠나는 어미도 많은 세상이다. 정녀는 그런 여자를 보면 참 모지고 독한 여자라고 혀를 찼었다. 달포 쯤 되었을까. 아들이 다녀갔었다. 아들은 몇 달 만에 불쑥 나타났다 하룻밤 겨우 자고 떠나면서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유는 이랬다.
엄마, 행숙이가 겨울옷이 필요하대. 한 벌 사 주고 싶은데 돈 있어?
이놈아, 니 눈에는 에미가 돈으로 밖에 안 보이남? 요새 장사가 영 시원찮다. 지난달 니 생활비 보내는 것도 할머니 덕이었다. 며칠 됐다고 또 돈타령이냐?
그 돈은 생활비잖아. 행숙이 옷 사줄 돈은 따로 있어야 한다니까.
행숙이, 아들의 여자 친구다. 딱 한 번 인사를 온 적이 있다. 정녀는 첫인상이 좋은 수더분한 아가씨를 기대했는데 얼마나 뜯어고쳤는지 모르지만 겉치레가 요란한 아가씨였다. 무슨 무역회사 경리를 본다고 했는데 경리 보는 아가씨 같지 않았지만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다. 그녀는 남녀가 만나 저거 좋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정녀 자신도 부모 반대 무릅쓰고 살림부터 차리지 않았던가. 겨우 아들 하나 남겨놓고 떠날 줄 알았으면 부모 가슴에 대못을 치면서 가출하지도 않았으리라. 가출해서 남자와 살림 차리고, 아들 낳아 방긋방긋 웃을 때 남편은 떠났지 않았던가. 이제 그 아들이, 서른 넘은 아들에게 여자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마음을 놓았다. 결혼이라도 한다면 빚을 내서라도 결혼식을 올려줄 생각이다. 하지만 아들은 결혼 이야기는 입도 뻥긋 하지 않는다. 둘이 살려니 생활비가 더 필요하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다.
그래, 너의 인생이니 네가 알아서 하리라 믿는다. 어떤 집 처녀인지 몰라도 혼기가 꽉 찬 것 같은데 가능하면 빨리 합쳐서 가정을 꾸렸으면 하는 게 어미 바람이다.
코딱지만 한 고시원 생이 무슨 가정을 꾸려요. 말 되는 소릴 하세요.
그러니까 어디든 취직자리 알아보라니까. 언제까지 어미에게 손 벌리고 살래?
엄마,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굶어 죽었으면 좋겠어? 생활비 보내주기 싫다는 말이지?
그래, 어미도 힘들다. 좀 쉬고 싶구나.
그럼 쉬어. 돈 모아 둔 것 있으면 나에게 넘겨주고 푹 쉬면 되겠네.
저 썩을 놈, 말하는 것 좀 보소. 철 좀 들어라 이놈아.
정녀는 아들의 등짝을 매섭게 후려쳤다.
요즘 삼사십 대 처녀, 총각이 얼마나 많은가. 어느 집이나 기껏 남매, 혹은 자매, 혹은 외딸, 외아들인 세상이다. 좋은 직장을 가졌거나 백수이거나 혼기를 놓친 자식을 가진 부모는 애가 탈 수밖에 없다. 그런 자식을 캥거루족이라 부른다던가. 아니 더 심한 말로 투브족이라 부른단다. 캥거루족이나 투브족이나 비슷한 의미지만 투브족은 섬뜩하다. 배울 만큼 배운 성인이 된 자식이 제 밥벌이는 아예 할 생각도 없이 부모에게 빌붙어 부모 등골 쏙쏙 빼 먹고 살면서도 미안한 구석조차 없는 자식을 이르는 말이라고 하니까. 그녀의 아들도 그 중 한 명이다.
내가 자식을 잘못 키웠지.
정녀는 한숨을 푹 쉬었다.
물건 떨어진 거 있어?
정신을 놓고 있던 정녀는 불쑥 말을 거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좌판에 물건을 대 주는 할머니가 바로 앞에 1톤 트럭을 세워놓고 운전석에서 내려 파라솔 안으로 쑥 들어왔다.
성님 언제 오셨소?
뭘 그렇게 넋을 빼고 있나? 오늘 채소나 단감이 물이 좋아. 얼마나 내려놓을까?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손님이 통 없어요. 얼마나 받아야 다 팔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할머니는 정녀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그녀의 좌판을 쭉 훑어보고 양파, 사과박스, 단감 박스, 시금치, 풋고추, 참깨 등 몇 박스, 혹은 한 두 봉지를 내려놓는다.
