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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박(한무당재)
🐢제15구간(오룡고개~한무당재)
• 오룡고개(279m)-삼성산 갈림길(518m)
-삼성산(578m)-삼성산 갈림길
-삼성산제단석(362m)-시티재(안강휴게소
206m)-호국봉(383m)-황수탕 갈림길
-어림산(510.2m)-마치재(333m)
-남사봉(468m)-한무당재(279m)
🐌 아들24.5km/아빠23km [정맥 23km]
⏳ 11시간25분(06:25-17:50)
• 들머리 - 오룡고개
: 경북 영천시 고경면 오룡리 1394
• 날머리 - 한무당재
: 경북 영천시 고경면 덕정리 산92-5
지난 주는 주문한 만년필을 기다리는 설렘과
갖고 싶은 이니셜(Jeong, K. U.)이 새겨진 만년필을 손에 쥐고 얼마나 좋아하는지, 주변에 행복바이러스가 퍼진다.
폰 사용도 아빠의 관리를 잘 따르고
EBS 수강 학습도 자기 방식을 찾아가며 해가니 산행으로 치면 바른 등로를 걷고 있는, 헛 길로 빠지는 알바만 주의하면 되는 셈이다.
[⬇준대상 상금과 홀대모선배산객님들이 주신 용돈으로
구입한 만년필
자신의 이니셜이 새겨진 만년필에 너무 흡족한 아들^^]
어제(12/17) 전주에도 첫 눈이 내렸다.
아들은 드디어 눈 덮힌 산천을 만날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갖고 출발~
코로나 확산으로 9시 영업제한이라니 늦기 전에 경산 하양에서 저녁식사.
부위별 모듬을 시켜 구워 먹는데 적지 않은 양에 공기밥까지 비워도 왠지 허전한 부자,
돼지국밥을 추가하니 비로서 먹었다는 느낌^^
한무당재에 도착(21:10)하니 고개 좌우 도로가엔 차박할 만한 공간이 없다.
주위를 살피다 시멘트포장 임도가 보여 올라가니 도로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로 딱 알맞은 공간이 있어 차박지로 낙점.
음력 11/15로 뭉게구름 가득한 하늘엔 보름달이 만삭의 몸에도 불구하고 구름속을 빠르게 유영하니
부자는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한참을 관조하듯 즐긴다.
ubs보온매트에 핫팩을 넣어 둔 침낭 위로 밍크담요까지 덮으니 방한으론 그만이다.
더웠나? 수시로 차버리곤 하는 담요를 덮어주다 보니 정작 난 잠을 설친다.(신기한 게 아들이 담요를 걷어 찰 때 마다 즉각 눈이 떠지니 설치게 되는 잠이다.)
일어나니 눈이 내리고 바람이 거세니
나는 심란하고
아들은 눈 온다며 환호하니
떠 오르고 지는 삶이 빚어내는 희비 쌍곡선이다.
약속시간 보다 이르게 도착한, 지난 주에 이어 픽업에 나서 준 택시를 타고
오룡고개에 도착(₩50,000)하니 6:20
바로 들머리를 찾아 들어서긴 했는데 정맥길이라 판단할 만한 게 없다.
길을 따라 오르는데 갈수록 길이 모호해지고 중간에 눈에 띄는 두어개의 띠지는 믿을 만한 게 못된다.
"아빠, 저기 보여?"
"보고 있다."
헤드랜턴 빛속으로 야생동물의 불켜진 두 눈이 우리쪽을 응시하고 있다.
"두 눈의 미간 폭이 좁을 걸 보니 큰 짐승은 아니고
너구리나 족제비 같은 작은 짐승 같은데."
아무래도 정맥길이 아니란 판단에 아들이 산행앱을 확인하니 역시나 벗어나 있다.
다시 들머리로 내려와 살펴 보니
우리가 시작했던 지점 우측의 절개지와 접한 작은 샛길이 정맥길이다.
때론 길 아닌 것처럼 보이는 길이 맞는 길인데
보이는 것에만 현혹돼 길 놓친 적이 많았음에도
아직도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에 먼저 눈을 뺏기는 부자다.
그래도 산행맵에 전적으로 의지할 생각은 없다.
길 눈 보는 눈은 이런 식으로 낭패를 겪어가며 향상되어 가는 것이라 위안 삼는다.
시작부터 길 찾느라 30여분 헛 힘을 쓴 부자인데
심리적으로 불편하거나 불만은 없고
내리던 눈이 그친다는 게 서운하다.
