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과 화장실에 관련된 사고라고 보기엔 우스운 해프닝에 관한 소고이다. 핸드폰을 안 들고 급하게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갇힌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난감하고도 원초적이고도 절박하고도 질척한 삶의 진중한 문제, 인류의 원초적 난제에 관한 소묘이다.
이 글을 읽고 난 후, 아무리 급해도 이제 당신은 화장실 갈 때면 반드시 핸드폰부터 챙기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니면 어느 날부터 당신도 나처럼 문 열고 거사를 치르는 일이 습관이나 일상이 될 수도 있다.
#지인 1
1번 지인은 급 똥으로 인해 현관문을 부실 듯이 긴급하게 집으로 뛰어들어옴과 동시에 영화 속 성욕에 미친 자처럼 슈퍼모델이나 본드걸 같은 여인이 기다리고 있을 듯한 화장실을 향해 강렬한 배설욕으로 옷을 벗으면서 달렸다. 변기 뚜껑도 안 열고 앉았다가 서늘한 느낌에 다시 괄약근을 빡세게 조이고 뚜껑 열고 앉아서 시원하게 일을 치르고 푸른 물을 빅토리아 폭포처럼 내렸다. 비데를 초고압으로 해서 응고를 시원하게 씻어주었다. 모든 것을 다 이룬듯한 느낌이 밀려왔다. 존 수자의 "성조기여 영원하라"라는 행진곡이 뇌에 울리고 월계관이 머리 위에 돋아난 승자처럼 나오려는 바로 그 순간, 문이 안 열렸다.
급하게 찾기 시작한 핸드폰은 화장실 앞, 껍질 벗은 바나나처럼 안과 밖이 뒤집어진 채 벗겨진 바지 속에 있었다. 185cm의 장신에 몸무게 118kg의 거구, D 고교 팔씨름 왕 출신답게 완력으로 손잡이를 마구 돌리기 시작했다. 좌우로 수십 차례 반복해도 안되자 급한 성격에 생각이라곤 뇌가 동태찌개 고니 수준이라 절대로 질식사 할리 없는 화장실의 공기가 격하게 떨어지는 망상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고장 난 잠수함 속 카나리아처럼 불안이 심장을 파고들었다. 호흡곤란이 왔다. 급기야 가슴을 잡고 숨을 헐떡거렸다. 양볼에 V모양의 푸른 아가미가 돋아났다. 깨진 수족관 밖 장어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주먹으로 문을 때렸다. 치고 또 치자 드디어 문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하얀 페인트에 거미줄처럼 선이 나타나자 희망이 생겼다. 마지막으로 골판지를 손으로 뜯어냈다. 길을 잃고 헤매다 먼 산에 낯선 불빛을 찾은 전설 속 나무꾼이라도 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정말로 그런 순간이 온다면 존재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처음 보는 위험하고 낯선 집들도 신세계를 향한 밤하늘의 북극성처럼 다가올 것이다.
주먹으로 강타하길 수십 번 뻥 뚫리는 구멍을 보고 환희의 비명을 지르고 손을 넣어 바깥 손잡이를 돌렸다. 기적처럼 나오자마자 쓰러졌다. 그 순간에 외출했다가 들어온 어머니께서
"젖수야 <~~ 너 도대체 왜 그러고 있냐? 화장실 문은 왜 저 모양인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
"엄마, 죽다가 살았다고요. 화장실에 갇혀서 질식사할 뻔했다고요."
" 야! 이 바보야! 화장실엔 환풍구로 공기가 돌아가는데 뭔 질식사 인지?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이 똥 멍청이야, 닭대가리도 아니고 이게 뭔 꼴인지? 문이나 고쳐라, 남들이 보면 가정 폭력 집으로 보겠네. "
지인은 크레용과 도화지를 꺼내서 유일하게 아는 그림인 고흐의 해바라기를 그렸다. 그리고 크게 썼다.
"화목한 우리 집"
핸드폰으로 직접 찍은 사진을 자랑하듯이 나에게 보여주었다. 고흐의 해바라기는커녕 정체불명의 누런 똥 그림이 덕지덕지 실패한 달고나처럼 그려져 있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 위기의 순간엔 멈춰 서서 생각해야 한다. 오늘 당신이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환풍기가 돌아가는 화장실에서는 절대로 질식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인 2
1번 지인과 같은 상황이지만 극도로 침착했다. 밖에서 저절로 닫힌 화장실 안이 마치 쑥과 마늘을 먹고 견뎌낸 웅녀의 이야기처럼 철학의 시간을 깨닫게 한 동굴 속이었다. 득도했다. 화장실에서 쓰러져 삶을 마감하고 죽어서야 비로소 뉴스에 나와 전국적으로 유명인이 되는 상상을 했다.
일본 화장실에서 2주 만에 구조된 사건처럼 이슈화되어 화장실 연관 검색어 1순위가 되는 꿈을 감히 꾸었다. 자신의 이야기가 유튜브나 블로그에 올라오겠지라는 망상이 생겨났다. 신기한 건 화장실에 주저앉아 한참을 고민하는데 죽음 앞에 선 가족도 돈도 반려견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오롯이 자신만을 생각했다고 했다. 몽테뉴가 되는 신기한 체험을 했다. 일상이 철학이 되는 순간이었다.