이건 단감 파지야. 사람들 오면 맛보기로 깎아 주면 될 거야.
어제 갖다 준 단감이 아직 좀 남았는데. 또 받아도 될지 모르겠어요.
경매장에서 받은 물건하고 맛이 달라. 나도 먹어보고 놀랐어. 이렇게 맛있는 단감은 처음이야.
어디서 가져 왔어요?
고향에 갔다 왔어. 새벽에 경매보고 그 길로 바로 갔지. 시제 모신다고 하기에 친척들 얼굴이나 보고 올까 하고 갔는데. 장사꾼이라고 이 집 저 집에서 팔아달라고 막 내 놓데. 값은 달라는 대로 주고 왔어. 그래봤자 돈으로 치면 몇 푼 안 되는 헐값이야. 무와 배추가 어찌나 실하고 좋은지. 그 좋은 놈을 제 값도 못 받고 헐값에 처분하는 농사꾼 보면 가슴이 아파. 그리고 이 단감은 말이야. 우리 동생이 농사지은 건데 맛이 끝내 주더라. 소매로 팔 수 있으면 좀 팔아달라고 하데. 해마다 단감저장고에 넣었다가 겨울에 서울 도매상으로 바로 올리더니 올해는 돈이 아쉬운 모양이야 나에게 부탁하는 것을 보니. 지금 자네에게 대 주는 단감보다 나아. 아삭아삭한 맛도 맛이지만 당도가 확실히 달라. 한 번 팔아 봐. 잘 팔리면 우리 동생네 단감을 몽땅 사 올까 싶어. 오늘 딴 것 중에 젤 좋은 단감으로 가져 왔으니 한 박스에 5만 원은 받아야 할 게야.
그렇게 비싸면 누가 살까요?
비싼 것 찾는 사람은 따로 있어. 소매로 팔면 이문이야 더 남겠지만 박스 띠로 파는 게 수월하잖아. 그러니까 내 말대로 팔아 봐. 자네는 왜 그렇게 마음이 약해. 그러니까 늘 요 모양 요 꼴이지. 이문을 남기려고 장사 하는 거잖아.
그러지요. 다들 살기 팍팍해서 걱정인데 그래도 산목숨에 거미줄 치란 법은 없다는데.
참으로 걱정이야, 앞으로 나라꼴이 어찌 될지. 한미에프티에인가 뭔가가 통과 됐다고 하잖아. 농민들이 어떻게 살지 참 걱정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란 작자가 미국에 나라를 통째로 갖다 바친 꼴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데. 정치하는 것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기도 빠듯한 우리네 사정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겠지. 배부른 자들의 농간에 죽어나는 것은 우리 겉은 가난뱅이들이란 걸 저거들이 우찌 알꼬.
그래요. 길거리 장사도 못해 먹겠어요. 중국산 무와 배추가 판을 치니 좌판에 펼친 것도 중국산 아니냐고 묻기 일쑤거든요. 제 아무리 국산이라 해도 도통 안 믿는다니까요. 모두 속고만 살았는지. 단골이야 믿고 사 가지만 뜨내기손님은 수입 산이 국산으로 둔갑 한 것 아닌가 의심부터 한다니까요. 장사하는 사람도 문제긴 해요. 양심 없는 짓거리를 하니까 그런 소릴 듣는 거잖아요. 우리같이 좌판 장사하는 할머니 중에도 그런 장사꾼이 있다니까 문제지요. 농사지은 것에 싸구려 수입 산을 섞어서 가지고 나와 판다는 소문이 파다해요. 그러니 정직하게 장사하는 사람도 덤터기 쓰고 같은 부류로 취급받는 거지요.
그렇지. 돈 되는 일이라면 양심은 걸레짝처럼 버려도 아무렇지도 않은 인종이 판을 치는 세상이야. 그래도 자네는 안 그렇잖아. 워낙 꼼꼼해서 물건은 좋은 걸 갖다놓고 이문은 적게 남기고 싸게 파니까 이 정도 장사라도 되는 거야.
다 성님 덕이죠. 성님이 이문 안 남기고 좋은 물건 대 주니까. 추울 텐데. 모과차 한 잔 드려요?
그럴까? 목이 칼칼한데. 어째 감기 기운이 있어. 찬물에 손 넣기가 겁나는 것을 보니 몸 조시가 안 좋아. 새벽바람이 엔간히 차야지.
성님도 몸살 나면 간호 해 줄 가족도 없는데. 몸 아껴가며 해요. 그렇게 돈 모아 다 뭐하게요. 나야 뜯어가는 아들놈이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지만 혈혈단신 형님이야 하루 쉰다고 달라지는 것 없잖아요.
