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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시: 2023. 10. 20.~21.(금, 토) - 음력(9. 6.~7.), 일출 06:40~일몰 17:45
●산행지: 백하지맥(白霞枝脈) 1구간 졸업
●산행코스: 천만산(960.1m)-906.8m봉-천마령(925.2m)-936.9m봉-808.7m봉-871.8m봉-삼면경계봉(820m)-664.8m봉-463.2m봉-608.5m봉-도덕재(진삼령/ 581번도로)-576.5m봉-여의치-627.8m봉-백하산(白霞山, 633.1m)-574.2m봉-압치고개(2차선도로)-507.9m봉-칠봉산(519.9m)-안압재(1차선도로)-삼도봉(560m, 전북.충남.충북)-606.8m봉-성주산(622.5m)-446.4m봉-395.5m봉-기웃재-415.9m봉-월영봉갈림봉(457.2m)-월영봉 왕복-성인봉(545m)-560.4m봉-갈기산(598.3m)-금강합수점
●먹거리: 생수1.5리터, 튀김건빵, 포도즙2, 사과, 사탕7
●준비물: 하계텐트, 동계패딩, 폴라텍바지, 무릎담요, 메트리스, 스틱, 헤드랜턴, 구급약, 피부연고, 부직반창고, 충전지2, 충전짹, 손수건, 휴지, 물티슈, 팔토시, 말방울, 비닐우의, 안대, 귀마개, 양말, 띠지7
●거리: 약 44.4Km
●소요시간: 18.06h
●누구랑: 상배운영자님 162지맥 졸업지맥
●경비: 무궁화13,700원, 택시48,600원, 시외버스20,400
●날씨: 3~17, 대체로 맑음
●산행경과
* 10. 20.(금) : 25.8km
- 09:30 : 도마령(800m)
- 10:10 : 천만산(960.1m)/ 삼면봉(용화면, 상촌면 → 양강면)
- 10:47 : 천마령(925.2m)
- 12:22 : 808.7m봉
- 13:00 : 871.8m봉
- 13:30 : 821m봉/ 삼면봉(용화면, 양강면 → 학산면)
- 14:07 : 664.8m봉
- 14:41 : 463.2m봉
- 14:45 : 짐치재(446m)
- 15:05 : 608.5m봉
- 15:19 : 도덕재(450m)/ 진삼령
- 15:52 : 521.2m봉
- 16:26 : 576.5m봉
- 16:56 : 여의치(316m)
- 17:25 : 470m봉/ 도계/ 삼읍면봉(학산면, 용화면 → 무주읍)
- 17:48 : 627.8m봉
- 18:01 : 백하산(633.6m)
- 18:49 : 574.2m봉
- 19:28 : 491.7m봉
- 20:16 : 압재(309.8m)/ 압치
* 10. 21.(토) : 18.6km(월영산 2.1km 포함)
- 02:55 : 압치(309.8m)/ 압재
- 03:19 : 507.9m봉/ 명산갈림봉
- 03:50 : 칠봉산(519.9m)
- 04:06 : 안앞재
- 05:10 : 568.3m봉/ 삼도봉(영동군, 무주군 → 금산군)/ 양각산갈림봉
- 05:28 : 606.8m봉
- 05:52 : 성주산(623.9m)
- 06:43 : 446.4m봉
- 07:07 : 450m봉/ 도계/ 삼면봉(부리면, 학산면 → 제원면)
- 07:20 : 구라리산(395.5m)
- 07:28 : 기웃재(355m)
- 07:56~08:39 : 자사봉(457.2m)/ 월영산갈림봉
- 08:16 : 월영산(527.4m)
- 08:58 : 성인봉(545m)
- 09:08 : 차갑고개(455m)/ 소골갈림길
- 09:51 : 월유봉(560.4m)
- 10:00~15 : 갈기산(598.3m)
- 10:46 : 헬기장
- 11:06 : 금강합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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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하지맥(白霞枝脈)이란...
백두대간의 삼도봉(三道峰, 1178m, 전북.충북.경북)에서 서북쪽으로 분기한 각호지맥(角虎枝脈)이 석기봉(1242m), 민주지산(1241.7m), 각호산(角虎山, 1202m), 도마령을 지나 천만산(960.1m)에서 각호지맥은 북쪽 삼봉산(930.4m), 백마산(534.4m)으로 올라가 영동군 심천면 용당리에서 금강과 초강을 만나며 끝나고, 천만산(960.1m)에서 서쪽으로 분기한 또 하나의 산줄기는 천마령(925.2m), 진삼령, 여의치, 백하산(白霞山, 633.1m), 압치고개, 칠봉산(519.9m), 삼도봉(三道峰, 560m, 전북.충남.충북), 성주산(622.5m), 기웃재, 성인봉(545m), 갈기산(598.3m)을 지나 영동군 양산면 가선리 금강합수점에서 그 맥을 다하는데 도상거리 37.2km 되는 이 산줄기를 백하지맥(白霞枝脈)이라 칭한다. 이 산줄기의 북쪽에는 영동천, 항천, 학산천 등이 금강으로 흐르며, 남쪽에는 용화천, 남대천, 율곡천 등이 금강으로 흘러간다.
이 산줄기는 신 산경표 개정증보판이 나오기 전에는 길이 30km 이상 되고 강 유역면적 200㎢ 이상 되는 147개 지맥 리스트에서 누락 되었으나, 그 후 측정, 기타 오류 수정으로 강 기준이 200㎢ 이상이고, 산줄기 길이가 30km 이상으로 분류되어 추가된 네개(백하, 사금, 무성, 칠보) 지맥 중의 하나로 지맥의 끝을 무주 남대천에서 성주산(622.5m)을 거쳐 금강에 이르는 산줄기로 수정하였다.
♤ 백하지맥 개념도
♤ 백하지맥을 지나는 동네
* 영동군
충북 최남단에 있으며 동쪽은 경상북도 김천시 · 상주시, 서쪽은 충청남도 금산군, 남쪽은 전라북도 무주군, 북쪽은 옥천군과 접해 있다. 길동(吉洞), 계주(稽州), 영산(永山), 계산(稽山)으로 불리었으며, 군청 소재지인 영동읍에는 주곡천(主谷川)과 양정천(楊亭川)의 이수(二水)가 합류하여 영동천(永同川)을 이루고 있는데, 이 "二水"를 한 글자로 표기하면 "永"자가 된다. 신라시대 길동의 "吉"도 이두문에 따라 발음하면 "길=永"이 되며 본군의 명칭인 "永同"은 이 "二水"와 "吉同"에서 유래한 것이다. 신라 초에는 길동이라 불리어 오다가 통일신라 경덕왕 당시에 영동으로 고쳐 불렀다. 영동군은 백두대간과 금북정맥 양쪽에 위치하고 있어 군 전체가 아름다운 산들로 둘러싸여 있다. 동쪽에는 눌의산(訥誼山, 743m) · 황악산(黃岳山, 1.111m)이 우뚝 솟아 있고 금강정맥에서 금강기맥이 갈라지는 지점인 서쪽에는 마니산(摩尼山, 640m) · 천태산(天台山, 715m) · 성주산(聖主山, 624m) 등이 아름다운 능선을 자랑한다. 남쪽으로는 천혜의 자연림으로 알려진 민주지산(眠周之山, 1,242m)과 석기봉(石寄峰 , 1,200m) · 각호산(角虎山, 1,176m) · 삼도봉(三道峰, 1,176m) · 천마령(天摩嶺, 926m) · 막기황산(1,000m) 등 높은 산들이 모여 있으며 북쪽에는 백화산의 포성봉(捕城峰, 933m)이 있다. 예전부터 교통로로 이용되어 온 북동부의 추풍령(秋風嶺)과 괘방령(掛榜嶺)에 지금은 고속도로와 지방도가 지나고 있다. 삼도가 모두 접하는 위치인지라 상촌면에 '삼도봉'이라는 산이 있으며, 삼도의 방언이 모두 존재하기 때문에 국어국문학과, 국어교육과 등에서 방언 연구를 하러 많이 온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지리학과, 지리교육과 역시 문화 연구 차원에서 많이 찾는 곳이다. 이곳의 방언은 기본적으로 충청도 사투리로 분류되지만 데우다-뎁히다, 피곤하다-대근하다 등의 미묘한 차이가 있으며, 경북과 가까운 황간면, 상촌면, 매곡면, 추풍령면 등 경부선 연선에 위치한 쪽은 아예 말이 경상도 사투리와 비슷하다. 마찬가지로 전북과 가까운 용화면과 학산면은 전라도 사투리와 비슷하다. 생활권은 도청 소재지인 청주가 아니라 대전, 김천과 가깝다. 특히 동부 지역인 상촌면, 황간면, 추풍령면, 매곡면은 김천 생활권에 가까운데, 이들 지역은 거리상으로 영동읍보다 김천 시내가 훨씬 가깝기 때문에 김천과 매우 밀접하다. 그래서 김천시 시내버스가 도 경계를 넘어 황간면, 상촌면, 매곡면, 추풍령면까지 온다. 심지어 영동군 농어촌버스가 상주시 서부지역까지 운영하는 경우도 있고, 김천시 시내버스, 구미시 시내버스, 칠곡군 농어촌버스를 이용하면 김천, 구미, 칠곡, 대구에서 영동군까지 시내버스만으로도 갈 수 있다. 또 서남부 지역에서는 무주로 가는 110, 111, 112번 버스가 평균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하며, 무주에서 기차 타러 영동에 오는 등 무주군과도 밀접한 관계에 있다. 대전이 가까워 매우 살기 좋은 환경이다. 다만, 전투기 훈련이 많아 엄청나게 시끄러운 편이므로 조용한 곳을 원한다면 피해야할 고장이다. 영동은 금강 상류지역으로 곳곳에서 발원한 지류들이 금강에 흘러들고 있는데 산과 물이 많아 자연 경관이 아름답고, 남쪽 석기봉(石寄峰, 1,200m)에서 시작되어 동부와 북부를 돌아 금강에 합류하는 초강천과 서부의 호탄천 · 원당천 등이 있다. 내륙에 위치하여 한서의 차가 심한 대륙성 기후의 특징을 보이지만 충북에서 가장 따뜻하고 일조량이 많아 '과일나라'라고 불릴 만큼 생산되는 과일이 많고 맛이 매우 좋다. [통합포탈에서 발췌정리]
* 무주군(茂朱郡)
무주군은 전북 동북부에 있는 군이다. 통영대전고속도로가 연결되어 있고, 충북, 충남, 경북, 경남 등 4개 도와 인접한다. 반딧불이의 대표적인 서식지로 유명하고, 청정환경을 기반으로 관광ㆍ레저형 기업도시를 지향하는 휴양도시로서, 무주덕유산리조트가 조성되어 있다. 또한 19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2017년 세계 태권도 선수권 대회의 개최지이다. 2005년 정부로부터 기업도시로 선정되어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군청 소재지는 무주읍이고, 행정구역은 1읍 5면이다. 무주는 고려말까지 독립현이었던 주계현(朱溪縣)과 무풍현(茂豊縣)을 조선초에 통합하면서 머리 글자를 따 붙인 이름이다. 삼국시대에 주계는 백제의 적천현(赤川縣), 무풍은 신라의 무산현(茂山縣)이었다. 통일신라시대인 757년(경덕왕 16)에 적천현은 단천현(丹川縣)으로 개칭해 진례군(進禮郡, 금산)의 영현이 되었고, 무산현은 무풍현으로 개칭해 개령군 영현이 되었다. 고려초까지 단천현은 마한·백제 문화권에 속했으며, 무풍현은 변진·신라 문화권에 속했다. 940년(태조 23)에 단천현을 주계현으로 개칭했으며, 1018년(현종 9)에 주계현과 무풍현이 모두 진례군의 속현이 되었다. 1172년(명종 2) 무풍현에 감무를 두고 주계현도 겸임하도록 했으며, 1391년(공양왕 3) 무풍현에 주계현을 병합함으로써 지금의 무주군의 틀이 마련되었다. 조선시대의 군현제 개편에 따라 1414년(태종 14)에 무주현으로 개칭했고, 중심지를 주계(朱溪)에 두었다. 임진왜란 후에 적상산성에 사고를 설치하고 실록을 보관하게 된 것을 계기로 1674년(현종 15)에 도호부로 승격하고 금산군의 안성면·횡천면을 편입했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에 남원부 무주군, 1896년에 전라북도 무주군이 되었다. 1906년의 월경지 정리로 금산의 두입지인 부남면이 무주로 이관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에 의해 부내면·서면·북면이 무주면으로, 풍동면·풍남면이 무풍면으로, 신풍면·풍서면·횡천면이 설천면으로, 상곡면·유가면이 적상면으로, 일안면·이안면이 안성면으로, 부남면은 그대로 통합되어 6개 면이 되었다. 1979년에 무주면이 읍으로 승격했다. 백두대간의 여러 산줄기에 둘러싸여 있으며 남서쪽으로는 백두대간에서 갈라진 호남정맥이 뻗어 있다. 또한 진안고원의 북부에 해당하며 대부분의 지역이 높이 400~500m 이상의 내륙산간지역이므로 논으로 이용할 수 있는 평야는 협소하다. 군내에는 적상산(1,029m)·거칠봉(1,178m)·백운산(1,010m)·지봉(1,248m)·덕유산(1,614m)·두문산(1,051m)·대덕산(1,290m) 등 1,000m 이상의 높은 봉우리들이 곳곳에 솟아 있다. 금강이 장수읍 수분리 신무산에서 발원하며, 무주구천동에서 발원한 남대천과 덕유산 산록에서 발원한 구량천이 금강에 합류한다. [통합포탈에서 발췌정리]
* 금산군(錦山郡)
