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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여행기
일정 : 2008년 8월 12일 (화) - 8월 26일(월)
장소 : NewYork Manhattan Plainview
여행 목적 : 송이집 방문 및 관광
여행자 : 허동순 서현미
2008년 8월12일 05:00
사랑하는 딸 길러서 시집보내기도 섭섭한데, 이국 만리타향에 보낸 부모의 마음은 항상 걱정이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밥은 제대로 해 먹는지, 아이들은 어떻게 키우고 있는가, 직장생활은 하고 있는 사업은 잘 되는지, 듣기는 해도 모두가 볼 수 없으니 궁금하다.
언제 한번 가봐야지 벼르다가 이번 여름 방학에 가기로 하고 3월 말에 왕복 항공권 2매를 예약하였다. 무엇이 필요할까 생각나는 대로 안식구는 물건들을 챙겨 두었다.
새벽 5시경 모아둔 물건을 4개 가방에 나누어 막내가 운전하는 차에 싣고 대구공항에 도착하였다. 이른 시간이라 직원이 아직 출근하지 않았다. 6시가 되자 대한항공 직원이 업무를 시작하였다. 인터넷으로 예약한 e티켓(175.600) 항공권을 주고 비행 좌석표를 받았다. 그리고 짐을 부쳤다. 대구 공항에서 부친 화물은 바로 뉴욕행으로 연결이 되었다. 탑승구를 지나 기내에 들어섰다. 해외 여행가는 이상흔 교수, 서재건 이사장을 만났다.
07:15 대구공항을 이륙하여 08:00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몇 차례 왔던 곳이라 낮 설지 않았다. 우선 대합실에 샌드위치로 아침식사를 하였다.
10시 30분에 탐승하고 11시 정각에 대한항공 KE 081가 인천공항 활주로를 서서히 출발하여 굉음을 울리며 이륙하였다. 날씨가 맑고 쾌청하여 창밖 지상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아내가 몸이 불편할까 걱정되어 송이의 권유로 휠체어 서비스를 신청하였다. 안내원들이 타고 내릴 때 도와주겠다고 하였다. 마침 건강 상태가 좋아서 취소하였다. 24 5번 앞좌석을 배정해 주었는데 옆 좌석에는 예쁜 미국 여대생이 자리하였다. 보스톤에 살고 있는데 한국에 여행을 하고 돌아가는 길이란다. 잠시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열심히 읽고 있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창공을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모든 사람들이 선망하고 가고 싶어 하는 미국 땅 뉴욕, 딸 덕분에 구경은 잘하게 되었지만 정든 고장 뒤로하고 낯설고 물설은 머나먼 이국땅. 어떻게 살고 있는지 하는 생각이 문득 문득 떠올랐다 사라지곤 하였다.. 지루한 기내 시간을 보내느라고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고, 간식도 먹으면서 허리도 폈다 세웠다 하였다. 결혼 후 아내와 함께 오랜 시간 있을 때가 거의 없었다. 산다는 게 무언지 하는 일 없이 마냥 바쁘기만 하였다. 아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생각이 같을 지도 모르겠다. 얘들이 지난해 왔다가 가긴 했지만, 그 동안 너무 보고 싶었던 딸 녀석과 사위 그리고 외손녀 송이, 외손자 부라이언 귀염둥이 몇 시간 후면 만날 것이다.
운항정보를 보니 지금 비행기는 알라스카를 지나 캐나다 상공을 거쳐 뉴욕을 향하고 있었다. 지나온 비행 11시간 남은 비행은 2시간이다. 푸른 바다와 육지가 닿은 곳이 보인다.
입국신고서와 세관신고서를 작성하였다. 드디어 기내 벨소리가 울리고 승무원들의 동작이 바빠지기 시작하였다. 착륙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승무원이 시트를 바로 세우게 하고 안전벨트를 확인하였다. 속도를 줄이기 시작하였다. 드디어 쿵하는 소리가 났다.
2008년 8월12일 12:00 (날짜변경)
13시간을 쉬지 않고 배행하여 사랑하는 가족들 살고 있는 땅에 뉴욕공항에 도착하였다. 휴대폰으로 송이에게 도착을 알렸는데 쉽게 연결이 되었다. 공항으로 오고 있는 중이란다. 여권과 비자가 든 가방을 목에 걸고 트랩을 따라 출구에 들어섰다. 미국은 테러 등 안전에 대비하여 입국 절차가 까다로운 모양이다.
