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2020. 5. 20.~21.(수,목)
- 음력(4. 28.~29.), 일몰 19:42, 일출 05:19
●산행지: 한남정맥 3구간(철마고개-통진읍-보구곶리)
●산행코스: 철마고개-원적산-철마정-공장지대-아나지고개/경인고속도위 육교-군부대 우회-철마산-폐초소봉/새벌정-길마재-중구봉-징메이고개-중심성터-계양산갈림길(367m)-210봉헬기장-피고개-꽃뫼산-아라뱃길/목상교-둑실마을입구-군부대정문-백석동고개-골막산/황룡산-백석스포렉스/종알고개-할메산-롯데마트 검단점-천주교인천교구마전동묘원-문고개/305번지방도-당하동지구-방아재고개-현무정-군부대철조망-서낭당고개-세자봉-묘각사-가현산-사랑의쉼터-상주산-스무네미고개/생태통로-수안산터널-국궁장-수안산-대곶신사거리-대곶사거리-서낭당고개-팔거리마을-청룡사-것고개-문덕재-고정리지석묘-에덴농축-56번도로-쌍룡대로/22번도로-문수산-보구곶리
●먹거리: 생수1,000cc, 초코파이3, 사탕30, 게비스콘1
●준비물: 외투1, 반팔1, 반바지1, 스틱, 충전지, 연결선, 헤드랜턴1, 구급약, 손수건, 휴지, 물티슈, 부직반창고, 무릎보호대, 마스크
●거리: 약 61.08km
●소요시간: 28.12h
●누구랑: 나홀로
●경비: 아침5,400, 택시5,200, 편의점10,300, 점심8,000, 편의점3,200, 마송사우나10,000, 황금꽃돼지34,700, 음료/계란9,000, 편의점4,800, 삼계탕1,3000
●날씨: 12~21도
●산행경과:
- 06:51 : 철마고개
- 07:08 : 원적산-원적정
- 07:41: 아나지고개
- 08:06 : 천마산/철마산 (226m)
- 08:41 : 폐초소봉/새벌정
- 08:46 : 길마재
- 08:51 : 중구봉 (276m)
- 09:05 : 징메이고개
- 09:06 : 중심성지
- 09:30~09:45 : 계양산갈림길
- 09:37 : 계양산 (395m), 계양정
- 10:00 : 피고개산 (206m)
- 10:44 : 꽃뫼산 (133m)
- 11:08 : 목상교
- 11:25 : 아라마루휴게소
- 12:23 : 백석동사거리/백석고개
- 12:44 : 골막산 (73.6m)
- 13:00~13:29 : 종알고개/백석골프연습장, 점심
- 13:45 : 할메산 (104.8m)
- 13:58 : 롯데마트 검단점
- 14:11 : 문고개/검단힐스테이트APT
- 14:24 : 방아재고개/영진APT
- 14:51 : 서낭당고개
- 15:06 : 세자봉 (168m), 정자
- 15:35 : 가현산 (215m)-가현정
- 15:56 : 상주산 (146m)
- 16:16 : 스무네미재/생태통로/향동사거리
- 17:23 : 7번국도/함배마을입구
- 17:35~17:46 : 수안산터널
- 18:05 : 수안산/수안정 (147m)
- 18:33 : 대곶신사거리
- 18:59 : 덕원군묘
- 19:15 : 팔거리마을/김포대로
- 19:27 : 장승고개
- 20:47~05:10 : 담터사거리/통진읍 마송24시사우나
- 05:30 : 것고개/48번국도
- 05:53 : 문덕제
- 06:25 : 고정리지석묘
- 07:04 : 에덴농축/56번도로/당고개
- 08:08 : 쌍룡대로
- 08:52~09:15 : 문수산
- 10:45 : 보구곶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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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서정맥: 378.2km (속리산~용당정)
* 금북기맥: 129km (백월산~안흥정)
* 한남금북정맥: 158km(속리산~칠장산)
* 한남정맥: 177.4km(칠장산~문수산), 실거리: 203.1km
- 철마고개~굴포천 15.3km
- 아나지고개~목상교 8.6km
- 징메이고개~문고개 15.47km
- 목상교~것고개 31km
- 목상교~스무네미고개 16.3km
-. 문고개~스무네미고개 6.48km