현재의 금산군이란 행정구역상의 명칭은 1914년 3월 1일부, 폐합으로 옛 금산군(錦山郡)과 진산군(珍山郡)을 병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옛 금산군은 백제시대에는 진내군(進乃郡)또는 진내을군(進乃乙郡)이라 했는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경덕왕때 진예군(進禮郡)이라 고치고 고려초에 진예현(進禮縣)으로 하였다가 1305년(고려 충렬왕때 31년)에 금주군(錦州郡)으로 승격시키고, 부리현(富利縣), 청거현(淸渠縣), 무풍현(茂豊縣), 진동현(珍同縣)의 5현을 소속시켜 지금주사(知錦州事) 금주군(錦州君) 김신(金侁)을 임명하여 다스리게 하였으며 오늘날 금산이라는 지명이 있게 하였다. (고려사제57권) 1413년(조선 태종 13년) 이에 따라 금주군(錦州郡)을 금산군(錦山郡)으로 개칭하여 조선말까지 이르렀다. 옛 진산군은 백제시대에는 진동현(珍同縣)이였는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황산군(黃山郡)의 속현(屬縣)으로 하였다. 고려초에 옥계부(玉溪府)로 고쳤다가 1305(고려 충열왕 31년) 금주군(錦州郡)에 소속시켰다. 그 후 1390년에 다시 고산현(高山縣)의 속현(屬縣)으로 한 것을 조선에 와서 1393년(태조2년) 에 만인산(萬刃山:胎峰)에 태조의 태(胎)를 모신후 진주군(珍州郡)으로 승격시키고 지진주사(知珍州事) 를 두어 다스리게 하였으며, 1413년(조선 태종 13년)에 이에 따라 진산군(珍山郡)으로 개칭하였다.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 (則令 第36號)에 13도 실시에 따라 충남 공주부(忠淸湳道 公州府)의 금산군과 진산군을 전북으로 편입되었다가 서두에 기술한 바와같이 1914년 3월 1일 부, 폐합으로 진산군을 병합하여 현재의 금산군(錦山郡)이라 칭하고, 금산면(錦山面), 금성면(錦城面), 제원면(濟源面), 부리면(富利面), 군북면(郡北面), 남일면(南一面), 남이면(南二面), 진산면(珍山面), 복수면(福壽面), 추부면(秋富面)의 10개면(面)으로 하였다가 1940년 11월 1일 부령 제221호(府令 第221號)에 금산면(錦山面)이 금산읍(錦山邑)으로 승격되어 1읍 9면으로 되었다. 그후 1963년 1월1일 서울특별시,도,군,구의관할구역변경에 관한 법률(법률 제 1172호)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전북에서 충남으로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광복 이후 행정구역의 변동상황을 살펴보면은 1953년 12월에 내부리(內釜里)에 있는 군북면사무소(郡北面事務所)를 현재의 위치인 두두리(杜斗里)로 신축이전 하였으며, 1962년 5월 27년 군조례(郡條例) 제28호에 따라 군북면 내부출장소 (郡北面內釜出張所)를 설치하였다.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大統領令) 제 6542호에 따라 복수면 용지리 (福壽面 龍池里)가 추부면(秋富面)에 편입되었다. [통합포탈에서 발췌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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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부 구간거리
도마령-1.4km-천만산-2.2km-천마령-4km-871.8m봉-2.8km-664.8m봉-2.6km-도덕재-4.4km-여의치-2km-백하산-4.5km-압치재-1km-칠봉산-2km-안압재-4.3km-성주산-3.5km-기웃재-1.6km-457.2m봉-0.7km-성인봉-1.8km-갈기산-1.6km-금강합수점
* 구간거리
- 도마령 ~ 압치재 24.1km
-. 도마령 ~ 도덕재: 13.5km (접속 1.4km + 지맥 12.1km)
-. 도덕재 ~ 안압재: 도상거리 13.9km
- 압치재 ~ 금강 합수점 16.5km
-. 안압재 ~ 금강합수점: 도상거리 13.5km
* 식수 공급지 및 산행 정보
- 도덕재: 왼쪽 용화면 방향으로 90m 외딴집(식수보충 확인되지 않음)
- 압치/ 압재: 학산면 봉소리 방향 가까운 곳에 인가(개짖는 소리)
- 무주읍 내도리 방축안마을: 맥길 우회시에 마을회관에서 식수보충 가능
- 영동군 학산면 택시: 010-5422-5052, 010-3403-6173
* 서울에서 백하지맥 분기점 가는 길
- 서울역 ~ 영동역: 20:17, 02.14h, 20,400원, 05:53, 02.45h, 13,700원
- 서울 ~ 대전: ktx, 대전 ~ 영동: 무궁화호
- 영동역 맞은편 고자리행 마을버스로 둔전버스정류장하차 도마령까지 2.5km 도보이동
- 영동역광장 오른쪽 버스승강장 조동리행 143번 버스 불당골하차(1시간 소요)
- 용화면 조동리 불당골에서 도마령까지 2.7km 도보
- 서울 ~ 황간역: 도마령 택시 이동(거리 29.2 km, 요금 40,000원)
* 금강합수점에서 서울 올라오는 길
- 금강합수점 주차장 ~ 금산시외고속버스터미널 택시: 이동거리 14.2km, 0.25h, 요금 23,000원
- 금산시외고속버스터미널 ~ 서울 경부: 06:30, 10시, 15시, 17시, 14,000~20,400원
- 금산시외고속버스터미널 ~ 대전복합터미널: 막차 21:30, 수시운행
- 금강합수점 주차장 ~ 가선리 도보(2.5Km, 30분소요) ~ 가선리 시외버스 탑승
- 갈기산 주차장 ~ 영동읍: 127번
- 금강합수점 주차장 ~ 호탄교 2.8Km, 명덕~영동행 버스 탑승
- 영동역 ~ 서울역: 17:40 ITX(19,500원), 19:11 무궁화(13,100원), 20:05 ITX, 21:15 무궁화(막차)
- 금강합수점 주차장 ~ 무주터미널 택시:
- 무주공용버스터미널 ~ 09:45, 11:05, 14:40, 15:35, 17:45, 3.09h, 16,800~21,800
- 무주공용버스터미널 ~ 대전복합터미널: 07시, 09시, 11:30, 17:45, 0.50h, 5,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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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산경표의 저자인 박성태선생님이 도상거리 30km가 넘는 산줄기 100개를 골라 이른바 100지맥을 처음 발표한 것이 2004년이고, 그 후 46개의 지맥이 더 추가되었으며, 2014년에 백하지맥 포함 10개의 지맥이 더해져 156지맥이 되었으며, 현재는 마지막으로 6개 지맥이 추가되어 162지맥에 이른다. 선생님은 더 이상의 추가 지맥은 없을거라고 말씀하신다. 이 산줄기는 신산경표 개정증보판이 나오기 전에는 길이 30km이상 되고 강유역 면적이 200㎢이상 되는 147개 지맥에서 빠져 있었는데 그후 측정, 기타 오류 수정으로 200㎢ 이상으로 분류되고, 산줄기 길이가 30km이상으로 분류돼서 개정증보판이 나오면서 4개(백하. 사금. 무성. 칠보)의 산줄기가 지맥반열에 합류했는데 백하지맥도 그중의 하나로 지맥의 끝이 무주 남대천에서 성주산을 거쳐 금강에 이르는 산줄기로 수정됐다. 이처럼 백하지맥은 뒤늦게 162지맥 대열에 합류했지만, 짧은 거리에 비해 매우 옹골차고 존재감이 뚜렷한 산줄기이다. 각호지맥 천만산(960.1m)에서 출발한 백하지맥은 실거리 40km 이상을 내달리는 동안 단 한번도 주춤거리거나 위축됨이 없을 뿐더러, 특히 지맥 맨 끝봉이자 300대명산 중 하나인 갈기산(598.3m)에서의 조망은 사뭇 웅혼하다. 백하지맥을 걸으며 이 지역 금강이 품고 있는 국경의 관방유적 테마를 간과치 말아야 한다. 식장, 장령, 각호, 팔음, 금적, 팔봉, 안평 등지에 넓게 퍼져있는 역사학자도 직접 찾기 어려운 삼국시대의 생생한 현장을 샅샅이 누빈다는 맥꾼으로서의 자부심 또한 가져 볼 만하다. 백하지맥은 백하산을 지나 칠봉산(520m)에서 금강에 가로막혀 북서쪽으로 방향을 튼 후, 다시금 금강에 이르러 마지막 힘을 짜내 월영산과 갈기산을 빚어냈다. 월영산은 양산면 가선리와 금산군 제원면 천내리 경계를 이루고, 갈기산은 양산면 호탄리와 학산면 지내리의 경계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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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령이 관광지로 거듭날려는지 전망대 공사가 한창입니다.
♤ 도마령(都馬嶺, 800m)/ 면계/ 삼리봉(용화면 조동리, 상촌면 둔전리 → 고자리)/ 고자리고개/ 답마령
도마령은 49번도로(민주지산로)가 영동군 황간면에서 전북 무주군으로 넘어가는, 충북 영동군 상촌면 고자리와 용화면 조동리를 잇는 해발 800미터의 고갯길이다. 도마령은 말을 키우던 마을, 혹은 칼 찬 장수가 말을 타고 넘던 고개라고 하는데 용화면 방향은 구절양장의 도로로 이 지역 사람들은 도마령보다는 고자리고개라 부르며, 답마령이라는 옛 이름도 전하는 고개이다. 도마령 주변에 1,000m 안팎의 민주지산, 천만산, 각호산, 삼봉산이 이어지는 험준한 산악지대로 24굽이를 돌아가야 넘어갈 수 있는 고개이며, 또 서쪽 아래 용화면 조동마을에는 민주지산 자연휴양림이 위치하고 있으며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다양한 종의 야생동물과 원시성을 유지한 여러 식물군락들이 분포한 생태계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 도마령 고갯마루턱 오른쪽에 이정표가 보이고 이곳에서 급경사의 사면을 나무계단으로 세번이나 올라 고도를 높이며 백하지맥 분기점인 천만산으로 향한다.
♤ 973m봉/ 면계/ 용화면 조동리 - 상촌면 고자리
지맥의 왼쪽은 용화면 조동리이고 지맥이 오른쪽은 상촌면 고자리(高子里)이다. 고자리는 일제 때는 금광 개발로 호경기를 이루었던 곳이다. 973m봉에서 좌틀하여 이정표가 가리키는 3.82km 전망대 방향으로 능선을 오르내리며 진행한다.
♤ 영동군 용화면 조동리(肇東里)
영동군 용화면 조동리는 천만산과 각호산 자락에 있으며 용화천의 발원지이다. 임야가 넓으며 밭농사를 주로 하는 산촌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새골(조동), 불당골(불당곡), 상촌, 평촌 등이 있다. 조동리는 마을이 민주산과 천마령 사이의 골짜기에 있어, 새골 또는 조동이라 부른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불당골(불당곡)은 옛날에 불당이 있었다 하고 상촌은 조동 위쪽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고, 평촌은 들이 넓어 평평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행정리는 조동1리와 조동2리로 나뉜다.
백하지맥은 각호지맥 천만산에서 분기하기에 각호지맥 도마령에서 천만산으로 접속하여 시작합니다.
♤ 천만산(千萬山, 960.1m)/ 백하지맥분기점/ 삼면봉(용화면 조동리, 상촌면 고자리 → 양강면 산막리)
오른쪽으로는 각호지맥, 왼쪽으로 백하지맥 산줄기가 갈라지는 분기봉이며, 충북 영동군 상촌면 고자리, 용화면 조동리, 양강면 산막리가 만나는 삼면봉이기도 하다. 천만산은 조선후기 『해동지도』에 천마령(天摩嶺)과 함께 천마산(天摩山)으로 표기되어 처음 등장하고 『여지도서』에는 "천마산(天摩山)은 현 남쪽 25리에 있으며 황간 황악산으로부터 천마산 주맥이 된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같은 문헌에 남일면 천만리가 기록되어 있다. 『동여도』, 1872년 지방지도, 조선지지자료에 천마산(天摩山)으로 표기된 반면에 『대동여지도』에는 천마산(天馬山)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 지명은 비교적 최근에 사용된 이름으로 여겨지며 마을 지명인 천만리(千萬里)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지명총람』에는 천마산(天摩山)과 그 다른 이름으로 천만산(千萬山)이 기록되어 있으며 천마령(天摩嶺)은 북동쪽에 있다고 언급되어 있는데 봉우리가 아주 뾰족하여 하늘을 만질 만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널찍한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부 소나무에 ‘천만산 960M’와 준희선생님의 ‘여기가 삼면봉입니다 영동군 상촌면, 용화면, 양강면입니다’라는 산패가 걸려있다. 정상은 Y자형 갈림길인데 오른쪽은 각호지맥으로 이어지고 왼쪽은 백하지맥이다. 왼쪽에 백하지맥 분기점 준희선생님 산패가 걸려있는데 좌틀 급경사로 내려서면서 학산면과 만나는 삼면봉(821m봉)까지 왼쪽은 용화면 조동리, 오른쪽은 양강면 산막리의 면계를 걷게 되는 셈이다.