입국심사는 소지품과 휴대품 신발까지 모두 검색하고, 몸에 흉기를 가졌는가 팔을 들게하여 온몸도 수색을 하였다. 이민국 직원이 지문날인, 여권 비자확인 후 인터뷰를 시작하였다. 여행의 목적, 기간과 장소를 물었다. 서툰 영어 몇 마디로 대답하였는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입국 심사는 끝나고 세관 신고를 해야 한다.
이제 짐을 찾기 위하여 카트를 3달러에 빌렸다. 우리 가방에 송이 말대로 청 테이프로 표시해두었더니 쉽게 구분하여 찾을 수 있었다. 우리 가방에서 무슨 냄새가 나는지 검색원이 몰고 다니는 개가 와서 코를 대고 머뭇거렸는데 검색원이 와서 그 가방에 체크를 하였다. 세관신고서를 제출하고 세관에서 보퉁이 검사를 하였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가방을 열어보고는 세관원이 무어라고 의의를 제기하고 있었다. 통역관이 하는 말 “세관신고서에는 음식물 없음으로 체크돼 있는데 이 가방에 고추장, 깻잎, 라면 등 식품이 들어있다.” 거짓 신고하였다. 그래서 벌금을 내야 한다고 하였다. 사정을 이야기 하였지만 통하지 않았다.
맞는 말이다. 약간을 벌금을 납부하고 짐을 챙겨서 공항 출구를 향하였다. 체크 잘못한 탓에 비싼 음식을 먹게 되었다. 그럭저럭 시간이 지체되어 공항출구로 나오니 송이 어미와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게 꿈이냐? 생시냐? 반가움을 무엇으로 표현하리오. 껴안고 손잡고 한참 정신이 없었다. 심청전에 심봉사 눈뜨고 청이를 보고하는 말이 생각이 났다.
우리 가족은 송이가 준비해 온 시어른 큰 자동차에 짐을 싣고 공항을 빠져 나왔다. 여기 저기 빌딩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콜롬부스가 발견하였다는 이 넓은 대륙에 누가 언제 어떻게 알고 건너와 이렇게 풍요를 이루어 살고 있는가.
295번 고속도로를 달려 4-50분 지나서 집에 도착하였다. 68 AUDREY AVE. PLAINVIEW, NY 11803 이 이 집 주소란다. 68은 번지 AUDREY는 동네 AVE는 남북길( ST는 동서길) PLAINVIEW 지역이다. 뉴욕시에서 동편 섬 롱아일랜드 중간쯤 위치한 곳이다.
송이네 집은 앞뒤 잔디밭이고 가운데 주택이 자리한 그림 같은 아름다운 집. 스위트 홈이다. 이 부유한 나라에 비싼 집을 가질 수 있다니 축복이다.
주거 형태는 70년대 우리가 살던 대동주택과 비슷하다. 35*15m 대지에 지하실과 1층 방2 거실, 부엌, 화장실, 2층간이 방2로 된 단독 주택이다. 앞뒤는 잔디밭 우리를 맞이한다고 잔디를 깎고, 뒷마당 주변 나뭇가지치기와 울타리 제거 작업을 해두었다.
우리 부부가 1975년 결혼 후 바로 대동주택을 분양받아서 살았는데, 마당에 화단을 만들고 꽃과 감나무 대추나무를 심고, 거실에 거울과 액자로 꾸며놓고, 손님들 초대하여 집들이 하고 돌잔치 했던 지난 일들이 생각이 났다. 넓은 대청에 텐트치고 소꿉장난하고, 그네 타고 재미있어 계속 밀어 달라고 조르던 아이들이 아닌가.
차에서 짐을 내려 거실로 옮겼다. 아내는 가방을 열고 가져온 물건을 하나씩 꺼내면서 딸에게 전달한다. 이거는 무엇이고, 어디에 사용하고, 누가 보냈고---. 가방 넷이 모두가 그렇게 보고 싶고 그리워하던 자식과 외손에게 줄 선물과 메시지다. 나의 모든 것 다 주어도 아깝지 않고, 주어도 또 주고 싶고, 물건 하나 사도 얘들 생각, 음식을 먹어도 늘 생각났단다. 아무리 보아도 싫지 않고 귀엽고 예쁘기만 하다.
