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열의 나라 쿠바, 그 초록빛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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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날> 하바나 시내 관광
밴쿠버와는 4시간의 시차가 있다. 한국에서 돌아와 17시간의 시차 극복이 겨우 될까 말까 한 차에 또 쿠바에서의 시차가 있어 내 바이오 리듬이 오락가락한다. 마음 같아서는 별빛 따라 출렁이는 바닷가에라도 혼자 나가 거닐고 싶지만 행여 뒷일이 두려워 방안에 움추리고 있자니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니였다. 새벽 2시에 깨어 꼬박 아침이 되니 차라리 일어나 글을 쓰는 것이 나을 듯 하여 살금살금 목욕탕으로 들어가 세면대를 책상 삼아 본다. 이번엔 푹 쉬고자 책 한 권도 안 들고 왔으니 쓰기나 하는 수 밖에 도리가 없었다. 아직도 밖은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는 것이 영 일정이 개운치가 않다만 하늘이 하는 일은 아무도 모르니까 아침까진 좋아지길 기대해 본다. 오늘은 하바나 시내 관광이 있는 날이다. 쿠바를 보기 위한 날이기도 하다. 물에 들어가는 일이 아니니 비만 안 오면 될 일이다. 모닝콜 소리에 일운 특유의 큰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는 기척이 났다.
7시 40분 출발이라 식당에서 정식으로 아침 식사하기엔 이른 편이라 24시간 열고있는 카페에서 간단히 빵과 야채사라다와 커피와 우유를 마시고 호텔로비에서 기다리니 정시에 버스가 왔다. 이 호텔에선 우리 부부만 오늘 시내 관광 일정을 잡은 모양이다. 덕분에 맨 앞 좌석을 잡았다. 관광 여행은 앞 좌석이 시야가 넓어서 좋다. 다음 호텔 경유에서 차 하나 가득 무겁게 태운 버스는 스웨덴차 볼보 버스 였다.
얼마를 가다 보니 앞 차가 현대버스다. ‘저기 보셔요. 우리나라 차예요’ 소리쳐 알리고 싶은 마음이 기쁨처럼 솟구친다. 그래서 외국을 나가보아야 비로소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맞나 보다 여겨진다. 국력이 얼마나 우리를 힘 나게 하는지 나와 보아야 안다. 지도자 한 사람 잘못 두면 나라의 흥망이 좌우됨을 본다. 뽑을 때 까진 우리의 권한이지만 뽑히고 나면 그의 권한 안에 있기 때문이다. 쿠바를 보며 더욱 그러함을 느끼게 된다. 카스트로로 인하여 공산주의 이데아가 들어오고 그들은 공평히 다 함께 잘 사는 나라를 만들고자 하였으나, 그 이데올리기는 철저히 고립되고 가난만이 그들 앞에 놓여 후진국으로 추락되고 말았다. 내가 보기엔 새로운 혁명으로 새 지도자가 서기까진 이미 나태하고 안일주의에 빠져있는 국민성의 각성부터 힘들겠고 경제 살리기엔 더욱 힘들 것으로 느껴졌다.
Varadero를 벗어나서 해안을 끼고 산 중턱을 넘어 등뼈처럼 뻗어있는 일자 도로 하나로 모든 교통이 이어지고 있었다. 관광객 유치 호텔 이외 개인 주택으로 보이는 집들은 거의 축사 같은 모양이다. ‘89년 공산권이 붕괴하면서 심한 경제위기를 경험하며 그나마 물자가 부족하여 그 후 한번도 페인트 칠은 못한 것 같아 보였다. 벗어진 칠로 얼룩진 모습들이 참담하게 보여 한눈에 나라 경제가 들어다 보이는 듯 하다.
