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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이야기
<9> 홍어 못잡는 때가 있다
“풍어가 아니고, 과잉보도라고 해야 할까요.”
전남 신안 흑산도 흑산수협에서 홍어 위판을 담당하는 박선순 판매과장의 얘기이다. 위판이란 홍어잡이배들이 잡아와 펼쳐놓은 홍어를 중매인들에게 매매를 중개하는 일이다. 위판장은 흑산도 예리항 흑산수협앞에서 펼쳐진다.
▶ 전남 신안군 흑산도 예리항에 있는 수협 홍어위판장. 홍어를 펼쳐놓고 경매하고 있다. 사진=김영근 기자
최근 뉴스는 통신사 3월 19일, 방송사 지난 3월 19일과 27일이었다. 그 중 하나다.
겨울철 최고 별미 중 하나인 전남 신안 흑산 홍어가 풍어를 기록한 가운데 가격은 폭락했다. 신안 흑산수협은 최근 흑산도 인근 해역에 홍어 어장이 형성되면서 3~4일 조업에 척당 200마리 넘게 홍어를 잡는 풍어를 보이고 있다고 19일 밝혔다. 풍년호 선장 강택영(51) 씨는 최근 조업에서 300마리 이상을 잡는 대풍어를 기록했다. 그러나 홍어 가격이 성수기와 비교하면 크게 떨어져 어민들은 웃지도 울지도 못할 처지다.
요즘 8㎏ 이상 상품 한 마리 가격은 32만원으로 60만원을 호가하던 지난 설 성수기 때의 절반 가까이 폭락한 상태다. 어민들은 “불법 조업을 일삼던 중국어선이 해경의 철통 같은 단속으로 출현하지 못해 어장이 살아나 대풍어를 이루고 있다”면서 “풍어에 소비부진까지 겹쳐 홍어 가격이 밑바닥을 치고 있을 정도”라고 울상을 지었다.
제철은 맞다. 흑산도 근해에서 홍어가 가장 잘 잡히는 때는 3월부터 5월까지라고 했다. 홍어는 알을 낳고 회유하는 습성을 갖고 있다. 홍어는 연중 내내 산란을 하지만 그래도 겨울철에 주로 산란하는데, 이 때 들어와 (깊은 바닷속에서) 지내다가 다시 (다른 바다로) 나갔다가 돌아온다고 했다.
설은 1~2월이다. 이 때로 치자면 홍어잡이 제철 바로 직전이다. 홍어가 가장 맛있는 때가 바로 이 무렵이라고 한다. 쉽게 말하면 눈 올 때가 가장 홍어가 맛있다는 것이다. 산란하기 직전(산란준비기간)이 암컷에게는 몸이 최고의 컨디션이라고 한다. 영양분이 많고, 육질이 좋다는 것이다. 이 때가 ‘가장 맛있는 때이지만, 상대적으로 적게 잡히는 시기’이다. 3월에 접어들면 홍어가 많이 잡히기 시작하는데, 5월까지 이어진다.
‘가장 맛있을 때, 설 수요까지 겹치므로’ 연중 홍어값이 가장 비쌀 때가 바로 설 무렵이 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나 설을 지나면 홍어가 많이 잡히는 데다 일시적 수요가 잠잠해지다 보면 값은 자연스레 떨어진다는 것이다. 박 과장에 따르면, 그것은 너무도 자연스런 현상이다. 흐름을 보지 못하고, 단순 대비해서 ‘폭락’이라 표현한 것은 ‘과잉’이지 않느냐고 했다.
오히려 그 다음 흐름을 놓치고 있다고 했다. 홍어잡이는 4월부터 6월까지 금지된다. 그래서 3월말쯤이 되면 값이 오히려 올라간다. 3월 중순보다 8㎏ 기준으로 10만원 가량이 더 올랐다고 했다. 위판장에서 중매인들에게 넘겨지는 가격이 40만원선이다. 그러니, 연중 가장 비쌀 수 밖에 없는 설 무렵 가격에다 바로 한 달 안팎의 시기지만 가장 많이 잡혀 가격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때의 가격을 비교하는 것이 현상적으로는 틀리지는 않지만, ‘과잉’이고 요즘 하는 말로 ‘오버’라는 것이다.
▶흑산도 근해에서 홍어잡이배 어부가 주낙에 걸린 홍어를 긴 갈코리로 내리 찍고 있다(윗사진). 배안에서 주낙줄을 감으면서 홍어가 따라 올라오고 있다. 사진=김영근 기자
본격적인 금어기를 앞두고 3월 홍어잡이배들은 한 마리라도 더 잡으려고 ‘있는 힘, 없는 힘’까지 다해보는 때다.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죽을 힘’까지 다하는 때가 바로 금어기(禁漁期)인 4~6월 석달이다.