새로 장만한 집에 걸어둘 서각 작품을 만들어 갔다. “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고, 말이 아니면 탓하지 말라. 무자년 한여름 석암 허동순 ” 이라고 서툰 솜씨이지만 한글 반흘림체로 쓰고, 조각도로 글씨를 파내었다. 표면은 락카 대신 옻으로 여러 번 칠하여 마감하였는데 질감이 괜찮았다.
서각은 최영미 선생님의 도움 받아서 일주일 간 작업을 하여 완성을 하였는데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들었다. 가로 세로 75cm*25cm 크기의 나왕나무인데 골판지로 포장하여 가방 속에 넣어서 가져온 것이다. 송이네 거실에 걸었는데 바탕이 벽면 색깔과 비슷하여 식탁 뒤 흰 벽으로 옮겼다.
2008년 8월13일 수요일
장시간 여행의 피로와 시차 적응 때문인지 몸이 지긋지긋하다. 이곳 날씨는 한국처럼 한여름으로 볕은 따가운데도 무덥지 않은 것 같다. 지난밤 잠은 잘 잤는데 일찍 일어났다. 사방이 조용하다. 산책 겸 밖으로 나와 마을 한바퀴 돌았다. 주거지로 주변 환경을 잘 가꾸어 놓았으며 조용하고 공기가 맑다. 아침 식사 후 쇼핑 점 구경을 갔다. 의류, 신발, 안경, 가방 등 외곽지에 집단적으로 매장이 설치되어있고 운동장 같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아빠 양복이 질이 좋고 가격이 비싸지 않다고 설명을 하였다.
저녁에는 김서방이 뒤뜰 정원에서 특별한 만찬을 준비하였다. 결혼 후 처음자리이지만 퇴근 후 피곤할 터인데 건강하고 밝은 모습이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우리들을 맞이한다고 울타리를 넘어온 나무 가지를 자르고 잔디도 가지런히 잘 깎아놓았다. 파라솔과 야외식탁 등받이 의자에 통돼지 바비큐하는 기계까지 준비가 되었다. 오랜만에 식구들이 한자리에서 맛있는 음식으로 얘기를 나누었다. 아이들도 좋은가봐 그저 재롱을 부리고 있다.
2008년 8월14일 목요일
오늘은 가까운 매장구경을 다녔다. 특히 생필품 매장은 질 좋은 상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뒤뜰에 베어놓은 나뭇가지를 치웠다. 전정가위로 토막 내어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남은 잔디도 깎고 잡초도 솎아내고 담장을 뜯어낸 쇠파이프도 정리 하였다.
장인 살아 계실 때 우리 대추밭에 늘 오셔서 더운 여름에 쉬시지 않고 땀을 흘리시며 대추나무 밭 가꾸시고 가을이 되면 익은 열매 따간다고 주야로 지켜 주시던 모습이 생각이 났다. 장인이 하시던 일을 지금 내가 꼭 같이 하고 있구나.
2008년 8월15일 금 우드버리 구찌 버버리
송이와 함께 아울렛 명품 판매장 쇼핑을 갔다. 맨하탄 외곽지에 자라하고 있는데 매장과 주차장 규모가 크며 많은 종류의 점포가 자리하고 있었다. 가는 곳 마다 좋은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으며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모녀가 물건을 고르느라 분주하다. 송이는 구경하느라고 이곳저곳을 살피고 있고, 브라이언은 유모차를 타고있는데 울지 않고 잘 견디었다.
2008년 8월16일 토
집에서 동으로 4-50분쯤 차로 달려 가게에 도착하였다. 도로 옆 여러 종류의 상가가 크고 규모있게 짜여져 있었다. 건물 첫 번째 위치한 전문점으로 매장이 꽤 큰편이었다. 기계운전과 수선 카운터이외 일은 고용된 남미인이 맡아서 하고 있다. 준비해온 국수로 식사를 하고 퇴근시간까지 머뭇거리다 주변 산책을 하다가 길을 잃어 김서방이 찾아오기도 하였다. 오는 길에 유명한 중국식 뷔페식당에 들려서 맛있는 요리를 마음껏 먹었다.