등로 확인을 하고도 내심 시원찮은 등로 상태가 계속되니 긴가민가 하며 진행하는데 무한도전(구자춘) 띠지가 보이니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언제부턴가 홀대모 산객들의 띠지에 대한 무한 신뢰다. ^^
삼성산 갈림길까지의 오름길은 급경사로 산행 초반부에 힘을 다 쓰는 격이다.
다른 날과 달리 잠시 삼성산을 들를 것인가 고민하는데, 검색한 정보로는 왕복으로 2km가 안되는 거리이나 올 들어 가장 춥고 거센 바람에 엄두가 안나서다...
갈까 말까? 결국 평소 스타일대로!
내 배낭은 놔두고 생수, 핫팩 등 간단한 것만 겨우니 배낭에 챙겨 내가 멘 채로 삼성산을 향한다.
[⬆삼성산 갈림길
아들의 오른손 방향이 삼성산 방향, 왼손이 정맥길]
모자 두개에 겉옷에 달린 모자까지 뒤집어 써야 될 정도로 바람이 세차고 춥다.
도착하니 8:40 (두 정상석의 표시가 578m, 591m로 다르다.)
역시 산은 간을 보아서는 알 수 없고 직접 봉우리를 밟아 봐야 알 수 있는 맛이다!
삼성산갈림길에서 급격한 내림길로 내려선 후
신발이 너무 불편하다는 아들.
새로 구입한 방한부츠를 신겼는데
이게 발등과 발목을 잡아주지 못하고 너무 느슨해
신발 안에서 발이 헛돈단다.
그런 신발의 불편을 아는지라 반 강제로 신발을 바꿔 신는다.
바꿔 신고 걸어보니 보통 불편한 게 아니다.
특히 내림길에선 신발 안에서 발이 앞으로 밀려
발가락이 완전히 말려드는 상황이고
돌을 밟으면 좌우로 신발이 눕혀지는 현상이 나타나니 자칫 발목 접지르기 십상이다.
이걸 견디며 걸어 온 아들이 대견하면서도
이 신발로 남은 거리를 어찌 걸어낼지 막막...
그래도 내가 불편한 것이 더 마음 편하지 않겠나!
(아들이 혹시라도 미안해할까 끝까지 불편을 참아가며 걸어낸다.)
얼마나 무명봉을 오르고 내렸을까?
앞서 가던 아들이 걸음을 멈추고 심란한 표정으로 기다고 있다.
"왜?"
"잃어버렸어."
"뭘?"
대답 대신 손가락으로 자기 머리를 짚어 보인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니
"모자가 어디서 떨어졌나봐."
실로 짠 귀까지 덮을 수 있는 방한모 위로
세찬 바람에 귀마개 달린 빨간 모자를 덧 썼는데 그게 벗겨져 떨어진 것이다.
신기하네.
쓰고 있는 모자가 떨어진 것도 의식을 못한거니~
말릴 틈도 없이
배낭을 벗어두고 찾아오겠다며 뛰어간다.
기다리고 있자니 바람 피해 있어도 보통 추운 게 아니다.
문득 거리가 걱정이 된다.
중간에 아들이 앞서 걸었으니 뒤따르던 내가 발견하지 못했다는 건, 내가 앞장 서 걷던 구간에서 잃어버렸다는 건데, 그 지점이라면 상당히 먼거리다... ㅠ
"네가 아빠 뒤 따라 오던 구간에서 잃어버렸을거야. ㅠ 그냥 돌아 와."
찾아러 갔다는 시도만으로 노력을 인정할테니
추운 날 고생 그만하라는 뜻으로 문자를 보내는데 답변이 없다.
아마 되돌아 간 거리가 아까워서라도 끝까지 찾아 갈 아들이 분명하다.
추위에 웅크린 채 기다리는데 30여분만에 찾아서 돌아온다.
"거의 뛰듯 갔다 왔네."
기다리고 있는 아빠를 위해 최대한 서둘렀다는 뜻이다. ㅎ
시작부터 계속 헛 힘쓰고 시간 소비하는 일들이니 오늘 산행도 늦게 끝나겠다는 예상.
다시 길을 이어가니
삼성산과 연관되지 않을 먼 위치에 삼성산 제단석이 설치되어 있다.(10:40)
거리로는 서로 매치되지 않는 동떨어진 곳에 있어 이름과는 달리 따로 노는 느낌이다.
삼성산에 제단석을 설치하기엔 높아 너무 힘들었나!
