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2019. 12. 9.~10.(월,화)
- 음력(11. 13.~14.), 일몰17:13, 일출 07:29
●산행지: 한남금북정맥 1구간 (속리산 천왕봉~머구미재)
●산행코스: 도화리-천왕봉-불목이-서원봉-갈목재-희엄이재-말치고개-새목이재-구룡치-수철령-백석리고개-구티재-탁주봉-작은구티재-중티재-시루산-구봉산-도랑이재-벼재고개-대안리(서낭당고개)-금적지맥(보청북지맥)분기점-쌍암재-새터고개-단군지맥(팔봉지맥)분기점-살티재-국사봉-추정재(머구미고개)
●먹거리: 생수1,500cc, 땅콩샌드2, 약밥1, 크림빵2, 치즈크래커2, 쏘시지2, 미니자유시간8, 몽쉘케이크4, 사탕
●준비물: 우모복, 쟈켓, 바람막이조끼, 충전지, 스틱, 헤드랜턴2, 손수건, 버프, 구급약, 장갑, 수면용안대, 귀마개, 휴지, 물티슈, 부직반창고, 우의, 예비 양말, 옷, 팔토시
●거리: 약 58.11Km
●소요시간: 약 28.09h
●누구랑: 나홀로
●경비: 하행고속15,900, 식사5,500, 뒤풀이8,000원, 상행버스10,700
●날씨: -1~13도
●산행경과:
- 11:02 : 도화리 1,500cc
- 12:20 : 천왕봉 (1,058.4m)
- 15:15 : 불목리
- 16:14 : 갈목재 (390m)
- 16:36 : 서원봉 (546m)
- 16:52 : 희엄이재
- 18:00~19:02 : (말티재), 2,500cc
- 19:30 : 새목이재
- ??:?? : 구룡치 (동학)
- 21:22 : 수철령 (무수목재)
- 22:45 : 백석리고개, 500cc 보충
- 23:39 : 구티재
- 00:16 : 탁주봉 (550.2m) 초소
- 01:24 : 작은구티재
- 01:41~02:22 노박
- 04:14 : 보은터널
- 04:58 : 중티재
- 05:33 : 시루산 (483.8m) 절벽
- 06:15 : 구봉산 (515.9m) 초소
- 06:40 : 도랭이재
- 07:31 : 벼재고개
- 08:05 : 대안리 (서낭당고개)
- 09:40 : 금적지맥 분기점, 구룡산 갈림길
- 09:56 : 쌍암재
- ??:?? : 단군지맥 (팔봉지맥)분기점
- 13:00 : 살티재/435m, 성황대신 돌탑
- 14:00 : 국사봉 (586.7m)
- 15:06 : 추정재(머구미고개), 골프연습장 매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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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남금북정맥: 158km
* 한남정맥: 176.3km
* 금북정맥: 279km
* 1-1구간 천왕봉~산성고개: 68.28km
- 천왕봉~말티재: 13.5km (18.67km)
-. 갈목재~백석리고개: 12km
- 말티재~구티재 10.9km
- 구티재~대안리(서낭당고개) 12.9km
-. 대안리~추정재(머구미고개) 14.1km
-. 추정재~산성고개 16.88km
- 추정재~선도산 9.85km
-. 선도산~것대산 4.7km
-. 것대산봉수대~이티재 13.8km
- 상당산~이티재 8.5km
※ 사전정보
- 탁주봉 600m, 경유30분
- 시루산 내리막 절벽 조심
- 구룡산 왕복30분
- 구봉산 80m
※ 식수조달 가능지역 :
- 말치휴게소 화장실, 주말 농산물 판매
- 백석리고개 계곡, 농장주 식수
- 중티재-중티마을회관 수도 (400m)
- 벼재고개 민가(바깥대안) 식수
- 대안리고개 (마을 민가)
- 추정재 (머구미고개) 주유소옆 골프연습장 매점, 머구미 식당(043-297-0431, 11시~21시 영업)
※ 서울에서 속리산 가는길
* 센트럴시티-속리산 07:05, 3h, 18,100
* 동서울-보은 07:30, 3.20h, 16,600
* 남부터미널-보은 06:20, 3.20h, 15,900
* 보은시외버스터미널-상판리(10:20)
* 보은시외버스터이널-도화리(12:10)
- 보은읍 한양병원앞 승차
* 보은-도화리 택시 15분, 23,000
※ 머구미고개에서 서울 오는길
- 211번 마을버스~청주 도청
- 청주-동서울 막차21:30, 10,700
- 청주-서울고속버스터미널 막차21:45, 8,300
- 심야우등 23:30, 1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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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다녀온 정맥은 한남금북입니다.
백두대간 속리산 천왕봉 아래 삼파수에서 갈래쳐나와 한강과 금강의 경계를 이루며, 안성 칠장산에서 다시 한남정맥과 금남정맥으로 갈라집니다. 한남금북정맥은 충청북도 북부내륙을 동서로 가르며 한강의 남쪽 울타리 역할인 한남정맥과 금강의 북쪽 울타리 역할을 하는 금북정맥을 대간에 연결시켜주는 교량 역할의 정맥입니다.
법주사시외버스터미널에서 세조길로 천왕봉에 올라 한남금북을 접속하려면 일단 법주사 산적에게 돈을 바쳐야 하고, 거리도 약 7km로 도화리(윗대목리)에서 2.7km보다 곱절이상 멀다. 보은읍에서 도화리에 닿는 대중교통인 농어촌버스가 원하는 시간대에도 맞아야 합니다.
