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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간화선 수행체계 개관
6. 나가며
지금까지 송대에 개발된 새로운 형태의 수행 도구인 간화선의 시작과 발전과정, 그리고 현재의 모습들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특히 송대 간화선의 영속성과 그 보존에 있어서의 일본의 역할과 일본 선의 진화과정 또한 간단히 살펴보았다. 일본이 송대 간화선을 가장 잘 지켜왔고, 지금의 모습 또한 삼국 중 일본이 가장 가깝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었다. 다만 세계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이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국 불교계의 반응을 바라보면서 아직도 일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한국인으로서의 감회를 잠시 짚어 본다.
1) 일본이라는 단어
한국인이라면 다들 그렇겠지만 “일본日本”하면 우선 부정적인 생각부터 떠오른다. 필자 또한 일본에 가보고 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보고 나서야 그런 선입견들을 조금 지울 수 있었지만, 이웃나라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본은 껄끄럽고 아무래도 정이 가지 않는 나라인 것만은 분명하다.
과거의 치욕적인 역사도 아직은 완전히 끝나지 않은 채 여전히 진행형인데다, 그들이 여러 가지 면에서 대부분 앞서있다 보니 당연히 가지게 되는 마음일 것이다. 그들의 기술을 도입하고 그들의 방식을 배우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도 극복되지 않는 앙금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남보다 우월하다고 느끼고 싶은 욕망을 타고 난다고 하였던가? 우리 민족이 더 뛰어났다는, 그리고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과거에는 우리가 너희들 훨씬 앞섰었다는 그런 우월감 때문일 것이다.
2) 한국과 일본의 근대화 차이
한국과 일본 사이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 일본은 우리에게 오랫동안 내내 뒤져 있었다. 문명의 변방에 있었던 일본은 대부분 우리를 통해 문물을 받아 들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상황은 중세 이후 역전되는데, 개방적인 일본은 중국에만 의존한 우리와는 달리 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막강한 막부의 지배아래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하였을 뿐 아니라 일본은 세계 은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하였을 정도로 부강한 나라였다.
우리는 영・정조 시대(1750~1800)를 문화부흥기로 보고 있는데, 세계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면 문화수준이 그리 높지 않았다. 영・정조 시대, 청은 영국의 차 수입에 따른 은 유입으로 우리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고, 일본 또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에 막부를 열어 정국이 안정되었고, 은 생산으로 부를 축적해 가고 있었다. 서구와의 교역도 활발히 이루어져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고, 개방적인 일본은 서구 문물을 받아들여 임란을 일으킬 정도로 국력이 이미 우리를 능가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유교문명의 중심임을 자처하는 정도였다.
19세기 들어서 미국은 일본 근해의 고래를 잡아가기 위해 개항을 요구하였는데, 오랜 세월 외세의 침략을 받지 않고 평화를 구가하던 절대 권력 막부는 한 번 제대로 겨뤄보지도 못하고 미국 흑선 앞에 무릎을 꿇게 된다. 그러나 그 사건이 오히려 명치유신明治維新의 기폭제가 되어 일본의 근대화가 가속화되는 계기가 되는데, 명치유신으로 봉건제를 타파한 일본은 근대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헌법을 제정하고, 토지제도의 개혁 등을 추진하였으며, 화폐, 금융, 재정제도 및 근대적 교육제도를 도입하였다.
전통산업이었던 섬유산업을 구미기술과 결합하여 수출상품으로 육성하면서 거기서 얻은 외화를 중화학공업 육성에 투자하였으며, 유럽 선진 국가들로 부터 교사, 기술자를 초빙함과 동시에 이들 나라에 유학생을 파견하여 기술 및 경영능력을 도입하여 산업화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영국에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이어 산업화는 벨기에를 비롯한 프랑스, 독일로 퍼져나가는데, 19, 20세기 들어 미국과 더불어 일본 역시 놀라운 성공을 거두면서 일찌감치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반면 우리나라는 조선 말 병인양요丙寅洋擾, 신미양요辛未洋擾 등 두 번의 외침을 받는다. 그러나 일본과는 달리 죽음을 무릅쓰고 끝까지 싸워 그들을 막아 낸다. 그런 굴욕을 용납하지 못하는 선비의 나라였고, 명분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성리학性理學의 나라였기 때문이다. 명분名分과 정권政權의 상관관계가 거의 없는, 칼이 곧 명분이며 무력이 곧 정권이었던 일본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나라였던 것이다. 그것은 자존심과 철학의 문제로 이런 자신감은 척화비에 잘 나타난다.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 나와 나의 자손들은 경계하라.(洋夷侵犯非戰則 和主和賣國 戒我萬年子孫, 丙寅作辛未立.)