제단석 바로 아래 양지 바른 묘지의 풀밭에 누워 행동식을 먹으며 어제 하던 대화를 이어간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환경운동단체인 <그린피스> 공동 설립자로서
처음 환경 운동을 시작할 때의 정신을 잊어버리고
환경위기 문제에 관하여 비과학적 주장을 펴며 협박단체로 전락한 그린피스를 통박하며 탈퇴한 이후
오직 과학적 근거를 통해(정치적, 경제적 후원을 얻기 위한 이익집단으로서의 허위 주장을 일삼는 그린피스의 선동에 맞서)
인류의 올바른 환경 운동을 주창하는
패트릭 무어의 <종말론적 환경주의>를 읽으며 알게 된 사실들을 간략히 들려 준다.
정말로 이산화탄소가 지구환경의 위기를 초래하는 주범인가?
지금의 이상기온이라는 지구는 어떤 시기인가?
어제 위 2가지에 대한 화두를 던져 주었는데
이산화탄소가 절대 주범이 아니고
지구의 온난화 주장에 대한 허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홍적세 빙하기에 살고 있다는 사실 등 관련 설명을 해주는 것으로 앞으로 이에 관해 생각해 볼 여지를 남겨준다.
지금의 교육은 과학이나 사회 정치 등 너무 한쪽 이론과 이념에 치우친 주장만 있는 실정이라
학교의 수업을 통해서는 단순한 지식과 윤리적인 면, 단체 생활 규범 이외의 부분에 대해선 난 전혀 기대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내가 먼저 공부한다는(독서를 좋아하는 편이라 아들 친구들은 우리집을 도서관이라 부른다.) 기분으로 아이들의 세상을 보는 시각에 도움이 될만한 진실과 객관적인 사실을 탐구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일종의 대안 수업을 맡아 하기에 공부를 계속하는 셈이다.
이제껏 배우거나 들었던 얘기와는 다른 부분이 많으니 상당히 놀라며 이런 저런 질문을 해오는 아들이니
보여지는(주장되는) 사실과 과학적인 사실의 간격에 대해 판단의 여지를 갖게 될 터
이것으로 오늘 대화는 충분하다.
삼성산을 찍고 내려서는 두 명의 산객들이 빠른 걸음으로 하산하며 나누는 대화를 미루어 볼 때 시티재가 가까운 거리인듯.
앞서 걷는 아들을 불편한 신발로 뒤 따르며 생각에 잠긴다.
과거엔 과학적으로 새롭게 밝혀진 사실은 항상 상당 기간 부정되고 비난 받다가 결국 일반적 진실로 받아들여지기까지 긴 시차가 걸렸으나 요즘은 좀 다르다.
관심만 있다면 쉽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세상이어서 그 시차가 현저히 줄어 들었다.
문제는 과거에 비해 왜곡하는 주장들에 감각적이고 호소력 있는 포장 기술이 더 좋아졌으며,
그걸 대하는 이들은 이성에 의한 냉철한 자세로 직접 찾아보고 공부하는 게 아니라 듣기 좋은 그럴듯한 주장에 먼저 현혹된다는 점이다.
지식에 대한 태도도 최소한의 회의(懷疑)라곤 없이 그저 유행광고를 대하는 정도로 게으르고
사실 여부에 무관심하니 그만큼 왜곡되기도 쉬운 세상이다.
북극에 사는 백곰이 이상 기온으로 빙산이 줄어 들어 멸종되어 간다는 그린피스의 주장과 달리 실제론 1973년 백곰 보호조약 이후 개체수가 몇배로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까지 왜곡되어 선동되어지는, 거대한 이해 집단들의 주장이 일정한 이익관계로 뭉쳐 진실과 진리가 왜곡 이용되는 결과로서 나타나는 폐해는 누구 몫인가?
이런 문제가 더 광범위하게 나타날 시대에 살아 갈 아들은?
낯선 분야, 혹은 모르는 문제, 혹은 당장 자신의 현실과 관련 없는 간접적인 문제라 해도 그게 세상과 인류와 관련된 보편적인 문제라면
열린 정신으로 진실 여부와 바른 방향인가에 대해 성찰하는 인간이길, 그런 아들이길 바라는 아빠다.
이미 알고 있는 것, 혹은 안다고 생각한 것 - 그것을 믿고 지켜 온 삶이 아까워 주장을 계속하는 몽매한 고집이 아니라
언제든 잘못 된 앎이라면 소신껏 지켜 온 것이라도 해도 기꺼이 그 지식을 버릴 줄 아는 아들로 성장하길 바란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걷는데
"아빠, 휴게소다."
삼성산제단석에서 40여분 거리, 안강휴게소가 있는 시티재다.(11:20)
전체적인 분위기가 폐쇄 수준을 밟아가는 쓸쓸한 느낌이다.
식당은 영업중인 것 같아 따뜻한 뭐라도 먹고가자니 생각없다며 바로 이어가자는 아들.