보은에서 20분 가는데 택시비는 23,000원,,,
※ 법주사 가는 고속버스를 타고 상판리에서 하차, 대목리로 걸어가도 시간과 경비를 아낄 수 있고, 또 농어촌버스로 갈목삼거리로 가서 터널을 통해 걸어가는 방법도 있으나 시간반은 줄기차게 걸어야 합니다.
결국은 피앗재산장지기 다정님이 이 모든걸 한방에 해결해 주셔서 서울에서 06:20분 첫차로 그나마 11시에 출발 가능했지요.
보은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한양대병원 앞으로 걸어가 농어촌버스를 타고 삼년산성과 말티재를 넘어 상판리에서 다정님을 만났습니다.^^
날씨 뒤꽁지를 계속 따르다보니 비는 걷히고 영상의 기온을 보이는 최적의 조건입니다. 12월에 한번 더 갈 수 있을까??^^ 기분좋은 예상을 해봅니다.
그러나 의외의 복병은 발목까지 빠지는 수북한 낙엽 ㅠ
월남전 스키부대 나왔다는 구라는 들어봤지만 경사지에서 낙엽을 러셀하고, 내리막에서 낙엽스키를 탔다고 하면 상상이 되실려나? 특히나 신갈과 떡갈보다는 갈참이나 졸참이 훨 더 미끄러웠습니다.
하마터면 쌍암재에서 멈출 뻔도 했지요.
금적지맥 갈림길에서 재고를 살펴보니 물1500cc, 두끼분의 과자, 미니초코렛, 사탕... 이것으로 믿고 함가보자고 생각을 바꿨네요. 물이 많이 멕히는 여름엔 벼재, 대안리고개, 쌍암재 중에서 필히 물 보충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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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은 백두대간의 속리산 천왕봉(1057.7m)에서 분기하여 북으로는 한강(총길이 494.5km)과 남으로는 금강(총길이 401km)의 분수계를 이루며 충청북도를 북서방향으로 연결하고 경기도 안성의 칠장산까지 총 도상거리 158.1km로서 백두대간에서 남한의 정중앙을 잇는 큰 산줄기입니다. 한남금북정맥은 칠장산에서 3정맥의 분기점으로 갈라지며 북서방향으로 한남정맥(총 도상거리 178.5km)으로 이어지고 남서방향으로 금북정맥(총 도상거리 282.4km)으로 이어진다.
속리산 천왕봉에서 내려온 한남금북정맥은 충북 보은의 구봉산등 500m급의 많은 봉우리를 넘으며 이어지다 청주의 선도산과 백제시대의 유명한 상당산성을 지나 괴산의 좌구산을 넘고 음성의 보현산과 소속리산을 넘으면서 9구간 정도 꾸준히 500m~600m급의 정맥 길로 줄기차게 이어오다 음성의 금왕읍을 통과하면서 표고 150m 이하의 구릉지대를 도상거리 20여km를 지나면서 끈질기게 이어지는 정맥 마루금에 감탄하게 되고 다시 이천의 마이산을 넘으면서 안성의 칠장산에 올라 한남금북정맥은 두 방향으로 분기된다.
칠장산에서 한남정맥은 북서쪽으로 경기도 용인과 수원의 산줄기를 거쳐 부천과 인천을 지나 김포의 문수봉에서 한강하구로 그 맥을 가라앉히고. 남서방향으로 금북정맥으로 이어지며 안성땅을 지나 충남의 천안과 예산의 산줄기를 거처 홍성과 당진, 서산을 지나 태안의 지령산에서 서해바다로 그 맥을 가라앉히는 3정맥 총 도상거리 619km에 달하는 큰 산줄기이다.
☆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은 백두대간의 속리산에서 시작된 정맥으로 안성 칠현산(七賢山)에서 끝맺는 정맥으로 한남·금북으로 이어주어 서북쪽으로 김포 문수산(文殊山)과 서남쪽으로 태안반도 안흥까지 이르게 하는 산줄기의 옛 이름이다. 산경표에서 규정한 1대간 1정간 13정맥중의 하나로, 해발 400∼600m의 산들로 연결되었으나 때로는 100m의 낮은 구릉으로 이어지기도 한 이 산줄기는 동쪽으로는 괴산·음성·충주 등 중원의 남한강지역과 서쪽으로 이어지는 보은·청주·증평·진천 등 금강 북부지역의 생활 문화권을 영유하였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와 백제의 접경지역이기도 하였지만 현재는 중부지방과 호남지방의 자연스러운 한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한남금북정맥을 이루는 산세는 속리산 천왕봉에서 서북쪽으로 치달으며 말티재·구치(九峙)·시루산·구봉산(九峰山)·국사봉(國師峰)·선두산(先頭山)·선도산(先到山)·상봉재·상당산성(上黨山城)·좌구산·칠보산(七寶山)·보광산·행태고개·보현산·소속리산·마이산(馬耳山)·차현(車峴)·황색골산·걸미고개·칠현산으로 이어주고 있다.
좀더 쉽게 설명하면 한남금북정맥은 충청북도 북부내륙을 동서로 가르며 한강의 남쪽 울타리 역할을 하는 한남정맥과 금강의 북쪽 울타리 역할을 하는 금북정맥을 백두대간과 연결시켜주는 교량 역할의 정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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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갚는다는 아름다운 명칭을 가진 보은군은 오랜 옛날 삼국시대만 해도 신라 지증왕 3년(553) 삼년산군(三年山郡)이 되었고, 경덕왕 1년(742) 삼년군(三年郡)으로 개칭되었다. 그후 고려 왕건 태조 10년 서기 928년에 보령으로 고쳐 부르다가 조선국 제3대 태종 6년 (丙戌) 서기 1406년에 보은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는데 죄의식으로 생긴 심신의 병을 속리산에 와서 치료한 태종이 충청도에 보령이라는 지명이 둘이 있어 개명할 것을 지적하면서 갚을보(報) 은혜은(恩) 자를 넣어 보은(報恩)이라 칭하도록 하명하였다는 것이다. 고려 현종 9년(1018) 경상도 땅에 속하기도 했으나 조선 태종 13년(1413) 충청도 땅으로 돌아왔다.