2008년 8월17일 가족 뉴욕관광, 박물관, 센터럴 공원. 월남식사
일요일이라 전 가족이 함께 맨허턴 시내 구경을 하였다. 먼저 뉴욕메트로폴리탄 뮤지움 에 들렸다. 마침 주차할 자리가 비어있었다. 보통일에는 주차 때문에 시내를 몇 바퀴 식 돌아야 한다고 한다. 2층 건물로 흰 대리석으로 웅장하게 지어졌는데 입장료는 기부금 형태로 받고 있었다. 각국별 고귀한 진품 문화유산이 진열되어 있으며, 특히 한국관은 이건희 씨가 마련하였다 한다. 미술전시관에는 교과서에서 보았던 작품들 고갱 고호 피카소 등 세계의 유명한 화가들 작품이 잘 전시되어있었다. 카메라 셔터를 부지런히 눌러댔다.
옥상 전망대에는 센트럴 파크와 만하탄 시가지가 그림처럼 전개되었다. ROOF GARDEN이다.이 곳에는 야외 미술 조각 작품이 설치되어 있고 전위미술품이나 덩치가 큰 작품도 있다. 박물관을 나와서 센터럴 공원에 들렸다. 이공원은 길이가 4km 폭이 800m나 된단다. 준비해온 점심을 먹고 연못과 정원을 한바퀴 돌았다. 파아란 잔디밭에는 팬티만 걸친 시민들이 여기저기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오는 길에 김서방이 맨허턴 시가지를 지나면서 설명을 해주었다. 세계 각국 사람들이 저마다 개성을 살려 멋을 부리며 활보하고 있다. 복잡하고 좁은 길 운전도 잘하였다. 한국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은 한글 간판이 눈에 띄었다. 오늘은 식사메뉴가 베트남 요리다. 식당 분위기 살리려고 인지는 몰라도 조금 컴컴하다. 밥과 국수 종류의 특별 메뉴 인데 우리 음식과 유사한 면이 있는 별미의 요리였다.
2008년 8월19일 화 뉴욕관광
김서방은 일찍 가게에 출근하였다. 톱니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인간사 휴일 아니면 여유 시간을 갖기가 어렵고 가장의 책임이 무거운가보다.
우리 내외는 맨하탄 시내 관광을 하기로 하였다. 뉴욕을 송이네 차를 타고 프러싱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다. 고려당에 주차시켜놓고 절차를 밟은 후 맞은편에 대기하고 있는 동부관광버스에 올랐다. 얘들은 돌아올 시간을 약속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바쁘게 살고 있는 데 고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웠다.
기사와 가이드 모두 한국 사람이다. 관광객 중에는 우리처럼 자식들 집에 왔다가 온 사람들이 많았다. 버스가 출발하였다.
도중에 손님을 태우고 맨허턴에서 또 손님을 태워서 좌석을 다 메꾸었다. 안내자가 관광 일정과 코스에 설명이 있고, 주요 지역을 지날 때마다 설명을 하였다. 당일 여행비는 1인당 80$, 가이드 팀10$, 식사 후에는 식탁에 1$놓는게 이곳의 관례란다. 가이드 미스터 김은 나이가 든 사람인데 차분하게 설명을 잘해 주었다. 첫 코스는 자유의 여신상 관람으로 페리호 배를 타고 1시간 정도 구경을 하였다. 자유의 여신상은 프랑스가 미국독립을 기념하여 선물로 보낸 것이라 한다. 배에서 시가지 다리, 철교, 여신상, 이민역사박물관 등을 바라 볼 수 있었다. 큰다리는 New York, Manhattan 의 Brooklyn Bridge. 맨허턴과 브루클린을 연결하는 약 2.7km의 다리로 1883년 완성된 현수교란다.
선실에서 미국 안내원이 설명 하고 있었지만 알아들을 수 없다. 소귀에 경 읽기다.