왕복4차선으로 낙석방지철책이 설치되어 있어
어디로 들어서야 정맥길로 이어질지 모르겠다.
길이 안 보이면 만들어 가면 그만이고
이젠 왠만한 개척길은 문제도 아닌 부자다.
휴게소의 애국지사항일기념비에서 도로를 바라볼 때 낙석방지철책이 끝나는 우측으로 작업(생태통로를 만드는 느낌이나 확실치 않다.) 중인 공사로 일부 절개된 지역이 보여 그쪽에서 능선으로 치고 올라가기로.
짧은 개척길로 정맥 능선길로 합류해 진행하니 KT송수신철탑을 만나고(11:50)
좀 더 지나니 데크전망대(12:05)
전망대에선 <사곡지>란 저수지와 안강면이 조망된다.
[⬆ SK가 아니라 KT기지국이다]
[⬆ 어림산이 6.7km 남았다는 이정표]
[⬇ 데크전망대와 그곳에서 바라보는 사곡지]
뒤이어 호국봉에 오르고(12:13) 어림산은 언제 나오나?
거리를 어림해보라 해서 어림산인가?
어림해보니 아직 6km 이상이 남은 어림산이다.
그렇게 춥던 기온도 해가 나타나니 걷다 보면 가끔은 덥기도 하다.
안내이정표도 자주 나타나는 무명봉을 오르내리며
황수탕 갈림길(14:00)을 통과하고
어림산에 도착(15:17)한다.
특별히 별다른 봉우리는 아니고 여느 무명봉과 같은 산이다.
[⬆ 새 둥지 - 여기서 태어난 아기 새들은 지금쯤?]
[⬇ 황수탕 갈림길]
어림산을 지나 마치재를 향하는 막바지 등로에서
진행 방향 우측으로 멀리 펼쳐진 산들이 퍽이나 인상적이다.
기껏 50~200m 정도나 될까 싶은 낮은 봉우리들이
마치 경주 시내에서 봄직한 커다란 봉분처럼 연속하여 가득 솟아 있는데 그 규모는 시야 가득 아주 넓게 펼쳐져 있다.
꽤나 상상력을 던져주는 풍경이어서 아들과 이런 저런 상상의 나래를 펴며 걷는다.
[⬇봉분같은 키 작은 산들이...
뒷편 좌측으로 갓모양의 관산이 보인다.]
15:45 마치재 도착
정맥길은 도로 건너 곧장 산길로 이어진다.
1시간여 또 무명봉을 오르고 내리며 조금 급한 경사를 치고 오르니 남사봉이다(16:45)
이곳도 높이가 467m, 486m로 제각각이다.
봉우리에 올라서니 남사봉 산패 앞의 납작한 돌에 누군가 매직으로 방향을 적어 두었는데
사방으로 관산, 인내산, 어림산, 노가다산꾼으로 표시를 해놨다.
알바짓을 노가다산꾼^^ 으로 표현했다!
걸어 온 산줄기의 흐름과는 다르게
남사봉에 올라 우측으로 약간 back하는 방향이 우리가 가야 할 관산이고
올라 온 진행 방향을 미루어 보면 노가다산꾼 방향이 더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길로 보이니
이 돌 표식이 없었다면 100% 알바했을 부자였다.
우리 같은 서투른 산행을 위해 표시해 둔 무명의 산객께👍 감사한 부자 ^^
17:00 임도를 만난다.
임도 우측으로 학교운동장 보다 큰 잔디밭이 깔린 공간이 나오고 한쪽엔 번듯한 집이 있는 걸 보아 사유지인데 뭘 하는 공간인지는 전혀 알 길이 없다.
곧장 산으로 들어가 조금 지나니 100m 더 가면 경주시발점(始發點)이라는 이정표가 보이고 야자매트가 깔린 걷기 편한 길이 잠시 이어진다.
[⬆ 우측으로 아주 넓디 넓은 잔디밭과 가옥이 있다.]
[⬆ 야자매트가 깔린길 - 경주땅이다.]
[⬇ 경주와 영천 경계점 영천에서 잠시 경주로 들어왔다가
다시 이곳에서 영천으로 들어선다]
멀지 않은 거리에 다음 주에 타게 될, 정상부분이 갓의 모양처럼 생겼다해서 관산(冠山)이라는 봉우리가 또 시선을 끌고
이제 한무당재 하산까지는 3km가 채 남지 않았는데
시간을 보니 지난 주 보다 먼거리임에도 해지기 전 하산이 가능해 보인다.
평소 볼 수 없었던 걷는 재미에 푹 빠진듯한 걸음으로 초반부 이후 줄곳 앞장 서 치고 나간 아들 덕분이다.