삼국시대의 각축장이었던 충청북도에는 곳곳에 성이 많습니다. 보은과 청주, 대전과 옥천, 충주는 한때 고구려와 백제의 접경이었고, 나제동맹 이전 백제와 신라의 국경선이 접하는 지역으로 삼년산성, 상당산성, 온달산성 등 수많은 산성이 존재하는 곳이기도 하다.
조선말 양반의 비율이 5~10%이었으니 동학은 성도 없는 이땅의 주된 자들의 눈뜸이라, 만해, 백범, 의암선생도 유소년기 온 나라를 휩쓴 동학을 경험하였고 동학농민운동이 1894년 일어났으니 불과 120여년 전의 일이다. 남접의 집회가 불의한 권력에 맞서 사람대접을 원했다면 북접의 보은집회는 교조신원운동을 넘어 정치적 입장까지 내보이며 사회개혁적 성격을 지니게 됩니다. 동학농민운동이 민란의 성격을 넘어 반침략, 반봉건을 지향하는 외세와 집권층에 대한 도전이며 개혁운동으로 전개되기에 이르자 정부의 원군요청으로 청군이 출동하고, 뒤이어 텐진조약에 따라 일본군도 출동해 옴으로써 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됩니다. 정부군과 일본군을 상대로한 동학의 접전은 북접이 운거한 보은 북실에서도 벌어졌고...
첫구간 만수계곡의 물을 모은 삼가저수지가 삼가천을 이루며 보은과 옥천의 젖줄 보청천으로 흘러들고, 보청천은 목천의 강마을 청성면 고당리의 합수점에 이르러 다시 금강과 합류합니다.
동곡저수지(구룡저수지)가 보은읍에서 보청천을 만나면서 탄부면에서 삼가천과 합류하고, 말치고개에서 서쪽 방향으로 이어지는 장재리 장재저수지에서 흐르는 물은 탄부면 임한리에서 삼가천과 만나 금강으로 흘러든다.
한남금북정맥 북사면으로 흐르는 물은 모두 달천을 이루어 보은군 북쪽을 지나고 괴산읍 동부를 지나 충주시 서부 탄금대에서 남한강으로 흘러듭니다. 달천의 시원지는 속리산 경업대 아래 관음암에서 법주사를 경유하여 시작되고, 그 끝 또한 충민공 임경업장군의 출생지요 묘가 있는 탄금대로 123km를 흐르니 한편으로 임경업장군의 억울한 죽음을 이어가는 물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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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화리(대목리)-천왕봉 2.7km
* 천왕봉-이티재 75.9km
* 천왕봉-구티재 24.4km
- 천왕봉-말티재 13.5km
- 말티재-구티재 10.9km
* 구티재-추정재 27km
- 구티재-대안리고개 12.9km
- 대안리고개-추정재(머구미고개) 14.1km
* 천왕봉-상당산 67.4km
- 추정재-상당산 16km
- 상당산-이티재 8.5km
도화리(桃花里/윗대목리/天皇寺/340m) → (2.7㎞) → 천왕봉(天王峯/1,058m) → (1.1㎞) → 807봉 → (2.1㎞) → 667.3봉(삼각점) →(1.1㎞) → 능선(635) → (2.1㎞) → 중계탑 → (0.9㎞) → 헬기장 → (2.2㎞) → 갈목재(葛目峙/390m) → (1.7㎞) → 회엄이재(홀어머니재/回越峙/410m) → (2.8㎞) → 말티고개(말티재/430m) → (2.0㎞) → 새목이재(520m) → (2.5㎞) → 구룡치(九龍峙/480m) → (1.2㎞) → 수철령(水鐵嶺/460m) → (2.5㎞) → 백석리고개(白石峙/310m) → (2.2㎞) → 구티재(龜峙/九峙/280m)
구티재(龜峙/九峙/280m) → (1.0㎞) → 탁주봉(濯州峰)갈림길 → (1.3㎞) → 작은구티재(산대고개/오르막차로끝/290m) → (2.7㎞) → 445봉 → (3.6㎞) → 시루산(484m) → (1.3㎞) → 구봉산(九峰山/산불감시초소/516m) → (2.2㎞) → 벼재고개(성취고개/295m) → (0.8㎞) → 대안리고개(서낭당고개/19번국도/291m) → (2.9㎞) → 금적기맥분기점 → (0.5㎞) → 쌍암재(雙岩峙/571지방도/290m) → (2.0㎞) → 단군지맥(팔봉지맥)분기점 → (3.8㎞) → 살티재(三日峙/475m) → (1.9㎞) → 국사봉(國師峰/586.7m) → (3.0㎞) → 추정재(楸亭峙/머그미고개/32번국도/SK주유소/26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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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신 와중에도 다정님이 친히 도화리까지 델다 주신다.
더 도울 일 없느냐며 아쉬운듯 장도를 기원해 주시며... 바쁘신듯 돌아가시고~ 감사드립니다.^^
들머리는 이 다리 오른쪽 도로입니다. 저 맨 뒤에 능선을 걸으며 다시 도화리를 보게 된답니다.
