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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5월 28일 화요일
[(녹) 연중 제8주간 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베드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받을 은총에 모든 희망을 걸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복을 받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여러분의 앞날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려 모든 희망을 거십시오.>
▥ 베드로 1서의 말씀입니다. 1,10-16
사랑하는 여러분, 영혼의 10 구원에 관해서는
여러분이 받을 은총을 두고 예언한 예언자들이 탐구하고 연구하였습니다.
11 그들 안에서 작용하시는 그리스도의 영께서
그리스도께 닥칠 고난과 그 뒤에 올 영광을 미리 증언하실 때에 가르쳐 주신
구원의 시간과 방법을 두고 연구하였던 것입니다.
12 예언자들은 그 일들이 자신들이 아니라
여러분을 위한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 일들이 하늘에서 파견된 성령의 도움으로
복음을 전한 이들을 통하여 이제 여러분에게 선포되었습니다.
그 일들은 천사들도 보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13 그러므로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받을 은총에 여러분의 모든 희망을 거십시오.
14 이제는 순종하는 자녀로서,
전에 무지하던 때의 욕망에 따라 살지 말고,
15 여러분을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모든 행실에서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
16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복을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28-31
28 그때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29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30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31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어제 본문에 이어집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어떤 사람이,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당신을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부담을 느끼고 떠나자, 베드로가 말합니다.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이 문장에서 “버리다”라고 옮긴 그리스 말 ‘아피에미’는 ‘어떤 것을 두다’, ‘용서하다’, ‘없는 것으로 하다’ 등, 문맥에 따라 다양하게 옮기는 낱말입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것을 ‘버리다’ 또는 ‘포기하다’에 해당하는 낱말을 쓰지 않고 ‘아피에미’를 사용하였다는 것은, 이 문장을 극단적인 ‘포기’나 과장된 ‘비움’으로 이해할 필요가 없음을 암시합니다. 독서에서는 “여러분을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라고 권고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이시고 사랑이신 분이십니다. 거룩함과 사랑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이고, 거룩함은 사랑의 실천을 통하여 이루어짐을 가르쳐 줍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핵심은 ‘버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에 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수녀원에 입회한 수도자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수녀님이 자기가 맡은 구역을 청소하고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외부 사람들이 들어와 여기저기 발자국을 내버렸습니다. 수녀님은 불같이 화를 냈고 사람들은 민망해졌습니다. 철저히 버리고 포기하며 살려고 애썼지만 정작 자신의 완고한 자아는 버리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바로 제 이야기입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버림’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집과 형제와 ……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모범적 영웅이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사랑하려고 하는 것입니다.(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학전(學田)에 대한 다큐를 보았습니다. 학전은 1991년 아침이슬의 주인공 김민기 선생님이 세운 소극장입니다. 전 1991년에 서품받았으니, 학전의 역사가 제 사제 생활의 역사와 같습니다. 전 학전에 한번 가보았습니다. 1992년 봄에 김광석의 콘서트를 보러 갔습니다. 그때 게스트로 나온 가수가 강산에입니다. 그 뒤로 학전을 잊고 있었는데 이번 다큐를 보면서 예전의 기억이 소환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열정은 가득했지만, 방향을 몰랐던 새 사제였습니다. 예비자 교리는 학원강사 부럽지 않게 강당에 가득 찼습니다. 주일학교는 아이들로 성당을 꽉 채웠습니다. 교사들과 청년들은 성당에서 봉사하며 즐거워했습니다. 열정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본당신부님은 자상하시고 용돈도 잘 챙겨 주셨습니다. 사제 생활이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학전을 세운 김민기 선생님은 저와는 달랐습니다. 그는 1994년부터 2024년까지 지하철 1호선 뮤지컬을 공연했습니다. 그는 많은 무명 배우를 스타로 키워냈습니다. 설경구, 황정민, 조승우 윤도현, 안내상, 김대명, 황현희 이름은 잘 모르지만, 얼굴은 아는 배우들이 학전 출신들이라고 합니다. 그는 무명의 배우를 발굴해서 11주 연습을 시킨 후에 무대에 올렸습니다. 그렇게 다듬어진 배우들은 성공하였고 김민기 선생님은 주저 없이 그들이 더 큰 세상으로 날아가도록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학전은 말 그대로 배움의 터전이었습니다. 학생이 졸업하면 학교를 떠나듯이 학전에서 이름을 알린 배우들은 더 큰 세상으로 날아갔습니다. 학전은 배우들의 '못자리'였습니다.