그런데... 언제든 방해가 되는 예상치 않은 일은 예고 없이 생기는 법~
[⬆⬇ 지나 온 산줄기]
해지기 전 하산을 끝내자며 잰걸음인데
우리가 걷고 있는 능선길을 중심으로
왼편의 산마루엔 해가 하산중이고
우측 산마루엔 보름달이 산을 타고 오르고 있으니
'와우! 환상이다.
한쪽은 해지고 반대편은 보름달이 뜨고.
우와 이런 장면 쉽게 볼 수가 없어.
산이 아니면 절대 만날 수 없는, 도시에선 볼 수가 없는 장면이야.
이러니 내가 산을 좋아하지. ㅎ!'
거듭 감탄하며 풍광에 푹 빠진 아들의 감정에 나까지 이입되어 하산은 뒷전이다.
그렇게 시선을 나눠주며 수다도 떠는
산책같은 걸음이 되었어도 랜턴 의지 없이 한무당재 도착.
순간 주차를 어디에 했나? 방향을 모르겠는데
"아빠, 갑자기 길치된거야?"
아들 따라 도로를 건너고 고개를 넘으니 차가 보인다.
길눈도 더 좋아지는 아들이다.
한무당재에 내려서니 17:50 어둠이 숲을 감싼다.
한무당재 유래를 찾아보니
중국 한나라의 한신을 神으로 믿는 무당이 살았던 곳이라 해서 한무당재라고 불리웠단다.
한신은 항량과 항우를 섬겼으나 중용되지 않아
한나라 유방의 수하로 들어가 대장군이 된 자다.
널리 알려진 일화로
젊은 시절 시정잡배와 시비가 붙어 그 무뢰배의 가랑이 밑을 태연히 기어갔다는 사람으로,
유방에 의해 제나라의 왕으로 임명되기도 했으나 결국 유방에 의해 제거된 그 한신이다.
그가 이때 남긴 말이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유명한 고사성어다.
한신을 신으로 모셨다는 그 무당은 한신의 어떤 면에 꽂힌걸까? 궁금하다.
현명하고 처세에 밝다는 그도 결국 자신의 보위에 눈 멀어 제 명을 단축한 위인인데...
하산을 자축하는 세레머니를 하는 아들에게
"오늘 산행 아주 잘했다!"
평소와는 다르게 내내 앞서 치고 나가는 모습에 칭찬하며 하이파이브
"오늘은 산타는 것에 집중 좀 했어^^"
집에 도착하니 22:20
아침에 피아노 반주를 맡은 선배(예배 반주자)와 화음을 맞춰보기로 했다며 바이올린을 닦으며 광내는 아들이다.
미션학교라 성탄절이면 행사를 한다는데
코로나로 시국이 시국인지라
수요일 아침예배(1교시)로 대신한단다.
그것도 각급 교실에 앉아 화상으로 하는 예배인데
그때 특별 공연으로 성탄 캐롤송을 바이올린 연주를 한단다.
학교로 피아노 콩쿨 수상에 이어
바이올린 수상 상장까지 도착하니
차기 예배 반주자로 내정된 아들로
평소 아들의 품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학교인지라
목사님과 음악선생님의 주도하에 예정에 없던 성탄 축하 연주를 맡게 된 것으로 보인다.
다음 날 학교를 다녀오더니
"아빠, 곡만 나가는 게 아니라 전교생이 교실에서 학급 모니터로 내 연주 모습을 보는거네.
반주자도 화면에 안 잡고 내 연주만 잡아서."
부담된다는 느낌은 없고(그동안 무대에 많이 서 본 경험 탓이리라.) 즐기는 표정이다.
그깟 일로 겉 넘을 아들은 아니니 겸손하라 어쩌랴는 사족일 터
"전교생을 대상으로 공연! 유명인사 되네. ㅎㅎ"
"오늘 코로나백신 접종했는데 혹 팔 아파 연주 못하게 되는거 아냐?"
"아빠도 말짱했잖아. 괜찮을거야. 아파도 그냥 해.
컨디션 관계 없이 산타듯 연주도 그렇게 해. ㅎㅎ"
무조건 해보라는 아빠 밑에서 자랐으니
어떤 상태든 해내는 아들일거다.
첫댓글 멋진만년필에 이니셜까지... 멋진선물입니다
피씨의 일화입니다
20세기 초, 이탈리아에 한 청년이 있었다.
그에게는 독특한 버릇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고민이 되는 상황마다 동전 던지기를 하는
것이었다.
한 때 그에겐 두 가지 선택의 길이 있었다.