홍어잡이를 금지하는 기간(금어기)에 웬 ‘죽을 힘’을 다하느냐고! 이 금어기 가운데 홍어잡이배가 한 달에 10일씩 조업을 하도록 부분적으로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산자원 보호령’에 따른 것이다. 2007년부터 적용, 올해로 3년째를 맞고 있다. 홍어 어족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어족자원 보존과 조성이 그 목적이다. 가장 많이 잡히는 시기가 3~5월인데, 4~6월중 한달에 10일씩 밖에 홍어를 잡을 수 밖에 없다. 홍어를 앞에 두고 잡을 수 없는 어민들의 처지는 불만스럽기 짝이 없다.
그런데 10일씩 한시조업을 허가한 것은 ‘실험조업’ ‘어족자원 연구’ 목적이다. 그것은 어민들의 불만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려는 것이라고 어민들은 말하고 있다. 어민들은 정책적 목적과 현실이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과거 홍어어족자원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데는 그럴만한 배경이 있다고 했다. 통계상으로 잡히지 않았던 어선(안강망 어선이나 쌍끌이 저인망 등)에 의한 어획량이 있었고, 수년 동안 어선 감축에 따라 표면적 통계로 잡히는 홍어숫자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이 자료에 근거한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홍어가 예전보다 더 많이 잡히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중국어선이 우리바다를 침범, 흑산도 근해에서 홍어를 ‘싹쓸이’하는 상황에서 통계에 이와 같은 홍어들은 포함되지도 않았다고 했다.
▶2008년 12월 8일 오후 인천 옹진군 대청도에서 남쪽으로 70여 마일 떨어진 한중공동어로구역에서 무허가 중국어선 50여척이 불법조업을하다 해경 1502호가 나타나자 도망하고 있다. 한중공동어로구역에서는 한중양국모두 정부의 허가를 받은 선박만 조업할 수 있다. 사진=주완중 기자
그러나 홍어잡이 상황이 좋아졌다. 2006년이 전환점이었다고 본다. 필자가 그 해 3월 11일자 조선일보 사회면에 썼던 기사다.
해산물 최고의 별미 가운데 하나로 각광받는 ‘흑산 홍어’가 올해 대풍어(大豊漁)를 맞았다. 전남 신안 흑산수협은 “올들어 두 달간의 홍어 어획량이 27(위판고 10억4000만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의 16(7억3000만원)과 비교할 때 70% 가까이 늘었다”고 말했다. 흑산도 제7광성호(선장 김공열·59)의 경우, 한 번 출항해 3~4일 동안 100~200말리를 잡고 있다. 작년만 해도 30~40마리에 그쳤었다. 김 선장은 “일단 바다에 나가면 홍어를 많이 잡을 수 있고, 그래서 되도록 출항 횟수를 늘리고 있다. 그래서 총 어획량이 크게 늘었다”고 했다. 선원 5~7명이 한 배로 출항하며 인건비·기름값·어구(漁具) 등 비용이 500만원 가량 든다고 한다. 그런데 200마리를 잡으면 2500만원 정도에 팔 수 있다. 어민들은 이 같은 풍어의 이유로 중국어선 불법어로단속, 홍어보호를 위한 저인망 어선 감축, 바다쓰레기 치우기 등을 꼽고 있다. 하지만 기록적 풍어의 영향으로 위판가는 떨어졌다. 평소 50만원선이던 8㎏ 암컷의 가격이 30만원으로 하락했다. 6㎏ 암캇은 18만원, 수컷은 12만원선에 거래된다. 불과 한 달사이에 30~40% 떨어졌다고 했다. 어민들은 떨어진 가격에 아쉬움을 떨치지 못하면서도 “오랜만의 풍어인데 이게 어디냐”는 분위기다. 흑산수협은 “위판고는 떨어졌지만 홍어가 워낙 비싼 고기인데다, 저장시설도 좋아 소비자값 하락으로 이어질지는 불확실하다”고 했다.
홍어는 날로 먹거나 삭혀서 먹는데 살이 차지고 특유의 ‘쏘는 맛’과 냄새를 갖고 있다. 미식가들은 홍어에 탁주와 돼지고기를 곁들여 즐기기도 한다.
이 기사는 지난 해와 그 해의 동기대비를 했기 때문에 연간추세를 짐작할 수 있고, 홍어가 이제 많이 잡히는 흐름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홍어가 풍어를 이루기 시작한 그 이듬해부터 홍어잡이 어민들은 ‘홍어는 많아졌는데, 오히려 어족자원 보호를 위해서 금어기에 홍어를 잡을 수 없는 상황’을 맞고 말았다. 어민들의 말에 따른다면, 상황은 좋아졌는데 예전 기준의 통계로 어민들의 홍어잡이를 ‘너무 옥죄고’ 있다는 것이다. 금어기를 조금 비껴서 6~8월로 하는 것도 차선이라고 했다.