♤ 도화리(桃花里/윗대목리/天皇寺/340m)
한남금북 정맥 접속구간으로 자주 사용하는 코스 출발지인 도화리, 대목리(大木里) 도화동(桃花洞)
대목리의 원래 이름은 도화동(桃花洞)이다. 옛날 임경업 장군이 속리산 천왕봉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니 온통 복숭아꽃으로 뒤덮여 있어 도화동이라 불렀다는 이야기와 함께 천왕봉 아래 박씨 묘자리 터 일대가 마치 커다란 복숭아꽃과 같은 지형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도화동은 그 뒤 마을이 크게 화목하다 하여 대목동(大睦洞)이라 불리우다. 일제시대 마을 전체가 큰 나무에 싸여 있다 하여 대목리(大木里)가 되었다고 한다.
2007년 일제잔재 청산 일환으로 속리산 최고봉인 천황봉을 천왕봉으로 변경하였다. 물론 월출산 천황봉처럼 그 이전부터 천황봉인 곳도 예외로 존재한다.
♤ 속리산(俗離山/1,058m) -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과 경북 상주시 화북면 경계에 있는 산.
속리산(俗離山)은 백두산에서 발원한 한반도 산줄기의 뿌리를 이루는 12종산 중 하나이다. 빼어난 수려함으로 대한팔경에 속한 이 산은 소금강산(小金剛山), 광명산(光明山), 지명산, 미지산(彌知山), 구봉산, 형제산, 자하산 등의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특히 아홉 개의 봉우리가 있다 하여 구봉산으로 많이 불렸으나 삼국시대부터 속리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백두대간에 속하며, 주위에 도장산(道藏山, 828m) 등이 있다. 북서쪽에 솟은 묘봉(874m)에서부터 남동방향으로 관음봉(985m)·문장대(1,033m)·입석대·비로봉·형제봉(803m) 등이 이어져 있으며, 서쪽으로는 수정봉(水晶峰)·태봉(胎峰)이 천왕봉과 연이어져 있다. 한국의 8경(八景) 가운데 하나이며, 비교적 산세가 험하며 웅장하다. 기반암은 화강암·변성퇴적암이다. 동쪽 계곡에서 발원하는 물은 낙동강 상류로 흘러들며, 남쪽 계곡에서 발원하는 물은 금강과 한강의 상류로 흘러든다. 다양한 동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소나무·졸참나무·신갈나무·잣나무·전나무·버드나무 등 수림이 울창하다. 특히 산록에 우거진 조릿대(산죽) 숲이 장관이다. 기암고봉, 울창한 수림, 깊고 수려한 계곡, 폭포 등의 뛰어난 자연경관과 법주사를 비롯한 수많은 문화유적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이 일대가 1969년에 국민관광지로, 1970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속리산국립공원). 1984년 충북 괴산군의 화양동도립공원이 국립공원에 편입되어 총면적은 283.4㎢에 이른다. 일반적으로 보은 속리산이라고도 하는데, 상주 속리산 쪽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은 법주사와 같은 유서깊은 사찰이 없고 교통·숙박시설 등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천왕봉 아래 샘물이 있긴한데 아쉽게도 갈수기에는 마른다는 사실을 함께 알아두자고요. 위치는 비밀아닌 비밀~^^ (이미 아시는 분은 다 알고 계십니다.)
♤ 삼파수(三派水) 천왕봉 - 낙동강, 한강, 금강의 발원지
속리산의 주봉인 해발 1058m의 천왕봉은 삼파의 분수령이자 한남금북정맥이 분기된다. 천왕봉의 장각폭포와 문장대의 오송폭포, 그리고 강선대에서 천왕봉 물과 다시 만나 도장산과 청화산 사이로 용유계곡과 병천계곡의 절경을 이루며 썅룡 30리 곡구를 거쳐 낙동강으로 흐른다. 백악산 옥량폭포에서 늘티 서북쪽과 갓티재가 만나 선유동 물을 흡수하여 화양구곡의 절경을 이루면서 문장대 관음봉과 용화온천 물이 합류하여 한강 상류를 형성한다. 천왕봉과 형제봉의 서북쪽 삼가저수지의 물이 옥천군으로 흘러 금강으로 흘러간다.
처음으로 사람사는 동네를 보며 여기가 갈목이 맞죠? 물으니 무료한듯 하품하던 분이 네~ 해주신다. 공사를 맡은 일꾼 같은데 홀로 이 산속에서 얼마나 무료할까?
♤ 불목이재(444m) - 철망과 녹색 그물망 있는 농장부지
웃갈목이에서 보은과 경북, 문경으로 통하는 세갈래 길이 있으므로 "삼가"라는 이름이 유래한 삼가리 불목이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불-목이(佛目里)[터] 삼거리 서북쪽에 있는 마을터. 산형이 부처의 눈처럼 생겼다고 함. 마을이 있었으나 화전정리 때 이주하였다.
도로바닥에 풀이 무성하다. 우측 울타리 저쪽 끝으로 기오른다.
정맥길이 내속리와 외속리의 경계이지만 속리산면은 여기서부터 형제봉으로 이어진다.
♤ 갈목재(葛目峙/505번 2차선 지방도/390m)
갈목리에서 삼가저수지로 넘어가는 데 있는 고개로 전에 갈목리 마을 주위에 칡덩굴이 많아 갈목이라 하였다고 하나 길이 갈라지는 목에 위치한 마을이기 때문에 '갈목리’라 하였다고도 한다. 내속리와 외속리의 경계로 속리산면은 이곳에서 형제봉으로 이어진다.
보은 고을은 풍수지리설과 관련해 사증(四甑·네시루봉)과 팔항(八項·여덟 목)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그 중에 하나라고 한다. 삼가리 고개로 불리우다 길이 확장포장되면서 갈목재로 고쳐 부르고 있다고 한다. 갈목재는 서북쪽의 보은군 속리산면 갈목리와 남동쪽의 삼가리를 접하고 있는 505번도로 "비룡동관로"의 고갯마루이다. 속리산 천왕봉에서 남서쪽으로 뻗은 마루금이 갈목재를 통과 후 서진하다 말티고개를 통과하며 북진하게 된다.