왜 없어. 내 물건을 기다리는 동상 같은 사람 때문에 쉴 수가 없어. 약속은 천금 같은 거니까. 우리 겉은 무지렁이 장사꾼이 가장 귀히 여기는 게 뭐겠어. 의리와 정이야. 그것 빼면 시쳇말로 시체지.
무지렁이라! 정녀는 할머니의 무지렁이란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싸하게 아파왔다. 아들에게조차 학력을 말한 적이 없다. 비밀문서 보관하듯이 옷장 깊숙이 넣어 둔 대학 졸업장, 억척스럽게 야간대학을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뭔가 꿈이 있었다. 그 꿈을 위해서라면 몸이 부서져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대학교수가 되는 꿈, 시인이 되는 꿈, 화가가 되는 꿈, 그 꿈의 귀착지가 어쩌다 한 남자가 되었을까. 불나방이 불을 보자 죽을 줄도 모르고 뛰어든 형국이었지. 정녀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때는 어찌 알았겠는가. 혼례식도 치룬 적 없이 한 아이의 어미이자 난전의 장사꾼으로 살아갈 줄이야. 이제 세상에 없는 친정 부모님이지만 그녀는 부모님 생각만 하면 죄스러워서 가슴이 아팠다.
또 돌아가신 부모 생각하지? 그러게 살아계실 때 잘하지.
할머니는 어찌 알았는지 정녀의 표정을 살피며 짓궂게 웃는다. 정녀도 할머니를 마주보며 씩 웃었다. 의리와 정을 빼면 시체라는 할머니가 오늘따라 친정어머니처럼 정겹고 눈부셨다.
성님도 참, 남의 속 짚어내는 것에는 도사라니까.
그러니까 아들 너무 몰아세우지 말라고. 저도 생각이 왜 없겠어.
그러게요. 마음은 안 그래야지 하는데도 ‘엄마 돈’ 소리만 나오면 피가 치솟아요.
다 자네가 뿌린 업이야. 그래도 자네는 행복한 사람이네. 든든한 아들이 있으니. 아들이 백수라서 속은 타지만 그 아들 때문에 힘이 나는 것도 사실이잖아. 그런데 말이야. 내 애인이 자꾸 아파. 병원에 입원시켜도 잘 낫지를 않네. 저걸 죽게 내비 둘 수도 없고. 정이 들어서 떼어버릴 수가 통 없네. 어째야 할지.
정녀는 웃었다. 할머니의 애인은 일 톤 트럭이다. 트럭이 고물이 되어 심심찮게 정비소를 들락거리게 만들지만 할머니는 그 트럭을 바꿀 생각이 통 없는 눈치다. 이참에 바른 말 좀 해야지.
성님은 우리 장꾼들 사이에서 부자라고 소문이 자자하데요. 모아 둔 돈 다 어디에 쓰려고 그래요. 이참에 애인부터 바꾸시라고요. 말쑥하고 젊은 애인 두면 어깨가 으쓱해질 텐데. 망설이지 말고 젊은 애인 두세요. 장사꾼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데. 그렇게 번 돈 한 푼도 안 쓰고 놔두고 가면 엉뚱한 사람만 호강시키잖아요. 얼굴도 모르는 사돈의 팔촌이 찾아와서 챙겨갈지 누가 알겠어요. 그러니까 이젠 좀 편하게 사시라고요.
그래, 자네말도 맞아. 하지만 일을 놓으면 그 길로 나는 저승사자 따라 가게 될 거야. 그게 내 팔자라는 걸 알아.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할 팔자야. 건강하게 사는 비결이지. 17년을 나를 위해 살아준 이 녀석 끌고 천지사방 안 가는 곳 없이 돌아다녀야 하는 팔자. 자네 말처럼 나는 부자야. 평생 써도 다 못 쓰고 죽을 만큼 돈이 많을지 모르지만 그 돈 내 꺼 아니야. 잠깐 보관했다 주고 갈 물건이지. 나에게 돈은 자네 아들 같은 거야. 자네는 아들 때문에 행복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듯이 나는 그 놈의 돈 때문에 행복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거든. 그러니 어쩌겠어. 그 돈 끌어안고 길 따라 댕기다 길에서 죽을 팔자지.
참 성님도 죽긴 왜 죽어요. 아직 20년은 더 살겠거마. 젊은 애인으로 바꾸기만 하면 신수가 훤하게 될 텐데. 그때 저보고 모른 척할까 두렵네. 그럴 리는 없지만.