♤ 영동군 양강면(楊江面)
충북 영동군 중부에 있는 면으로 남쪽은 용화면(龍化面)·학산면(鶴山面), 북동쪽은 영동읍(永同邑), 북쪽은 심천면(深川面), 서쪽은 양산면(陽山面)과 접한다. 백두대간의 중산간 지역으로 면의 대부분이 산지를 이루고 있는 고산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양강면을 신설했고 법정리 14곳을 관할한다. 남부의 천마령(天摩嶺, 933m)을 중심으로 북부로 향하여 고도가 낮은 구릉지가 분포하며 남고북저(南高北低)의 지형을 이룬다. 면의 남쪽은 백두대간의 능선을 이루는 민주지산과 각호산이 위치하며 서쪽 양산면과의 경계를 따라 금강(錦江)이 곡류하면서 북으로 흐른다. 주로 산지농업이 이루어지며 포도, 복숭아, 자두 등 과수재배가 활발하다. 무주와 영동을 이어주는 19번국도가 면의 중앙을 관통한다. 문화재로는 영동 자풍서당, 영동김참판댁, 김령이와 장비단소, 묵정리고가 등이 있다.
♤ 906.8m봉
등로 왼쪽으로 영동군 용화면 조동리가 조망된다. 분기점에서 10여분을 빡시게 진행하여 만난다. 오른쪽 사면으로 지나게 된다. 우틀로 내려서서 진행한다. 백하지맥은 최근 진행하신 부뜰이, 천왕봉운영자님이 산패작업을 착실하게 해 놓으셨다.
♤ 878.1m봉
좌틀로 내려선다. 천마령 오름길 왼쪽으로 도마령에서 각호봉~민주지산~석기봉으로 이어지는 각호지맥 주능선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 민주지산(岷周之山, 1,241.7m)/ 맨두름산
민주지산은 충북 영동군 상촌면과 전북 무주군 설천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민주지산(岷周之山)의 한자(漢字) 이름을 보면 민(岷)은 산맥을 뜻하고, 주(周)는 두루 혹은 둘레를 뜻하므로 첩첩산중에 둘러싸인 산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동국여지승람』 등에는 백운산(白雲山)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그 이후에 삼도봉에서 각호봉까지의 산세가 민두름(밋밋)하다고 해서 ‘민두름산’이라고 부르던 것을 일제시대에 지명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민주지산(岷周之山)으로 단순 표기하여 원래의 이름과는 다른 지명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 각호산(角虎山, 1,202.0m)/ 아가리째진산/ 쌀개봉
각호산은 충북 영동군 용화면과 상촌면에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인근의 민주지산의 명성에 가려 산객들이 뜸한 산이며 국립지리원 지도에는 고도가 1,202.0m로 표기가 되어 있다. 두개의 암봉으로 되어 있으며 정상석이 있는 봉우리는 접근하기가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옛날에 뿔달린 호랑이가 살았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이름이며 『동국여지도』에는 각괴산(角魁山)으로 표기되어 있고 배거리산이라는 지명도 가지고 있는데 개념도상 배거리산은 여기가 아니다. 『대동여지도』에는 '각귀산(角鬼山)'이 기록되어 있고,『조선지지자료』에는 "각휘산(角輝山)은 용화면 조동에 있다." "각휘곡(角輝谷)은 용화면 조동에 있다.", "각후산(覺后山)은 군동면 상가리촌에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지금의 산 이름인 각호를 각휘(角輝), 각후(覺后)와 같이 다양하게 표기하고 있다. 『한국지명총람』에는 각호산의 다른 이름으로 '쌀개봉'과 '아가리째진산'을 기록하고 있으며, "산에 있는 바위가 뿔 또는 쌀개처럼 생겼으며, 그 아래에 호랑이가 살았다."라는 각호산의 지명 유래를 소개하고 있다.
남양주 마석우리를 지나는 천마지맥의 천마산(天摩山, 812m)이 자꾸 떠올려지는 이유는 뭘까?
♤ 천마령(天摩嶺, 925.2m)/ 삼각점봉(판독불가)
산봉우리인데 고개 이름인 천마령이다. 천마령(天摩嶺)은 충북 영동군의 양강면 산막리 내천마동에서 용화면 조동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한국지명총람』에는 '천마령(天摩嶺)'이 기록되어 있으며, 천만산(千萬山) 남서쪽에 천마령이 있다고 언급하였다. 또한, 지명 유래에 대하여 봉우리가 아주 뾰족하여 하늘을 만질만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지명 유래는 천마령의 지명 표기자를 훈차 표기로 전제하여 풀이한 결과이다. 천마령은 조선 후기 『해동지도』에 천마산(天摩山)과 함께 '천마령'으로 표기되어 처음 등장한다. 이후 천마령에 대한 기록은 나타나지 않고 다만 인접한 산 지명인 천마산이 『여지도서』, 『대동여지도』, 『동여도』, 『1872년지방지도』에 기록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에 이르러 비로소 '천마산'과 함께 '천마령은 남일면'이 표기자 변화 없이 기록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 양강면 산막리의 천마령 북사면 골짜기에는 내천마동과 외천마동이 분포한다. 이곳 천마령 북사면에서 영동천의 발원이 시작되는 곳이다. 영동천(永同川)은 양강면 산막리 천마령(天摩嶺) 북사면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흐르다 영동읍 부용리 부근에서 매끄내[梅川]와 주곡천을 합하여 심천면 초강리에서 금강 본류(고당강)와 합류한다. 지명은 '영동면'이란 면 지명이 생성된 1914년 후에 등장한 하천 지명으로 보이며, 조선 시대 영동천은 '동천(東川)'으로 불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동천(東川)은 성 동쪽에 있다."라는 기록이 보이고, 『여지도서』에도 "동천(東川)은 현 서쪽 1리에 있다. 천마산에서 흘러와 고당강에 들어간다."라고 등재되어 있다. 이후 『대동여지도』에도 표기자 변화 없이 동천으로 통용되다가 일제 강점기 및 현대로 오면서 지명이 소멸되어 오늘날에는 영동천으로 불리게 되었다. 『한국지명총람』에 '영동천(永同川)'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곳을 지나 능선을 내려서면 포장임도를 만나게 되는데 '산막임도 정상' 이정목과 '천마령'안내판이 있는 임도 안부가 실질적인 '천마령'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글씨는 있지만 이끼가 끼어 판별키 어려운 삼각점이 박혀있다. ‘백하지맥 △천마령 925.2m 맨발’이란 팻말이 걸려있고 삼각점이 박혀있는 곳에서 오른쪽 20여m 더 가야 제일 높아 보이는 917m봉이다. 우틀로 꺽어 고도를 150m가량 떨어뜨린다.
♤ 영동군 용화면 용화리(龍化里)
본래 영동현 남이면 지역으로, 용화마을은 고려시대에 용화현(龍化縣)으로 내룡리(內龍里)와 용화리를 잇는 용강(龍江)의 물줄기가 용같이 생겼다는데서 지명이 유래하였다. 연대(年代)는 알 수 없으나 창(槍)을 보관하였던 마을이라 하여 창마을(槍말)로 불리어져 왔으며, 조선 태종 13년(1413) 영동현에 편입되었고 그후 영조 35년(1759) 영동현 남이면 용화리로 명칭 되었다. 1909년 영동군 용화면에 속했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내룡동(內龍洞).창촌동(倉忖洞).창곡동(倉谷洞)을 병합, 용화사라 부르고 영동군 용화면에 편입되었다. 처음 면사무소가 월전리에 있었으나 1936년 이곳 용화리로 옮겨왔으며, 1935년에 경찰지서가 자리잡았다. 행정리로 용화리(용화:창촌), 내룡리(내룡:안용화:안용해, 창곡:창골)가 있다.
♤ 산막임도/ 양회임도/ 면리계(용화면 조동리 - 양강면 산막리)
천마령에서 20여분 내려선다. 임도에 내려서서 영동군 양강면 산막리 방향으로 보면 우측에 '산막임도정상'이정표와, 좌측 '천마령"안내판이 있다. 오른쪽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고 천마령(天摩嶺) 안내문이 있다. 내용인즉 ‘충청북도 영동군 양강면 내천마동에서 용화면 조동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옛길이다. <한국지명총람>에는 천마산(天摩山) 남서쪽에 천마령(天摩嶺)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또한 지명 유래에 대하여 봉우리가 아주 뾰족하여 하늘을 만질만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고 하였다. 양회임도인 산막임도를 건너 절개지 왼쪽으로 급경사 등로를 올라 무명의 능선봉에서 좌틀로 휘어져 올라선다.
♤ 영동군 양강면 산막리(山幕里)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영동군 양강면 산막리(山幕里)로 이어진다. 산막리는 남쪽의 삼봉산과 넓은 산자락을 두고 있는 산골짜기 마을로 동, 남, 서가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매우 평지가 좁으나 산막저수지와 영동천이 있다. 자연마을에는 산막골, 신방동, 외천마, 내천마가 있다. 산막골은 과거에 산속에 막을 치고 살았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외천마와 내천마는 각각 바깥쪽과 안쪽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930m봉/ 936.9m봉 갈림길/ 면계/ 삼리봉(양강면 산막리, 용화면 조동리 → 자계리)
약 855m봉에서 왼쪽으로 휘어져 완만하게 진행한다. 이곳에서도 왼쪽으로는 불당골 골짜기와 지나온 천만산과 도마령 그리고 각호산과 민주지산 그리고 석기봉이 차례로 조망이 되고 족보가 있는 936.9m봉은 이곳에서 왼쪽으로 맥길에서 꽤 벗어나 있다. 936.9m봉 어깨인 약 930m봉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서며 맥길을 잇는다.
♤ 영동군 용화면 조동리 상촌마을
등로 오름길에서 바라본 영동군 용화면 조동리 상촌마을의 모습이 보인다. 조동리는 마을이 민주지산과 천마령 사이의 골짜기에 있어, 새골 또는 조동(鳥洞)이라 부른데서 유래한 이름이고 상촌(上村)은 조동 위쪽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 960m봉
돌이 많은 급경사 등로를 비탈사면으로 힘들게 오른 무명 암봉인 960m봉에서 지나온 능선을 조망하고 급경사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 808.7m봉
암릉구간에 올라서니 맨발님 산패와 선답자들 띠지가 많이 있으나 국립지리원의 지도에는 무명봉으로 되어있다. 우틀로 내려선다.
♤ 871.8m봉/ 면계/ 삼리봉(용화면 자계리, 양강면 산막리 → 지촌리)/ 성터 흔적
아무런 특징 없이 한동안 길을 따르다 왼쪽으로 우회길이 있지만 정면으로 올라가니 ‘백하지맥 871.8m 준.희’란 표지판이 걸린 봉에 올라선다. 871.8m봉에서 좌틀로 꺽어 성터의 흔적이 남아있는 석축을 넘어 내려서면 조금 전 왼쪽 산사면으로 갔던 길과 만난다.
♤ 폐헬기장
20분 정도 진행하면 억새와 잡목이 우거진 폐헬기장이 나오는데 용도 모를 철근으로 만든 삼각대 모형의 쇠꼬챙이가 둘 세워져 있다.
백하지맥은 영동군 학산면에서 전북(무주군)과 충남(금산군)의 도계와 같이하며 가장 길게 같이 하는군요. 아쉽게도 삼면봉에 산패가 없었습니다.
♤ 삼면봉(821m)/ 영동군 용화면, 양강면 → 학산면
영동군 용화면 자계리와 양강면 지촌리, 학산면 도덕리가 만나는 삼면봉으로 왼쪽의 용화면은 도마령에서 계속해서 같이왔고, 오른쪽은 천만산에서부터 같이해 온 양강면과 이곳에서 작별을 하고 새로운 행정구역인 학산면으로 접어든다. 헬기장을 지나 올라서면 Y자형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이는 821m봉이 나온다. 좌틀로 내려서면서 지맥 오른쪽이 양강면에서 학산면으로 바뀌어 용화면과 학산면의 면계를 따라 도덕재까지 이어진다. 삼면봉을 지나 한동안 길게 내려선다. 이후로 지맥의 오른쪽은 월영봉과 성인봉, 갈기산까지 길게 학산면의 경계와 함께 한다.
♤ 영동군 학산면(鶴山面)
남부는 영동군 용화면(龍化面)·전북 무주군 무주읍, 동부는 양강면(楊江面), 북부는 양산면(陽山面), 서부는 충남 금산군 부리면(富利面)과 접해있고, 남부의 백하산(白霞山, 634m)·칠봉산(七峰山, 521m), 서부의 성주산(聖柱山, 624m) 등의 산릉이 면의 주변을 에워싸 분지형태를 이룬다. 신라 시대에 조비천현(助比川縣) 지역에 속하였는데, 조비천이란 지명은 양산강(陽山江 助比川)에서 유래되었다. 경덕왕 때는 대양산(大陽山)의 이름을 따서 양산현이라 고치고 관성군(管城郡: 현 沃川)의 속현으로 삼았다. 고려 시대에는 경상도 경산부에 소속된 적이 있으며 고려 태종 13년(1413)에 충청도로 옮겨지면서 옥천군에 편입된 후, 옥천군 양남면 또는 양남일소면으로 불리다가 1906년 지방행정구역 정비에 의하여 영동군에 소속되었다. 1914년 총독부의 행정구역 통폐합령에 따라 지내리(池內里), 박계리, 봉산리(鳳山里), 봉소리(鳳韶里), 학산리(鶴山里), 서산리(鋤山里), 아암리(鵝岩里) 등 7개리로 개편하고 면사무소를 지내리에서 서산리로 이전하면서 면 소재지 앞산의 형태가 학(鶴)처럼 생기고 옛날에 학이 많이 찾아 들었다 하여 학산면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큰 하천은 없고 원당천(元塘川)이 북류하여 금강(錦江)과 합류하며 경지는 무주∼영동 간의 국도변과 면의 중앙부 구릉성 저지에 분포하며 주산물인 쌀을 비롯하여 보리의 산출이 많다. 그 밖에 잎담배·양잠이 성한데, 특히 이곳은 군내의 대표적인 잎담배 산지를 이루며 무주∼영동 간 국도가 면을 관통하고 학산에서 양산(陽山)을 거쳐 옥천까지 지방도로 연결된다. 문화재로는 영동 성위제가옥(永同成渭濟家屋:중요민속자료 144), 서산리 사지(鋤山里寺址), 노고산성(老姑山城), 용절사(龍節祠), 대왕산성(大王山城) 등이 있다. 학산면 너머로는 금남정맥에서 가지를 친 장령지맥과 식장지맥 능선이 보이고, 맨 뒷쪽에는 충남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는 장령지맥 상의 서대산과 천태산이 흐릿하게나마 존재감을 내세우고 있다.
