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목젖
내가 코를 골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아주 오래 전이었음은 틀림이 없다. 비만인 체격에다가 아버지의 코골이 전력으로 비춰봐서는 유전적인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고 해서 평소에 특별한 불편을 느꼈던 것도 아니어서 그러려니 했으나 간혹 같이 잠을 자 본 분들이 가끔씩 숨을 멈추는 무호흡증이 있는 나의 코골이를 걱정한 적은 있다.
80년대 중반에 독일로 보름간의 출장을 간 적이 있다. 첫 해외 나들이였던 탓에 흥분된 마음으로 해를 따라 서쪽으로 향하는(그래서 밤이 있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구름과 지상의 황홀한 풍광에 피곤을 느낄 틈조차 없이 20여 시간의 장거리 비행(당시에는 직항로가 없어서 태국 방콕에서 중간 급유를 받고 중동의 한 도시에 기착을 했다가 스위스 취리히공항에서 다른 비행기로 환승을 했다.) 끝에 독일 프랑크푸르트공항에 도착했다.
일행이 4명인 우리는 근교에 있는 호텔에 짝을 나눠 투숙을 했다. 10시간이나 나는 시차에다 비행 중의 피로가 겹쳐 골아떨어진 채 숙면을 취하고 일어나 보니 룸메이트의 얼굴에 벌레 씹은 표정이 역력했다. 유달리 예민한 성격의 그 친구는 내 코골이에 밤새도록 잠을 잘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할 수 없이 우리는 출장기간 내내 각방을 쓸 수밖에 없었고 그에 비례하여 지갑의 두께도 얇아지게 되었음은 불문가지다.
90년대 초 승진을 하여 신임 보직자 교육을 받들 때 일이다.
연구소 내에도 교육기관인 연수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필이면 외지(경기도 안성)에서 합숙 연수를 한다고 한다. 2,000명이 넘는 직원 탓에 연구소 내에서 오다가다 안면이야 있었겠지만 잘 모르는 얼굴이 태반이라 역시 코골이에 대한 걱정이 없을 수 없었다. 약국에 가서 상황설명을 하니 코가 건조하면 그럴 수 있다며 내미는 보습제를 사들고 연수를 떠났다.
한 방에 두 명씩 배정이 되었는데, 어쩌면 룸메이트보다 늦게 잠자리에 들면 상대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 싶어 휴게실에서 자정이 넘도록 바둑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돌아와 보니 탱크가 지나가는 듯 무지막지한 콧소리에 천정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베토벤의 운명교향곡 서주부처럼 쿵쾅거리는 그 커다란 울림이 나에게는 발라드를 듣는 것처럼 감미롭게 다가왔다. 반가운 마음에 이게 왠 떡인가 하고 자리에 누웠으나 그 코고는 소리에 나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는데 그 보상인지 이후 남은 연수 기간 내내 꿀맛 같은 밤을 보낼 수 있었다.
90년대 중반 사회적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핵폐기물사업부서로 자리를 옮긴 나는 정부의 사업조정 여파로 150여 명의 직원들과 함께 팔자에도 없는 공기업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나이 50이 넘도록 연구소의 수평적 문화에 길들여진 나로서는 일사분란한 공기업의 수직적 기업문화를 이해하기도 따르기도 버거웠는데,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밉다는 속담을 증명이나 해보이듯이 새로운 완장을 얻어 차고 설쳐대는 족속들에게 환멸을 느끼는 중에도 직원 간 동질성을 강화한다는 명목 아래 다그치는 교육을 소화하느라 많은 땀을 흘려야 했다.
중앙교육원에서의 소양교육 후에 신입 직원이나 받음직한 QA교육은 쥐꼬리만 한 보직 덕분에 면제를 받았으나 먼 타지에 있는 원자력연수원에서 받아야 하는 보름 동안의 전문교육이 문제였다.
70명씩 2개조로 나뉘어 교육을 받기로 되었는데 이직자 중 최고령인 나의 직속상관까지 대상이 되었다. 선배는 60년대 초 한국 제일의 공과대학을 졸업한 수재이나 출세의 보증수표인 든든한 동아줄은 고사하고 썩은 새끼줄조차 붙잡는 재주가 없어 승진이 늦기는 했으나 오랜 기간 내 직속 상사로 있으면서 인생의 맨토 역할을 해 주시던 분이다.
이런 분에게 줄을 대고 있는 나도 별 볼일이 없기는 마찬가지나 서로를 위하자는 뜻으로 한방을 쓰기로 했고, 내 코골이 습성을 잘 아는 선배는 수면제와 귀마개까지 준비를 해왔으니 염려 말라며 나를 안심 시킨다.
그러나 어김없이 다음 날 아침에는 그 천사 같은 선배의 얼굴에도 벌레를 씹은 둣한 표정이 역력했으니, 그 덕분으로 교육 기간 내내 독방을 차지하는 호사를 누렸다.
교육 후 돌아오자마자 나는 선배의 주선으로 대학병원 수면검사실에 납치되어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는데 목젖이 주범으로 밝혀졌다.
목젖은 식도와 기도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식사 때 음식물이 식도로 넘어가지 않도록 조절하고 외부에서 세균이 몸 안으로 침투하지 못하도록 방패 역할을 하며 또한 몸에서 열이 날 때에는 주위의 임파선과 함께 붓게 되어 조기에 몸의 이상을 감지하는 역할을 한다. 인체에 불필요했다면 벌써 퇴화되어 없어져야 마땅한 것이 현재까지 건재한 것을 보면 그 중요성과 필요성은 인정되고도 남는다. 그런데도 기도를 넓히기 위해서는 잘라야 한단다. 심한 무호흡증으로 인해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협박에 굴복하여 나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신체를 훼손하여 목젖을 잘라내게 되었다.
한마디로 장애인이 된 것이다. 그 이후 내가 잠자는 중에 코를 고는지는 직접 들어본 바가 없기에 확언은 못하지만 당연히 정상일 거라는 확신은 하고 산다.