정녀가 농담을 하자 할머니도 씩 웃었다. 올해 일흔 다섯의 할머니는 누가 봐도 육십 대 초반으로 보일만큼 정정하고 아름답다. 후덕한 얼굴이며 적당히 살이 붙은 몸매는 입성만 깨끗하게 바꾸고 나서면 영락없이 부잣집 마나님이다. 할머니는 알부자라고 소문이 났다. 상가 건물이 몇 채가 된다고 했다. 건물 세만 받고도 돈 아쉬운 줄 모를 할머니라는데 입성은 어느 구석을 봐도 부자로 보이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돈이 있으면 저런 고물 차 끌고 다니겠느냐고, 날마다 경매장 드나들며 저리 힘들게 살겠느냐고 의심했다. 소문은 구구하기 마련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치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는가.
정녀는 할머니를 볼 때마다 그녀의 삶 어디에서 저런 활기가 나오는 것일까 궁금했는데 그게 진짜 돈일까. 할머니 말이 진실일까. 돈이 할머니를 저렇듯 자신감 있게 활기차게 만드는 것일까. 다른 무엇은 없는 것일까. 할머니를 저토록 젊어 보이게 하는 것이. 어째서 할머니는 삶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는 초연한 얼굴일까. 저것도 다 가진 돈이 많아서일까.
정녀가 다시 자기 속으로 빠져드는 순간 할머니가 툭 쳐서 그녀를 깨웠다.
무슨 일 있어? 자꾸 다른 생각을 하는 눈치라서.
별일 아니에요.
또 아들 때문이지? 돈 떨어졌다지?
정녀는 한숨을 푹 쉬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아서 불안하고, 숨이 차요.
생각이 있겠지. 자네 힘닿는 만큼만 해. 이젠 그럴 나이도 됐어. 모질게 끊는 방법도 있어.
정녀는 울컥 목이 메었다. 어려운 고비가 닥칠 때마다 그 고비를 넘기게 해 주는 미륵보살 같은 분, 비록 한 솥밥은 먹지 않아도 어머니나 진배없는 분. 정녀는 할머니를 어머니라 부르고 싶었지만 할머니가 싫다고 했다. 자매가 낫다고 의자매를 맺었다. 그들이 함께 있으면 할머니께 ‘딸이냐’고 묻는 손님도 있다. 둘이 참 많이 닮았다는 말을 듣는다. 타인끼리도 오랜 세월 함께 하면 서로 닮는 모양인지.
그게 참 어려워요. 자식이 뭔지.
그 녀석 진짜 어미그늘 벗어날 때도 됐는데.
그러게요.
자네 마음을 그 아이가 모를 리 없겠지. 얼마나 필요 한가? 내가 융통해 주지.
자꾸 성님 신세를 질 수가 없어요. 저번에 빌린 것도 아직 다 못 갚았는데.
돈은 쓰려고 버는 거야. 은행에 넣어 두면 그게 돈이야? 종이 쪼가리지.
아니요. 이번에는 안 해 줄 겁니다. 노가다를 해서라도 제 밥벌이 하라고 할 생각입니다.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야. 진작 모지게 맘먹었어야지. 잘 생각했어. 자네 아들이 정신 차리면 내가 선물 하나 하지. 자네처럼 장삿길을 열어보겠다면 점포 하나 빼 주지. 자네보고 점포 하나 차고 앉으라 해도 자네가 싫다고 하니 방법이 없고. 아들에게 주는 것은 마다하지 않겠지? 그렇다고 공짜 바라면 안 돼. 장사치는 십 원 한 장도 허술하게 대접하면 돈 신이 노하는 법이거든.
성님, 말씀만 들어도 고마워요.
말만 아니니까 생각도 좀 해 보라고. 자네 말처럼 돈 놔뒀다 남 좋은 일 시킬 거 없잖아. 좋은 일이라도 하고 죽어야지. 안 그래? 인자 가야겠다. 여기만 오면 지남철이 있는지 딱 붙어 안 떨어져 탈이야.
점심때가 됐는데 짜장면이라도 시켜 같이 먹고 가세요. 저도 아직 점심 전인데.
일 없다. 오다가 휴게소에서 요기 했다. 장사나 잘 하라고.
참, 성님, 낼이 제 귀빠진 날인데. 밥이나 같이 먹었으면 싶은데.
그래, 맞다. 이맘때지. 참 좋을 때 태어났어. 식복은 타고 났는데 말이야. 새벽에 경매장에 갔다 와서 자네 집으로 감세. 자네 생일인데. 내일 우리 어디로 단풍 구경이라도 갈까?