♤ 681m봉
좌틀로 휘어져 고도를 낮춘다.
♤ 영동군 용화면 자계리(紫溪里) 비끈뱅이 마을
벌목지 오른쪽 능선 아래로 내려선다. 벌목지 너머로는 영동군 용화면 자계리 비끈뱅이 마을이 보이고 그너머로 다음 구간에 가야할 백하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자계리는 용화면의 산간지역에 자리잡은 산골 마을로 해발고도도 상당히 높으며 남쪽은 백운산, 북쪽은 각호산, 천만산 등지로 이어지며 콘도가 있고, 남쪽으로 좁은 평지에는 남대천이 굽이굽이 흐르고 있으며 산에서는 용화천이라는 매우 작은 하천이 흘러 내려오고 있다. 자연마을에는 구백이, 샛담, 웃빗근뱅이, 중자작이, 아래빗근뱅이가 있는데 구백이는 임진왜란 당시에 900명이 피난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샛담은 큰 새가 떨어졌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웃빗근뱅이와 아래빗근뱅이는 각각 위쪽과 아래쪽 마을을 의미하는 지명이다.
♤ 664.8m봉
도저히 뚫고 올라설 틈이 보이지 않는 잡목을 가까스로 헤치며 정상에 오르니 시야가 트인다. 올라야할 608.5m봉이 보이고 좌틀로 휘어져 고도를 낮춘다.
♤ 463.2m봉/ 4등삼각점(이원 474/ )
한동안 내려서면 안부인데 안부와 높낮이가 거의 없는 살짝 올라선 곳이고 잡목에 둘러싸여 발을 들여 놓기도 어려운 곳에 ‘백하지맥 △463.2 준.희’선생님 표지판이 걸려있고 삼각점은 받침이 없이 방위표시 머리만 내밀며 박혀있다. 잡목을 헤치며 뚫고 삼각점이 있는 곳을 지나 약 3분 벌목지를 내려서면 서낭당이 있는 안부에 닿고 서낭당 안부를 지나면 급경사 오르막 등로가 608.5m봉까지 이어진다.
♤ 짐치재(446m)/ 침태재/ 면리계/ 서낭당고개
영동군 용화면 자계리 비끈뱅이 마을에서 학산면 도덕리 마도마을로 이어지는 안부에 예전에 민초들이 이곳을 넘나들며 인연을 쌓고 안녕을 기원하던 서낭당이 있다. 통행 수단을 달리하는 지금은 이 고개를 이용하는 발길이 끊어지고 지맥꾼이나 간간히 오가는 잊혀진 고개이다. 서낭당은 통행인이 길을 안전하게 가기 위해 돌을 주워서 돌무더기 위에 던지거나 침을 뱉는데 이는 길가에 배회하는 악령으로부터 안녕을 기원하는 무속신앙으로 이곳도 예전에 많은 민초들의 삶이 녹아 있던 서낭당이었겠지만 이제는 재는 물론 사람들의 왕래까지 끊긴 한적한 안부로 전락하고 말았다.
♤ 영동군 학산면 도덕리(道德里) 마도마을
마도마을은 오지중에 오지라 사람 구경하기 힘든 곳이다. 도덕리는 학산면의 동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 뒤로는 시항산(정산, 샘산)이 솟아 있고, 앞으로는 시항천이 발원하여 남대천으로 들어가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마도마을은 마섬 또는 말메골이라고도 부르는 마을로 동네 위의 골짜기에 있는 바위가 말 발자국이 찍힌것 같은 표식이 만들어져 있어 이 마을을 말에 연유하여 유래된 지명으로 말 발자국에 대한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데, 산 정상인 만리봉에 성을 쌓아 놓고 지키고 있던 신라의 장군이 말을 타고 골짜기를 내려와 배마루 강에서 말에게 물을 자주 먹였는데, 그 때에 말발굽자국이 남았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 608.5m봉
돌무덤이 있는 성황당 안부에서 정면의 평평한 오름이 시작되는데 앞선 길 흔적을 따라 올라간다. 고도차 150여m를 극복하여야 하는 오름이라 힘에 부친다. 힘겹게 능선에 올라 좌틀로 한동안 완만한 오름길을 진행하면 ‘백하지맥 608.5m' 준희선생님 산패가 걸려있는 봉우리에 도착한다. 거칠게 오른 만큼 우틀로 휘어져 거칠게 내려선다. 계속해서 내려가던 산줄기가 잠시 능선을 올라서면 정상부에 참호(이장한 묘지터?)가 있는 약 495m봉에 닿게 되는데 이곳에서 직진으로 뚜렷한 등로가 내려가지만 웅덩이의 오른쪽 능선으로 내려서야 도덕재로 향한다. 알바주의 지점이다.
♤ 도덕재(道德峙, 450m)/ 면리계/ 진삼령/ 581번지방도로/ 2차선 용화양강로/ 산불감시초소
충북 영동군 용화면 자계리와 학산면 도덕리로 이어지는 581번 지방도가 지나가는 고개로 진삼령 또는 도덕재라는 불리는데 지명의 유래는 오른쪽 아래에 있는 도덕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 곳인 도덕마을에 있는 고개라서 붙여진 이름으로, 영동군의 향토지(鄕土誌)에는 조선시대에 용화면 자계리 넘어 다닐 때, 진삼재(이 마을 사람들은 짐치재라 부른다)에 도둑이 많아서 도둑골 또는 도적골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도덕은 본래 진삼재 밑이 되어 도둑이 많았으므로 도적골이라 하던 것이 변하여 도덕이 된 것으로 더덕이 많이 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으며 진삼령 또는 도덕재가 지나는 도덕리는 충북 영동군 학산면에 있는 리로서 학산면의 동남부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도덕재 팻말이 있는 도로에서 학산면쪽으로 가서 도덕재 간판 왼쪽 뒤로 맥길을 잇는데 송전탑을 오른쪽 경사면으로 오르고 능선길을 따라 10분 정도 진행하니 유리창이 멀쩡하니 한겨울에 바람이라도 피할 수 있을 산불감시초소가 나온다. 초소에서 왼쪽으로 간다.
♤ 진삼령(鎭三嶺)/ 진잠재
송전탑을 지나 산불감시초소 못 미친 안부에 국토정보지리원에서 진삼령이라 표기를 해놨으나 일반적으로는 지나온 도덕재를 진삼령으로 알고 있는 탓에 고증이 덜된 곳이다.
♤ 521.2m봉/ 면리계/ 삼리봉(학산면 도덕리, 용화면 자계리 → 여의리)
소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매어 있다. 완만한 오르막으로 무명봉 하나를 지나 우틀로 꺽어져 내려서고 암릉 구간을 올라 뾰족한 봉우리로 올라선다. 557m봉을 오르며 등로 왼쪽으로 백하산이 보이기 시작하고 멀리 덕유산 향적봉도 조망된다. 만두와 찐빵을 몇개 넘고 화마에 할퀸 봉우리에 올라서면 길이 좋아 속도가 난다.
♤ 576.5m봉
문패없는 묵묘에서 맥길은 좌틀로 이어지고 555m봉을 지나 뚜렷한 맥길로 내려가는데 약초재배단지인지 등로 옆으로 노끈이 쳐져있다. 관리자가 있는 산이라선지 576.5m봉에 있는 산패는 보이지 않고 띠지 몇개만 달랑거린다. 왼쪽으로 급경사의 내리막길이 쏟아지고 이장한 듯한 파묘터에서 좌틀로 맥길이 이어진다. 이곳에서 부터 등로는 왼쪽으로 크게 휘어지면서 내려가는 형국이다. 지맥의 오른쪽이 학산면 도덕리에서 아암리로 바뀌는 지점이다. 563m봉을 지나고 잠시후에 올라갈 627.8m봉(좌)과 백하산이 멋진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 충북 영동군 학산면 아암리(鵝岩里)
백하산 자락에 있는 마을로 골짜기가 많으며, 마을 앞으로는 학산천이 흐른다. 자연마을로는 굴모렁이(굴우), 굴바우(굵바우, 공암), 노루목(노루메기, 장항), 철골(철동) 등이 있다. 굴모렁이는 굴바우 동북쪽 모롱이에 있는 마을이다. 굴바우는 굴바우가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공암이라고도 한다. 노루목은 마을 어귀에 노루목처럼 생긴 산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철골은 옛날 이곳에 철가마가 있었다고 해서 생긴 지명이다. 행정리는 아암1, 2, 3리로 나뉜다.
♤ 여의치(如意峙, 316m)/ 면리계/ 영동군 용화면 여의리(如意里) - 학산면 아암리
완만하게 능선을 걷다가 급경사의 절개지를 내려서면 차량이 지날 만큼 넓은 양회임도가 지나는 '여의치'에 닿는다. '여기가 여의치입니다' 준희선생님 산패가 길가 나무에 매어 있다. 여의치는 충북 영동군 용화면 여의리에 있는 고개로서 여의리라는 마을 유래를 낳게 한 고개이다. 여의리는 용화면 중앙 남단의 백하산 자락에 있는 마을로 뒤로는 백화산이 우뚝 서 있으며 앞으로는 남대천이 흐른다. 임야가 넓으며 밭농사를 주로 하는 농촌마을이고, 본래 관성군 속현인 양산현 지역으로 1313년 옥천군에 편입되었고 조선에 이르러 옥천군 양남이소면에 속하였다가 1906년 영동군에 편입되었다. 자자기 아래쪽이 되므로 아래자자기(하자작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여의티의 이름을 따서 여의리라 하고 영동군 용화면에 편입하였으며 자연부락과 행정리명 모두 여의리이다. 여의치 고갯마루 왼쪽 입산금지 프랑카드가 있는 곳으로 절개지를 올라 백하지맥 산행을 이어간다.
♤ 470m봉/ 도계/ 삼읍면리봉(충북 영동군 학산면 아암리, 용화면 여의리 → 전북 무주군 무주읍 오산리)
여의치에서 310m 정도 고도를 높이는데, 470m봉을 오르고 안부에서 본격적인 빡센 오르막을 올라 백하산의 전위봉인 627.8m봉으로 나누어 오른다. 30분 정도 올라선 470m봉에서 왼쪽에서 올라온 도경계능선과 만나 지맥의 왼쪽이 영동군 용화면을 떠나 전북 무주군 무주읍 오산리로 바뀌고 여기부터 충북과 전북의 도계에 들어선다.
♤ 627.8m봉/ 도군읍면계/ 영동군 학산면 - 무주군 무주읍
약 45분 걸려 정상부에 오르니 석축을 지나 묵묘가 있고, 소나무 가지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매달려 있다. 무명묘지에서 좌틀로 향하며 오른쪽에 있는 백하산을 바라본다. 능선에 올라서니 멋진 조망처가 나온다. 백하지맥의 분기봉인 천만산(맨 왼쪽)에서 각호산~민주지산, 석기봉~백두대간 상의 삼도봉으로 이어지는 각호지맥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번엔 북동쪽을 바라보니 영동읍내에 아파트가 흐릿하게 보이고 뾰족하게 위용을 자랑하는 영동의 북서쪽에 위치한 백화산 한성봉(933m)이 보인다. 다시 빡신 가플막을 올라 왼쪽으로 30m 비켜서 있는 627.8m봉 정상에 올라서고 우틀로 이어져 백하산을 바라보며 걷는다. 전망바위를 지나 암릉으로 오르니 왼쪽으로 멀리 덕유산과 오른쪽 적상산이 우뚝 솟아 있고 덕유지맥 산줄기가 길게 이어진다. 맨 뒤쪽으로 흐릿하게 덕유산 서봉과 남덕유산이 솟아 있고 그 오른쪽으로 끝없이 파노라마의 산그리메가 이어진다. 장안산과 팔공산 그리고 덕태산 줄기로 이어지는 금남호남 산줄기도 어렴풋한 산그리메를 보이며 환상적인 자태가 펼쳐진다.
♤ 백하산(白霞山, 633.6m)/ 2등삼각점(이원 28/ 1983 재설)/ 묘지
백하산은 전북 무주군 무주읍, 충북 영동군 학산면과 용화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하얀(白) 노을(霞), 하얀 이내라는 뜻으로 노을이 아름다운 산이다. 산의 외부적인 형세는 평범하지만 산속 곳곳에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많은데 산의 동쪽에는 여의치저수지가 있고 서쪽에는 봉황저수지가 있다. 백하산 줄기는 영동에서 학산을 거쳐 무주로 이어지는 19번국도와 나란히 뻗쳐있어 차를 타고 가며 계속 그 모습을 올려다 볼 수 있다. 무주 쪽보다는 학산 일대에서 보는 모습이 훨씬 까칠하고 인상적이다. 등산코스는 세가지가 있는데 가장 짧은 코스는 내삼에서 정상에 올랐다가 철골로 하산하는 코스로서 내삼마을은 안삼마을이라고도 부르며 삼정마을 안에 있는 삼정이라는 뜻이다. 마을 입구에는 도랑제를 모시는 반신 석상이 있고 명절 때 마을의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는 도랑제를 지내며 이곳에서 1시간 10여 분 오르면 주능선으로 적상산과 대덕산이 보인다. 두어 개의 봉우리와 숲길을 지나 정상에 오르는데 정상에서는 여의치저수지의 시원한 경관이 한눈에 보이며 정상에서 북쪽으로 뻗은 암릉은 백하산에서 제일로 손꼽히는 곳이다. 가파른 낭떠러지와 낙락장송이 어우러져 경치가 아름다운데 이곳에서 철골로 하산하며 3시간 정도 걸린다. 주변에는 영국사와 강선대, 비봉산, 봉황대, 함벽정, 여의정, 자풍당 및 용암의 양산팔경 등의 관광지가 있다. 펑퍼짐한 너른 공터의 정상에는 분명치 않은 무덤과 2등삼각점이 있고 백하지맥 주봉이건만 흔한 정상석 하나 없다. 지맥은 백하산 정상에서 급좌틀로 휘어져 내려선다. 오른쪽은 충북, 왼쪽은 전북의 도계를 걷는데 충북지역인 학산쪽은 까칠하고 천길 낭떠러지이나 무주쪽은 그저 완만하다.