화장실물을 일주일 정도 마시다 죽어갈 것이고 바닥에 쓰러진 뒤 변사체로 발견되는 모습을 상상했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강타하고 죽어서 핵 유명 인사나 고독사의 상징으로 인플루언서가 되어있을지도 모르는 미래를 그려졌다.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세상이 조금이라도 바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곧 법적으로 화장실마다 119가 자동으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전용이었던 비상벨이 화장실에도 의무화되거나 회장실 전용 씨씨티비가 모자이크로 얼굴을 가리고 보여주는 세상이 자신의 죽음을 값으로 불러오게 될 것이다. 내면에 자신도 모르는 관종기가 있었다. 분홍색 눈썹 정리용 칼로 단지를 잘라 피로 유언을 벽에다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내용을 써야 할까? 감사했다. 사랑했다. 잘 살다 간다. 그냥 하트모양, 십자가, 본인 이름, 대한민국 만세 등등 끝없이 생각이 밀려오는 순간, 침착하게 양치용 컵으로 화장실 물을 마셔보았다. 삼다수와 겨루어도 손색이 없는 맛이었다. 앞으로 이물이 생명수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원효대사처럼 깨달음이 뇌를 얼얼하게 했다. 물맛이 신묘했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바닥에 엎드려 무슬림처럼 기도했다. 행여나 아래층에 들릴지도 몰라 변기 위에 올라가 천정을 두드려보고 환풍구로 소리도 쳤다. 아! 이제 힘이 빠져간다. 변기에 앉아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도 보고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도 보고 온갖 삼라만상이 부질없어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마지막으로 화장실 안에 있는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기적적인 일이 일어났다.
오래된 휴대폰이 있었다. 죽은 폰으로 설마 하는 생각에 119에 전화를 했다. 생명의 소리가 들렸다.
"살려주세요. 화장실에 갇혀있습니다. 제발 아무나 좀 도와주세요." 로빈슨 크루소가 불을 지펴 연기를 모습을 떠올렸다.
눈물 콧물로 호소했다. 119 구급 대원 3명이 드디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태국 국왕 앞 신하처럼 네발로 기어 나왔다. 화장실에 갇힌 지 다섯 시간 만의 일이었다. 이제부터 화장실에 공기계를 비치해 두어야 본업에 충실할 수 있을 것 같다.
위의 사례들은 절대로 절대로 내 이야기가 아니라 지인들의 이야기이다!! 항상 단정하고 깔끔하고 화장실도 안 갈 것처럼 생긴 내 이야기는 절대로 절대로 아니다. 에드거 엘런 포의 까마귀(the Raven)라는 시의 유명한 구절인 “Nevermore(이젠 끝이야)”가 맴돈다.
에드거 앨런 포(영어: Edgar Allan Poe, 1809년 1월 19일 ~ 1849년 10월 7일)는 미국의 작가·시인
기이한 삶을 살다 간 포처럼 화장실의 난제보다 급한 죽음의 문턱을 나는 여러 번 서성거렸다. 첫 번째 죽음은 이리 역 폭발 사고(裡里驛爆發)에서 겪었다. 빅뱅이 다시 일어난다면 발생할 소리일 것 같은 "큰 쾅 " 이 발생하는 혼돈의 순간이었다. 1977년 11월 11일 오후 9시 15분, 전북 특별자치도 이리 역(현 익산역)에서 발생한 대형 열차 폭발 사고 현장에서였다.
초록색 비로드를 입은 좌석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리고 창가에 얹어둔 서울우유병이 날아가 승객의 눈을 강타했다. 옆좌석에 앉아있던 여자의 다리가 의자에 끼여 피가 튀었다. 엄마가 큰맘 먹고 백화점에서 사준 하늘하늘한 "원 아동복" 푸른 원피스가 검붉은 피로 물들었다. 수많은 이들의 죽음을 목도했다. 멀리서 산비둘기가 구구구 울었던가? 가슴을 에이는 공포가 밀려왔다. 한낮의 공포가 서늘하게 목을 타고 아직도 내려온다. 삶의 비련은 이제 시작이었다. 얼마나 더 많은 죽음을 겪어야 내 죽음으로 다른 죽음을 가마니처럼 덮을 것인가? 신이 있다면 용감한 사춘기의 반에서 짱인 아이처럼 선생님들께 대들고 싶어 진다.
외삼촌과 나는 재빠르게 피신했다. 삼촌이 강에서 나보고 옷을 벗으라고 했다. 일곱 살 어린아이지만 난 분명 여자였다. 싫다고 하는데 속옷 입고 있으니까 괜찮다고 어르고 달래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내내 난 침묵했고 막내 삼촌은 검푸른 원피스를 강물에 빨고 또 빨았다. 뱃사공이 노를 젓는 소리가 유난히 삐걱였다. 수많은 죽음을 목도했다. 늦은 밤에 외갓집에 도착했다. 엄마는 뉴스를 보고 기절했다. 다음날부터 시신이 발견될 때마다 수십 개의 가마니를 열고 또 열었다. 당시, 전화기는 이장님 댁에만 있는 비상용품이었다.
이 세상에서 이제 나만이 아는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오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그날을 기억하는 이들은 적을 것이다. 타이타닉에 있었던 생존자는 이 세상에 없듯이 어쩌면 이제 곧 내가 마지막 증인이 될지도 모르는 사건 가운데 내가 있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