일은 어쩌고요. 배달은요? 물건 기다리는 사람들이 난리를 칠 텐데.
우리 집에 기사가 한 두 명이야? 그들에게 시키면 되지. 일단 내일 아침에 보자고.
할머니는 손을 흔들며 낡은 1톤 트럭을 몰고 떠났다. 시커먼 매연을 한 덩어리 던져놓고 떠났지만 정녀는 그 매연냄새조차 좋았다. 할머니가 정녀에게 난전에서 고생하지 말고 점포를 하나 줄 테니 부식가게를 해 보라고 종용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정녀는 싫었다. 사람과 사람 관계에 돈이 얽히면 좋은 감정도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사랑한다던 남자도 아내와 아이를 버리고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는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끼리 항상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리란 보장을 어찌 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물건을 대 주고 받아 파는 입장에서. 안 될 일이었다. 차라리 각자 자기 좋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일언지하에 거절 했었다.
정녀는 할머니가 내려놓고 간 물건을 햇빛 가리개 용도로 세워 둔 파라솔 뒤편에 있는 리어카에 정리했다. 리어카에 있는 물건 중에 필요한 만큼을 앞으로 꺼내 박스를 깔아 만든 좌판 위에 놓았다. 좌판 위에 놓인 물건을 쭉 훑어 봤다. 풋고추, 양파, 시금치, 사과, 단감, 참깨. 오늘은 풋고추와 단감이 잘 팔렸다. 다섯 개, 열 개씩 담은 소쿠리는 금세 비었다. 작은 플라스틱 소쿠리에 담긴 물건을 손님이 사면 물건을 비닐봉지에 담아 건네고 빈 소쿠리에 물건을 다시 담아 전을 차렸다.
갓길이 시작되는 도로 끝이 왁자했다. 또 시작인 게야. 정녀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였지만 머릿속에 그려지는 풍경까지 지울 수 없었다. 복잡한 도로가에서 심심찮게 일어나는 소음이었다. 승용차와 짐차가 갓길에 난전을 벌인 장사꾼과 언성을 높이며 삿대질을 하는 풍경이었다. 갓길을 차지한 장사꾼은 전을 벌이다보면 자꾸 갓길 바깥쪽으로 나가고, 길을 오가는 승용차 두 대가 서로 비끼려면 자연스럽게 한 운전자는 차를 갓길 쪽으로 붙여야 하는데. 백미러를 보지만 사각지대에 놓인 좌판이 차바퀴에 물리는 수가 있었다. 난전에서 잔뼈가 굵은 성질 더러운 장사꾼을 만나면 운전자는 그날 욕 복은 왕창 받고 만다. 만약 운전자 역시 한 성깔 하면 서로 멱살잡이 하며 죽일 놈, 살릴 놈, 하다가 경찰이라도 부른다는 말이 나오면 슬그머니 꽁지를 내리는 장사꾼이다. 갓길 좌판 장사는 불법이니까.
아지매, 차가 댕기고로 물건 좀 빨리 치우소. 이 길 아지매가 전세 냈소?
갓길 시작점에서 열을 받은 운전자는 정녀의 가판대 옆을 지나가면서도 신경질을 부렸다. 갓길을 점령하고 앉은 좌판 장사들 때문에 운전도 못하겠다고 성질을 버럭버럭 부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쌍스런 욕을 예사로 하는 사람도 있었다. 반면 고생한다고, 먹고살기 힘들어 어떻게 하느냐고 위로하면서 일부러 찾아와 필요한 물건을 사 가는 사람도 있었다. 정녀는 그런 사람을 만날 때마다 속으로 생각한다. 당신 같은 사람이 있어 이 세상 삶이 유지 되는 것이고, 가난하고 힘은 없는 우리 같은 사람도 행복하게 사는 거야. 고맙소.
까만 승용차 한 대가 정녀의 가판대 앞에 섰다. 정녀는 차 옆으로 다가가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다. 승용차 운전석에는 승복을 입은 노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바라보더니 그녀 쪽의 앞차 유리문을 내렸다.
뭐가 있어요?
스님, 반갑습니다. 필요하신 게 무엇이지요?
단감을 한 박스 사고 싶은데. 부처님 앞에 올릴 거라 굵고 좋은 것이 필요한데.
있어요. 조금 전에 갖다 놓은 건데요.
한 박스에 얼마요?
일단 내려서 구경하시면서 맛을 보십시오.