- 스무네미고개~것고개 14.6km
- 철마고개~통진읍 담터사거리 46.74km
- 아나지고개~것고개 41.2km
- 방아재고개~것고개 24.1km
- 문고개~문수산 31.6km
-. 문고개~대곶중학교 13.8km
-. 문고개~것고개 21km
- 대곶중학교~것고개 6.7km
- 대곶중학교~보구곶리 21.7km
- 것고개~보구곶리 15km
-. 문수산~보구곶리 4.5km
-. 보구곶리~성동검문소 5km
* 사전 정보 (식수 보충지)
- 아나지고개: 하나아파트 식당, 마트
- 계양산: 200m
- 굴포천: 둑실동아라마루휴게소 편의점
- 백석고개: 식당
- 골막산: 600m
- 종알고개/백석스포렉스: 이가네식당
- 문고개: 편의점
- 묘각사: 용궁약수
- 가현산: 군부대 정문 약수터60m
- 스무네미고개: 식당, 편의점/ (생태통로)
- 유현리: 폐차장 보라매식당
- 대곶사거리: 편의점, 식당
- 팔거리마을: 편의점, 식당, e마트24
- 것고개: 편의점, 식당, 통진읍사무소 맞은편 마송24시사우나(031-997-7878)
* 왕십리에서 철마고개 가는길:
- 국철 부평역, 노선버스 24번버스
- 부평구청역 8번출구, 부평경찰서앞 11, 24, 24-1, 28, 67-1
* 보구곶리에서 서울 오는 길
- 성동검문소-보구곶리~용강리~조강리~군하리 11A버스
- 강화대교입구 성동검문소 버스정류장, 군하리 오거리슈퍼 앞 영등포행 88번 버스, 신촌행 3000번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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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정맥을 안성 칠장산 칠장사에서 시작해 3구간으로 졸업했습니다. 한남금북정맥이 백두대간 속리산 천왕봉에서 분기해 칠장산까지 도착하여 칠장산에서 다시 두 갈래로 나뉘어 한남정맥은 자그마치 10개 도시와 1개의 광역시를 지나 김포시 월곶면 보구곶리에서 조강에 합수합니다.
1구간은 용인 성복 망가리고개까지, 2구간은 인천 부평구 철마고개까지 끊었습니다. 3구간은 왕십리에서 05:03분발 첫차를 타고 철마고개부터 출발해 김포시 통진읍내 마송24시찜질방에서 쉬고, 마지막 구간 통진두레문화센터 것고개에서 05:30분에 출발해 문수산 정상에 08:50분에 도착했네요.
강화도는 깨끗하게 보이고 연백과 개풍, 개성특별시와 송악산도 비교적 훤히 보였습니다. 문수산에 네번 올랐는데 개성특별시 건물을 식별하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보구곶리에서 때맞춰 오는 미니버스로 용강리 민통선마을을 돌아 조강리로 나와 군하리 오거리슈퍼에서 11:30분에 신촌가는 3000번 버스로 바꿔타고 귀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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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포시
동쪽은 한강을 경계로 파주시·고양시, 북쪽과 동쪽으로 한강을 사이에 두고 각각 북한 개풍군과 파주시·고양시, 남쪽과 염하를 사이에 둔 서쪽으로 인천광역시, 남동쪽으로 서울특별시에 접한다. 강화만 및 한강 하구부·염하 등이 3면을 둘러싸 반도 형태를 이루어 김포반도라 부른다.
기반암은 주로 시생대의 화강편마암과 중생대 대동계의 혈암 및 사암으로 되어 있다. 서부에 문수산(文殊山:376m)·장릉산(章陵山:150m)·수안산(遂安山:147m) 등의 낮은 산들이 소구릉군을 이루고 있으나, 전체적으로 준평원화되어 있다. 한강에 의한 토사의 운반·퇴적으로 이루어진 영등포에서 김포에 이르는 넓은 지역으로, 농경에 적합한 김포평야를 이룬다. 한국 최초의 벼재배지인 농경문화의 근원지이다. 해안에 있어 내륙인 서울보다 온화한 기후를 나타내지만, 같은 위도의 동해안에 비하면 겨울에 북서풍의 영향으로 훨씬 춥다.