김민기 선생님은 당시에는 생소했던 일들을 추진했던 개척자였습니다. 배우들의 4대 보험을 학전의 이름으로 가입해 주었습니다. 배우들과 계약서를 만들어서 배우들이 월급을 받도록 했습니다. 학전이 성공하면 배우들의 수입도 늘어났습니다. 월급이 들어오자, 은행에서 전세자금을 대출 해 주었고 한 무명 배우는 전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아내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김민기 선생님은 자신은 뒷것이라고 했습니다. 배우들은 앞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키운 것은, 학전이라는 극장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키운 것은 대한민국의 문화와 예술이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세계에 우뚝 선 K Pop과 K Culture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김민기 선생님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했다면 세상의 부와 명예를 얻었을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땅 위에는 조용필 땅 아래에는 김민기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같은 나이인 둘은 언젠가 한 번 만났다고 합니다. ‘조용필은 김민기를 존경한다고 했고, 김민기는 조용필을 좋아한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생각해 봅니다. 난 내게 주어진 '학전'을 잘 돌보았는가? 난 뒷것이 아닌 앞것으로 나 자신을 내세운 것은 아닌가? 난 건물을 세우고 추억은 만들었지만, 나의 학전에서 만난 이들이 더 큰 세상으로 나갈 수 있도록 헌신과 열정을 다했는가? 돌아보면 부끄럽습니다. 이제 어쩌면 저에게 마지막 '학전'이 주어진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뒷것이 되어 내가 만나는 이들에게 꿈과 사랑을 주고 싶습니다. 그들이 나로 인해 슬픔은 기쁨이 되고, 절망은 희망이 되고, 두려움은 용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러분을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모든 행실에서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학전의 김민기 선생님은 바로 그런 삶을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김민기 선생님의 '친구'를 나누고 싶습니다.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오/ 그 깊은 바닷속에 고요히 잠기면/ 무엇이 산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눈앞에 떠오른 친구의 모습/ 흩날리는 꽃잎 위에 어른거리고/ 저 멀리 들리는 친구의 음성/ 달리는 기차 바퀴가 대답하려나/ 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모습/ 그 모두 진정이라 우겨 말하면/ 어느 누구 하나 홀로 일어나/ 아니라고 말할 사람 누가 있겠소.”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부족한 나를 친구라고 하십니다.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복을 백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이용현 알베르토 신부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예전에 어느 주교님이 당신이 경험하신 일을 말씀해 주셨는데, 어느 본당의 자매님이 27살 된 자식을 사고로 먼저 떠나보내면서 마지막 장례미사를 한 다음 미사를 집전해 주신 주교님께 이런 말씀을 드렸다고 합니다. “주교님 저는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하느님께서 더 없이 훌륭한 아이를 제게 주셔서 지난 27년 동안 하느님 안에서 아이와 함께 너무나도 행복했습니다. 이제는 하느님께서 제 아이를 직접 돌봐주실 것이기에 하느님께 더욱 감사드립니다.” 그 주교님께서는 그렇게 모든 것을 신앙 안에서 바라보는 그 자매를 통해 당신도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마도 신앙인이 아닌 사람들이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그 자매님의 모습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우리의 하느님께서는 진정 자비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당신을 믿고 따르는 이를 결코 포기하지 않고 구원으로 이끌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때문에 살아갈 때, 세상은 우리를 박해할지도 모르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우리를 보시고 우리의 모든 바램을 채워주시고, 반드시 구원으로 이끌어주실 분이심을 믿습니다.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복을 백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오늘의 성인
성녀 마리아 안나 (Mary Anne)
활동년도 : 1618-1645년
신분 : 동정녀, 은수자
지역 : 키토(Quito)
같은 이름 : 낸시, 니나, 마리아나, 마리안나, 메리, 미리암, 애나, 애니, 앤
마리아 안나 (1618 - 1645)는 남미 에쿠아도르 키코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신앙을 위해 일본에 가서 순교자가 되기를 원했으나
자기 집에서 은둔 생활을 하며 살아 있는 순교를 하기로 결심하였디.