▶2008년 10월 3일 오전 전남 홍도 인근 해상에서 조업중인 중국 어선들이 고등어를 잡아 올리고 있다. 사진=오종찬 기자
홍어잡이가 좋아진 데는 중국어선의 불법어로 차단도 큰 몫을 차지했다. 해양경찰이 중국어선의 침입을 강력하게 막고 나선 것이다. 중국어선들은 떼를 지어 출몰해서 우리나라 어선에 달려들어 폭력을 휘두르고, 잡은 고기와 어구를 빼앗는 등 횡포가 말할 수 없었다.
2006년 3월 2일 인천에 있는 해양경찰청의 이승재 청장은 흑산수협조합장 박종순씨로부터 스티로폼 상자를 배달받았다. 전남 광양출신으로 고대법대를 졸업했고,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경찰에 투신한 이 청장은 기자와도 잘 아는 사이다. 이 청장이 전남지방경찰청 수사과장을 하던 시절, 출입기자였다. 지금은 서울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 상자 안에는 홍어 7㎏짜리 2마리와 편지가 있었다. “해경의 중국어선 불법조업 단속으로 홍어조업이 대풍을 이루고 있다”며 “감사의 뜻으로 홍어를 보내드린다”고 했다. “흑산도 상징인 홍어를 보내니 싱싱한 홍어 한 점 들고 바다를 지키느라 노심초사했던 마음을 털어달라”고도 했다. 이 청장은 고민 끝에 성의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그 다음 날 구내식당 점심 시간 직원들에게 한 점씩 맛보게 한 일이 있었다.
홍어잡이 어민들의 마음이 금어기를 맞을 때마다 ‘홍어속’이 된다. 속이 쓰리고 아프다는 얘기다. 이를 달래줄 수 있는 방법은 분명 있을 것이다.
▶홍어는 전국화한 음식이다. 대전 음식점에 펼쳐진 홍어에 신김치, 홍어 애탕, 홍어 애, 홍어껍질(우측하단부터 시계방향). 사진=전재홍 기자
이제부터는 보너스 글!
점심을 바삐 먹고 이번 홍어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사무실로 작은 소포가 왔다.
목포대에서 가르치고 있는 김선태 시인이었다. 지난 홍어이야기중 ‘왜 홍어좆은 만만한 것인가’에 그의 시 ‘홍어이야기’ 전문을 인용한 바 있다.
소포는 ‘창비시선’ 299번째 시집 ‘살구꽃이 돌아왔다’ 였다. 후기에 “7년 만에 세 번 째 시집을 엮었다”며 “적막하고 척박하기 그지 없는 한반도 서남부 변방 목포, 그러나 그 변방이 내 생의 고향이요 종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동봉한 편지 속에 “바다 혹은 해양이란 화두를 새롭게 주목했다”며 “지금껏 한국문학이 놓친 바다문학을 목포에서부터 시작, 확장해나가고 싶었다”고 했다.
편지를 읽고 펼쳐본 그의 시집에 홍어에 관한 시가 있을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더니 과연 ‘홍어’가 나왔다. 아래의 시다. 홍어의 외로움은 곰삭아 알싸한 향기를 발하듯, 우리네 인생들도 외로울진대 곰삭다 보면 나름의 향기를 낼 수 있지 않을까!
또 사족,
김 시인에게 바로 전화했다. “그렇지 않아도 목포에 가서 홍어 글감을 모으려고 한다”고 했더니, 그가 “흑산 홍어만 취급하는 몇 군데를 잘 알고 있으니, 시간만 내라”고 했다. 그렇다. 시간이 문제다. 꼭 가고야 말겠다.
▶이 시집의 발행일자는 2009년 3월 30일. 흔히 하는 말로 '따끈따끈하다'. 홍어의 본향 흑산도에 한 때 피신했던 김지하는 이 시집에 나오는 '홍어' 등의 시에서 '심오한 생명의 지혜'를 터득한다고 했다. 정진규 시인은 그의 시에 '삶의 진정성을 느끼게 하는 깊게 짚는 알싸한 향기가 있다'고 했다.
홍어
김선태
한반도 끄트머리 포구에
홍어 한 마리 납작 엎드려 있다
폐선처럼 갯벌에 처박혀 있다
스스로 손발을 묶고 눈귀를 닫아
인고와 발효의 시간을 견디고 있다
아무도 없다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다 다만
이 어둡고 비린 선창 골목에서
저 혼자 붉디붉은 상처를 핥으며
충만한 외로움을 누리고 있다
그리하여 비바람 눈보라는 쳐서
그 신산고초에 제맛이 들 때
오래 곰삭아 개미가 쏠쏠할 때
형언할 수 없는 알싸한 향기가
비로소 천지간에 가득하리라.
(개미=곰삭은 맛)
다음 <10>편은 '홍어축제가 시작된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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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을 읽다보면 고향 사람의 삶의 애환과
고향의 풍경이며 정겨운 소식을 친구를 통하여 습득하게 되네,
홍어와 관련되어 많은 지식과 고향 문인과 간접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듯 싶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