"파리의 적십자사로 전근을 가느냐,
어느 디자이너 가게에서 일하느냐"
그는 앞면이 나오면 디자이너 샵으로,
뒷면이 나오면 적십자사로 전근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결과는 앞면이 나와 디자이너 샵으로 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패션계에 발을 들이게 된
그는 곧 재능을 인정받아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 디오르(Dior) 밑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디올이 죽고 후계자로 지명된 그는
또 다시 동전을 던진다.
회사에 남아 디올의 뒤를 이을 것인가 아니면
독립하여 내 이름으로 가게를 낼 것인가?
결국, 독립을 택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만들었고, 우리는 지금 그 브랜드를
"피에르 가르뎅" 이라 부른다.
한 기자가 그에게 말했다.
"운이 정말 좋으시네요. 동전을 던져서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자 그는 말했다.
"동전 던지기가 좋은 선택을 하도록 한 게
아닙니다.
어떤 선택이든 일단 결정한 후엔 믿음을 갖고
밀고 나간 것 뿐 이니까요."
살아가며 마주하는 많은 선택 앞에서
우리는 고민한다.
무엇이 더 옳은 선택인지를 알기 위해서...,
혹은 나보다 앞선 사람들의 조언을 주의 깊게
들어보기도 하지만 진정 중요한 것은
‘선택‘ 그 자체가 아닌 선택 후 우리의
‘믿음과 행동’이다.
운명은 우연이 아닌 선택이며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성취하는 것이다.
아드님과 정맥길이든 어떠한 삶이라도
도전과 성취감을 느끼면 항상 안주하지않고
이사회의 소금과 같은 어른으로 성장할것이라고 믿습니다..
"지치면 지는것이다"
"미쳐야 이기는것이다"
"남이하면 나도한다 남이하기전에 내가 먼저한다"
같이산행하는선배의 명언입니다..
어디든 미치여 성공합니다... 화이팅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통 제 산행기엔 관심이 없는 아이라(있었던 일을 그대로 적어두는 걸 아는지라 재미가 없는듯)
좋은 글 있으면 권하곤 하는데
꼭 읽어보도록 해야겠네요.
내가 선물한 게 아녜요. ㅎ
홀대모선배님들이 모아주신 용돈에 상금 보태
겨우니가 산거랍니다.
모로가든 서울만 가면 되는 것,
자기가 원하는 걸 어렵게 갖게 되어 아주 만족하네요.
저런 기회가 없었으면 적당한 계기로 사줄 요량이었는데 ㅋ
읽으면 읽을수록 선배님의 깊이에 자꾸 놀라게 됩니다.
솔직히 공부는 관심이 중요한데
언제 어느시절부터인가 산다는데 치우쳐 뭔가의 모든 관심을 잃어버렸지요...
더군다나 어린시절 쌓았던 지식 들은 금과옥조로 여기며
마치 그것디 정답인양 뭐든 그것을 기초로 결정을 내리고 판단해왔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많이 바뀌었어요
내가 알고있는 지식들이 자꾸 자리바꿈을 하더니 다른것이 되고
뭔가라도 확신할 수 있는 팩트들이 자꾸 줄어들더라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계속 고집을 피우며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게 오늘의 우리들 모습이 아닐까요?
"언제든 잘못 된 앎이라면 소신껏 지켜 온 것이라도 해도 기꺼이 그 지식을 버릴 줄 아는 .."
이런 열린 자세가 말이 쉽지 잘 안되는데
대단합니다 .이런것들을 보면 교육의 과정속에서 더 배운다는것을 느껴봅니다.
산행도 좋지만
이런 대화까지 나누고 걷는 길은 그야말로 진짜 유익한 길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자식 따라보내서라도 같이 배우게 하고 싶네요 ㅎㅎㅎ
좋은하루 되십시오 ^^
늘 멋집니다.
놀랄 것까지는... ㅍ
다 똑같아요.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첫 대학때 철학도여서 아마 그런 영향으로
다방면에 의문을 품고 여러 시각으로 성찰하는 버릇이 몸에 배여서 그런거 같습니다.
사회 정교사 자격을 취득할 정도로 교육에 관심도 많은 편이고
좋은건지 나쁜건지 세상 온갖 것에 관심이 많다 보니...
그런데 이만큼 살아보니
아무런 관심없이 산 사람이나 나 같은 사람이나
거기서 거기
그럭저럭 비슷하게 살아가더라고요~
언제 나케님과 공주님+우리 부자
요렇게 산 한번 타면 그림이 멋질라나?
정맥에서 벗어나 있는 삼성산도 다녀 오시고 잃어 버린 털모자를 찾아 다시 다녀오면서도 웃으면서 너무 늦지 않게 잘 마무리를 하신 듯 합니다.