정녀는 부리나케 파지 상자에서 단감 하나를 꺼내 깎았다. 까치가 쪼아 못쓰게 만든 단감이었지만 굵고 싱싱했다. 정녀는 단감을 깎아 반으로 쪼개 아직도 승용차 운전석에서 내릴 생각을 않는 스님에게 드렸다. 스님은 단감을 먹어보더니
맛있네. 젤 좋은 걸로 한 상자 뒷좌석에 넣어 보소.
이건 오늘 처음 따 나온 건데 값이 좀 비싸요. 한 박스에 5만 원은 받아야 할 것 같은데. 값이 좀 쎄지요? 단감 좋은 거라 좀 비싸요. 그래도 드릴까요?
스님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녀는 할머니가 놓고 간 단감 중 한 박스를 승용차의 뒷좌석에 넣었다. 스님은 오만 원짜리 지폐를 건네주며 자꾸 정녀의 얼굴을 주의 깊게 살폈다.
고맙습니다.
정녀가 인사를 하자 스님은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가까이 오라고 손으로 시늉을 했다.
보살님, 좌판 장사 올매나 했소?
꽤 오래 됩니다.
그렇게 오래 거리장사를 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니 어쩌겠나.
노스님은 혀를 쯧쯧 차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나직하게 중얼거리는 말인데도 정녀의 귀에 속속 들어와 박혔다. 정녀는 정색을 하며 새삼스럽게 스님을 눈여겨봤다. 박박 깎은 민머리지만 머리통 전체가 하얗다. 비록 피부는 잔주름 없이 맑고 투명해도 연세가 꽤 높다는 것이 느껴졌다. 적어도 칠팔십은 되지 않았을까.
스님, 어떻게 하면 밑 빠진 독을 메울 수 있을까요?
업이야. 우리 절에 한번 오소. 저 단감 두 박스도 다 넣어주고.
스님은 부스럭거리며 승복 자락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다시 오만 원짜리 지폐 두 장과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정녀는 단감 두 박스를 트렁크에 넣어주고 스님이 내미는 지폐와 명함을 받았다. 스님은 차 문을 올리며 손을 흔들더니 그대로 힁허케 날아가 버렸다. 정녀는 멍하니 사라져가는 스님의 차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꼭 귀신에게 홀린 기분이었다. 단숨에 단감 세 박스를 팔아버렸다. 그것도 가장 비싼 값에. 덤도 드리지 못했는데. 어쩌지? 황당했다. 망연자실하게 서 있던 정녀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손에 쥔 명함을 내려다봤다. 작은 글씨로 주소가 적혀 있었다.
경남 산청군 삼장면 대하리 산 38번지 영천암 주지 상허 합장
어디선가 들은 듯한 주소, 귀에 익은 듯한 절 이름이었다. 어디서 들었을까. 부처님을 마음에 품고 살지만 살기 바빠서 초파일 외에는 절에 가 본 적이 없는 그녀였다. 아들 때문에 속이 썩을 때면 저도 모르게 ‘나무관세음보살, 부처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저 아들놈이 정신을 차려 제 밥그릇이나마 차고 살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렇게 마음으로 간절히 부처님을 찾지만 정작 몸은 하루도 쉬지 않고 길거리에 나 앉아 있었다.
정녀는 다시 정신을 곧추세우고 좌판으로 돌아와 손님을 기다렸다. 거리를 오고가는 사람들, 젊은 사람보다 늙은 사람이 더 많은 거리, 빽빽 경적을 울리고 악을 쓰면서 달려가는 차량들,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잰걸음 치며 가는 사람과 차량의 소음에 정녀는 새삼스럽게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활기라곤 느껴지지 않는 추레한 차림의 저자거리 좌판 앞에 앉은 노인이나 아낙들 얼굴에 하나같이 간절한 기다림이 담겨 있었다. 돈을 기다리는 눈빛이 너무나 간절해서 소름이 돋았다. 내 얼굴도 저 얼굴과 같을 게야. 정녀는 가방 안에서 거울을 꺼냈다. 거울 속의 얼굴은 약간 파리하고, 혈색이 없으며 푸른빛이 도는 눈은 텅 비어 있다.
당신 눈은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에 아침 햇살이 비칠 때 파랗게 빛나는 물방울 같아.
그러던 남자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좋아서 또옥 좋아서 죽겠다. 니가 말이다.
이러던 남자 역시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죽었냐? 차라리 죽었다면 추억이나 간직하고 살지. 이 나쁜 놈!
정녀는 거울 속의 자기 얼굴을 보며 독기를 품어본다. 그는 아들이 세살 때 떠났다. 달나라 여행을 가듯이 가볍게 그녀 곁을 떠났다. 딸랑 피붙이 하나 남겨놓고 무심초 박박 밀어버리고 달나라로 떠날 준비를 마친 그가 울며불며 매달리는 그녀에게 덤덤하게 말했다.