그러나 실상은 너무도 가혹하였다. 병인양요 때는 외규장각에 있던 고문서들을 약탈당했으며, 신미양요 때는 미군의 수륙 양면포격으로 인해 부상자는 20명에 전사자는 350명이나 되었다. 이에 반해 미군은 전사자가 3명, 부상자 10명이었다. 무기 차이로 인한 전투 결과는 너무도 참담하였던 것이다. 다만 다행히 재침공이 없었던 것은 우리나라의 개항이 그들에게 별 이익이 없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두 번의 성공을 자축하며 더욱 더 문을 굳건히 걸어 잠그게 된다. 세계정세에 어두웠을 뿐 아니라 그런 자각도 반성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근대화는 늦어지게 되었다. 당시 발달한 문명과 과학기술을 가진 열강들은 군사력을 앞세워 제국주의적 침략의 야욕을 드러내고 있었다. 중국은 이미 열강의 각축장이 되어 있었고, 머지않아 그 칼날은 조선을 겨누게 될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상황이었다.(한상길,「개화사상의 형성과 근대불교」『동아시아 불교, 근대와의 만남』,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엮음, p. 32.)
우리나라에도 선각자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어서 연암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朴珪壽, 1807~1877)가 실학사상에 뿌리를 둔 개화사상가로 활약하였고, 강위(姜瑋, 1820~1884), 오경석(吳慶錫, 1831~1879), 유대치(劉大致, 1831~ ?) 등 지식인 그룹이 개화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들은 개화당을 결성하여(1874년) 자주적 근대국가의 기초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은 수포水泡로 돌아가고 마는데, 개화사상이 아직 성숙하지 못한 상황에서 일본 만을 믿고 급하게 갑신정변甲申政變을 일으켜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였고, 국왕을 인질로 삼는 등 너무 급진적으로 추진하다가 개화에 찬성하던 온건개화파까지도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그들의 정치사상을 지지할 계층이 형성되지 못한 상태에서 외세에 의존한 개혁 시도는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갑신정변의 실패와 함께 19세기말 열강의 침탈에 맞서 싸워야 할 개화세력 또한 일시에 몰락하고 말았다.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면 이런 개화기 상황은 긴 세월 동안 우리 조상들이 누렸을 우월감에 비한다면 잠시 걸음을 멈춘 정도에 불과했다. 우리나라는 중국 황하문명黃河文明보다 천년이상이나 앞선 요하문명遼河文明1을 일으킨 민족으로, 한반도로 내려와 자리 잡은 뒤로는 영산강 지배세력인 마한에 이어, 가야 또한 일본을 지배 경영하였다. 고구려와 백제도 오랜 동안 일본 내에서 지배계층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백제 무령왕이 일본 왜왕(일본 천황)이었다가 백제왕이 되었다는 데에 이르면 우리가 먼저 식민지 경영을 했었다는 역사적 사실 앞에 서게 된다. 물론 일본의 악랄한 제국주의 침략과는 비교도 안 되겠지만.
3) 한국과 일본의 명암
1982년 미국에서 제작된 공상 과학 영화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는 미래에 대한 불길한 암시와 인간의 본질에 대한 매우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의 배경은 2019년 세계 대전 이후 가공할 핵무기로 불모지가 되어버린 도시 미국 로스앤젤레스다. 이제 푸른 자연은 찾아 볼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끊임없이 산성비가 내리는, 스모그가 짙게 깔린 곳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런데 영화 속 도시의 마천루에 걸려있는 대형 스크린에선 일본여인이 광고모델로 등장하고 있다.