저 안강휴게소가 구간나누기를 하던 장소라 무더위에 시원한 캔맥주 하나로 갈증을 풀었던 생각이 납니다.
아들과 이야기 나누듯 풀어내는 이야기에 빠져 한동안 많은 생각을 해 본 시간이있네요
또 한 구간 무탈하게 완주하심을 축하 드리며 다음 구간 관산 오름길이 제법 까탈스럽게 올랐다는 생각인데 잘 다녀 오시기 바람니다.
잠시 넘 추워 이번엔 생략하고 정맥길만 탈까 망설이긴 했네요. 역시 가길 잘했다는!
아들과 이런 저런 대화도 나누고 수다도 떨며
진행하는 산행이라 힘들어도 크게 못 느끼는 것일 수도 있고요.
멀리서 관산을 보아 그런지
일견 높지도 경사가 험하지 않은 듯 보이던데
실제론 낯가린 까칠함을 가진 산인가보죠?
뭐 하늘 아래 뫼라는 말처럼
어차피 지나야 하는 길이니 그런갑다 하고 올라보죠. ㅎ
관심담은 응원에 매번 감사드립니다.
참 흉터는 어떤지요?
마데카솔이란 연고가 흉터를 줄여준다던데...
쁘레크 없는 자전거마냥 잘 달립니다...ㅎ
아직 두 발에 브레이크 장착할 필요를 못 느껴서요 ㅎㅎ
도깨비님 하모니카 연주 들으러
열심히 페달 밟아 가고 있습니다.^^
낙동정맥은 삼성산, 호국봉을 지나 한무당재까지 진행하셨네요.
그날은 전국적으로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는데,
등로 상에 아직 눈은 없고 쌓인 낙엽을 밟으셨네요.
전 이 구간 지나며 시티재에서 끊고 다음날 관산을 넘어가며 연일 진행하던 기억이 납니다.
시티재에 마중 나오신 홀대모의 최고 사진작가셨던 고인이 되신 뫼향님 생각이 아련해 집니다.~
좋은 곳에서 영면하고 계시겠지요..
이어지는 멋진 추억의 여정을 기대합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춥기만 하지 아들이 기대한 눈은 잠시 내리다 그쳐
상당히 아쉬워하더라고요.
이번 주 예보를 보니 더 추워지고 눈은 없다니
아쉬운 날씨일거 같네요.
그래도 천년고도 경주에 들어선다는 사실에
기대가 큰 겨우니를 위해
경주 야경 드라이브를 해볼까 하는데
시간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응원 감사드리며
연말 코로나 조심하시길^^
이슬하선배님!
경주 하면 남산입니다.
날잡아서 금오산과 남산을 올라봐야죠.
남산의 바위마다 부처님상을 새겨놓았어요. 대단하답니다.
"황성옛터"와 "신라의 달밤"은 경주를 대변해 주는 옛 노래입니다.
저도 호미지맥 하며 경주 일대 불곡사와 토함산을 지난다니 기대 만땅 이랍니다.
현 경주 국회의원인 김석기씨가 예산을 9천억 가까이 확보해둔 상탭니다.
신라왕경복원사업을 법률로 제정해 통과시켜 예산을 확보했습니다.
앞으로 경주가 몽골 침입에 불타버린 황룡사 탑 복원을 비롯 많이 바뀌리라 보입니다.^^
낙동정맥은 경주의 외곽을 훑고 지나는 정도입니다.
토함산은 가봤고요
금오산과 남산이라? 요 두 산은 낙동정맥과는 동떨어진 산인가요?
정맥길과 멀지 않으면 들르겠지만
동 떨어진 곳이면 언제일지 모르나 담 기회로~
머지 않아 영남 알프스 지날 때 눈이나 왕창 왔으면 합니다.
겨우니가 이번 겨울 설산을 타지 못해서 못내 아쉬워하는 중이라 ㅎ
금오산 잠깐 걸쳐 남산으로 올랐던 기억입니다.
산은 그다지 크지 않고 두 산이 바짝 붙어있는가 봐요.
낙동정맥은 남쪽이라 눈이 별로 안 올거에요.
북서풍이 눈보라를 몰고오니... 아무래도 서해안쪽과 북쪽이 눈이 많이 내리죠.^^
저도 동계 기간에 조금 편하게 해볼려고 남쪽으로... 보현, 팔공, 호미를 남겨두게 된거고요.
겨울에 강원도 눈산행은 위험하고 설산 체험을 제대로 할려면 덕유산 육구종주가 최고 아닐까요.^^
전주에서 가까운 내장산 말발굽 종주산행도 한겨울에 눈이 많으니 막혀서 못 가겠던데요.