너의 살 냄새 어이 잊을까. 날마다 육덕 푸짐한 절구질 어이 잊을까.
안 가면 되잖아. 이등신 아, 가지마. 애 새끼 놔두고 어딜 간다고 그래. 내 인생 책임진다고 하던 너는 어디로 간 거야.
가야 돼. 이건 피할 수 없는 운명이야. 운명은 절대로 피할 수 없어.
운명은 스스로 만드는 거라며? 그렇게 날 꼬셨잖아. 집에서 뛰쳐나오게 했잖아. 그럼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 책임져, 내 인생 책임지란 말이야. 저 아이 인생도 책임지란 말이야.
인생은 원래 그런 거야. 만나면 헤어지는 것은 필연이라 했다. 간다. 잘 살아.
그는 로켓 대신 두 발로 터벅터벅 걸어 떠났다. 인도, 파키스탄, 독일, 아프리카, 몽고, 티벳, 지금 어디에 있을까. 거리에서 태어나 거리에서 죽을 운명이라던 그는 거리에서 죽었을까. 삼십 년을 하루 같이 거리에서 기다렸지만 그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가끔 낯선 나라의 소인이 찍힌 엽서 한 장이 날아들곤 했지만 그것도 처음 몇 달 간이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살던 살아만 있어라. 언젠가 내 이 아픔을 배로 쳐서 돌려주마. 그래, 네가 준 씨앗 한 알 잘 키워 옛말 하며 살 거다. 정녀는 아들을 믿고, 아들에게 의지해 살았다. 아들은 그녀에게 남편이자 자식이었고, 어버이 같은 존재였다. 아들이 성년이 되자 진짜 늙지 않은 그가 돌아온 것 같았다. 어찌 그리도 판박이든지. ‘빼다 박아도 너무 박았어. 어쩜 하는 짓거리조차 니 아부지냐.’ 그녀는 살아오면서 수시로 그리움과 한숨을 반죽해서 남편의 형상을 빚어 놓은 것 같은 아들을 보고 중얼거리곤 했다.
날 더러 어찌 살라고, 세월이 팍팍 가버렸으면 좋겠어. 빨리 파파 할미가 되었으면 좋겠어.
어린 아들을 껴안고 몸부림치던 젊은 날도 있었다. 숨 막혀 죽겠다는 아들에게 너 때문에 내가 산다고 조금만, 조금만 참자고 하던 시절도 있었다. 비록 단칸 셋방에 세 들어 사는 모자였지만 아들이 중학교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그녀였다. 공부 잘 하는 아들, 잘 생긴 아들, 착한 아들, 아들만 생각하면 힘이 났었다. 아들은 그녀의 인생 전부였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가슴을 치며 후회할 때가 있다. 내가 자식을 잘 못 키웠다고 부잣집 아이들 부럽지 않게 키우겠다고 치마폭에 폭 싸고 키운 것이 한이었다. 반듯한 부모 밑에서 반듯한 자식이 나온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어 행동거지 하나 허술하게 하지 않았다. 어미가 거리 장사한다고 아들이 부끄러워할까봐 좌판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게 했고, 집 역시 저자거리에서 뚝 떨어진 동네에 얻었었다. 처음엔 남의 빈 집을 공짜로 빌려 들었다가 집 주인이 판다기에 사정사정해서 시세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 그 집을 샀던 것이다. 손바닥만 한 텃밭까지 딸린 그 집을 산 날, 모자는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 집에서 저녁이면 아이와 같이 공부를 하고, 닥치는 대로 책을 탐독했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했던가. 머릿속에 지식이 깃들수록 막돼먹은 행동거지를 할 수 없게 자신을 담금질 할 수 있었다. 아니, 자신과 아들을 버리고 떠난 남자를 잊을 수 있었다.
허나, 그 아들 역시 그 아버지의 아들이란 것을 깨달았다. ‘대학 졸업만 하면 취직해서 엄마 호강시켜 드릴게요.’하던 아들이 대학 1학년 가을학기였다. 어느 날 불쑥 찾아와 한다는 말이 이랬다.
왜 남들처럼 살아야 해? 내가 없어도 엄마는 잘 살잖아. 내가 돈 안 벌어다줘도 엄마는 살잖아. 왜 날 낳았어? 왜 혼자 살았어? 부담스러워. 엄마가 부담스럽다고. 엄마가 내 앞길을 막는다고. 나는 자유롭고 싶은데. 나는 내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떠돌고 싶은데. 엄마가 나를 잡잖아. 남들과 똑 같이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잖아. 나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 어릴 때는 뭐가 되겠다는 꿈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어.