왼쪽으로 급하게 휘어져 내려서는 능선 오른쪽으로 충북 영동군 학산면 황산리쪽 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지네요.
♤ 충북 영동군 학산면 황산리(凰山里)
황산리는 뒤로 산이 우뚝 서 있으며, 앞의 들에는 학산천이 흐른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본래 양산현 지역으로 옥천군 양남일소면에 속했다가 1906년 영동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용산동(龍山洞).죽촌동(竹村洞).모정동(茅亭洞)과 무기동 일부를 병합하여 봉산리라 부르고 영동군 학산면에 편입했다. 1915년 5월 26일 봉산리를 황산리로 개칭하였다. 행정리로 모정리(모정:모정말, 띠골, 피리기, 큰담).죽촌리(죽촌:대밭말, 대나무골).용산리(용산:방아골), 마실(마곡) 등이 있고 자연마을이 있다. 대밭말은 뒤에 대나무밭이 있었다 하여 생긴 지명이고 피골은 뒷산에 잔디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1990년 비석동은 자연 폐동되었으며 리 내에 봉산초등학교가 있었으나 현재 폐교되었다.
♤ 620m봉/ 도군읍면계/ 삼리봉(무주군 무주읍 오산리, 영동군 학산면 아암리 → 봉소리)
내리막 능선 오른쪽으로 충북 영동군 학산면 황산리쪽 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620m봉에서 영동군 학산면 일대의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한다. 19번국도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황산리와 주변 마을이 아름답게 펼쳐지고 멀리 뒤쪽으로는 서대산 쪽에서 흘러 내리는 장령지맥과 중앙 뒤쪽으로 월아산 그리고 그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산그리메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오며 지맥의 마지막에 있는 성주산과 갈기산이 한눈에 조망된다. 갈기산 뒷편 오른쪽으로 보이는 산은 100대명산 천태산이고 그 뒤쪽에 충남 최고봉 서대산이 서있다.
♤ 영동군 학산면 봉소리(鳳韶里)
압재 오른쪽 영동군 쪽으로 약 2km(20분)를 내려서면 영동군 학산면 봉소리 압치경로당 앞에 도착한다. 봉소리는 마을 뒤로 산이 둘러싸고 있으며, 앞으로는 학산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꾀꼬리, 독순징이, 무가(사락호), 바깥삼정(외삼정), 삼정골(삼정,안티), 새터(신기,새말), 안삼정골(내삼,내삼정), 안앞재(내압티), 앞재(앞티) 등이 있다. 꾀꼬리는 근처에 ‘앵소유지형’의 명당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삼정은 마을에 세그루의 느티나무 정자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새터는 새로 생긴 마을이며, 앞재는 앞재 밑에 있는 마을이다. 바깥삼정은 삼정골 바깥쪽에, 안삼정골은 삼정골 안쪽 백하산 아래에 있다.
♤ 564m봉/ 도군읍면계/ 무주군 무주읍 오산리 - 영동군 학산면 봉소리
내려서던 등로가 다시 암릉으로 올라서며 노간주나무가 있는 564m봉에 닿고 사방으로 조망이 좋다. 학산면 봉소리 봉황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서쪽으로 보이는 능선은 백하지맥 마지막 구간인 성주봉과 월영봉, 갈기산 능선이다.
♤ 574.2m봉
작은 공터가 있는 잡목봉으로 맨발님 산패가 붙어 있다. 이곳에서 마루금은 급우틀로 휘어졌다가 다시 왼쪽으로 휘어져 내려가게 되는데 나무가지 앞쪽으로 올라야할 491.7m봉이 보인다.
♤ 491.7m봉
밋밋한 등로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소나무에 걸려있다. 무심코 걷다보면 놓치기 쉬워 보인다. 고도를 낮추기 시작하면 압재가 가까워지며 간간히 차량소리가 들린다.
♤ 515m봉/ 성터 흔적?
참호처럼 파여진 봉우리 정상부에 돌이 널려있는 무명봉이다. 이곳에서 지맥은 급좌틀로 휘어져 내려선다.
♤ 486m봉
안부를 지나 올라선 무명봉이고, 편안하게 호젓한 등로를 걸으니.. 오른쪽으로 잠시 후에 내려갈 압재가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압재에 다다를 즈음 약초재배지인지 차양막이 함께하고 맥꾼들과 갈등이 있는 것은 아닌지 직진으로 가면 압재인데 절개지라 우회를 하는 길이다. 오른쪽으로 우회길을 내려오니 압재(치)고개가 보인다.
♤ 압치(鴨峙, 309.8m)고개/ 19번국도/ 도군읍면계/ 무주군 무주읍 - 영동군 학산면/ 압재 소공원/ 학산재
압치고개(압재)는 충북 영동군 학산면 봉소리와 전북 무주군 무주읍 오산리 방축동의 경계에 있는 19번 국도가 지나고 구도로 아래로 2007년에 개통된 압치 터널로 19번 신도로가 지난다. 전북(무주군)과 충북(영동군)의 경계 지점이 되는 곳으로 구도로가 신도로의 서쪽으로 지나고 있다. 압치는 동쪽의 백하산과 서쪽의 칠봉산을 동서로 연결하는 산줄기의 낮은 부분으로, 동서로 놓여 있기 때문에 남쪽의 물은 남대천(南大川) 북쪽의 물은 학산천으로 흐르게 되지만 같은 금강 수계에 속한다. 계속하여 성주산을 오르기 전 삼도봉(568.3m)까지 전북 무주군 무주읍과 충북 영동군 학산면 도계를 따른다. 고갯마루 정상부에는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오리들이 떼를 지어 고개를 넘나드니 선현들은 이곳을 길지(吉地)라 하여 압치(鴨峙: 오리가 넘나드는 고개)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학산재라고도 부른다. 영동군 마스코트 고드미와 바르미, 천하대장군과 여장군의 장승이 서있다. 고갯마루 오른쪽 절개지 옹벽 옆의 배수로를 타고 지맥을 이어간다.
♤ 507.9m봉/ 도군읍면계/ 명산갈림봉/ 삼리봉(영동군 학산면 봉소리, 무주군 무주읍 오산리 → 내도리)
압재에서 고도를 약 200m 올리며 20분만에 484m봉에 오르고 우틀로 꺽어 편안한 등로로 소나무에 맨발님의 산패가 매달린 507.9m봉에 닿는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무주읍 방향으로 이어지는 명산(明山, 402.8m)과 향로봉(421.5m) 쪽으로 가서 남대천(南大川)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갈려 나간다. 지맥은 이 봉우리를 지나 우틀로 휘어져 칠봉산으로 향한다.
♤ 전북 무주군 무주읍 북쪽에 위치한 내도리(內島里)
내도리 너머로 걸쳐있는 금강 주변에 있는 갈선산(477.9m, 좌측 앞쪽)과 후양산(402m), 노고산(421.7m), 양각산(568.3m) 그 뒷쪽으로는 금산의 진산이라는 진악산(732m)과 흐릿한 성치지맥 능선이 가늠되고 옴팍하게 자리를 잡고있는 무주군 무주읍 내도리 마을이 평온하게 보인다. 동쪽으로 눈을 돌리니 백하산이 대머리처럼 암릉구간이 되어 있고, 그 뒷쪽으로는 백두대간상의 대덕산~초점산~삼도봉에서 민주지산으로 이어지는 산그리메가 흐릿하다. 전북 무주군 무주읍 북쪽에 위치한 내도리(內島里)는 내륙(內陸) 속의 섬이라는 뜻으로, 금강이 마을을 휘감고 돌아 나가 섬같이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전도(前島)[앞섬] 마을은 조선 시대에는 금산군 부동면(富東面)에 속하였던 금회(錦回) 마을이고, 후도(後島)[뒷섬] 마을과 산의(山義) 마을은 무주부 북면에 속하였으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무주군 무주면에 편입되면서 내도리(內島里)라고 하였다. 1972년 산의[산의실·방죽안], 내동(內洞)[안골], 굴천(屈川), 후도[뒷섬], 전도[앞섬] 등의 5개 마을로 조정되었으며,1979년 무주면이 무주읍으로 승격하였다. 산의 마을, 지내[방죽안] 마을, 내동[안골] 마을, 거래대 마을, 굴천 마을, 아랫담 마을, 웃담 마을, 전도 마을 등 8개의 자연 마을이 있다.
♤ 칠봉산(七峰山, 519.9m)/ 도군읍면계/ 무주읍 내도리 - 학산면 봉소리/ 3등삼각점(이원 313/ 1986 재설)
칠봉산은 전북 무주군 무주읍 내도리와 충북 영동군 학산면 봉소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507.9m봉에서 8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조그마한 봉우리가 일곱개인 산이다. 성터의 흔적인 듯 정상부는 돌들이 많이 널려 있으며 돌무덤 사이 작은 석축의 중간에 삼각점이 박혀있는 정상이다. 잡목으로 조망은 어려우나 나뭇가지 위로 시야가 트이며 이웃한 노고산(421.7m)과 양각산(568.3m)이 보이고 적상산(1,034m)과 덕유산(1,593.7m)이 조망된다. 준.희선생님 산패와 시그널, 삼각점이 있다. 등산객들에겐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산이지만 맥꾼들에겐 꼭 거쳐야만 하는 산이다. 최근에는 월영봉, 성주산, 칠봉산, 백하산으로 연결되는 전북과 충북의 도계종주와 더 나아가 천만산, 삼봉산을 거쳐 황간면에 위치한 월류봉까지 잇는 종주산행지로서 각광받고 있는 산이다. 직진해서 넘어가는데 길이 시원찮다. 안압치로 내려서는 등로는 급경사를 내려서다 가묘인듯 문패가 없는 석곽묘를 지나 임도를 만나고 10분 정도 내려서면 멋진 노거수 두그루가 서있는 조망처가 나온다.
백하산에서 내려오는 515m봉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백하지맥은 백하산에서 압치까지 왔다가 남쪽의 꼭지점을 찍고 ∪자 형태로 기수를 돌려서 북쪽의 산줄기를 따라서 합수점으로 향하는 형태이다.
♤ 안압재(1차선)/ 안앞재/ 도군읍면계
묘지 사이로 이어지는 등로로 향하는데 진행이 어려워 인삼밭으로 내려서 가장자리를 따르기도 하고 그야말로 非山非野 구간이다. 잡목 아래로 안압재(치)에서 학산면 봉소리로 이어지는 길이 보인다. 앞쪽에는 무주읍 내도리 방축안 마을이 보이고 편안한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직진의 가시잡목 칡넝쿨을 뚫고 과수원 철조망 사이로 내려서니 안압재가 나온다. 고갯마루 주변은 경작지로 변했다. 전북 무주군 무주읍 방축안 마을과 충북 영동군 학산면 봉소리 압재마을 경계를 가로지르는 고갯마루로 도경계 표지판과 반사경 전봇대가 있는 1차선 도로이다. 압재 안에 있는 고개라 해서 안압재 또는 안앞재라 부르며 우측의 봉소리에는 압재라는 마을이 있다. 무주읍 향로봉 뒤편의 밤숲골(방축동)에서 영동군 학산면 봉소리로 넘어가는 재로 현재는 19번 국도가 개설되면서 압치터널이 뚫려 있으며, 조선지형도(무주)에서 압재는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밤숲골 바로 위에 해당하여 그 위치를 추정할 수 있고 한국지명총람에 의하면 마치 오리 머리같이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지맥은 안압재삼거리에서 표지판이 있는 절개지로 올라서 오른쪽 사과밭 뒤로 가야하나 사과가 익는 가을에는 과수원을 피해 도로 따라 방축동 마을회관을 지나기도 한다.
♤ 무주군 무주읍 내도리 방축안 마을
왼쪽으로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양회임도 마을길 농로를 따르면 과수원 농막이 있는 곳을 지나고 계속 농로를 따라 과수원길 삼거리에서 농로를 건너 산길로 들어서서 삼도봉을 향한다. 가야할 606.8m봉(뾰족 봉우리) 너머로 성주산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 361.4m봉/ 도군읍면계/ 삼리봉(무주군 무주읍 내도리, 영동군 학산면 봉소리 → 황산리)
쭉쭉 뻗은 리기다소나무가 많다. 조망이 없이 그냥 지나치는 능선봉이다. 361.4m봉에 올라 잠시 내리막 등로를 내려가 안부를 지나고 안전로프가 매어져 있는 급경사 오르막 등로를 오른다. 395m봉을 지나고 마루금은 좌틀로 휘어져 오른다. 소나무숲길을 따르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나뭇가지 사이 오른쪽 아래로 영동군 학산면 봉산리가 보인다.
금산군이 전북이었을 때의 삼도봉은 식장지맥으로 옮겨가 대전광역시 동구, 금산군 추부면, 옥천군 군서면이 만나는 삼광군봉인 명지봉(404.2m)이 삼도봉이 되는군요.