재속 3 회 착복을 하고 가난·정결·순명의 세가지 수도 서원을 하였다.
그 후 은수자처럼 집에서 살며 전례에 참례하거나 이웃에 봉사하기 위해서만 집을 벗어났다.
그녀의 기도와 회개 생활에 대하여 하느님게서는 보상으로 많은 특별한 은총을 허락하셨다.
그녀의 전구로 환자들이 치유되기도 하였으며 그녀는 예언과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은사를 받기도 하였다.
1950 년 비오 12 세가 시성하였다.
(작은형제회홈에서)
성녀 마리아 안나 아 예수 데 파레데스(Maria Anna a Jesu de Paredes)는 당시 에콰도르의 수도였던 페루비안 마을에서 태어났고, 마리아 안나 데 파레데스 이 플로레스(Maria Anna de Paredes y Flores) 즉 ‘키토의 꽃’이란 이름을 얻었다. 그녀는 에스파냐 귀족의 딸로 젊은 나이에 사망하였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신심이 뛰어나서 언니들과 더불어 로사리오와 십자가의 길의 기도 바치기를 매우 좋아하였다. 12세 때에는 몇 명의 친구들과 어울려 일본인들을 개종시키려다가, 키토 교외 산에서 은수자로 살려는 생각이 떠올라 포기하였다. 그러나 이 일 역시 정치적인 문제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자기 고해신부인 예수회원의 지도를 받으면서 성당에 가는 일을 제외하고는 독수자처럼 생활하였다.
또 그녀는 관을 하나 마련한 뒤 매 금요일마다 그 속에서 지내며 죽음을 묵상하기도 하였다. 팔과 다리를 쇠사슬로 묶고 고행자가 입는 말총 속옷을 입었으며, 가시관과 쇠못관을 만들어 고행하였다. 음식은 극히 소량만 먹었고, 물은 그리스도의 갈증을 느낄 정도가 되어서야 겨우 입을 축이는 정도였다. 이와 동시에 예언과 기적도 일어났다. 1645년 키토 지방에 지진과 더불어 전염병이 번졌다. 사순 제 4주일의 강론을 들은 그녀는 자신이 백성의 희생물이 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나섰다. 지진은 멈추었으나 그녀는 26세의 나이로 운명하고 말았다. 그녀는 1950년에 시성되었다. 그녀는 마리아나 데 파레데스(Mariana de Paredes)로도 불린다.
성 베르나르도 (Bernard)
활동년도 : 923?-1008년?
신분 : 신부
지역 : 멘톤(Menthon)
같은 이름 : 버나드, 베르나르두스, 벨라도
사보이아(Savoia, 프랑스 남동부, 이탈리아와 접하는 옛 지방의 이름)의 멘톤(또는 몽주 Montjoux)에서 태어난 성 베르나르두스(Bernardus, 또는 베르나르도)의 어린 시절에 관한 자료들은 불분명하다. 그러나 그가 아우구스티누스회의 수도 사제로 아오스타(Aosta) 교구의 총대리가 되었고, 40여 년 동안 알프스에서 선교 사업에 종사한 위대한 선교사였음은 확실하다. 그는 자신의 교구 내에 학교와 성당을 세웠지만, 가장 높이 칭송받은 일은 알프스 산을 넘는 여행자들이 길을 잃고 헤맬 때 그들을 돕기 위하여 세운 알프스 산의 두 숙박소이다. 이곳은 그가 사망한 뒤에 ‘큰 베르나르두스’, ‘작은 베르나르두스’라고 이름 지어져 오늘에 이른다. 이탈리아의 노바라(Novara)에서 선종한 그는 1681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11세(Innocentius XI)에 의해 시성되었고, 1923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하여 등산가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성 제르마노 (Germanus)
활동년도 : 496?-576년
신분 : 주교
지역 : 파리(Paris)
같은 이름 : 게르마노, 게르마누스, 제르마누스