정녀는 기가 막혔다. 삶의 의문에 사로잡혔을 때는 어떤 말을 해도 아들 귀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자아를 찾기 시작한 아들이 스스로 답을 얻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격언도, 채벌도 소용없다는 것을 안다. 정녀가 아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간단했다.
학교 휴학하고 군대 다녀 오거라. 군대 갔다 오면 또 생각이 바뀐다. 그 때 다시 이야기 하자. 군대 생활 하면서 너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봐라. 네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왜 살아야 하는지를 깨달았으면 좋겠다. 어차피 인간에게 주어진 생명은 하나다.
그 아들은 공군에 지원해서 갔다가 왔지만 군대 갈 때보다 더 정신적 공황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시간만 죽이고 있다. 서른이 넘은 아들, 이제 아들에게 무엇 하나 강요할 것도, 지시하고 달랠 것도 없다. 이제 너도 성인이니 너의 인생을 살아라. 그랬지만 아들은 아직도 자립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캥거루족이 아니라 튜브 족이다. 품에 안고 젖을 먹이는 단계를 지나 아예 어미에게 영양분을 공급받을 수 있는 튜브를 끼워 놓고 사는 아들이다. 마음 같아서는 그 튜브를 가차 없이 잘라버리고 싶지만 어느 어미가 그리 모질 수 있겠는가. 천인공로 할 죄인이라도 자식에게는 한없이 자애로워질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스님이 단감을 사 간 후 손님이 끊이지 않아 아들 생각을 잠시 접었다. 좌판에 놓았던 물건도, 리어카에 담겨 있던 물건도 바닥났다. 물건이 없어 장사를 접어야 할 것 같아 서산을 봤다. 산마루에 걸린 해도 한 뼘쯤 남았다. 해가 진다. 해는 마지막 빛을 찬란하게 쏟아냈다. 불그레하게 물든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정녀는 좌판을 걷었다. 물건을 널어놨던 박스는 모아서 끈으로 묶고 남은 물건은 리어카에 담았다. 그 위에 박스 묶음을 얹고 작은 야외용 파라솔을 걷어 리어카에 실었다.
짐을 다 실은 후 리어카를 밀어내자 리어카 옆에 있던 들돌이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났다. 타원형의 청석에는 페인트로 <주인 있소>라고 쓴 글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주인 있소. 들돌의 이름이다. 들돌이 그 자리의 주인이란 뜻인지 들돌을 놓은 사람이 주인이란 뜻인지 모르겠지만 거리에는 주인이 있었다. 좌판 장사도 아무 곳에나 할 수 없다. 시장 번영회에 가입해서 정기적으로 번영회 회비를 내야 한다. 뜨내기장사는 어떤 자리를 차고앉으면 그날 하루 치 회비를 내야 장사를 할 수 있다.
정녀는 들돌을 쓰다듬었다. 주인 있소, 란 글자를 따라 써 본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간다. 그래, 주인 있지. 젊어서는 한 아름 되는 그 들돌을 낑낑 대며 들었다 놨다 했지만 이젠 혼자 힘으로 들 수가 없어 길 가장자리에 붙박이로 있다. 붙박이로 있지만 들돌은 그녀의 쉼터였다. 아들이 어릴 때는 아들을 데리고 와서 의자 겸해서 앉혔고, 아들이 학교에 다닐 때는 어미 마중을 오면 그 돌을 들었다 놨다 했다. 그 돌은 모자의 팔 힘을 기르는 운동 기구가 되었었다. 이젠 움직일 수가 없어 한쪽 곁으로 밀쳐 두고 손님이 뜸한 시간이면 주인이 궁둥이를 걸치고 앉아 쉴 수 있는 돌, 주인 있소. 란 이름을 달고 참 오랜 세월 붙박이로 그녀 곁을 지킨 들돌이 어찌 정겹지 아니할까.
돌아, 내일은 너 혼자 자리 좀 지켜줘야겠다. 내 귀빠진 날이란다. 장사 탁 접고 성님이랑 영천암 부처님이나 뵙고 와야겠다. 그래도 되겠지? 혹 아니, 부처님이 우리 아들 직장 잡아줄지. 아니면 행숙이란 처녀와 집에 들어와 부식가게라도 차려보겠다 할지. 나도 이젠 나이 탓인지 좌판 장사가 힘들어지네. 너처럼 <주인 있소>하며 쉬고 싶단다.
<2012. 가을 경남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