도로변에 나붓기는 유도화의 흰색 붉은색 꽃들은 제주도를 연상케 했다. 산 하나 가득 열대의 울창한 나무들이 끝없이 펼쳐지고 국토의 반은 밀림으로 차 있다 싶은 느낌이었다. 마을이 있는가 싶으면 거리엔 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태워달라고 여기저기 손을 들어 50년대 초 우리나라를 연상케 했다. 사람들의 표정이나 행동들은 자유롭게 느껴졌지만 또한 곳곳에서 검문하는 경찰들의 모습에선 공산국가체제를 연상케 했다. 지도상으로 보아 일본 같이 긴 섬으로 되어있고 등뼈처럼 산 중턱에 도로가 높게 자리하고 있어 좌우로 바다를 보며 한 눈에 쿠바를 보게 되기도 한다. 버스는 천천히 바다와 맞닿아 방파제 역할을 하는 말레콘을 끼고 쿠바의 수도 하바나로 들어섰다. 역시 수도구나 싶게 유럽 풍 큰 건물을 만나게 되고 역사의 광장에 내려졌다. 하바나는 올드 하바나와 뉴 하바나로 나누어 불리어 지고 있다. 우리가 내린 곳은 올드 하바나이다. 영어와 스페인 발음이 깔린 언어라 더 더욱 나는 ‘죽이겠다’는 말도 못 알아들을 일이지만 일운은 어렵사리 알아 듣는 듯 하여 안심이기도 했다. 그냥 눈으로 보이는 것이 느낌이 되는 여행이지만 즐거운 것은 사실이라 외국여행의 맛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옛 영화를 누리던 시에 스페인 총독관저 라든지 대성당 등은 이오니아식 혹은 도리스식 건축의 돌기둥으로 이어진 웅장하고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유럽 풍 건물들로 눈을 끌었다. 큰 건축물은 그 당시의 풍요를 말 해 주는 듯 했다. 역대의 탐험가 크리스토퍼 컬럼버스의 동상이 눈에 새로웠다. 1492년 쿠바를 발견한 콜럼버스는 ‘지상 최대의 아름다운 땅’이라 했단다. 미국의 봉쇄정책으로 불운을 겪고있지만 관광객에겐 여전히 아름다운 섬나라로 남는다. 시간은 흘러 역사로 남아 말하고 우리는 그들의 영화와 몰락과 과거를 보며 현재를 조명하고 있다.
박물관엔 역사의 유물들이 진열 되어있고 사회주의 혁명의 함성이 깃던 ‘혁명광장’엔 탱크와 비행기 미사일 등이 아픈 역사를 무언으로 말해주듯 진열 되어있었다.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그 울타리 앞에 붉은 글씨의 팻말이었다. ‘머물러서 보지 말 것’ 서서 한참을 보지 말라는 것이다. 어쩐지 으시시 해 졌다. 아직도 자유로운 언론도 정치행동은 절대 금물이다. 태여 남의 자유가 있다면 이 땅엔 아직은 태어날 일이 아니다. 우리는 사진을 찍어 역사를 간직했다. 영화의 한 장면인가. 혹은 타임머신을 탄 기분인가. 거리엔 여행객이 추억을 위하여 손을 흔들며 인력거에 혹은 마차에 실려 흔들거리며 가고 있었다. 장난감차가 개조 된 것 같은 태워 주어도 두려울 작은 차라든지 금방이라도 바퀴가 빠질 것 같은 덜덜 되는 고물차를 몰고 와서 타라고 손짓이다. 대중 버슨가 싶은 긴 차는 트레일러를 개조하여 만든 것으로 보인다. 1950년대식 구형차들이 전시라도 하는 듯이 줄지어 서 있고 관광객들의 호기심은 카메라에 담는 일이었다. 먼저 둘러 온 모 시인은 가거든 꼭 마차를 타 보라고 했었는데 영 내키지가 않아서 그만 두고 대신 사진을 여러 장 찍어 보았다.
역사의 광장서 좌우를 돌며 사진을 찍고 관광객들은 서로를 보며 즐거워 한다. 백화점도 그 흔한 Food점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그 어떤 것도 들어오지 않은 것을 보면서 안내양의 말처럼 미국을 몹시도 적대시 하는 것을 알게 된다. 여행객이 볼 수 있는 유일한 시장은 광장 앞 쪽으로 길게 간이시장처럼 세 줄로 붙어 늘어 섰고 천막으로 겨우 이어져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쿠바인들은 그들만이 다니는 시장이 따로 있다 한다. 그러니 이곳은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한 특정구역인 셈이다. 진열품과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관광객들이 호기심으로 드나들고 있었다. 조개껍데기 장식품과 목각인형, 손 뜨게 옷가지들이 두 줄로 이어지고 끝 줄이자 밖이 되는 줄에선 화려하게 원색인 적도의 열정이 남은 그림들이 진열 되어 손님을 맞고 있었다. 어수선한 것을 싫어하는 일운을 그림진열대 앞에 남겨두고 나도 무언가 기념이 되는 물건을 건져보고 싶어 비좁은 길을 부딪치며 헤집고 다녔다. 선 듯 잡히는 것이 없어 두 바퀴를 돌고 발레하는 소녀 상 조각 두 점과 적도의 여인상 두어 점을 사고 별 같은 예쁜 색 유리 목걸이와 조가비 허리띠를 골랐다.