미세먼지가 많은지 눈이 침침한건지... 암튼 발아래는 절벽이다. 조심조심...
♤ 서원봉(書院峰/546m) - 충청북도 보은군 장안면,속리산면
"상현서원"이 있어서 서원이라는 지명이 유래한, 외속리면 서원리에 있는 봉이라 붙여진 듯한 서원봉으로 추측이 된다. 정부인소나무가 지키는 錦北正脈의 山 書院峰(서원봉/546m)은 보은군 장안면과 속리산면의 경계에 자리하는 아담한 산이다. 俗離山(속리산) 天王峰에서 비롯되는 錦北正脈이 남쪽으로 주능선을 이어 505번 지방도를 지나자마자 처음으로 솟구친 봉우리가 서원봉이다. 들머리 書院里라는 마을 이름 때문인지 이 마을은 고시촌(考試院 10여 개)을 이루고 있다. 또한 書院里는 俗離山 天王峰으로 향하는 충북 알프스의 기점이다. '충북 알프스'는 1998년 보은군에서 지정했다. 남쪽에 "서원리"가 위치하고 있는데, 지도에 나와 있지 않는 봉우리 이름 "서원봉"이란 표지판이 나무에 걸려있다. 회엄이재 방면으로 진행하며 남서쪽 충청북도 보은군 장안면 서원리 마을 일대가 잘 조망된다. 동남쪽 방면에는 구봉산 마루금이 조망된다.
지금이야 도로가 뻥뻥 위아래 가리지 않고 뚫려있지만 예전에는 고갯길이 지름길이요, 마을과 마을을 연결해 주는 통행로이다.
♤ 희넘이재(홀어머니재/回越峙/410m)
내속리면 갈목리에서 외속리면 서원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이곳을 넘어가는 신혼 가마는 남편이 죽어 홀어미가 된다 하여 홀어머니재라고 하며, 그리하여 돌아서 간다고 해서 희너미재 회월티 라고 한다. 또한 옛날 속리절 중과 구병절 중이 이 고개에서 서로 만나게 되면 허행하고 되돌아 갔다하여 생긴 이름이라 한다.
터널 건너편이 보은읍에서 올라오는 구절양장 구불구불한 말티재 오르막 도로입니다.
말티재 화장실이 낸난방에 샤워장까지 갖춘 (비데는 아니고) 최신식이네요. 음악과 식수 공급됩니다. 안온한 화장실 안에서 행동식을 보충하며 배낭에 물병 다섯개를 장착하고 본격적인 야간전투를 준비합니다.
♤ 말티고개(말티재/430m) / 박석티(薄石치), 박석재
말티고개(말티재/430m)는 충청북도 보은군 장안면 속리산의 언덕으로 충북 보은군 장안면 장재리 산5-12번지에 해당된다. 속리산에는 오랫동안 존재한 박석길이 유명하였는데 이 박석은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고려 태조 왕건이 속리산에 거동하면서 고개를 넘어가기 위해서 길을 닦도록 명하고 얇은 돌을 운반하여 3~4리나 깔은 것이 시초라 한다. 왕건의 할아버지인 작제건이 속리산에 은거하며 불경을 탐독하다가 죽었기 때문이라 한다. 또, 조선 세조가 속리산으로 행차할 때에 외속리면 장재리에 있던 별궁(현 대궐터)에서 타고 왔던 가마를 말로 갈아탔다 하여 여기에서 말티재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도 하고, 세조가 속리산을 오를 때에도 진흙으로 된 길이라서 행차를 위해 얇은 박석을 운반하여 길을 정비하였다 한다. 다른 설에 의하면 '말'의 어원은 '마루'로서 높다는 뜻으로 말티재는 '높은 고개'라는 뜻이 된다는 설, 말 고개라는 뜻의 말티재가 되었다 라는 설이 있다. 그 뒤 인도의 형태로 존재하였지만 현대적인 형태의 등산로로 개설된 것은 1923년 당시 충청북도지사 박중양이 속리산의 사찰들을 방문하기 위해 속리산을 방문했는데 진흙탕으로 된 길을 보고 분개하여 당시 보은군수 등을 종용하여 말티고개로 올라가는 등산로를 포장하게 하여 이때 처음으로 자동차와 일반인이 오를 수 있는 길을 개설하였고, 그 뒤 1967년 도로폭을 15m 정도 확장시켰으며 1980년대에는 인도를 깔기도 했다. 보은읍내에서 약7km 지점에 있으며 속리산 입구에 위치한 언덕으로 높이는 해발 430m에 해당된다.
♤ 속리산 말티재 자연휴양림
속리산 말티재는 속리산국립공원을 가기 위한 첫 관문으로 꼬불꼬불 열두 구비나 되는 가파른 고갯길로 고려태조대왕께서 속리산에 오실 때 닦은 길이다. 조선시대 제7대 임금인 세조대왕께서 속리산에 오르실 때 급경사지로 가마 이동이 어렵다하여 말로 갈아타고 고개를 넘고 나서 속리산면 갈목리 부락에서부터 다시 연(임금이 타는 가마를 이르는 말)으로 바꾸어 탔다고 하여 말티고개라 부르게 되었다. 세조대왕께서 얕은 돌을 깔았다고 하는데 1966년 도로포장공사를 할 때 옛날의 흔적이 보였다고 한다. 속리산은 천왕봉, 비로봉, 입석대, 문장대, 관음봉 등 수려한 연봉이 북쪽으로 뻗어 충북과 경북의 도계를 이루고 있으며 말티재는 1봉우리에서 보은읍내 방향으로 뻗어 내린 줄기에 위치하였다. 말티재는 행정구역상 보은군 장안면 장재리에 속해있으며 박석저수지(장재 저수지)와 자연휴양림이 어우려져 그 경관에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말티재의 숲은 침엽수와 활엽수가 조화를 이루고 있어 등산, 산책 등 심신수련과 휴양에 적합하고 자연을 체험하고 학습하기에 좋은 장소이다.