마치고 버스에 돌아왔는데 자리다툼이 벌어졌다. 아무데나 않으면 되지요, 아니 내릴때 앉았던 자리에 앉아야 하지요. 서로가 양보를 하지 않으니 한사람이 가이드에게 판단을 내려 달라고 한다. 가이드도 입장이 어려워서 하는 말이 “정해진 자리는 없지만 통상의 예를 따르면 됩니다.” 하였지만 통하지 않았다. 이국땅 버스 안에서 자리다툼하는 한국인? 도산 선생이 미국에 있을 때 이야기다. 무더운 대낮에 길을 가는데 구경 군이 모여 있기에 들여다보니 두 사람이 서로 머리채를 쥐고 싸우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한국 사람이다. 얼마나 부끄러워하였겠는가. 같은 장소에서 물건을 서로 팔려하는데 서로 양보 하지 않으니 싸울 수밖에 결국 둘 다 못 팔고 상처 만 남았다. 한국인이 가면 ‘야만인’ 이라고 손가락질 하였다 합니다.
자유의 여신상을 보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관람하기 전에 주변 한인 식당에 들려 점심을 먹었다. 이 번화한 곳 요지에 자리한 식당 대견스럽다. 비빔밥을 주문하였는데 고추장 맛이랑 감치 깍두기 솜씨가 괜찮은 편이다. 일찍 먹고 나왔더니 아내가 팁을 놓고 왔느냐고 한다. 속으로 비싼 밥값 줬는데 무슨 소리냐?
식사 후 걸어서 빌딩에 도착하였다. 길을 잃어버릴까 걱정이 되어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아내도 내손을 꼭 쥐었다. 손바닥의 촉감이 예전 같지 않다. 인생무상이다. 우리가 벌써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냐.
긴 줄을 서서 기다리며 가는데 통과하는 곳곳마다 검색원들이 티켓과 소지품 검사를 하였다. 각국에서 온 여러 인종들 전시장 같다. 특히 체격이 큰사람들이 많았다. 엘리베이트로 80층 가서 다시 102층 옥상엘리 베이트를 갈아타고 내렸다. 순간 아찔하다. 이 높은 곳에서 내려 다 보이는 것은 빌딩 숲이다. 사방을 돌아봐도 빌딩뿐이다. 누가 언제 어떻게 무슨 돈으로 이렇게 지었는가. 컬럼버스가 이 대륙을 발견하지 않았으면 오늘날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온갖 생각들이 교차하였다. 인간의 역량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가를 새삼 느끼게 하였다. 시가지를 향해 셔터를 연속 눌렀다. 아내의 모습도 함께 담고 싶었다.
늦을 새라 길을 잃을까 서둘러 내려왔다. 꼬불꼬불 돌고 돌아서 무사히 내려왔다. 아래층 건물 안에 들려서 화려하고 값진 상품들을 구경하였다. 이제 버스로 시가지를 구경하고 유엔본부, 록펠러 센터에 들리게 된다.
버스는 5번 헵스 에비뉴, 명품의 거리, 다리미 빌딩을 지났다. 빌딩은 1902년 완공된 21층 건물이다. 42 58가 명품 패션거리, 스쿨오브디자인 이다. 뉴욕은 영국 식민지였는데 1776년 독립하여, 1789 워싱턴 대통령이 취임선서하고 수도 역할 하다가 1800년부터 지금까지 워싱턴으로 수도가 옮겨졌다. 뉴욕은 180여 개국 사람이 살고 있는데, 싸우는 사람마다 다른 욕을 하기에 뉴욕이라 명명하였다고 가이드가 웃겼다.
워싱턴 스퀘어, 어제 들렸던 센트럴 파크. 1833설립된 뉴욕대. 오헨리 잎새 건물, 대학 뒷거리. 소호지역 18세기 후반 뷰티삽, 예술의 거리, 289개 겔러리, 버버리. 브로드웨이. 차이나 타운은 광동성노동자들이 다리 터널공사 할 때 많이 이주하여 살고있다. 월가. 법원건물. 시청사. 마이클부룸버그가 뉴욕시장이다.
월가는 주식 증권시장. 성공회교회, 필드타워 2011년완공 예정으로 가장 높은 건물이 될 것임 (9.11사태), 성요한 성당. 명품거리 32, 33, 34번가 한인 타운으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주변이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1931완공된 102층 건물로 관람객이 1000만 명이 된다했다.