♤ 삼도봉(568.3m)/ 양각산갈림봉/ 삼도봉(충북 영동군, 전북 무주군 → 충남 금산군)
충북 영동군 학산면 황산리, 전북 무주군 무주읍 내도리와 충남 금산군 부리면 어재리의 경계를 이루는 삼도봉으로 안부에서 20분 가파르게 치고 오른다. 지도상에는 아무런 표식이 없는 그냥 무명봉일 뿐이나 제법 큰 산성이 있다. 백두대간 삼도봉에 비한다면 너무 푸대접이다. 왼쪽으로 양각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뚜렷하나 지맥은 급우틀로 휘어져 성주산으로 향한다. 압치에서 이곳까지 왼쪽은 전북, 오른쪽은 충북의 도계를 따라서 왔다. 전북과 잠깐 조우했던 백하지맥 능선은 이곳에서 북쪽으로 급하게 방향을 틀면서 전북 도계와는 작별을 하고 왼쪽은 충남, 오른쪽은 충북의 도계를 따라서 합수점으로 향한다.
수도지맥에서 분기하는 양각지맥의 양각산(1,158m)과 동명이산일까?
♤ 양각산(兩角山, 568.3m)/ 뿔뿔이산
방축안 마을 뒷쪽으로 펼쳐지는 양각산 능선이 뚜렷하다. 도로따라 마을회관을 지나 마루금으로 오른다. 마을회관 뒤에서 지나온 압치고개와 칠봉산이 보인다. 양각산은 전북 무주군 무주읍 굴천리와 충남 금산군 부리면 어재리·수통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양쪽으로 각을 이루고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또 양쪽으로 뿔이 솟은 듯 봉우리가 솟아 있어 '뿔뿔이산'이라고도 불린다 하는데, 예전에 세상이 모두 물에 잠겼을 때 이 산만 잠기지 않아 배를 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산이다.
♤ 금산군 부리면 어재리(於在里)
조선시대 부리현으로 불리다가 부동면, 부서면으로 변경되었고 1896년에 전북에 속한 부리면이 되었다. 1963년 충남 금산군으로 편입된 후 현재 12곳의 법정리를 관할한다. 지역의 대부분이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금강이 굽이치는 적벽강 협곡이 있으며 특산물인 인삼을 재배하는 곳이 많다. 전북 장수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오는 금강이 무주읍에 이르고 다시 충남 금산군 부리면 방우리에 들어서면 참으로 환상적인 물굽이를 이룬다. 교통은 통영대전고속도로가 지나며 북쪽에 금산 IC가 있어 편리하다. 문화재로는 길재를 추모하는 청풍사를 비롯해서 현인을 추모하는 귀암사, 덕산사 사당이 있다. 부리면 어재리는 조선시대에는 금산군 부동면의 지역으로서 충북 영동군 학산면과 또한 전북 무주군 무주읍으로 넘어가는 느리재고개 서쪽에 위치해 있으므로 느리재, 어재라고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에 부북면의 용화리 일부를 병합하여 어재리라 해서 부리면에 속하게 되었다.
♤ 피래기재/ 도군면리계
영동군 학산면 황산리와 금산군 부리면 어재리로 넘나드는 고개로 좌우로 넘나드는 등로가 뚜렷하며 양쪽 모두 성이 있다. 피래기재라 표기되어 있다. 필력은 옥천군 양남면에서는 가장 끝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필력이라 했는데 필력은 마을 수가 12동네(사락호, 비석골, 삼정, 내삼정, 방애골, 대밭말, 띠골, 안앞재, 앞재, 대유곡, 덕은터, 수반들)로 현재 무가동에서 압치 쪽에 있던 곳은 모두 필력 또는 피리기라 하였다.
♤ 606.8m봉/ 돌탑봉
삼도봉에서 피래기재 안부로 내려갔다가 안부를 지난후 급경사의 등로를 조금 빡세게 10분 정도 올라서면 성터 흔적인 듯한 돌담같은 곳이 나온다. 이곳은 삼국시대 당시에 백두대간 산줄기를 따라서 금산지역으로 넘어오는 전략적 요충지라 성터같은 보루가 많은데, 삼국시대 당시에 백제가 신라를 경계할 목적으로 산성을 쌓아서 신라 군사들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거점으로 무주군지에는 백제의 성왕(聖王, 504~554, 재위: 523~554)이 방우리 뒷편 318.6m봉에 진을 치고 내도리에 있는 노고성(421.7m)에서 신라군과 싸웠다는 기록이 있고, 후백제의 견훤(甄萱, 867~936, 재위: 892~935)이 수통리앞 작은 갈선산 쇠주봉에다 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보인다. 성터같은 돌탑봉에서 바라본 충북 영동군 학산면 봉소리의 모습 앞에 보이는 뾰족한 봉우리가 용소봉이고, 봉소리 오른쪽이 백하산 너머로 각호산과 백하지맥의 분기점이기도 한 천만산, 그 이후로 영동읍쪽으로 뻗어가는 각호지맥 능선은 흐릿하다. 동남쪽으로 바라보니 영동에서 무주로 이어지는 19번 국도가 보이고 그 뒷쪽으로는 백두대간 산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준희선생님 산패가 있는 곳에서 북쪽으로 향한다. 금산군에 걸쳐 지맥 능선에서 자주 만나는 인삼대장의 산패도 만난다.
♤ 617m봉/ 산림청 무선중계기
돌탑봉을 지나 바로 앞에 보이는 산불감시초소봉으로 향한다. 작은 돌탑봉을 지나서 잠시 오르면 산림청 무선중계기가 있는 617m봉에 닿고, 오른쪽에 큰 소나무가 한 그루 서있다. 등로에서 서쪽(왼쪽)으로 금강과 부리면이 내려다 보인다. 바로 앞에 곡류하며 흐르는 금강이 보이고 그 너머로는 한국타이어 금산공장과 그 뒷쪽으로는 진악산이 뚜렷이 보인다. 오른쪽으로 계속해서 영동군 학산면 지역이 백하지맥 능선과 유희를 즐긴다. 동쪽으로 백하산에서 압재로 내려오는 능선이 보이고, 그 뒷쪽으로는 오른쪽의 덕유능선에서 삼봉산, 초점산, 대덕산, 삼도봉, 석기봉, 민주지산, 각호산, 천만산으로 이어지는 대간과 각호지맥 능선이 장쾌하다. 뾰족봉인 용소봉 뒷쪽으로 학산면소재지가 보이고 그 뒷쪽으로 있는 영동읍내의 아파트가 흐릿하게 보인다.
♤ 용소봉(龍沼峰, 461.1m)
용소봉은 영동군 학산면 학산리와 지내리 경계에 위치한 봉우리로 전설에 의하면 '용소봉 산봉우리에 용이 올라간 자리가 움푹 패여있는데 이곳을 용수봉(龍水峰)이라 부른다.'는 내용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어느 해 여름 장맛비가 퍼붓는 날, 갑자기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는데 그때부터 마을사람들이 용소봉으로 불렀다고 하며, 가뭄이 들 때 용소봉에 올라 용신에게 기우제를 지내면 비를 뿌려준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 561m봉
연리지를 닮은 소나무를 지나기도 하고 561m봉에서 내려서니 두꺼비 바위다. 아래에서 보면 기암이고 위로 올라서 보면 조망이 트여 봉황저수지와 성주산이 보인다.
♤ 성주산(聖主山, 623.9m)/ 도군면리계/ 삼리봉(금산군 부리면 어재리, 영동군 학산면 황산리 → 지내리)/ 3등삼각점(이원 312/ 건설부 74. 9.)
성주산 정상에 성주산악회창립기념으로 세운 모향비(慕鄕碑)가 있다. 충북 영동군 학산면 학산리, 지내리와 충남 금산군 부리면 어재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산기슭에 영험한 바위가 있어 사람들이 치성을 드리는 산이라 성주산/ 성재산이라 부르고, 성주산인 이곳은 신라시대 축조된 성주산성지(聖主山城地)로 전해지며, 당시 양 산하에 위치하여 백제와 신라의 접경지였는데, 1,500여년 전 백제와 신라의 전쟁 때에는 갈선산성에서 금강을 따라 자지산성까지 백제 영토였고, 성주산성과 노고산성(무주군 내도리)의 산줄기는 신라의 영토였다. 성을 구축할 때 왕이 머무른 곳이라 하여 성주산성(聖主山城)이라 전해져 내려온다. 성주산성터의 흔적인 듯한 돌무더기가 있는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 영동군 학산면 지내리(池內里)
영동군 학산면에 속해있는 지내리는 갈기산, 비봉산, 성주산 등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으며, 마을 서쪽으로는 금강이 흐르는 농촌마을로 자연마을로는 못안(지내), 넘불(광평), 모리, 새재(조령), 바깥새재(외조령) 등이 있다. 못안은 마을이 큰 못 안쪽이 되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지내라고도 하며, 넘불은 넓은 벌판에 있는 마을이고, 모리는 큰 못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새재는 새재 밑에 있는 마을로 조령이라고도 부르며, 새재 바깥쪽에 있는 마을을 바깥새재라고 한다. 지내리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있었다고 하는 오래된 마을로 지내, 광평(넘벌) 마을의 지웃골은 신라와 백제의 전쟁터로 유명했으며, 성주산 노고산성의 성곽 흔적이 지금도 약 320m 가량 남아 있고, 전쟁 중에 백제의 성왕이 머물기도 하였다고 하며, 넘벌이라는 명칭은 삼국시대 흔히 쓰던 지명인 것으로 보아서 그 때부터 생긴 마을인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지내리는 1800년경 모리 입구에 큰 저수지를 만들면서 못 안쪽마을이라하여 행정구역 개편 시에 명칭을 정하였고, 250여년 전에는 구수골(광평에서 모리로 넘어가는 골짜기가 있었음)에 동네를 이루고 살았는데 그곳에는 도둑이 많아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살았다고 한다. 양남일소면 당시에는 근방에서 가장 큰 마을이었다고 하며, 지내, 광평은 1914년 3월 말까지 양남일소면의 면소재지로 1917년 면제가 공포되어 정식 업무를 보기까지 면 의장이 군수의 보조 기관장 역할까지 했던 곳으로 집무장소는 581-1번지의 여씨 서당이었다고 한다. 세종 때 종일품 숭정대부 판중추부사를 지낸 문절공 정수충 선생의 영정을 모신 서당이 광평동에 있으며, 군수를 비롯한 인근 마을 지역 유림(추현계원 150여명)들이 기일(음력 9월 6일)을 택하여 기제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
♤ 568m봉
성주산을 가파르게 내려와 살짝 솟은 곳에 묘지가 있고 다시 내려간다.
♤ 453m봉
백하지맥 마지막 구간은 빨래판 구간이다. 많은 봉우리들이 오뚝오뚝 솟아 있어 오르내림이 심하다.
♤ 446.4m봉/ 군면리계/ 돌탑봉
내리막길 나뭇가지 사이로는 금산군 제원면 용화나루가 있는 금강 곡류지대가 보인다. 완만한 내리막길에 등로는 좋고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간간이 보인다. 안부를 지나니 후손이 끊긴 듯한 묵묘가 있고 오르막길이다. 급경사로 올라서서 지나치는 능선봉으로 조망은 없다. 국립지리원의 지도에는 표기조차 없는 봉우리인데 준희선생님의 산패가 있다.
♤ 450m봉/ 도군면계/ 삼면봉(금산군 부리면, 영동군 학산면 → 금산군 제원면)
오르막길에서 윗쪽으로 바라보니 성터처럼 보이는 돌담이 보이는데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보면 알바주의 구간으로 착오로 이곳을 지나 올랐다가 되돌아 내려오는 경우가 많다. 이곳에서 돌담 뒷쪽의 능선을 따라서 가면 광평저수지 방향이고 지맥길은 왼쪽으로 90도 꺽어져 내리막길로 향한다. 지금은 450m봉 7부 능선에서 좌틀로 휘어져 가도록 왼쪽으로 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이 많이 있어서 알바할 일은 없을 것 같다. 450m봉 직전에서 좌측 사면으로 비켜서 내려서며 지맥능선은 충북 영동군 학산면 지내리와 충남 부리면 어재리의 충남북 도경계에서 벗어나 충남 금산군으로 들어서며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와 부리면 어재리의 면계를 따른다.
♤ 지내재/ 늠벌재/ 백골재/ 성황당터 안부사거리/ 면리계(금산군 부리면 어재리 - 제원면 용화리)
움푹 파인 안부에 낙엽속에 묻힌 돌무더기가 예전에 성황당인듯 하며, 오른쪽으로는 학산면 지내리 태수골로 이어지는 광평저수지 방향이고 왼쪽으로는 제원면 용화리 나루터로 이어지는 안부이다. 부리면과 제원면의 면계인데 서쪽으로 금강과 봉황천을 건너 금산읍으로 들어가는 지점이며 봉황천과 금강이 만나는 금산군 제원면 저곡리 합수점이 성치지맥의 끝지점이다. 능선에 올라서서 살짝 오른쪽으로 꺽어져 구라리산으로 향한다.
♤ 구라리산(口羅里山, 395.5m)
국립지리원의 지도에는 지명 표기없이 395.5m봉으로만 표기되어 있는데, 트랭글 앱에서는 구라리산이라고 알려주는 곳으로 잡목이 우거진 능선에 있는 밋밋한 봉우리라 준희선생님의 산패만 없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잡목으로 조망도 없다. 395.5m봉을 지난 후에 우틀로 휘어져 내려 기웃재 안부에 내려선다. 구라리산은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 용강 건너편의 지윗골로 넘어가는 골짜기에 구라리(口羅里)라는 지명이 있어서 붙여진 산이름으로 국립지리원 지도에는 없는 명칭이며, 여기서 백하지맥은 우틀 능선으로 이어지며 제원면 용화리 안으로 들어서서 북상하는데 독도에 유의해야 할 지점이다.
