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인 캠페인 - 느낌 vs 표현 】
수업을 진행하시는 선생님, 교수님 그리고 많은 강사님들께서 청자에 대해 비교적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이 준비한 내용에 대한 소감 부분이라고 합니다. 많은 사실을 전달하여 이해시키는 역할과 책임을 맡은 분들인데, 청자들의 “재미있었어요” “지루했어요” 혹은 “재미없어요”라는 한 마디로 자신의 실력과 별개로 재평가되는 기로에 서게 되는 것 같다고 합니다. 수업 준비 전에 대상자에 대해 파악하고 주제와 관련된 사회적인 이슈 및 관련도서를 참고하는 것을 기본으로 알고 그리 준비하지만, 강의 시작 시간과 강의 시간에 의한 영향도 있겠지만, 위와 같은 소감이 들려오면 어찌해야 될지 답답할 뿐이라고 합니다. 이 역시도 소통의 한 부분과 연관되어 있음을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청자가 강의를 통해 깨달은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앵무새 대화법의 일환이기도 합니다. 잘 듣고 이해된 내용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을 강사와 청자가 나누게 되는 대화방식을 말합니다. “…말씀을 통해 …기분이 들며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라는 형식으로 말입니다. 80바이트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이지만, 오프라인에서 80바이트가 채 안 되는 말로 자신의 느낌 표현 하는 것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재미없다!”라는 말을 통해 화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일까요?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 ‘표현’한 것일 테니, 잠시 추측하여 봅니다. ‘당신 강사로서 자질이 없으니 당장 그만둬!’라는 의미가 담긴 말일까요? 아니면, ‘이런 재미없는 강의를 듣겠다고 앉아 있는 내가 참 한심스럽다!’라는 것을 전달하려 했던 걸까요? 위의 추측이 지나친 오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재미없다”라는 표현을 통해서 그 말을 한 사람의 욕구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재미없다”라는 말을 통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또한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어떤 느낌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요? 긍정의 메시지인지 부정의 의미가 더 많은 메시지인지 잘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 이는 자신이 가진 “느낌”에 대한 표현이 적절하지 않았기 때문 이라고 보여 집니다.
또 하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영화관에 우리는 혼자가기 보다는 여럿이 함께 합니다. 하나의 영화를 함께하며 서로 완전히 같지는 않겠지만, 비슷한 감정을 소유하며 그 영화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영화가 끝나면 자연스레 식사를 함께하거나 차를 마시며 ‘그 영화’에 대해 얘기합니다. 영화를 함께 보았으니, 당연히 영화 줄거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 것입니다. 바로 자신이 감명 깊게 본 것에 대해 상대에게 전달하고자 많은 ’애’를 쓸 것입니다. 정확하게 제대로 전달하고자 ’표현‘하는 것에 공을 들인 다는 것입니다. “이 장면에서는 말이야…정말 이런 느낌이었다구… 눈물이 나는 것을 참는데, 그 다음 장면은 더 슬프더라구… 그래서 결국 울고 말았어…” 이 말을 하며 손짓을 하고 표정을 만들어 가며 극적으로 표현하면서 상대가 공감해 주길 바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상대에 대해 참 괜찮은 사람과 별로인 사람에 대해 구분을 하게 될 것입니다. 괜찮은 사람은 “맞아! 나도 그랬어. 그 장면은 이 영화에서 최고의 장면인 것 같아. 난 그때 이미 울고 있었다고!”라며 맞장구를 쳐주는 사람일 것입니다. 이렇게 같은 감정을 느낀 사람에게는 큰 애착을 느끼겠으나, 혹여 다른 느낌의 말을 꺼내더라도 자신의 이야기에 대한 반응이기 때문에 ‘나와 좀 다르군' 이라는 생각이 들뿐 자신의 이야기에 반응을 해준 것에는 역시나 큰 기쁨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이야기에 아무런 반응도 없으면서, 공감해 주지 않는 사람이 바로 별로인 사람일 것입니다.
‘느낌' 전달을 하는 것에 대해 “정성”이라는 부분이 우리의 가치관에 많은 부분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짧고 강렬한 것이 기억에 남기기 쉬운 장점은 있으나, 구체적이거나 세세하게까지 표현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는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대화를 한다는 것은 바로 상대에 따라 자신의 표현 정도를 조절해 볼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신이 나서 표현하는 사람에게 굳이 찬물을 끼얹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린 적절한 반응 하며 대화를 유지하고자 합니다. 대화를 멈추고 싶다면 몸을 틀던지 시선을 피하는 것만으로도 가능한 것처럼, ‘느낌' 을 ‘표현' 하는 것에는 전달하고자 하는 ‘욕구'가 분명히 밑바탕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생활 속에서 혹은 간접경험을 하게 되는 책이나 영화를 보는 동안 이를 연습해 볼 수 있습니다. 아니 연습을 꼭 해야 합니다. 누군가를 따라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만의 적절한 표현방법에 대해 기준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형제, 자매가 많아 서로 사회화 과정이 자연스레 연습되었다면, 지금의 우리 아이들은 외동이가 많고, 학교에 가서도 오프라인의 현실을 나누기 보다는 사이버 상에서 배운 행위를 시도하다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어른들은 이를 수습하기에 급급하고 그리고 사이버에서 교류하는 것이 보다 더 쉬운 세대의 아이들이기에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에 대한 표현에 서툰 것 같습니다. 80바이트 안에서 언어를 표현하는 것이 경제적인 이득까지 따라오는 현실이기에 우리 아이들은 표현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많은 압박을 느끼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자연스럽게 적절하게 자신의 ‘느낌'을 ‘표현' 한다는 것은 어디서 배울 수 있을까요? 우리 어른들은 자연스레 ‘느낌'을 ‘표현' 하는 것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요? 대화에 임하는 첫 단계는 잘 듣는 것입니다. “Good Listener"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잘 들으면 잘 따라할 수 있습니다. 잘 따라하다 보면 이해가 됩니다. 말을 하다보면 생각이 정리되게 됩니다. 아이들의 말을 가로채어 결론을 내리는 어른이 우리 아이들의 표현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따라할 수 있도록 충분히 기다릴 수 있는 “Good Listener"가 먼저 되시고, 그 다음에 서로 표현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여 연습을 도와야 할 것입니다.<행가래로 10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