일운은 그림을 사고 싶어했는데 통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 적도의 정열답게 원색의 그림들이라 우리 정서엔 영 내키지도 않았지만 막상 가져다가 걸기도 마땅치 않을 것 같아 망설이다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살가말가 하는 식의 구매는 절대 안 하기로 오래 전에 이미 졸업한 일이다. 한동안 재미있기는 하였지만 국민들은 어디에서 무엇으로 충족을 하며 살까 싶어지니 씁쓸했다. 시내 관광이 끝나고 버스에 올라오니 역시 관광수입으로나마 어렵게 사는 것이 확실하구나 싶어졌다. 그래서 인지 정부시책이 관광객의 안전이 절대라 한다. 만약에 관광객의 안전에 불이익이 오게 한 자가 있다면 그것은 대단한 벌을 받게 된다 한다. 그래서 관광특구 내에 있는 한은 제일 여행하기에 안전한 나라로 꼽힌다. 그러나 그 외의 지역에선 간혹 위험을 받는다고 한다. 버스 역시 관광버스만이 제대로의 모습이다.
아직도 1950년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낡은 도시와 온갖 구형차가 난무하는 곳, 그러나 대서양과 카리브해를 끼고 천혜의 해변을 가진 아름다운 섬 나라 초록빛 바다의 쿠바!
내가 기대를 크게 가졌던 헤밍훼이의 생가는 미국과의 관계가 적절치 않은 탓인지 현지 여행가이드엔 없었다. 아쉬운 마음이 컸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헤밍웨이는 1939년부터 자살로 그의 문학의 장을 닫는 1960년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플리쳐 상과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며 수상작 ‘노인과 바다’ 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등은 영화로서 나의 머리에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세기의 대 문호 어네스트 헤밍웨이는 아직도 살아 모두의 가슴에 남아 그의 문학을 세세에 전하고 있다. 그가 즐겼다는 쿠바 최고 칵테일 모히토를 마시려는 관광객들이 그가 생전에 자주 갔었다는 ‘엘 풀로리디타’ 나 ‘라 보데기타’의 문 앞에 지금도 줄을 서서 기다린다고 한다. 모히토는 3년 산 럼주에 설탕 반 스푼 과 라임 과즙 소다수에 얼음이 더해지고 끝으로 자극적인 향을 풍기는 민트과의 식물인 예르바누에나를 첨가한 오묘한 맛을 낸다고 한다. 헤밍웨이는 하루에 10잔 이상의 모히토를 마셨다고 한다.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기고… 나는 무엇이 되어 남을 것인가 생각하게 하는 시간을 잠시 가져 보았다.
대서양 바다와 맞닿아 방파제 역할을 하는 말레콘은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며 청춘들의 로맨스의 공간이기도 했다. 말 없는 초록빛 바다는 마냥 파도가 출렁거리고 있었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서서히 주택가를 돌아 하향 길에 오르고 구름 한 점 없는 바다는 수평선이 아득히 푸르다. 각자 느끼는 바가 다를 마음들을 가지고 돌아오는 길이 깜빡깜빡 졸음으로 흔들린다. 물자부족으로 칠이 벗어져 폐허인 가 싶은 집들엔 그래도 사람이 사는 흔적이라도 두듯 빨래가 해풍에 펄럭였다. 그런 생도 한 세상을 살고 가야 한다. 슬픈 마음이다.
Habana를 깃점으로 본다면 Varadero 관광특구로 들어오면서부터 해안 쪽으로 호텔들이 몰려있다. 호텔이 보이고 비로소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 나며 관광의 나라임을 보여준다.
하바나와 Varadero 는 불과 두시간 남짓한 거리지만 완전 다른 나라와 같았다.
사 온 기념품 등을 정리하고 샤워를 하고 보니 출출해 짐이 저녁 때가 된 것 같다. 오늘 저녁은 See Food로 예약이 된 클럽하우스로 향했다.
펄럭이는 기분처럼 좀 더 예쁜 옷으로 차려 입었다. 모두들 하루종일 수영복으로 놀다가도 저녁식사 땐 예쁜 옷으로 갈아입고 모자까지 맞추어 쓰고 나오는 이들이다. 식사도 오래오래 즐기며 먹는 이들이 이번 여행에서 유난히 내가 눈 여겨 보게 하는 이유가 된다. 버터에 구운 바다 가제 요리를 시키고 와인도 곁들여 시키며 ‘베사메무쵸’의 라이브가 무르익는 식당 안의 분위기는 사뭇 아름다운 밤으로 우리 부부를 들뜨게 했다. 하늘엔 별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 밝고 가깝다.
남십자성이 어딘가에서 우리를 보고 많이많이 행복하라고 웃고있는 듯 한 밤이었다.
밤바다가 하루의 잔해들을 치우는 소리가 윙윙 들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