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음 소희(Next Sohee)』를 보고 (1)
1. 작품의 배경
영화 『다음 소희(2023.02)』는 「그것이 알고 싶다(2017.02.18). 1068회」에서 ‘죽음을 부른 실습-학생들은 아직도 생사의 현장에 서있다’란 제목으로 방송했던 19살 실습생 ‘홍수연’양의 실제 사망사건을 다루고 있다. ‘전주 콜 센터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한국 영화 최초로 제75회 칸 영화제 비평가주간 폐막작에 선정되었으며, 제26회 캐나다 판타지아 국제영화제 감독상, 그 외 제23회 도쿄 필맥스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과 제42회 아미앵 국제영화제 3관왕을 차지하며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이 작품이 초청된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은 프랑스 비평가협회 소속 최고평론가들이 참신하고 작품성 있는 영화를 엄선해 상영하는, 매년 열편 남짓의 작품만이 선정되어 칸 영화제에서도 경쟁력 있는 부문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작품의 모티브가 된 이 사건은 2017년 1월 당시 홍수연양이 특성화고 애견학과에 다니며 졸업을 앞둔 시점이었다. 그녀는 ‘엘지 유 플러스(LG U+)’ 콜 센터에서 현장실습 중이었고, 해지방어의 상담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수연양은 계약을 해지하고자 걸려오는 외부인의 욕설과 회사 내에서의 실적압박 등의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학교에서는 취업률을 의식해 소규모 하청자리라도 대기업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학생들을 열악한 노동현장으로 내몰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이 가는 그곳은 정상적인 일자리라고 보기 어려운, 임금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는 노동력 착취의 현장이었다. 수연양은 호소할 사람 하나 없는 그곳에서 호된 욕설과 실적압박 등 인간의 존엄성마저 말살된 채, 과도한 스트레스에 못 이겨 차디찬 저수지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이러한 실제 사건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우리 사회에 가려진 청소년들의 심각한 노동현장의 피폐한 환경과 노동력 착취의 문제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또한 이 작품은 학생의 신분으로 겪지 말았어야 했음에도 학교는 피해현장을 회피했으며 그녀의 죽음마저 덮어버리려는 경찰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현장학습의 비리를 파헤치는 과정에서의 학교와 교육부의 안일함 등, 우리 사회에 가려진 청소년 노동문제의 심각성을 심도 있게 파헤치고 있다. 이 영화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진행되고 있을 죽음에 내몰린 근로자들의 현장을 고발하는 영화로써 피해당사자는 물론 기성세대에 걸쳐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영화에서는 현장실습생 ‘소희(김시은)’의 죽음을 두고, 그 죽음을 파헤치는 형사 ‘유진(배두나)’의 활약이 사건사고로 얼룩진 한국사회의 표상을 그린 작품이기에 방영되자마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다음 소희’라는 제목은 주인공 소희와 같은 희생자가 다음에는 없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다음으로 이어지는 사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해 붙여졌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할 것이다. 또한 “그 다음이 영원히 반복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 정주리 감독의 마음의 표제이기도 하다.
2. 작품 『다음 소희』의 줄거리
이 작품은 18살 여고생 소희가 콜 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가는 이야기와 여형사 유진이 자살한 소희의 사건에 의문을 품고 수사하는 과정에서 분노하는 두개의 챕터로 나뉘어져 있다.
(1) 학생 ‘소희’의 시점
오프닝 화면은 댄스연습실에서 열심히 춤을 추고 있는 소희의 모습을 비쳐주며 펼쳐진다. 이 모습은 여고 3학년인 소희의 싱그러운 핑크빛 미래의 밝고 활기찬 청춘을 예고한다. 그리고 다시 화면은 그가 다니는 학교로 전환되고 취업 추천서를 들고 소희를 부르는 담임선생님의 밝은 목소리가 교실의 활력을 더해준다. 고3 실습기간, 취업만을 기다리고 있던 소희는 드디어 사무직 직원이 된다는 기쁨으로 선생님이 내미는 대기업의 취업 추천서인 현장실습 서약서에 사인을 한다. 이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첫 현장실습을 나가게 된 소희. 그녀는 팀장 이준호(심희섭)와의 간단한 인사를 마친 후, 바로 현장에 투입된다. 그가 하는 일은 콜 센터 업무이다. 새로운 업무에 들뜬 마음으로 자리에 앉은 소희는 옆 자리에 앉은 동료직원이 수화기 너머 민원인의 욕설을 듣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마음을 가다듬고 첫 이어폰을 끼고 업무전화를 받는 소희. 하지만 동료가 받은 상처처럼 자신에게도 똑같은 상황이 펼쳐지고, 소희의 업무를 돕던 팀장의 도움으로 간신히 순간을 모면한다. 하지만 자신을 옹호해준 팀장에게 고마움을 표하기도 전에 민원인의 신고를 받은 센터 장(박윤희)에게 두 사람은 호된 질책을 받는다.