오롱고개-한무당재 지나셨네요 구간기억이 가물 가물합니다 아드님과 하시는 낙동정맥 15구간 완성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항삼 응원합니다 화이팅입니다 ~~~
감사합니다.
연말 잘 보내시고
새해에도 밝게 웃으시는 모습으로 산햊하는 모습 기대하며 응원드립니다.
세르파대장님!
박짐 메고 가셨나요? 배낭이 왤케 뚱뚱해요.^^
겨운이의 기다리는 설렘과 득템의 웃음꽃으로 인해
이슬하님 댁에 행복 바이러스가 한 바탕 돌았군요.
한무당재 출발점에서부터 환상적이었네요.
만삭의 보름달이 구름하늘 속을 유영하는 사진!
그 광경을 관조하듯 즐기시는 부자의 모습도 보통은 아니구요.
오룡고개에선, 헤드랜턴으로 야생동물과 눈도 맞추셨습니다.
저에게 오룡고개는 특별함으로 다가옵니다. 산행기록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대지』의 펄벅이 경주에서 보았다던 ‘가장 한국적인 모습’을 만났다.
할아버지가 앞에서 소 고삐를 잡고, 할머니는 뒤에서 달구지를 밀며 따라간다.
움직이는데도 정물화처럼 정적이다. 너무 아름다워 눈물이 날 것만 같다.
펄벅은 훗날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때 한국의 모든 것을 보았다.’라고.
범산은 감히 말하고 싶다. '나는 오늘 인생의 참모습을 보았다.’라고.
어림산 부근에서 목격한 '상상력을 던져주는 풍경'은
관심을 가지는 만큼 보인다는 진리를 여실히 증명하고 계십니다.
막판, 한쪽은 해 지고 반대편은 보름달이 뜨는 환상적 풍경,
거기 빠진 겨운이의 모습이 상상되어 제 기분이 좋아집니다.
멋진 한 편의 가족 드라마를 마음속에 꼬옥꼭 눌러 담아 갑니다. 감사합니다
범산님의 산행에 비하면
저흰 부자는
아이와 함께 하는 소꼽놀이 같은 소풍일겁니다.
낙동정맥을 진행하면서
대간탈 때와는 또다른 의미로 산을 만나는 부자랍니다.
대간길은 이겨내기 버거운 느낌도 없지 않았는데
낙동정맥길은 순리에 순응하는 걸음으로 산을 만나게 됩니다.
아들과의 함산 자체가 고맙고 아름다운 시간으로 채워집니다.
따뜻하게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옛날에는 풒질을떠나서 흔한게 만년필이엇는데.
요즘에는 명풒이 아니면 구경하기 힘든게 만년필인거 같습니다.
낙동정맥 15구간 오룡고개 한무당재 고생하셨습니다.
그러게요.
아마 수요가 적으니 명품, 고가 정책을 펴는가 봅니다.
애 늙은이도 아니고 예전 것을 좋아하는 편인데
감수성이 풍부해서 그런게 아닌가 합니다.
오늘 추위를 뚫고 또 한구간 끝내고 돌아왔습디다. ㅎ
응원 감사합니다
찬찬히 후기 읽어냈습니다.
무한 신뢰로 아들 성장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행복이 느껴집니다.
삼성산은 바빠서 패스했구요.
저는 시티재 휴게소 처마 밑에서 비박했던것 같습니다.
시티재 앞에 동물이동통로가 생긴다니 기쁜 일이네요.
밤새 무시무시한 덤프가 굉음을 내지르며 지나던데,,
거길 무단횡당해야 하는 맥꾼들의 고충이 있거든요.
백두대간보호에관한법률이 생긴 이후 시행령에 따라 예산이 배정되어 나타는 현상입니다.
정맥도 백두대간보호법에 포함이 되었다니,
동물에 앞서 앞으론 맥꾼들이 로드킬 당할 위험에서 벗어나겠습니다.^^
법률이 통과하기까지 누군가의 눈물나는 노력이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한무당재에는 에코다리가 설치되지 않나요? 설치 기준이 궁금하기도 하네요.^^
누군 말합니다.
홀로 산에 다니면 위험하거나 심심하지 않느냐고...
글쎄요....
저 오소리 눈빛, 그리고 해와 달이 공존하는 하늘 아래 서있는 감흥을 모르는 사람이 하는 소립니다.
나무와 새, 그리고 이름없는 야생화...
하나하나 살펴가며 대화를 나누는 방법을 터득해 간다면 절대 심심할 리가 없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