이 지역에서 구석기유적이 발굴된 바는 없다. 그러나 한강유역 일대와 서해의 도서지방에 신석기유적이 널리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한강하류 유역인 이곳에도 일찍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삼한시대에는 속로불사국(速盧不斯國)이 통진 땅에 있었다는 설이 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 초기의 도읍인 한성에서 가까운 이곳이 중시되었을 것이나 특별한 문헌기록은 없다. 고구려가 한강유역을 지배했을 때에는 이 지역에 검포현(黔浦縣)·수이홀(首尒忽: 지금의 김포 구읍 남쪽)·동자홀현(童子忽縣: 지금의 통진 고읍)·평회압현(平淮押縣: 지금의 월곶면)·제차파의현(齊次巴衣縣: 지금의 양촌읍)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757년(경덕왕 16)에 이를 각각 김포현·수성현(戍城縣)·동성현(童城縣)·분진현(分津縣)·공암현(孔巖縣)으로 개칭하고, 공암현은 율진군(栗津郡: 지금의 시흥)의 영현(領縣)으로, 그 나머지는 장제군(長堤郡: 지금의 부평)의 영현으로 삼았다.
940년(태조 23)에 분진을 통진으로 개칭하는 동시에, 이들 5개 현을 모두 수주(樹州: 지금의 부평)의 영현으로 삼았다. 940년(태조 23)에 분진을 통진으로 개칭하는 동시에, 이들 5개 현을 모두 수주(樹州: 지금의 부평)의 영현으로 삼았다. 1310년(충선왕 2)에는 공암현을 양천(陽川)으로 개칭하는 동시에 수주에서 분리해 감무를 두었다. 그 뒤 1391년(공양왕 3)에는 통진현에 감무를 설치하였다. 1413년(태종 13) 통진현에 현감을 두고, 동성현과 수안현(守安縣: 戍城縣을 고려 초에 수안으로 개칭)을 편입시켰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행주산성전투가 벌어졌다. 이 때 강 건너인 이곳 섶골[薪洞]에서는 남자들이 산마루에서 섶나무를 준비하는 동안 여자들은 돌을 마련하였다. 그 뒤 행주산성을 공격해 오는 왜선을 향해 불을 붙인 섶나무와 돌을 던져서 왜선을 불태워 침몰시켰다. 여기에서 섶골이라는 명칭이 비롯되었다. 이곳 출신인 조헌(趙憲)도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1,700인을 규합하고, 승장 영규(靈圭) 등과 함께 왜병이 점령한 청주성을 공격해 수복하였다. 이어 전라도로 진격하는 왜군을 막기 위해 금산으로 향하였다. 그런데 대부분은 흩어지고 남은 의병 700인은 싸우다가 모두 순절하였다. 1627년(인조 5)에는 인조의 생부인 원종의 능침 장릉(章陵)을 양주에서 김포로 옮겼다. 이로 인해 김포현이 1632년에는 군으로 승격되었다.
1636년에 병자호란이 일어나 청군이 침입하자, 윤방(尹昉)·김상용(金尙容) 등이 종묘의 신주를 받들고 세자빈·봉림대군·인평대군 등과 함께 강화성으로 들어갔다. 청군이 이곳 월곶면의 문수산에 올라 강화성의 허실을 살핀 뒤, 민가를 헐어서 배를 만들어 타고 단번에 강화해협을 건너 강화성을 함락시켰다. 이 때 검찰사 김경징(金慶徵)은 강화도의 천험(天險)만 믿고 수비를 소홀히 하였다. 효종이 북벌계획을 세우고 유사시에 대비하기 위해 강화도의 방비를 강화하였다. 이 일은 숙종 대까지 계속되어 내성·외성·진보·돈대 등을 축조하였다. 1694년(숙종 20)에는 이의 일환으로 문수산에 문수산성을 축조하는 동시에, 통진이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그것은 문수산이 강화도 수비에 그만큼 비중이 컸기 때문이다.