성 게르마누스(또는 제르마노)는 496년경 프랑스의 손에루아르(Saone-et-Loire)에 있는 오툉(Autun) 근처에서 엘레우테리우스(Eleutherius)와 에우세비아(Eusebia)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그는 신부인 사촌 스카필리온(Scapilion)의 도움으로 아발롱(Avalon)과 뤼지(Luzy)에서 공부하였다. 530년에 그는 오툉의 주교인 아그리피누스(Agrippinus)로부터 사제품을 받았으며 오툉 근처에 있는 생-생포리앵(Saint-Symphorien)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555년 그가 파리에 들렀을 때 마침 에우세비우스 주교가 세상을 떠나 파리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는 자신의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불굴의 투지와 용맹을 보였다. 그는 파리에 유명한 생제르맹(Saint-Germain) 수도원을 세웠고, 576년 5월 28일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성인의 유해는 빈첸시오 성당 입구의 생-생포리앵 경당에 안치되었다가, 754년 성대한 예식과 함께 성당 안으로 옮겨졌다. 이때부터 이 성당은 생제르맹데프레(Saint Germain-des-Pres)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복자 란프랑코 (Lanfranc)
활동년도 : 1005-1089년
신분 : 주교
지역 : 캔터베리(Canterbury)
같은 이름 : 란프랑꼬, 란프랑크
이탈리아의 파비아(Pavia) 출신인 란프랑코는 고향에서 법률을 공부하여 한동안은 변호사로 지내다가 1035년경에 프랑스로 갔다. 그는 노르망디(Normandie)의 아브랑슈(Avranches)에서 공부를 계속하고 또 가르치기도 하다가 1042년 베크(Bec)에서 수도승이 되었다. 그는 불과 3년 뒤에 그곳 수도원의 원장 겸 수도원 학교의 교장이 되었고, 그의 성덕과 학문이 크게 알려졌다.
그는 베렌가리우스(Berengarius)와 성체성사에 관한 논쟁을 벌였고, 이 때문에 그는 교황 레오 9세(Leo IX)의 초청으로 로마 회의에 참석하여 베렌가리우스가 단죄를 받는데 큰 몫을 하였다. 1063년경에 그는 캉(Caen)의 성 스테파누스(Stephanus)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고, 1070년에는 영국 캔터베리의 대주교가 되었다. 그는 노르만 전례를 영국 교회에 이식했고, 사제 독신제를 강력히 시달한 1076년의 윈체스터(Winchester) 시노드에도 참석하였다. 그의 저서인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성사”는 중세시대의 주요 저서로 널리 읽혀졌다. 캔터베리에서 선종한 그는 공적인 공경에 관한 그 어떤 내용도 찾아볼 수가 없지만 늘 복자라는 칭호와 함께 불려왔다.
복녀 마르가리타 폴(Margaret Pole)
활동년도 : 1473-1541년
신분 : 과부, 순교자
지역 :
같은 이름 : 마가렛, 마르가리따, 말가리다, 말가리따, 말가리타, 말가릿다
영국 왕 에드워드 5세와 리처드 3세의 조카인 마르가리타 플란타제넷 폴(Margarita Plantagenet Pole)은 헨리 8세에 의해 리처드 폴(Richard Pole) 경과 결혼하게 되었다. 그러나 헨리 8세가 즉위했을 때에는 마르가리타는 5명의 자녀를 둔 과부였다. 5명의 자녀를 데리고 사는 그녀는 영국에서 성녀로 불릴 만큼 덕이 출중하여 헨리 8세가 솔즈베리(Salisbury)의 백작으로 그녀를 임명하는 등 많은 호의를 베풀었다.
그러나 헨리 8세가 앤 볼린(Ann Boleyn)과 결혼하자 그녀는 왕가와의 모든 인연을 끊어버리고 은둔생활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와중에 그녀의 넷째 아들인 레지날드 폴(Reginald Pole)이 왕의 수장령에 반대하는 글을 썼다. 이 사건으로 온 집안 식구가 모두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그녀 역시 헨리 8세를 공격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1541년 5월 28일에 참수형을 받고 장렬하게 순교하였다. 그녀는 1886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