감정노동의 최전선에 내몰린 소희는 다음날 지친 몸으로 출근을 하지만, 자동차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팀장의 모습을 목격한다. 그리고 소희는 상부의 과도한 실적압박으로 자신만큼이나 힘들었을 팀장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지옥의 나날을 보낸다. 이어 새로운 여자 팀장(최희진)이 오지만 그녀 역시 팀의 실적을 위해 팀원들을 채근한다. 죽은 팀장의 사유를 충분히 이해했던 소희가 팀장의 장례식장을 찾은 날도 그곳엔 회사 직원은 한사람도 보이지 않았고 경찰도 이미 팀장의 죽음을 개인의 잘못으로 돌린 상태였다. 그의 사망원인 역시 도박이나 여자문제 등 개인의 나약한 성격 탓으로 둔갑되어 있었던 것이다. 점점 무너져가는 소희….
그리고 소희는 수습기간이라는 이유로 계약한 월급에 미치지 못하는 돈을 받는다. 게다가 인센티브조차 받지 못한 채, 흔히 콜을 채우는 일로 연장근무에 시달리는 등, 사생활 정도는 꿈도 꿀 수 없는 업무에 시달린다. 회사에 항의도 해보지만 사내 구조상 어쩔 수 없다는 통보뿐이다. 민원인들의 폭언에 성희롱까지 받아 줘야하는 등의 업무에 지친 그녀는 학교에 상담도 해보지만 선생님은 그저 견디라고만 할 뿐, 그 누구에게 하소연할 방법이 없었고 그녀는 결국 저수지로 향한다. 그곳은 대기업 직영이라던 선생님의 말과는 다르게 하청에, 하청에, 하청인 열악한 노동현장이었다. 결국 소희는 이렇게 현장실습 5개월 만에 스스로의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그에게 남은 것은 폰에 저장된 춤을 추고 있는 단 하나의 영상이었다.
소희가 가장 좋아했던 춤. 소희에게 춤은 억압과 착취, 정서적 폭력을 경험한 그가, 모두가 외면하는 자신에게 해줄 수 있는 자유로운 내면의 아픔을 표현한 몸짓이었다.
(2) 형사 ‘유진’의 시점
콜 센터에서 여직원 실종사건을 배정받게 된 형사 유진은 그곳을 찾아가 “매일 야근이고 너무 힘들다, 죽고 싶다. 그랬다던데”라며 소희의 실종수사를 착수한다. 소희는 이미 자살을 결심하고 손목을 그은 적이 있었다. 이에 회사사람들과 경찰은 소희의 손목의 상흔을 심신미약으로 결론내고 수사를 꺼려한다. 하지만 유진은 경찰 내부에서조차 반대하는 이 사건에 관심을 보이며 수사를 좁혀간다. 유진은 인생을 펼쳐나가야 할 소희의 억울한 죽음에 깊이 분노하고 잘못된 근로환경과 노동착취를 바로잡기 위해 학교를 찾아간다. 취업률 달성이 목표인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노동현장은 답사조차 하지 않은 채 학생들을 압박하고 목표치만을 채우기 위해 급급해 왔다. 교육부에서도 소희의 성격을 문제 삼아 이미 자살로 마무리 된 상태였다.
하지만 경찰 유진은 어른들은 아이들 입장에 서서 강요보다는 잘못된 근로환경과 노동착취를 바로잡아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진은 아이들이 한 인간으로서의 존중과 배려가 선행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기적인 어른들의 잘못으로 인해, 오히려 소희의 죽음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대상은 같은 처지 또래의 주변 친구들임을 알게 된다. 소희를 죽음으로 내몬 어른들, 유진은 소희의 죽음을 책임지려 하지 않는 어른들의 모습에 크게 분노한다. “힘든 일을 하고 존중받으면 좋을 텐데. 그런 일을 한다고 더 무시해, 아무도 신경을 안 써. 그러면 더 혼자가 돼.”라는 유진의 대사는, 그가 소희로 돌아가 느꼈던 감정들을 되짚으며 소희가 마지막으로 사라진 날의 동선을 쫓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소희가 마지막 자살을 결심하기 전 들어갔던 작은 가게에 앉아서 소희가 마셨던 맥주를 시키고 소희가 앉았던 자리에 앉아 작은 문틈으로 들어오는 빛을 바라보며 회상에 젖는다. 유진의 눈에 비친 한줄기 빛은 ‘다음 소희’가 만들어지지 않기를 소망하는 유진이 느끼는 희망의 빛이었다.
영화 끝 부분에 유진은 소희의 핸드폰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즐거운 표정으로 춤추는 소희의 영상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린다. 유진도 경찰 내부에서 부당함을 경험하며 소희와 같은 공간에서 춤을 추었었고, 자신과 같은 시간과 같은 장소에서 마주했을 소희의 춤에 대해 생각하며 그녀를 떠올려 본다. 영화가 시작되는 동시에 보여줬던 소희의 춤은 그간의 과정을 딛고 삶을 갈구하던 소희의 몸부림이었음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