새목이재는 도로는 꽤 넓은데 뚜렷한 이정표 같은게 없네요. 말티재에서부터 1시간 20분 가량 계속하여 산양삼재배단지 경계 울타리를 따릅니다.
♤ 새목이재(520m)
새목이재는 새매기재와 같은 뜻으로 새의 목처럼 좁은 고개라는 뜻이다. 이 지역에서는 육체 노동을 할 때는 힘들다는 뜻으로 현대식으로 표현하면 “새의 목처럼 좁으면서 힘들어 빡신 고개”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차소리가 들리면서 속리터널이 지나는 새목이재를 지나고, 구룡치를 향해 봉우리 몇 개 넘어가면 좌측으로 또 하나의 터널인 동학터널이 보이는데 그 뒤가 1894년 동학혁명 당시 보은의 북접이 있었던 종곡리 북실마을이다.
구룡치도 어딘지 모르고 지났습니다.
♤ 구룡치(九龍峙/480m)
구룡치(九龍峙/480m)는 보은읍 중동마을과 속리산면 하판리를 이어주는 고개인이다. 구룡치는 고개가 구불구불하여 용이 움직이는 것 같다 하였고 또는 산의 형국이 구불구불하여 용이 승천하는 기상이라하여 고개 이름이 구룡치(九龍峙)가 되었다고 한다. 구룡치와 잠시 후에 만날 수철령이 북실전투에서 패퇴한 동학군 일부가 정맥을 넘어 동쪽으로 도망을 치던 눈물겨운 고개들이다.
♤ 동학농민 북실전투/ 종곡리
북실전투는 1894년 12월 17~18일(음력) 충청북도 보은 북실에서 상주 유격대, 일본군과 북접 동학농민군 사이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앞서 북접 농민군은 1894년 10월 23일(음력)에 공주를 향해 출전했다가 우금치전투 패배 이후 남접과 함께 전라도 남부까지 밀려나게 되었다. 최시형과 손병희가 이끄는 북접은 일본군의 추격을 피해 간신히 전열을 재정비 후 충청도 황간, 청산, 영동읍을 함락시킨 후 용산에서 12월 12일에 진압군에 승리를 쟁취한다. 이후 곧바로 보은으로 북진했고 상주 유격장 김석중이 이끄는 유격대와 일본군이 함께 추격을 개시했다. 북접 농민군은 보은 북실마을을 숙영지로 삼았다. 김석중과 일본 군대의 야습으로 예상치 못한 북접 농민군은 대혼란에 빠졌다. 230명대 1만여... 그러나 김석중의 일기 토배대략에 의하면 이 전투는 진압군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진압군의 피해가 부상 2명에 그친 반면 북접 농민군의 피해는 그들의 수백 배나 다름없었다. 뒷골짜기의 시내와 숲에서 죽은 자들이 골짜기와 계곡을 가득 메웠는데, 이들은 서로 뒤엉켜 있어서 그 숫자가 몇백 명이나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고 전해진다. 북실전투 패배이후 북접의 구심점 되는 인물이 사라지고 북접세력이 와해되었다.
비록 야간이라 깜깜한 어둠에 불빛이 얼룩져 있지만 예사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동학농민군은 정규학교를 다니지 않은 최하층 농민 집단이라 전투 경험이라든지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작전의 개념을 알지 못한 오합지졸이었습니다.
♤ 수철령(水鐵嶺/460m)
수철령(水鐵嶺)은 속리산면 북악 시장터(무수목)과 보은읍 종곡리를 이어주는 고개로 나무가 없어 “무숨목고개”라 한다. 무수목은 무쇠(水鐵)목으로 변질되고 이를 한자로 바꾸어 수철령(水鐵嶺)으로 불리어졌다고 한다. 또한 새가 있는 냇물이라는 의미인 새내가 쇠내로 변한 것을 한자로 잘못 해석한 것이다 라는 견해도 있다.
♤ 문암산 북바위
보은군 보은읍 학림리에서 동으로 종곡리 수철령 능선으로 이어지는 곳에 해발 515m의 문암산이 있다. 이 산 계곡에 이르면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 옆에 '북바위'라 불리는 바위가 있다.