1866년(고종 3)에 병인양요가 일어나 프랑스함대가 강화성을 함락시켰다. 그리고 서울로 진격하는 길을 확보하려고 육전대를 투입해 문수산성을 공격해 왔다. 그러나 한성근이 이끄는 수비군에게 격퇴를 당하였다. 1871년에 신미양요가 일어나 미국함대가 염하를 거슬러 올라와 광성진전투(廣城津戰鬪)가 벌어졌다. 그런데 강화 쪽의 광성보(廣城堡)·덕진진(德津鎭)과 함께 이곳 덕포진(德浦鎭: 지금의 대곶면)에서 일제히 포격을 가해 그들을 격퇴시켰다. 그 뒤 미국함대는 인천방면으로 후퇴해 전열을 가다듬은 뒤 다시 북상해 해병대가 초지진(草芝鎭) 등을 함락시켰다. 이 두 양요를 겪은 뒤 1874년에는 덕포진에 안항동포대(鴈行洞砲臺)를 축조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통진부와 양천현이 김포군에 편입되었다. 1952년에 신곡리 양수장이 준공되어 김포평야에 물을 공급하게 되었다. 1963년에는 양동·양서 두 면이 서울특별시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1973년에는 부천군이 폐지됨에 따라 오정·계양 두 면이 편입되었으나, 1975년에 오정면은 다시 부천시로 편입되었다. 1983년에는 양촌면 일부와 월곶면 일부, 대곶면 일부를 통합해 통진면을 신설하였다. 또한 1989년 계양면이 당시 인천직할시로 편입, 1995년에 검단면이 인천광역시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1998년 4월 1일 시로 승격되었다. 2004년 1월 1일에는 통진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2009년 고촌면이 고촌읍으로 승격되었고 2011년 11월 양촌면이 양촌읍으로 승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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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이고개(징매이고개/90m) → (1.1㎞) → 계양산(桂陽山/394m) → (1.0㎞) → 작은장리치(140m) → (1.8㎞) → 꽃메산(95m) → (3.8㎞) → 골막산(73.6m) → (0.3㎞) → 종말고개(40m) → (1.0㎞) → 할메산(105m) → (1.2㎞) → 문고개(30m)
문고개(30m) → (2.3㎞) → 서낭당고개(69m) → (1.3㎞) → 가현산(歌絃山/215m) → (2.2㎞) → 스무네미고개(355지방도/60m)
스무네미고개(355지방도/60m) → (3.9㎞) → 수안산(守安山/수안산성표지판/146.8m) → (1.8㎞) → 대곶초교 → (6.7㎞) → 것고개(34.9m)
대곶초교 → (6.7㎞) → 것고개(34.9m) → (4.2㎞) → 당고개(56번지방도/40m)
당고개(56번지방도/40m) → (3.2㎞) → 문수산(376.1m) → (3.8㎞) → 보리곶리(3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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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마고개 에코브리지/동물이동통로
원적산터널은 바로 옆에 원적산을 지하로 관통하는 터널이 따로 있으며, 이곳은 에코브리지를 조성한 철마고개이다. 택시기사에게 원적산터널을 데려다 달라면 엉뚱한 곳으로 간다. 철마고개를 말해야 이곳으로 온다.
원적산 오름에 건너편 지나온 함봉산/철마산을 건너다보며....
인천 서구 앞바다 북항, 신항과 그 배후지역...