일본여인을 전광판에 등장시킴으로서 미래에는 첨단기술의 나라 일본이 세계를 주도할 것이라는 암시를 주고 있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도시의 간판과 네온사인은 모두 일본어나 한자로 되어 있는데, 당시 미국에서 커져가고 있는 일본의 경제적, 문화적 영향력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는 것이다. 영화가 제작될 당시만 해도 일본이 미래 세계를 재패할 것이라는 데에는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았던 것이다.
현재 세계는 영화처럼 되지는 않았지만 일본은 여전히 그리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 국제통화기금의 통계수치에 따르면 일본은 20년간 계속 세계 최대 채권국으로 부동의 위치를 지키고 있고, 대외對外채권액에서 대외채무를 뺀 순대외채권이 3조 달러에 이르러, 2등인 중국에 비해 약 두 배에 이른다. 이는 한국 한 해 총생산의 두 배 이상이나 되는 액수이기도 하다.
일본은 근래 들어 무역적자로 돌아서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오랫동안 무역흑자를 보아온데다, 저축을 많이 하는 일본인이 그 돈을 해외에 많이 투자하였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대외채권국으로 이자 수익만도 엄청나 순채무국인 우리나라와는 비교조차 불가능할 지경이다.
한편 제조업이나 과학적인 기반에서도 우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데, 얼마 전 우리는 두 번이나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리는데 실패했지만, 일본은 이미 1970년, 4번의 실패 끝에 성공하였고, 2007년에는 달 탐사 위성 ‘가고야’를 달에 보냈다. 일본은 이 가고야 위성을 통하여 자전 공전을 하는 달이 왜 항상 같은 면(옥토끼가 방아를 찧는 면)만을 지구를 향하고 있는지 밝혀내었고, 달 표면의 크레이터 수를 세어서 그럴 듯한 지구 생명의 우주기원설까지 일부분 증명해내었다.
그러나 최근 아사히신문은「주식회사 일본이 망했습니다.」라는 제하에 ‘일본 파산’ 시나리오를 보도했다. 천문학적 인플레이션 상태에 돌입한 짐바브웨나, 연간 재정 적자가 국내총생산 대비 12.7%를 넘어선 그리스처럼, 일본은 10년 안에 거덜 난다는 내용이었다. 지금 일본은 국채 발행액이 나라 전체 연간 수입을 초과하고 있고, 2010년 말에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를 망라한 일본 정부 전체의 공적 채무가 949조 엔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는 주요 선진국 중에서 유일하게 GDP의 2배(약 1.97배)에 달하는 규모이다.
거기다 일본은 인구의 20%가 노인인 노인국가이다. 1위를 달리던 조선업이 우리에게 그 자리를 내 준 것도 노동집약적인 조선업을 지탱할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일본을 이끌던 자동차나 전자 산업 등 첨단 기술 산업 또한 어렵기는 마찬가지여서, 일본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전망이 불투명한 국가로 전락해 가는 중이다.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가 방영되던 1980년대와 비교하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느껴진다.
한편 일본은 자타가 공인하는 불교 종주국이기도 하다. 우리의『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저본底本으로『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脩大藏經』을 편찬, 세계 불교학계에서 활용하고 있고, 일찍이 팔리어 경전을 일본어로 번역한『남전대장경南傳大藏經』도 간행하였다.
경전 간행뿐만 아니라 석지현 스님이『벽암록』해설서를 쓰면서 ‘주석서는 중국과 우리나라에는 거의 없고 일본에만 집중적으로 있는데 50종이 넘는다.’라고 했을 정도로 불교 연구 또한 우리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2010~12년 3회에 걸쳐 동국대학교에서 열렸던 간화선 국제학술대회에서는 일본 불교를 말하는 학자는 많아도 한국 불교에 대해 논하는 연구자는 드문 것이 현실이다.
4) 비상하는 한국의 위상
세계여행을 가면 발에 차이는 것이 일본의 그림자다. 일본 영화는 한때 세계 영화계에 한 장르를 차지하기도 하였고, 일본 문화가 일정 부분 세계를 주도하였다. 그러나 세상은 바뀌어서 작금에 이르러 2007년 ‘밀양’으로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전도연은 2014년 제67회 칸 국제영화제에 경쟁 부문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고 있고,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였고,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 원작 등 4개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우리나라 가수 BTS, 블랙 핑크 등이 미국의 빌보드에 오르내리고 있다.