삼국시대 때 보은은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로 싸움이 잦은 고을이었다. 삼년산성(三年山城, 보은군 보은읍 어암리 소재)을 근거지로 한 신라군과 노고성(老姑城, 보은군 내북면 산성리 소재)에 진을 친 백제군 사이에는 국토 확장을 위해 싸움이 잦았다. 양군은 두 산성 사이에 펼쳐진 중동뜰과 풍취뜰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고 승부를 가릴 수 없으면 제각기 본진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때 일이다. 백제군의 지휘자는 양서(亮敍)라는 기골이 장대하고 지략이 뛰어난 장군이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싸움만 하면 이상하게도 신라군에 패하기만 했다. 어느 날 장군은 새벽부터 군사를 배불리 먹이고 노고성을 나섰다. 생사를 건 일전으로 신라군을 크게 무찌르기 위해 며칠을 검토한 작전을 실행하기 위해서였다. 그 작전은 신라군을 기습하여 삼년산성을 탈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 백제군에 배신자가 있어 양서장군의 전략이 사전에 신라군에 알려져 백제군이 성을 나서서 새벽 안개를 뚫고 삼년산성을 향해 노도같이 달려가다 중도에서 숨어 있던 신라군에게 오히려 기습을 당했다. 양서장군이 앞장서 군사들에게 독전했지만 사기를 잃은 백제군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하기에 바빴다. 양서장군은 어쩔 수 없이 만신창이가 된 부하 패잔병을 이끌고 노고성으로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산성 밑에 이르렀을 때 이미 산성은 신라군에게 점령되었고 장군과 백제군은 갈 곳 조차 없이 되었다. 양서장군은 어찌할 도리가 없어 노고성에 마주 바라다 보이는 문암산(門岩山)으로 쫓겨 들어가게 되었다. 승리에 도취된 신라군들은 추격을 단념하고 만세를 부르며 노고성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양서장군은 갑자기 피곤이 왔다.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세상에 그토록 만사가 풀리지 않고 막히기만 하는 자신의 불운함이 억울하고 한스럽기만 했다. 그는 별안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울분을 발산할 양으로 허리에 찬 긴 칼을 뽑아 옆에 있는 커다란 바위를 향하여 힘껏 찔렀다. 칼은 자루가 있는 데까지 깊이 바위를 찔러 들어갔다. 양서장군은 그래도 울분이 풀리지 않아 그대로 10여 번이나 칼을 돌려대는 바람에 바위에는 구멍이 뚫리게 되었다. 그때였다 바위 구멍에서 은은하게 북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북소리는 점점 크게 들려왔고 난데없는 북소리에 군사들은 일제히 쉬고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둥, 둥, 둥” 북소리는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마치 진군을 독려하는 듯 들리었다. 패전에 사기가 꺽였던 군사들은 북소리에 대오를 맞춰 힘차게 함성을 울리며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신라군을 크게 물리치고 노고성을 탈환하였다고 한다. 그후 이 바위에서는 계곡으로부터 바람이 불면 소리가 날 뿐만 아니라 나무꾼들이 막대기나 손으로 바위를 때리면 북을 치는 듯한 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지금도 사람들이 막대기나 손으로 두들기면 북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이로 인해서 후세 사람들은 이 바위를 '북소리가 나는 바위'라고 해서 '북바위'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백석리로 내려서는 600고지 장구봉이 보은군 속리산면과 산외면의 경계입니다. 마을 내리서기 직전 산에서 물이 나옵니다. 언제 어디서 물을 다시 구할지 모르니 500cc는 들이키고 오면서 마신 500cc를 다시 보충합니다.
♤ 백석리(白石里/310m) 마을
본래 보은군 산외면 지역으로서 흰돌이 많이 있으므로 흰돌이라 하던 것을 흔들 또는 백석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장갑리 일부를 병합하여 백석리라 하였다.
구티재가 명당인지 길을 사이에 두고 잘생긴 무덤들이 꽤나 많더군요.
야간에 무덤을 만나면 무서울것 같으면서도 별다를 게 없습니다. 오히려 찾아주는게 반갑고 고맙겠지요. 그렇게 소통을 합니다.
♤ 구티재(龜峙/九峙/280m) - 충북 보은군 산외면 탁주리
이 고개는 보은에서 북서쪽으로 12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외면 구티리와 탁주리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속리산면 하판리에서 보은읍 종곡리로 넘어가는 고개도 된다. 지명의 유래는 산의 모양이 장수하는 거북이 상이라고 해서 구티(龜峙) 또는 거북티라고 하였으며, 또한 고개가 아홉 구비(九峙)라고 해서 이렇게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당초 아홉 구비이던 고개는 2001년도 봉계~장갑간 확포장공사를 하면서 현재는 네 구비를 이루고 있으며, 옛길은 등산로로 이용되고 있다. 속리산의 천왕봉(天王峰)에서 서북쪽으로 뻗어 충북의 북부 내륙을 동서로 가르며 경기 안성군 칠장산(七長山)에 이르는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의 통과지점으로 동남쪽으로 말티재, 천왕봉으로 이어지며 서쪽으로 탁주봉과 시루산으로 이어진다.
탁주봉 직전 무덤이 보이면 배낭을 놓고 정상까지 다녀와야 합니다. 다녀오는 길이 재미있습니다.
♤ 탁주봉(濯州峰/산불감시초소/550.2m)
탁주리 뒷산을 말하고 정상에는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산봉우리가 면내에서 세 번째 높은 산으로 늙은 스님이 속리산을 바라보며 절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높을 탑자를 써서 탑자봉이라 불려왔다. 갈림길에서 600m 다녀와야 하지만 속리산 전체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조망도 괜찮은 곳이니 정맥 산행에서 빠뜨리면 안 될 곳이다.
소구치를 무덤덤하게 지납니다. 야간이라 무덤 뿐이 보이는게 없어서리... ㅠㅠ
♤ 대구치(大龜峙)와 소구치(小龜峙) / 구티재와 작은구티재
충청북도 보은군의 산외면 구치리 거북티에서 탁주리 못골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구치는 『해동지도』와 『대동여지도』에 '구치(龜峙)'로 표기자 변화 없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1872년지방지도』에는 구치와 함께 '소구치(小龜峙)'와 '대구치(大龜峙)'가 함께 표기되어 있어 지명이 분화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구치에서 4~50분 진행하면 포장된 도로로 만나는 소구치는 현재 거북티에서 길탕리 길골로 넘어가는 작은거북티(작은재, 작은고개)/ 작은구티(小龜峙)를 말한다. 『조선지지자료』에 '구치(龜峙)'에 '거북티'로 순한글 지명이 대응되어 있고 "산외면 구치리에 있다."라는 기록을 통해 마을 주민들은 구치라는 한자 표기보다는 '거북티'를 주로 불렀음을 알 수 있다. 『한국지명총람』에는 거북티라는 마을과 함께 '구티고개'의 다른 명칭으로 '거북티', '구티재', '큰거북티재'가 기록되어 있다. 현재 구치치가 속한 산외면 구치리는 한자로 '九峙里'로 표기하고 있어, 구치(龜峙)가 구치(九峙)로 표기가 변경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구'에 대한 음차 표기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그 변경의 원인은 표기의 편함과 함께 '구(九)'가 지닌 긍정적인 의미가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을회관에 내려가 물을 구할 수 있다는 중티재입니다. 이제 산외면에서 내북면으로 들어섭니다.