♤ 기웃재(355m)/ 지웃재/ 도계의 왼쪽 능선
기웃재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막등로를 올라선다. 충북 영동군 학산면 지내리 광평저수지에서 충남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 화상동의 금강으로 향하는 길에 있는 성주산과 성인봉 사이에 있는 고개로 맨발님과 인삼대장님의 산패가 걸려있고 돌무더기와 함께 금산과 영동쪽으로 이어지는 뚜렷한 등로가 보이며 기웃재 또는 지웃재라고도 하는데 지명의 유래는 실전되어 전하지 않는다. 40여년 전까지는 사람들이 넘나들던 고개였다고 하며 지금은 화상동에 아무도 살고있지 않지만 예전 영동으로 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주막도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삼남대로의 하나인 충북 영동군 학산면과 충남 금산군 제원면을 잇는 교통 요충지였으며 광덕나루까지 연결이 되었다. 임진왜란 때는 왜놈이 영동군 학산면 지내리에서 지웃재를 넘어 금산군 용화리 화상동에서 금강을 건너 금산 읍내로 침투해 들어간 뼈아픈 역사도 전하고 있는 고개이다. 1592년 6월 15일, 고니시의 제1군으로 인해 평양성이 함락되었다. 그 전날 명나라의 원군 선발대가 압록강을 넘고 다음날 명의 주력군이 압록강을 넘었다. 선조의 파천과 조선수군의 선전 등으로 전쟁의 양상이 바뀌자 왜군은 군량과 물자의 확보 및 원활한 보급을 위해 조선8도의 분할 공략에 나섰다. 전라도는 제6군 고바야카와에 할당 되었다. 일본측 기록으로 보면 처음 편성된 9개 부대 58,700명 중 제6군은 14,700명 정도다. 제6군의 주장 고바야카와는 창원에 주둔 중인 부장 안코쿠지에게 운봉-남원을 거쳐 전주성에 입성하게 명하고 본인은 약 1만의 병사를 이끌고 5월말 임진강을 출발하여 충주-조령-선산-추풍령-영동을 지나 금산으로 향했다. 왜장 고바야카는 영동 양산에서 금강을 따라 서진하다가 선발대가 7월초 금산군 제원면 천내강(금강)에서 권종 금산군수가 이끄는 관군과 의병 200여명과 마주쳤다. 권종 군수는 금강을 마주하며 활을 쏘고 깊이를 알 수 없도록 금강에 황토를 뿌려 도강을 막았으나 얕을 여울을 찾아 결국 강을 넘었다. 인근 저곡산성으로 입성하여 강력하게 농성하였으나 50배가 넘는 병력과 조총으로 무장된 왜군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권종 군수와 아들 준 그리고 200여 명이 모두 순절한 후에야 왜군은 전라도 북동부 금산에 진출할 수 있었다. 1930년대 지금의 금산과 영동을 잇는 도로가 생기면서 기웃재(지웃재)의 기능이 쇠퇴하게 되었다고 한다.
♤ 충남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 화상동(和尙洞)마을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 동북쪽 금강 건너에 있는 마을이 화상동인데 그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옛날에 유명한 화상(수행을 많이하는 승려)이 살았기 때문에 유래한 이름으로 추정된다. 화상동 옆에 있는 동묏날의 형국이 노승이 예불을 드리는 듯한 노승예불형(老僧禮佛形)이며 마을 앞에는 용화나루터가 있었는데 옛날 영동군 양산방면에서 기웃재를 넘어 5일마다 서는 금산장을 보러가기 위해서 붐볐던 나루터였다고 한다. 화상동은 조선시대 삼남대로의 하나인 지웃재 길목에 위치한 마을이다. 따라서 용화나루와 그 밑에 위치한 닥실나루를 건너는 길손들은 화상동을 거쳐야만 금산 읍내로 진입할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임진왜란 때에는 지웃재를 넘어 왜병이 닥실나루를 건너 금산군수 권종(권율 장군의 형)이 있는 결사대를 궤멸시키고, 파죽지세로 나아가 조헌의 칠백의사를 전사시키는데 가교가 되었던 마을이기도 하다. 마을앞의 금강 물줄기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물굽이를 바꾸는 지점에 마달피라 부르는 강변이 있는데, 임진왜란 당시 여기에서 황토로 흙탕물을 일으켜 금강하류로 흘려보내 강을 건너려는 왜군들이 물의 깊이를 모르게 하였다고 한다.
♤ 402m봉/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 - 천내리
기웃재에서 부드럽게 올라선 봉으로 402m봉 마루금에서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와 천내리의 경계를 만나 우틀로 휘어져 도계인 자사봉(457.2m)을 향해 오른다. 독도주의 지점이다.
♤ 415.9m봉
묵묘가 있었는데 이장한 모양이다. 넓은 공터에 움푹 파인 웅덩이가 있는 415.9m봉에서 지맥 마루금은 좌틀로 휘어진다. 415.9m봉을 지나면 왼쪽으로 월영봉이 보이는 능선을 오른다.
월영봉까지는 왕복 2.1km로 약 1시간 거리입니다.
♤ 월영봉갈림봉(457.2m)/ 자사봉/ 도군면계/ 삼리봉(금산군 제원면 용화리, 천내리 → 영동군 학산면 지내리)
헤어졌던 도경계 능선과 다시 만나는 지점으로 왼쪽으로 월영봉이 갈래를 치는 갈림봉이다. 도경계 능선따라 월영봉/월영산으로 많은 표지기가 달렸고, 지맥은 도경계능선 오른쪽 성인봉으로 향한다. 급경사를 내려가 안부에 닿고, 안부를 지나 다시 비탈의 등로를 올라 성인봉으로 향한다. 성인봉으로 오르는 능선 왼쪽편으로 지맥의 마루금이 보인다. 지맥은 지금 오르는 성인봉에서 왼쪽으로 휘어져 맨 오른쪽 530m봉에서 좌틀로 휘어져 암릉을 올라 월유봉(560.4m)을 지나고 맨 왼쪽의 갈기산(595m)으로 가게 되어 있다.
♤ 월영봉(月迎峰, 527.4m)/ 월영산/ 충남 금산군 - 충북 영동군
월영봉은 충남 금산군 제원면 천내리와 충북 영동군 양산면 가선리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좀 더 정확하게는 월영봉 정상 닿기 전 전망바위가 천내리, 가선리 호탄리의 삼리봉이다. 달을 맞이한다는 뜻의 월영봉은 월향산이라고도 부르며 서봉을 월영산, 상봉을 안자봉이라고도 한다. 『동국여지승람』 ‘금산군편 산천조’에 “금산 동쪽 20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대동지지』에는 언령산이라 씌어 있다. 예전에는 정월대보름에 산위로 떠오르는 달을 맞이하며 풍년을 비는 달맞이행사를 했는데 성인봉쪽으로 달이 뜨며 가뭄이 들고, 월영봉 중턱에 구름이 걸치면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보았다. 또는 월영봉 달 그림자가 금강에 맑게 비치면 그 해에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월영봉은 지맥에서 왕복 약 1시간 소요되는 거리이다. 왼쪽에 월영봉, 오른쪽에 성인봉을 보며 능선을 가파르게 오른다.
♤ 비들목재
충남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 참비치나무골에서 충북 영동군 양산면 가선리 소골의 경계에 있는 고개인데 일부 지도에서는 비들목재라 표기가 되어 있지만 산행지도에는 아무런 표식조차 없는 그냥 무명 안부이고 지명의 유래는 여기저기 산줄기를 넘는 고개에 똑같은 지명이 많은데 어느 곳은 구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성인봉(聖人峰, 545m)
돌탑과 고도 표시가 엉터리인 성인봉(624m) 표지석이 서있다. 도계는 오른쪽으로 내려가고 지맥은 영동군 학산면 지내리 내안으로 들어선다. 충남 금산군 제원면과 충북 영동군 학산면에 걸쳐있는 봉우리로 지도상에는 아무런 표식조차 없는 무명봉인데 烏石으로 된 정상석에 “聖人峰 624m”라는 표식이 있으나 성인봉에 대한 자료가 안 보이는데 금산군 제원면에서 설치한 월영산의 안내판에는 중국 성인의 이름을 본따서 안자봉(월영산 서봉), 자사봉을 합하여 성인봉(聖人峰)이라 부르며 국사봉이라고도 한다고 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 차갑고개/ 소골 갈림길
성인봉에서 급경사를 약 10여분 내려가면 [갈기산 1.3km 월영봉 2.1km 주차장 2.7km] 이정표가 서있는 차갑고개 안부에 도착한다. 영동군 학산면 지내리의 재필골과 소골 사이 남북으로 이어지는 고개인데 왼쪽으로 내려가면 소골로 내려서 금강변의 주차장에 닿고, 지맥은 갈기산방향으로 급경사를 올라선다.
♤ 534.6m봉
마루금은 급좌틀로 휘어진다. 독도대선배님의 격려코팅지가 보이고, 가야할 지맥 마루금이 조망된다. 맨 오른쪽이 월유봉(560.4m)이고, 맨 왼쪽이 갈기산(595m)이다. 555m봉을 지나며 앞쪽으로 충북의 설악산이라 불리는 천태산(天台山, 714.7m)이 보이고 그 뒤로 흰 구조물이 있는 서대산도 보인다.
♤ 월유봉(560.4m)
정상에 있는 이정목이 [갈기산 0.64km 월영봉 2.7km], 오른쪽으로는 위험구간을 알려준다. 월유봉을 지나면 암릉위에 설치된 나무계단을 만난다. 나무계단을 지나면 칼날같은 날등의 암릉을 지난다.
♤ 갈기산 전위봉(약 584m)
갈기산 직전봉은 등로가 없는 위험구간으로 등로를 왼쪽으로 우회하여 지난다. 갈기산은 두번의 암릉봉을 올라야 하며, 밧줄이 매어져 있는 암릉을 올라서 조금 더 진행하면 첫 암봉에 닿는다. 두번째 암봉에 오르면 앞쪽으로 갈기산 정상부의 암봉이 보인다. 갈기산 정상으로 오르려면 역시 밧줄을 잡고 올라야 한다. 금강에 걸린 호탄교와 왼쪽에 자치산 뒤로 장령지맥이 지나는 천태산(天台山, 714.7m)과 서대산(西臺山, 905.3m)이, 오른쪽에 동골산(493.9m)이 보인다. 동서남북만 구분만 잘 해도 말갈기능선을 달리며 백두대간과 금남호남정맥의 많은 봉우리를 찾아 볼 수 있으리라 보인다.
♤ 비봉산(飛鳳山, 481.3m)/ 고시산(古尸山)
비봉산은 조비천현(助比川縣)의 난공불락 조천성(助川城)이 자리한 산으로 백제 멸망 5년 전인 655년 조천성전투가 있던 곳이다. 655년 남부여와 고구려는 신라를 일시에 공격한다. 일종의 군사공조였다. 이때 신라는 33성이 함락되어 위기를 맞는다. 무열왕은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청한다. 당나라는 화답하고 곧바로 고구려를 공격한다. 이에 신라는 대 고구려 전선에서 평화를 찾고, 곧바로 남부여에 대한 보복전을 전개한다. 그것이 바로 조천성 싸움이다. 『삼국사기 잡지 지리 영동군 조』에 보면 길동군의 영현인 조비천현이 나온다. 조천성은 바로 조비천성의 약자이다. 약자의 한자도 같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지명중에 이렇게 명확한 것도 드물다. 더욱이 『삼국사기 김흠운 열전』에 보면, ‘백제 땅에 도달하여 양산(陽山) 아래에 군영을 설치하고, 나가 조천성을 공격하려고 하였다.’는 구절이 나온다. 양산이라는 지명이 나오는 걸로 보아 조천성이 조비천현의 치소임에는 분명하다. 양산은 지금의 영동군 양산면 일대를 가리킨다. 신라군은 조천성을 회복하기 위해 이곳 대왕산에 산성을 쌓고 주둔하며 기회를 노린 것으로 이해된다. 대왕산은 무열왕이 직접 친정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온다. 584m봉에서 암봉 능선을 따라가면 갈기교 지내관광농원으로 내려가는 능선 너머로 조천성의 비봉산이 산꾼의 눈에 들어온다. 충북 영동군 학산면 지내리와 양산면 가곡리 경계에 있는 비봉산은 『해동지도』(옥천), 『여지도서』(옥천지도), 그리고 『대동여지도』(옥천) 등 조선 시대 지리지와 고지도에 '비봉산(飛鳳山)'으로 표기되어 있으며,『한국지명총람』에는 '비봉산(飛鳳山)'과 그 다른 이름으로 '고시산(古尸山)'이 기록되어 있다. 비봉산은 '산 모양이 봉황이 나는 형국'이라서, 또 고시산은 산이 위치한 지대가 곶을 이루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각각 그 유래를 소개하고 있다.