필자가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가게 된 동기도 상당부분 학문을 추구한다는데 있었다기보다는 좋아하던 영화나 음악의 본고장으로 가 본다는 데 의의가 있었다고 쓴 적이 있었다. 영화로 제작되었던 안정효의 소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2는 당시 우리나라 청년문화의 실상이었다. 주지주의主知主義 시인 박인환(朴寅煥, 1926~1956)은 미국의 문화를 동경하면서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하다 종국에는 미국으로 가던 그런 시대가 이제는 추억이 되었다.
한국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세계를 제패하고, 넷플릭스를 비롯한 해외 시청자가 많이 본 OTT 콘텐츠 3위가 바로 한국산인 시대가 되었다. K-가 붙으면 그 위상이 달라지는 나라에서 살게 된 것이다. 병인양요 때 약탈당한 외규장각 도서가 돌아오고, 신미양요 때 미군이 광성보를 점거하고 가져간 “수자기帥字旗”가 반환 된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다. 삼성 반도체가 세계를 주름잡고 있고 미국 거대 기업인 애플과 동등하게 특허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일본은? 일본은 혐한嫌韓 집단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격렬하게 투쟁하며 그들의 초라해진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이미 그들과 동등한 관계에 있으며, 그들을 긴장시키는 상대라는 것을 그들의 목소리로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 그림자처럼 드리웠던 열등감은 사라진지 오래인 것이다. 이것으로 우리들의 자존심은 어느 정도는 회복되었다고 보아도 되지 않을까?
다음 장에서는 개략적으로 인도와 한중일 선종사를 둘러보고 간화선 수행체계의 출발과 그 안착을 보다 더 세밀하게 살펴볼까한다. 일본의 선종사 개관槪觀 장에서는 일본의 불교사와 선종사를 개관해 보고 부족하나마 그 특징들을 짚어 본다. 중국 선종이 한국과 일본에 전해지는 과정과 그 전개를 살펴봄으로서 어떻게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지를 유추해 보고 과연 깨달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현 선도회의 위치까지도 가늠해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1. 요하문명遼河文明은 중국 만리장성 북동부에 존재했던 신석기 시대 문명으로 요하일대에서 일어난 문명이다. 홍산紅山문화로 대표되는데, 홍산문화는 1908년 일본의 인류학자 도리이 류조(鳥居龍藏)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으며 연대는 기원전 4700년 ~ 기원전 2900년 경으로 지금까지 츠펑(赤峰, 발견 당시엔 열하성), 링위안(凌源), 젠핑(建平), 차오양(朝陽) 등 500여곳의 유적을 찾아냈다. 발견 지역은 옌산 산맥의 북쪽 랴오허 지류의 서 랴오허 상류 부근에 널리 퍼져 있다. 중국에 의해 1980년대부터 본격적인 발굴이 이루어지면서 싱룽와 문화(중국어 간체: 兴隆洼文化, 정체: 흥륭와문화(興隆窪文化), 병음: xīnglóngwā wénhuà Xinglongwa culture[*]), 훙산 문화(중국어 간체: 红山文化, 정체: 紅山文化, 병음: hóngshān wénhuà), 자오바오거우 문화(중국어 정체: 趙寶溝文化, 병음: Zhàobǎogōu wénhuà), 신러 문화(중국어 간체: 新乐遗址, 정체: 新樂遺跡, 병음: Xīnlè Yízhǐ Xinle culture)등의 요하일대의 신석기문화를 문화의 단계를 넘어 세계의 새로운 문명으로 보아 ‘요하문명遼河文明’으로 명명(命名)하여 부르고 있다. (위키백과).
2. 1994년 제작된 정지영 감독 작품. 고전영화 <황야의 7인>, <초원의 빛>, <미드나잇 카우보이> 등에 열광했던 교복세대 영화광들이 영화를 통해 겪는 에피소드와 이들이 자라 감독이 되고 시나리오작가가 된다는 이야기. 독고영재, 최민수, 김정현, 홍경인, 신혜수 출연. (제작노트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