여로길에 만나는 마을회관과 산중에 만나는 절은 말만 잘하면 좋은 쉼터로 탈바꿈합니다.
♤ 중티고개
보은군 산외면 중치리와 내북면 두평리를 이어주는 고갯길이다. 탕골에서 창리로 넘어가는 군도 고개로 탕골에서는 가경관광농원이 조성되어 있다. 탕골은 시냇물이 뒤에 있는 시루산을 돌아내려 가면서 시루에 떡을 찐다는 뜻에서 생긴 이름이다.
꽤 험준한 시루봉 직전 돌탑을 쌓아놓은 전위봉이었습니다. 정작 정상에는 건질게 아무것도 없다는... 내리막도 마찬가지 채석장 영향인지 길이 무너지지않을까 걱정될 만큼 절벽 옆으로 커다랗게 싱크홀도 뚫려있네요. 야간에는 전망을 구할 수 없지만 산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도 없습니다. 장점이자 단점이죠.
♤ 시루산(甑山/시루봉/484m)
중티 서남쪽에 있는 산으로 시루처럼 생겼다 하여 시루산이라 불리우며, 삼각점이 있다. 속리산 아래 있는 4개의 시루산 가운데 북쪽에 있다하여 북중산(北甑山) 이라 한다. 중턱에 큰 지네가 살고 있었는데, 그 지네를 수호신으로 믿고 성황당을 세워 놓고 정월 대보름과 칠석 날에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가까운 곳에 마을이 보인다는게 어딥니까 그것만으로도 든든합니다.
♤ 벼재고개(성치고개/바깥대안고개/295m)
보은군 내북면 성티리 벼제마을, 아곡리를 연결하는 고개이다.
바깥대안에서 성티로 가는 고개이다. 고갯길이 험준하여 별이 떠오를 때까지 오른다 하여 별재라 부르던 것이 변하여 벼재/비재가 되었다. '별'은 '벼'의 고어이다.
여기 어디쯤 허름한 식당하나 있었으면 배가 쫄딱 고픕니다. ㅋ~
♤ 대안리고개(서낭당고개/291m)
보은군 내북면 대안리와 아곡리의 경계로 안대안에서 바깥대안으로 넘어가는 큰 고개이다. 보은↔청주간 19호 국도상에 있다. 전에는 서낭당이 있었으나 도로 확장공사로 없어졌다. 이 고개에서 북쪽 안대안 물은 한강으로, 남쪽 바깥대안 물은 금강으로 흘러가는 분수령이 된다.
시간을 재보니 대략 어디까지 진행하겠단 답이 나옵니다. 도상으로 예상한 거리와 많이 다르지요.
♤ 금적지맥(보청북지맥) 분기점
금적지맥(金積枝脈)은? 백두대간 속리산에서 시작한 한남금북정맥은 구룡산을 거처 삼정맥 분기점인 칠장산으로 이어가고 구룡산 직전 440봉에서 남쪽으로 또 하나의 산줄기가 분기하여 구룡산, 노성산(516m), 국사봉(552m), 거망봉(495m), 덕대산(575m), 금적산(652m), 국사봉(475m) 을 거처 금강과 보청천 두물머리 옥천 원당교에서 맥을 다하는 50km의 산줄기를 금적지맥(金積枝脈)이라 한다.
♤ 금적지맥 개념도
쌍암재에도 농장이 있습니다. 개도 요런스레 짖고...
쌍암재에서 좌측으로 차로 5분거리 쌍암저수지에 약수터가 있다는데... 차로 5분이면 걸어서는 20분...ㅠㅠ
♤ 쌍암재(雙岩峙/571지방도/290m)
쌍암재는 충청북도 보은군 내북면 법주리와 보은군 회인면 쌍암리 경계로 571번 지방도이다.
단군지맥은 아래로 우회길이 있습니다.
위를 쳐다보며 아차차~ 저기가 팔봉지맥분기봉인데 싶더군요. 여기서부터 국사봉 아래 521봉까지 보은 내북면과 청주시의 경계를 따릅니다.
♤ 단군지맥(팔봉지맥)분기점 /525봉 /삼면경계봉(내북면, 회인면, 청주 상당구 가덕면)
팔봉지맥(八峰枝脈)은? 보은군 쌍암재에서 한남금북정맥 산줄기 따라 1시간여 오르면 삼면경계봉인 525봉 분기점에서 서쪽으로 또 하나의 산줄기가 분기하여 피반령(674m), 봉화봉(220m ), 용덕산(243m), 팔봉산(292m), 은적산(206m), 망덕산(170m), 출동산(148m), 황우산(193m)을 끝으로 금강과 미호천 우측이 만나는 두물머리 충남 연기군 금남면에서 맥을 다하는 47.4km의 산줄기에 달한다. 정상엔 '단군지맥'이란 비석이 세워져 있고, 비석 뒷면엔 천부경 81자가 새겨져 있다. 이 팔봉지맥상의 은적산에 단군성전이 있어 팔봉지맥을 단군지맥이라고도 부르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