영종도와 강화도 마니산
♤ 원적산(元積山/211m) / 부평구 청천동, 산곡동 서구 석남동의 경계
원적산은 그동안 천마산 또는 철마산으로 불리웠으나 인천시에서 지명위원회를 통해 산 이름을 변경하여 현재는 원적산으로 불리우고 있다. 원적산(元積山)으로 옛 고문헌에 나오는데 부평부(富平府) 남쪽 15리에 있으며 남북으로 길게 뻗어서 북쪽은 안하지고개에서 천마산에 이어지고 남쪽은 장고개에서 원통산-거봉산에 이어진다. 이 산 줄기는 옛 마장면(馬場面)과, 석곶면(石串面)을 경계한 산이고 지금 역시 부평구, 서구를 경계로 하고 있어 부평과 석곶의 발전에 기틀이 되고 있다. 원적산의 원자의 한문 표기는 본래 원(怨)으로 원한 맺힌 산이란 뜻이다. 왜냐하면 경인운하를 굴착하는데 원통이고개를 파도 암석이 나와 실패하고 또 안아지고개를 파도 암석이 많아 실패하자 원통하고 원한이 맺힌 산이라고 해서 원적산(怨積山)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런데 후대 사람들이 이것을 원적산(元積山)으로 고쳐 쓴 것이다. 그리고 원적산(元寂山)은 매우 한적한 산으로 풀이 될 수 있으나 그 유래는 알 수는 없다. 1972년 원적산 길이 개통되었고 2004년 원적산터널이 개통되었다.
♤ 원적정/철마정(鐵馬亭)/ 인천 서구 석남동
철마산은 원래 천마산으로 산중턱 큰 바위에 말밥굽 자국과 같이 파져 있어 이를 마제석(馬蹄石)이라 하고 이 산을 마제봉이라 불러오고 있다. 이 산밑에 가정동 마을에는 합천 이씨가 대성을 이룬 명문인데 이 문중에서 아기장사가 태어나 그 부모는 후환이 두려워 아기장사를 죽이자 이 산에서 용마가 나와 울면서 떠났다는 전설이 있어 마제석은 그 용마의 발자국이라 전하고 이 산을 천마가 나왔다고 하여 천마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또한 철마산은 192,000평의 광활한 산림과 표고 226m로 우리 서구 및 부평구와 계양구등 3개구가 연접하고 있으며 1966년8월31일 건설부 고시 제2701호에 의거 도시자연공원으로 지정되었으나 주민 편의 시설등이 없어 서기 1995년 석남약수터 주변 개발계획을 구체화 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 산의 이름을 따서 서구 관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철마정 건립계획을 수립하여 총 사업비 2억9천만원을 들여 2층으로 96.9.9일부터 97.6.30일에 걸쳐 완공,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공장지대로 내려서니 문이 잠겨있다. 상단통과!
한신아파트 후문의 공원을 지나고....
경인고속도로 육교를 지나고
아나지고개/안하지고개는 정맥지도에만 표시되어 있다. 경인고속국도가 지나는 부평구 청천동 지점의 고개이다.
♤ 아나지고개(조광아파트/6번도로) / 인천 서구 가정동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무학대사로 하여금 도읍지가 될 만한 곳을 두로 살펴보게 하였다. 산수가 좋은 곳을 찾아 다니던 무학대사는 부평에 이르러 들이 넓고 기름지며 가까이 한강까지 끼고 있으므로 도읍지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였다. 도읍 터는 백 개의 봉우리를 가져야 하는데 세어 보니 봉우리가 꼭 백 개였다. 그 소식을 듣고 달려 온 이성계는 부평 땅이 능히 도읍이 될 만한 곳이라 기뻐하며, 주안산(만월산)에 있던 주안사로 무학대사를 보내어 산신께 제사를 지내도록 당부하고는 흡족한 마음으로 개성으로 돌아갔다. 뒤에 다시 백관을 이끌고 찾아와 확인하니 백 개였던 봉우리가 아흔 아홉 개 밖에 되지 않았다. 한 개의 봉우리를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한 개의 봉우리는 원통해서 주저앉아 원통이 고개가 되었다고 한다. 마지막 99번째 봉우리로 가는 고개는 지금도 아흔 아홉 번째라는 뜻의 '아나지 고개'로 불리고 있다. 다른 한편 조선시대 강화도 손돌목에서 세곡선의 난파가 빈번하여 인천 앞바다에서 부평을 넘어가는 운하를 굴착하게 되었고, 첫번째가 원통이고개, 두번째가 무네미고개(수현마을), 세번째가 아나지고개로 더이상 굴착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