♤ 갈기산(鞨騏山, 598.3m)
충북 영동군 양산면과 학산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 부근 능선의 바위들이 마치 말의 갈기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바위가 많아 암벽 등반을 하기에 제격인 산이다. 지맥 끝자락 전경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도 드물다. 능선은 반원형으로 가운데가 깊숙한 골을 이루고 있고, 양산팔경 지역에 속해 있다. 갈기산은 기암괴봉의 말갈기 능선, 깎아지른 절벽 양산 덜게기, 굽이쳐 흐르는 금강 줄기, 곳곳의 멋진 소나무가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산수화 처럼 풍경이 아름답다. 금강변에 솟아 있고, 산위에 오르면 금강 줄기와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경관을 볼수 있으며 북서쪽으로 천태산과 장령지맥이 마주하고, 동북쪽으로 백화산(933m)과 포성봉이 가깝게 보인다. "말갈기 능선"이라는 암릉 구간의 경치가 아름다우며, 능선은 반원형으로 가운데는 깊숙한 소골 계곡을 이루고 있다. "양산 덜게기"라고 부르는 절벽이 나타나고, 절벽 아래 유유히 굽이쳐 흐르는 금강과 어우러져 탄성이 절로 난다. "덜게기"는 "바위 절벽" 또는 "벼랑"의 뜻을 가진 영동지방의 사투리로 "양산 덜게기"는 금강으로 떨어지는 갈기산 양산면쪽의 낭떠러지 절벽(벼랑)이다. 갈기산의 '양산 덜게기'는 바위 절벽이 금강 물에서 부터 산 능선까지 깎아지른 벼랑을 이루고 있어 임진왜란 때 왜군을 막을 수 있는 천혜의 요충지였다. 그러나 의병들은 일당백의 전투가 가능했던 양산 덜게기를 활용하지 않아 금산에서 처절한 옥쇄를 하였다는 안타까운 이야기가 전한다. 갈기산 덜게기 아래 굽이쳐 흐르는 금강 줄기는 영동에서 금산으로 통하는 유일한 길목이다. 삼국시대 때 신라와 백제의 끊임없는 격전지로 백제의 야간 기습으로 젊은 나이에 피하지 않고 장렬하게 전사한 신라 김흠운 장군의 애환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신라 김흠운 장군은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딸인 요석공주의 남편이었다. 갈기산 정상에서 밧줄을 잡고 내려오면 만나는 이정목에서 지맥은 헬기장 방향으로 하산하며 잠시 영동군 학산면 지내리와 양산면 호탄리의 경계를 따른다.
♤ 330m봉/ 헬기장/ 영동군 양산면 호탄리 - 가선리
갈기산에서 지맥길은 등산로를 가리키는 곳이 아닌 헬기장 방향으로 이어진다. 등산로 방향은 갈기산 전에 만났던 삼거리로 되돌아 가는 우회 등로다. 학산면 지내리와 양산면 호탄리의 경계를 따라 내려서다 선답자들의 띠지가 잔뜩 걸려있는 육각정(380m)에서 호탄리로 들어선다. 육각정 지나 정면에 월영산이 가까이 보이는 넓은 헬기장(330m)이 영동군 양산면 호탄리와 가선리의 경계이다. 헬기장에서 양산면 가선리로 접어들어 금강변 주차장까지 약 25분 소요되는데 지루한 느낌이 드는 내리막 등로이다.
♤ 영동군 양산면(陽山面)
충북 영동군 서부에 있는 면으로 남쪽은 학산면(鶴山面), 동쪽은 양강면(楊江面), 북쪽은 심천면(深川面)과 옥천군 이원면(伊院面), 서쪽은 충남 금산군 제원면(濟原面)과 접한다. 고려시대 양산현(陽山縣)에서 유래한 지명이며 조선시대에는 양내면으로 불렀고 구한말인 1906년 영동군으로 편입되어 9개의 법정리를 관할한다. 서부는 해발 715m의 천태산을 중심으로 산지를 이룬다. 북부의 마니산(摩尼山, 640m) 등을 제외하면 대체로 해발고도 200∼400m의 구릉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면의 북쪽에서 남쪽으로 곡류하는 금강(錦江)이 남부에 와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남동부의 금강 주변에 넓은 농경지가 형성되어 면의 중심부를 이루며 금강 유역에는 비교적 넓은 평야가 발달하여 쌀·보리의 산지를 이룬다. 양산면에서는 당도가 높은 수박과 포도, 사과 등을 특산물로 재배하며 논농사도 많이 이루어진다. 잎담배와 양잠이 성하며, 특히 인삼의 주산지인 금산(錦山)과 가까워 인삼 재배가 활발하다. 무주·금산·옥천 방면 지방도가 면내를 통과한다. 문화재로는 영국사(寧國寺), 영국사 부도(보물 532), 영국사 3층석탑(보물 533), 영국사 원각국사비(圓覺國師碑:보물 534), 영국사 망탑봉(望塔峰) 3층석탑(보물 535), 영동 영국사의 은행나무(천연기념물 223), 영동 영국사 대웅전(충북유형문화재 61), 영동 영국사 석종형부도(충북유형문화재 184), 영동 영국사 원구형부도(충북유형문화재 185)가 있다.
♤ 영동군 양산면 호탄리(虎灘里)
본래 양산현(陽山縣) 지역으로 옥천군 양내면에 속했다가 1906년 영동군에 편입되었다. 범여울이 있었으므로 범여울 또는 호탄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기동(新基洞)과 양남일소면의 모리(毛里) 일부를 병합하여 호탄리라 부르고 영동군 양산면에 편입되었다. 행정리명은 호탄리이고 자연마을로 호탄(범여울, 평촌:坪村).곡촌(谷村:작두골).모리주막동(毛里酒幕洞).신기(새터)가 있다. 전래되는 전설에 의하면 옛날 경주 김씨 금희라는 효자가 이곳에 살고 있었는데 효성이 극진하기로 소문난 사람으로 연로하신 부친이 병이 들어 동지섣달 추운 겨울에 복분자를 먹고 싶다는 말씀을 듣고 부모 명을 거역한 일이 없는 효자는 복분자를 구하려는 마음으로 갈기산 산속을 헤매고 있을 때 갑자기 곰이 나타나 곰의 인도로 복분자를 구하여 집으로 오던 중 모리에 이르러 해는 저물고 얼어붙은 금강을 건널 수 없어 애를 태우고 있을 때 호랑이가 나타나 효자를 호랑이 등에 태우고 여울을 건너 집 앞에 내려주고 사라지니 병안 중의 그 아버지는 복분자를 먹고 병이 낳았다. 그후 3년을 호랑이는 여막에서 김효자를 보호했다 하여 (虎)범호 (灘)여울탄 호탄진이라 부르게 되었다.
금강하구둑으로부터 268km....
♤ 금강합수점/ 영동군 양산면 가선리
영동군 양산면 가선리 68번 도로변에 내려서면 갈기산 등산안내도와 널찍한 바깥모리 주차장이 있다. 하얀집 아래가 금강인데 잡목으로 우거져 있어 내려가기가 쉽지않다. 도로변에서 금강을 바라보고 백하지맥 산행을 마무리 한다. 백하지맥 날머리는 위치상으로 금산군청과 무주군청, 영동군청의 중간 지점이다. 시간을 봐서 월영산 출렁다리가 핫플레이스이니 금산군 택시를 콜해 금산군시외버스터미널로 나가는게 어떨까 시간이 늦었다면 영동역으로 나가 기차를 이용하고...
♤ 영동군 양산면 가선리(加仙里)
본래 양산현 지역으로 옥천군 양내면에 속했다가 1906년 영동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가내동(加乃洞)과 장선동(長仙洞)을 병합하여 가선리라 부르고 영동군 양산면에 편입시켰다. 행정리명은 가선리이고 자연마을로 가선(加仙:加來)과 장선(아래장선:깊은장선이, 웃장선이, 웃장선:높은 장선이) 있다.
♤ 금강(錦江)
금강은 전북 장수군 장수읍 신무산 뜬봉샘에서 발원하여 충남 논산시 강경읍에서부터 충남·전북의 도계(道界)를 이루며 군산만으로 흘러드는 유로연장 397.79㎞의 강으로 대한민국의 국가하천 중에서 본류 기준, 길이와 유역면적 공히 3위의 강이다. 한반도 전체에서 여섯번째, 남한에서는 세번째로 긴 강으로 강물은 전북과 충북,충남 대전광역시, 세종특별자치시 등 거치면서 황해로 흘러든다. 금강은 상류 지역인 금산군에서는 '적벽강(赤壁江)', 옥천군 일대에서는 '적등진강(赤登津江)', '차탄강(車灘江)', '화인진강(化仁津江)', '말흘탄강(末訖灘江)', '형각진강(荊角津江)'이라 불렀으며 공주시 일대에서는 '웅진강(熊津江)', 부여군 지역에서는 '백마강(白馬江)', 하류 서천군, 군산시에서는 '진강(津江)' 또는 '고성진강(古城津江)'이라 불렀다는 기록이 《동국여지승람》 등에 전하며, 이 밖에 역사 기록에서는 '웅천하(熊川河; 웅천주, 구 웅진에 흐르는 강)', '사비수(泗沘水; 사비성에 흐르는 강)' 등의 명칭을 찾아볼 수 있다. 이 가운데 '백마강'은 오늘날까지도 금강 중하류 일대를 부르는 이름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 에필로그
족보 서열상으론 백두대간 삼도봉에서 분기되는 각호지맥을 먼저 하고 각호 천만산에서 분기되는 백하지맥을 해야 맞지만 상배운영자님 162지맥 졸업지맥이라 축하산행으로 이르게 나서봅니다. 봉산악회에서 압치까지 1구간을 마쳐서 저는 갠적으로 20일 압치까지 진행하고 21일에 본진과 합류하여 2구간을 같이 걷기로 합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비박일에 기온이 3도로 뚝 떨어진다니 걱정입니다만 서울에서 23:30분에 출발하는 본진이 압치에 03시면 들어오리라 예상하고 곧바로 2구간 출발이 이뤄지니 새벽에 얼어죽을 일은 없을듯 합니다. 첫날 백하산에서 노을을 볼 수 있을까 기대를 가지고 9시에 출발하여 저녁 9시에는 압치에 도착하는 걸로 예상을 해봅니다.
대중교통 이용을 원칙으로 하지만 중요 행사 스케쥴에 맞추다보니 본의아니게 영동에서 고자리로 택시를 타고 도마령에 오르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백하에서 하얀 노을을 감상할 요량으로 바짓가랑이 요령소리 나게 시간에 맞췄습니다. 차소리가 시끄러워 압재에는 내려오지 않고 직전 참호에서 비박했는데 차라리 참호 웅덩이로 푹 들어갔으면 좋았을걸 제가 특전사 출신이 아니라서 저게 참호인지 이장한 묫구덩인지 알 수가 있어야죠. 21시에 누워 정신없이 23:30분까지 자고 이후엔 추워서 엎치락뒤치락 했습니다. 위아래로 겨울 옷을 하나씩 껴입고 가벼운 무릎담요를 덮었지만 매트리스만 가지고 추운 공기를 차단하기엔 역부족이네요.
둘쨋날 압재에 도착한 상배운영자님이 계시는 봉산악회와 처음으로 함께 했습니다. 상배운영자님은 조용하게 봉산악회를 이끄셨고, 봉산악회는 처음으로 지맥졸업자를 배출하여 축하분위기가 넘쳐났습니다. 지맥 전문사관학교 답게 꼬리가 없는 특징을 확인했습니다. 선두와 후미가 한 몸으로 연결이 되어 천천히 가는것 같으면서도 잠시 한눈을 팔면 한참을 쫒아가야 하는 멈춰있는 듯 보이지만 세월을 두고 흐르는 유장한 장강의 흐름처럼 연배 계시는 선배님들에게서 구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준희선생님과 대구 비실이부부대선배님 그리고 홀대모 운영진 모두가 참가했고, 금곡, 칠갑산대선배님, 산으로선배님, 수헌선배님, 봉산악회에서 많은 지맥을 함께하신 의리파 진강산님, 탱이님, 오삼구구님, 이용주선배님 와주셨고, 얼마전 남한 전 지맥을 졸업한 가을님도 우정으로 참석해주셨습니다. 봉산악회를 기름지게 이끌고 계시는 주상지기님, 그리고 늘보대장님, 산본리대장님은 갑자기 나이를 드신 것처럼 보여 애틋한 마음이 들었습니다.(술, 담배를 멀리하셔야..) 그리고 산행기에서만 익숙한 여러 봉산악회 멤버를 직접 뵙게 되어 반가웠구요.^^ 졸업식장에서 모든 분들에게 한잔씩 따르고 싶었지만 제가 사귐성이 부족해서 그렇질 못했습니다. 상배선배님의 일구, 6기맥, 남한 전 지맥 졸업을 다시한번 축하드립니다.
첫댓글 아,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시 한번 최상배님의 1대간 9정맥 6기맥 162 전 지맥 졸업을 축하드리며
퐁라라님도 머지않아 졸업할 때까지 안전 산행 응원합니다. 홧팅입니다. ^^
부케님!^^
저는 유유자적입니다. 갯수에 연연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찍 끝내도 특별히 보상이 주어지는게 없습니다.
정성을 들여 하나씩 나가다보면 언젠간 끝에 닿을 수도 있겠지요.
꼭, 다 끝내야 맛도 아니고, 162지맥을 다 끝내리라 장담하지도 못합니다.
162지맥을 끝낸다는건 엄청난 행운도 따라야 하겠더군요.
물론 기본은 건강이지만 건강이 받쳐준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다치지도 말아야 하고, 일상이 평온을 유지해야 합니다.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어딘가 그에 어울리는 지맥 하나 더 찾아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퐁라라운영자님의 이틀동안에 걸친 백하지맥 마무리를 축하드립니다.
40km가 넘는 산줄기를 따라 멋진 추억을 남기셨네요.
최상배운영자님 전지맥 졸업에 맞추어 좋은 시간을 함께 하셨습니다.
멋진 여정담을 즐감합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네, 방장님~
예정에 없던 지맥이었지만 졸업지맥이라 하시길래 일찍 준비했어요.
저도 장령과 금적은 준비가 되어있어 백하지맥이 금강을 연결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