차안에서 송이가 사준 간식을 먹으면서 앞자리 김화순 여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경산 와촌 갓바위 고시원 살고 있다하며, 결혼 한 딸이 제약회사 다니는데 미국에 파견근무하게 되어 외손자 봐주러 와있다. 고향 가까이 사는 사람 이곳에서 만났으니 매우 반갑다. 한국가면 꼭 놀러오라고 당부를 하였다. 그렇게 합시다. 김여사는 이걸 인연으로 유엔 본부 앞에서
같이 사진을 찍었다.
교과서에 많이 보았던 유엔본부 건물과 회의장, 게양된 각국국기가 낯설지 않았다 유엔본부 1948년 51개국가입 록펠러 가 기증하였다. 록펠러 센타에 내려 기증했다는 여러 건물들을 구경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화려하고 찬란하게 장식한 매장과 호텔에 세계의 부호들이 붐비고 있었다. 퀸스브리지는를 바라보면서 성공회교회. 성요한 성당을 지나갔다. 이 성당은 1892년 공사를 시작하여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한림 125가 재개발 벽화는 한림 문화를 표현한 것으로 소수민족 장기임대 건물들이다. 센트럴파크를 지나 노벨수상자를 59명이나 배출하였다는 컬럼비아대학교를 지나왔다.
관관을 마치고 프러싱에 5시경에 도착하였는데 송이네가 고려당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빵을 싸서 먹고 식당으로 안내를 하였다. 이곳으로 치면 숯불 갈비집이다. 최고급 쇠고기 꾸이를 주문하여 맛있게 먹었다. 옆 테이블에는 미국 직장인 모임인데 돼지고기 삼겹살을 된장과 고추로 소주를 즐기고 있었다.
2008년 8월21일 목 사돈초청 저녁식사
간판도 찬란하다. 식당에 들어서니 가족단위로 자리가 꽉차 있었다. 흑인 종업원이 안내하고 자리에 앉자 메뉴판을 가지고 와서 주문을 청하였다. 김서방이 우리들 구미에 맞춰 비프와 스틱 빵 고구마등 요리를 시켰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전국이 법석을 떨었는데 본고장인 이곳은 조용하다. 질이 좋은 쇠고기인지 병든 쇠고기인지 모르겠지만 양식집은 손님이 만원이다.
2008년 8월21일 금 루즈벨트대통령 생가 방문.
미국 26대 루즈벨트 대통령은 14세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장난감 스페인 전쟁때 사용했던 철모 등 전시되어있다. 성조기가 게양된 아래 두 아들의 묘지가 있었다. 노르망디 상륙전 참가하여 전사하였다.
공원으로 꾸며져있고 관리가 잘되어 있어 가족과 함께 어린이들 체험학습 장소로 좋았다. 송이는 할머니가 사준 로러스케이트를 타고 공원을 한바퀴 돌았다. 돌아오는 길에 아메리칸 피자집에 들려 고소하고 담백한 서양 음식을 먹었다.
2008년 8월22일 토
매장 구경하였다. 옷이 있어도 보면 사고 싶은 모양이다. 이거 당신 입으면 좋겠는데 면청바지인데? 남방셔츠도 여러 벌 구입 하였다.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자기 옷은 구경만하고 열이 바지에다 명품 코치 선글라스를 형님 것 까지 구입하였다. 형님이 길거리 싸구려 안경을 끼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2008년 8월23일 일
오늘 출국하는 날이다.
잘 가세요! 잘 있어요! 자매, 모녀, 부자간. - 더 나은 내일을 위하여
2주가 너무 빨리 지나갔다. 사랑하는 가족들 각자 갈 길을 찾아 가야한다. 그래 가족들아 더 낳은 내일을 위하여 아픔을 함께 나누자. 기쁨은 나누면 배가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했지. “있을 때 잘 해” 노래가사 참 좋은 말이다.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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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 30분 집을 출발하여 11시에 케네디 공항에 도착하였다. 인천행 대한항공 KE 081기는 오후 2시 30분에 출발하여 25일 18시 30분에 인천공항에 무사히 왔다.
19:40 동대구 경북고속 리무진으로 23:30 동대구 도착 열이가 마중나와 24:00 하양집에 도착하였다. 사랑하는 가족들 모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